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rnoopetdSs5090f576uu0f0uau9lmac31u0475h6421gh2l5u233c1668imh ·
여순 반란에 관련한 이재명의 발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글을 쓰며 하나씩 따져보고 정리해보자.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천여 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국군의 창설일은 언제인가? 어려운 문제인가. 아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미군정으로부터 경찰, 국방경비대, 해안경비대를 이양받아 접수했다. 8월 15일부로 국방경비대가 아니라 국군이 되었다.
당장 여순 반란 직후 10월 24일의 기사를 보자.
"한민당 선전부에서는 금반 전남지방 국군 반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국군의 반란을 보게 된 것은 건국도상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현재의 국군은 국방경비대가 그 명칭을 변경한 것인데 그 건군의 이념에 대하여는 세인의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엄폐치 못할 사실이다."
국군 통수권자가 국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국방경비대라면 미군정에 대한 반란인 것이고, 대한민국 국군이라면 대한민국에 대한 반란이다.
이어서, 이재명은 좌파적 감성에 젖어 사실 관계를 흐린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문제고, 이 명령이 부당했을까? 좌파들이 4·3을 많이 이용해먹지만, 알맹이만 쏙 빼먹어 피해자 위치만 챙기고 4·3이 진짜 어떤 일이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4.3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민간인 학살이 늘어났고, 국가폭력의 성격도 분명 띄게 되지만 여순 반란 이전의 상황은 다르다. 남로당의 목표는 5.10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 저지였다. 그 목표를 달성해 총선은 제주를 빼고 치뤄졌다. 여순 반란 전까지는 산발적인 충돌이 있었을 뿐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
8월 21일. 반란수괴 김달삼은 월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다. 4·3이 주요 경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김달삼의 연설을 보자.
“4월 3일 오전 2시를 기해 인민군, 즉 산사람들이 총궐기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서 습격 31회, 경관 100명 이상 숙청, 독촉, 서청 기타 반동 400명 이상 숙청, 지서 소각 5곳, 전선 절단 893건, 그 밖에 무기 다수를 노획했습니다. 북조선 민주 개혁이 남조선에서도 하루속히 실시되도록 용감히 싸웁시다. 우리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그의 천재적 영도자 스탈린 대원수 만세!” 김달삼 1948년 8월 21일 남로당 인민 대표자 대회 연설
김달삼은 이후 제주땅을 두 번 다시 밟지 않는다. 9월 9일 북한 정부가 수립되고 김일성이 수상이 된다. 9월 15일 새로 무장세력 사령관이 된 이덕구가 다시 군경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여순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4·3의 초기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좌우의 대학살극이 아니다.
김달삼의 보고대로 지서습격 31회, 경관 100명, 반동 400명이 살해되었다면 국군이 제주에 내려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재명은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라며 국군 파병 자체를 부당한 명령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부당한가? 경찰서가 불타고, 반란수괴는 소련군을 찬양하며, 북조선의 민주 개혁이 남쪽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데 가만 있으란 말인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는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기 전이다. 남로당 무장 반란 세력이 국민이기에 진압되어서는 안 되나? 암세포도 자기 몸이기에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14연대의 반란 과정을 바라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의 따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좌파 저자들의 저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좌파들이 좌파 문건을 들여다보지 않는 모양이다.
연대장은 화물 선적을 하고, 장교들은 환송회를 하는 사이 하사관과 병이 주동이 되어 반란이 터졌다. 지창수 상사가 병들을 선동해 무기고를 털고, 간부들을 살해했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스무 명에 달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다'는 말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장교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총에 맞았는데, 장교 중엔 김지회 중위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김지회 중위를 포함한 14연대 장교 대부분은 남로당에 포섭된 점조직이었다. 우발적 상황에서 자기 조직을 스스로 깍아먹은 셈이다.
장교들을 해치운 반란군은 봉산파출소, 여수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을 살해했는데 이때 희생된 경찰이 수십 명이다. 다음 날 여수의 민간인들이 반란에 가담하고 무기를 지급받았다.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어 인민재판이 시행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되었다. 사흘 간 여수에서 희생된 사람이 경찰 74명, 인민재판으로 살해된 사람이 또 그만큼이다. 순천으로 반란이 퍼지며 강도가 심해진다. 사흘간 순천에서 죽은 경관과 민간인은 900명에 달한다.
