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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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문제, 특히 책 <제국의 위안부> 문제는 내가 한국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문제이다.
-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가>로 그 사람의 <사고의 수준>, <윤리의 규범>을 이해하게 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반일민족주의>를 벗어나는 가의 문제이다.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는 저자에게는 어려운 경험을 가저왔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한국사회가 깨어나는 에 큰 기여를 한다고 나는 본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DYk4Kyn58/?mibextid=wwXIfr
Park Yuha
·Sordnstpoeih5l63u9c63tgh5g47uc412fi719a93uh1i4c129a30m4cat99 ·
<박유하 혹은 책에 대한 평가및 과거에 일어났던 사태에 대한 코멘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특별공로상 수상결정과 취소사태가 유발한, 나를 향한 3라운드 비난이 시작된지 곧 한달이 되어간다.
마음 비우고 지나려다가 무려 김어준 방송코너에서 나를 비난하는 이까지 나타난 걸 보면서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태초기에 썼던 것처럼 더이상 그들의 주장에 일일이 반론할 기운도 의욕도 지금은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 쓴 몇 개의 글 만으로도 눈밝으신 분들이라면 문제를 느껴 주시지 않았을까 기대할 뿐이다. 고발때 그렇게 다가와 주었던 분들이 계셨던 것처럼.
그래서 반박대신 홈페이지에 오래전에 올려뒀던 몇 개의 글을 여기 올려둔다. 결국 누구를 믿는가의 문제일테니. 각종매체와 페북에서의 비난을 보고 처음 찾아 오신 분들 보십사고.
나와 나의 책에 대한 평가를 남겨줬던 이 분들은 명실공히 각국 최고레벨의 지식인들이다.
특히 “텍스트” 분석에 강한 이분들의 독해력과 판단력 대신
목적이 앞선 “아무말”을 더 신뢰하고 싶은 분들께는 나로선 더 이상의 할 말은 없다.
(예전 번역이 어색한 곳은 조금 다듬었다.)
기운내라는 노래선물까지 받았으니 기운을 내야 하는데, 가을 타는 건가 아직은 흥이 나지 않는다.
물론 언제나처럼 금방 잊고 다시 세상사에 참견하게 되겠지만.
—————————-
장정일(작가)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 국가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제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라는 것을 밝힌다.“
https://parkyuha.org/archives/4475
”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박유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정영환/이명원의 박유하 죽이기>)
https://parkyuha.org/archives/4439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대표.저자)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https://parkyuha.org/archives/4464
앤드류고든(역사학자. By 석지영)
“일각의 주장에서처럼 박 교수가 저서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위안부 여성들의 잔인한 고통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고든 하버드대 일본 근현대사 교수는 일본 및 미국 내 학자 66인과 함께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박 교수 형사 기소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며 우려스럽다”며 박 교수 저서의 학술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https://parkyuha.org/archives/7070
오에겐자부로 (작가)
“박교수의 논문과 비평은 그 지속적인 자세와 함께 보편적 사상으로서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경의의 념을 갖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16BLFQAptb/?mibextid=wwXIfr
가라타니고진(사상가)
”박유하의 작업은 한국에서는 친일적이라고 비난받고 일본에서는 반일적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애초에 각오하고 오랫동안 위안부문제에 천착해 온 박유하 교수에게 나는 깊은 경의심을 품고 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987
우에노치즈코(여성학자)
“이 책에서 평가해야 할 점은 제국, 즉 식민지지배의 죄를 보이는 곳으로 이끌어낸 데에 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861
가노미키요(여성학자)
“『제국의위안부』는 민족과 젠더문제가 섞여있는 식민지지배라는 큰 틀에서 국가 책임을 묻는 길을 열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865
와다하루키(역사학자)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분열”
“아사히신문은 최근 (제국의 위안부)일본어 번역본을 내기도 했다. 책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
”위안부 문제를 잘 다루지 않던 NHK 조차….박교수의 책을 통해 위안부문제를 언급하고 박교수가 심포지엄에서 언급한 한일전문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연구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박 교수가 일본내에서 위안부문제를 환기시키는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https://parkyuha.org/.../%ED%95%9C%EA%B5%AD%EC%9D%BC%EB...
——————————
일본어판은 진보를 대표하는 아사히 신문사에서 나왔고(2014)마찬가지로 진보지인 마이니치 신문이 상을 수여했다(2015).
그리고 내 모교 와세다대학이 준 상에는 “이시바시 탄잔 기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2015).
얼마전 이시바수상이 담화에서 “언론인 시절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은 식민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고 언급했던 그 수상 이름 맞다.
