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8

세계 최고의 반일 감정을 가진 북한의 실체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세계 최고의 반일 감정을 가진 북한의 실체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by 주성하기자   2013-03-25 7:53 am

 *편집자 주: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 격랑이 일고 있다. 뿌리 깊은 영토분쟁과 민족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 핵 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질서를 모색 중이다. 아시아엔(The AsiaN)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기획으로 한·중·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동북아 역사현안 및 갈등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국제전문가 기고 시리즈를 마련했다. 총 8회에 걸쳐 한글·영어·중국어·아랍어 등 4개 국어로 게재되는 이 기고 시리즈는 역내 현안에 대한 아시아 각국 전문가·언론인의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 해법을 제시한다.

[동북아현안 국제전문가기고 시리즈]⑧ 이중적인 북한의 대일감정 (-주성하-)

전 세계에서 반일감정이 가장 강한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한국’ 또는 ‘중국’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반일감정으로 늘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국가가 한국과 중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정답은 북한이다. 필자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1년 넘게 살았다. 그러니 과거 일본의 강점을 당했던 세 나라의 반일감정을 두루 알 수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위조달러 등의 이슈로 국제사회 불량아로 낙인 찍힌 바람에 북한의 반일감정 따위는 뉴스거리가 못돼서 그렇지 사실 북한은 일본을 정말 지독하게 싫어한다.

그러나 북한이 일본을 싫어한다는 것은 기사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깡패가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 지엔 관심이 있지만 그 깡패가 어떤 기분상태인지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또 북한이나 공통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과 한국과 다른 점은 국가의 뿌리를 항일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이 북한을 통치하게 된 것은 바로 그가 항일영웅이라는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김일성도 모자라 북한은 197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이 1919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거국적 민중항쟁인 3·1운동을 주도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당시 7살인 김일성도 반일시위에 참가했다고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김일성의 가문은 반일의 가문이며, 그런 역사적 정통성이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지도자가 일본 지도자와 악수를 할 수는 있지만 김정은이 일본 지도자와 선뜻 악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혈통의 뿌리를 중시하는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김정은은 항일영웅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본은 한반도 분단의 주범이면서, 그 분단으로 촉발된 6·25전쟁을 이용해 부유해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선 한국과 북한의 입장이 갈린다. 6·25전쟁 때 일본은 한국의 동맹군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미국의 폭탄을 대신 만들어주고, 전투기와 군함을 수리해 준 적국이었다.

일본에서 만든 폭탄과 전투기, 군함은 북한의 대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초토화시켰고 수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북한 인민의 피를 먹고 일본이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의 반일감정은 일단 한국보다 훨씬 클 것이 당연하다.

이런 연유로 북한 교과서엔 ‘왜놈’이란 표현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김일성 장군님이 왜놈들을 무찔렀다”, “왜놈들은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질렀다”는 식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반일감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북한처럼 전국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일본인을 비속화하는 ‘왜놈’ ‘쪽바리’란 표현이 버젓이, 그것도 끊임없이 오르진 않는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북한 주민들의 반일감정이 세계에서 가장 클 것이란 사실은 당연하다.

그 외 중국과 한국은 일본과 인적, 문화적 교류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밀접히 연관돼 있지만 북한은 그런 것과도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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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와서 북한이 일본을 싫어할 이유는 또 있다. 바로 2002년 김정일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자 일본이 납치문제로 북한을 공격한 일이다.

그 전까지는 국교정상화와 이에 따른 경제적 지원까지 할 것처럼 하던 일본이 김정일의 사죄 한마디에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입장에선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북일수교의 대가로 엄청난 경제적 원조를 하늘같이 기대하던 북한 주민들로서는 교활한 왜놈들에게 또 한번 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 주민들의 관점에선 일본인 납치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들이 보기엔 일본은 북한을 점령하고 수백만 명의 북한 사람들을 강제 징용과 위안부 등으로 끌어가고 이에 대해 사죄나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하면 북한이 일본인 몇 명을 북한에 끌어온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일본이 저리 호들갑 떤단 말인가. 특히 북한의 신이자 항일 빨치산의 아들 김정일이 전 세계 앞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일본에게 엿 먹었다는 자체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를 느꼈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은 현재 적으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만일 한국 스포츠팀이 일본을 꺾었다면 북한에선 아마 한국 만세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만큼 반일 감정은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들 몇 안 되는 감정, 정서적 코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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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 “전 세계에서 일본 상품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솔직히 이 질문엔 필자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전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북한으로 국한시킨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북한이다.

세계 최고의 반일감정과 별개로 북한 사람들은 일본 상품을 엄청나게 선호한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선 상점에서 얼마든지 일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에선 자국 상품과 미국 상품, 유럽 상품과 비교하면서 상품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북한에선 미국과 유럽, 한국 상품이 팔릴 수가 없다. 또 북한 상품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중국 상품과 일본 상품인데, 선택의 결과는 삼척동자도 알 만큼 뻔하다.

북한에서 세계 최고의 상품은 일본산이다. 일본 상품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는 곧 그 사람의 부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북한 사람들이 모두 일본 상품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은 한국 상품의 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져 일본 상품이 과거의 신의 반열에서 하락하고 있기는 하다.

