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박인식 | Facebook · 사우디 이야기

(2) 박인식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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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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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는 2009년 2월 사우디 현지법인에 부임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은퇴할 나이를 넘긴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이곳에서 해야 할 역할도 끝나가는 것 같아 조만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니 그동안 낯선 곳에서 낯선 관습과 낯선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경험을 그냥 묻어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경험한 것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사소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같은 길을 걸어야 할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출장도 잦고 잠깐 현장에 주재한 일이 있기는 해도 활동영역이 수도인 리야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업무영역도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환경사업에 한정되어 시장을 폭넓게 알지 못합니다. 발주처도 몇몇 정부기관에 한정되어 있어 다른 정부기관이나 사기업의 상황은 잘 모릅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우디 사람이 좀 있기는 해도 모두 업무로 알게 된 사이이니 그들의 속내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한정된 곳에서 한정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경험한 것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에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전체를 아는 것처럼 글을 쓰지나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가능한 직접 겪고 확인한 사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류가 없을 수도 없고 제 개인적인 느낌을 온전히 배제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겠습니다마는, 아무튼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1) 아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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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1] 아랍어
崔明淑, Park Yuha and 5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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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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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10, 完) <대형 원전> 대형 원전은 당초 계획보다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뒤흔드는 결정이니 감안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고, 해보지 않은 일이니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사우디 재정상태를 고려할 때 결국은 원전 사업자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처가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대형 원전 RFI 발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아랍에미리트-미국 컨소시엄 가능성이 대두된 일이 있다. 미국의 핵 규제 정책이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사우디로서 미국의 압력을 외면할 수 없고, 그렇다고 원전 건설이 40년 이상 중단된 미국에 맡기자니 기술력도 안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요인은 결국 건설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니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국-미국 컨소시엄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원전 사업자가 사업비를 조달한다면 사우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원전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싶은 아랍에미리트(아부다비)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데, 아부다비 원전을 우리가 건설하고 있고 미국과의 관계도 좋으니 한국-아랍에미리트-미국 컨소시엄은 그저 좋은 대안이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인 카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럴 경우 돈 되는 건 모두 미국에 넘겨준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원전 사업이 단지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기회를 놓쳐 애써 일궈놓은 원전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것보다는 목숨이라도 붙여놓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겠나. (원자로 계통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노형을 선점한다면 후속 사업에서도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고. 국내에서는 원자력산업을 사양산업으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인데, 에너지 전문가들이 비록 원전 주도형 에너지 공급정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에너지 믹스의 일환으로 원전을 어느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걸 보면 원전 산업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명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를 위해서도 사우디 원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우리 몫이 작아지더라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수주에 임했으면 좋겠다. <스마트 원전> 많지도 않은 인구가 워낙 넓은 땅에 흩어져 사니 전력이나 물은 생산비에 비해 운송비 비중이 매우 높다. 100메가와트 규모의 스마트 원전이 인구 10만 명 도시의 전력과 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건설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우디 상황에는 최적의 대안일 수 있으니 사업성도 그만큼 높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인허가를 받았다 해도 아직 건설된 사례도 없고, 인허가 받은 수랭식을 다시 공랭식으로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게다가 KACARE가 과연 대형 원전과 스마트 원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겠나 하는 의문도 남아 있다. 물론 초기에는 외국 기술에 의존해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으니 무리해서 하겠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 원전이 대형 원전만큼 화급을 다투는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마트 원전 건설은 기술적인 면이나 예산 측면보다는 사우디 정부의 의지에 달린 일이 아닐까 한다. 시급한 일부터 차근차근히 해결해 나갈 것인가, 다소 무리하더라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한 번에 해치울 것인가 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대형 원전에 집중하고 스마트 원전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써놓고 나니 처음 생각과는 달리 대형 원전과 스마트 원전을 병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 6개 노선 176킬로미터를 한 번에 파헤치는 나라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리야드 지하철 건설 정책은 무리한 시도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 어느 자리에서 사우디 원전 관련한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기억이 제대로 나지도 않고 일의 선후도 뒤바뀌어서 어딘가 정리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기록을 쓸 일이 생기겠나 싶기는 하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차분히 기록을 챙겨가며 공들여 쓴 것이 아니라 그저 떠오르는 대로 최소한의 사실만 확인하고 쓰다 보니 글이 두서가 없다. 혹시 이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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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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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2) 1980년 월성원자력 후속기 부지조사를 시작으로 2009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사업을 끝으로 본사를 떠나 사우디 법인으로 부임할 때까지 30년을 원전 사업으로 먹고 살았다. 뭔가 계산이 있어서는 아니고 사우디도 언젠가는 원전을 짓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부임하고 나서 시장을 기웃거리기는 했다. 원전 사업이라는 것이 내가 기웃거린다고 찾아질 시장이 아니었지만. 부임 다음해인 2010년 4월에 사우디에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KACARE, King Abdullah City for Atomic and Renewable Energy)이 출범한다. 당연히 기대에 부풀었다. 2010년말 KACARE에서 원전 입지선정 용역 공고가 난다. 한국 업체 중에는 한국전력기술이 유일하게 자격을 갖춰 입찰에 초청된다. 기대했던 대로 우리에게 협력을 요청해왔다. 현지 업체의 역할은 자료 확보와 현장조사에 한정되었지만 그것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으니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듣고 알아들은 바를 정확하게 이행할 능력을 갖춘 업체라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적절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업무내용 뿐 아니라 업무 이행방식에도 익숙해 있어 요구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이행하는데 문제가 없고, 이곳 시장상황도 이해하고 있는 한국 업체로서는 우리가 유일했다. 1984년 영광 원자력 3, 4호기 부지평가 때부터 이십 년 넘게 함께 일해 왔으니 그만한 협력관계는 국내에서도 견줄 데가 없었다. 사우디 시장이 낯선 그들에게 나름대로 힘이 되겠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호주의 Worley Parsons가 용역업체로 선정된다. Worley Parsons는 사우디 서부(홍해)지역 9개소, 동부(걸프해)지역 6개소, 내륙 2개소 등 모두 17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원전 건설부지로서의 적정성을 평가해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2013년 9월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보도 자료를 보면 17개 후보지 중 홍해 해안의 타북과 지잔, 걸프해 해안의 주베일 등 3개 지역을 최종 후보지로 추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세계원자력협회가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기관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보도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과 거리가 있다. 2018년 1월 KACARE는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국경에 인접한 Umm Huward와 Khor Duweihin 2개소를 대형 원전(LNPP, Large Nuclear Power Plant)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한다. 걸프해 해안에 위치한 주베일에서 300km 이상 남쪽으로 떨어진 곳이니 같은 행정구역(Eastern Province)이라 해도 이를 동일한 지역으로 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SMART 원전(중소형 원전)과 관련해서 2017년 3월 KACARE 원자력 국장으로부터 입지선정 예비평가를 수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SMART 원전 Pre Project Engineering이 진행 중이니 곧이어 부지평가가 발주될 것으로 예상하고 참여기회를 얻으려고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다닐 때였다. SMART 부지가 홍해 연안의 얀부로 결정되었는데, 그때 우리에게 예비평가를 요청한 원자력 국장이 얀부 지역이 Worley Parsons가 2011-2012 평가결과로 추천한 6개 후보지 중 하나라고 했다. (예비평가라고는 해도 원전 부지선정 용역의 일부에 대한 실적만 있는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감당할 일이 아니어서 한국전력기술이 앞장서고 실무는 양사가 협력하기로 했다. KACARE에서는 일정이 촉박하다고 최소 6개월은 걸려야 할 일을 3개월에 끝내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했지만 계약방식과 계약금액을 확정하는 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고, 그 이후로 만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예비평가를 준비하면서 KACARE에 2012 Worley Parsons 보고서를 요청했지만 끝내 받지 못했다. 