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동체 운동가 황대권씨 | 가톨릭평화신문
2003.04.20 발행 [720호]
-생태공동체 운동가 황대권씨
\'간첩\'으로 몰려 한평 독방에서 만난 \'생명의 하느님\'Home > 기획특집 > 일반기사
\'간첩\'으로 몰려 한평 독방에서 만난 \'생명의 하느님\'
▲ ‘간첩’에서 생태주의자로 변신한 황대권씨. 감옥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진정 하느님을 만나 생명중심 세계관으로 관점이 바뀐 황씨는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시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황대권씨는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대철 베드로,48)씨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전, 안동, 대구교도소를 거치며 13년 2개월을 복역했다.
감옥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가톨릭으로 귀의했고, ‘생태주의자’로 변신한 황씨는 1998년 출소 후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다가 그의 구명을 위해 애써준 국제사면위원회의 초청으로 1999년 유럽으로 가서 인권 활동을 했다.
영국에 있는 동안 런던대학교 임페리얼 칼리지와 슈마허 칼리지에서 농업 생태학과 생태학을 공부하고 2001년 가을에 귀국했다. 그리고 지난해 봄 번역가인 황애경(루치아, 45)씨와 결혼했다.
저서로는
「백척간두에 서서:공동체 시대를 위한 명상」(사회평론),
세계 공동체 탐방기인 공저「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
콜롬비아 생태공동체에 관한 역서「가비오따스」,
옥중 서간 중 야생초 관련 편지만 모은「야생초 편지」(도솔)와
논문 「대체농업의 상호 비교에 대한 연구:자연농업을 중심으로」가 있다.
유럽에서 인권 활동했던 내용과 생태공동체를 방문했던 내용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올해 중에 더 출간할 계획이다.
요즘 곳곳에 강연을 다니느라 바쁜 황씨는 최근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생태공동체운동센터’(02-2293-7719)를 마련했다.
*’간첩’에서 생태공동체 운동가로 변신한 황대권씨의 ‘나의 부활’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황대권씨는 한 평짜리 독방 안에서 ‘가톨릭’을 만났다.
대학 때 반독재 투쟁에 가담했던 황씨는 미국 유학시절 정치학도로서 이 문제를 체계화하는 공부를 하면서 사회정의 실현 문제로 고민하던 중 방학 때 귀국하는 길로 영문도 모르고 안기부(현 국정원)에 끌려갔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친구와 같이 있었다. 같이 토론했다” 는 등 온갖 이유를 붙여 ‘간첩’으로 몰린 황씨는 외부와 단절된 지하에서 60일간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고문, 허위자백, 번복을 거듭했다.
자신의 판단만이 옳고 자신의 의지로 계획을 세워 살아왔었기에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것이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의지와 달리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마저 믿을 수 없으니 내 삶을 주관하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있는 것일까.’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어느날 독방 벽에 벽지로 도배한 신문 글자가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꺾어가면서 정신없이 읽었다. 그것이 1986년 가톨릭과의 첫 만남이다.
‘가톨릭 신문’에 연재됐던 한국천주교 순교사화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고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유대철 베드로 소년 이야기는 고문에 굴복하려는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천주교 종교집회\'에 나가고 싶었으나 공안사범에다 미전향수여서 갈 수 없었다. 교도소측은 전향만 하면 집회에 보내주겠다고 전향을 강요했다. 황씨는 세례부터 받고 전향하겠다고 우겼다. 무신론에서 가톨릭으로 귀의하는 것이 그에겐 진짜 전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말대로 진짜 전향을 하고 자술서를 썼다. 하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단식 투쟁을 하고 밀서도 내보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간첩누명을 쓰고 고문에 시달린 그의 수기는 당시 막 창간한 평화신문 31호(1988년 12월 11일자)에 실렸었다.
황씨가 예상했던 자신의 구명운동은 빗나갔다. 세상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종교생활에 마음을 붙였다.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활동을 하고 성서모임도 만들어 공부했으며, 통신성서도 6년간 공부했다.
신자 재소자들의 신뢰를 받아 안동교도소 공소 회장을 맡으면서 독방을 벗어나 일반 신자 재소자와 같이 ‘종교방’에서 살 수 있었다. 사회운동을 했던 성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그는「말씀이 우리와 함께」등 종교서적을 읽고 ‘기초교회공동체’를 만들어 자발적 규율을 정해 실천했다.
그 영향으로 종교방에서 활개치던 조폭들의 태도도 달라져 황씨는 그들의 인생상담까지 들어주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보안과장은 공안사범이 종교집회 회장을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독방으로 돌아왔다.
