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8

크고 아름다운 그 이름, 이·효·재 팔순잔치에 모인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나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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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그 이름, 이·효·재
팔순잔치에 모인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나의 스승'
이은희(redrosa)등록 200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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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이자 여성계 원로로 존경받는 이효재 교수 ⓒ 이의종11월 14일 저녁, 여성개발원 국제회의실에는 우리 사회의 내로라 하는 여성 인사 1백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은희, 신혜수, 이오경숙, 이미경, 장하진, 김주숙, 조형, 강명순, 정강자, 고은광순, 최영희, 오한숙희, 이철순, 인재근 ….

쉽게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이들을, 언니 동생 사이로 모이게 한 주인공은 바로 학자이자 여성학·여성운동의 '대모'인 이효재 선생이다. 정작 당신은 크게 일을 벌이는 것이 한사코 "싫다"시며, 얘기조차 못 꺼내게 했지만 큰 스승의 80회 생신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후배, 제자들이 '선생님 몰래' 준비한 축하의 자리였다.

최영희 내일신문 부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효재 네트워크'라 할 중년의 제자들. 그들은 이날 모임에서 선생님을 추억하며 크고 두터운 존경과 사랑의 눈길을 보냈다. 무엇이 이들을 '이효재'라는 이름 앞에서 때론 한없이 작고, 때론 한없이 뿌듯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일까?

제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선생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내 삶은 평생 선생님 뒤를 따른 것이다. 선생님으로 인해 여성 문제에 처음 눈 뜨고, 선생님 조교로 10년을 공부하고 여성운동을 하고…. 열심히 좇았지만 여전히 아직도 멀었다. 선생님이 일생 동안 보여주신 여성과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끈질긴 애정은 감히 따를 재간이 없다. 이렇게 뒤따를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은희 여성부 장관의 말처럼 제자들은 한결 같이 이효재 선생을 '정말 존경할 만한 큰 어른' '그 존재만으로도 축복' '내 삶의 거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강자 민우회 공동대표도 "선생님은 한 시기 그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이슈를 놓치지 않으셨고 우리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늘 화두로 던져 주셨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지식인, 그의 발자취가 한국 여성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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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발자취는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이효재 선생은 이화여대에 사회학과가 생기던 195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부임하면서 학생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59년에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던 김주숙 한신대 교수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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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선생님은 초록색 투피스에 높은 코, 굵은 컬이 있는 머리, 날씬한 몸매로 서양 선교사를 연상시켰다. 수업 시간에 말씀도 어눌하게 하셨는데, 2학년초 어느 날 신문 사회면조차 읽지 않는다며 추상같이 야단을 치셨다. 4·19가 일어났던 해에는 침묵하는 이화 교정을 보시며 화를 내시던 기억이 난다."

이효재 교수는 당시의 보수적인 이화여대 분위기에선 '튀는' 교수였다. 70년대 초반엔 이화여대 학생운동 서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새얼'의 지도 교수를 맡았는데, 이는 그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효재 선생의 삶조차 적극적인 사회 참여 쪽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선생님을 지도 교수로 모신 건 학생과에서 지도 교수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였다. 무엇인가 배울 거란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애정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수유리로 첫 M.T를 갔을 때, 우리가 앞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자고 혈기 방장하게 떠들어대자 선생님께서 너무나 감격하셨다."

당시 새얼 회원이었던 이옥경 미즈엔 대표에 따르면 "새얼 회원들이 졸업하고 대부분 '운동'으로 투신하자 선생도 자연스레 운동권(?)이 되셨다"는 것이다.

덕분에 80년 광주항쟁 후엔 학교에서 해직되고 해직교수협의회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하면서 신군부에 쫓기는 몸이 되었다. 김주숙 교수는 "그때 선생님은 압구정동 아파트에 피신하고 계셨다. 그 고통스러운 시절이 선생님에게는 한국 사회를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사회변화를 위해 주체적으로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는 준비 기간"이었다고 회상한다.

해직 기간 선생은 제자들이 기꺼이 성금을 거둬 마련한 여성한국사회연구소에서 여성운동의 방향을 세우고 또 스스로 여성운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84년 '함께 가는 생활소비자협동조합' 설립, 87년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 정신대 문제를 국제적 쟁점으로 승화시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까지(91)…. 그의 발자취는 한국여성운동의 흐름이자 방향이었다.