물론 원전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기술적인 요소만 감안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전체 17개 후보지의 평가결과가 어땠고, 그것이 왜 변경되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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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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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9) 2011년 6월, KACARE에서 향후 20년간 800억 달러를 들여서 원전 16기를 건설해 전체 전력수요의 20%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다. 그리고 두 해 뒤인 2013년 4월에 원전 건설을 2016년 착수하겠다는 일정을 발표한다.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계획이었고, 2017 가을이 되어서야 원전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5개국에 RFI를 발송한다. 2017년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RFI에 대한 자료를 받아 4개월 안에 1차로 2~3개국을 선정하고, 복수로 선정된 국가와 계약(PDA)을 맺어 16개월 간 개념설계를 실시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늦어도 2018년 초에는 발표되었어야 할 1차 선정결과는 그로부터 6개월 이상 늦어진 2018년 7월에 5개국을 모두 선정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어서 선정된 국가와 계약을 체결하고 개념설계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도 없고,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다고 한다. 원전 건설 계획을 밝힐 때만 해도 정부 의지가 워낙 강하니 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사우디 정부에서 하는 일이 일정대로 진행되는 사례를 찾기 어려우니 어느 정도 늦어지는 건 이해한다고 해도 이미 사업을 착수해 첫 단계를 마치고 나서도 1년 반이 지나도록 진척도 없고 향후 일정조차 공개되지 않는다는 걸 보면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KACARE가 원전 건설을 추진할 만큼 역량이 갖추기 어려운 건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니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겠나.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외국 기술력에 의존했으니 그게 새삼스럽게 지연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건설비 조달에 차질이 생긴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원전 건설이 사우디 정부 재정사업이 될 것인지, 아니면 원전 사업자가 금융조달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원전만 생각한다면 사우디가 20년에 걸쳐 800억 달러를 조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당장 그 돈이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유가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매년 300~5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 적자는 쌓여만 가고, 게다가 왕세자가 의욕적으로 펼치는 개발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어야 하니 원전 사업비를 조달하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최근 1~2년 사이에 발표한 신도시 개발사업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물경 5천 억 달러를 투자해 건설하겠다는 NEOM City는 26,500 km2, 인근에 함께 개발하고 있는 Red Sea Project는 28,000 km2, 두 도시 사이에 개발예정인 Amaala는 3,800 km2에 달한다. 리야드 인근에 미국 올랜도 디즈니랜드를 모델 삼아 개발하겠다는 Qiddiya도 334 km2에 이르는데 서울 면적이 605 km2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다. 참고로 사우디 외환보유고는 2015년 7,500억 달러에 이르던 것이 2017년 4,500억 달러까지 내려와 현재까지 그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아람코 상장으로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기는 한데, 주가가 생각만큼 받쳐주지 못하는데다가 유가는 내려갈 일만 있다는 게 중론이니 상장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재원도 생각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정부 사업비 지불이 점점 더 악화되는 걸 보면 어쩌면 알려진 것보다 재정상태가 더 나쁜 건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가 수행한 작은 용역조차 작년 5월에 신청한 1차 기성이 며칠 전 일부만 지급되었고, 그 이후에 신청한 2차 3차 기성은 아직 재무부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이곳은 모든 정부 재정사업비가 재무부를 통해 지불된다.) 주변 상황을 보니 왕세자가 직접 챙기는 사업은 기성이 제 때 지급되는데 그 관심의 대상에서 떨어져 있는 사업은 떨어진 거리만큼 지불이 지연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원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면에 이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만약 짐작한 대로 대형 원전이 정부 재정사업이 아니라 투자사업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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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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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7) 사우디가 부자이지요. 최대 산유국이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면 한 해 재정수입이 얼마나 될까요? 간단합니다. 산유량에서 내수를 제외하면 수출량이 되고, 여기에 유가를 곱하면 원유 수출로 버는 수입이 됩니다. 이와 같이 원유 수출로 버는 돈이 전체 재정수입의 70% 정도이니 (2017년 기준 69.4%) 전체 수입 규모를 추정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산유량은 OPEC 할당량을 넘지 못합니다. 대체로 1천만 배럴로 보면 무리가 없습니다. 원유 내수가 30% 정도이니 수출물량은 하루에 7백만 배럴을 넘기 어렵습니다. 원유 내수 대부분은 발전용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수는 매년 전체 생산량의 1% 정도씩 늘어난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5년 후에는 전체 생산량의 35%, 10년 후에는 40%에 이르게 되지요. 원유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가 팔 원유가 줄어드는 겁니다. 거기에 떨어진 유가는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몇 년 전부터 각종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향상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이에 미달하는 제품은 폐기처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동안 원유발전에 의존하던 것을 효율이 높은 가스복합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이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것 모두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우디 재정수입을 추산해 볼까요? 2017년 사우디 정부예산에 따르면 원유 수입(Oil Revenue)이 전체 재정수입의 69.4%이고 유가는 배럴당 55달러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산유량 하루 1천만 배럴 중 수출물량 하루 700만 배럴, 배럴당 55달러를 가정할 경우 한 해 원유 수입이 1,405억 달러(한화 157조 원)입니다. 그렇다면 사우디 한 해 총 수입은 2,024억 달러(한화 227조 원) 정도가 됩니다. 우리나라 2017년 예산이 400조 원이니 원유수입이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참고로 사우디 인구는 3천 만 명으로 우리 인구 5천 만 명의 60% 정도입니다. 이 비례를 감안하더라도 수입 규모가 생각만큼 크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예산에 유가를 배럴당 55달러로 산정했습니다만, 사실 2015년에 30달러 밑으로 떨어져서 2016년 내내 40달러 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 초에 겨우 50달러를 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50달러 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니 실제 수입은 이보다 10% 이상 밑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로 사우디 2017년 예산은 수입 1,840억 달러에 지출 2,370억 달러로 한 해 적자가 530억 달러에 달합니다. (재정수입을 위에서 추산한 2,024억 달러보다는 조금 보수적으로 잡았군요. 그래도 실제 원유 수입이 기대보다 10% 이상 못 미치는 점을 고려한다면 재정 적자규모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우디 외환보유고가 2014년 초에만 해도 7천 억 달러를 훨씬 넘었습니다만 이렇게 적자 재정을 편성하다 보니 올 9월 현재는 4천8백 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 초에 4천 억 달러 중반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이후에 유가가 오른 것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올해 예상되는 재정 적자가 530억 달러 정도이니 내년에는 4천 억 달러 초반으로 떨어지겠네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MbS는 네옴 신도시 건설을 비롯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굵직굵직한 계획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네옴 신도시 사업이 5천 억 달러,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이 2백 억 달러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한 해에 모두 투입되는 건 아닙니다만, 이 돈이 어디서 나올까 싶은 생각이 안 드십니까? (거기에 예멘 전쟁에 투입되는 전비도 연 수백 억 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아람코 지분 5%를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이를 재원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발표했습니다. 아람코 전체 지분을 2조 달러로 추산했을 때 5%를 상장하면 1천 억 달러 정도를 조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최대 700억 달러, 최소 400억 달러 정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말하자면 이 금액으로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MbS의 성공에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고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MbS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난관을 돌파하려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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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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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4) 2015년 3월 국빈 방문 때 생각지도 않았던 SMART 협력 양해각서가 체결된다. 국빈 방문 의제는 대체로 3개월 전부터 주재국 대사관과 본국 관련 부처가 협의를 시작한다. 당시 우리 회사는 대우조선해양과 추진하고 있던 사우디 국영조선소 건립 건을 의제에 포함시키려고 일찍부터 대사관과 협의를 하고 있었는데, 방문 한 달여를 앞두고 SMART 의제가 추가되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알아볼 새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불과 6개월 뒤 KACARE와 한국원자력연구소 간에 Pre Project Engineering (PPE) 계약을 체결한다. 양해각서가 실제 계약으로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고, 이루어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일인데 불과 몇 달 만에 KACARE가 1억 달러를 대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천 만 달러를 대서 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상대가 사우디 정부이니 왜 안 그렇겠나. 당장 부지평가 사업에 참여할 준비를 시작했다. 