---
[“독방을 벗어난 1년 동안 기쁘고 재미있게 보냈어요. 그런데 다시 독방에 오자 혼란이 왔고,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지요. 이 무렵 대전교도소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추가 징역’을 살더라도 내 억울함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씨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개신교 집회장을 점거, ‘국가보안법과 전향제도 철폐’를 요구하고 전단지를 뿌리며 농성을 벌였다. 당연히 기소 당해 법정에 설 것이고 그때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의도와는 달리 실패로 돌아갔다. 명지대생 강경대군 분신자살 사건이 터진 시기와 맞물려 그는 법정에 서는 대신 ‘징벌방’에서 두 달을 보내야 했다.
----
수갑이 채워지고 팔 다리가 꽁꽁 묶인 채 하루종일 지내야 하니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개처럼 핥아 먹어야 했다. 똑바로 누워서 잠잘 수도 없었다. 면회도, 책 반입도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하느님, 왜 제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치기만 하십니까.’ 구약의 욥처럼 처절한 울부짖음이 계속됐다. 잠자는 시간 외엔 기도만 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60일이 지나고 독방에 돌아왔을 땐 아예 절망도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가장 바닥까지 내려가서는 ‘하느님은 침묵이시다’ ‘하느님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하느님이 없다’는 뜻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로 상상해서 그려내는 그런 하느님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황씨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하느님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알 수 없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깨달음’이 왔다. ‘생명의 하느님’에 새롭게 눈뜬 것이다.
하루는 거미가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일이다. 풀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모기가 더 이상 해충이 아니고, 풀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지만 모두 자신과 같은 생명체였다. 황씨 자신의 친구였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런 뭇 생명들과 함께 숨쉬고 대화하다 보니 독방에 있는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감옥생활이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갇힌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진정 그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다 망가져 만성기관지염에 요통, 신경통,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몸도 풀을 먹고 가꾸고 돌보며 치료했다.
이렇게 ‘생명 중심 세계관’으로 관점이 달라지다 보니 ‘간첩’이라는 말만 나오면 느껴지던 모멸감이 사라졌다. 간첩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생명체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느냐가 더 관심사였다.
“모든 생명은 유일무이(소중)하고 서로 연결돼 있으며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를 이룹니다. 이것이 생명의 속성이죠. 생명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면 남을 짓밟고 싸울 수 없어요. 상대방이 다치면 결국 내가 다치는 것이니까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곧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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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인권 활동했던 내용과 생태공동체를 방문했던 내용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올해 중에 더 출간할 계획이다.
요즘 곳곳에 강연을 다니느라 바쁜 황씨는 최근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생태공동체운동센터’(02-2293-7719)를 마련했다.
*’간첩’에서 생태공동체 운동가로 변신한 황대권씨의 ‘나의 부활’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황대권씨는 한 평짜리 독방 안에서 ‘가톨릭’을 만났다.
대학 때 반독재 투쟁에 가담했던 황씨는 미국 유학시절 정치학도로서 이 문제를 체계화하는 공부를 하면서 사회정의 실현 문제로 고민하던 중 방학 때 귀국하는 길로 영문도 모르고 안기부(현 국정원)에 끌려갔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친구와 같이 있었다. 같이 토론했다” 는 등 온갖 이유를 붙여 ‘간첩’으로 몰린 황씨는 외부와 단절된 지하에서 60일간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고문, 허위자백, 번복을 거듭했다.
자신의 판단만이 옳고 자신의 의지로 계획을 세워 살아왔었기에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것이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의지와 달리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마저 믿을 수 없으니 내 삶을 주관하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있는 것일까.’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어느날 독방 벽에 벽지로 도배한 신문 글자가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꺾어가면서 정신없이 읽었다. 그것이 1986년 가톨릭과의 첫 만남이다.
‘가톨릭 신문’에 연재됐던 한국천주교 순교사화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고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유대철 베드로 소년 이야기는 고문에 굴복하려는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천주교 종교집회\'에 나가고 싶었으나 공안사범에다 미전향수여서 갈 수 없었다. 교도소측은 전향만 하면 집회에 보내주겠다고 전향을 강요했다. 황씨는 세례부터 받고 전향하겠다고 우겼다. 무신론에서 가톨릭으로 귀의하는 것이 그에겐 진짜 전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말대로 진짜 전향을 하고 자술서를 썼다. 하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단식 투쟁을 하고 밀서도 내보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간첩누명을 쓰고 고문에 시달린 그의 수기는 당시 막 창간한 평화신문 31호(1988년 12월 11일자)에 실렸었다.
황씨가 예상했던 자신의 구명운동은 빗나갔다. 세상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종교생활에 마음을 붙였다.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활동을 하고 성서모임도 만들어 공부했으며, 통신성서도 6년간 공부했다.
