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 충청 : 전국 : 뉴스 : 한겨레

허우성
2tmoSpln0o rJnsourtelgdcny https://www.facebook.com/woosung.huh/posts/3126316440777551
이 기사를 다음에 게시할 중앙의 송호건의 기사와 비교해보십시오.
백선엽에 대해 서로 다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역사적 진실인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 충청 : 전국 : 뉴스 : 한겨레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등록 :2020-07-20

6·25 참전 장성 박경석 예비역 준장
“군사편찬 개입…스스로 전쟁영웅돼”
”반민족행위 따라 법대로 대우해야”

박경석 장군은 19일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나 "백선엽은 조작된 가짜 영웅이어서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백선엽은 조작된 전쟁영웅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박경석(88) 예비역 준장은 단호했다. 육사생도 2기 출신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야전을 두루 거친 노병인 그는 백선엽씨가 전쟁영웅이 아니라고 했다. 19일 오전 대전 유성 자택에서 만난 박 장군은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 백선엽 가족은 그의 주검을 가족묘지로 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선엽이 일본군 장교로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며 항일독립투사를 체포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고,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사를 왜곡해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 위선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1사단장이었으니 공적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장군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죠. 그런데 그의 행적을 보면 장군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어요.”

그는 “백 장군이 예편 뒤 자청해 30여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다”며 그 예로 백씨를 전쟁영웅으로 만든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를 들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의 제1사단은 적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해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일부를 전체로 과장했다는 얘기다.



박경석 장군이 대대장 시절 당시 강재구 대위 등 중대장, 소대장 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강 대위는 이 사진을 촬영한 다음날 순직했고 이 부대는 재구대대로 명명됐다.



또 개전 초기 전투 상황도 왜곡됐다고 했다. 제1사단은 개성에 주둔했는데 북한군은 개전 5시간 만에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했다. 당시 백선엽은 경기도 시흥 보병학교에서 교육받다가 참모의 연락을 받고 즉시 귀대해 부대를 지휘했으나 전차 등 장비에 밀려 후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설명은 다르다. 6월24일은 육군구락부(현 육군회관) 준공 기념 파티가 열린 날로, 춘천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친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을 포함해 전방 사단장은 모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선엽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임진강 남쪽에서 후퇴하던 사단에 합류했다. 그도 사단장으로서 당연히 이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부대를 비운 이유로 든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출석을 임의로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술판을 벌이고 있어 남침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개전 과정에서 북한군의 전차를 몸으로 막고 산화한 것으로 알려진 ‘제1사단 육탄 10용사’는 뒷날 10용사 가운데 몇몇이 북한방송에 출연해 ‘조작’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 외에 제6사단의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도 조작 무용담이죠. 모두 일제 강점기에 조작된 ‘일본군 육탄 3용사’를 베끼기 해 지휘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는 “백선엽은 후퇴를 참 잘하는 사단장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여서 ‘내가 등을 보이면 총을 쏘라’며 진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는 미담 역시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백선엽은 미군 군사고문단을 극진히 대접해 맺은 인연을 배경으로 승승장구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명예원수(5성 장군) 추대를 막아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앞잡이였던 백씨가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가 될 순 없다’고 앞장서 반대했다.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참전 군 원로들도 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 결국 무산됐다.



박경석 장군은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장교로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고, 한국전쟁사를 왜곡해 스스로를 영웅화 했다고 주장했다.

진짜 한국전쟁의 영웅은 누구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1984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선정한 4대 영웅인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워커 장군이라고 밝혔다. 김홍일 장군은 개전 초기 국군 패잔병을 모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3일을 버텼고, 김종오 장군(당시 대령)은 제6사단장으로 3일 동안 춘천을 방어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해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으로 전황을 뒤집는 인천상륙작전 등을 이끌었고 워커 장군은 낙동강을 사수했다. 당시 정부는 김홍일, 김종오 장군의 일대기를 펴내고 맥아더와 워커 장군의 다큐멘터리도 제작해 방송했다.

“나는 강재구 당시 대위가 참 군인 정신을 지킨 재구대대의 첫 대대장입니다. 영원한 재구대대장으로서 전사를 왜곡해 진짜를 밀어내고 영웅이 된 가짜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보수 세력들이 주장하는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시절 반공 투사였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800명 단위의 간도특설대는 중국 팔로군과 전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전투부대가 아니라 공작부대로 봐야 합니다.” 강재구 대위는 1965년 10월4일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대원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에 몸을 던져 부대원의 생명을 구하고 본인은 장렬히 산화한 인물이다. 순직 후 1계급 특진이 이뤄졌다.

그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반민족 주의자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했잖아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겁니다. 나쁜 짓 했으면 사후라도 그 죗값을 물어야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여생을 왜곡된 군사를 바로 잡는데 바치겠습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이은덕 사진가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954303.html?fbclid=IwAR0bB4MZRbohoG_zFg3-OnL5PQWQro7p13eibG2GRyxiX_fgXuvu_z_Ls10#csidx76a2f0927a31a0bb5a82e43ed71e406
---


국민의 시대, 시민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0.07.20 00:48 | 종합 31면 지면보기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37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일제 말기, 일본문학잡지 『문예』에 조선문학특집이 게재됐다. 일본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세 작가가 뽑혔다. 이효석, 유진오, 김사량. 식민지 문학을 내지(內地)의 보편성으로 융화한다는 의도였다. 이후 세 사람의 길이 갈라졌다. 이효석은 1942년 만주기행 직후 ‘황민’(皇民)이 맹위를 떨쳤던 시기에 토속을 품고 죽었다. 유진오는 제헌헌법을 기초해 남한 ‘국민’의 틀을 다졌다. 김사량은 해방 직후 태항산 조선의용대와 함께 귀국해 고향 평양에서 북한 ‘인민’대열에 합류했다. 일제의 황민이 소멸한 공간에서 국민과 인민이 맞붙은 게 6.25전쟁이었다. 식민지 유산이자 비극이었다.

