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손민석 강남순 [명명의 정치학,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10.29 할로윈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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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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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논리다. 본인이 '축제로서의 삶'에 꽂혀 있어서 성립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논리라는 걸 이해 못하는 듯하다. 거기에 중간중간에 자기 책 홍보까지.. '10.29 참사'라 부르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는 말에 모욕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10.29 할로윈 참사'로 명명해야 하는 이유가 고작 그래야 '축제로서의 삶'과 '참사' 간의 괴리에서 행정부의 책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면 왜 굳이 '10.29 할로윈 참사'라고 해야 하나? '10.29 윤석열 정부의 축제 행정 참사'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직관적이고 잘 이해된다. '10.29 할로윈 참사'는 할로윈을 축제라고 생각하는 강남순 본인만 괴리를 느끼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할로윈을 축제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강남순의 명명은 행정부의 책임소재가 부각되지 않는 명명이다. 이렇게도 주장할 수 있는거다.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중간중간에 자기 책 홍보까지 하면서 썰을 풀어댄다.

 그리고 중간에 아감벤을 인용해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는데 아감벤의 주장의 맥락을 소거해버리면 '홀로코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경솔하게 선정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렇지가 않다.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는 유대교에서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 번제 의식을 의미하는 용어다.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면 마치 유대인과 나치 사이에 어떠한 '종교적인' 관련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치가 유대인의 번제의식에서 일종의 사제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아감벤 또한 그런 맥락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더 알게 되면 아감벤의 주장조차도 경솔한 비판으로 느껴진다. 내가 이해하는 미야타 미쓰오의 논의를 간단하게 요약해 제시해보겠다.

 애당초 홀로코스트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엘리 비젤이다. 엘리 비젤이 누구냐? 루마니아계 유대인 작가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나중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사람으로 이 용어를 대단히 신중한 고려 끝에 선택했다. 나중에는 이 용어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앞서 언급했던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고 그만 사용하자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 비젤은 왜 이 표현을 썼을까? 비젤은 홀로코스트를 아케다(Akeda)와 연결시킨다. 아케다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사건으로, 비젤은 홀로코스트를 아케다의 연장에서 독해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손에 의해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질 뻔했다가 하나님이 멈추라 해서 겨우 살아난 이삭을 염두에 두고 비젤이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삭은 '최초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유대인의 역사란 이삭 이래로 바빌론 유수, 십자군 등에서부터 나치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반복적인 "재난 이후의 삶"의 누적이었다. 유대인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홀로코스트를 독해하고자 선택된 용어가 보편화되면서 맥락을 잃고 마치 나치에 의한 유대인 정죄 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건 대단히 부적잘하고, 그 맥락에서 아감벤처럼 비판하는 것 또한 부적절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맥락에서 아케다의 연장으로 홀로코스트를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신의 약속"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앙을 아우슈비츠 이후에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는가의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다. 이것은 아우슈비츠가 가능하게 한 유럽의 기독교 문명, 나치즘의 유대인 대학살이 이뤄지고 있을 때 그것을 사실상 방관하거나 묵인했던 기독교/개신교 전통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까지 이어진다. 유럽 문명의 자기비판, 내재적인 자기반성이 반영된 용어라는 말이다. 

반反유대인주의는 구약과 신약의 분리라는 신학적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선민이라 생각하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하나님=예수를 죽인 족속들이라 멸시한다. 후자가 나치즘의 홀로코스트로 발전되어 나타났다면, 전자는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문제로 나타난다. 어떻게 유대교와 기독교가 대화를 할 것이며, 어떻게 신학적 관점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만 하는 맥락을 소거하고 이해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선택한 비젤은 '최초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이삭의 이름, Issac이 히브리어 동사 tsachaq(צָחַק)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웃다laugh 라는 이름대로 이삭은 번제, 홀로코스트 이후에 웃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그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라도,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주었을지라도 그럼에도 그는 웃었을 것이라고 비젤은 말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자기 자신과 이삭을 동일시하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강남순의 말처럼 이태원 참사가 '축제로서의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면 고작 어떤 명명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참사 뒤에도 왜 우리는 다시 축제를 즐겨야만 하는지, 왜 웃어야만 했는지,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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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is in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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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의 정치학,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10.29 할로윈 참사’>

1. 한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명명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 명명하는 과정과 역사적 함의는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에도 지속적인 함의를 전승하기 때문이다. 소위 “명명의 정치학 (Politics of Naming)”이 등장하는 이유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신군부는 ‘광주 폭동’ 으로 명명하고, 미디어는 ‘광주사태' 또는 '광주 소요 사태’라고 명명했다. 후에는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주항쟁, 광주학살 등으로 명명되기도 하다가 지금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점차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어떻게 명명되는가에 따라서 그 역사적 사건을 보고 해석하는 관점과 그 명명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관은 매우 다르다.

2.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은 나치 시대에 행하여진 유태인 학살을 성서에 나오는 용어로서 '희생번제물'의 의미를 지닌 “홀로코스트 (The Holocaust)” 또는 “쇼아 (Shoah)”라고 명명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다. 이러한 명명은 아우슈비츠를 “신비나 신학의 자리 (a place of mystery or theology)”로 종교화하는 오류를 낳기 때문이다. 무고한 이들을 학살한 나치의 아우슈비츠는 성서에 나오는 것과 같이 신을 위한 번제물로서의 희생이 벌어진 ‘종교적/신학적 장소’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장소”를 의미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나는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라는 명명에 대한 아감벤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명명은 다양한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기에 실제로 희생당한 이들의 경험이 결코 반영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명명의 정치학”은 이 현실세계의 도처에서 작동하면서 갖가지 가치관과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3.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할로윈이라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그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죽음과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재난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부의 행정적 책임성의 부재로 인한 ‘인재’였다. 즉 예방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정부는 “애도”만 하고 정치화하지는 말라며, 애도의 구체적인 대상도 없이 ‘관제-애도’를 만들어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지난 10월 30일과 11월 2일, 나의 페북 포스팅서도 밝힌 것처럼, 국가에서 주도하는 '애도 지침'은 마치 전체주의 사회에서처럼 국민의 ‘애도의 자유’ 마저 박탈함으로서, 국민을 식민화하는 기능을 한다. 

