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허우성 . 권력에다 욕정 속의 폭력이 더해지면 누구든 악마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Nahee Kim 김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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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opol1n5s JolredrulSya
 
길지만 읽어보시길,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이군요.
권력에다 욕정 속의 폭력이 더해지면 누구든 악마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truSopol1n4s JolredrulSya
 
잔인한 한 주, <김지은입니다>를 읽다.
한국 사법부의 손정우 미국 송환 거부, 고 최숙현 선수의 감독의 가혹행위 없었다는 발뺌, ‘거물’들의 안희정 조문 등, 7월 둘째 주는 우리가 얼마나 공고한 폭력의 구조 안에 살고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충격적인 뉴스들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대통령과 서울시장까지 공식적으로 안희정의 모친상에 조문했는데,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서울시장 본인이 성폭력 혐의로 피소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슬픔과 분노, 환멸과 참담함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김지은입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조문 정치로 건재를 과시하고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가해자에게 경고하고 피해자에게 연대한다는 의미로 이 책을 주문해 두었던 터. <김지은입니다>는 두 달간 팔렸던 것보다 더 많은 부수가 이틀간 팔렸고 일시 품절인 상태였다.
독자로서 읽어나가기 힘들지 않을까 두려웠던 이 책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비서 노동에 대한 충격적인 르포르타주면서, 타락한 386 운동권의 권위주의와 ‘의장 옹립 문화’에 대한 차분한 탐사보도였고, 그리고 여러 국면에서 제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나오는 거대한 서사시이기도 했다. 피해자가 마녀사냥을 이겨내고 정제된 언어로 고발하고 전달한다는 그 자체가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박원순이 던져두고 떠난 현재의 혼란을 설명할 수 있는 지침서처럼 보였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안희정’이라고 했을 때 기표는 하나지만 기의는 최소 세 가지인데 서로 다른 의미의 안희정을 가리킴으로써 의사소통에 혼란이 생김을 알게 되었다. 우선 자연인, 한 개인으로서의 ‘안희정’이 있다. <안희정 개인>이라 하자. 또 안희정이 말해오던 민주주의와 인권과 소통 등, 가치와 비전으로서의 안희정이 있다. 이를 <안희정 정신>이라 하자. 마지막으로 안희정계, 안희정라인, 안희정사단, 안희정패거리, 안희정측 등으로 다양하게 부를 수 있는 무리가 있다. 안희정과 이익 또는 가치를 함께 하는 안희정 사람들이다. 이를 편의상 <안희정측>이라고 부르겠다.
1. 비서 노동의 특수한 후진성
<안희정 정신>에 동의하여 안희정과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 중에 저자 김지은도 있었다. 그런데 안희정 수행비서의 노동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노동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업무 매뉴얼 중 ‘민주주의 지도자 보필’이라는 만다라트가 나온다. ‘민주주의 지도자 보필’을 이루는 세부 항목이 다음과 같다. ‘내 몸의 방패화’, ‘악역 맡기’, ‘시키기 쉬운 부하 되기’, ‘좋은 것은 리더 먼저’, ‘항상 리더 편’, ‘철저히 리더만을 위한 판단’, ‘영광은 리더, 칭찬은 동료, 책임은 내가’, ‘아프지 않기’, ‘개인 약속 지양’, ‘겸손, 인내, 희생’, ‘비밀 엄수(입, 눈, 귀)’ 등등. 이게 어딜 봐서 민주주의 지도자 보필인가? 전제 군주 보필이지.
