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Mo Yi
1tSn3p Aoucngsguistsosredgtlm ·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2회 (상)-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가의 미래는…’
어제 느닷없이 삘(필) 받은 게 있어 단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포스팅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다. 해서 심기일전 제대로 시리즈로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어떤 주제를 선정할까 고심하던 차에 마침 NHK TV에서 적절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다. 태평양 전쟁 전투 중 일본군 패전의 과정과 인과를 그린 다큐였다.
그 방송을 보면서 지금 아베 정권의 코로나 19에 대한 3무(무능, 무대책, 무책임)과 태평양 전쟁 당시의 대본영과 어쩌면 이리도 공통점이 많은지 내심 놀랄 정도였다.
지금부터 78년 전에 있었던 일이 다시 똑같이 반복되는 건 아니지만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국가의 대처 능력이나 지도자의 리더십과 부처 이기주의와 책임 회피,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이역만리 정글에서 외롭게 공포에 떨다 굶어 죽어가던 병사들의 모습이 시대와 형태만 바뀐 채 재연되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면 오버하는 것일까?
아무튼 NHK가 예전보다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 제작 능력은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난 수신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지난번에 몇 달 치 밀린 수신료 15,000엔을 냈던바 떳떳하게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토대로 현재의 일본 상황에 맞게 각색을 하여 어제에 이은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2편의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과달카날 전투 (Battle of Guadalcanal)
‘과달카날 전투’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아마도 전쟁사나 밀리터리 덕후가 아닌 사람에겐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기에 간단히 소개부터 한다.
과달카날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諸島)에 있는 과달카날섬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의 일련의 지상전과 해전(1942. 8~1943. 2)을 가르킨다. 일본군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모두 2만 4,000명의 전사자를 낸 반면 미군은 1,600명이 전사하고, 4,200명이 부상당했으며, 수천 명이 말라리아와 열대병으로 죽었다.
여러 번의 해전으로 일본군은 전함 2척, 순양함 4척, 경항공모함 1척, 구축함 11척, 잠수함 6척을 잃었으며, 미군은 순양함 8척, 중항공모함 2척, 구축함 14척 등 양측에서 각각 군함 24척씩을 잃었다(다음 백과).
위의 전황 기록보다는 일본이 1941.12.7일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미국이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래, 미드웨이 해전과 함께 태평양 전쟁에 있어 공수의 전환점이 된 의미 있는 전투였다는 사실이 보다 중요하다.
약 반년간에 걸쳐 미군과 일본군이 비행장을 둘러싸고 육상과 해상에서 벌인 치열한 전투였다. 그러나 처음 전황은 일본군에게 유리했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일본군의 대패로 막을 내리면서 2만 명이 넘는 일본군의 사망자를 낸 전투였는데, 그 패배의 원인이 작금의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과 당시의 대본영과 겹치어 보인다.
이치키 지대(支隊:본대에서 나누어져 별도로 행동하는 부대)의 전멸
1942년 8월 18일 야심을 틈타 섬에 상륙한 이치키 키요나오(一木 清直) 대좌(대령) 이 지휘하는 이치키 지대가 미해병대에게 빼앗긴 비행장을 탈취하기 위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이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한 미드 ‘The Pacific’ part one 에 야간 전투신이 리얼하게 나온다. 참고로 밀리터리 미드의 최고봉으로 난 ‘Band of Brothers’ 와 ‘The Pacific’ 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바란다. 명작이다. 리얼하다. 그리고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아무튼 일본군의 주특기인 기습공격 그것도 야간에 공격을 감행했으나 이치키 지대 916명 중 777명이 사망하는 대참패를 기록한다. 이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이치키 대좌는 실전 경험 풍부하고 유능한 지휘관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진지탈환을 목표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했음에도 어째서 이런 대참패의 결과를 초래했을까? 이치키 대좌는 후일 너무 많은 부하를 잃은 죄책감과 자책감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의 고질적인 조직의 병폐: 육군과 해군의 대립과 갈등
그럼 이치키 지대가 전멸하기 전으로 잠깐 타임워프해보자. 일본이 진주만 공격 이후 아시아지역에서 연전연승하며 전선을 확대하던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하게 된다. 그 후 일본은 하와이와 호주를 잇는 라인에 위치한 과달카날섬에 비행장을 설치하여 제공권을 장악하며 이 루트를 차단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일본군이 상륙하여 비행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런데 활주로가 완성 직전인 1942년 8월 7일 미해병대가 비행장을 탈취하기 위해 섬에 상륙하고 방심하고 있던 일본은 미해병대의 압도적인 전력에 허무하게 패배하게 되고 비행장을 빼앗기고 많은 병사가 포로가 된다.
