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8

지상낙원 평양의 유치원 뒷바라지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지상낙원 평양의 유치원 뒷바라지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by 주성하기자   2014-12-02 7:34 am
평양에도 유치원이 있다. 그런데 유치원 입학식이 끝나면 신입생은 한동안 교양원(교사)들의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철수 어린이, 아침에 뭘 먹었어요? 영희 어린이는?”

이것은 일종의 호구조사다. 아침 식사를 뭘 먹었는지 며칠만 조사하면 그 집 생활수준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언제부턴가 당연한 입학 의례가 됐다.

각 가정의 형편을 파악하는 것은 교양원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유치원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부모는 유치원 입학 전부터 돈을 낸다. 벽지 비닐장판 페인트 횟가루 시멘트 청소도구 놀이감 등 유치원에 필요하다는 항목들은 수십 가지다.

대다수 유치원은 입학 때 북한 돈 8만~10만 원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학 턱’이라는 명목으로 유치원 교사들에게 4만~5만 원어치를 접대해야 하는 일도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입학 전에 12만 원이 드는데, 11월말 북한 환율로 약 15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하겠지만 쌀 20㎏ 또는 옥수수 100㎏은 기꺼이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정도 식량이면 4인 가정이 한달 굶지 않고 살 수 있다.

부모들의 ‘유치원살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달 쌀 3㎏과 식비 5000~1만 원을 내야 한다. 반찬도 챙겨 보내야 한다. 유치원에선 점심에 국과 밥만 주고 그 외 간식으로 매일 우유 1잔과 과자 또는 빵을 한두 개씩 줄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교사들은 다음날 갖고 와야 하는 각종 항목을 수첩에 적어 아이에게 보낸다. 거기에만 한달에 5만 원 넘게 든다.

하지만 안 보낼 수는 없는 일. 못 가져가면 아이를 욕하고 벌을 세우거나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교사들이 있다.

어떤 교사는 자기 생일은 물론 남편 생일, 집안 대소사 때까지 노골적으로 돈과 물건을 요구한다. 안주면 아이에게 “너희 부모는 도덕도 없냐”고 욕하기도 한다.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잘 들려 보냈다고 마음 놓아서도 안 된다. 대청소나 환경미화 작업 때 노력 봉사를 요구하는 교사도 있고 도로보수나 농촌지원 등 ‘사회동원’을 대신해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뇌물요구는 더 많다.

교사들은 부모의 ‘열성’에 따라 자녀에게 공부 잘하거나 좋은 일했을 때 상으로 주는 빨간 별을 더 주거나, 싸움이 붙었을 때 한쪽 편을 드는 것으로 보답한다.

평양 유치원들도 해마다 자연관찰, 현장학습 등 행사가 늘고 있다. 체육대회도 예전엔 국제아동절인 6월 1일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1년에 3번 이상으로 늘었다. 그때마다 부모들은 죽어난다.

심지어 돈이 없어 아이를 유치원에 안보내거나 낮은 반을 건너뛰고 높은 반에 보내 빨리 졸업시키려는 부모들도 많다.

평양은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아이 교육은 부모 재력에 따라간다. 교사들은 돈 내는 아이들만 따로 남겨 국어나 수학을 더 공부시켜 보낸다.

요즘 평양에선 유치원생 시절부터 피아노 배우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배우려면 한달에 10달러를 내야 한다. 더 많이 내면 선생이 집까지 찾아가 가르쳐준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뭘 배울지 뻔하다. 누가 전학이라도 오면 아이들이 몰려와 “너희 엄만 뭐하니”부터 묻는단다. “(장마당에서) 화장품 장사”라는 식으로 답하면 “돈 좀 빠지니(벌리니)” 되묻고 “그냥 그렇다”하고 받아친단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엄마들이 모여 장사 이야기를 하는 것만 보고, 유치원에선 부모 돈에 따라 대접받는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집안 경제력이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평양 유치원에도 등급이 있다. 최고 명문인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은 비공식 입학금이 500달러다. 또 매달 50달러 이상이 추가로 든다.

