2025-10-27

「조선종전의 기록」 번역을 시작하며 & 서문(..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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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종전의기록(朝鮮終戰の記錄) 155개의 글 목록열기
조선종전의기록(朝鮮終戰の記錄)
[공지] 「조선종전의 기록」 번역을 시작하며 & 서문(1)
허정권 ・ 2021. 10. 7. 

日本 中古書店 Site에서 購入한 書籍이 到着.
飜譯開始하다.

이책을 접한 계기가 이연식의 著 "조선을 떠나며"와 사전지식차 읽은 유주현 著 "조선총독부"와 이병주 著 "관부연락선이였다. 저자인 모리타 요시오는 1947년 조선총독부의 축소판인 동화협회에서 활동하였고 종전후 일본대사관 참사관과 1975~1985년까지 성신여자대 일문과에서 교수로 재직한분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및 종전후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책으로 출판한것인데 본서를 도서관에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우리는 번역판조차 없는게 아닌가.
(일본인의 기준으로 썼니 어쨌니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자 그리고 그 당시 이런 빅데이터는 조선총독부의 자료가 유일무이 했을것이고 한나라를 40년 가까이 통치하였던 기록이므로 그것을 통해 배울건 배우고 버릴건... )각설하고 미문한 저가 감히(무지가 용기를 낳는다는 심정으로)한자 한자 이곳 블로그에 남긴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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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이 끝난 후 일본 국민이 다다렀던길은 역사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다는 냉엄하다는 사실에서 다수의 아사자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 무렵 해외에서는 6백만 동포의 고국송환이 시작되었다. 후생성은 쇼와 25년(1945년) 10월 16일, 점령군으로부터 송환에 관한 중앙 책임 관청으로 지정되었다. 해외에서 귀환하는 육해군 군인, 그것과 거의 같은 수의 달랑 옷 하나만 걸치고 외지, 외국에서 귀국하는 일반 해외동포들을 받아들이는 송환원호사업은 전후처리업무의 중요한 일환이지만, 그 후 18년에 걸쳐 후생성 소관업무로 점령이 종료된 후에도 일관되게 그 사업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민족대이동은 단지 세계에 유례가 없는 특이한 대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한 시기를 긋고 있다. 후생성에서는 이러한 의의에서 현재 육해군 복원사 편집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원호업무의 개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미 「귀환 원호의 기록」 3권이 발간되었다. 지금 이곳에 출판하기로 한 조선종전의기록은 오른쪽의 귀환원호의 기록
1권의 기초자료 수집으로 출발했다. 전후, 조선은 다년간의 열망으로 독립을 약속받았다고는 하나,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에 의해 점령당한, 불행 그 후 남북 별개로 신정권이 수립되었다. 거기로부터의 일본인 귀환에는, 많은 사건이 보여질 뿐만 아니라, 복잡다기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의 경위는 장래를 위해 상세하게 후세에 남겨져 야 한다. 그러나 역사를 엮고 가다듬는 사업은 입에 담기만큼 쉬운 사업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곤란한 조건을 수반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 수집은 종전 직후 경성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이 책의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쇼와 24년(1949년), 당시 참의원에 있던 穂積真六郎(호즈미 신로쿠로)씨의 추천에 의해 인양원호청에서 실시하고 있던 각지의 인양사정조사 중 조선관계 자료작성을 의뢰했을 때부터 이미 15년의 세월이 경과했다. 모리타 씨는 그동안 외무성, 법무성, 외무성으로 3곳을 전근하고 있지만 '고대하는 마음의 모임'의 시중을 비롯하여 시종일관 조선귀환의 문제와 씨름하고 조선귀환사의 완성을 위해 그 기록자료의 수집, 세부적인 추구를 위해 여러 차례 더 나아가 조선귀환사의 완성을 위해 그 기록자료의 수집, 세부적인 추구에 임해 왔고 세부적인 추구에 있어서는 문부
성 기타로 부터 연구보조를 받아 몇번이나 그 원고를 수정해왔다. 그 치밀하고 성실한 인품은 역사편찬에서 빼놓을수 없는 요소인데 조선인양은 이 점에서 진실로 그 저자에게 사람을 얻었다고 할수있다. 여기에 조선인양에 관하여 신뢰할수있는기록인 조선종전의 기록이 완성된것에 대해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기뻐함과 동시에 그의 오랜노고에 감사하며,아울러 세상에 천거하기를 아끼지 않는것이다. 요청받은대로 감히 서문을 여기에 쓴다. 쇼와 38년 10월
후생성사무차관 太宰博邦