4. 세계 어디에서든 사회적 사건에서의 ‘애도’란 개별성의 존재로서의 고유명사를 지닌 이들에 대한 호명과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희생자들의 신원이 파악되기도 전에 ‘참사'라고 하지 말고, “사고”라고 하고, '희생자'라고 하지 말고 “사망자”라고 부르라는 “명명의 정치학”을 바로 가동시켰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어쩌면 정부는 이 참사의 전적인 책임이 현 행정부에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아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애도의 극장’을 설치하고, 대통령 부부가 ‘매일 조문’을 하고, 곧 바로 ‘애도 지침'을 내릴 수 있을까. 대통령 부부는 매일 ‘애도 예식’을 하면서, ‘사망자’라는 집단화의 상자속에 넣고서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누구를 향해, 또한 무엇을 위해 ‘조문’ 한 것일까. 단지 ‘조문의 연기’를 ‘애도의 극장’의 무대 위에서 한 것인가. 

5. 나는 최근의 책 <데리다와의 데이트>의 부제를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했다. 데리다는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국 (each death as the end of the world)”이라고 하면서, 죽음과 고통에 대한 ‘애도’는 언제나 ‘개별성의 얼굴’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희생자들의 이름도 없이 국가가 정한 애도기간이 끝난 후에 비로소 우리는 그 희생자들의 개별적 고유명사를 간신히 마주하게 되었다. 

6. 이 사건에 대한 명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의 포스팅에서 처음에는 “이태원 참사” 그리고 “10.29 참사”라고 했다가, 현재는 “10.29 할로윈 참사”라고 나는 명명했다.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이라는 특정한 지역에 부정적인 표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10.29 참사”는 지나치게 중성적이어서 이 명명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후대의 사람들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7.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 “10.29 할로윈 참사”다. 이 삶의 축제성을 즐기려는 행사라는 “할로윈”과 “참사”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어느 축제든 사람들이 모이면 행정 책임을 맡은 이들은 참가자들의 안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축제의 자리에서 참사가 벌어진 것은 그 참사의 책임소재가 축제의 참가자들이 아니라, 행정부라는 것을 부각시키고자 한 의도다. 

8.  이 삶의 축제성을 잠시라도 즐기기 위해 할로윈 축제에 얼굴 가득 웃음과 기대로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에 갔다가, 그들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각기 다른 “세계의 종국”이다. 개별성의 이름들을 이제야 비로소 접하게 되었다.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 상황을 담아내는 관점이 담긴 명명이 등장할 때까지 나는 잠정적으로 “10.29 할로윈 참사”라고 명명한다. 2022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이 사건을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가는, 살아남은 우리의 과제다. 그 명명에 따라서 이 참사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사건이 되는가, 아니면 책임소재가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상기시키는 역사적 사건이 되는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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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찬반론에 대한 댓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는데, 다른 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소개한다. 그리고 "9/11 테러 (9/11 Attack)"을 기억하는 추모공간에 거의 3천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공간의 사진도 첨부한다:

"희생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들이 유가족이든 정치인이든),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간 것 자체를 떳떳한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의식.무의식이 작동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참사/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사람 숫자가 많아도 개별인의 이름들을 기리지요.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9/11 Attack)"를 기억하는 공간에는 거의 3 천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라는 의미를 인식하는 이들이 확산되어야겠지요. 정치인은 물론 유가족들에게도."


11 comments
조호빈
이딴게 철학인가 싶네요... 애초에 학문도 아닌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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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 Yongjin
아감벤 하니까 마스크 반대한 놈이라고밖에 모르겠네요-_-;;
Reply4 h
손민석
손용진 그래도 아감벤은 중요한 정치철학자입니다 흑흑.. 우리 감벤이형.. 마스크 쓰기 싫어서 책까지 내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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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 Yongjin
손민석 저도 호모사케르 (빌리지 않고 사서) 머리 쥐어뜯으면서 읽었었는데ㅎㅎ 마스크에서 워낙 확 깼어서ㅎㅎ 얘기한번 해봤습니다. (그때 계기로 편견이 생겨서;;)
Reply4 hEdited
손민석
손용진 ㅋㅋ 마스크에 대한 아감벤의 입장에 기초해서 호모 사케르의 한계를 살펴볼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ㅎㅎ 오히려 그걸 원할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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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Seok Yoon
저는 이제 별로 관심없어서 언젠가 보내드렸는데(아마 박원순 관련 개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 분 여전히 꼬박꼬박 texas 위치 태깅하는게 웃기네요 ㅋㅋㅋㅋㅋ
Reply3 h
손민석
윤명석 조국 때부터 보내드렸지만ㅋㅋ 그러고보니 그렇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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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Seok Yoon
손민석 아 저도 조국인 것 같네요 ㅋㅋㅋ
Reply3 h


SeungHyun Yang
진짜 정말 총체적으로 역겨운 글이었습니다..
Reply50 m
손민석
양승현 조국 사태 때부터 참 어떻게 이론을 저렇게 써먹는지 이해가 안되는 글들의 연속입니다ㅠ
Reply6 m
SeungHyun Yang
손민석 한국 떠난지 5년, 10년 이상 된 교수가 한국 정치에 말 얹는 걸 금지시키지 않는 한 계속 볼 추태인 것 같습니다..
Reply4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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