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

박권일 “능력만 있으면 혐오·차별 정당화…그게 한국 사회” - 손민석 비판


박권일 “능력만 있으면 혐오·차별 정당화…그게 한국 사회”
2021.10.04 14:52 입력
이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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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공저자…‘한국의 능력주의’ 출간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인
과거제도·고시제도 등 거치며 변모·강화돼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인 박권일 사회비평가·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돈도 실력이야”(최서원씨 딸 정유라),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서 돈 많이 번 것은 사실”(곽상도 의원 아들).



소위 사회 특권계층 자제들이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 발언들을 내놓을 때마다 한국 사회가 들끓는다. 한국 사회는 시험과 같은 정당한 경쟁과정을 치르지 않았거나 보상받을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88만원 세대> 공저자로 잘 알려진 박권일 사회비평가·작가는 최근 출간한 <한국의 능력주의>(이데아)에서 이러한 현상을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한국인”이라며 “그 심성의 기저에 도사린 것이 바로 능력주의”라고 말한다. 비단 특권계층뿐만 아니라 시험이라는 선발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데에도 분노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는 공정한 절차에 따른 능력 측정을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박 작가는 “능력주의는 기회와 과정의 근본적 불평등, 즉 ‘실질적 불공정’을 은폐하고 형식적 공정성에만 집중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그는 한국 능력주의의 기원을 추적하고, 특징과 의미를 설명하고, ‘이상적 능력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박 작가를 만나 책 이야기를 들었다.


박 작가가 능력주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 박 작가는 한국의 넷우익(국수주의 성향의 우익 누리꾼)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인터넷상의 ‘다문화 반대 커뮤니티’ 같은 곳에 상주했다. ‘일베’까지 이어진 넷우익들의 커뮤니티에서 그는 공통된 정서를 발견했다. 박 작가는 “이용자들이 사람들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욕하는 정서를 살펴보면 그들 입장에서 일관되고 정당한 논리가 있었는데 그게 ‘능력주의’였다”며 “최소한의 도덕적·사회적 누름돌을 들어내고 혐오와 차별을 하는 죄의식을 없애주는 강력한 기제였다”고 설명했다. 2018년 석사논문을 쓰면서 한국 능력주의의 기원을 추적했고,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덧붙여 책으로 새로 썼다.


한국 능력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과거제도,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 고시제도, 학력주의 등을 거치며 변모하고 강화됐다. 박 작가는 논문은 물론 ‘한국 사회 공정성 인식 조사 보고서’(2018) 같은 공정성 인식조사, 1956년부터 발행된 고시 전문지 ‘고시계’ 등 자료를 샅샅이 살폈다. 그는 “능력주의적 혐오는 ‘괴물이 된 20대’라는 말처럼 청년세대만의 유별난 특성으로 회자되곤 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제가 본 자료들 중 상당수의 불평등, 공정성 관련 인식 조사에서 세대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와 마찬가지로 능력주의를 정의”로 여기며, “공정과 능력에 대한 집착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한국인에게 내면화된 습속”이라는 진단이다.




책에서는 능력주의를 ‘현실적 능력주의’와 ‘이상적 능력주의’로 구분해 설명한다. 현실적 능력주의는 부모의 지위나 부의 수준, 학벌 특혜 등 일종의 ‘위장된 신분제’가 작동하는 능력주의다. “(부모의) 돈도 실력이야”라는 발언을 통해 잘 드러나는 사고다. 이상적 능력주의는 세습 신분제적 요소가 제거돼 ‘온전한 능력’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는 능력주의다. 박 작가는 “능력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도 현실적 능력주의를 벗어나서 이상적 능력주의로 가면 된다는 논리로 빠지곤 한다”며 “세습 신분제든 현실적 능력주의든 이상적 능력주의든 불평등 자체를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시험이라는 선발 과정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설계된 승자독식 피라미드”인데, 이 같은 문제를 이상적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덮어버린다는 지적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존 롤스의 정의 이론, 코헨의 평등론 등 사회철학이론을 토대로 ‘이상적 능력주의’란 그럴듯해 보여도 현실에 결코 적용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우리의 노력과 능력을 전부 계량화하고 수치화해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습니다. 설령 시험을 통해 측정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산출된 능력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워요. 백번 양보해서 앞의 두 가지를 다 계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최고경영자(CEO)가 일반 노동자 월급의 몇 천배를 받거나, 대리가 몇 년 일하고 50억원을 가져가는 특권이 정당화될 수가 있나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논란의 종착점은 ‘공정한 절차’와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능력주의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박 작가는 능력주의를 ‘마음의 화석연료’에 비유했다. 그는 “한때 이것이 우리의 생산성에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가 열심히 살도록 만드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능력주의가 작동하면 할수록 사회적인 부담과 비용만 더 커진다”며 “미래세대라고 할 수 있는 10~30대 자살률도 엄청나게 높고 사회가 생물학적 멸절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책에서는 현장 역량보다 학업 성적 위주인 각종 공채 시험 제도, 승자독식의 정치 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적으로 분절된 고용체계를 들며 “능력주의의 지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더 나은 민주사회로 도약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 작가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한 번에 걷어내기 어렵다면, 눈에 보이는 ‘누가 봐도 특권’이라고 하는 것들부터 줄여나가자”고 제안했다. “음식물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고 파리가 꼬인다고 투덜대도 소용없듯이,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특권들을 두고 절차만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하자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의 대안은 곧 불평등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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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한국 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권의 타파가 필요하다?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특권이 필요하다! -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비판 1부

