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주성하기자 2014-12-02 7:34 am
평양에도 유치원이 있다. 그런데 유치원 입학식이 끝나면 신입생은 한동안 교양원(교사)들의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철수 어린이, 아침에 뭘 먹었어요? 영희 어린이는?”
이것은 일종의 호구조사다. 아침 식사를 뭘 먹었는지 며칠만 조사하면 그 집 생활수준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언제부턴가 당연한 입학 의례가 됐다.
각 가정의 형편을 파악하는 것은 교양원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유치원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부모는 유치원 입학 전부터 돈을 낸다. 벽지 비닐장판 페인트 횟가루 시멘트 청소도구 놀이감 등 유치원에 필요하다는 항목들은 수십 가지다.
대다수 유치원은 입학 때 북한 돈 8만~10만 원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학 턱’이라는 명목으로 유치원 교사들에게 4만~5만 원어치를 접대해야 하는 일도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입학 전에 12만 원이 드는데, 11월말 북한 환율로 약 15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하겠지만 쌀 20㎏ 또는 옥수수 100㎏은 기꺼이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정도 식량이면 4인 가정이 한달 굶지 않고 살 수 있다.
부모들의 ‘유치원살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달 쌀 3㎏과 식비 5000~1만 원을 내야 한다. 반찬도 챙겨 보내야 한다. 유치원에선 점심에 국과 밥만 주고 그 외 간식으로 매일 우유 1잔과 과자 또는 빵을 한두 개씩 줄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교사들은 다음날 갖고 와야 하는 각종 항목을 수첩에 적어 아이에게 보낸다. 거기에만 한달에 5만 원 넘게 든다.
하지만 안 보낼 수는 없는 일. 못 가져가면 아이를 욕하고 벌을 세우거나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교사들이 있다.
어떤 교사는 자기 생일은 물론 남편 생일, 집안 대소사 때까지 노골적으로 돈과 물건을 요구한다. 안주면 아이에게 “너희 부모는 도덕도 없냐”고 욕하기도 한다.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잘 들려 보냈다고 마음 놓아서도 안 된다. 대청소나 환경미화 작업 때 노력 봉사를 요구하는 교사도 있고 도로보수나 농촌지원 등 ‘사회동원’을 대신해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뇌물요구는 더 많다.
교사들은 부모의 ‘열성’에 따라 자녀에게 공부 잘하거나 좋은 일했을 때 상으로 주는 빨간 별을 더 주거나, 싸움이 붙었을 때 한쪽 편을 드는 것으로 보답한다.
평양 유치원들도 해마다 자연관찰, 현장학습 등 행사가 늘고 있다. 체육대회도 예전엔 국제아동절인 6월 1일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1년에 3번 이상으로 늘었다. 그때마다 부모들은 죽어난다.
심지어 돈이 없어 아이를 유치원에 안보내거나 낮은 반을 건너뛰고 높은 반에 보내 빨리 졸업시키려는 부모들도 많다.
평양은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아이 교육은 부모 재력에 따라간다. 교사들은 돈 내는 아이들만 따로 남겨 국어나 수학을 더 공부시켜 보낸다.
요즘 평양에선 유치원생 시절부터 피아노 배우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배우려면 한달에 10달러를 내야 한다. 더 많이 내면 선생이 집까지 찾아가 가르쳐준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뭘 배울지 뻔하다. 누가 전학이라도 오면 아이들이 몰려와 “너희 엄만 뭐하니”부터 묻는단다. “(장마당에서) 화장품 장사”라는 식으로 답하면 “돈 좀 빠지니(벌리니)” 되묻고 “그냥 그렇다”하고 받아친단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엄마들이 모여 장사 이야기를 하는 것만 보고, 유치원에선 부모 돈에 따라 대접받는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집안 경제력이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평양 유치원에도 등급이 있다. 최고 명문인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은 비공식 입학금이 500달러다. 또 매달 50달러 이상이 추가로 든다.
김정은이 2012년에 이 유치원을 두 번씩이나 방문했다. 북한 언론은 “장군님의 사랑 아래 어린이들이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 유치원 입학에 얼마 드는지는 북한에서 김정은만 모를 것 같다. 참, 이 유치원은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의 단골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유치원은 졸업할 때에도 돈이 든다. 북한엔 졸업식 때 학부모가 돈을 모아 선생에게 기념품을 주는 오랜 전통이 있다. 과거엔 옷이면 무난했지만 요샌 선생이 냉장고 컴퓨터 세탁기 등을 먼저 요구한다고 한다.
“나도 돈 많이 써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본전 뽑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교사들의 속셈이다.
기념품까지 주고나면 고달픈 유치원은 드디어 졸업 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 중학교 대학이 더 큰 입을 벌리고 차례로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평양 유치원들은 과거 남쪽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부정적인 모습까지 빼다 닮은 듯하다. 물론 가정의 부담이나 노골적으로 갈취당하는 정도는 북한이 몇 수 위이다.
남북이 서로 경험을 교류한 적도 없는데, 악덕 행태가 닮아있는 건 참 희한한 일이다. 요즘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아이를 더 못 낳는다는 푸념까지 남북이 닮았다.
이러면서도 북한은 세금 없는 사회주의 무료교육 제도가 있는 낙원이라고 남쪽을 향해 ‘자랑질’이다. 뻔뻔하다.