어떤 사람들이 살해되었나? 순천경찰서장은 두 눈이 뽑힌채 차에 묶여 끌려다니다 불타 죽었다. 광기 어린 반란의 공포가 느껴진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의 한센병 환자 수용 시설 애양원에서 봉사하던 종교인이다. 일제하에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뤘으니, 해방후에야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큰 아들 손동인(23세)은 순천사범에 다니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작은 아들 손동신(18세)은 중학 2학년이었다. 이런 청년들이 인민의 적으로 몰려 살해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아들을 죽인 이를 용서해 세간을 놀라게 했고, 백범 김구도 이 일을 칼럼으로 남겼으니 당대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학살극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남로당 간부 이현상도 이 사태에 충격받았다. 이현상과 함께 지리산 빨치산을 하던 생존자가 말한다.
"당적 죄악이라고 하셨지요. 당의 지시를 받지도 않은 채 우발적으로 군사반란을 일으켜 수많은 인민과 혁명 역량을 훼손시킨, 크나큰 오류요 죄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현상 평전
이현상은 죄악이라지만, 조정래 생각은 다르다. 문 서방 입을 통해 공정하고 통쾌한 인민재판을 묘사한다.
"존 귀경거리고말고라. 죄는 진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고, 즈그놈덜이 평소에 웂이 사는 사람덜 아프고 씨린 맘 몰라주고 행투 고약허게 해감서 배 터지게 묵고 살았응께 고렇게 당혀서 싸제라. 고것들이 하나씩 죽어자빠지는디, 씨엉쿠 잘됐다. 씨엉쿠 잘되얐다, 허는 소리가 속에서 절로 솟기드만요."
조정래는 몇명이나 죽였다고 봤을까. 이번에는 염상구의 입으로 말한다.
"고 오살헐 눔덜이 쥑여도 무지막지허게 많이 쥑였당께요. 지끔도 계속 조사 중인디, 오늘 아칙꺼정 확인된 것만 100명이 넘었단 말이오."
조정래가 말한 희생자도 100명이다. 10분의 1로 줄여도 무지막지한 희생이다. 무지막지하게 죽였다는 걸 좌파들도 다 안다.
글이 한참 길어진다. 이재명의 말로 돌아가자.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천여 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강경 진압 과정에서 전남과 전북, 경남 일대에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살아남은 이들과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동안 침묵을 강요받으며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틀린 사실 관계를 정리해 보자. 국방경비대가 아니라 국군 반란이다. 부당한 명령에 맞선 반란이 아니다. 무차별 학살 전 단계에서 벌어진 반란이다. 강경 진압 과정에서만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된 것이 아니다. 반란 과정에서 군경과 민간인이 수백 명 학살되며 사건이 시작되었다. 진압중 많은 이들이 엮여 무고하게 희생되었고, 재심을 통해 억울함이 밝혀진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14연대가 일으킨 것은 명백한 군사 반란이다.
이재명은 사실을 왜곡해 내란을 찬양·고무하고 있다. 빨치산 수괴 이현상도 비판하는 반란을 미화해 찬양하고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학살한 사건을 거꾸로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내란 찬양·고무자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내란을 찬양·고무한 이재명에게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하겠다.
==
이재명
1일
오늘은 여수·순천 10-19사건 제77주기입니다.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천여 명이 제주 4·3사건 진 압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강경 진압 과정에서 전남과 전북, 경남 일대에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 생됐습니다. 살아남은 이들과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동안 침묵을 강요받으며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엄 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21년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라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역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 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애써주신 유족회와 정치권, 각계 활동가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다시 한번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며, 평화와 인권 의 가치를 굳건히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Kim Jiwon
잘 읽었습니다. 참담하네요. 국방 관련 용어마저 틀리는 뼛속 깊은 반체체 내란범 이재명...글 감사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