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9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 교수신문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 교수신문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대담: 박경태 서울대 승인 2001.08.29 00:00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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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0:57:19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참배로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일본. 그 일본의 우경화를 경고해왔던 역사학자 야스마루 요시오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일본사상사)를 박규태 서울대 강사가 만났다. 야스마루 교수는 지난 17일부터 이틀동안 한일종교연구포럼 창립기념으로 열린 국제학술대회 참가차 방한했다. 살아있는 '일본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그의, 시대에 대한 통찰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일시 : 2001년 8월 20일

●장소 : 인천공항 조선호텔 커피숍

●대담 : 박규태 서울대 강사(종교학)

박규태(이하 '박') : 근래 한국에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가 큰 화제다.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한가.

야스마루 요시오(이하 '야스마루') : 전후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반세기에 걸쳐 일본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 생긴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즉 90년대에 들어서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확실하게 등장하면서,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운동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일본 사회는 새로운 단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皇國史觀을 언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황국사관에 더하여 새로운 내셔널리즘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박 : 요컨대 역사 교과서 문제의 중심에는 내셔널리즘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에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그런 요구는 어디까지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가?

야스마루 : 한국, 중국은 역사적 사실 왜곡에 대한 수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나는 그런 요구 대부분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일본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역사적 사실 왜곡을 지적하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내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의 수정 요구는 각기 자기 나라에 관련된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일본 자국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도 적지 않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이 자국의 이해만을 문제로 삼는 한, 일본 역사 교과서의 근본적인 수정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 수정을 위해서는 頑强한 내셔널리즘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의 자의적 해석 심각




박 : 한국이나 중국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왜곡 뿐만이 아니라, 일본 자국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

야스마루 : 새 교과서를 펼치면 거기에 일본 미술품인 繩文式 토기의 사진이 있다. 거기에는 "승문식 토기는 예술적 성격이 높다, 세계 미술사 속에서도 특별히 중요하다"는 설명이 있다. 이런 것은 自己愛적인 내셔널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승문식 토기에는 문명화된 근대인들이 잃어버린 예술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세계 곳곳에 있는 것이다. 또한, 仁德 天皇陵과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淸의 始皇帝의 무덤을 비교하면서 인덕릉의 저변부가 가장 크다고 하고 있다. 실제 저변부가 가장 크다고 하더라도, 왜 크기를 비교할 때 높이, 건축방법, 소재를 포함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실증주의적으로는 설사 옳을 지 몰라도, 인식론적으로는 올바르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독선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역사의 이야기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요즘 역사란 객관적인 사실이라기 보다는 각각 국민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이다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역사인식론의 변화와 함께 일본에서는 역사 기술에 대한 恣意性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인식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비판하거나 상대화하는 것이 방법론상 결여되어 있다.

박 : 한국인이 우려하고 있는 교과서 내용으로는 위안부 문제나 침략사실에 대한 왜곡 외에도 고대사에 있어 '가야'를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기술도 있다. 어떻게 보는가?

야스마루 : 그것은 '任那 일본부'에 관련된 문제이다. 이 문제는 일본서기의 기술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다른 문헌을 통해 검증할 수 없다. 일본 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 당시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임나 일본부'의 존재는 부정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고대 문헌을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알맞게 해석하는 자의성이 작용하고 있다.




성장주의 붕괴가 불러온 '이데올로기'




박 :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야스마루 : 일본 지식인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에 내셔널리스틱한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예를들어, 사회의식 조사에 의하면, 80% 이상의 사람들이 현재 천황제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신사나 전통문화에 대한 敬意를 갖는 게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까지 많은 지식인들은 우경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싸우려고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편 이렇게만 봐서는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전후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사상과 학문을 키워 왔다. 즉, 기본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전후 사회사상이나 사회과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그런 동향이 현재 사회 전체의 '내셔널리스틱한' 분위기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박 : 그러면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우경화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인가?