정작 북한 부모들은 각종 명목으로 매일 뜯기는데 지쳐 유료 교육제도가 도입돼 그냥 정해진 돈만 내는 남쪽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나마 살기 좋다는 평양의 유치원들이 이 정도면 지방은 굳이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요즘 북한을 평등의 천국이라 떠들고, 이 말을 침 흘리며 들어주는 남쪽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해서 ‘지상낙원’ 평양의 유치원 생활을 소개해봤다.
근처에 아파트 있으면 사는곳 물어볼수도 있는것이지….
설령 유치원 교사가 촌지 눈치라도 주면 바로 원장한테 얘기해 봐요. 소문 나서 애들 안 올까봐 교사 바로 짤라 버립니다.
말 안 듣느 우리집 애새끼들 저곳에 한 달만 보내봤으면.
참 아쉽도다.
이른바 “치맛바람”.
헬콥터 맘이라고 하죠.
다 비슷해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정으니 잘 읽어 두렴, 그리고 어디 갈 땐 설주 손 꼭잡고 다녀.
물론 요구규모는 훨씬크죠.
선생과 학부모가 무슨 회의가 있으면 서로 맛담배를 피면서 상의하지요.
여기 살면서 깜짝 놀란것은 초등학교 2년생을 유급을 시키더라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못따라가면 유급 대학교 성적 받기는 더 힘들고…이러니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공부 하기 힘들어요. 한국은 대학 들어가면 나오는데.. 이곳은 공부 안하면 나오질 못해요
이런것 보면 능력위주의 사회가 한국보다는 훨~ 나은것 같으네요.
그래도 그것을 낭만적으로 여기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던데
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크게 실망하겠군요.
아이 다치거나 끍켜오면 항의가 빗발치고 거의 죽인다고 난리를 치느라
못해먹겠다고 그만두고 싶다더군요… 우리 아이도 동네에선 그래도 명문이라는 곳에 다녔는데..
유치원장이 학부모 눈치를 많이 보더군요. 유치원은 사교육이라 결국 돈은 내가 내는거니까…
요새 학교도 학부모가 선생을 패대기 치는판이데…
유치원이??
부패한 교사 어느학교니까? 바로 모가지 짤라 드리지요….
맞습니다. 애들 손가락에 조금만 상채기 하나만 나서 돌아와도 교사들 한테 전화 난리 입니다.
요즘 얘기도 아닙니다. 이런지 10년도 넘었어요.
주기자님도 아직 애들을 유치원에 안 보내 봐서 잘 모르실거예요.^^
남한에서 유치원 촌지? 이런거 없구요.
가끔 이거저거 행사비들 들지만 서너달에 한번 정도에 액수도 1~3만원 정도로 저렴 합니다.
자기 입이야 지가 어찌 놀리던지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곳에서 오죽하면 목숨걸고 탈출해서
중국땅을 떠돌다가 간신히 남한에 들어온 사람들한테 꿀밤 한대씩만 애교로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아무리 단단한 돌머리라도 곱디 고운 분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습성이 너무 강하다보니까 부작용도 있습니다.
체제가 극명하게 달라진지 어언 두세대가 지나갔어도 그런것도 남과북이 역시 똑같군요
이 극성스런 교육열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인적투자와 같은 차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문제성도 많이 나타납니다만 전부 부정적으로만 볼것도 아니구요 ^^
어떻게 그리가서 한 3년 행복하게 푹 사시도록 해 드릴 방법은 없을까요?
포함되는 부분이 남한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나름 작동되던 시기라 부의 분배도 괜찮았고요.
남한이 크게 높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한도 당시에는 파쇼가
만만치 않았죠. 지금이야 북한 인권 욕하지만 삼청교육대에서 많은 사람들 인권유린 당하고
죽어나갔던거 생각하면 오십보 백보라고 해야 되려나?
저만큼 국가를 재건했다는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종북이 많이 늘었었죠. 그때만 해도 남한도
암울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봐줄 구석이라도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열악해지는 것 같은데 그 기간동안 남한은 정말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장했죠. 경제규모도 그렇고,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말이죠.
집착해서 정신 못차리니 말입니다.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하던 사람들, 그랜저와 우마차의 본질은 같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판단을 바랄 수는 없겠네요.
생각하지 마십시요. 당신이 뿌려놓은 악의 씨앗 아직도 잘 크고 있습니다. 좀 시들기는
했지만.. 본인이 싼 똥은 제대로 치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남북비교에서는 북한은 70년대 당시 국방비가 GDP의 25~3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국방비는 같은 시기 GDP의 3~4%정도에 불과했죠.
북한은 인구가 남한의 반 정도였으니 삶의 질을 따진다면 일인당 GDP에서 북한은 국방비로 나가는 40~50%를 빼고 계산해야 맞습니다.
남한도 74년 이전까지는 3차산업이란게 사실상 GDP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GDP의 대부분은 1.2차산업과 수출에 의존했죠.
여러가지 통계로 보면 PPP개념으로 보아도 75년부터는 역전한 것이 맞다고 봅니다.
사건이라는 초대박 사고를 친 이후라고 기억하는데요. GDP의 25~30%를 차지한건 80년대
이후라고 알고 있습니다.
2차 산업과 비슷하거나 넘어서거나 했거든요.
지금은 비교 불가, 넘사벽이라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북질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다. 이게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