설계를 맡은 한국전력기술과 공식적으로 창구를 개설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어서 무작정 지사가 있는 아부다비로 달려갔다. KACARE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력기술에서 리야드에 지사를 개설했지만, 몇 년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어 리야드 지사장은 철수하고 아부다비 지사장이 리야드 지사를 함께 관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협력업체로 일했던 실적을 설명하고, 다행히 본사 해당부서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어렵지 않게 부지평가사업 수주와 수행을 위해 양사가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부지평가는 양국 간에 체결된 PPE 계약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KACARE에서 별도로 발주 절차를 밟아야 하는 사업이었다. 사업 성격으로 보면 당연히 PPE의 일부이니 계약자인 한국 측에서 수행하겠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발주처가 별도 사업으로 공개 입찰에 붙인다 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도록 발주처에게 한국 측이 부지평가를 수행해야 할 당위성을 잘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계약 주체인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는 자기 담당 업무가 아니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사우디를 온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지평가를 수행할 주체인 한국전력기술도 리야드에 상주하지 않으니 결국은 우리가 나서야했다. PPE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동안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어 KACARE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당시 부임하신 권평오 대사께서 우리 애로 사항을 듣고 KACARE 원자력 국장을 연결해주셨다. 권 대사께서는 사우디 대사 임기가 끝나기 전에 KOTRA 사장에 선임되셔서 현재까지 열정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계신다. 아마 그 어간이 아니었나 싶은데, 한국형 원전 개발의 주역이셨던 김병구 박사께서 2014년부터 KACARE에 고문으로 계신 걸 알게 되었다. 권 대사님과 김 박사님의 도움으로 KACARE 원자력 국장께 우리 실적을 소개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KACARE를 출입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아직 원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이라 어려움 없이 고위직부터 실무진까지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원자력 국장 휘하에 있던 실무진 중 원전사업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관련된 분야의 박사급 외국인 컨설턴트 몇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젊은 사우디 직원이 몇 명 더 있기는 했지만 경험이나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할 때 가동 인력으로 보기 어려운 정도였다. 결국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원자력 국장이 유일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 인연으로 다음 해인 2017년 봄에 SMART 부지 선정 예비조사 용역을 수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아무튼 막연히 기다리던 원전사업이 2015년 SMART PPE 계약이라는 실체로 현실화되면서 한국전력기술과 협력협약에 합의하고, 킹사우드대학 지질학과 교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부지평가팀도 꾸리고, 현지 업체 몇 곳으로 supply chain을 구축한 채로 2016년을 맞는다. <사진> 킹사우드대학 부지평가팀과 협력협약 체결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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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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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8) 사우디의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언젠가 원전을 건설할 것으로 예상했고 기대했던 대로 2010년에 KACARE가 부지선정을 위한 평가를 시작했지만 쉽사리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5년 생각지 않았던 스마트 원전 PPE 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대형 원전 건설이 다소 미뤄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했어도 수주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렇게라도 한 발 들여놓는 게 앞으로 사우디 원전 수주 경쟁에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부지평가 역무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마트 원전 부지평가를 수행하고 나면 현지업체로서는 우리가 유일하게 원전 부지평가 실적을 갖게 될 것이니 이어질 대형 원전 부지평가를 수주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 원전 부지를 이관하는 과정에서 부지 원 소유주인 Royal Commission이 KACARE에 원전 건설지점을 선정한 근거를 요구했는데 KACARE에서는 이런 과정 없이 원전 건설지점을 선정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그 근거를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에게 사전평가를 수행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후 PPE 계약 당사자인 한국원자력연구소, 설계를 담당할 한국전력기술과 협의를 거쳐 2017년 4월 KACARE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착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대형 원전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기다리던 사업이기는 했지만 KACARE의 역량을 감안할 때 이미 착수한 스마트 원전 건설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처음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니 조직이며 역량을 제대로 갖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태이니 규모가 작은 스마트 원전을 먼저 건설해 경험을 쌓은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형 원전을 시작하는 게 여러 모로 좋았을 텐데. KACARE와 스마트 원전 부지 사전평가를 협의하다 보니 인력 자체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인력도 원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그 인력으로 스마트 원전과 대형 원전을 어떻게 함께 꾸려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스마트 PPE를 진행하면서 KACARE 기술진에 대한 훈련도 아울러 이루어졌다. 당초 3년 일정으로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실시하기로 계획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처음 6개월은 리야드에서 훈련을 받고 2016년 7월이 되어서야 대전으로 옮겼다. 이슬람 문화권의 생활양식은 우리와는 너무 달라서 훈련 받는 이들이나 훈련을 담당한 이들 모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별 어려움 없이 훈련이 잘 마무리되어 후속 교육이 필요한 일부만 남기고 2018년 12월 모두 리야드로 복귀한다. 2017년 4월에 스마트 원전 사전 부지평가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도무지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긴 제안서 제출했을 때쯤 이미 대형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을 것이니 무슨 정신으로 스마트 원전 부지평가를 챙길 여력이 있었겠나. 우여곡절 끝에 사전 부지평가 용역 계약서가 마련되고 이듬해인 2018년 1월에 한국 측에서 서명한 계약서 원본이 KACARE에 전달된다. 당시 KACARE는 원장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고 에너지부 알팔리 장관 직할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모든 계약서는 장관 재가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알팔리 장관은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국정의 상당 부분에 간여하고 있는데다가 대형 원전 건설 계획까지 발표된 상황이니 그의 재가를 얻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KACARE에서 워낙 서둘러대는 통에 몇 달 걸려야 하는 자료 수집을 한 달 안에 마치기로 했다. 자료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일 처리가 더디기 짝이 없는 사우디에서 한 달 안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계약되기도 전에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계약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KACARE 원장이 부임하고 나서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2018년 2019년을 흘려보냈다. 일은 거의 다 해놓고 계약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PPE 성과로 제출해야 하는 예비안정성분석보고서(PSAR)는 해당 항목을 제외한 채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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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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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4) 2015년 1월, 살만 국왕이 즉위하면서 대대적으로 내각을 개편합니다. 23개 부처의 장관 중 내무, 외무, 국방, National Guard 네 부처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간인을 임명합니다. 왕자가 장관으로 있는 네 부처 중 국방부장관은 왕세자인 MbS가 차지하고 있고, 외무부장관이었던 사우드 알 파이잘 왕자는 석 달 뒤 퇴진하고 민간인인 아델 알 주바이르가 임명되었으며, 내무부장관은 이번에 MbN을 퇴진시키면서 허약해 보이는 압둘아지즈 왕자를 세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National Guard 장관이 바뀌지 않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튼 왕가 중에서 살만 국왕 집안을 제외하고는 내각에 들어가 국정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바꿔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우디 권력구조는 크게 각 부처 장관과 지방정부의 주지사 두 축이 있습니다. 국왕에 즉위하면서 장관을 대폭 교체하고 2016년 5월에는 내각을 개편했습니다만, 주지사는 선왕의 아들인 미샬을 메카 주지사에서 해임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외무부장관 사우드 알 파이잘 왕자의 동생인 칼리드 알 파이잘 왕자가 2007년 메카 주지사로 임명된 이래 평판이 매우 높았으나 선왕인 압둘라 국왕이 2013년 아들인 미샬을 주지사에 임명하고 칼리드 왕자를 교육부장관에 임명합니다. 말하자면 좌천시킨 셈이지요. 이것 때문에 통제 상태에 있는 이곳 언론도 잠시 소란스러웠습니다. 미샬은 재임기간이 2년에 불과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메카 타이프 지역에 터널공사가 있어 잠시 관심을 가졌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미샬 왕자를 내세운 회사의 사업추진 행태에 몹시 언짢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 예상했던 대로 미샬 왕자를 해임시키고 칼리드 왕자를 복귀시켰지요. 그것 말고는 특별한 주지사 인사는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4월 7개 지방정부에 부지사를 임명했는데, 주지사의 권한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리야드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게 특정인이 주지사를 오래 역임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왕세자였다가 살만 국왕에게 폐위된 무끄린 왕자가 하일 주지사를 20년 (1980-1999), 무함마드 빈 파드 왕자가 동부 주지사를 28년 (1985-2013), 살만 국왕이 50년 넘게 (1954-2011) 리야드 주지사를 역임한 경우 말고는 대체로 임기가 5-10년을 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독립된 세력을 구축한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서 국방부, 내무부, 외무부, National Guard는 특정 집안에 독점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살만 국왕의 동복형인 술탄 왕자가 1963에 장관에 올라 2011년 서거할 때까지 장관을 하고 이후에는 살만 국왕이 장관을 하다가 국왕에 즉위하면서 MbS가 현재까지 장관으로 있습니다. 내무부는 역시 살만 국왕의 동복형인 나예프 왕자가 1975에 장관에 올라 2012년 서거할 때까지 장관을 하고, 이후에는 아들인 MbN이 며칠 전까지 장관 자리를 지켰습니다. 외무부는 파이잘 국왕이 왕자이던 1930년 장관에 올라 국왕에 즉위하고 1975년 암살될 때까지 장관을 역임하고, 이후 아들인 사우드 알 파이잘 왕자가 2015년 4월까지 장관으로 있었습니다. 세계 최장수 외무장관을 기록하기도 한 그는 장관에서 물러나고 석 달 뒤 75세를 일기로 서거합니다. National Guard는 1962년 창설된 이후 선왕인 압둘라 국왕이 왕자 시절에 사령관으로 취임한 이후 2010년 아들인 현 미텝 장관으로 넘길 때까지 직접 관장했습니다. 