서문(2)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크게 전환시켰고, 우리국민앞에 많은 과제를 제기하였다.
우리의 장차 내일을 깊이 생각하는것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아울러 솔직하게 과거를 반성하고 장래에 같은실수를 하지않음을 기하는것도 또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전쟁에 관계되는 진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큰 의무 중 하나여야 한다.
이번에 모리타 요시오씨의 필생의 역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선종전의 기록'이 나온 것은 이 뜻에 있어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일본인의 조선 귀환에 대해 기술된 것이 몇 가지 있긴 했지만, 그 대부분은 단편적이거나 혹은 그 관찰이 치우친 것이며, 조선으로부터의 귀환에 대해 그 전모를 정확히 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아쉬움을 느껴왔다.
본 저서는 미소 양군의 진주상황을 비롯하여 일본인 귀환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기술은 모두 저자 자신이 종전시부터 오늘날까지 18년의 긴 세월에 걸쳐, 혹은 조선현지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혹은 귀환 후 내지에서 귀환 관계 관청자료 및 귀환자들의 입으로 직접 모은것을 주관을 섞지 않고 정리한 생생한 기록이 라는 데 큰 특징이 있다. 본 저서는 단지 일본인의 귀환기록뿐만이 아니라 과거 일본의 조선통치의 실태를 돌이켜보고 장래 일한 양민족의 본연의 모습을 시사하는 귀중한 記述이 풍부하고 향후 우리나라가 한국관계의 외교를 원활히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좋은 자료로서 부족함이 없다.
참고로 저자는 종전 시에 경성일본인세화회 직원으로 활약하였고 1966년 3월, 일본으로 귀환된 후에도 재외동포 원호회, 조선인양동포세화회를 비롯하여 후생성 귀환수호청, 외무성 귀환조사실 등에 적을 두고 계속해서 조선귀환문제를 다뤄왔었던 경력의 소유자로 이런 종류의 기록 작성에는 바로 최적의 인재임을 특히 덧붙임과 동시에 다년간에 걸친 저자의 노고를 새삼 위로하고자 한다.
쇼와 38년 10월
외무성 아시아국장 後宮虎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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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3)
종전 후에서의 패전 국민의 본국 송환은 일종의 민족 대이동이었다. 조선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 않고 칠십여만 명의 거주자 외에 군대 및 만주에서 조선을 통과해 들어온 사람을 합하면 백만을 돌파했을 것이다. 게다가 남한의 미군은 연합군의 결정에 따라 일본인 송환을 서둘렀지만, 북한의 소련군은 주민들을 억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송환 사태는 매우 복잡했다. 조선의 각 도읍에는 세화회가 생겨 유지들이 공전의 사태에 전율하며 주민의 원호에 나섰으나 기후도 춥고 상황도 험악했던 북한 지방의 서쪽지역과 북한지방의 고심은 특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 같다.
경성은 조선의 중심지이자 북한지방의 서쪽지역과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근거지가 되는 곳이었다.
우리의 동지들인 총독부의 미즈다(광공국장), 시오다(재무국장) 두 국장의 알선과 조선군 사령부의 후의에 따라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경성 일본인 세화회를 설립하고 경성의 사찰을 수용소로 삼고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선생들의 진력으로 3개 병원을 손에 넣고 북으로부터 탈출해 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종전 이듬해 3월, 나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투옥되어 내지로 귀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당시 경성 일본인 세화회의자금이 미군에 몰수당하고 직원은 극단적으로 감원 명령을 받아 고난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나의 뒤를 이어 경성일본인세화회 회장이 된 후루이치 스스무씨는 얼마 안되는 동지들과 함께 세화회를 이끌고 서북한, 북한으로부터 의 대탈출계획을 추진하여 그해말까지 대개 송환을 완료하고 귀환하였다.
세화회 설립 후 나는 모리타 요시오 씨에게 이번 일본인 송환은 미증유의 일로, 언젠가 귀환사를 만들게 될것이니 그때를 위해 자료를 모아 두라고 부탁했다. 모리타씨는 자신도 그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조선에 재류중은 물론 귀환 후에도 하카타에 머물며 구호에 나서서도 자료를 모으려고 애쓰고, 내지의 관청에 근무하게 되어도 각지의 세화회 간부였던 분들, 또는 고생해서 귀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종전후 조선각지의 기록을 한장 한장 모을수 있었다. 이 노력은 십수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귀환사는 흥미 본위의 것은 아니지만 숙독 음미해 보면 당시 세상이 어수선했기 때문에 별로 중시되지 않았던 귀환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고, 전쟁이라는것은 승자도 패자도 얼마나 상도를 벗어나게 하는가 하는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모리타 씨의 20년 가까운 일관된 노력과 성의에 대해 새삼스런말 같지만 경건함을 금할 수 없다.
이 책의 서문은 인양 원호에 가장 고생한 古市進(후루이치 스스무)씨가 쓰는 것이 당연했다. 후루이치씨가 병상에 누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에게 보내주신 대필 편지에 이 책의 서문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말해 오셨다.
그러나 후루이치 씨의 병세는 급작스럽게 진행되어 서문을 쓰지 못한 채 서거하셨다.
모리타 씨의 역작이 나올 때 후루이치씨를 비롯해 인양과 관련하여 작고하신 분들의 영혼도
마음을 모은 기념탑 건립으로 편안히 잠드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또한 모리타씨의 오랜세월에 걸친 노력에 감사하며 서문으로 삼는다.
쇼와 39년 1월
중앙일한협회 부회장 · 전 경성일본인세화회 회장
호즈미 신로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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