2012년 7월 평양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을 방문한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실내체육관에서 어린이의 농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곳은 입학에만 500달러의 뒷돈 거래가 이뤄지는 명문 유치원이다.
김정은이 2012년에 이 유치원을 두 번씩이나 방문했다. 북한 언론은 “장군님의 사랑 아래 어린이들이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 유치원 입학에 얼마 드는지는 북한에서 김정은만 모를 것 같다. 참, 이 유치원은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의 단골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유치원은 졸업할 때에도 돈이 든다. 북한엔 졸업식 때 학부모가 돈을 모아 선생에게 기념품을 주는 오랜 전통이 있다. 과거엔 옷이면 무난했지만 요샌 선생이 냉장고 컴퓨터 세탁기 등을 먼저 요구한다고 한다.

“나도 돈 많이 써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본전 뽑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교사들의 속셈이다.

기념품까지 주고나면 고달픈 유치원은 드디어 졸업 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 중학교 대학이 더 큰 입을 벌리고 차례로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평양 유치원들은 과거 남쪽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부정적인 모습까지 빼다 닮은 듯하다. 물론 가정의 부담이나 노골적으로 갈취당하는 정도는 북한이 몇 수 위이다.

남북이 서로 경험을 교류한 적도 없는데, 악덕 행태가 닮아있는 건 참 희한한 일이다. 요즘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아이를 더 못 낳는다는 푸념까지 남북이 닮았다.

이러면서도 북한은 세금 없는 사회주의 무료교육 제도가 있는 낙원이라고 남쪽을 향해 ‘자랑질’이다. 뻔뻔하다.

정작 북한 부모들은 각종 명목으로 매일 뜯기는데 지쳐 유료 교육제도가 도입돼 그냥 정해진 돈만 내는 남쪽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나마 살기 좋다는 평양의 유치원들이 이 정도면 지방은 굳이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요즘 북한을 평등의 천국이라 떠들고, 이 말을 침 흘리며 들어주는 남쪽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해서 ‘지상낙원’ 평양의 유치원 생활을 소개해봤다.