한국 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권의 타파가
필요하다?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특권이 필요하다! -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비판 1부
2022.11.11. 오후 6:10
손민석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이데아, 2021)에 대한 비판글입니다. 사실 가볍게 생각
하고 집어들었다가 '학위논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88만원세대>처럼 가벼운
팜플렛 형식을 기대하고 빠르게 쓸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다루고 있는 주제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의도하지 않
게 제 논의 또한 그에 상응해 광범위해져서 사실상 능력주의에 대한 제 나름의 입장을
표명하는 형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1부는 박권일의 논의를 충실하
게 요약하는 것으로, 2부는 대안적인 설명틀을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많은 관
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19일쯤에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장소를 섭외했는데 예상치 못하
게 펑크가 나버리는 바람에.. 관련해서 비용과 설문조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프라인 주제는 1) 곧 출간될 책의 원고 2) 그람시의
남부문제 3) 19세기 세계시장론 이렇게 3가지 중 하나를 택해서 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박권일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상당히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그의 논의는 역사학적 논의에서부터 비교정치학, 경제학, (정치)철학 등의 대단
히 다양한 범주를 다루고 있었으며, 방법론적으로도 푸코의 계보학과 사회학적인 분석
틀을 결합시켜 담론사적 구성과 사회과학적 분석을 동시에 행하고 있다. 거대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자 한 그의 지적인 성실성을 인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의 한계 또한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박권일이 '한국인론'이라는 주제를 제
대로 다루지 못했다는데서 비롯된다. 그의 '한국인론'은 본질주의를 부정하지만 끝내
그것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결론 부분에 이르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
게 된다. 한마디로 숙명론적인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내
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적으로도 푸코식 계보학과 사회학적 분석 간의 괴리, 세련
된 분석과 다소 '진부한' 정치적 대안 간의 괴리 등으로 이어진다. 그가 정치적으로 주로
'좌파'로 호명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뒤에 가서 더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그가 제
시하는 "특권을 해체하라"는 대안이 주는 어떤 '진부함'에 독자는 당혹감마저 느끼게 된
다. 더 문제적인 것은 '능력주의적 한국인'이라는 환원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인 논의를
펼치면서도 사회과학적 분석틀이 지닌 보편성에 기대 그것이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
지 바뀔 수 있다는 듯이 논의를 펼치는데서 오는 괴리를 저자가 적절하게 소화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전유한 역사적 담론구성물
을 사회과학적 보편성 속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괴리를 피해가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괴

리는 매번 독자의 비판을 앞질러 봉쇄된다.(박권일, 2021 : 14, 39, 42, 143, 147-
148)
비판가/비평자로서 가장 힘빠지는 일 중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비평/비판이 가닿지를 못한다. 박권일은 자신의 논지가 지닌 한계
를 알고 있기에 '능력주의적 한국인'이 본질이면서 동시에 현상이라는 점을 거듭해서 지
적한다. 그리고 개인과 집단을 분리시켜 사고할 것을 요청하며(박권일, 2021 : 147)
독자의 비판을 피한다. 이러한 회피는 에필로그 부분에 가서 절정으로 치닫는데, 그는
한국인이 불평등과 능력주의를 선호한다는 자신의 주장에 "한국인 다수가 그런 성향이
라면 제도와 문화도 그에 부합하게 만들어가는 게 자연스럽고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는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오히려 능력주
의를 강화해야 할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비판조차도 "생산적인 논의"를 위한 "작은 계
기"가 된다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회피해버리는 것이다.(박권일, 2021 : 303) 분명 하
나의 '본질'을 두고 다른 사회과학적 "처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다
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의 처방이 본질을 변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데
서 나온다. 어째서 우리는 본질을 거슬러야 하는가? 본질대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으니
까! 본질에 부합하면 불행하고, 본질을 거스르며 살면 행복하다는 그의 논지는 분명 ‘역
설적’이다.
이런 괴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지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저자인
박권일에게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독자로서 정말 이해가 안되는 지점인데
크게 보아서 이 책의 논지를 1) 한국 능력주의에 대한 분석과 2) 대안으로 나눈다고 했
을 때 1)을 관통하는 원리, 키워드에 따라 2)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1)과 2)가 사실상 따
로 논다. 1)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명 "개인"와 "학력"이다. 한국에서 행해지는 시험
자체가 개인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시험을 '집단적'으로 행하면
부정행위가 된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개인을 "사회화"하지 않고 "개인화"하는 강한 경