—참조—
(화해를 위해서 출간.한국어판2005/일본어판2006)
1라운드 —재일교포 김부자/서경식이 “우익에 친화적“”일본진보지식인들이 박유하를 옹호하는 건 식민지지배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작하고 한국 진보 사회에 확산시킨 비판(2007.7~2014.1)
(제국의 위안부 출간.2013&2014)
2라운드—서경식과 연대한 박노자의 공격과 그 직후의 고발, 11년 이어진 민형사소송과 책에 대한 가처분과 최종무죄판결(2014.2~2025.7)
3라운드—출판문화협회의 공로상 수상에 대한 정의연등의 반발을 접한 박유하/정종주의 자진사퇴와
그사실이 은폐된 채 이어진 일부학자들의 비난. (2025.9~ )
Jongyil Ra
모아 놓으신 글들이 새삼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논쟁을 뒤로하고 새로운 작업 하시기 부탁합니다
Brian KC Park
3:3:4 법칙이 있습니다. 10명이 있으면 나를 지지하는 3명 반대하는 3명 무관심한 4명이 있다고 하네요... 전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로 부터 받은 평가를 열람하기 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이 법칙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많은 학자들이 학문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교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Park Yuha
5년전 오늘, 이현창 작가가 <제국의 위안부> 국가검열 사태를 작품화해 주었다고 썼었다.
우연이지만 내일은 대법원 무죄판결 2주년이 되는 날이다.
https://www.facebook.com/share/1BEw7rtws9/?mibextid=wwXIfr
21h
Park Yuha
얼마전에 올렸던 12년전 경향신문 리뷰도 다시 올려둔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JcCTR55K9/?mibextid=wwXIfr
Suk Hee Yu
그 석지영이 하버드 교수인가요? 친구 딸로 무슨 큰상을 받았던.
Park Yuha
Suk Hee Yu 자세히는 저도 모르는데 하버드 로스쿨 교수라고 합니다.
望月至高
やれやれ、朴さんも大変だなー、何処にも粗雑な人はいます、しかし世界が朴さんの読者です。がんばってください。
Park Yuha
望月至高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後藤心配かけてますが大丈夫です。
Park Yuha
책이 나오면, 친구한정으로 해 둔 댓글쓰기를 전체공개할 생각.
무의미해보이는 질문과 온갖 곡해에도 그 때 답변할 생각이다.
나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YH Cha
박유하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솔직히 좀 (사실은 많이) 걱정이 되네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과연 괜찮을지... 그렇다고 대화를 아예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으니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쨌든 책은 나오자마자 예약입니다.

Park Yuha
실은 90년대학번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요. 제가 유학후 돌아와 가르친 첫 세대여서요. 책 쓸 생각도 해 왔으니 대화해야죠.^^
Park Yuha
이제 사회 중추이기도 하고요.
Jang-Won Choi
박유하 그렇죠.."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힌국사회를 위해서" 가 통하는 분위기기 오고, 조성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한일관계는 그냥 답이 정해진 논조만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죠....답답합니다..
Park Yuha
Jang-Won Choi 그래도 시대적 한계이자 (물론 개인적 역량의 한계도) 필연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분단상태이자 북한과 적대상태로 있는 한 그런 상황은 이어지겠죠.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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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혹은 책에 대한 평가및 과거에 일어났던 사태에 대한 코멘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특별공로상 수상결정과 취소사태가 유발한, 나를 향한 3라운드 비난이 시작된지 곧 한달이 되어간다.
마음 비우고 지나려다가 무려 김어준 방송코너에서 나를 비난하는 이까지 나타난 걸 보면서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태초기에 썼던 것처럼 더이상 그들의 주장에 일일이 반론할 기운도 의욕도 지금은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 쓴 몇 개의 글 만으로도 눈밝으신 분들이라면 문제를 느껴 주시지 않았을까 기대할 뿐이다. 고발때 그렇게 다가와 주었던 분들이 계셨던 것처럼.
그래서 반박대신 홈페이지에 오래전에 올려뒀던 몇 개의 글을 여기 올려둔다. 결국 누구를 믿는가의 문제일테니. 각종매체와 페북에서의 비난을 보고 처음 찾아 오신 분들 보십사고.
나와 나의 책에 대한 평가를 남겨줬던 이 분들은 명실공히 각국 최고레벨의 지식인들이다.
특히 “텍스트” 분석에 강한 이분들의 독해력과 판단력 대신
목적이 앞선 “아무말”을 더 신뢰하고 싶은 분들께는 나로선 더 이상의 할 말은 없다.
(예전 번역이 어색한 곳은 조금 다듬었다.)
기운내라는 노래선물까지 받았으니 기운을 내야 하는데, 가을 타는 건가 아직은 흥이 나지 않는다.
물론 언제나처럼 금방 잊고 다시 세상사에 참견하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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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작가)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 국가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제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라는 것을 밝힌다.“
https://parkyuha.org/archives/4475
장정일, 일본 ‘국민 작가’의 숨은 국가주의 (시사IN)
장정일 소설가
박유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서평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 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 국가 이데올로기의 동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임을 밝힌다.
