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은이)
푸른역사200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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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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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와 허동현의 e-mail 편지"
'건강한 보수주의자'와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가 메일을 주고 받는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한국의 근대 10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박노자의 글과 실패의 1차 책임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허동현의 글이 맞붙는다. 그러나 '우리 역사 최전선'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싸움은 온화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는 얼굴도 안 볼 것 같은 격론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서로 대립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함께 더 잘 살기 위해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성실한 논쟁이 조금은 낯설다. 어떤 부분은 의견이 다르고,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난망함이 있지만 박노자와 허동현은 '함께 고민한다'는 미덕을 잃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사와 근대적 인물을 현재의 눈으로 톺아보는 이 책은, 박노자와 허동현 각자의 관점이 살아있어 더 흥미진진하다. 박노자는 진짜 미국인이 되고자 한 조선 지식인의 좌절에서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의 벽을 읽어낸다. 현실에서도 친미는 그래서 위험하단 생각이다.
반면, 허동현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백인과 동등해 질 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배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다. 민족주체성만 있다면 인종 편견의 시련은 견딜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미국을 침략자로 보는 시각도 비주체적이라며 지미(知美)의 관점을 내세운다.
이렇듯, 한국의 지난 100년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며 이들은 앞으로 한국의 100년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과거의 잘못은 반복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두 학자의 노력이 보기 좋다.
12장은 특별히 대담으로 꾸몄는데, e-mail 편지론 해소할 수 없었던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솔직한 대답에 대담은 유쾌해지고, 맞웃음을 짓는 박노자와 허동현의 모습에 글쓴이의 마음도 소리없이 웃는다. - 최성혜(2003-09-02)
책소개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우리의 '근대'가 시작된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동양과 서양, 척사와 개화, 쇄국과 개방,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친미와 반미, 진보와 퇴보, 혼재와 대립이 만연한 시기로부터 박노자와 허동현은 우리가 놓친 역사적 인물과 사건 11가지를 짚어낸다.
'그때 거기'에 '지금 여기'를 겹쳐 보면서 100년 전의 근대, 100년 후의 근대를 논한다. 원래 박노자와 허동현은 경희대학교에서 함께 지내다가 박 교수가 오슬로 대학으로 간 후에 이메일로 안부와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사적인 e-mail로 시작된 것이 어느새 입소문이 나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본문은 모두 12장이다. 11장까지는 e-mail 편지를 그대로 옮기고(서간체라 읽기 좋다), 내용에 부합하는 사진자료를 추가했다. 12장은 박노자와 허동현의 대담이다. 서로 어떤 역사학자인지 평가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부록으로 본문에서 거론한 문헌 및 기타 자료의 원문을 수록해 독자가 직접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목차
책머리를 대신하여
서설: 역사는 반복되는가|'미국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려면
'중국 이후' 대비 못한 100년 전의 실패 반복 말아야
실패의 1차적 책임은 당사자에게, 내부에서 원인 찾아야
1. 윤치호와 영어 배우기|진짜 미국인이 되고자 한 조선 지식인의 좌절
지나친 친미는 좌절만 가져다줄 뿐
미국을 배우되 주체성 잃지 않을 수도
2.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일본 통해 서구문명 받아들인 조선의 혼란
우리 식 서구 읽기, 아직도 요원한가?
일본이 씌운 '국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3. 빈 라덴과 최익현|위정척사운동은 정의인가 몽상인가
전통 엘리트의 보수 자구책 강구는 당연
그들이 지키려 한 건 시대착오적 구체제
4. 유교와 사회주의|유교사상이 극동 사회주의 밑바탕 됐나
유교의 인본주의가 극동 사회주의로 이어져
유교 지식인들의 지향점은 자본주의적 근대
5. 변방 세력의 혁명|'중심의 교체'가 꼭 진보만은 뜻하진 않는다
혁명 결과보다는 방법과 과정이 중요해
평등사상 없는 혁명은 '진보'가 될 수 없어
6. 갑신정변 다시 보기|근대화 시계 10년 늦춘 '실패한' 혁명
폭력과 살육 서슴지 않은 근대화 지상주의자들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 적은 없어
7. 홍선대원군 다시 보기|대원군은 실패한 정치가였나?