반일감정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찾는 북한이 왜 일본 상품 수입은 금지시키지 않았는지 그것은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한 가지 힌트를 찾자면 ‘항일투사의 아들’ 김정일은 일본 상품을 너무 좋아했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 상품을 좋아하다 못해 요리사도 일본에서 불러들여 엄청난 신임을 베풀었다. 더 나아가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자 그와 가장 오래 동거한 여성인 고영희 역시 일본에서 태어난 여성이었으며 김정은은 고영희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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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일본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필자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감정 정서적으론 일본을 엄청나게 싫어하면서도 일본 상품을 사랑하는 북한주민들의 이중성이 그 대답이다. 적어도 일본은 북한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돈과 상품이다. 무릇 친분이란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을 많이 주면 자연히 생기는 것 아닌가.

북한 주민들은 지금 일본이 식민 지배 배상금을 물어주길 손꼽아 바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앞길이 없는 암울한 경제난에 빠져 있는 북한이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부푼 희망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은 일본에서 100억 달러 정도의 배상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북한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 전혀 배상하거나 사죄하지 않은 일본에겐 북한의 부흥에 이바지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전 세계에서 불량배로, 호전 깡패로 취급 받고 있는 북한 정권이다. 일본의 경제지원이 마피아에 대한 지원이 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해답은 간단하다. 불량배가 사라진 뒤 관계를 개선하면 된다. 문제는 일본이 경제지원을 하면서까지 북한과 관계개선을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느냐다.

만약 일본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존경 받길 원한다면 마음속엔 자신이 갚지 못한 북한에 대한 빚을 늘 안고 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북한이 저 꼴이 된 것도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책임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들고 나와 자신이 피해자인 듯 언론 플레이하는 일본을 보면 북한 정권을 그 누구보다 증오하는 필자이지만 일본에게도 분노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일본인 피랍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본은 똑같은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대야 할 것이다. 북한이 가해자라면 일본은 도대체 어떤 가해자라고 표현해야 할까.