향성을 갖고 있다. 박권일의 분석은 분명 이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2) 대안에서
는 어떤 방법을 통해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할 수 있게 만들 것인
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개인화'의 경향을 뒷받침하는 건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국가이다. 한국의
근대국가는 고시제도를 통해 엘리트를 위계적 질서 속으로 포섭하고 박권일의 지적처
럼 엘리트주의를 내면화한 관료제와 마찬가지로 공채시험을 통해 형성된 정규직 집단
을 기반으로 삼아 기능한다. 그런데 박권일의 논의에서는 이 강력한 중앙집중적 국가가
부재하고 있다. 그는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논하고 자기표현 가치가 낮다는 점을 지적하
지만 국가가 시민사회의 영역을 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그리하여 시민사회가
지닌 정치적 의미가 모조리 국가로 흡수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밖에 추구할 게 없
다는 점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결론 부분에 이르러 이러한 강한 국가로 인해 생
기는 중앙지향적 대중운동을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라며 긍정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괴리를 염두에 두고 그의 논의를 살펴보자. 그가 다루는 주제가 너무나도 광범
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을 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설명틀 전체를 대
체하는 대안적 설명틀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저작은 이런 맥락에서 비판/비평하기 대
단히 까다롭다. 그의 본질론을 비판하다보면 또 다른 본질론이 도출된다. 즉, 그저 무수
히 많은 본질 중에 하나의 본질을 택하고 있는 입장일 뿐 본질론 자체를 파훼하지는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미리 언급해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의 논의가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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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권의 타파가
필요하다?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특권이 필요하다! -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비판 2부
출처: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10041452001#cb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데도 할 말이 많아서 글이 길어지네요. 연재 기간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다음주 연재물은 많은 요청이 있었던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불가

능 자본주의>(김영현 역, 다다서재, 2021)에 대한 비판글이 될 듯합니다. 원고 개정이
마무리되는대로 레닌 연재와 함께 모임을 시작하려 합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에릭
홉스봄의 시대 3부작 읽기 모임부터 조촐하게 시작해서 그람시의 <남부문제> 관련 모
임으로 확장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구독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4.
먼저 박권일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출발해보자. 박권일은 자신의 논지가 “기
원이라는 키메라를 퇴치”하는데 사용되는 푸코적 계보학에 입각해 있다고 말한다.(박권
일, 2021 : 42)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기원'이란 대체 무엇인가? 역사학에 있어 '기
원'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문제적인 개념이다. '기원'을 설정하는 것도, 설정하지 않는 것
도 모두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기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역사는 그
저 종잡을 수 없는 사실들의 끝없는 나열에 지나지 않고 그 사실들에 나름의 일정한 질
서를 부여할 ‘과학적 가설’의 부재 속에서 "대안적 서사"라는 이름의 더 위험한 영역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아직까지 엄밀하게 개념화되지 못했지만 위안부, 징용공 등의 문제를
두고 크게 일어났던 '역사수정주의' 논란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시이다.
독일, 일본 등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과학적 가설'의 부재 속에서 '대안적 서사'가
특정한 '정치적 운동'과 결합해 전자가 후자의 과학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반대로 정치
적 운동이 대안적 서사를 확산시켜주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
다. 이러한 위험이 '과학성'을 담보해주던 마르크스주의의 패망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조
의 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역사학이 점차 문화사•사상사로 이동하면서도 여전히 실증주
의적이고 과학적 가설을 고수하는 '근대주의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
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원'의 문제를 설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지도 않는다. 로제 샤르티에