국민은 나라 헌신, 시민은 윤리코드
친일에도 국민 약속을 지킨 백선엽
시민의 시대를 개척한 박원순은

시민과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해고(故)백선엽은 황민에서 국민으로 이적했다. 그가 나온 만주군관학교는 대륙침략을 대동아공영으로 미화한 천황주의의 위장술임을 통감한 후였다. 게다가 그는 김일성과 소련을 꿰뚫어본 반공주의자였다. 6.25전쟁이 터졌다. 그는 수원에서 궤멸된 1사단을 수습해 대구 방어에 나섰다. 동쪽으로 영덕, 남쪽으로 마산까지 180㎞에 이른 낙동강 방어선에서 55일간 전투가 치러졌다. 두 전선이 가장 치열했다. 왜관 다부동전투, 영산 오봉리전투.

백선엽준장의 신생군대는 항일연군과 팔로군에 소속됐던 노련한 무정(武亭) 군단을 다부동에서 대적했다. 미25사단, 1기병사단과 방어에 나섰다. T-34전차와 경기관포로 무장한 3개 사단이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동안, 남서쪽 낙동강 돌출부 영산에서는 미24보병사단이 분투했다. 서울을 최초 돌파해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리권무소장의 4사단이 영산-밀양선에 화력을 집중했다. 포항은 이미 뚫렸다. 양안에 시체가 쌓였다. 8월 말, 북한군 13사단이 다부동 협곡으로 몰려들었다. 퇴각하는 500여명의 병사들을 독려해 백선엽준장이 권총을 빼들고 앞장 선 것이 이 때였다. 미 해병이 추가 투입된 영산전투에서 리권무는 1200구 시체를 남기고 결국 패주했다.

백선엽은 막 잉태한 국민국가를 그렇게 건사했고 ‘국민의 시대’를 살았다. 국가와 개인을 잇는 정체성 연줄을 끊지 않으려면 또 하나의 정체성에 총을 쏴야하는 역설적 순간에 부딪힌다. 일제의 ‘미영귀축’ 명분에 속아서, 또는 강제 징집된 학도병 4385명 중 탈주한 항일투사는 장준하, 김준엽 외 백 수십 명에 불과하다. 광복회회장이 대전현충원 앞에서 백장군 운구행렬을 막아섰다. 에이브람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전쟁영웅 치사를 ‘내정간섭’이라고도 했다. 미군 3만6574명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산천에서 죽었다. 국민국가는 흔히 이런 모순과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백선엽은 국민시대의 주역이었다.

영산전투 5년 후에 고(故)박원순이 거기서 태어났다. 그는 영산중학교,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로 진학했다. 1975년 5월 시위연루로 제적을 당하자 국민이라는 획일적 날줄 사회에 시민이라는 씨줄을 만들기로 작심했다. 날줄과 씨줄로 엮은 피륙이 온전하고 질기다. 유신세대는 종적 연대인 ‘국민’에 횡적 유대인 ‘시민’을 짜 넣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 1987년을 기점으로 저항운동은 시민운동으로 전환했고 박원순은 그 상징적 인물이 됐다.


백선엽장군이 패주하는 병사를 돌이켜 세웠듯, 인권변호사 박원순은 반독재투쟁에 지친 사람들을 규합해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선을 만들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는 운동가들의 활력소이자 시민권의 참호였다. 그는 최장수 시장이 됐다. 9년간 서울은 경제 이권이 시민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인권 도시로 변화했다. 서민중심의 시민권은 그의 소탈한 행보와 어울려 관료적 경직성을 깼다. 그는 거대담론을 싫어하는 살림꾼이었다. 생계현장이 시민정치 이정표이자 그의 삶 자체였다. 말하자면, 그는 ‘시민의 시대’를 개척했고 열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는 작별인가. 왜 작별인사에 ‘시민’은 자취가 없는가. ‘모두 안녕’? 북악산 기슭에서 그의 주검이 발견된 이후 몇 번이고 이 말을 되뇌었다. 생명을 끊어야 했던 그 절절한 이유, 서울 야경과 북악산 밤별들이 극구 말렸을 것임에도 결행해야 했던 작별의 그 순간을 이해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모두 안녕. 친필 유서에 쓰인 ‘모두’와 ‘모든 분’에 ‘서울 시민’의 존재는 결국 흐릿했다. 서울 시민의 마음엔 구멍이 뚫렸다. 심리적 공황상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구차한 변명으로 시민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기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국민성의 핵심가치가 ‘나라 헌신’이고, 시민성의 요체는 집단양심을 위배하지 않는 ‘윤리적 코드’다. 그게 시민의 공적 성격이다. 그런데 시민과 한마디 양해도 없이 자신의 존재를 도려냈다. 그의 비장한 결행은 시민적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사적 결단이지 결코 공적 행위가 아니다. 친일행적을 딛고 고 백선엽은 국민 약속을 지켰고, 시민시대의 상징 고 박원순은 시민 약속을 어겼다. 촛불을 켠 게 엊그제, 30년 가꿔온 ‘시민의 시대’가 일방적으로 퇴색했다. 슬프고 안타깝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https://news.joins.com/article/23828374?fbclid=iwar3adonziwztwx1p5lmakzep4habxokdvkn9bofrgjk--tzf5ncsoew3tmk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국민의 시대, 시민의 시대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