미텝 왕자는 아버지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고 그 측근들이 모두 제거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National Guard 장관으로 건재하고 있습니다. 위 네 부처 중 국방부는 MbS 수중에 있고 외무부는 이미 장관이 민간인으로 바뀌어 파이잘 집안의 입김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주지사들은 국정운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어려우니 내무부와 National Guard만 살만 집안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면 사우디는 명실 공히 살만 집안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내무부와 National Guard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Wonkhap Kim and 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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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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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5) 사우디에 건설하기로 양국이 합의한 스마트 원전(SMART, System 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은 원전의 모든 기능을 단일 콘크리트 캡슐 안에 집어넣은 일체형 원전으로, 발전용량은 100MW이며 하루 4만 톤 해수를 담수화하여 인구 10만 명 도시에 용수와 함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이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2년 세계 최초로 SDA(Standard Design Approval)을 받은 300MW급 원자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소형 원전으로는 세계 최초로 안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스마트 원전은 용량이 1GW를 상회하는 대형 원전의 1/10 이하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국토가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송전망 구축에 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에는 아주 적절한 전력원이 아닐 수 없다. 사우디는 면적이 215만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스무 배가 넘지만 인구는 3천1백만 명에 불과하고 그 중 2/3 정도가 리야드, 제다, 담맘을 중심으로 하는 몇몇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그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천 만 남짓한 나머지 국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그 넓은 지역을 모두 송전망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사우디에서는 그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스마트 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넓은 지역에 인구가 분산되어 있는 다른 중동 국가들도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우디에서는 스마트 원전을 도입해 자국의 전력 공급을 해결할 뿐 아니라 이를 주변 중동 국가에 수출함으로서 경제적 이익도 얻고 아울러 중동 맹주로서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추가적인 성과도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동서 1,500km, 남북 1,500km에 달하는 매우 넓은 나라이다. 결국 건설해야 할 스마트 원전 대부분은 내륙에 위치해야 한다. 그런데 스마트 원전은 원자로를 물로 냉각시키는 수냉(water cooling) 방식이라 당장 사우디에 적용할 수가 없다. 이를 공냉(air cooling) 방식으로 변경하고 변경 모델에 대한 SDA를 별도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륙에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했다가, 내륙에 하나 해안에 하나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되더니, 결국에는 해안에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해안에 건설하는 동안 냉각방식을 변경한 모델을 설계하고 그에 대한 인증 받는 것으로 정리된다(고 한다). 100MW 용량의 스마트 원전 건설비는 현재 한 기당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설계사 쪽에서는 실제 공사비가 그보다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형원전 건설비가 5조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 원전 건설비가 상당히 비싼 편이다. 시설 용량은 1/14에 불과한데 건설비가 1/5이나 되니 말이다. 단위 용량으로 따지면 거의 세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그것도 건설 사례가 없어 과연 그 금액 안에서 끝낼 수 있을지 추가 비용이 발생할지도 분명치 않은 상태이니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대안인 셈이다. 물론 건설이 계속되면 건설비는 내려가겠지만, 그것까지 감안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이 문제 때문에 스마트 원전 건설을 담당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께서 KACARE 원장을 면담하기 위해 하루 일정으로 리야드를 다녀간 일이 있다. 과연 이런 건설비를 사우디가 감수할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어 직접 책임자를 만나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에 대한 KACARE의 시각이 매우 궁금했는데, 그들은 송전 비용 때문에 건설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하더란다. 아무튼 스마트 PPE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이와 관련해 KACARE 기술진 43명이 2016년 8월부터 3년 일정으로 한국원자력연구소의 교육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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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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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7) 2017년 9월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연차 총회에서 KACARE 야마니 원장은 원전 건설계획(SNAEP, Saudi National Atomic Energy Project) 착수에 즈음하여 10월 중에 왕세자 초청으로 리야드에서 원자력 비즈니스포럼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한다. 비즈니스포럼 이후에 한국을 포함하여 프랑스, 러시아, 중국, 미국+일본 컨소시엄에 대형 원전 2기에 대한 RFI를 발급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RFI 발급 후 4개월 안에 5개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이 중 2~3개국을 선정하여 이들 국가와 16개월짜리 개념설계 계약(PDA, Project Development Agreement)을 체결하며, 이 결과에 따라 최종 계약자를 선정한다. 개념설계에 대한 설계비는 KACARE에서 모두 지불하는 조건인데, 이는 설계비를 2중 3중으로 지급하더라도 좀 더 사우디에 특화된 모델을 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늦어지기는 했어도 해가 바뀌기 전에 5개국에 RFI가 발급된다. 우리나라는 한전을 주축으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제작사인 두산중공업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축하여 요구한 자료를 기간 안에 무난히 제출했고, 이후 자료 평가가 이어지는 몇 달 동안 기술진이 몇 차례 리야드에 출장 와서 제출한 자료에 대한 clarification meeting을 갖기도 했다. 이때 대형원전 부지평가 업체로 선정된 프랑스 Assystem도 발주처의 일원으로서 이 회의에 참여했다. 우리 역할은 부지평가에 국한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부지평가가 언제 어떤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발주될 것인지에 온 신경을 쏟았지만 뜻밖의 이유로 일찌감치 부터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었다. 원전 부지평가는 설계와 뗄 수 없는 역무인데다가 원전 구조물 기초 굴착 과정에서 지질상태가 예상과 다르게 나타날 경우 수시로 재평가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 과업의 일부로 수행이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계약자로 선정될 경우 부지평가는 설계자인 한국전력기술의 과업에 포함되고, 결국 전문 업체에서 수행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전문 업체는 그저 우리나라가 계약자로 선정되기만 바라면 되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KACARE에서는 RFI를 발급하면서 각국에 부지평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한다. 이해충돌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야 어차피 한전이 발주하고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에서 설계와 부지평가를 수의계약으로 수행하니 이해관계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우디로서는 자국에 가장 유리한 곳이 아니라 원전사업 계약자에 가장 유리한 (그러나 사우디에는 불리한) 곳을 원전 부지로 선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 그들의 논리도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부지평가 참여 기회를 날렸다. 물론 건설과정에서 추가적인 부지평가가 여러 차례 이루어지기는 해도, 그게 과연 언제 이루어질지도 불투명하고 규모도 본 평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RFI에 맞춰 5개국 모두 자료를 제출하고 몇 달 동안 평가가 이루어진 다음 1차 관문을 통과한 국가가 발표된다. 평가가 이루어지는 동안 여기저기서 한국이 평가점수가 가장 높았다는 말이 들리기는 했는데 어느 경로로도 그게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튼 알려진 바와 같이 자료를 제출한 5개국이 모두 통과한다. 5개국이 모두 통과했다는 발표를 듣고 한 편으로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기도 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국가와 개념설계 계약을 맺고 설계비를 지불해야 하니 5개국을 모두 통과시킬 경우 설계비 부담이 두 배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끝까지 경쟁시켜 쥐어짤 수 있는 사업비는 설계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원전사업자를 결정하는 데 어디 사업비만 따지겠는가. 원전사업이야 국가 간 거래가 아닌가. 그러니 문화재도 따라가고 무기도 따라가는 것이지. 월성 원전 때 캐나다 수상이 다녀가고 울진 원전 때 프랑스 대통령도 다녀가지 않았나. 그러니 모든 산업 생태계를 뒤바꾸겠다는 사우디로서는 끝까지 경쟁을 유도하고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 원전 때문에 갈등이 생겨 이를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급하게 아랍에미리트를 다녀간 일이 있었다. 그때 국방협력이 패키지의 일부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거론 되었는데 일각에서 이를 마치 부정한 거래인 것처럼 몰아가는 걸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원전에 국방협력이 한 묶음으로 따라 붙는 건 상식이고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당시 이미 공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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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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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8) 새 왕정이 들어서고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휘발유 값이 한 번에 67%나 올랐습니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누진제 적용만으로 최대 10배 가까이 인상이 되었습니다. 국민 건강을 이유로 탄산음료에 50%, 담배에 100% 세금이 붙었습니다. 올해부터 개발하지 않고 놀리는 땅에 대해 공한지세 2%를 거둔다고 하지요. 이는 지주에 해당하는 것이니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공한지세가 2%라면 엄청난 수준인데 과연 지주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이 큰 세금을 내겠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자기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 들지 않을까요? 예컨대 자기가 생산하는 제품가격이나 제공하는 서비스요금을 올린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설마 했던 부가가치세가 계획대로 내년부터 5% 적용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년에 물가가 상당히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정이라고는 해도 국민들 눈치를 전혀 외면할 수는 없었는지 올 초에 인상할 계획이었던 휘발유 값이나 구체적인 인상안까지 마련되어 있던 전기요금은 아직 동결된 상태로 있습니다. 