물론 이 소식은 바로 일본 도쿄의 대본영에 보고가 된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께서 대노하며 당장 이를 다시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짠다. 이때 일본은 육군과 해군이 서로 견제하며 공적을 올리고자 하면서도 육해군의 공동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당연히 전략적 요충지인 비행장의 재탈환이 급선무가 된다. 이를 위해 연합함대가 우선 해상공격으로 미 해군을 격파하는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연합함대의 지휘는 미카와 군이치(三川 軍一) 해군 중장이 맡는다. 미카와는 야간공격에 탁월한 재능을 갖는 맹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미카와는 야간 기습공격으로 섬 해안에 정박해 있던 미군 함정 4척을 침몰시키며 일본군은 피해가 제로인 대승을 거둔다. 하여간 일본군의 기습공격은 세게 탑클래스인가 보다. 이를 ‘제1차 솔로몬해전’ 이라고 부른다.
일본 대본영에서는 당근 승리에 도취하게 되고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언론은 황군의 승리를 1면 톱으로 보도하게 되고, 일본 국내 역시 황군의 승리에 축제 분위기가 되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이는 일본군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음을 당시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승리에 도취한 판단미스가 낳은 참패
일본 연합함대의 기습공격에 패배한 미 해군은 섬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자 미 해병은 섬에 고립된다. 미 해군의 철수 소식을 접한 대본영은 공세를 가하려면 이때라며 이번에는 육군의 지상전 공격에 대한 작전을 세운다. 해군이 선방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니 육군이라고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서 승전보를 천황폐하에게 보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미 해군이 철수를 했다면 남아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대해 해군의 한 참모는 섬에 남은 미 해병의 숫자는 적어도 1개 사단 즉 15,000명은 된다고 보고를 한다. 실제로는 10,900명이 남아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거의 정확하게 맞춘 보고였다.
그러나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 거둔 승리에 취해있는 대본영은 정찰기로부터 미 해군이 철수했다는 보고를 토대로 철수하는 배에 많은 병사들이 승선하여 철수하였을 것이다. 미군은 겁쟁이라서 한번 크게 혼난지라 꼬리를 감추고 도망갔음이 틀림없다는 식의 정신승리에 가득 찬 대본영 지휘관들은 해군 참모의 보고를 묵살하고 대략 2,000명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하게 된다.
또한 냉정 침착한 전황 분석가로 알려진 최전선의 제17군 참모장인 후타미 아키사부로(二見秋三郎) 소장도 적어도 미 해병이 7,8천 명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타미가 이런 주장을 하며 좀 더 신중하게 적군의 정세를 파악한 후 공격을 해야 한다고 하자, 다른 부하 참모들이 주저하다가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으며 황군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연전연승할 수 있다며 맹렬히 반대한다.
결국 해군 참모와 후타미 참모장의 신중론은 조직의 ‘동조압력’에 의해 힘을 잃게 되는데, 대본영 육군 측 또한 해군에게 빼앗긴 승전보에 초조해진 가운데 해군의 재촉에 못 이겨 당초 예상의 2,000명으로 추정한 작전을 세워 진격 사인을 내게 된다. 그것이 이치키 지대의 약 900명에 의한 야간 기습공격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 해병의 병사는 10,900명이 주둔하고 있었으니, 병력에서만도 10배 이상의 차이와 무기를 비롯한 화기에서도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이치키 지대는 전멸을 하고 마는 것이다. 미드 ‘The Pacific’ 의 part one 에서 야간에 치른 격전 후에 날이 밝아 해변가에 널부러진 일본군의 전사자를 확인하는 신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치키 지대 병사들이 되겠다.
그럼 여기까지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현재 상황과 연계시키면서 정리해보자. 우선 조직의 대립과 충돌이다. 대본영은 육군과 해군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둘의 관계는 다테마에는 협업과 공동작전 수행이지만, 사실은 서로가 경쟁자로 의식하며 전쟁 공적을 상대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혼네가 작용한다.