주성하 기자 (이 글은 아시아엔의 원고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세계 최고의 반일 감정을 가진 북한의 실체 (46)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1. heika
    북한 2400만 강시들이 일본이 식민지배사죄배상금 100억달라를 악질통치배 김가영환도사
    일당에게 지급하면 그 돈이 지네들 뱃속으로 들어올 것으로 믿고 있을까??
    리플작성2013-03-25 08:55:34
  2. heika
    김가 악질 악질통치배들이 일제보다 더 오랜기간,일제보다 더한 탄압과 고통,죽음을 주고
    있어도 주둥이 한번 떼지도 못하는 강시들의 머리에 어찌 반일감정이 자리잡을수 있을까?
    일제때문에 김가 악질통치배들이 북조선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있다는 것인가?
    리플작성2013-03-25 08:59:25
  3. heika
    김일성이 만주에서 무슨 짓을 하며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1941년경인가
    일제와 중립조약을 체결한 소련으로 도망가서 일제 항복때까지 안전하게
    살쪄가며 소련군 하급 용병생활을 한 것은 김일성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인데,항일투쟁을 주도하던 독립군 고위 간부가 소련군
    하급 간부질하러 소련으로 도망간 것도 너무 이상하지만 일제가 극성기에
    들어가 미국까지 상대로 전쟁을 확대하면서 조선인에 더한 고난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바로 그때,정말로 일제와 맞서 싸워야할 그때 항일을 외면
    하고 안전한 곳에서 농땡이치고 있었던 자라면 만주에서 저지른 짓도 기업형
    마적질이었을지언정 숭고한 항일,독립운동은 결코 아닐 것이다.
    리플작성2013-03-25 09:21:46
  4.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더 극단적으로 일본을 미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북한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6.25 남침해서 동족을 무차별 학살한 것에 대한 책임감도 전혀 못 느끼고, 자신들의 남침이 패전국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
    분단의 책임도 일본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북한 자유 선거에 의한 단일 정부 수립을 거부한 것은 소련과 북한이다. 공산 정권 (김일성 왕조)을 세우기 위해 북한이 분단의 길을 택한 것이다. 분단의 가장 큰 책임은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있다.
    해방전 일본인에 의해 입은 피해와, 해방 후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서로 별개의 것으로 둘을 뒤섞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납치 문제는 납치 문제대로 해결하고, 해방전의 일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은 그것대로 따로 받아야 한다.
    리플작성2013-03-25 09:24:07
  5. 격변
    일본의 대북 투자에 대해 저는 단언컨대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또한 북한의 대일 청구권 자금 100억불 기대도 여건이 조성되면 일본이 먼저 손을 내밀 겁니다.
    80년대 후반 중국 상해 푸동지구는 아직 개발이 초기 단계였지만 일본은 재빨리 주요 지역을
    선점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푸념을 들었습니다.
    비슷한 현상을 몇 년 후 중국 남쪽 해남도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투자 사절단을 구성하여 둘러보는 단계인데 벌써 일본은 자리를 깔고 앉아 초기 적응에
    애를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만큼 일본의 산업입지가 궁하고 시급했던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중국인들을 매우 경멸하고 싫어하면서도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중국에 투자를 했죠.
    지금도 일본은 자국내 투자가 정체될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로 돈을 벌어도 더 이상 국내 투자는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공장 하나 짓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땅값이 바싸서만도 아닙니다.
    모든 투자 대상이 국제시장을 상대로 보면 불리한 요인 투성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중국보다도 유리한 것이 많습니다.
    인프라가 전무한 것이 재정 차원에서는 부담이지만 건설업 진출에서는 그런 호재도 없습니다.
    인건비가 싼 것 뿐 아니라 노동의 질도 훨씬 높습니다. 중국인들의 만만디와 비교할 바가 아니죠.
    일본인들이 일제시대에 조선인은 2등 국민으로 중국인은 3등 국민으로 차별했었죠.
    일본이나 우리나 초기에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이 진출하겠지만 곧 자본집약적인 대단위 공장이 북한에 속속 들어갈 것입니다.
    오히려 신기술 자동화 생산체제가 북한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포철을 건설할 때 신일본 제철보다 경쟁력 있는 공법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와 비슷한 이유가 북한 지역 투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공장도 북한 지역 진출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사내 귀족노조의 몽니를 해결하는데 북한 지역처럼 안성마춤도 없습니다.
    미국의 대북 투자도 전망이 밝습니다. 미국도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간 군사적 명분으로 한반도에 주둔했던 전략에서 경제적 영향력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동 지역과 테러집단과의 커넥션을 차단하게 되죠. 북한 지역에 미국의 글로벌 기업이 투자하는 것은 일거양득입니다.
    원전 건설은 우리에게 아직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너무 저항이 클 뿐 아니라 비용 또한 엄청난 부담입니다. 북한 지역은 이런 부정적 요소들이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 개방되지 못한 때문에 북한 인민들이 고생했지만 이제는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 것입니다. 북한 때문에 막혀 있던 통로가 열리면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과 남한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의 대북 투자가 물밀듯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결국 북한의 왕조 독재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투자는 신뢰없이 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 신뢰를 얻기 까지는 북한의 몫입니다.