야스마루 :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1970년대 중반부터 보수파의 입장이 거세어지고 있다. 보수파의 입장이란, 전정 체험에 대한 반성보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중요시하고, 지구화의 추세 속에서 일본의 국가적 이익을 추구하고 그런 방향으로 정책이나 사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상과 그것을 수용하는 일본인들의 현상 긍정적인 의식을 섞어가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는 일종의 보수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런 방향성은 여전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 동향의 배경으로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즉 1990년대에는 세가지의 붕괴가 있었다. 하나는 냉전체제의 붕괴이다. 또 하나는 냉전체제 틀 속에서 이어져 온 자민당의 55년에 걸친 지배 체제의 붕괴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국제, 국내 관계 아래에서 경제 성장의 붕괴이다. 요컨대, 냉전체제 아래에서의 안보 체제, 국내 정치에서의 55년 체제, 경제적인 고도 성장, 이 3개가 함께하면서 일본의 성장을 이뤄 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3개 모두가 붕괴될 정도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번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 역시 이런 붕괴의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박 : 일본사회는 패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소위 '이상의 시대'였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민주주의라든가 경제성장과 같은 이상이 존재했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것이 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허구의 시대'로 진입했고 그런 허구의 시대 정점에서 1995년 옴진리교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는 인식도 있다고 알고 있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 앞으로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는 불안감이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듯 싶다. 교과서 문제라든가 야스쿠니 문제 등 일련의 내셔널리스틱한 움직임은 일본인들의 미래에 대한 이런 불안감을 노출시키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야스마루 :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70년대는 지식인 사이의 담론에서 '이상주의'라는 것이 힘을 지니고 있던 시대였다. 그 이상은 민주주의나 경제성장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금씩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의 비중은 희미해졌다. 1973년도에 일어난 오일쇼크때도 다른 나라들이 경제성장이 멈춘 데 비해 일본 경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설명하는 원리로서 '일본적 경영론'이 생겼다. 일본인의 전통적 가치관이 경제성장을 지탱하고 있고, 일본의 경영은 서구의 자본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유력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일본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적 경영은 붕괴의 위기에 서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지금 일본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고이즈미 수상이 말하는 개혁이란 규제 완화인데, 요컨대 정부 규모를 작게 하면서 자유 경쟁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처나 레이건의 정책을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진지구적 자본주의와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박 : 현재 한국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한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통해서 일본의 국국주의가 부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스마루 : 먼저 '군국주의'라는 용어의 정의를 확실히 해야 한다. 나는 이제는 일본에서도 서구에서도 국민 모두가 전쟁에 참가하는 그런 성질의 군국주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사력을 약자에게 행사하는 군국주의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본다. 최근의 미국의 군사 개입이 바로 그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서 그러한 개입이 요구되면 일본도 거기 참여하는, 그런 군국주의의 방향으로 급속히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박 :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야스마루 :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적인 지적이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관련성이 깊은 특수한 신사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강조한다는 것은 전전의 체제 또는 전쟁 체험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저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교적 나이가 든 사람들이 저항감을 느끼는 데 반해,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그러한 저항감이 없고, 더구나 소수이기는 하지만 전쟁에서 죽는 것은 멋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아마도 코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고마니즘(傲慢ISM) 선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어쨌든 야스쿠니 문제를 둘러싼 국민 의식의 분열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쟁 체험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박 :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인에게 패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것인가?

야스마루 : 지금 말한 그런 의미를 신사에 부여하려고 하는 정치적 조작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일본인이 死者를 기억하거나 모시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고이즈미씨는 자주 '감사'라는 말을 쓰는데, 사자의 희생 덕분에 현재 일본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아주 애매한데, 고이즈미씨는 전사자와 현재 일본인의 삶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말하듯이 전사자를 둘러싼 일본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회유하려고 하고 있다.