  1. 아미고
    한국이나 비슷하네요. 지금도 뭐 유치원 초등학교 가면 어느 아파트 사는지 물어보더만.
    리플작성2014-12-02 09:47:10
    • 포근한데
      비슷하긴 뭐가 비슷하냐?
      근처에 아파트 있으면 사는곳 물어볼수도 있는것이지….
      대한민국에서 촌지주는 학부모도 없겠지만 받는 교사도 없다
      서로 창피하니까…..
      리플작성2014-12-02 10:23:09
      • 이루어보건대
        비슷하죠.
        근처에 동일한 수준의 집만 있을경우 사는곳을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어요.
        오히려 수준차이가 심한곳에서 더 많이 물어보죠.
        애들도 사람인지라 권력놀이를 하거든요.
        그리고 촌지받는 ‘교사’는 없을지라도, 촌지받는 유치원 ‘선생님’은 엄연히 있습니다.
        병설유치원이 아닌 사립 유치원일경우 은근하게 애들보고 시켜서 받을려는 사람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 원장선생님은 더더욱 그렇고요.
        리플작성2014-12-23 09:02:16
  2. 아미고
    그냥 정해진 돈만 내는 남쪽 ….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교재비, 참관비등으로 가외돈이 좀 듭니다. 부패한 교사 만나면 촌지도 줘야하구요.
    리플작성2014-12-02 09:50:46
    • uriura
      유치원에 뭔 교재비..뭐 참관비야 서너달에 한번 애들 소풍 가는데 차비 정도니 그거야 오히려 내가 고맙죠.애 둘 유치원 보내 봤지만 유치원이나 유치원 교사들 부패했단 소린 첨 듣네.
      설령 유치원 교사가 촌지 눈치라도 주면 바로 원장한테 얘기해 봐요. 소문 나서 애들 안 올까봐 교사 바로 짤라 버립니다.
      리플작성2014-12-03 08:10:18
  3. 새벽
    진실로 지상낙원이네요.
    말 안 듣느 우리집 애새끼들 저곳에 한 달만 보내봤으면.
    기아체험, 새벽별 보기,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이런 거 익스트림 관광으로 개발하면 돈 좀 벌텐데.
    참 아쉽도다.
    리플작성2014-12-02 09:52:30
  4. 기가 막히군요. 개리 의견처럼 차라리 공식적으로 세금을 걷지…
    리플작성2014-12-02 09:53:38
  5. Garry
    월급이 거의 없으니 뇌물을 받는 수 밖에요.
    세금을 거둬서 공무원 월급 제대로 주면 부정을 단속할 근거가 생깁니다.
    진짜 시장 경제보다 더 원시적이고 저열한 시장에 의존해 살면서도 자기들은 사회주의 낙원에 산다고 우기니 웃기는 거지요.
    김정은은 세금 제도를 도입하고, 세외부담을 없애야 합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 어려운 계층을 돕는다면, 시장경제 확산에 따른 빈부격차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국가재정도 충실해 지고요. 좋은 겁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부정하고 비난만하니까 발전을 못하는 것이지요.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 좀 배워야 합니다.
    북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도 의료와 학교 만큼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겠다는 겁니다. 어차피 다 못하잖아요? 그 두개만 확실히 챙겨도 국민의 기본생활이 안정되는 것이지요.
    그걸 할 안목이 있는지 모르지만.. 김정은이나 그 주변이 너무 무지, 무능한게 문제입니다. 앞으로 나아질 가망도 별로 없어요.
    리플작성2014-12-02 09:55:57
  6. 평등
    유치원에서 뭘 가르치지요? 부모들이 뇌물을 갖다가 바칠정도로 북한유치원이 원아들에게 건전하고 생산적인 것을 가르치나요? 모든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연관시키는 학습이잖아요.이런것을 배우는 교육기관에 뇌물이라고요? 북한이라는 나라는 돈도 많습니다.
    리플작성2014-12-02 10:17:12
  7. 격변
    남한도 유치원이나 교육현장이 썩었던 적이 있고 지금도 아주 근절되지 않은 곳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없는 가정의 어린이들을 눈에 보이게 구박하거나 파렴치한 행동을 드러내는 교육자는 극히 일부라고 봅니다. 북한의 일반화된 비리와 학부모들의 부담을 당연시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교육 현장이 그 놈의 평준화 때문에 치마바람이나 사교육 비용을 부추기는 역설적인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한 세월이 안타깝습니다. 요즘은 좌파 교육감들의 무상급식(사실은 혈세급식)타령으로 교육 환경마져 악화되어 우리도 언제 또 학부형들에게 학교시설 보수비용을 물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리플작성2014-12-02 10:24:13
  8. 뫼등바위
    한국도 유명하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합니다.
    이른바 “치맛바람”.
    요즘은 대학생 자녀에게까지 치맛바람이 성행한다네요.
    너무 지나쳐 기가 찹니다.
    리플작성2014-12-02 10:53:22
    • 가을남자
      미쿸도 장난아닙니다요.
      헬콥터 맘이라고 하죠.
      다 비슷해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리플작성2014-12-02 11:00:24
  9. tyj
    군부 쿠데타 준비중 ㅋㅋ
    배고픈거 보다 배 아파서
    리플작성2014-12-02 11:51:46
  10. 장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촌지 주고받는거랑 똑같네요