나쓰메 소세키는 ‘하루에 세 편씩 논문이 나온다’고 할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처럼 일본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차지한 ‘국민 작가’라는 부동의 자리 때문이다. <나의 개인주의>(책세상 펴냄, 2004년)라는 제목의 나쓰메 소세키 강연집을 편역했던 한국 역자의 약력에 적힌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라는 문장은 더하거나 뺄 게 없는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문학동네 펴냄, 2011년)는 보유 격의 논문 몇 편을 빼고는 통째 나쓰메 소세키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이 책 전체를 나쓰메 소세키가 창안한 ‘자기 본위(개인주의)’를 해명하는 데 바쳤다. 그 전에 언제부터인가 당연시된 ‘국민 작가’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우리는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투수’에다 ‘국민 여동생’까지 있으니, 국민 작가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국민 문학’이 문학사나 이론서에 등재된 것인 데 반해, 국민 작가는 문학을 설명하는 보편 용어가 못된다.
국민 작가라는 용어를 여기저기서 접하다보니,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전문적인 연구자들까지 저 용어가 근대문학이 발생한 모든 나라에 으레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 작가에 해당하는 영미(英美)·프랑스·독일·러시아·스페인어권의 대응어나 개념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가 아니다. 진짜 곤혹스러운 것은 저 용어를 통해 근대문학을 고민해보겠다는 비평가가 곧바로 ‘국민 작가를 가지지 못한 나라는 근대문학에 미달한 나라’라는 성급한 단정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런 억견에 대해서는 국민 작가가 일본에서만 쓰이는 그들만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의 산물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갱신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근대적 헌법·군대·교육·의료 체계 등을 모방하면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식의 문화적 상징물마저 갈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공식처럼 외우고 있는 ‘영국=셰익스피어’ ‘프랑스=위고’ ‘독일=괴테’ ‘러시아=푸시킨’ 따위 믿거나 말거나 한 상식에는 어서 서양을 따라 잡아야겠다는 일본의 문화적 후진성이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한국 비평가가 일본의 전근대성에서 생겨난 국민 작가를 근대문학의 발달을 가늠하는 기준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이만저만한 촌극이 아니다. 메이지 시기의 일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국민 작가를 주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이 있었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국민 작가가 만들어질 수 없었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이 있었다. 그것을 무시하면, 문학 연구라는 이름을 빙자한 또 다른 식민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없다’는 이미 ‘있다’는 전제를 수긍한다. 따라서 ‘있다’를 거부하며 ‘없다’를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항상 ‘있다, 그러나 어떻게 있게 되었다’를 통해, 만들어진 기원을 폭로하고 허물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런 전복은 외국인을 위한 일본의 어느 역사 교과서가 러·일전쟁을 전후로 한 일본의 아시아 지역으로의 무력 진출을 기술하면서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방식에 대해 반대한 것은 사회주의자나 나쓰메 소세키, 요사노 아키코 등의 문인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는 작업이다. 위의 인용에서 문제가 되는 천황제(일왕제)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했던 사회주의 작가의 막대한 고난과 희생은 익명으로 표시되는 대신, 당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했던 정도의 천황제와 제국주의에 대한 아리송한 회의를 토로했을 뿐인 나쓰메 소세키가 마치 일본의 양심이었던 양 제시되는 일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해서는 입 닫아
나쓰메 소세키는 어떤 기준에서 국민 작가가 되어 교과서를 오르내리고, 여타의 작가는 문학사에서조차 난외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의문 없이 마치 자연인 양 국민 작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 만들기’와 ‘국가 비판’을 양축으로 했던 근대문학의 임무 가운데 저항성(국가 비판)을 거세하는 일이다.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 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된 국가 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제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라는 것을 밝힌다.
일본의 근현대 작가와 평론가는 물론이고 이른바 패전 이후 일본의 진보 지식인에게까지 나쓰메 소세키가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펼쳤던 문명론과 개인주의 언설이 큰 몫을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서구를 발달한 문명(과학·기술) 세계로 간주하고, 일본을 문명 세계에 위협받지만 그보다 뛰어난 문화(정신)를 가진 나라라고 여겼다. 문명과 문화를 양극단으로 나누는 이런 대립 구도는 프랑스 혁명 전후로 줄곧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독일 지식인이 프랑스에 대항하고자 만든 일종의 정신승리법이면서, 누군가로부터 침략받고 있다는 유사 식민지적 공포를 통해 민족주의를 동원하는 기제였다. 그렇게 저장된 독일과 일본의 민족주의는 머지않아 제국주의로 진화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항상 서양에 대항해서는 일본 문화를 내세웠지만, 조선이나 중국보다 앞서 문명화된 일본이 두 나라를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문명론은 흔히 자기 본위라고 부르는 개인주의 옹호와 결합되어, 국가주의와 물질문명에 저항했던 것으로 예찬된다. 하지만 그의 모든 대표작을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주의는 항상 국가나 사회 질서의 한 분모로서만 존재했다. 또 한번 그의 동서문명론을 끄집어내자면, 서양이 도전과 투쟁을 통해 불평등을 뒤집는 문명이었던 반면 동양은 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가 등식화한 ‘문명/문화/자연’ 사이의 각축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잠시 요약했던 것처럼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을 문명의 총화로 보고,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자리에 일본 문화를 올려놓았다. 여기에 책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계몽되어야 할 여성이 자연으로 등장한다. 메이지 시기와 같은 국민국가 탄생기에 자연과 동급으로 취급된 여성은 문명과 문화의 담지자인 남성에 의해 길들여져야 했다. 이런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다시 한번,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주의가 철저히 근대국가의 기획을 거들었던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지은이가 파헤친 국민 작가의 본모습이다.