신자 재소자들의 신뢰를 받아 안동교도소 공소 회장을 맡으면서 독방을 벗어나 일반 신자 재소자와 같이 ‘종교방’에서 살 수 있었다. 사회운동을 했던 성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그는「말씀이 우리와 함께」등 종교서적을 읽고 ‘기초교회공동체’를 만들어 자발적 규율을 정해 실천했다.
그 영향으로 종교방에서 활개치던 조폭들의 태도도 달라져 황씨는 그들의 인생상담까지 들어주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보안과장은 공안사범이 종교집회 회장을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독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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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을 벗어난 1년 동안 기쁘고 재미있게 보냈어요. 그런데 다시 독방에 오자 혼란이 왔고,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지요. 이 무렵 대전교도소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추가 징역’을 살더라도 내 억울함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씨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개신교 집회장을 점거, ‘국가보안법과 전향제도 철폐’를 요구하고 전단지를 뿌리며 농성을 벌였다. 당연히 기소 당해 법정에 설 것이고 그때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의도와는 달리 실패로 돌아갔다. 명지대생 강경대군 분신자살 사건이 터진 시기와 맞물려 그는 법정에 서는 대신 ‘징벌방’에서 두 달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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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이 채워지고 팔 다리가 꽁꽁 묶인 채 하루종일 지내야 하니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개처럼 핥아 먹어야 했다. 똑바로 누워서 잠잘 수도 없었다. 면회도, 책 반입도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하느님, 왜 제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치기만 하십니까.’ 구약의 욥처럼 처절한 울부짖음이 계속됐다. 잠자는 시간 외엔 기도만 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60일이 지나고 독방에 돌아왔을 땐 아예 절망도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가장 바닥까지 내려가서는 ‘하느님은 침묵이시다’ ‘하느님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하느님이 없다’는 뜻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로 상상해서 그려내는 그런 하느님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황씨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하느님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알 수 없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깨달음’이 왔다. ‘생명의 하느님’에 새롭게 눈뜬 것이다.
하루는 거미가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일이다. 풀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모기가 더 이상 해충이 아니고, 풀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지만 모두 자신과 같은 생명체였다. 황씨 자신의 친구였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런 뭇 생명들과 함께 숨쉬고 대화하다 보니 독방에 있는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감옥생활이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갇힌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진정 그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다 망가져 만성기관지염에 요통, 신경통,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몸도 풀을 먹고 가꾸고 돌보며 치료했다.
이렇게 ‘생명 중심 세계관’으로 관점이 달라지다 보니 ‘간첩’이라는 말만 나오면 느껴지던 모멸감이 사라졌다. 간첩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생명체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느냐가 더 관심사였다.
“모든 생명은 유일무이(소중)하고 서로 연결돼 있으며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를 이룹니다. 이것이 생명의 속성이죠. 생명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면 남을 짓밟고 싸울 수 없어요. 상대방이 다치면 결국 내가 다치는 것이니까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곧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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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생태공동체 운동가 황대권씨 | 가톨릭평화신문 2003.04.20
https://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fid=1455&cat=&cid=191066&path=200304
황씨가 요즘 강연을 다니면서 강조하는 주제가 감옥에서 깨달은 ‘생명 세계관’이다.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농부가 되기 위해 출소 후 잠시 농사를 지었던 황씨는 농촌이 파괴되고, 도시가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생태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언젠가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갈 계획이다.
최근 마련한 ‘생태공동체운동센터’는 생태공동체에 대한 교육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으로 그가 꿈꾸는 생태공동체 실현을 위한 첫 단계다. 그는 안동교소도 시절, ‘점거 농성’으로 교도관들이 경위서를 써야 하는 등 누를 끼친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왜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울부짖기도 했지만 감옥에 보내 준 것도, 거기서 풀어준 것도, 이렇게 변화시켜 준 것도 모두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낍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부활대축일을 맞아 황씨가 밝히는 신앙고백이자 부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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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황대권/"철창 속 절망의 시간 야생초는 희망이었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209280012733987
입력 2002.09.28 00:00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1985년 어느날, 황대권(黃大權·47)씨는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미국에서 반정부 인사와 만나고 유학생들과 국내 정치 문제를 토론하기는 했지만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까지 받을 일은 아니었다. 언제 나갈 지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그에게 위안거리는 편지 쓰기와 야생초 가꾸기 단 두 가지 였다.
'야생초 편지'(도서출판 도솔 발행)는 그가 당시 바깥 사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야생초와 관련한 것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땅빈대 박주가리 수까치깨 괭이밥 등 감옥에서 가꾼 야생초의 관찰일기이자 야생초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사색일기이다.