이는 현대판으로 말하자면 ‘부처 이기주의’ 의 전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 대본영의 이런 패착이 현재에도 일본 관료제의 ‘성청 할거주의’ 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국익’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성청의 이익’ 이 우선된다는 ‘省益あって国益なし’(부처의 이익은 있으나 국익은 없다) 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는 ‘동조압력’ 이다. 요즘 코로나 사태를 맞아 우왕좌왕하며 뒷북만 치는 아베 정권의 대응을 두고 물론 비판이 많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제대로 힘을 얻지 못하고 파급력이 약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전체적인 여론(공기)에 밀려나기 때문이다.
즉 ‘정부 하는 게 미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뭔가 하는 것 같으니 믿고 따르는 게 좋다. 괜히 나서서 사태를 더 크게 만들지 말아라’ 라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팽배하게 되고, 이에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이지메나 노골적인 해코지 등의 사회적 제재가 따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다수의 의견과 흐름(공기)에 묻혀가는 것이 일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동조압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미 해병의 잔여 병력 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 해군 참모나 후타미 소장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 뿐, 전체적인 대세의 의견이 아니었기에 묵살되어 버린 것이고, 이는 곧 이치키 지대의 기습공격이 허무하게도 전멸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정신승리’ 에 유난히 집착하는 점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퇴폐에 찌든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미군에 비해 천황의 군대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강인한 군대이다. 서양인들이 물질문명에서는 앞섰지만 동양인은 정신문명에서 앞선다. 미군은 무기와 보급 면에서 앞서지만 정신력이 나약하니 그 점을 집중 공략한다는 식의 정신면을 유난히 강조한 것이 일본군의 특징이었다.
이런 정신승리의 유산은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보더라도 일본인은 특이한 DNA를 갖고 있다느니, 팩터 X 라느니, 심지어는 ‘This is a pen’ 과 ‘코레와 펜데스’ 라는 웃지 못할 코미디까지 보여주는 걸 보면 여전히 정신승리의 파토스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상중하 세 번으로 나누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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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덧) 사진이 다소 리얼한 것도 있으므로 임산부나 새가슴 소유자는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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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 Jung
사람의 역사는 욕심의 역사인 듯 합니다. 선거해서 관료들응 뽑을때도, 사안 결정을 할때도 많은 경우 내욕심이 투영되고.... 미대통 선거를 앞두고 있는때라 더 생각하게 하네요.
Hun-Mo Yi
Rosa Jung 네 인간의 욕망이 제어가 안되면 그게 폭주해서 다툼이 되고 나아가 전쟁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모두가 절제심을 갖고 나누어 사는 삶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겠지요. 언제나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Hun-Mo Yi
1tSn2p Aoucngsguistsosredgtlm ·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1회-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일본인을 만드는 주범은?
에피소드-1
에피소드-2
“면역력을 높여주어 코로나에 듣는 것 같습니다” 고 하자 ‘입가심 가글액’ 이 졸지에 매장에서 사라졌다. 이는 한때 낫토가 코로나에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자 각 슈퍼의 매대에서 낫토가 보기 힘들어진 현상과 일치한다.
지난 8월 4일 코로나 대책으로 인기 급상승 중인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 洋文) 오사카 부지사(府知事)가 기자회견에서 특정 성분이 함유된 ‘입가심 가글액’ 이 코로나 19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하며 입가심 가글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약국과 슈퍼에 진열된 가글액이 동이나고 인터넷에서는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전매(転売)가 이루어지는 소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높으신 분(?)이 한마디 하면 그 파괴력이 엄청나다. 코로나 예방에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잘 씻고 외출 후 입가심을 하는 건 기본 상식인데, 입가심만 잘해도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말이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으련만 요즘 주목받는 지사의 한마디라고 해도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그 말을 믿고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으신 분들의 한마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아니 이처럼 높으신 분이나 관료, 그리고 저명한 학자나 저널리스트,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을 자주 목도한다.
에피소드1을 통해서 엿보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과연 젊은이들만의 변화가 주목과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코로나 19에 의한 피해와 고충은 남녀노소 경계가 없으며 그중에서도 고령자와 지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장년층의 불만이 더 높을 수 있지만, 중장년층이 정부의 대책에 대해 특별히 불만을 나타내거나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지난 3월과 4월의 마스크와 생필품 등의 ‘사재기’ 현상을 보면, 사재기의 주역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중장년층의 오지상, 오바상들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일본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하여 분노하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마치 전전의 패전 프로세스를 보는 것 같다면 과언이려나.