”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박유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정영환/이명원의 박유하 죽이기>)
https://parkyuha.org/archives/4439
장정일,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오독 (허핑턴포스트)
장정일 소설가
『녹색평론』5~6월호(제148호)를 받았다. 목차에서 이명원 형의「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를 발견하고 그것부터 읽었다.
위의 글에서 이명원은 박유하의 한국어판『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2013)와 일본어판『제국의 위안부』(아사히신문출판,2014)를 가리켜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65쪽)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의 지식인과 독자들이 격렬한 박유하의 팬덤(fandom)으로 전락하는 마술은 [판본을 달리한 지은이의] 이런 수사학적 책략 탓”(66쪽)이라고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동일한 서적’이 아니며, 바로 거기에 박유하의 간계가 숨어 있다는 식의 이런 음모론은 원래 이명원의 것이 아니라, 일본어판 출간 즉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것이다. 정영환의 주장은 이타가키 류타와 김부자가 함께 엮은『’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삶창,2016)에「’전후 일본’을 긍정하고픈 욕망과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제목을 실려 있다. 거기서 정영환은 한국어판 262쪽과 그것을 번역한 일본어판 251쪽을 비교하고 나서,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98쪽)라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있으면 모르되, 정영환이 먼저 제기하고 이명원이 고스란히 받아쓴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는 결코 두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를 놓고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저 대목이『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핵심 주장’을 다르게 하고 있는지, 정영환이『’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에 번역해서 싣고(94~95쪽), 이명원이「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에 고스란히 인용한(64~65쪽) 문제의 대목을 살펴보자(일본어판 인용문에 나오는 밑줄은 정영환·이명원의 것이며,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 있는 볼드체는 나의 것이다).
(한국어판) 말하자면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식민화 과정에서의 동학군의 진압에 대해서도, 1919년의 독립운동 당시 수감·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밖에 ‘제국 일본’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들은 국민동원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지만, 제국의 유지를 위한 동원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희생자다.
(일본어판) 그러한 의미로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 이 사실은 한국에 더 알려야 하겠지만, 그것(지금까지의 사죄 – 번역자 주)은 실로 애매한 표현에 불과했다. 1919년의 독립운동 때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국 일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없는 채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정영환·이명원은 일본어판에 자신들이 밑줄 친 문장을 들어 박유하가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해놓고서, 일본어판에서는 그것을 뒤집었다고 말한다.
일본어판의 독자를 위해 바꿔 쓴 부분 중에 주목해야 할 포인트로서, 저자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어판에는 일본 정부는 식민지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라고만 쓰여 있는데, 일본어판에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다는 문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문장이 추가되면 “공식적으로”라는 의미가 사죄를 한 사실은 있으나 “애매한 표현” 때문에 한국에 전달되기 힘들었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정영환 : 96쪽)
위의 각기 다른 판본을 보면, 삽입된 문장들 때문에 매우 상이한 의미를 띠게 된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는 식민지배 책임에 대해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가, 일본판에서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렇게 판본이 다른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명원 : 65쪽)
어떻게 읽으면 저렇게 될까? 두 사람 다 기가 찬 해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싶어, 문과와 전혀 거리가 먼 통계학과를 나온 지인에게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읽히고 나서, 일본어판은 한국어판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일본어판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은, 바로 그 위에 나오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 대한 부연이다.” 맞다!
그러면 한국어판의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에는 부연이 없는데, 왜 이 대목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본어판의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는 저런 부연이 필요했을까? 밑줄 친 대목으로 부연하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라는 박유하의 단정에 의문과 반발심을 느꼈을 것이다. ‘무슨 말이야?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았다니?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토미이치는 무려 총리였지 않는가?
박유하는 일본인의 의문에 답하고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고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을 일본어판에 넣은 것이다. ‘일본 정부의 수반이 사과를 해온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이라고 하기에는 늘 애매한 것이었다.’ 정영환·이명원이 일본어판에 밑줄 친 대목의 아래 부분을 보면, 밑줄 친 그 대목이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의 부연 설명이라는 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박유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대표.저자)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https://parkyuha.org/archives/4464
김규항,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제국의 위안부’ 토론과 논쟁 사이
맥락 생략된 텍스트 읽기 애석
상징체계가 주입한 습관 깼으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특히 이 책처럼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담은 텍스트인 경우, 논쟁은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포획되어 버린다. 다들 진지하고 열띤 얼굴로 견해를 말하지만 실은 그 상징체계가 주입한 이런저런 주문을 암송할 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유의미한 논쟁이 되려면 상징체계를 박차고 나가, 비로소 내 견해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즉각적이고 단순명료한 반응과 판단을 의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매춘부’ ‘동지적 관계’ 등 텍스트 조각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책의 적확한 요약이 되기도 하고, 책에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보수 세력은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통해 반일 정책을 표방하며 일본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이중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을 개탄하는 데 그치는 건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문제는 ‘반일’이라는 개념 자체의 기만성에 있다. 일제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일본 민중 역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했으며,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이해를 같이했다. 해방 후 지배계급으로 남은 그들은 모든 것을 민족 간의 문제로 은폐하고 기만했다.