행동의 자유가 거의 없는 감옥에서 그는 왜 야생초를 가꾸려 했고 어떻게 가꿀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단식농성도 하고 교도소측과 다툼도 많이 벌였지요. 그렇게 5년 정도를 보냈더니 건강이 너무 나빠졌습니다."
기관지염과 요통, 치통이 특히 괴로웠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는 그때 스스로 치료를 하기로 결심하고 그 방법으로 몸에 좋은 야생초를 섭취키로 한다. 야생초는 수감돼 있던 안동교도소 운동장과 하수구 부근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에 날려와 자라던 것들이다.
그는 야생초를 운동장 한 쪽에 옮겨 심었다. 교도소측이 제지했지만 "장기수인 내가 이 짓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2평 남짓한 화단을 만들었다. '사회참관'이란 이름으로 1년에 한 두차례 소풍을 가서도 산에 있는 야생초를 옮겨와 심었더니 화단에는 100종 가까운 야생초가 자라게 됐다.
그에게 야생초는 그냥 풀이 아니었다. "어린순을 달여 먹고 기관지염과 요통이 나았으니 '특효약'이었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니 귀중한 '옥중동지' 였습니다." 그는 야생초를 가꾸면서 일일이 맛도 보고 그림도 그리면서 이름과 특징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미대 진학을 권유받았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 책에는 그가 옥중에서 그린 야생초 수채화가 가득하다.
야생초를 가꾸면서 그는 서서히 생태주의자로 변모했다. "재소자의 운동화에 짓밟힌 야생초를 화단에 옮겨 되살리면서 생명의 가치를 배웠어요. 사람이나 풀이나 꼭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점에서 심지어 생명의 연대감까지 느꼈습니다."
1998년 13년 2개월의 영어 생활에서 풀려난 뒤 전남 영광으로 달려가 농사를 지은 것이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주선으로 영국 임페리얼대학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감옥에서 만난 야생초 때문이다. 그는 세계 공동체 탐방기인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를 다른 저자와 공동으로 내고 '가비오따스' 등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제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를 꿈꾸고 있다. 자본주의의 소비문명이 끝나면 생태주의사회가 도래하고 그때는 농업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전망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농약을 잔뜩 뿌리고 다른 풀을 죽여가며 농사를 지어야 할까.
"아닙니다. 야생초가 쓸 데 없이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 자연이, 그 땅이 필요해서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야생초를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야생초도 살고 인간도 사는 그런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 저자가 꼽는 야생초3
"이 나라에서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쇠비름 참비름 명아주를 들겠다. 이땅에 가장 흔할 뿐 아니라 모두가 식용으로, 또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야생초 편지'에는 100종 가까운 야생초가 등장하지만 저자는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3종에 특히 애정을 나타낸다.
▶쇠비름
말 이빨처럼 생겼다 해서 마치현, 오래 먹으면 장수한다고 해 장명채(長命菜)라고 부른다. 키는 한뼘도 안되지만 땅바닥에 붙어 옆으로 자란다. 종창 부스럼 이질 중풍 고환염 요도증 고열 등에 효과가 있다. 잎은 푸른색, 줄기는 빨간색, 꽃은 노란색, 뿌리는 하얀색, 씨는 검은 색이어서 오행초(五行草)라고도 부른다. 다섯 부분은 각각 간 심장 비장 폐 신장에 좋다. 여름에 뜯어 말린 뒤 겨울에 나물로 해먹으면 맛있다고.
▶참비름
시금치와 맛이 비슷하다. 잘 자라고 번식력도 대단하다. 식용으로 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좋아서 달인 물은 이질과 안질에, 씨는 이뇨 지사 등에 효과가 있다. 뱀 벌레 물린 상처에는 잎을 찧어 붙이고 음부가 냉하면 뿌리를 찧어 붙이면 좋다고.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쉽게 채취할 수 있는데 맛이 담백하고 뒤끝이 깨끗하다. 30㎝ 안팎의 키지만 토질만 좋으면 1m까지 큰다.
▶명아주
시금치 참비름과 맛이 비슷하며 전체적으로는 순한 맛. 벌레 물린 자리에 이파리를 찧어 붙이면 가려움이 사라지고 가라앉는다. 키가 30㎝ 정도지만 토질과 기후만 좋으면 2m도 넘게 자란다. 저자는 특히 명아주 가운데 굵은 줄기로 만든 지팡이에 찬사를 보낸다. 짚고 다니면 신경통과 중풍에 효험이 있으며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워 근력이 약한 노인들의 지팡이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박광희기자
위로부터 쇠비름 참비름 명아주. 야생초 그림은 저자가 감옥에서 수채물감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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