대신 만만해 보이는 외국인 거주자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부양가족세는 가히 살인적입니다. 부양가족이라고 해야 아내 하나 뿐인 제 경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부양가족이 많은 저소득근로자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입니다. 함께 일하는 요르단 직원은 아내와 자녀 둘, 이렇게 부양가족이 세 명인데 이번에 이까마 갱신하는데 6천 리얄(1,600달러)을 부양가족세로 내야한답니다. 거의 한 달치 급여에 가까운 큰 금액입니다. 내년에는 이 금액의 두 배, 후년에는 네 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전기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이기는 한데 국민 반발은 신경이 쓰이니 일단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자국민에게는 차액만큼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 결국 만만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지요. 얼마 전, 업무 때문에 2016년 사우디 인구통계를 확인한 일이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3,174만인데 그 중 외국인이 1,167만으로, 이 중 취업인구는 자국민이 502만, 외국인이 735만입니다. 더구나 자국민 취업인구 중에는 허수도 적지 않을 것이니 숫자로만 보면 사우디 경제의 주체는 자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인 셈입니다. 이처럼 경제주체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을 쥐어짜야 할 만큼 사우디 재정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새로 들어선 왕정에서 일부러 이런 정책을 펴기야 했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새 왕정이 들어서고 나서 저유가가 본격화되었으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烏飛梨落)입니다. 새 왕정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을 하자니 돈은 있어야 하겠고, 나올 곳은 점점 형편이 어려워지니 이렇게라도 할 수 밖에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우디는 올해 적자재정을 편성했습니다. 내년이라고 다를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환보유고로 버틸 수 있는 한도가 앞으로 불과 몇 년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네옴 신도시며 원자력발전소는 무슨 돈으로 짓겠습니까?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비를 2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는데, 전체 계획은 무려 17기나 됩니다.) 네옴 신도시 개발 재원조달계획은 아직 발표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MbS가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Vision 2030 달성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아직 불분명해 보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사업참여국가에서 재원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조건이라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경쟁국에서는 응할 것도 같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유지하고 있는 탈핵기조를 고려한다면 재원조달까지 책임지는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사우디에서 요즘 추진하는 가장 흔한 사업형태가 PPP(Public-Private Partnership)입니다. 정부에서는 땅이나 인허가, 행정명령 등을 지원하고 민간에서 투자와 운영을 담당하는 형태이지요. 일종의 민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군요. 투자와 운영은 민간에서 담당하지만 사용료는 사용자, 즉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저 빚으로 꾸려가는 셈입니다. 저희도 환경과 관련해서 몇 가지 PPP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희 뿐 아니라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 대부분이 이런 형태이지요. 이럴 경우, 민간 투자자로서는 이익을 내야 하니 빚에, 이자에, 운영수익이 모두 국민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부담을 국민들이 과연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희가 추진하는 사업모델도 성사되겠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결국 새 왕정의 성공은, 다시 말해 MbS의 성공은 이러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은 해야 하겠고, 돈은 없고, 빚으로 꾸려가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부자들에게 돈을 내놓으라면 순순히 내어 놓을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재원조달에 대한 조급증이 이번 친위쿠데타의 원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적 제거도 물론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정적 제거가 목적이라면 굳이 그들을 리츠칼튼 호텔에 수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외신에서도 재산헌납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더군요. 친위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며칠 사이에 유가가 꽤 뛰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배럴당 55달러 선이던 두바이유가 불과 3~4일 만에 62달러까지 올랐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친위쿠데타를 계기로 사우디가 원유 감산을 유지할 것이고, 기대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감산 참여로 상당기간 동안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네요. 사우디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이란과 긴장이 점점 도를 높여가고 있는데, 정말 잘 마무리되기 바랍니다. 이란과 충돌하게 되면 전쟁비용이 예멘보다도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되 테니 말입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이젠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단계인데, 기왕 곤욕을 치른 왕자들이나 부자들이 흔쾌한 마음으로 곳간을 좀 열고, 유가도 60달러 선을 잘 유지해서 MbS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 잘 성사되기를 기대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형편이 나아지면 외국인 쥐어짜는 것도 좀 덜하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지위향상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되기를 기대합니다. 여성 권익신장도 중요하지만 이로써 그저 잠재력으로 남아있던 여성인력이 경제인구로 편입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우디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객관적인 수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사우디 남성보다 여성이 생산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쪼록 사우디 왕정이 난국을 지혜롭게 잘 풀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우디 경기가 살아나고, 우리 교민이나 우리 기업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해서 사우디 성장에 기여하고, 그 결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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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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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5, 完) 첫 회에 언급했습니다만, 사우디는 192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 받았고 1932년 통일왕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왕국의 역사가 85년 남짓 한 것이지요. 왕국이라서 그런지 이곳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가 있습니다. 정부가 결정한 것에 저항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평불만 수준의 부정적인 정서도 우리보다 훨씬 덜 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정책을 구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생계비용인 물, 전기, 휘발유, 밀가루 값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어떤 경우에도 단수 단전은 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아랍의 봄 상황에서는 정부 재정, 왕실 재정을 풀어 혹시 있을 지도 모를 국민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2009년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물가가 무척 낮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물가가 오르더니 급기야는 저유가 상황이 길어지면서 물 값, 전기 값, 휘발유 값이 수십~수백% 오르기에 이르렀습니다. 몇 주 전에는 에너지 드링크와 담배 값을 100% 인상하기도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부가가치세 5%를 적용한다고 하니 물가가 그 이상으로 오르겠지요. 이젠 예전처럼 정부 결정에 순응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처럼 저항이 대대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역사가 그리 길지 않으니 여느 국민들과는 달리 유력 집안에서는 왕가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고,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지나 내나 뭐 다를 게 있는 집안이냐, 어쩌다 줄 잘 서서 왕가가 된 게 아니냐, 뭐 이런 정서가 있다는 것이지요. 왕권이 형제상속으로 이어지다 보니 어느 집안 하나가 확실하게 권력을 통제하지도 못했고 말입니다. 지금 구도대로라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MbS가 이제 30대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재위기간이 40년이 넘는 막강한 군주가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과도왕정으로 치부하던 허약했던 압둘라 국왕 일가도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막강한 수다이리 세븐을 축출할 시도를 할 정도이니, 재위기간이 길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왕권이 세워질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막강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 어떤 조치가 더 필요할까요? MbS가 국방부장관으로 있으니 군은 장악한 셈이고, 외무부도 민간인이 장관을 하고 있으니 파이잘 집안의 입김에서도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고. 남은 건 내무부와 National Guard 뿐이겠군요. 앞으로 두 부서는 어떻게 될까요? 왕세자 교체 발표하기 며칠 전 내무부에 있던 검찰 기능을 떼어내어 국왕 산하 기구로 독립시켰습니다. 그때 왕세자 폐위가 임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각 지방정부를 관할하는 기능과 경찰이 내무부장관 휘하에 남은 셈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집안의 입김을 배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내무부장관으로 임명된 압둘아지즈 왕자는 34세로 아직 특별한 경력을 쌓은 것이 없습니다. (MbS도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사우드 빈 나예프 왕자가 현재 Eastern Province 주지사로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들의 부하가 된 셈이지요. 이런 점을 들어 조만간 사우드 왕자가 주지사를 사임하지 않을까 예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압둘아지즈 왕자를 물러나게 하면 내무부 또한 온전히 살만 집안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되지요. MbN을 물러나게 하고 그 대신 조카를 앉혔으니 시비는 일단 피했고, 그 결과 MbN의 형인 사우드 왕자가 주지사에서 물러날 것이고, 게다가 압둘아지즈 왕자는 경력이나 능력을 이유로 물러나게 한다면 일거삼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건 그냥 그림일 뿐입니다. 그런데 National Guard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견고하게 자리를 유지하게 하는지. 무슨 이유가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이런 구도라면 조만간 미텝 왕자도 물러나게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 라마단 이드 휴가동안 소일거리 삼아 정리해 본 것이니 그저 그 정도로 여겨주십시오. 말하자면 “아니면 말고!” 