    리플작성2014-12-02 02:37:30
  11. 뫼등바위
    지상에서 영원으로…..
    花無十日紅
    정으니 잘 읽어 두렴, 그리고 어디 갈 땐 설주 손 꼭잡고 다녀.
    [무솔리니]
    1944년 여름 독일이 본국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자 무쏠리니도 북이탈리아에서 철수하는 독일군 대열에 끼어든다. 그는 독일군 사병 외투를 얻어 입고 독일군 트럭 한 구석에 앉아 있었으나 반(反)무쏠리니 공산당 계열 시민군에게 발각되었다. 무쏠리니를 따라 해외로 도주하려던 애첩 클라라 페타치도 잡혔다.
    시민군은 무쏠리니와 그의 애첩을 1945년 4월28일 북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코모 호수가로 끌고 가 총살한다. 그때 그의 나이 62세, 애첩은 33세였다. 시민군은 그들의 시신을 밀라노 시내로 싣고 가 한 주유소 앞마당에 내려놓는다. 무쏠리니의 독재 하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무쏠리니와 페타치 그리고 다른 무쏠리니 부하들의 시신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막대기로 구타하고 침을 뱉었다. 이 장면은 사진으로 찍혀 지금도 몇 장 남아 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무쏠리니 유해는 가매장 되었다가 13년 후인 1957년 그의 조강지처가 거두어 가 가족묘지에 묻었다.
    [히틀러]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애인 에바와 지하 벙커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다음날 신부와 동반 자살한다. 그때 그의 나이 56세, 자살 하루 전에 결혼식을 올린 에바는 33세였다.
    히틀러 부부는 괴벨스 선전장관과 보어만 비서실장, 슈페어 건설장관 등 최측근들과 경호원 및 비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방에서 청산가리가 든 알약을 부인 에바와 나누어 먹는다. 그는 알약을 입에 넣은 직후 미리 준비한 권총을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히틀러는 죽기 전에 부하들에게 시신을 지상으로 옮겨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시신이 불태워지지 않고 쏘련군이 가지고 갔다가 1970년에 완전히 다 없앴다는 설도 있다.
    [도조 히데끼]
    토오쿄 시내 다이이치생명보험 빌딩 6층에 자리잡은 태평양지구 미군 총사령관 겸 연합군 최고사령관 매카앗서(MacArthur) 장군은 도오조 히데끼 전 수상을 포함한 일본 군부와 민간 정치인 등 총 40명을 전범(전쟁범죄인)으로 낙인찍고 체포를 명령한다.
    미 육군소령 한 명이 헌병 3명과 OSS(후에 CIA)요원 2명을 데리고 1945년 9월 8일 토오쿄 세다가야구에 있던 도오조 자택에 도착하자 도오조는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미군과 첩보요원들이 총소리를 듣고 그의 방에 들어가 보니 그는 가슴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누군가가 심장이 있는 위치에 숯으로 원을 그려놓았고 탄환은 그 원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총알은 그의 심장 대신 위에 박혀버렸다.
    도오조는 미군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그는 치아가 나빠 이가 7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 치과의사가 의치까지 만들어주었다는데, 그 치과의사는 의치 안쪽에다 모올스 부호(Morse code)로 Remember Pearl Harbor(진주만을 잊지 말라)라는 글을 새겨놓았다.
    수사와 재판을 거쳐 도오조는 1948년 11월12일 다른 6명과 함께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그해 크리스마스 이틀 전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64회 생일 1주 전이었다, 사형집행 전 그는 그의 감방 당번인 미군 헌병 일등병에게 그의 약식훈장(가슴에 다는 직사각형 리본)들을 전부 선물로 주었는데, 그 훈장들은 지금 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미 해군비행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도오조 히데끼의 유해(화장된 가루)의 절반은 가족묘지에 묻혀있고 나머지 반은 토오쿄의 야수쿠니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출전은 조선일보에 실린 조화유님 글 일부입니다)
    리플작성2014-12-02 03:23:41
  12. 한국은 은근한 촌지요구지 저렇게 노골적이지 않아요.
    물론 요구규모는 훨씬크죠.
    리플작성2014-12-02 05:41:01
  13. 바다호수
    서구 교육은 촌지는 거의 없지요.
    선생과 학부모가 무슨 회의가 있으면 서로 맛담배를 피면서 상의하지요.
    여기 살면서 깜짝 놀란것은 초등학교 2년생을 유급을 시키더라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못따라가면 유급 대학교 성적 받기는 더 힘들고…이러니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공부 하기 힘들어요. 한국은 대학 들어가면 나오는데.. 이곳은 공부 안하면 나오질 못해요
    이런것 보면 능력위주의 사회가 한국보다는 훨~ 나은것 같으네요.
    리플작성2014-12-02 06:21:43
  14. 도미노
    사회주의적인 순진함이라는 것이 딱히 한국에서는 덕목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낭만적으로 여기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던데