    리플작성2013-03-25 09:35:33
    • 격변
      그러고 보면 김가 왕조 체제 만 포기하면 굳이 핵을 가질 이유도 없고 개방과 개혁도 가능하죠.
      그 결과 김일성 일가 이외에는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중국도 개방 초기 방망이 만한 무선 전화기 하나 손에 들고 외국인 투자가들을 만나려고 호텔을
      기웃거렸던 젊은 이들이 지금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심지어는 우리 재벌 보다 더 큰 그룹을
      일군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불과 20여년 만의 변화입니다.
      북한은 바로 남한을 통해 선험적 학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력이라는 3대
      요소가 최적 상태에서 결합하게 되므로 중국보다 압축 성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 왕조 체제를 버리지 못하니 저렇게 사서 지옥을 헤매고 있는 거지요.
      리플작성2013-03-25 01:51:16
  6. ㄱㅐko
    요즘들어 ‘민족문제연구소’ 인지 하는 또라이들이 만든 ‘한국 현사대’ 관련 동영상이 이슈가 되고 있는거 같아 북한에서도 무슨 헛소릴 하는가 하여 북한이 맹근 현대사 관련 동영상을 찾아 보았습니다. 동영상 초기 부분에 이런 주장을 하더군요. “일제가 패망하여 조선반도에서 물러간 이유가 김일성 장군의 항일 투쟁의 결과”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ㅎㅎㅎㅎ 하도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리플작성2013-03-25 10:09:13
    • 민족문제연구소 인간들도 그렇게 믿고 있을걸요.
      리플작성2013-03-25 10:25:48
    • Now Garry of 225 is gone, But 100 year war is still going on..
      문제는 한 100년간 미친척하고 떠들면 그게 파블로프의 개 훈련 시키듯이 우리의 애들에게 주입된다는 것입니다..지금의 386 486 들이 대학시절 물들여진 사고체계에서 벗어나기가 마약 끊는 것 보다 더 어렵듯이 말입니다..
      리플작성2013-03-25 11:06:14
    • 김일성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란게 좋게 말하면 빨치산 활동이고 사실상 마적단인데, 가장 큰 전과로 내세우는 게 1937년 6월 4일 밤 11시에 보천보를 습격한 거다. 이것도 마을을 약탈 방화하여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일본 경찰과 교전이 벌어져 경찰 5명과 2살짜리 일본인 여아 한 명을 죽인게 전부다. 이런 짓이나 하고 다녀놓고 무슨 항일 투쟁을 했다고 그렇게 조작질을 해대는지…..
      사건 몇일 뒤 동아일보 혜산진 주재 기자 양일천이 현장을 답사하고 쓴 기사가 동아일보 1937년 6월 9일자 석간 2면 1단에 나와 있는데, 김일성 일당을 마적단이라 칭하고 있다.
      [보천보를 습격한 김일성이 몇달 뒤인 1937년 11월 13일에 사살되었다는 보도가 11월 18일자 조선, 동아, 경성신문에 보도 되었고, 만주군 기관지 “철심(鐵心)”에도 보도되었다 하니, 이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피습(被襲)된 보천보(普天堡)
      재습(再襲)의 공포에 떠는 주민
      남부여대(男負女戴)로 피난
      철옹성의 국경선에 처처(處處)의 참적(慘跡)
      본사(本社) 특파원(特派員) 양일천(梁一泉) 현장 답사기
      기자(記者)는 6월 5일 오전 11시 보천보사건(普天堡 事件)의 현장을 가려고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압록강 상류를 구비구비 감돌아 60리 길을 한시간에 달렸다.
      국경 제1선(國境 第 一線)에는 5리 혹은 10리마다 주재소(駐在所) 1개소씩 두고 포대(砲臺)를 쌓고 토굴을 파놓고 국경 수호(守護)에 만일을 다했건만 ―그래도 틈을 새어 달려들어 이번 사건을 일으키었다.
      보천보 가는 길 천수리(泉水里) 대안(對岸) 20도구(二十道溝)에도 작년 가을에 마적의 침해를 받어 방화를 당하던 곳이요 가림대안(佳林對岸)도 마적 때문에 전멸을 당하여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감이 없지 않다.
      동승객의 말을 들으면 국경일대는 거의 마적단의 침해를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압록강 건너로 눈을 돌리니 만주 – 그곳에 여름은 와서 싱싱한 녹음이 산야에 우거졌다. 산 깊고 물 깊은 그 속 -그 속이 마적단과 공비들이 활약하는 소굴이다.
      강 건너 만주 쪽에서 목숨을 달고 있는 동포의 농가촌락 – 그들은 생활고에 마지못해 사는 그들이어니 마적의 등살에 어찌 평안하기를 바라랴! 그래도 굴뚝에선 연기가 길게 나오고 초록강변(草綠江邊)에는 송아지가 엄마를 부르는구나. 그리고 압록강물은 여전히 검푸른 그대로 굼실굼실 흐르면서 떼목군의 한가로운 노래만 – 오늘은 처량히도 들린다.
      공비에게 습격을 당한 보천보(普天堡)! 태풍 일과 후의 보천보! 보천면사무소(普天面事務所) 우편소(郵便所) 삼림보호구(森林保護區) 학교(舊校舍) 소방회관(消防會館) 이런 주요한 건물들이 전부 하룻밤 사이에 재가 되었다.
      먼저 주재소를 찾아 좌우를 둘러보니 가여웁게도 사무실은 총구멍이 벌(蜂)의 집같이 구멍을 뚫어놓았다. 김일성(金日成) 일파 백여명이 갑자기 습격을 했고 경관은 불과 4, 5인이었다. 피살자는 두 사람. 그리고 비 오듯 하는 탄알 속에서 뜻밖에 인명의 피해는 적은 셈이다.
      면사무소, 그 자리에는 지금도 연기가 무럭무럭 나고 기둥과 들보가 탄 시커먼 숯덩이만 앙상하게 쌓였고 문서더미가 그대로 타버려서 바람에 재가 날린다. 더구나 면에는 궁민구제를 위한 대맥(大麥) 150여석이 역시 불에 타버리었다.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냐?
      그리고 그들은 시가 곳곳에 과격한 문구를 등사판으로 인쇄한 삐라를 뿌리었다.
      【혜산진(惠山鎭)】갑산군(甲山郡) 보천보(普天堡)에 마적 습격 사건으로 가슴을 놀래인 주민들은 재차 습격할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선 마음놓고 못살겠다고 정처없이 남부여대하고 피란가는 주민이 길에 널리었다.
      —————————————-
      원 기사에는 보천보 피해 현장의 사진까지 나와 있다.
      리플작성2013-03-26 07:50:34
      • heika
        1937년이면 김정은의 할아비 김성주가 몇 살때 일까요?
        1945년 김성주가 소련군 용병으로 북한에 들어왔을때가 30대 초반이라니
        8년전이라면 20대 중반이었겠군요.
        보천보 김일성이 김성주인가는 뇌두고,37년이후 김성주가 소련으로 도망가
        소련군 용병질을 시작한 1941년경까지 김성주의 행각은 알려진 것이 없는가요?
        리플작성2013-03-26 08:15:16
        • 김일성은 1912년생이고, 1930년대 중후반에 만주에서 마적단 활동을 계속하다 토벌작전이 강화되자 1940년 11월에 소련으로 도망가서, 해방될 때까지 소련군에 빌붙어 대위까지 되었습니다. 그 덕에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군 앞잡이로 북한에 들어온 거지요. 만주에 계속 있었더라면 별볼일 없는 조선족이 되었을 겁니다.
          리플작성2013-03-26 08:31:28
          • heika
            위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1937년 보천보를 습격한 김일성 휘하 100여명의
            무리는 흔하디 흔한 마적단이 아니라 공비임을 명획히 하고 있군요.