수준의 글이라는 거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Wonkhap Kim and 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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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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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1) 사우디 원유 생산량은 OPEC 쿼터에 묶여 하루 1천만 배럴을 넘지 못한다. 이 중 내수로 소비되는 양이 작년 말 현재 372만 배럴로 거의 40%에 육박한다. 원유 내수 소비량은 2007년 240만 배럴에서 매년 10만 배럴, 즉 전체 원유 생산량의 1%씩 늘어 2015년에 388만 배럴로 정점을 찍었으며, 그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에너지효율 개선 정책으로 진정되어 현재까지 370~380만 배럴 선을 유지하고 있다. 십 년 전 사우디에 부임했을 때 휘발유 값은 한국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고 에어컨은 얼마나 세게 트는지 50도 가까이 되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긴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기름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해도 그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2007년부터 배럴 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원유 가격이 2014년 말 60달러 선으로 폭락하고 나서야 사우디 정부에서 부랴부랴 에너지효율을 따지기 시작했다. 기름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가 매년 내수 소비량이 생산량의 1%씩 늘어 팔아먹을 기름 량이 줄어드는데다가 가격까지 폭락하니 재정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급기야 외환보유고가 푹푹 줄어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사우디 정부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았겠나. 그때까지만 해도 에너지효율은 안중에도 없던 이곳 시장에서 속속 에너지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당시 LG 에어컨 공장에서는 강화된 에너지효율 등급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6개월 가까이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평생 원전 건설로 먹고 살아온 사람이니 이에 대한 해법으로 원전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닌가. 조만간 원전 건설이 현안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예상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더 맞기는 하겠다. 아무튼 이듬해인 2015년 박 대통령 사우디 방문 때 양국은 SMART 원전 건설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당시 국빈방문에 협약서 하나를 의제로 끼워 넣을 생각으로 부지런히 대사관과 접촉했던 까닭으로 의제 선정 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SMART 협약이 처음부터 의제에 들어 있지는 않았다. 짐작컨대 치밀하게 시장상황을 분석해 이를 의제에 넣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우리의 욕구와 사우디의 상황이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2015년 9월 사우디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KACARE)과 한국원자력연구소 간에 3년 기한의 Pre-Project Engineering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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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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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6) 스마트 PPE 사업은 최종적으로 예비안정성분석보고서(PSAR)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부지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지평가에 대체로 1년 정도 걸리고 그걸 PSAR에 반영하기 위해 또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2016년 중으로는 부지평가가 시작되어야 했다. 연말이 되도록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냉각방식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내륙에서 해안으로 옮기면서 부지 선정이 지체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부지가 홍해 해안으로 결정되고 나서도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부지를 확보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스무 배나 넓은 땅에 인구는 우리 절반을 조금 넘으니 사방이 비어있는 사우디에서 부지를 확보하는데 난항을 겪는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도 메디나시 생활 쓰레기 매립장 계획을 검토하면서 같은 경우를 맞닥뜨렸는데, 어지간한 땅은 왕자들이나 큰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행정명령은 그저 소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리야드 지하철 역시 자기 땅을 지나지 못하게 하는 힘 있는 왕자들 때문에 노선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스마트 원전 부지로 선정된 얀부 산업도시는 우리 회사가 대우조선과 함께 국영조선소를 추진하던 지역이어서 비교적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자료도 상당량 확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국왕 직할기구인 Royal Commission(RC) 관할 지역으로, RC에서 수십만 평에 이르는 조선소 부지를 사용 승인했을 뿐 아니라 조선소 운영에 투자하겠다는 의향까지 밝힌바 있고, 또한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배후산업단지 개발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배후산업단지 안에 신재생에너지 구역이 있었는데, 부지 선정 초기에 바로 이 구역을 RC에서 스마트 부지로 제안한 것이다. (아쉽게도 국영조선소 건립계획은 대우조선의 내홍으로 무산되었고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소 물량의 상당부분을 발주할 아람코와 합작으로 동부 걸프해 연안에 조선소를 건립하기에 이른다.) 스마트 원전 부지가 얀부 배후산업단지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3월에 KACARE 원자력국장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 지역이 Worley Parsons가 2011-2012 부지평가결과로 추천한 6개 후보지 중 하나이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건설지점을 지정하기 위한 평가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부지를 관할청인 RC에서 KACARE에 넘겨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RC가 그 부지를 스마트 원전 부지로 지정한 근거를 요구하더라고 했다. 만들지 않은 평가보고서를 요구하니 원자력국장으로서는 당장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했고, 마침 우리가 부지평가를 하겠다고 드나들 때여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이를 수행할 방법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원자력국장에게 말미를 얻어 한국전력기술과 협의 채널을 열고 합동 현장답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5월말에 KACARE 안내로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력기술 담당자들과 함께 현장을 답사했다. 당연히 해안일 것으로 생각했던 건설부지가 해안에서 내륙으로 8km나 들어가 있어 모두가 난감해 했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비용이 자꾸 늘어나 걱정이었는데 냉각수 유입을 위한 도수로 건설공사가 무려 8km나 추가되는데다가 이의 보안을 유지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산업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8km 도수로를 건설하는 건 비용문제이기에 앞서 보안의 문제이고, 이것이 허물어질 경우 원전의 안정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답사하고 나서 설계팀에서 대체 부지를 강력히 요구했고 RC, KACARE와 함께 대체 부지가 될 만한 곳을 두어 곳 더 돌아봤다. 모두 부지가 넉넉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설계팀에서 해결방안을 내놓아 최종적으로 내륙에서 해안으로 부지를 옮기는 것으로 확정했다.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건설지점 선정을 위한 부지평가 제안서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대형 원전 발주 소식이 들려왔다. 2010년 KACARE가 출범했을 때부터 대형 원전 건설을 추진했지만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도 않은 채로 스마트 원전 건설이 시작된 상태에서 대형 원전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내게는 난데없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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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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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3) (2015.02.16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기사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선왕인 압둘라 국왕은 재위 말년에 이르러 아들들을 권력 전방에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압둘라 국왕은 30명의 부인과 사이에서 35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 중에서 미텝을 2010년 National Guard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미샬은 2013년에 메카 주지사로, 투르키는 2014년 리야드 주지사로 임명합니다. 압둘라 국왕은 2005년에 즉위하였지만 선왕인 파드 국왕이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사실상 그때부터 실질적인 국왕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파드 국왕의 동복형제인 수다이리 세븐 왕자들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국정을 자기 뜻대로 운영하기는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는 해도 실질적인 재위기간이 20년에 가까워지면서 어느 정도 세력을 구축했고, 그래서 자기 아들들을 앞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압둘라 국왕은 1962년부터 국왕 재위 중인 2010년까지 국왕친위대인 National Guard 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National Guard는 사우디 국방부에 속한 정규군과는 별도로 왕가를 보호하고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두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National Guard는 와하비즘이 투철한 베두윈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군사훈련 전문업체 지도 아래 강력한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용맹을 떨치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압둘라 국왕은 재위 중인 2010년에 사령관직을 아들 미텝에게 물려주었으며, 2013년 이를 정부 부처로 승격시켰습니다. 미텝 왕자는 2010년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2013년 National Guard 장관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그 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압둘라 국왕이 서거할 때쯤 수다이리 세븐을 축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살만 왕세자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압둘라 국왕의 아들들은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지요. 그런데 National Guard 장관인 미텝만은 현재까지 직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겐 아직도 그게 수수께끼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병력을 관장하고 있는 선왕의 아들을, 그것도 현 국왕인 살만 왕세자를 축출하고자 했던 말하자면 역모의 주역을 그대로 놔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살만 왕세자 축출 시도는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기 직전인 201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왕인 압둘라 국왕은 2014년 말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왕세자는 이복동생인 살만 현 국왕이었지요. 살만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던 압둘라 국왕은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자로 책봉하고 왕명으로도 이를 변경할 수 없도록 못박아놨습니다.