안희정이 말하던 가치 중 인권도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주당 130시간은 늘 넘겨서 일했고 140시간 넘겨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주당 40시간이 아니라 140시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퇴근 시간이 아예 없었다. 안희정은 자신이 직접 받고 싶은 전화를 제외한 모든 전화를 수행비서에게 착신전환해두었고, 수행비서는 이를 한밤중이든 휴가 중이든 샤워 중이든 늘 받아야 했다. 샤워 중에도 늘 투명 밀봉 봉지에 핸드폰을 갖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매뉴얼에 있었다. 그리고 퇴근 뒤에도 담배를 사와라, 간식을 사와라 하는 심부름이나 대리운전 등을 수시로 시켰고, 안희정의 아들의 요트 예약, 안희정 부인의 보험 처리 같은 것까지 맡겼다. 아침에는 안희정이 나오기 전에 그가 신을 신발 두 짝 사이의 거리와 각도를 정확하게 맞춰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밤에는 안희정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퇴근(그것도 퇴근이라면!)을 한 뒤 내일 일정을 점검했다. 길을 걸어갈 때는 대각선 일보 거리에 있어서 길을 안내해야 하고 안희정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쉽게 보이는 자리에만 있어야 했다. 안희정은 비서를 찾기 위해 고개를 한 번 두리번거리는 것조차 하기 싫었던 것이다. 안희정은 전화를 걸 때도 비서를 방으로 불렀다. 비서는 전화번호를 대신 누르고 신호음을 듣고 있다가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그 정확한 순간에 딱 맞추어 안희정에게 전화를 건네야 했다. 안희정은 ‘슈트발’이 안 산다고 절대 양복에 물건을 넣지 않아, 휴대폰, 담배, 라이터, 명함, 신분증, 휴지, 펜, 안경닦이 등을 모두 수행비서가 갖고 다니다가 손으로 부르면 달려가 원하는 걸 전달해야 했다. 이런 갑질이 공적 조직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른 기관장 비서의 경우 노동조건이 좀 더 나았을 수는 있으나, 업무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고 분신처럼 살아야 하는 비서들이 대체로 성폭력 피해를 입기 쉬운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본인의 피해를 증언하는 것이 곧 불충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털어놓기도 어렵다. 젊고 '예쁜' 여성을 비서로 발탁하는 전 사회의 관행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
2. 위계에 의한 성폭력
안희정은 “너는 직언하지 말고 모두가 NO할 때 YES해야 한다. 너는 나의 보조 기억장치로 작동하면 된다.” “너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내 그림자다. 내 눈을 봐라. 나는 눈으로 얘기한다. 너는 나를 지켜야 한다.”같은 억압적인 말을 비서에게 반복했다. 안희정 측근들은 ‘지사님 정도 되는 사람을 모시는 너희들은 영광으로 알아라’라며 희생을 강요했다. 인간의 표현의 자유, 평등권, 프라이버시, 노동권, 자기결정권 등 여러 기본권을 짓밟는 행위들이었고 이는 인권과 소통을 말하던 <안희정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누구나 시험공부하기 싫을 때 내 분신을 만들어서 분신에게 공부를 대신 시키고 나는 그동안 놀다가 좋은 시험성적 받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분신이 실존했다. 궂은 일, 악역, 힘든 일, 귀찮은 일 등을 모두 떠맡는 수행비서가 그런 존재. 실제로도 김지은을 위한 탄원서를 작성한 어떤 익명의 비서는 비서노동이 분인(分人)과 같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하우스엘프(꼬마집요정)와 같은 노예 신세였다. 그리고 신체와 정신이 모두 저당잡힌 노예처럼 일하다가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다.
김지은은 <순장조>라고 불렸다고 한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그대로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처럼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라 했다.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김지은은 안희정을 24시간 수행하며 그의 거대한 권력을 실감한다. 충남경찰청장과 지역 검사장들의 전화를 안희정에게 연결하고,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을 만나고 있는 안희정을 수행하고,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있는 안희정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반면 충남도청의 성 고충 전담 직원은 6급 주무관이었다. 대체 누구에게 피해를 신고할 수 있었을까? 전임 수행비서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네가 조심하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서울시청의 피해자도 4년간 주변에 알리려 노력했지만 은폐만 당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위력은 조직 단위로 행사된다.
3. 미투 운동에도 지속되는 성폭력
안희정은 미투운동이 공론화된 후 마지막으로 김지은을 불러서 미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뒤, 다시 성폭행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안희정은 미투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한다. 안희정이 미투을 의식하여 입막음하자마자 성폭행한 날, 김지은은 이제 더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미투운동을 지켜보며 미투가 두려웠다면, 자신의 피해자에게 최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다시는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대응이 아닐까?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성폭력을 반복한 지자체장의 사례에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19년에 불거진 미투 의혹을 무마하고 지나간 뒤 2020년에 성추행을 저지른다. 이 2020년의 성추행이 미투 고발로 이어졌다. 2019년에라도 경각심을 가졌다면 2020년에 성추행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02년 성추행을 저지른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도 성추행 피해자가 사과를 요구하는 면담 자리에서 다시 성추행을 저질렀다. 사과를 제대로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놀랍게도 그 시점에서 범죄를 반복했다. 이 사건의 진상조사를 맡았던 박원순 역시 2018년에 안희정이 성폭력으로 사퇴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나, 전직 비서의 고발에 따르면 이후에도 최근까지 성폭력이 이어졌다고 했다.