            주재소,면사무소등을 공격,방화하였을 뿐 양민들 약탈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마적단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김일성이 김성주냐 하는 점과 100여명이나 되었던 김일성 무리가
            그 뒤엔 왜 아무런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나 하는것 같군요.
            1930년대 만주에 공비아닌 항일 조선독립군은 없었는가요?
            일경은 공비아닌 항일 조선독립군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청산리 대첩으로 유명한 김좌진이 이끌던 조선 독립군을 일경은 뭐라고
            불렀을까요?
            2013-03-26 09:05:27
          • 보천보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줄 양곡을 불태웠습니다.
            양민들 피해가 없었으면 양민들이 왜 무서워 다들 피난을 갑니까?
            다른 데서는 양민들(여자들) 납치해서 끌고 가기도 했습니다. 일 시키고, 뭐 밤에는 다른 용도로…
            상해 임정의 광복군은 만주 아닌 다른 여러 지역에 있었습니다. 인원도 해방당시 300여명 정도…
            2013-03-26 10:01:04
  7. 북한 사람들은 6.25 남침이나, 그 후의 수많은 대남 도발과 인명살상,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등등에 대해 배상해야 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을까?
    깡패 국가 남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으면서 해방전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고 나오는 것이 국제적인 호응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겠는가? 깡패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배상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리플작성2013-03-25 10:15:11
  8. heika
    남한에도 비정상적인 반일감정을 토해내는 자들이 제법 있는데
    아무래도 북한의 비뚤어진 교육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보인다.
    리플작성2013-03-25 12:03:25
    • 명경지수
      넌 누구냐? 보통 한국 사람이 아니다.
      리플작성2013-03-25 04:46:10
  9. ek
    분단 원흉 ㅋㅋ
    이씨조선
    일본
    쏘련
    미국
    김일성
    중공
    가해국을 갈라먹지 피해국을 갈라먹냐
    쑤부럴넘들아
    리플작성2013-03-25 02:59:51
  10. heika
    일본이 패전하고 한반도에서 물러간지 70년이 다 되어 가고 소위 친일파라 지목되는
    자들중에 생존자가 전무한 이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이니 친일정권이니 뒷북질을 하는
    사람들은 북한 정권의 정당성 옹호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통일
    에서의 북한악질통치배 청산 논의를 막고 귀를 과거에 고착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틀림없다.
    지금 시급한 것은 70여년전까지 활동하던, 다 죽고 없는 친일파에 대한 친일청산
    타령이 아니라 닥쳐올 통일에 대비한 공산악질통치배 숙청,교화방법에 관한 논의
    일 것이다.
    때늦은 친일잔재 청산타령을 하는 자들은 어김없이 공산악질통치배 숙청은 결사
    반대할 것이다.
    리플작성2013-03-25 05:13:32
  11. Garry
    일본의 식민지배로 죽은 조선인이 몇명이나 될까요?
    적지 않았겠으나, 김일성의 남침으로 초래된 6.25의 3백만명 보다는 훨씬 적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실을 북한은 인정하지 못하는 거겠지요. 뭔 민족이니 뭐니 하더니 일본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을 죽게 만듭니까? 이런 문제를 인정하는 순간에 자신들이 정권 존립의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있을 통전부 요원 정도라면 이미 역사적 진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은 천인공노할 반민족 범죄자입니다. 북이 지금은 뭐라 강변하더라도, 결국에 우리 역사에 그렇게 기록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에 김일성의 주석궁 조문을 요구받았으나, 결코 거기 시체에 대고 절을 하지 못한 이유인 것입니다.
    북이 앞으로도 북에 가는 남한 사람들에게 김일성 동상 앞으로 안내해 놓고 꽃을 바치라는 둥 절을 하라는 둥 헛소리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럼 둘이 절대 양보 못할 원칙이 충돌하니까 싸움 밖에 더 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끝까지 김일성 시체에 대고 절을 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강요하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은 가장 현명한 절충이였던 것이죠.
    리플작성2013-03-25 10:04:22
    • Garry
      수백번 말하지만 과학적으로 말해서 경제체제란 바다와 같아서 완전히 고립된 경제체제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아예 경제란 것이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북에서 왜 대기아가 발생하는지를 필요 충분하게 설명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북을 고립시켜서 대규모 주민 아사를 초래시켜서 핵을 포기시켜보겠다던 이명박이 한 짓인 극악한 범죄행위로 정당화가 안되는 것이지요. 그에 동조한 사람들도 범죄자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역사는 지금보다 헐씬 가혹한 평가를 내릴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만일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경제를 보다 잘 이해한다면 말이지요.
      리플작성2013-03-25 10:11:02
      • Garry
        북한 민주화도 가장 웃기는 짓의 하나입니다.
        남한에 앉아서 어떻게 북한을 민주화를 시킨다는 겁니까? 과거에 한국인 미국에 간 사람들이 민주화 시킨 겁니까? 아무런 현실적인 방법론이 없는 얘기지요.
        남들보다 어리석어 주사파가 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극우파가 되더니만, 내내 중간에서 가만있던 다수의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되려 훈계를 하려드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죠. 자숙을 해도 시원치 않을 사람들이 댓가로 국회의원이 다 되질 않나.
        한번 세는 바가지는 영원이 세나 봅니다.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앞으로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리플작성2013-03-25 10:16:45