박 : 선생님은 최근 아사히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종교시설이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생각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정치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야스마루 : 명치유신 직후에 만들어진 야스쿠니 신사는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국내와 국외에서의 모든 전사자들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음에, 사자를 모시는 방식이 불교에서 신도(神道)로 바뀌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명치유신이 불교 세력을 억압하고 신사 신도를 강조함으로써 성립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국가와 신사 신도 사이의 결속력이 강해졌다. 일본 사회가 지배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신도 하에 놓여있는 양상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군사적인 사자들을 신도의 양식으로 모시는 새로운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원래 일본에는 내 편의 전사자들만이 아니라 적들의 전사자들도 모시는 소위 어령(御靈)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영혼을 모시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왜냐하면 적의 사자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모시지 않으면 재액이 닥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통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사상적인 차원에서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 사자들만을 제사지낼 뿐이라서, 타자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박 : 교과서 문제, 신사 참배, 우경화 등등의 흐름은 일본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일본, 강력한‘동조화'의 천황제 사회




야스마루 : 현재 일본 사회에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큰 흐름에서 보면, 내셔널한 의식은 일종의 분위기로서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것으로서 교육제도나 학교현장이 전체적으로 내셔널한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 시민사회 운동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고 본다. 과연, 내셔널한 틀을 지닌 정체성이 성립될 지는 의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후의 지식인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사상을 키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현재 지배층의 내셔널한 정체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당분간은 이런 문화적 불안정성이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옴 진리교 사건과 같은 돌발적인 대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지도 모른다.

박 : 천황제에 대해 묻고 싶다. 천황제는 일본 사회의 정체성을 통합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능도 하고 있는 것인가?

야스마루 : 전전의 천황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전후의 천황제에 대해서는 쉽사리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천황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80%를 넘는다. 하지만, 그것은 천황제를 지지하느냐는 식으로 질문 받았을 때의 얘기이고, 일상적으로 언제나 천황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천황을 숭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이다.

천황제가 종교냐 아니냐는 것은 곤란한 질문이다. 소화 천황이 죽고 현재 천황으로 바뀔 때, 그 당시 '자숙(自肅)'이라는 것이 행해졌다. 그것은 도시나 마을에서 축제를 중지하거나 결혼식을 너무 화려하게 안 하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일본 사회는 상당히 강력한 同調化의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현재 일본 사회는 천황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숙'을 한 사람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천황제에 대한 숭배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만약 한국인이 천황제가 일본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경우 이데올로기적 통합이라는 것의 뜻을 잘 생각하여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박 : 선생님은 금번 한일종교연구포럼에 참가하시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끝으로, 이번 한일종교연구 포럼에 대한 소감과 한일 관계 나아가 한일 지식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그리고 한국 지식인들에 대한 주문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더불어 한일 지식인 사이의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요시오 : 이번 포럼은 10년 전에 '한일종교연구자 교류심포지움'이라는 명칭으로 처음엔 작은 규모로 시작된 것이었다. 사람들의 우연적인 만남이 쌓이면서 오늘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고, 올해부터 '한일종교연구포럼'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이번 포럼에서 교과서 문제나 신사 참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 내셔널리즘에 대한 발표도 있었기 때문에, 신사 참배 문제도 시야에 들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번 포럼은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그 배경에 있는 여러 문제들을 연구해 가는 조직으로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알고 있겠지만, 올해 들어서 한일간의 많은 교류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 참가한 사람들 중 복잡한 한일 관계 때문에 이 포럼도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우리 사이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고, 한일 지식인 사이의 코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또, 이 포럼에서 중심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다. 서로 일본, 혹은 한국에 유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인들 사이의 교류가 깊이 있게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한일 연구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이 많이 생기고 있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일본 연구자들이 꽤 되는데, 교과서 문제를 통해 서로 교류하려는 의지가 생기고, 한편 좋은 자극도 되는 셈이다. 이것은 일본사회 전체에서 보면 작은 일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것은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나에게 유학 온 학생들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런 이해에 대한 노력은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그런 노력이 동아시아 미래에 대해 어떤 공헌을 할 지는 모르지만, 서로 교류가 있는 한 완강한 내셔널리즘에 대한 制約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 쪽에서 보면 일본에 대해 납득이 안 가는 면이 많겠지만, 앞으로도 서로 같이 협력해 나가고 싶다. 요즘처럼 한일 관계가 복잡한 시기일수록, 민간 차원이나 연구자 차원에서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번역 최진석 연세대 국문과 박사과정

진행 정리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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