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살만 왕세자가 고령에 치매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결국 무끄린이 곧 국왕으로 즉위할 것이고 자기 아들 미텝은 왕세자가 될 것인데, 무끄린은 세력이 크게 없으니 미텝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도 미심쩍어한 압둘라 국왕 측근들은 살만 왕세자를 폐위하고 무끄린 부왕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하자고 압둘라 국왕에게 조릅니다. 그런데 2014년 12월 말에 접어들면서 압둘라 국왕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손쓸 틈이 없어진 겁니다. 측근들은 일단 언론에는 압둘라 국왕이 건강진단을 위해 National Guard 병원에 입원했다고 발표하고 곧이어 압둘라 국왕 명의로 살만 왕세자를 폐위하고 무끄린을 왕세자로 책봉한다는 당초 계획을 발표하려고 시도합니다. 압둘라 국왕의 측근들은 (미텝 왕자와 Royal Court의 수장인 Khalid Al Tuwaijri) 어떻게 해서든 국왕을 살리려 애를 쓰고 살만 왕세자가 국왕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리고 압둘라 국왕 명의로 폐위를 발표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래서 이집트 언론에게 살만 왕세자를 폐위한다는 뉴스를 흘리지요. 이집트로서는 살만 왕세자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양국 비즈니스에 간여하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뉴스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대로 당하고 있을 살만이 아니지요. 살만 왕세자 측에서는 압둘라 국왕이 혼수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게 합니다. 압둘라 국왕 측근들의 폐위발표 시도를 무산시킨 것이지요. 이러자 압둘라 국왕 측근들은 국왕이 서거하면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하는 데 동의하겠으니 대신 미텝을 부왕세자로 책봉해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살만 왕세자 측에서는 아직 국왕이 생존해 있는 상태이니 그런 논의는 불가능하다고 이 제안을 일축해버립니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압둘라 국왕이 서거한 후에도 상당 기간 계속됩니다. 그래서 국왕 서거 공식 발표가 며칠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압둘라 국왕 측근인 Tuwaijri는 전세를 역전시켜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압둘라 국왕 서거 하루 전,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아부다비 왕세자 Mohammed bin Zayed의 도움을 받아 이집트 언론을 통해 “압둘라 국왕이 곧 양위를 선언할 것이며, 살만 왕세자가 국왕으로, 무끄린 부왕세자가 왕세자로, 미텝 왕자가 부왕세자로 즉위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살만 왕세자 측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살만은 2015년 1월에 국왕으로 즉위하고 압둘라 국왕이 결정했던 대로 무끄린을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그리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MbN)를 부왕세자로 책봉하지요. 압둘라 국왕 측근이었던 Tuwaijri는 즉시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가택에 연금됩니다. 결국 4월에 무끄린을 폐위하고 MbN을 왕세자에, 자기 아들인 MbS를 부왕세자에 책봉합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MbN도 폐위 되고 MbS가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되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어쩌면 마무리되었다는 게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겠습니다. MbN이 MbS에게 충성 맹세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는 했습니다만, 나예프 집안도 세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섭섭한 집안인데 그대로 물러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일단 수다이리 세븐이 동복형제이기는 하지만 세력은 부자지간에도 안 나눈다니 어떤 왕자 집안과 어떻게 합종연횡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Wonkhap Kim and 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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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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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6) 요 며칠 사이에 사우디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권력을 쥔 쪽에서 이를 뒤엎으려는 세력을 제거하는 양상이니 친위쿠데타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밖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2015년 1월에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할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니 놀랄 일도, 새로울 일도 아니지요. ♣♣♣ 선왕이었던 압둘라는 당시 왕세제(王世弟, 제1왕위계승권자)였던 살만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살만 일가가 워낙 막강하니 어쩔 수 없이 살만을 왕세제로 책봉하기는 했지만, 압둘라 선왕은 어떻게 해서든 살만 일가를 권력에서 퇴출시키려 애씁니다. 이를 위해 살만 일가, 혹은 이에 우호적인 왕자들을 주지사나 장관에서 퇴진시키고 자기 아들들을 전면에 배치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왕세제인 살만을 폐위시킬 만한 힘은 없었던지라 대신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제(副王世弟, 제2왕위계승권자)로 책봉하고 왕명으로 이를 변경할 수 없도록 못 박습니다.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할 경우, 이런 조치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데도 굳이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제로 책봉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결국에는 왕세제인 살만을 폐위시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처 살만 왕세제를 제거하지 못한 채 압둘라 선왕의 서거가 임박하자 선왕 측근들이 마지막으로 살만과 담판을 시도합니다. 살만은 선왕 측근들을 제어할 힘도 있었고 왕세제라는 명분도 있었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였지요. 그리고 그 밤이 지나기 전에 선왕 측근들은 모두 체포됩니다. 이런 상황이니 살만이 국왕에 즉위하면 무끄린이 왕세제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살만은 국왕에 즉위하자 예상과는 달리 무끄린을 왕세제로 올리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MbN)를 부왕세자로 책봉합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로서 건국 90여년 만에 태조 압둘아지즈 국왕 이후 형제 상속으로 이어온 왕위가 마침내 3세 상속으로 넘어가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지요. 시중의 여론이 MbN 부왕세제 책봉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석 달 후, 살만 국왕은 무끄린 왕세제를 폐위하고 MbN를 왕세자에 책봉합니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살만 국왕이 7남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을 부왕세자로 책봉한 것이지요. 살만 국왕이 MbS를 총애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래서 살만 왕세제 사무실의 책임자로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위로 생존해 있는 형 넷(1남 2001년, 2남은 2002년 심장질환으로 사망)을 제치고 불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권력의 선두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MbS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국왕 휘하에 있는 모든 위원회를 정치안보위원회와 경제위원회로 통폐합하고 정치안보위원회는 MbN 휘하에, 경제위원회는 MbS 휘하에 둡니다. 여기까지야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위원회는 온전히 MbS가 관할하도록 한 반면에 정치안보위원회는 MbN이 온전히 관할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정치안보위원회의 중심축인 국방부장관이 바로 MbS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MbN의 위상은 위축되어 가고, 언론보도 또한 MbS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경제와 국방을 한 손에 틀어쥐었으니 말이지요. 한동안 시중에서는 MbS가 MbN을 밀어내고 왕세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과, 결국에는 MbN이 즉위하고 MbS는 망명길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했습니다. 현상은 MbS에게 절대 유리하게 보이지만 MbN 집안이 결코 만만하지도 않고,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살만 국왕에 우호적인 다른 왕자들조차 MbS의 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듯 MbS의 완승으로 끝납니다. 알려진 것처럼 지난 6월 20일, 한밤중에 MbN을 왕궁으로 불러 감금하고 양위하라고 협박했다는 거 아닙니까. 다음날 MbN 자의로 물러난 것으로 보도도 되고, MbN이 MbS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영상도 공개됩니다. 이에 대해 왕실 내부적으로 반발이 상당히 심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MbS의 측근이라 해도 무방할만한 인사 하나를 알고 있는데, 그가 MbS를 왕세자로 세운 것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화를 냈는지 모릅니다. 이런 모든 정황을 고려한다면 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친위쿠데타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헬기사고로 죽은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는 살만 국왕이 폐위한 무끄린 왕세제의 아들이고, 그저께 왕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총격으로 죽은 압둘아지즈 빈 파드 왕자는 MbN의 측근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MbS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 것이고, 그것이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MbS 또한 이럴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압둘라 선왕의 아들인 미텝 국가방위군장관(Minister of National Guard)이 이번에 해임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요. 물론 국가방위군의 실질적인 주인이니 호락호락 물러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국가방위군 병력의 상당수가 예멘 전쟁에 투입되었고 북쪽 국경수비대에도 적지 않은 병력이 이동 배치되었기 때문에 종이호랑이가 된 지 이미 오래거든요. 종이호랑이라고는 해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무력통치로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가 왕국이기는 해도 모든 언로가 열려있으니 예전처럼 국민을 통제하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을 겁니다. 결국 MbS의 성공은 국민의 호응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국민은 Mb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음번에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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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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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전 이야기 (3) 2010년 KACARE가 발족하면서 2040년까지 원전 16기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다. 출범한 다음 해에 Worley Parsons를 선정해 전체 17개 원전 후보지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지만 평가가 마무리된 2012년 이후에도 한동안 원전 건설이 진행되는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전체 원전 16기 중 1단계로 건설한다고 발표한 2기는 총 용량이 2.8GW였다.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국형 원전 APR-1400 용량이 1.4GW였기 때문에 모두들 이를 염두에 두고 결정한 것으로 이해했다. 1단계로 건설할 원전의 용량은 오늘까지도 2.8GW로 발표되고 있다. 평생 원전 부지평가 일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지반상태 평가에 국한된 것이니 원 발주처로부터 우리 회사 단독으로 수주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원전 사업이야 국가대항전이니 우리나라가 수주하지 않으면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하다. 그렇기는 해도 원전 용량을 한국형에 맞춰 계획했다면 그만큼 참여 가능성이 높으니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나. 