많은 피해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다고 느낄 때 고발에 나서게 된다. 도저히 내부적인 해결이 불가능할뿐더러 외부의 미투운동으로도 자신의 가해자가 끄떡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자신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이어지는 피해를 받을 것처럼 보이는데 가해자는 더 승승장구할 때 비로소 결심하게 된다.
피해자들을 절망시키는 가해는 왜 멈추라는 신호에도 멈추지 않을까. 가진 것도 잃을 것도 많은 지자체장들은 다른 권력자가 성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져 낙마하는 모습에 경각심을 가질 만 한데도, 그 모습을 목격한 이후에도 성폭력을 지속했다.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 권력이 주는 도취감 때문일지, 또는 높은 도덕성과 능력으로 고위직에 오른 뒤 특권의식으로 방만해지는 현상(밧세바 증후군) 때문일지, 알아서 기기와 상명하복이 미덕이라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 때문인지, 아직은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진상 조사와 권력구조 연구로 원인을 알아내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4. 이차가해와 자살, 그 두 극단을 넘어
<안희정 개인>이 <안희정 정신>을 버렸을 때 <안희정측>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책 속에서 세 가지 안희정의 움직임이 서로 어긋나는 순간이 관찰된다. 예를 들면 가족, 측근 등 <안희정측>이 죄다 모여 앉아 ‘대책’을 세우고 피해자에 대한 음해를 수집하고 있던 그 순간에 <안희정 개인>은 다른 장소에서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다.’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있었다. <안희정 개인>이 <안희정 정신>에 따른 죄책감을 느끼고 <안희정측>과 다른 독자행동을 잠깐이나마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안희정측>은 <안희정 개인>의 독자행동을 곧바로 무마하고 다시 <안희정 개인>을 <안희정측>으로 재흡수했다. 안희정이라는 거대한 상징자본은 이미 그 자체의 관성 때문에 <안희정 개인>과는 무관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거돈의 경우, <오거돈 개인> 또는 <오거돈측>이 사과하고 사퇴하는 정석 해결책을 택했다. 사과문에서 ‘경중을 떠나’같은 사족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은 대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가해를 전면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이차가해하는 가해자, 가해의 후과를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택하여 다시 피해자에게 크나큰 죄책감을 안기고 진실을 묻어버리는 가해자, 이러한 두 가지 극단 말고 다른 공간이 가능하면 좋겠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죄지은 만큼 다시 벌을 받고 할 일이 남아 있다면 그 때 다시 할 수 있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이차가해까지 제대로 처벌받아야 ‘피해자를 음해하면 나만 손해구나.’라는 교훈이 각인될 수 있다. 죽음으로 도피해도 여전히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남은 가족은 고통스러워하며 측근들은 해고될 때, ‘죽음이 답이 아니구나. 차라리 살아남아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변호할 것은 변호하자.’라는 메시지가 정치권에 남을 수 있다.
5. 이차가해의 구조
안희정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이차가해가 매우 방대하고 집요하여 특별히 학술 연구가 필요한 수준이었다. <안희정측>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안희정측>에 서서 김지은에게 이차가해하고 거짓증언하고 악플을 달고 지라시를 나르던 이들은 벼락승진하여 안희정계 국회의원의 비서관이 되었다. 이들에 대한 이차가해 재판은 진행이 지지부진하며, 이들은 국회 안에서 세를 넓히고 승승장구하고 있어 여전히 안희정계의 위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희정의 정치는 현재진행형이며 피해자에 대한 위력 행사도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은은 보안을 지켜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신고 과정에 들어갔는데, 곧바로 안희정 측에서 알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청와대와 경찰, 서울시청 모두 발뺌하고 있지만 박원순에게 실시간으로 고소 사실이 전달되었다. 진상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다.) 재판과정도 공정하지 않았다. 영장실질심사 때 안희정이 자신의 핸드폰을 파기했다고 진술했는데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영장이 기각되었다. 안희정 무죄가 나왔던 1심에서, 피해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안희정을 얇은 가림막으로만 가린 채 바로 피해자 옆에 앉혔다. 검찰은 재판의 전면 비공개를 신청했는데, 안희정 편에 선 거짓 증언들은 모두 언론에 공개되었고, 오직 판결문만 비공개되어 피해자 보호는 눈 가리고 아웅 꼴이 되어버렸다. 16시간 동안 검사, 판사, 안희정의 다섯 변호인이 고소인인 김지은에게 질문, 또 질문, 같은 질문을 또 교묘하게 바꾼 유도신문을 반복했지만 피고인인 안희정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심지어 ‘정조보다 무엇이 더 중요했습니까?’라는 모욕적인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김지은은 2심 재판에서 ‘심문 시간을 지켜주세요. 이미 했던 질문은 다시 하지 마세요.’라는 재판장의 한마디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증인들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사실을 말해준 사람들과, 없던 일을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었다. 특기할 점은, 일부 증인들은 처음에는 사실관계를 모른 채 안희정의 편을 들며 자기도 모르게 2차가해와 은폐를 하기도 했다가, 나중에 비로소 성폭력에 대해 알게 되고 김지은의 편에 섰다는 대목이다. 김지은이 힘들다고 할 때 그 행간을 읽지 못하고 ‘누나가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지사님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느냐. 정신 똑바로 차려라. 눈물이 나면 눈물 흘리면서 일해라.’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동료도 있었다. 또다른 동료도 피해자가 그 일을 겪는 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죄책감 때문에 피해자의 곁을 꼭 지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에 김지은이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네가 알아서 피해 다니라고만 하고 회피했던 동료도 미투 이후 실명으로 진실을 증언해 주었다.
