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0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2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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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o Yi 15 Aug  ·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2회 (중)-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가의 미래는…’
지난 '상'편에서는 약 900명의 이치키 부대가 비행장 탈환을 위해 야간 기습공격을 실시했으나, 미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앞세운 철통 방어에 막혀 일루강 어구에서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한 것까지 살펴보았다. 이 전투를 ‘일루강 도하전’ 이라 한다. 이치키 부대 괴멸의 이유는 도쿄의 대본영이 미군 잔류 병사의 숫자가 1만 명도 넘는 것을 2천 명 정도로 잘 못 추정한 판단 미스의 결과였다. 그다음부터를 이어가도록 한다.
애초에 일본군이 과달카날섬에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그때 약 2,200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28,000명의 설영대가 밤낮없는 가혹한 노동으로 활주로를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 그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비행장이 완성 직전에 미 해병에게 빼앗긴 것이다.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분했을까 짐작이 된다.
일본으로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인한 사기 저하는 물론, 더 이상 지상전에서만큼은 패배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과 하와이와 호주를 잇는 루트를 차단하면서 제공권을 제압한다는 큰 의의가 있던 전투의 시작이었다.
그런 만큼 비행장을 차지한 미군은 제공권 장악을 하는데 유리한 형국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며, 반대로 일본군은 비행장 탈환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하늘과 바다 지상을 가리지 않고 전개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물불 가리지 않고 총력전을 펼친다. 이는 바꿔말하면 사무라이 병사들이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로 무장하고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치키 지대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한 복수전이 시작되고
이치키 지대(支隊)의 참패로 불리해진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대본영은 새로운 부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정글전에 정통하단 평판의 가와구치 키요다케(川口 清健) 소장(少将)이 지휘하는 가와구치 지대를 투입하게 된다.
이리하여 병력과 물품을 과달카날섬에 수송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군 기동대의 방해 활동이 시작되자, 이를 계기로 연합함대 사령부는 항공모함 등의 함대 수 척을 보내 섬 해역의 제해권 확보를 통한 안전한 수송 루트 구축을 꾀하려 한다.
이로 인해 미일 기동대가 과달카날섬 해역에서 또다시 치열한 격전을 치루게 되는데 이를 ‘제2의 솔로몬 해전’ 이라 한다. 하여간 이 해전으로 미일 양국 해군은 서로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입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주는 난타전이 되었다.
마치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 데이트 중에 산 로또가 당첨되자 그 분배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결국은 치고받고 머리 잡아채며 싸우다 로또까지 찢어 버리고 둘 사이도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만 주고받으며 헤어진 형국이다. 잉! 뭔 비유가...
그러나 이 해전을 계기로 미군은 비행장을 활용한 제공권 장악에 유리한 형세를 차지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일본은 병력과 물자의 수송이 곤란에 처하게 된다. 그때까지 물자를 수송하던 수송선 대신 미군기의 공격에 대비한 구축함을 이용한 수송을 시작한다. 당연히 수송선에 비해 구축함을 통한 병력과 물자 수송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고, 이때부터 일본군의 물자는 그렇지 않아도 미군보다 압도적으로 빈약한 상태에서 더 악화되게 된다.
이 무렵 미군기의 공격을 받아 해안에서 침몰한 수송선의 잔해가 지금도 과달카날섬의 인근 해역 물속에서 잠들고 있음을 다큐멘터리는 확인 시켜준다. 친절한 금자씨가 아니라 친절한 NHK 다. 별 의미 없는 부분에서 과잉 친절을 발휘하는 이네들의 서비스 정신이다.
승리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군 특유의 무대포 돌격 정신이 말아먹다
가와구치 소장이 지휘하는 부대는 ‘양동 작전’ 과 사령부 기습 공격이라는 비책을 들고 나선다. 좌우로 병력을 나누어 공격을 퍼붓는 양동작전을 펼쳐, 미군이 그 방어에 집중하는 틈을 타서 다른 정예 기습부대가 직접 미군사령부를 집중 타격하여 함락하는 전술이었다. 그러면 지휘체계를 잃은 미군이 좌충우돌하는 틈을 타 비행장을 탈환한다는 작전이었다.