그런 기만은 진보 세력에게도 답습된다. 한국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이어 미 제국주의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 세력 안에서 한국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된 사회’라 해석되곤 했다. 진보 운동은 ‘민족주의+진보(계급)’라는 모순적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계급이라는 ‘체’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진보(계급)의 괴멸도 지속되었다. 조직노동(민주노총)이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현실을 외면하고, 진보정당이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면서 지리멸렬해진 내적 원인도 결국 그것이다.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제국의 위안부>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위안부 문제 활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정대협의 활동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소녀상이 담은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은 사실관계와 문제의 본질을 동시에 거스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든 창녀든 예수의 어머니이듯, 모든 생존 위안부는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든 안 하든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에 대한 정대협의 부당한 태도는 위안부 운동이 생존 위안부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존 위안부들이 위안부 운동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게 한다.
‘민족주의+진보’의 수렁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진보적 인텔리들이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 당시, ‘민족 배신자’로 매도되면서도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던 한나 아렌트를 상찬하는 건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상찬이 지적 허세가 아니려면 온전하게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이 되어 봐야 한다. 아렌트는 일생의 벗들에게까지 절교당해야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아렌트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게 바로 박유하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지난 역사, 남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역사에선 쉽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친일 문제에 대해 단순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나는, 독립이나 해방을 좇는 사람은 이미 ‘비현실적’이라 치부되던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살았어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그것은 현재의 지배체제, 즉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내 태도로 추정될 수 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밤늦도록 학원을 돌게 한다면, 신자유주의의 다른 분파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유일한 사회적 희망이라 생각한다면 그 태도는 허상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상징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일 뿐이다. 우리는 그 습관을 직시하고 해체해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가 처음으로 우리의 습관을 적확하게 비판하거나 해체하려 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즉 해체했어야 한다며 고마워할까, 아니면 아렌트 앞의 유대인들처럼 격렬하고 집단적인 반감을 보일까. 박유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답을 보여준다.
“일각의 주장에서처럼 박 교수가 저서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위안부 여성들의 잔인한 고통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고든 하버드대 일본 근현대사 교수는 일본 및 미국 내 학자 66인과 함께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박 교수 형사 기소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며 우려스럽다”며 박 교수 저서의 학술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https://parkyuha.org/archives/7070
위안부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서 – 석지영
한편 한국에서는 책임을 축소하려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고, 이따금씩 이러한 분노가 ‘일본군이 총구를 겨눠가며 한국 처녀들을 성노예로 납치해갔다’는 식이 아닌 주장 앞에서는 편협함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15년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여성 모집 당시 한국인의 역할 및 “노예같은 조건”하에 감금된 일부 위안부 여성들과 일본군 사이의 연애 관계에 대한 고찰을 담은 저서를 출간하여 위안부 여성들로부터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찰로부터는 형사 기소를 당했다. 일각의 주장에서처럼 박 교수가 저서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위안부 여성들의 잔인한 고통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고든 하버드대 일본 근현대사 교수는 일본 및 미국 내 학자 66인과 함께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박 교수 형사 기소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며 우려스럽다”며 박 교수 저서의 학술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결국 박 교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는 배상 판결을 받았다. 형사 재판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 THE NEW YORKER
“박교수의 논문과 비평은 그 지속적인 자세와 함께 보편적 사상으로서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경의의 념을 갖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16BLFQAptb/?mibextid=wwXIfr
”박유하의 작업은 한국에서는 친일적이라고 비난받고 일본에서는 반일적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애초에 각오하고 오랫동안 위안부문제에 천착해 온 박유하 교수에게 나는 깊은 경의심을 품고 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987
가라타니 고진, 박유하 씨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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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씨의 작업> 가라타니 고진
최근 들어 한일·중일간 긴장이 높아진 것은 일본정부가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내(일본)내 제반 문제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대외적인 긴장/대립을 이용해서 일본을 언제든 전쟁가능한 체제로 만들려 하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문제든 영토문제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내가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내가 일본국민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는 그 나라 국민들이 (자국을) 비판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에도 그런 이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러한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발신하려 해 온 박유하 교수에게 주목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한국에서는 친일적이라고 비난 받고 일본에서는 반일적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것을 처음부터 각오하고 오랫동안 위안부문제에 천착해 온 박유하 교수에게 나는 깊은 경의를 품고 있다.