성폭력 발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며, ‘우리 기관장이 설마 그럴 리 없다’라고 놀라는 사람들의 존재가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꿈에도 몰랐다는 주변인들의 존재는 가해자의 이중성을 보여줄 뿐이다. 성폭력을 범해도 되는 만만한 대상과 성폭력을 숨겨야 하는 대상을 교묘하게 나누어, 숨기고 싶은 대상들에게는 점잖은 양반의 모습만 보여주는 이중성. 성폭력을 광범위하게 저지르고, 여성 대부분을 만만하게 보는 가해자의 경우, 공론화 이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세지만, 가장 취약한 소수의 여성에게만 은밀하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 대부분의 주변 여성들조차 ‘상상도 못했다.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 한들, 가해자의 도덕성을 굳게 믿었던 주변인들의 존재가 알리바이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설마 그럴 리가'라는 반응이 악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이차가해가 될 수 있다.
6. 거대한 남성연대와 그 균열
<박원순 개인>은 혼란과 충격을 던져주고 책임을 회피한 채 떠났지만 피해자 편에 서고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박원순 정신>일 것이라 믿는다. 박원순도 피해갈 수 없었던 성폭력 문제의 구조를 파악해야 <박원순 개인>도 비로소 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고인이 남긴 마지막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측>은 장례를 서울특별시장 5일장으로 성대하게 치르고 진상조사 계획이 없다고 못박는가 하면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미루라고 요청하는 등, 파장을 덮는데 급급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편의상 <박원순 개인>, <박원순 정신>, <박원순측>으로 나눴지만 박원순이 3선 시장이 되고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이 셋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박원순 정신>만 기리고 <박원순 개인>만 애도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원순 개인에게서 그의 혼란스러운 최후만 도려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권력을 점해갈 때 권력 역시 그를 점해갔으며, 따라서 그가 이루어낸 많은 ‘공’들도 안희정과 마찬가지로 남성연대 속으로 서서히 편입해가면서 이루어낸 것이다. 순수한 초심을 유지한 채로 오직 시민의 힘으로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을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는 그 공고한 질서에 균열을 낼 수도 있었지만 멈춰버렸다. 그가 원치 않게 드러낸 그 균열을 파고드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7. 피해자에게
열심히 일했던 것이 오히려 ‘피해자답지 않음’이라는 화살로 돌아오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면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하고 당당하고 조리있게 말하면 피해자가 저렇게 멀쩡할 리 없으니 지어낸 피해일 거라고 의심하는 적대적 환경 속에서 <김지은입니다>라는 소중한 책이 나왔다. 책의 존재 자체가 거대권력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작은 영웅들, 힘은 없지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 보통 사람들. ‘김지은의 편’임을 선언한 그들이 이 사회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느껴졌다. 지금 힘들어하고 있을 피해자에게 이 책이 주는 위로가 가닿기를 바란다.
‘지은이가’라고 쓰다가, 행여나 ‘우리 (김)지은이가~’라고 편하게 호칭한 것처럼 오해받을까봐 ‘저자가’라고 고쳐 썼습니다. 혹시 김지은씨가 이 서평을 읽는다면 위 문장을 읽다가 한 번 피식 웃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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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된 내용은 거짓 없는 사실 맞아요. 많은 여성 혹은 내부고발자가 경험하는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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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봐야만 할 얘기 들어볼 수 있게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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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준 떨어지는 개인숭배는 북쪽 사람들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남쪽도 만만치 않은가봅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성폭력이 벌어진 것이었구요. 한국인으로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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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숭배, 무슨 빠 현상, 우리문화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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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고소 피해자와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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