후일 역사가들은 만일 이 작전이 성공했다면 미군은 지휘체계를 잃게 되므로, 사기 저하는 물론 과달카날섬 전투의 모든 형국이 바뀌었을 것이라 회상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 그 자체이고, 이는 싸움에 진 개들이 억울하다는 듯이 크게 허공에 대고 짖어대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하찮은 일이다.
약 6천 명의 가와구치 지대는 9월 13일 야밤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한다.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적잖이 당황한 미 해병은 큰 혼란에 빠진다. 양쪽에서 몰려오는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에 겁도 났을 것이다. 일본군의 전투력에 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 소총에 착검하고 기관총 세례를 받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반자이를 외치며 달려드는 그 무모함에 치를 떨고 당황했다고 참천 용사는 회상한다.
작년에 공개된 전투일지 비밀 파일에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을 보면 가와구치 지대의 양동 작전에 미군이 적잖이 당황하며 궁지에 몰렸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와구치 지대는 공격 목표였던 미군 사령부 점령은 끝내 이루지 못한다. 결국 미 해병의 철통같은 방위라인을 뚫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양동작전과 전면 기습공격은 사령부가 목전에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으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실패로 끝난다. 이 전투에서 가와구치 부대의 사망자는 633명으로 이치키 지대의 공격에 비하면 경미하였지만, 이 기습공격에 실패하고 퇴각한 후부터 일본군의 치명적인 비극은 시작된다.
이치키 지대에 이어 가와구치 지대의 기습공격도 실패한 이유
우선 이 양동 작전에서 승리하지 못한 요인을 보자면, 첫째로 화력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미 해병은 수륙양용차를 비롯해 계속해서 신형 무기와 중화기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진지와 철조망 팬스를 구축하는 등 방어망에 만전을 기하며 일본군의 주특기인 기습공격에 대비한다.
이에 비해 일본군의 장비는 미비한 수준이었다. 이는 해상과 제공권을 미군에게 빼앗기면서 제대로 보급 수송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지만, 애초 일본군의 무기는 러일전쟁 때의 수준이었다고도 하니 시작부터 화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은 셈이다.
또한 이런 병력과 물자 수송단계에서 후타미 아키사부로(二見秋三郎) 참모장이 해군이 수송선을 구축함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격노하며, 수송선으로 바꿔보낼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고 할 정도로 해상 수송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즉 제공권을 미군에게 빼앗긴 결과다. 이처럼 대본영 그리고 연합함대 사령부와 최전선 부대와의 의사소통과 시의적절한 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엇박자가 나고 있음이 실패의 요인이 된다. 지금 코로나 19 대책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견해와 대응이 엇박자를 내어 국민을 혼란하게 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또한 미군은 정보전에서도 일본군을 압도했다. 미군은 최신 장비를 활용하여 음향으로 일본군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고, 현지 주민을 고용하여 스파이로 활용하며 일본군의 생생한 정보를 수집하며 방어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군의 ‘이것만 읽으면 전쟁에서 이긴다’ 의 정신무장론
이에 비해 일본군의 전술은 잘나가던 시절의 전투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우둔함을 보인다. 즉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과거 연전연승했던 추억에만 집착하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술과 화력의 업그레이드에 소홀했다. 일본이 잘나가던 80년대의 영화만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이노베이션에 게을렀던 헤이세이 일본도 양상은 비슷하다.