(2014 년 8 월)
<원문>
パク・ユーハ氏の仕事 柄谷行人
近年、日韓や日中間の緊張が急激に高まって来たのは、日本の政府があえてそれ を作りだそうとしているからだ。それによって、国内における諸問題を打ち消すた めである。そして、対外的な対立・緊張を利用して、日本をいつでも戦争できる体 制に変えようと図っている。したがって、従軍慰安婦問題であれ領土問題であれ、 それらを解決する気などさらさらない。
私がこのように日本の政府を批判するのは、日本の国民だからだ。外国に関し ては、その国の国民が批判するだろうと思う。実際、韓国にもそのような人達が 大勢いる。私はこうした相互的信頼にもとづいて活動してきたのである。とはい え、それだけではすまないことがある。
その点で、私は、積極的に日本と韓国の間に立って発言しようとしてきたパ ク・ユーハ氏に注目している。彼女の仕事は、韓国では親日的と非難され、日本 では反日的と非難されるだろう。そのことを最初から覚悟して、従軍慰安婦問題 に長年取り組んできた氏に、私は深い敬意を抱いている。
(2014年8月)
“이 책에서 평가해야 할 점은 제국, 즉 식민지지배의 죄를 보이는 곳으로 이끌어낸 데에 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861
3.28 집회를 끝내고 –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도쿄대 명예교수)
당일날 나에게는 지정토론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5분이라는 시간 제약 아래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것을 여기에서 설명하고 그날의 소감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로, 집필물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이 집회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뜻 있는 자들의 성명이 계기가 되어 성립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명에 동의한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여 나의 입장은 사상이나 연구 상의 대립은 어디까지나 시민영역(이와 같은 자리의 학자 간의 의견 교환을 포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박유하 비판파는 형사고발의 원고가 ‘위안부’ 피해당사자라는 점을 절대시하고 있는데 설사 원고가 고소를 해도 기소에 이르기까지는 검찰권력의 의사결정이 수반하게 된다. 당사자가 ‘상처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사직 당국이 ‘명예 훼손’ 판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은 판정을 검찰이라는 행정권력이 행사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검찰이 ‘명예훼손’이라 판정을 내린 데 대하여 그 판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판단이 엇갈리는 연구 상의 견해를 사법적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명’이 당사자의 고소에 대해서가 아니라 검찰의 형사 기소에 대하여 발표된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많은 연구자가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이러한 최소한의 동의조차 이룰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집필물의 저자를 형사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움으로써 본인이 받게 될 사회적, 심리적 타격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렇게 당해도 당연하다는 듯이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징벌적인 태도에도 커다란 위화감을 느낀다.
둘째로, 이 책의 평가에 대하여. 분명히 이 책에는 비판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같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설혹 형사기소에 반대를 하고 있어도 이 책에 대해 전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집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동지적’, ‘애국적’,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쓰임에 대해서는 오해를 초래할 표현과 허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문맥으로 판단한다면 ‘구조적 폭력’ 아래에서 ‘동지적이라고 간주되는’이라든지 ‘강제된 자발성’으로 읽을 수 있음은 저자가 이 책 전체에서 거듭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다. 정영환씨의 해석처럼 ‘업자 주범・군 종범설’이라는 주장으로는 도저히 읽히지 않는 것은 문맥을 통해서 봐도 분명하다. 또한 인용 의 하자를 가지고 이 책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내 견해로는 이 책의 평가해야 할 점은 ‘제국’, 즉 식민지 지배의 죄를 전면에 끌어낸 데 있다. 그것은 조선인‘위안부’문제에 일반적인‘전시하의 성폭력’의 문제로 해소할 수 없는 ‘식민지 지배’의 특수성이라는 차이를 가지고 들어 온 데 있다. 일본 전통의상, 일본식 이름, 일본어 사용을 강요 당한 조선인‘위안부’는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일본인 여성의 대체물’이었으며 그런 뜻에서 일본군의 ‘동지’적인 입장에 있었으며, 전쟁터에서는 피점령자와 연합군으로부터 ‘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오히려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과거 이상으로 엄격하게 추궁하고 있으며, 이 책을 평가하는 많은 일본인 지식인은 그러한 지적을 엄숙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비판자는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전쟁의 성폭력’ 비교사가 전망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강간, 매매춘, 연애에 이르는 연속성과 차이를 논할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구조적 폭력 아래서 강요당한 협력관계와 공범관계’라고 하는 복잡한 상황을 복잡한 상태인 채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키나와전의 ‘집단자결’의 자발성과 강제성의 관계를 논할 수도 , 또한 조선인 일본군 병사에 대하여 논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의 저자가, 오늘날 사태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한국 내의 운동 단체에 묻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나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지적은 공정하지 않다고 공공적인 자리에서도 발언했으며 저자 본인에게도 직접 전달했다는 점을 명시해두고자 한다.
이 집회는 지금까지 함께 자리하는 일이 없었던 연구자가, 대립되는 견해를 넘어 한자리에 앉아 토론을 하는 획기적인 기회였다. ‘성명’ 동참자의 상당수는 사태의 경직성을 우려하고,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또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결코 면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으며 비판파에게 문제제기 하고 다가가는 자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비판파는 그것에 답하려고 하지 않은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같은 편이 될 수 있었을 지 모르는 사람들을 적으로 상대함으로써 소수자의 운동은 더욱 더 분단되어 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우파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위안부’문제를, 온전한 ‘공론’의 자리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공동투쟁’이 필요할 텐데 원칙적인 논의를 되풀이하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할 생각인가. ‘다음으로 이어지는 논의’를 바라는 우리들의 생각은 실현되지 못하고, 참석자에게 허탈감만 남기고 끝났다고 한다면 대단히 유감이다.