  12. Garry
    08년도의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은 어이가 없게도 당시 재무부 장관이였던 헨리 폴슨의 ‘사상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입니다.
    처음에는 베어스 턴스라는 은행에서 작은 ‘뱅크 런’이 일어났었지요. 뱅크 런이란, 은행이 부도가 나서 지급을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어나 돈을 맞긴 예금자들이 너도나도 죄 돈을 찾으려고 은행으로 달려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현상인데, 왜냐하면 은행은 본질적으로 예금받은 돈을 빌려줘 이익을 내는 곳이므로 당연히도 모든 예금자가 돈을 찾으려 들면 어떤 은행도 제대로 다 줄 수가 없어서 부도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은행이 부도가 나면 연쇄적으로 다른 은행도 위험해 집니다. 그런식으로 돈이 사라지면 신용경색이 일어나서 기업들이 부도가 나는 등 강력한 경기위축이 일어나지요.
    당시 헨리 폴슨이 그때에 할 일은 아주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그냥 ‘해당은행의 지급을 정부가 보증해 주겠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되었지요. 그럼 모두가 안심하고 정상화 되었을 겁니다…그러나 헨리 폴슨은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시장원리에 안맞는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시장의 자율에 맞겨 놓으면 은행이 잘못했으면 손해볼 사람은 봐 처벌되고 나서 다시 ‘균형’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위기는 그의 근거없는 기대와 달리 계속 끊임없이 확산되었습니다.. 결국에 미국 정부는 뒤늦게 개입을 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세계최대의 보험사인 AIG를 국유화 시키고 3대 자동차 회사도 국유화 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처럼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것이 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실체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사상을 가지고 경제를 다룬 댓가’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09년도에 화폐개혁을 했다가 실패한 사회주의 북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역시 일어난 일입니다.
    사상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경제문제를 다루는 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떠나서 이토록 모두에게 아주 위험하고 파국적인 일을 초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20년 쯤 뒤에 북한이 망한다면, 어떤 이들은 군부의 김영철이가 09년도에 남북문제를 두고 길을 끊어 버리겠다는 둥 자산을 몰수해 버리겠다는 둥 험악한 말을 해서 북한의 그러지 않아도 없는 국가신용을 더욱 붕괴시킨 것이 결국 북한을 멸망시켰다고 분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용이 없으면 북한은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 동안에 의미있는 투자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닌데, 향후에 남북관계가 아무리 좋아지고 북미 간에 평화협정과 수교까지 한들, 몇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또 길을 끊어버리고 자산을 몰수할 테인데 그런 우려가 크자면 어떻게 누가 북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못하고 마는 거지요.
    따라서 향후에 북이 원하는데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평화협정을 하고 1단계 통일을 해 봐야, 북이 얻을 수가 있는 경제적 댓가는 극히 빈약해져 버린 것입니다. 원조의 약간과 옷 공장 몇개 들어오고 말 수가 있는 것이지요. 본격적인 남북경협은 오랫동안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말이 통하고 붙어있고 해외투자도 활발한 남의 대북 투자가 없으면 북은 타당한 투자처가 아니라는 말 밖에 안되므로 다른 나라도 투자 안합니다.
    그럼 북은 외화가 없고 그럼 식량과 석유를 못 사옵니다. 앞서 말한데로 고립된 경제란 가난해 진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럼 굶어 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더 많은 광산과 영토와 항구와 여자를 중국에 팔다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됩니다. 그럼 언제인가는 정치적 종속도 오겠지요.
    그럼 중국이 북의 핵을 포기키시고 북은 중국의 식민지가 되어 망하고 남북은 영구분단이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완용이 보다 1백만배는 더 나쁜 짓을 한 김영철 등 군부 강경파를 여태 살려두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경제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과연 무슨 일이 얼어났는지 여태 상황 파악을 못한 것일 뿐이지 다른 이유느 없을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과연 내 말이 틀렸는지를.
    어렵거나 비약된 말 없으니까 잘 이해를 해보세요.
    지난 몇년간을 보더라도 거의 틀린 적이 없지 않습니까?
    리플작성2013-03-25 10:41:49
  13. Garry
    북한이 기대한다는 북일수교 배상금 1백억 달러도 별 근거가 없는 희망사항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왜 1백억 달러 얘기가 나왔을까요? 60년대 한국과 일본과의 수교 때 받은게 5억 달러였고, 그걸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걸 50억 달러 이상으로 본다고 해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당시 5억 달러를 주면서 그 큰 돈을 왜 주냐?면서 아깝다고 일본인들이 반대하자 일본의 요시다 수상이 그랬습니다.
    ‘투자일 뿐이다’
    실제로 한국이 그 지원금으로 도로, 공장 건설하고 일본의 설비와 부품을 사주는 구조가 고착화 되자, 일본은 매년 수백억 달러를 남에 대해서 무역흑자를 보는 엄청난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5억 달러 주고 매년 수백억 달러 버는 것 보다 더 큰 성공이 있을까요? 일본이 부자 나라가 되는데는 남도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이유로, 국가 신용 등이 없는 이유 등으로 인해서 앞으로 경협이 잘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일본으로서는 왜 그 많은 돈을 북에 투자를 한다는 겁니까?
    못하는 거죠.
    백번을 양보해서 일본이 정말 북에 1백억 달러를 줘봐야, 남이 국가예산 3천억 달러의 매년 1%만을 북에 투자했을 경우의 30억 달러에 비한다면 3년 남짓에 불과한 액수에 그칩니다. 그런데 가장 비중이 주도적일 한국이 북에 투자를 못한다는거죠.