    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크게 실망하겠군요.
    리플작성2014-12-02 07:00:12
    • 산골사람
      실망안할 것입니다. 위의 글을 북한을 비방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쓴 것이라고 믿을 터이니까요. 이분들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리플작성2014-12-02 11:47:38
  15. 대한독립정신
    우리나라 부패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통일하면 정말 볼만하겠습니다
    리플작성2014-12-02 07:26:04
  16. 산골사람
    그래도 북한은 무상교육이 철저하게 실천되는 지상낙원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들은 북한의 모든 제도는 지상낙원으로 보이지요. 무상교육 무상의료, 취업보장 등 유토피아가 실현된 지상낙원이 북한이지요. 그러나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남쪽을 북한처럼 혁명하기 위해 이곳에 남아서 투쟁하여야 한다고 답하겠지요.
    리플작성2014-12-02 11:46:21
  17. 남한사람
    자식을 둘 키워본 경험으로 그리 와닿지 않네요. 부모가 유치원 교사의 눈치를 보거나 촌지를 준다?
    아이 다치거나 끍켜오면 항의가 빗발치고 거의 죽인다고 난리를 치느라
    못해먹겠다고 그만두고 싶다더군요… 우리 아이도 동네에선 그래도 명문이라는 곳에 다녔는데..
    유치원장이 학부모 눈치를 많이 보더군요. 유치원은 사교육이라 결국 돈은 내가 내는거니까…
    요새 학교도 학부모가 선생을 패대기 치는판이데…
    유치원이??
    부패한 교사 어느학교니까? 바로 모가지 짤라 드리지요….
    리플작성2014-12-03 07:10:06
    • uriura
      저랑 남한사랑님만 여기서 애들 유치원 보낸 경험 있는것 같네요.ㅎㅎ
      맞습니다. 애들 손가락에 조금만 상채기 하나만 나서 돌아와도 교사들 한테 전화 난리 입니다.
      요즘 얘기도 아닙니다. 이런지 10년도 넘었어요.
      주기자님도 아직 애들을 유치원에 안 보내 봐서 잘 모르실거예요.^^
      남한에서 유치원 촌지? 이런거 없구요.
      가끔 이거저거 행사비들 들지만 서너달에 한번 정도에 액수도 1~3만원 정도로 저렴 합니다.
      리플작성2014-12-03 08:18:11
      • hongji1004
        요즘도 촌지받는 선생이 있습니까? 촌지 받다간 원스트락아웃인데요. 특히 선생같이 권력 없는 자들은..
        리플작성2014-12-03 08:58:16
    • 봄빛
      촌지 같은거는 예전에 사라졌다고 봐야죠…비록 지방 유치원 같은데서 촌지?? 같은것을 요구하면 동네 학부모들 사이에서 금방 소문나고…또 반드시 신고 들어갑니다. 자격이 정지되고 사법처리까지 받는데…목숨 걸고 그런 짓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다고 봐야겠죠.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선생으로써 하지 말아야 될것을 하다가는 금방 소문나고…또 누가 신고하든 반드시 신고하는 사람이 나올텐데…그럴 사람 있을까요? 그 어려운 교사 임용제에 패스하고도 평생 직장을 그깟 촌지 몇푼에 버려버릴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다만, 학부모들 사이에…’너 무슨 아파트 사냐??누구누구는 몇평에 사냐??부모님 뭐하시냐??..’따위를 물어 보는 것은 요즘 아이들이 워낙에 조숙한 아이들도 많고 집에 부모님이 두분다 맞벌이를 하는 직장 엄마를 가진 아이들이 혹여라도 방과후에 친구들 끼리 부모님 없는 집에 몰려가서 무슨 짓???(나쁜 짓??)못 볼 동영상??이런 짓들을 할까봐서 미리 좀 친구들 속사정을 알려고 하는 수준이겠지요…대체로 보면 좀 봇사는 아이들인 경우에 밤 늦게까지 PC방을 돌아 다닌다거나, 집에 엄마가 안계시는 통에 아이들 불러다가 못볼것도 보게되고…암튼 애들끼리 후미진 곳에 놔두면 좋은 일이 아니기에 어떤 애가 어떤 가정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알기위해 물어보는 거라고 할수 있겠죠…촌지 같은 거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사람일까??라고 의심 좀 해봐야합니다.
      리플작성2014-12-04 05:09:52
  18. 널리
    이 사진에 나온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엔 김정은과 이설주의 웃는 얼굴을 더 못보겠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려나?
    리플작성2014-12-03 09:20:20
  19. 단골손님
    요즘 이상하게 생긴 여성분들이 은근하게 북한을 찬양하고 돌아다닌다 합디다. 참 사람 생긴거 가지고 뭐라면 좀 그렇기는 합니다만….정말 개념 없습니다.
    자기 입이야 지가 어찌 놀리던지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곳에서 오죽하면 목숨걸고 탈출해서
    중국땅을 떠돌다가 간신히 남한에 들어온 사람들한테 꿀밤 한대씩만 애교로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아무리 단단한 돌머리라도 곱디 고운 분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대체로 자기가 아무리 힘이들어도 자식교육에 헌신하는 유명한 교육열이 있습니다.
    그런 습성이 너무 강하다보니까 부작용도 있습니다.
    체제가 극명하게 달라진지 어언 두세대가 지나갔어도 그런것도 남과북이 역시 똑같군요
    이 극성스런 교육열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인적투자와 같은 차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문제성도 많이 나타납니다만 전부 부정적으로만 볼것도 아니구요 ^^