끝으로 어려움을 딛고 이 토론 집회를 실현시켜주신 실행위원 여러분께 짐심으로 감사드린다.
“『제국의위안부』는 민족과 젠더문제가 섞여있는 식민지지배라는 큰 틀에서 국가 책임을 묻는 길을 열었다.“
https://parkyuha.org/archives/3865
『제국의 위안부』가 여는 것 – 가노 미키요(게이와가쿠엔 대, 여성사・젠더사)
‘박유하 씨 기소에 대한 항의 성명’에 불민한 나도 <저명한 문화인>에 섞여 이름을 올렸다. 성명 발표 후 여러 친구로부터 전화와 메일을 받았다. 모두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이고 고소의 <정의>를 확신했다. 연락을 해 준 건 나의 무지를 염려해서였던 것 같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박유하 씨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편하지 않을 거라는 걸 느꼈다.
3 월 28 일 연구 집회는 논의가 맞물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각각의 발상의 차이를 확인했다는 건 스타트 라인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늦었지만, 내가 왜 성명에 이름을 올렸는지 염려해 준 친구들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여기에 써 두고 싶다.
-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훼손’에 대해서
‘항의 성명’에는 ‘이 책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쓰여져 있다. 명예가 훼손됐는지 어떤지는 당사자가 정할 문제이니, 이 표현은 문제가 될 거라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올린 건 ‘명예훼손’이라는 말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왜 전작 『화해를 위해서』 는 문제가 되지 않고, 『제국의 위안부』는 됐는가 하는 점이다. 고소를 한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은 『제국의 위안부』의 ‘자발적 매춘’이나, 일본 병사와의 ‘동지적 관계’, ‘애국’이라고 기술한 부분에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화해를 위해서』의 「위안부」 장에도 있다.
「‘매춘’을 하게 될 것을 알고 간 여성들이었건, 당시의 일본이 매춘을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 온 여성도 당시 일본이 군대를 위한 조직을 발상했다는 점에서 그 구조적인 강제성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헤이본샤 라이브러리판 p90, 역자 주: 이 부분은 『화해를 위해서』 한국어판(뿌리와이파리)에서 발췌)
「그들이 ‘일본인’으로서 ‘애국’하기 위해 갔다면, 그것을 구조적으로 종용했다는 의미에서 더욱 ‘일본의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다」 (헤이본샤 라이브러리판 p91, 역자 주: 이 부분은 『화해를 위해서』 한국어판(뿌리와이파리)에서 발췌)
이것은 『제국의 위안부』 의 취지 그 자체이다. 왜 같은 취지이며 표현인데 『화해를 위해서』는 명예훼손을 묻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답은 단순한 것 같다. 1월에 일본에 방문한 나눔의 집 소장에 따르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제국의 위안부』의 해당부분을 수 차례 읽어 드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3 · 28 집회에서 양징자 씨가 발언한 것처럼, ‘거짓말과 속임수를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꿰뚫어 본’(자료집 p63)다는 그들이, 읽어주는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의문이 든 이유가 있다. 20 년 전, 모리카와 마치코 씨가 구성하고 해설한 『문옥주 버마 전선 방패 사단의 ‘위안부’였던 나 』(나시노키샤(1996), 증보 신장판(2015))는 뛰어난 여성 문제 연구서로 제 16 회 야마카와 기쿠에 상을 수상했다. 나는 수상 심사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추천했는데, 반대도 있었다. ‘운동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지 않을까’라는 게 이유였다. 당시 운동의 주류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의해서 ‘위안부 = 성 노예’라고 정의되어 국가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된 문옥주 씨의 ‘위안부’ 생활은 ‘성 노예’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았다.
문 씨는 일본 노래를 외우는 등 일본 병사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인기인이 되어, 랑군 시장에서 하이 칼라 옷과 보석을 구입하거나 큰 돈을 저축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일상이 비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 상병 야마다 이치로와의 <사랑>은 문 씨에게 얼마나 구원이 되었을까? 그는 문 씨에게 청혼하며 조선인이어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고상하고, 상냥하고, 익살스럽고, 지혜로웠다고 50 년이 지난 후에도 문 씨는 거리낌없이 야마다를 칭찬한다.
이러한 문 씨의 모습에 나는 감동했다.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정체성을 찾으며, 사랑을 키우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예를 훼손하기는 커녕 자랑할 만한 일처럼 보인다.