(Roger Chartier)가 “기원의 망령”(로제 샤르티에, 1990, 2015)이라 불렀던 목적론
적인 위험 또한 존재한다. 샤르티에에 따르면 기원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하고도 무의식
적으로 총체성, 연속성, 인과성 등의 개념들을 요청하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단일한
관념적 연속성 속에 개별 사건들을 용해시켜버린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 개개가 지
니고 있는 독특함과 단절성, 그리고 고유한 맥락들이 모두 폭력적으로 소거되며 ‘특정한
사건’이라는 단일한 개념체로 무한소급되어버리는 것이다. 만약 이 점을 인정한다면 과
학적 연구 또한 앞서 말한 '대안적 서사'과 마찬가지로 '자의성'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
나기 어렵다.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과학의 탈을 쓰고 역사학자 개인의 편견이나 연구
공동체의 정념 등을 제기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푸코는 '기원' 자체를 부정하며 이 난관을 돌파하고자 한다. 푸코의 방법론은 '계보
학'이다. 그에 따르면 계보학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보학은
모든 시초를 포함하는 우연들과 세부사항들을 파헤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앞서의 총체
성에 입각한 역사서술과 달리 계보학적 역사서술은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와 지식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가 현재에 현실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계보학적 방법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동질성을 형성한
다고 생각된 것들 간의 이질성을 드러내고, 통일된 사고를 조각내어 이것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떠한 "계열"에 속해 있는지, 그 계열들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요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창출되는 '효과'에 주목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이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는 자신의 계보학을 앞서 다뤘던 역사학적 서술과 구별해 '일
반론적 역사(histoire générale)'이라 부른다.
'권력'을 예로 들자면 푸코에게 있어 권력이란 어떤 특정한 지배 계급이라는 '주체'가
피지배계층들을 지배할 목적으로, 혹은 특정한 지배체제를 옹호할 목적으로 권력의 메
커니즘들, 법의 규칙이라든지 정상성의 기준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도입한 게 아니다. 오
히려 각자 다른 맥락에서 신체를 규율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공간을 분할하고, 지식을
축적하려고 도입되었던 요소들로부터 하나의 '권력'이라는 "효과"가 어떻게 창출되는

축적하려 입되었던 들 부터 하나의 권력 이라는 과 가 어떻게 창출되는
지를 탐구하는 것이 푸코의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지점은 권
력이라는 '일반'이 어떻게 이런저런 우연 속에서 개별적인 맥락을 지닌 요소들 간의 결
합 속에서 창출되어 나타나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는 헤겔-마르크스
식의 역사관에 기초해 생산력이나 이성의 발전과정에 따라 시계열적으로 구성될 수 없
다. 오히려 역사란 단절, 간극, 불연속, 우연, 우발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 뒷편에
서 역사를 움직이는 어떠한 '법칙'이 형해화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역사발전을 추동
하는 '주체' 또한 사라지게 된다.
푸코는 이 논의를 책의 '저자'에까지 확장한다. 그의 고고학•계보학적 담론 분석은 앞
서 보았듯이 미리 전제된 주체-객체 이분법에 근거한 근대주의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
나 있기 때문에 텍스트, 담론이라는 것은 그것의 생산자인 저자에 의해 주조된 무언가가
아니라 반대로 담론, 텍스트 등에 의해 규정된 기능을 수행하는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
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푸코는 ‘앎’이라는 것 자체를 저자에 의해 순수하게 창출된
무언가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앎’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이자 장(場), “에피스테메”에 대한
이해로 논의를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저자’는 기존에 차지하고 있던, 생각하고 말하고
알고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특권적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담론은 그것의 생산자의
손에서 벗어나 그 자신만의 독특한 다른 주체들에 의해 “이미” ‘오염’되어 있다. 푸코는
마르크스를 예로 들어 모든 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론체계를 지닌 마르크스는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마르크스, 각각의 저작마다 다른 주장, 다른 주체성을 내세우며
‘다른 마르크스’들과 경쟁하는 다차적인 마르크스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처럼 저자란 사
실상 사회 내에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담론의 존재 및 유통과 작동에 관한 양식으로 파
악된다. 마르크스라는 단일한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가 체험한 특정한 역사
적 사건들이 그의 저작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소 진부할 수도, 혹은 난해할 수도 논의를 길게 제기한 것은 박권일의 방법론이 푸코
의 계보학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논의의 연장에서 보면 박권일의 푸코 언급은
상당히 특이하게 느껴진다. 그는 한국의 능력주의 담론이 일종의 '권력'으로 이런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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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특이하게 껴진다 는 한국의 능력주의 담론이 일종의 권력 이런저런
요소들 간의 결합 속에서 유통되고 발휘되는지에 관해 논의를 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것
을 드러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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