물론 텔레비전이나 SNS, 인터넷 등을 통하여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쏟아내는 건 흔히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뭔가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의 스트레스와 불만 해소 차원의 행위에 그치는 게 보통이다.
여전히 투표율은 낮고 정치에 무관심한 채, 앞으로 세계 제1의 채무국으로서 엄청난 국가부채를 짊어지며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된 사회를 지탱해 나가야 한다는 과중한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무덤덤하다. 일본의 대학가에서 집회라는 용어는 이미 사어가 된 지 오래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성숙하여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반대하는 데모가 없는 것인가? 일본의 지도자들이 모두 선량(善良)하고 철인(哲人)이라서 부정부패도 없으며 한국처럼 임기 종료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 나오질 않는 것인가? 이런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과연 어떤 매커니즘이 일본인 또는 일본 사회를 순한 양으로 변신시키고 있는가 그 주범(?)을 찾아보고자 한다.
To be continued…
To be continued...
덧) 사진이 다소 리얼한 것도 있으므로 임산부나 새가슴 소유자는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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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 Jung
사람의 역사는 욕심의 역사인 듯 합니다. 선거해서 관료들응 뽑을때도, 사안 결정을 할때도 많은 경우 내욕심이 투영되고.... 미대통 선거를 앞두고 있는때라 더 생각하게 하네요.
Hun-Mo Yi
Rosa Jung 네 인간의 욕망이 제어가 안되면 그게 폭주해서 다툼이 되고 나아가 전쟁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모두가 절제심을 갖고 나누어 사는 삶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겠지요. 언제나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Hun-Mo Yi
1tSn2p Aoucngsguistsosredgtlm ·
<불가사의한 나라 일본> -1회-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일본인을 만드는 주범은?
에피소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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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 을 둘러싼 격렬한 데모가 연일 뉴스가 되던 작년 이맘때. 서너 명의 학생이 빈 강의실에서 샌드위치와 오니기리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잡담을 나눈다. 우연히 동석하게 되었던 나는 요즘 홍콩에서 격렬한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소소한 호기심에서 질문을 해봤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위험하게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 한 학생이 말문을 열자 “그래 보기만 해도 야바이(위험)하던데” 라며 추임새를 넣는 학생의 말을 받아 다른 학생이 “일본은 데모가 없어서 참 좋아. 그치?” 하며 동의를 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모두 “맞아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단지 호기심으로 던진 질문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고 꿈을 갖지 않는다고 하며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이런 삶의 자세를 비난까지는 아니더라도 걱정과 염려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본의 젊은 남자가 ‘초식 동물’ 화 된 지도 이미 오래전이고, 이전의 ‘유도리 세대’ 가 좀 더 분화되어 요즘은 ‘사토리 세대’ 라는 네이밍까지 붙어 있다.
한마디로 요즘 젊은이들의 특성을 ‘욕심이 없다’ ‘연애에 흥미도 없으며’ ‘여행도 가지 않는다’ ‘휴일도 자택에서 홀로 지내기를 선호한다’ ‘조직에 친화되지 않는다’ 는 등의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하는 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플러스가 되는 일에는 매우 흥미를 가지며, 그렇다고 소화시대와 같은 무조건적인 조직에의 귀속의식도 희박하여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도 않고 어울리려고 하지도 않는 특성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일정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에게만 보이는 현상일까? 장기간에 걸친 불황으로 과거 일본 경영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회자되던 ‘종신고용제’ 나 ‘연공서열제’ 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도 싶다.
하여간 얘기가 옆길로 샜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일본인의 자기 권리나 자기 의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비투스가 이 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전술한 학생들의 홍콩 민주화 데모가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며 발전도상국에 데모가 많은 이유 또한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일본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라서 데모가 없다는 식의 의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더 쇼킹한 일이었다. 과연 그럴까?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 을 둘러싼 격렬한 데모가 연일 뉴스가 되던 작년 이맘때. 서너 명의 학생이 빈 강의실에서 샌드위치와 오니기리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잡담을 나눈다. 우연히 동석하게 되었던 나는 요즘 홍콩에서 격렬한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소소한 호기심에서 질문을 해봤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위험하게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 한 학생이 말문을 열자 “그래 보기만 해도 야바이(위험)하던데” 라며 추임새를 넣는 학생의 말을 받아 다른 학생이 “일본은 데모가 없어서 참 좋아. 그치?” 하며 동의를 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모두 “맞아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단지 호기심으로 던진 질문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고 꿈을 갖지 않는다고 하며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이런 삶의 자세를 비난까지는 아니더라도 걱정과 염려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본의 젊은 남자가 ‘초식 동물’ 화 된 지도 이미 오래전이고, 이전의 ‘유도리 세대’ 가 좀 더 분화되어 요즘은 ‘사토리 세대’ 라는 네이밍까지 붙어 있다.