- 『제국의 위안부』가 여는 것
그러나 물론 문옥주 씨의 예를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 책은 ‘위안부 문제’ 를 부정하는 논거가 되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저금 센터 원부라는 공문서에 남은 문 씨의 다액의 군사우편 저금을 가지고 ‘역시 위안부는 막벌이 창녀다’라는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염려한 대로 운동의 발목을 잡게 됐다.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이 ‘명예 훼손’이라고 한 것도 이런 견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옥주 씨의 필사적인 생존 전략은 ‘위안부 문제’의 부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성 노예’에서 <특권적>인 일본인 ‘위안부’까지 다양한 ‘위안부’를 감싸 안는 큰 틀 ーー. 박유하 씨가 사념을 집중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관점은 여기에 연결되는 게 아닐까. 3 · 28 집회에서 요시미 요시아키 씨는 업자의 책임보다 군의 책임 쪽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유하 씨는 이같은 구조적인 인식이 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자료집 p71). 그러나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는 군대도 통합 식민지 지배라는 큰 구조를 묻고 있다.
‘제국’이라는 틀을 세울 때, 영역 내의 <민족>의 경계는 모호하다. 특히 전시 하의 ‘대일본제국’은 ‘내선 일체’를 내걸고 조선반도의 ‘황민’화를 도모했다. 물론 일본인과의 사이에서 차별은 있다.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사이에도 분명한 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인 ‘위안부’가 ‘초센초센(조선, 조선)이라고 바보 취급 하지마, 텐노헤이카(천황폐하)는 같다’라고 대꾸 못할 건 아니었다.
<민족>의 경계는, 젠더 관점을 넣어 보면 더욱 까다로워진다. 1925 년의 보통 선거법은 여성을 배제했지만, ‘내지’거주 식민지 남성은 참정권을 받았다. 참정권은 ‘권리 중의 권리’이며, <국민> 권리 중 가장 큰 권리라고 한다면, 일본 여성은 <국민>이 아니었지만, 재일 조선 남성은 <국민>이었던 것이다. ‘제국’에게 식민지 가부장제 이용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패전으로 인한 ‘제국’의 해체로, 그것은 역전됐다. 일본 여성은 <국민>으로, 식민지 남성은 <비국민>으로. <민족>의 경계가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올해 4 월 매스 미디어는 ‘여성 참정권 70 년’을 보도했지만, 동일한 선거법 개정으로 식민지 남성이 참정권을 박탈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헌데 ‘위안부’에 맞추면 <민족>의 차이보다도 젠더의 문제가 된다. 가혹한 전선에서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의 <민족>을 넘은 ‘동지적 관계’가 성립해도 전후의 처우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일본군 병사는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지고, 살아 남으면 연금도 지급된다. 그러나 ‘위안부’는 연금은 커녕 <더러운 여자>로 낙인찍혀 가족과 고향조차 잃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인 ‘위안부’도 마찬가지다. 미와 아키히로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 「싸움에 지고 돌아 가면 나라 사람들에게/훈장 대신 침을 맞고/손가락질 당하고, 험담을 듣고/ (생략) /대일본제국 만세 만세 만세 “(「조국과 여자들」)
『제국의 위안부』는 <민족>과 젠더가 착종하는 식민지 지배라는 큰 틀에서 국가 책임을 묻는 길을 열었다. 3 · 28 집회에서 역사학 분야로부터 실증주의적 비판이 잇따랐는데, 물론 그 점에는 이론상에서도 실천상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니시 마사히코 씨가 말한대로, 이 책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그 앞에 열리는 문제를 함께 단련해 가기를 바란다.
와다하루키(역사학자)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분열”
“아사히신문은 최근 (제국의 위안부)일본어 번역본을 내기도 했다. 책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
”위안부 문제를 잘 다루지 않던 NHK 조차….박교수의 책을 통해 위안부문제를 언급하고 박교수가 심포지엄에서 언급한 한일전문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연구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박 교수가 일본내에서 위안부문제를 환기시키는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https://parkyuha.org/.../%ED%95%9C%EA%B5%AD%EC%9D%BC%EB...
일본어판은 진보를 대표하는 아사히 신문사에서 나왔고(2014)마찬가지로 진보지인 마이니치 신문이 상을 수여했다(2015).
그리고 내 모교 와세다대학이 준 상에는 “이시바시 탄잔 기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2015).
얼마전 이시바수상이 담화에서 “언론인 시절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은 식민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고 언급했던 그 수상 이름 맞다.
—참조—
(화해를 위해서 출간.한국어판2005/일본어판2006)
1라운드 —재일교포 김부자/서경식이 “우익에 친화적“”일본진보지식인들이 박유하를 옹호하는 건 식민지지배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작하고 한국 진보 사회에 확산시킨 비판(2007.7~2014.1)
(제국의 위안부 출간.2013&2014)
2라운드—서경식과 연대한 박노자의 공격과 그 직후의 고발, 11년 이어진 민형사소송과 책에 대한 가처분과 최종무죄판결(2014.2~2025.7)
3라운드—출판문화협회의 공로상 수상에 대한 정의연등의 반발을 접한 박유하/정종주의 자진사퇴와
그사실이 은폐된 채 이어진 일부학자들의 비난. (20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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