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17년 만에 이룬 한국행, 두 달 만에 끝나버린 이란 유학생의 꿈

17년 만에 이룬 한국행, 두 달 만에 끝나버린 이란 유학생의 꿈



17년 만에 이룬 한국행, 두 달 만에 끝나버린 이란 유학생의 꿈
입력 2022.1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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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매료돼 한국행 꿈꿔 온 이란 유학생
9월 국내 대학 입학 두 달 만에 참사로 희생
"한국 정부 소통 부족"... 유족들 맘 타들어가



이태원 참사 7일째인 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어릴 때부터 꿈꾼 한국행이 성사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한 학기도 못 마칠 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문화를 공부하는 이란 유학생 마후르(27)씨는 4일 통화에서 “믿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숨진 이란인 희생자는 5명, 외국인 사망자(26명) 가운데 가장 많다. 두 달 전 한국 땅을 밟은 유학생 A(24)씨도 그중 하나다. 마후르씨는 이란 소재 한국어학당에서 3년간 A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스승이다. 그는 “A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이란인이었다. 여기서 많은 일을 하고 싶어했는데, 허무하게 떠나버렸다”고 울먹였다.

대장금·케이팝 빠져... 가족 반대 뿌리치고 한국행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참사 추모공간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A씨의 한국 사랑은 일곱 살 무렵 시작됐다. 이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며 한국이란 나라에 빠져들었고, 중학생 때는 케이팝(K-POP)에 매료돼 인기 아이돌 ‘갓세븐’의 팬이 됐다. 마후르씨는 “A가 가족 모르게 케이팝 안무 커버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면서 “호텔경영학과 제빵을 배워 아예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2020년 마후르씨가 먼저 한국 대학에 유학을 오면서 이란에서 운영하던 한국어 고급반 수업도 종료됐다. A씨 역시 이 즈음부터 꾸준히 유학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란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터라 제출 서류가 너무 많았고, 심사도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독실한 무슬림인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2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드디어 한양여대 한국어교육센터에 합격한 것. 곧이어 올해 9월 그토록 바라던 한국 땅을 밟았다.

A씨에게 한국은 ‘자유의 나라’였다.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 둥지를 틀고 어렵게 지내면서도 간절히 한국행을 원했기에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후르씨는 “참사 속보가 나오자마자 A가 이태원에 갔을 것 같아 불안했는데, 이튿날 대사관 사망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장례절차... "한국·이란 말싸움 씁쓸"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서 외국인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A씨 등 5명의 이란 국적 희생자 유족들은 현재 한국 정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 와서 여러 절차를 거치는 대신 최대한 빨리 시신을 넘겨받아 이란에서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언제쯤 고인을 볼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마후르씨는 “대사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지만, 향후 절차와 관련해서는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란에 있는 유족들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이날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한국 기준 5일 0시를 전후로 시신 5구가 모두 송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후르씨는 유족의 부탁으로 고시원에 있는 A씨 유품을 정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사망자 자택 출입 절차를 안내받지 못해 직접 해결해야 한다. 가뜩이나 이란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두고 한국의 관리 부실을 비판하자, 한국 정부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언급”이라며 강하게 맞서 외교적 문제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마후르씨는 “유족의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정부끼리 감정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며 “한국을 향한 A의 오랜 사랑이 덧없이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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