정강자 민우회 공동대표는 "지금 활동하는, 1987년 이후 나타난 여성 단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선생님과 연결이 돼 있다. 학문적 선배로서, 여성운동의 대모로서 지금까지 그 역할을 마다 않고 실천적 작업과 총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여성학의 텃밭 갈고 여성사회학의 깃발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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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이 마련한 선생의 8순 축하 모임. 지은희 여성부 장관, 이미경 전 의원을 비롯, 여성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선생의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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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선생은 실천의 현장에서 뿐 아니라 학자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여성학이란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국내 여성학·여성운동의 텃밭을 그야말로 맨발로 다듬고 골라냈던 인물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여성사회학'의 대모로서 이론적인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출간된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은 여성학자로선 유일하게 선생의 '여성사회학'을 독특한 우리 이론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책에서 이재경(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서구의 관점이 아닌 우리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여성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실천을 학문적 과제로 설정"했다고 설명한다. 
즉 서구의 페미니즘 이론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 아니라 분단과 가부장제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여성의 위치와 역사 속에서 여성 문제를 바라보고 연구한 업적이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의 학문적 열정은 지금도 식지 않았다. 97년 고향 진해로 내려간 이후 줄곧 가부장제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한국 사회 여성문제와 비민주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박게 됐는지에 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조선조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노비층과 서민층까지 내면화됐는지 항상 궁금했었어. 가부장제도는 양반 지배층의 정당화 수단으로서 신분 세습의 역할을 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국사학계의 연구를 다시 여성의 입장, 가족사의 입장에서 연구했어."

이효재 선생의 연구 결실은 최근 <조선조 사회와 가족>(한울아카데미)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열정적인 순수함, 넓디 넓은 그늘, 따뜻한 친정 엄마

이 모든 업적만큼이나 이효재 선생을 존경받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인품, 따뜻한 마음이다.

"선생님은 크신 분이다.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그늘 아래 편히 쉴 수 있도록 해 주신다. 여성 지도자들이 부족한 덕목인 포용력이나 네트워킹을 선생님은 온몸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계신다." - 장하진(여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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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팔순 축하모임.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 ⓒ 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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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정의감이 넘치되 강파르지 않으셨고 선구적이되 별나지 않으셨으며 정이 많고 따뜻하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장 향기로운 점은 '순수'한 분이라는 것이다. 선생님만큼 어떤 일을 할 때 일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일의 결과로 주어질 수도 있는 명예나 영달, 비난 같은 것을 계산하실 줄 모르셨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까 시기하고 견제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선생님을 곁에서 지켜보며 매번 느꼈다."- 이옥경(미즈엔 대표)

특히나 운동을 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제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선생의 보살핌과 따뜻한 배려는 그들에게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언덕이며 쉴 수 있는 그늘이자 따뜻한 친정 엄마의 품이었다.

"수배되어 열네 달 동안 도망다녔을 때는 끼니 거르지 말고 다니라면서 돈 보내 주시고, 결혼하고 애 낳았을 때는 병원까지 와 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그 큰 사랑 없이는 지금 살아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스승이며 또 다른 어머니시다. 살다가 지쳐 주저앉고 도망가고 싶을 때 나를 붙들어 일으킨 분, 당신의 온 삶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항상 보여 주시는 분이다." - 김은혜(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 70학번)

강명순(부스러기 사랑나눔회) 목사는 선생의 그 사랑을 한 편의 시로 엮어 팔순을 맞은 큰 스승께 바쳤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든 제자들과 딸들의 염원을 담아.

"사당동 판자촌에서/
물지게 지고 일하다/
땀투성이 머릿니 버글버글/
지친 몸 지친 영혼/
봉원동 선생님댁에 들어서면/
한결같이 반기시며/
목욕하거라 밥먹고 가거라/
고생이 많구나/
희경아 얼른 밥해서 먹여 보내자/
우렁우렁 내 영혼/
엄마 사랑 전기 감전되듯/
충전되어 산동네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느티나무 넉넉한 그늘로/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주욱 솟아오른 가지들의 기개로/
민족의 아픔 여성의 아픔/어루만지셨던 선생님은/
우리들의 넉넉한 품/
피할 바위 어머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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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좋은 글입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여성학 그룹이 하나의 페쇠적인 진영의 형성이라고도 보입니다. 이안에서는자기비판이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박유하 교수 같은 외부 인물은 이 사이에 낄 수가 없게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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