그래도 어쨌든 과거의 큰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당시 잘 먹혔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일본군은 최신 중화기로 무장한 미 해병에 맞서면서 소총에 착검으로 반자이 어택 같은 무대포 전투 방식을 고집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이는 '상'편에서도 언급한 ‘정신론’ 이 일본군 내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린 ‘정신 무장론’ 이 그 배경에 있다. 실제로 대본영이 1941년 책자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배포한 ‘이것만 읽으면 전쟁에 이긴다’ 라는 황당무계한 정신론이 일본군의 무대포 정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상'편에서도 언급한 그 정신론이다. 즉 서양인들이 물질문명에서는 앞섰지만 동양인은 정신문명에서 앞선다. 미군은 무기와 보급 면에서 앞서지만 정신력이 나약하니 그 점을 집중 공략한다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책자인데 디테일한 기술을 보면 '미군의 상하 정신적 단결은 완전히 제로다'. '상대는 중국 병사 이하의 겁쟁이로 전차도 비행기도 고철 덩어리를 긁어모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기는 건 뻔한데 어떻게 멋지게 이기느냐가 문제다'. '미국의 자본 물질주의에 물들은 나약한 병사들이므로 잠수함 같은 좁은 곳에서 적응을 못 한다'. Etc…
이렇게 전쟁 상대국인 미국에 대한 무지가 한심함을 초월한다. 일본군은 이런 황당한 책자 내용을 외워가며 정신무장을 했을 것이다. 과거 한국군도 '군인복무규율'이나 지휘관 이름 등을 달달 외워야 했었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
당시 일개 사병 군바리이면서도 내가 왜 이런 개 같은 것들을 줄줄이 외워야 하는지 기분이 무척 엿 같았던 걸 기억한다. 하긴 나는 국민교육헌장도 달달 외웠던 세대이니 모두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런 전전의 일본군의 잔재가 당시 80년대 후반의 한국 군대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아무튼 이런 황당무계한 책자를 금과옥조로 외워가며 일본군은 전의를 불태우고 미군을 겁쟁이, 물질주의에 타락한 게으름뱅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전쟁 이전에 이미 일본은 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고전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전쟁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수 불가결할 텐데 말이다. 설사 화력과 군수 물량에서 나는 차이를 극복하고자 이런 정신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본영을 비롯한 수뇌부가 이런 미국과의 엄연한 차이를 알고 있으면서 이를 은폐하고 병사들의 무모한 희생을 강요하는 정신론에 입각한 반자이 어택을 강요하며 전쟁을 치렀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공개를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정부의 방침과 시책에 따르라고 하는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는가?
대본영의 지시와 작전에 의문을 품더라도 이를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따라야 했던 병사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 물론 상명하달과 무조건 명령 복종 같은 엄한 규율이 요구되는 군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따라야 할 만큼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경로 의존(path dependency)’에 함몰된 일본군
이런 일본군의 구태의연한 전투 형태는,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뜻하는 ‘경로 의존성 이론’ 에 수렴된다. 가와구치 지대의 전술은 기발했을지 모르나, 이는 앞에서 말한 대로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일본군 특유의 인습화된 아비투스가 작열하여 실패로 이어진다.
가와구치 부대는 정글을 하루 10킬로씩 행군하며 비행장 탈환에 나섰다. 그것도 우기가 한창인 시기에 완전군장에 포탄까지 병사들이 짊어지고 식량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의 강행군이다.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다. 그러나 미군 사령부를 공략하기 위해 정글 강행군을 해온 병사들에게 사령부가 육안에 들어오자마자 착검에 돌격 앞으로를 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반자이 어텍이다.
이를 상대하는 미군 입장에서는 여름날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 전투에 참여한 미군 노병은 무모한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에 당황했고, 전투 후에는 참혹하게 죽어간 일본군 병사의 참상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또한 양동작전의 핵인 양쪽의 공격부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집중 공격을 가해야 효과가 기대되는 상황이었으나 서로 사인이 맞지 않은 듯 시차가 나서 공격의 효과가 반감해버렸다고 한다. 또다시 중요한 순간에 엇박자가 난 것이다. 이런 자그마한 요소들이 합쳐져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을 겪는다.
일본군의 헬게이트가 열리는…
아무튼 미군사령부 점령과 비행장 탈환에 실패한 가와구치 지대 병사들은 퇴각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일본군 병사들은 지옥을 보게 된다. 즉 해상과 공중에서 제공권과 제해권이 미군 측에 넘어감에 따라 일본군의 수송 활동이 점점 곤란하게 되고 섬에 주류하던 병사들은 고립되게 된다. 헬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미군과 길고 긴 정글전을 펼치면서 기아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일본군들의 반자이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마 기록영화나 다큐에 자주 등장하는 웃통을 벗어젖힌 채 비쩍 말라 피골이 상접한 병사가 모자 하나 달랑 쓰고 소총에는 착검을 한 상태로 괴성을 지르며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죽음의 구렁텅이로 뛰어드는 모습을.
그 후에도 일본군은 간헐적으로 비행장 탈환을 위한 시도를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 되어 간다. 병사들은 점차 보급품이 끊기면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게 되고 정글에서 서바이벌하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버티게 된다. 


To be continued…
덧)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진다. 해서 애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상중하 3회로 나눈다. 다음 마지막에서는 당시의 일본군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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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길어도 의미있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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