    김영철이 같은 바보가 수시로 위협을 해대니까요.
    김영철이 말 한마디 할때마다 투자가 들어올 것이 못 들어가는게 한 백억 달러씩 날아가는 겁니다. 그게 나중에 복구가 안된다는 거죠.
    이 점에 대해서는 주성하 가지도 순진한 가정을 하던데, 기반시설 건설해 둔 것은 어디가는게 아니니까 인건비가 쌀 때에 미리 건설해 두자는 겁니다…북한이 90년대에 남한과 경협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개성 평양 간 고속도로는 어찌되었나요? 막대한 자원을 들여 건설을 했는데 다니는 차도 몇대 없고 활용이 안되고 있으니까 90년대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을 심화시키는데 도리어 일조를 했을 겁니다.
    경제는 순환이며 들어가는 것이 많은데 나오는게 적은 누출(Leakage)가 많으면 순환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어서 전체 경제가 내려앉고 후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규모 남북 경협의 가능성이 없다면 쓰지도 못할 기반시설을 미리 건설하는 것은 누출을 심화시키는 것이므로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굳이 건설을 한다면, 개성공단 주변의 도로를 건설해서 노동력의 공급을 원만히 해서 공장의 수익을 늘리는 식으로 경협과 연계된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신용이 없고 자기 입으로 그걸 무너뜨리고 있으니까 앞으로 정세가 아무리 좋아져 봐야 그게 대대적으로 될거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라는 거죠. 정치적으로는 풀려도 경제는 원리 상 안풀리는 겁니다.
    리플작성2013-03-25 11:51:11
  14. Stay hungry, Stay foolish 는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한 무지 유명한 말이죠.
    근데, 이 말은 김정일의 말을 표절한 거라고 하네요.
    표절이 문제야…….잡스 나빠요.
    리플작성2013-03-26 03:36:37
    • 북한 김가네는 잡스의 말을 이미 몇 십년 전부터 충실히 실행하고 있었다.
      리플작성2013-03-26 03:51:02
  15. heika
    병적인 반일감정을 쏟아놓는 자들은 하루가 멀다고 방사능 오염된
    일본 농어산물 수입을 규제하라고 난리치면서 연이은 북한은 핵실험에
    대하여는 주둥이를 밀봉하고 있슴은 물론 북한 농어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면서 검사를 강화하자든가 북한 농어산물의 반입을 금지하자는 말은
    죽어도 할줄 모른다.
    리플작성2013-03-26 08:19:39
  16. 종북을 타도하자
    북한 김씨네를 추종하는 종북을 타도하자.
    쪽발이 일본놈에 붙어사는 친일도 쓸어버리자
    가만, 혹시 종북인 동시에 친일인 놈은 어떻게 하지.
    그런 악질 종자가 대한민국에 있을려나.
    아차 하나 있었네 남로당 박정희.
    리플작성2013-03-26 09:55:48
    • heika
      종북을 타도하자선생은,
      누가 어릴때 분뇨를 못가렸다해서 그 사람이 늙었을때도
      똥쌀개라 부르면 타당한 평가라 생각하세요??
      박정희가 일본군 노릇을 한 기간과 남로당 생활을 한 기간은
      조국이 일본 식민지상태였거나 해방후 사상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때 몇 년간에 불과합니다.
      박정희는 남로당과 결별한 이래 625를 맞이해서 북괴군과 싸워 조국을
      구했고 그 뒤도 군생활을 계속하다가 516으로 최고권력자 생활을 18년
      이나 하다가 죽었는데 그 긴 인생에서 젊었을때 일시적인 방황기를 들어
      친일파니 남로당이니 헐뜯는것이 사리에 맞다고 생각하세요?
      혹시,선생은 박정희가 남로당을 와해시키고 전향한 것이 못마땅한 사람이오?
      리플작성2013-03-26 11:55:38
      •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라 만주군 장교출신입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가서 실력을 기르고 견문을 넓힌 것이 해방조국의 부흥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된 겁니다.
        박정희가 만일 그때 만주군관학교에 가서 실력을 기르고 견문을 넓히지 않고, 독립운동에나 뛰어들었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활동을 했더라도 해방을 단 1초도 앞당길 수 없었을 것은 명약관화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리플작성2013-03-26 12:10:17
        • 우리나라
          만주군이나 일본군이나 똑같다고 봐야되죠 어차피 일본군 명령에 따라 싸우는 군대니.. 그리고 민족 반역자질을 하면서 무슨견문을 얼마나 배웠는지 몰라도 그거 없다고 대한민국이 달라질건 옶습니다.
          리플작성2013-03-26 12:53:58
          • 우리나라
            없습니다.
            2013-03-26 12:54:18
          • 만주국은 일본의 속국 비슷하기는 했지만 군대의 역할은 전혀 다릅니다.
            만주군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군대가 아니고 만주국을 지키는 군대였을 뿐입니다. 주로 모택동군과 싸운 거고요.
            일본이 만주를 병합한 적이 없으니 만주국=일본국 도 아니고, 만주군=일본군이 될 건덕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2013-03-26 12:59:37
          • 박정희가 없었으면 장면 정권이 지속되어, 국민 생활고는 안중에도 없고 밤낮 정쟁이나 하고 데모질이나 하다 적화되었기를 바라는 모양이군요.
            2013-03-26 01:02:09
          • heika
            만주국이 명실상부한 독립국이 아닌 일제의 괴뢰국이었으나 박정희가 일본군이
            아닌 만주군질을 하였다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점이 일본군보다는 덜하겠습니다.
            박정희의 만주군 근무지가 중국본토와의 접경지역인 열하지방이었다면 주적이나
            가상의 적은 화북지방에서 활동하던 중공8로군이나 국민당군이었을 것이니까요.
            2013-03-26 01:27:11
          • 사실 박정희의 만주군 경력보다 김일성의 소련군 대위 경력이 더 문제인데….
            소련은 조선인 독립운동을 무지 탄압하기도 했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 벌이면서 조선인들 숱하게 들볶고 징용 끌고가고 할 때 김일성은 항일투쟁한게 아니라 소련군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며 놀고 지내다, 일본이 항복하고 소련이 북한으로 진주하자 운좋게 그 앞잡이로 발탁되어 들어와 정권을 잡은 거지요.
            그러다 보니 스탈린 생전에는 스탈린 시키는대로 하는 꼭둑각시 노릇이나 하고….
            2013-03-26 01:55:13
    • 격변
      제 아무리 박정희를 씹고 까댄다고 우리나라에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러나 종북 좌빨을 척결하면 우리 사회가 정화되고 안보가 튼튼해집니다.
      리플작성2013-03-26 01:03:04
  17. 바람소리