    그나저나 북한 좋아서 떠들고 다니는 그분들…그리가서 살지도 않으면서 그러시는데
    어떻게 그리가서 한 3년 행복하게 푹 사시도록 해 드릴 방법은 없을까요?
    리플작성2014-12-03 10:36:15
  20. 지나가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종북질하는게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는 정도였죠.
    1974년 1인당 GDP가 역전되었다고 하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특성상 3차 산업이 GDP에
    포함되는 부분이 남한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나름 작동되던 시기라 부의 분배도 괜찮았고요.
    아마 서민들 명목 GDP는 남한이 높았을지 몰라도 PPP 개념으로 본다면 80년대 중반까지도
    남한이 크게 높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한도 당시에는 파쇼가
    만만치 않았죠. 지금이야 북한 인권 욕하지만 삼청교육대에서 많은 사람들 인권유린 당하고
    죽어나갔던거 생각하면 오십보 백보라고 해야 되려나?
    한국전쟁때 평양에 제대로 서있는 건물이 2~3채일 정도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자주적으로
    저만큼 국가를 재건했다는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종북이 많이 늘었었죠. 그때만 해도 남한도
    암울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봐줄 구석이라도 있었는데..
    고난의 행군 지나고 북한 경제는 막장으로 치닫고 인권 개념은 김일성 시절에도 열악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열악해지는 것 같은데 그 기간동안 남한은 정말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장했죠. 경제규모도 그렇고,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말이죠.
    그런데도 아직까지 종북질하는 사람들 보면 참 측은합니다. 30년도 지난 과거 이데올로기에
    집착해서 정신 못차리니 말입니다.
    아, 종북주의자들에게 그런 이성을 바라는게 제 욕심일 수도 있겠군요. 80년대 남한사회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하던 사람들, 그랜저와 우마차의 본질은 같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판단을 바랄 수는 없겠네요.
    추신 : 강철씨! 아, 본명으로 하면 김영환씨군요. 본인 혼자 전향했다고 면피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당신이 뿌려놓은 악의 씨앗 아직도 잘 크고 있습니다. 좀 시들기는
    했지만.. 본인이 싼 똥은 제대로 치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리플작성2014-12-03 01:31:53
    • 허공
      북한이 사회주의배급제로 3차산업에서 발생할 GDP 충족분이 빠진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남북비교에서는 북한은 70년대 당시 국방비가 GDP의 25~3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국방비는 같은 시기 GDP의 3~4%정도에 불과했죠.
      북한은 인구가 남한의 반 정도였으니 삶의 질을 따진다면 일인당 GDP에서 북한은 국방비로 나가는 40~50%를 빼고 계산해야 맞습니다.
      남한도 74년 이전까지는 3차산업이란게 사실상 GDP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GDP의 대부분은 1.2차산업과 수출에 의존했죠.
      여러가지 통계로 보면 PPP개념으로 보아도 75년부터는 역전한 것이 맞다고 봅니다.
      리플작성2014-12-03 02:14:59
      • 지나가다
        70년대 중반부터 민간경제와 당/군 경제가 분리된 것 인정합니다. 76년에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라는 초대박 사고를 친 이후라고 기억하는데요. GDP의 25~30%를 차지한건 80년대
        이후라고 알고 있습니다.
        70년대 중반 넘어가면 남한도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집니다. 이미 1차산업은 이미 넘어섰고
        2차 산업과 비슷하거나 넘어서거나 했거든요.
        제 얘기의 핵심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들의 삶이 그나마 비교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비교 불가, 넘사벽이라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북질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다. 이게 결론입니다.
        리플작성2014-12-03 02:55:54
  21. 올리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죠. 주로 아버지 뭐하시니? 어디 사니? 가 호구조사 시작의 양 대 질문이죠.ㅋㅋ 한국의 최고가 영어유치원의 연간 수업료가 천만원 정도인데, 역시 북한은 아직 한국에 비하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집니다.ㅋㅋ 다만 한국과 다른건, 북한은 99%의 인민이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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