한마디로 요즘 젊은이들의 특성을 ‘욕심이 없다’ ‘연애에 흥미도 없으며’ ‘여행도 가지 않는다’ ‘휴일도 자택에서 홀로 지내기를 선호한다’ ‘조직에 친화되지 않는다’ 는 등의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하는 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플러스가 되는 일에는 매우 흥미를 가지며, 그렇다고 소화시대와 같은 무조건적인 조직에의 귀속의식도 희박하여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도 않고 어울리려고 하지도 않는 특성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일정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에게만 보이는 현상일까? 장기간에 걸친 불황으로 과거 일본 경영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회자되던 ‘종신고용제’ 나 ‘연공서열제’ 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도 싶다.
하여간 얘기가 옆길로 샜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일본인의 자기 권리나 자기 의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비투스가 이 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전술한 학생들의 홍콩 민주화 데모가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며 발전도상국에 데모가 많은 이유 또한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일본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라서 데모가 없다는 식의 의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더 쇼킹한 일이었다. 과연 그럴까?
에피소드-2
“면역력을 높여주어 코로나에 듣는 것 같습니다” 고 하자 ‘입가심 가글액’ 이 졸지에 매장에서 사라졌다. 이는 한때 낫토가 코로나에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자 각 슈퍼의 매대에서 낫토가 보기 힘들어진 현상과 일치한다.
지난 8월 4일 코로나 대책으로 인기 급상승 중인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 洋文) 오사카 부지사(府知事)가 기자회견에서 특정 성분이 함유된 ‘입가심 가글액’ 이 코로나 19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하며 입가심 가글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약국과 슈퍼에 진열된 가글액이 동이나고 인터넷에서는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전매(転売)가 이루어지는 소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높으신 분(?)이 한마디 하면 그 파괴력이 엄청나다. 코로나 예방에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잘 씻고 외출 후 입가심을 하는 건 기본 상식인데, 입가심만 잘해도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말이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으련만 요즘 주목받는 지사의 한마디라고 해도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그 말을 믿고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으신 분들의 한마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아니 이처럼 높으신 분이나 관료, 그리고 저명한 학자나 저널리스트,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을 자주 목도한다.
에피소드1을 통해서 엿보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과연 젊은이들만의 변화가 주목과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코로나 19에 의한 피해와 고충은 남녀노소 경계가 없으며 그중에서도 고령자와 지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장년층의 불만이 더 높을 수 있지만, 중장년층이 정부의 대책에 대해 특별히 불만을 나타내거나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지난 3월과 4월의 마스크와 생필품 등의 ‘사재기’ 현상을 보면, 사재기의 주역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중장년층의 오지상, 오바상들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일본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하여 분노하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마치 전전의 패전 프로세스를 보는 것 같다면 과언이려나.
물론 텔레비전이나 SNS, 인터넷 등을 통하여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쏟아내는 건 흔히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뭔가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의 스트레스와 불만 해소 차원의 행위에 그치는 게 보통이다.
여전히 투표율은 낮고 정치에 무관심한 채, 앞으로 세계 제1의 채무국으로서 엄청난 국가부채를 짊어지며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된 사회를 지탱해 나가야 한다는 과중한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무덤덤하다. 일본의 대학가에서 집회라는 용어는 이미 사어가 된 지 오래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성숙하여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반대하는 데모가 없는 것인가? 일본의 지도자들이 모두 선량(善良)하고 철인(哲人)이라서 부정부패도 없으며 한국처럼 임기 종료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 나오질 않는 것인가? 이런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과연 어떤 매커니즘이 일본인 또는 일본 사회를 순한 양으로 변신시키고 있는가 그 주범(?)을 찾아보고자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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