    주 기잣 님!
    현재 일본사람들은 68년 전 1945년 8,15 이전의 일본 지도 층 입니다.
    당시의 일본인 중 에서도 극 소수의 정치군사 지도자(정책결정자) 외 에는 사실상 대다수의 개인책임은 없는것 입니다.
    99% 는 현재 일본인들은 그 후손 입니다.
    현재의 일본 지도자 들은 할아버지 대의 죄업을 입고 살고 있는것 입니다.
    조국과 부모는 누구도 선택할 자유가 없다! 만고의 진리 입니다.
    그것 보면 미국의 다민족 다문화 국가 참 합리적 이상적 정치형태라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일본놈 나뿐 놈! 일본놈 나뿐 놈!
    언제까지 우려먹을겁니까?! 신물이 납니다.
    독도는 사실상 우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일본도 한국과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한 지배를 생각하지 않고,,,,
    해양경계 주권 문제는 인접 국가간에 거의100% 다 있것이고,,,
    김씨 왕조의 백두산(장백산) 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고,,,
    한국이 나 북하이나 중 국의 눈치보기 가 분명 하지요.
    리플작성2013-03-26 10:47:20
    • 명경지수
      누가 뭐래도 나는 일본이 싫고 미워요.
      리플작성2013-03-26 06:32:15
  18. 일본의 대북 배상 문제는 어차피 일본인 납치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납치 책임자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아버지의 잘못을 다 까발리며 해결에 나설 리도 없는 거고…..
    결국 김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해결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그 때 일이 틀어져 김정일이 일본으로부터 100억불 배상금을 기대하다 못 받게 된게 북한 인민들로서는 더 다행인지 모른다. 그 돈 받았더라면 김정일이 어디다 썼겠는가? 대부분 핵무기개발, 군사 시설 확충, 호화 사치품 수입 등으로 날렸을 것이고, 인민들에게 돌아갈 몫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배상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느냐 더 중요한데, 김정일 정권은 그런 의미에서 돈을 받아서는 안 되는 정권이었다.
    북한의 김씨 왕조가 무너지고, 김가네의 만행들을 단죄하면서 일본인 납치문제도 같이 해결한 뒤, 배상금을 받는다면 인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전후 일본의 배상금을 받은 나라 중 그 돈을 가장 의미있게 사용한 나라는 남한 뿐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그 돈 받아 이리 저리 나눠 먹고나니, 돈이 어디로 갔는지 받으나 마나한 것이 되고 말았다.
    리플작성2013-03-27 05:17:08
  19. 북한 사람들이 일본이 납북자 문제로 배상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에 분개하는 것은 한편으로 이해는 되지만…..일본 정치인은 김정일과 같은 독재자가 아니고 국민들 표를 의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여론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또 해방 후에 북한이 잘못된 것까지 일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회피에 가깝다.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원인은 일본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소련군과 함께 들어온 김일성이 권력을 잡고 북한을 엉망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까지 일본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웃긴다. 김일성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살면서 잘못된 책임은 왜 김일성 일족이 아닌 일본이 져야 하는가?
    김씨들의 통치가 일제시대 보다 훨씬 더 가혹한데도 그것은 참고 살면서 일본에 배상요구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북한 노인네 중에는 차라리 일제 시대가 더 나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지 않은가? 일제시대도 태평양 전쟁 치르는 마지막 4~5년만 제외하면 독립운동을 탄압한 외에는 조선시대 보다 크게 더 나쁠 것도 없었다 한다. 조선말 탐관오리들의 백성들에 대한 수탈도 엄청나게 가혹하여 원성이 자자했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동학란 같은 것이 왜 일어났겠는가?
    뭐 일제통치를 정당화 하자는 말은 아니고, 북한 사람들이 김씨네의 일제보다 더한 학정은 참고 살면서 일제 통치가 가혹했다고 욕하고, 배상을 요구할 처지가 되느냐는 말일 뿐이다.
    북한의 일본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김씨 왕조를 스스로 타도하지 않는 한 풀리지 않을 것이다.
    리플작성2013-03-27 08:04:09
  20. 가입중
    어언 해방된지 70년 살아있는 친일파는 90살 이상 이어야 할텐데 거의 죽었을테고 아직도 다음 같은데서 박정희 친일파 라며 까는것은 북한에서 지령받은 대로 보수를 친일과 동격화 해서 비난하기 위한 공작 일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자기부친 친일 행적에 대해 모르고 떠들어 대다 망신 당한적이 여러번이듯 사실 자기 조부들의 일제시대 행적들에 대해 일반 국민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겠나.지금 대한민국 부자들은 60년대 이후 산업화때 자본을 축적한 이가 대부분 이고 일제때 부터 축적해온 부가 여태까지 내려온 경우는 극소수라 생각된다.보수 정권을 욕하기위한 명분이 군부 독재 였는데 문민정부 이래로 명분이 없어 찾아낸게 70년 지난 지금 친일 논쟁이니 상대 흠 잡아 정치적 이득 볼 생각말고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국민을 한마음으로 이끌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리플작성2013-03-29 11:47:19
  21. 바람처럼
    왜놈 쪽바리…..우리 어릴 때 늘 쓰던 표현인데…..
    국제사회 속에서 영원한 적이 없다는 말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바뀌지 않았을까 싶네요.
    리플작성2013-03-31 12:36:13
  22. 아이디(필수)
    한국인은 벌써 마지막입니다
    https://mobile.twitter.com/inyou381?p=s
    리플작성2013-08-03 07:48:33
  23. 그냥
    신격화 : 삼대 김씨 세습 = 덴노 (일제시대 신사보다 북한의 우상화 동상이 전국적으로 더 많음)
    사상 : 주체 사상 = 대동아공영권, 선군정치
    경제 : 부실한 배급제 = 중일전쟁 이후부터 배급제
    주적 : 남한, 미국 =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
    차이 : 일본은 말로만 미국이랑 전쟁을 한게 아니라 진짜 공격했지만
    북한은 말로만 미국이랑 전쟁…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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