우리는 그동안 원전 건설의 필수 절차인 예비안정성분석보고서(PSAR, Preliminary Safety Analysis Report)의 2.5항 ‘지질, 지진 및 지질공학’ 작성에 관련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이는 1) 부지 반경 320km 지역에 분포하는 지질상태를 평가하고, 지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전 부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광역지질 분야’와 2) 원전 구조물의 지반안정성을 평가하는 ‘부지지질 분야’로 나뉜다. 원전 부지평가 중 ‘광역지질’의 경우 외국인이 현지 지질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같은 지질상태를 놓고도 전문가 마다 얼마든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현지의 적절한 전문가를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부지지질’의 경우 다양한 조사장비가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를 한국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도 않고 그럴 경우 가격도 맞추기 어려우니 검증된 조사업체를 확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현지 전문가의 도움으로 킹사우드대학 지질학과 교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부지평가팀을 꾸릴 수 있었고, 실력 있는 지질조사 업체도 두엇 확보해 기회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사우디에 원전이 처음 건설되는 것이니 원전 부지조사 경험을 가진 업체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원전 부지조사는 조사항목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이를 표준에 맞도록 이행하는 게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에 현지 업체가 조사 품질을 제대로 유지하기만 한다면 풍부한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끌고 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사우디에는 정밀한 지질조사가 요구되는 석유화학 플랜트가 많아 어지간한 지질조사 업체는 우리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살펴보니 어떤 분야는 우리보다 오히려 수준이 앞서기도 했다. 지금이야 그들이 원전 건설에 필요한 내용이 뭔지 모르니 우리와 손잡겠지만, 한 번 해보고 나면 뭐 하러 한국 업체의 하도급을 하겠나 싶었다. 말하자면 다음번에는 경쟁상대로 만나게 될 것인데, 과연 그들과 함께 일할 때 어느 정도까지 우리 경험을 공유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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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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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1) 지난 6월 21일, 살만 국왕이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왕세자로 세웠습니다. 이곳에 몇 년 살다보니 이런저런 경로로 왕가 이야기를 주워듣게 되었는데, 이참에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정리해서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도 별 쓸모가 없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선왕이던 압둘라 국왕이 2015년 1월에 서거하고 살만 왕자가 국왕에 올랐지요. 우선 이름에 얽힌 이야기부터 풀어볼까요? 대충 아시겠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이름이 ‘어느 집안, 누구의 아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 살만 국왕의 이름은 Salman bin Abdulaziz Al Saud입니다. ‘사우드 집안의 압둘아지즈의 아들 살만’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왕세자로 즉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Muhammad bin Salman bin Abdulaziz Al Saud입니다. ‘사우드 집안의 압둘아지즈의 아들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라는 뜻이지요.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기는 합니다만 내용을 알고 보면 어느 집안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 이름도 사우드 왕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느 나라 국민을 지칭할 때 나라이름에 ‘-n’ 또는 ‘-nese’를 붙이는데 유독 중동국가에는 ‘-i’를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컨대 UAE 국민은 Emirati, 오만 국민은 Omani, 이라크 국민은 Iraqi 이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사우디에는 이미 ‘-i’가 붙어 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사우드 왕가의 백성이라는 뜻이랍니다. 이미 나라 이름에서 국민을 다스려야 할 백성으로 명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27년에 건국되었고 1932년 국가를 통일하면서 압둘아지즈가 초대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압둘아지즈는 22명의 부인과 사이에서 모두 45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압둘아지즈가 서거한 후 왕위는 아들에게로 넘어와 2대 사우드, 3대 파이잘, 4대 칼리드, 5대 파드, 6대 압둘라에 이어 7대 살만 현 국왕에까지 이릅니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22명의 부인에게서 난 이복형제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없을 수 없지요. 선왕이던 압둘라 국왕과 현 살만 국왕 사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기 전에 왕세자이던 살만 현 국왕을 견제하기 위해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자로 세우고 이를 교체할 수 없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뭐 하겠습니까, 왕국에서야 국왕 마음대로인데. 2015년 1월, 압둘라 국왕 서거로 살만 국왕이 즉위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 예상했던 대로 이복동생인 무끄린 왕자를 왕세자에서 퇴위시키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MbN)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이는 2세 통치에서 3세 통치로 넘어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아울러 살만 국왕은 자기 셋째 부인의 장남인 무함마드 빈 살만 (MbS) 왕자를 부왕세자에 책봉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조카를 퇴위시키고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한 것이지요. 살만 국왕이 2015년 4월 무끄린 왕자를 왕세자에서 퇴위시키면서 조카인 MbN을 왕세자로 아들인 MbS를 부왕세자로 책봉할 때, 결국 MbN이 폐위되고 MbS가 왕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짐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MbN이 호락호락하게 물러나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서 지난 수요일 왕세자 책봉이 발표되고 나서 잠시 긴장했습니다. 혹시 무슨 변고가 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사실 2015년 1월에 압둘라 국왕이 서거했을 때 우리나라 12.12 사태 같은 사건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2015.02.16일자 허핑턴포스트 기사를 소개하지요.) [사우디 왕조] 1대 : 압둘아지즈 (1932-1953) 2대 : 사우드 (2남) (1953-1964) 3대 : 파이잘 (4남) (1964-1975) 4대 : 칼리드 (7남) (1975-1982) 5대 : 파드 (11남) (1982-2005) 6대 : 압둘라 (13남) (2005-2015) 7대 : 살만 (32남) (2015-현재)
Wonkhap Kim and 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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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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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가 이야기 (2) 압둘아지즈 국왕이 22명의 부인에게서 45명의 아들을 얻은 것은 앞의 글에서 이미 설명 드렸지요. 왕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과 연합을 위한 정략결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한 부인들은 모두 호족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 중 두드러진 분이 살만 국왕의 어머니 Hassa bint Ahmed Al Sudairi 왕비입니다. 수다이리 왕비는 슬하에 아들 일곱을 두었는데 그 중 맏아들이 5대 파드 국왕입니다. 살만 국왕은 수다이리 왕비의 여섯째입니다. 역대 국왕 7분 중에 수다이리 왕비의 아들 둘이 국왕에 즉위한 것이지요. 두 국왕 말고도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국왕보다 먼저 서거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가 두 분 더 있습니다. 둘째인 술탄, 넷째인 나예프가 그들인데, 이번에 폐위된 무함마드 빈 나예프 (MbN) 왕자가 바로 2012년에 서거한 나예프 왕세자의 아들입니다. 부자가 모두 왕세자에 올랐으나 국왕으로는 즉위하지 못한 불운의 왕자인 셈입니다. 짐작하셨겠습니다만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 중 수다이리 왕비가 낳은 일곱 아들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을 ‘수다이리 세븐’이라고 부릅니다. (국왕 두 명, 왕세자 두 명) 아들이 45명이라고는 하지만 유아사망이 7명, 1919년 있었던 전염병으로 어린 왕자 3명이 죽은 걸 감안하면 서른 명 남짓 권력의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권력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수다이리 세븐의 위력이 워낙 막강해서 사우디 왕국의 세력다툼은 결국 수다이리 세븐과 나머지 왕자간의 대결이 된 것입니다. 5대 파드 국왕이 즉위하고 왕세자를 압둘라 왕자로 책봉했지요. 이때 수다이리 세븐의 맏이였던 파드 국왕은 동복동생을 왕세자로 책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복형제들의 반발로 인해 그 중 세력이 약한 압둘라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정부 요직인 국방부장관(군)은 둘째인 술탄 왕자가 1963-2011년, 내무부장관(경찰)은 넷째인 나예프 왕자가 1975-2012년 장악하고 있었으니 압둘라 왕자가 국왕으로 즉위한다 하더라도 국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게다가 술탄 왕자가 왕세자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압둘라 국왕을 과도왕정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압둘라 왕자가 세력이 미미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구박을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때 압둘아지즈 국왕의 누나인 (압둘라 국왕의 고모) 누라 공주가 압둘라 왕자를 상당히 아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압둘라 국왕이 세계 최대의 여자 대학을 세우고 자기 고모를 기렸다는 게 아닙니까. 리야드 공항 가는 길에 있는 누라 대학이 그렇게 세워진 겁니다. 압둘라 국왕이 즉위하자 왕자들 사이에 합의한 대로 술탄 왕자가 왕세자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압둘라 국왕이 오래 건강하게 버텼고, 술탄 왕자가 노환으로 2011년 서거했습니다. 수다이리 세븐의 위력은 아직 그대로였기 때문에 다음 왕세자는 수다이리 세븐인 나예프 왕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나예프 왕자 역시 노환으로 2012년 서거했고 뒤 이어 살만 왕자가 왕세자에 즉위했습니다. 압둘라 국왕이 건강하게 10여년 왕위를 지키는 동안 수다이리 세븐의 세력을 견제할 만큼 세력을 키웠습니다. 과도왕정으로 생각했던 압둘라 국왕의 재위기간이 늘어나고 따라서 세력 또한 커지게 되니 자연 수다이리 세븐의 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살만 왕자를 왕세자에서 축출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압둘라 국왕 재위기간 후반에 살만 왕자가 치매에 걸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국왕에 즉위할 수 있을까 했는데, 즉위하고 나니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즉위하고 나서 한 달 여 만에 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배석했던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강하기만 하더랍니다. 결국 고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 대원군이 파락호 노릇을 했다는 그 전략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압둘라 국왕이 서거할 때쯤 측근들이 살만 왕세자 폐위를 여러 번 시도했고, 축출이 성공하지 못하자 압둘라 국왕 서거 당시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살만 왕세자가 그 모든 시도를 무산시키고 7대 국왕에 즉위하게 됩니다.
Wonkhap Kim and 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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