'근대화'가 평가의 잣대 되어서는 안 돼
대원군은 위기 관리 떠맡은 '세도정권 대리인'
8. 황사영 백서와 외세|외국 군대 요청, 종교 수호인가 민족 배반인가
황사영이 지키려 한 것은 보편적 정의
자기 신념 위에 또 다른 폭력 부른 건 잘못
9. <조선책략>의 허와 실|친미(親美), 순진한 착오였나 현명한 전략이었나
현대 친미론의 토양 만드는 데 이바지
미국 끌어들여 청·일 견제한 생존전략
10.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조선 독립 도운 일본인은 사회주의자인가
소수 사회주의자의 자각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
이젠 관용과 대화로 동아시아 전체가 연대할 때
11. 후세인과 박정희|전후(戰後) 이라크 국민의 선택은?
후세인정권은 이라크 주민 생존 담보한 국민국가
개발독재가 외세의 지배보다 나은가?
12. 허동현·박노자 대담|"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가는 첫걸음"
부록 - 원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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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동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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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문학박사
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원장
저서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당대, 1999)
『건국·외교·민주의 선구자 장면』(분도출판사, 1999)
『근대 한·일관계사연구』(국학자료원, 2000)
공저
『우리역사 최전선』(푸른역사, 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푸른역사, 2005)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푸른역사, 2009)
『인문학 콘서트 3』(이숲, 2011)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1)
역서
『유길준 논소선』(일조각, 1987)
편저
『조사시찰단 관계자료집』(국학자료원, 2000)
『장면, 시대를 기록하다』(샘터, 2014)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1(1948-1949)』(경인문화사, 2016)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1949-1951)』(경인문화사, 2019) 접기
최근작 : <역사관과 역사학자>,<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 (1949~1951)> … 총 42종 (모두보기)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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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조선학과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당신이 몰랐던 K>,<인권 현장으로 떠나는 평화로운 화요일>,<팬데믹 시대에 경계를 바라보다> … 총 95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허동현(지은이)의 말
"이 때까지는 힘으로, 어떻게든 상대방을 부정하려고만 했는데 그래가지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지금 저희 두 사람이 하는 작업도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통분모를 찾고, 지향점을 찾는 거죠.
자동차로 이야기하자면 진행 방향은 보수나 진보나 똑같다고 봅니다. 자동차를 몰고 갈 때 액셀러레이터만 밟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웅덩이가 나오면 브레이크를 잡아야죠. 둘의 역할이 잘 배분되어야 잘 가죠."
평점
분포
8.8
209p. 자기만의 가치와 신념을 고집하며 지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고귀한 목적을 이루려 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면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관용과 대화만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 아닐는지요.
rushfire 2022-10-12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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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의견이지만결국은하나인주제를다루는책^^
송지은 2008-05-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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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논쟁
몸이 아플 경우, 내 몸은 두가지로 반응한다. 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배제하고 자정작용에 의해 스스로 나으려는 동물적 본능에 자신을 맡겨두는 것, 그래서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습관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약이던 음식이던 배불리 먹어서 몸을 보하는 것,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인지 나로서는 잘 판단할수
없다. 다만 상반된 두 방식 모두 그때 그때 내 몸이 원하는 방식이란 확신은 있다.
무엇이 진보며 무엇이 보수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내게 진보와 보수의 개념 역시 그렇다. 진보와 보수가 민족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 민족을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진보와 보수가 지향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이 둘 모두가 몸- 민족이 원하는 치유 또는 건강 유지의 합일점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 생각은 '박노자, 허동현 교수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비록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우리나라 인문 문화사에 기록되어진 숱한 논쟁들처럼 물고 뜯는 난장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함께 모색하며 고민하는 두 분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 책은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보수주의자 허동현 교수가 100년전 근대 여명기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화두를 놓고 반면교사로서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서출발한다. 되짚어 보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나의 실존적 상황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내가 당장 국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우리 앞에는 긴 미래가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지만 어떤 모습이 될른지는 불투명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반복된다' 는 명제하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꿰뚫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더우기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시선은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역사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밖에도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내용을 보강하는 많은 삽화며 '그래서?'의 해답편이 되는 두 교수의 좌담이며 부록으로 딸린 원전 읽기(단순한 출전 소개가 아니라 주요 원전이 그대로 실렸다) 등이 그것이다.
역사물은 고리타분하다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는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상당히 아쉬웠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하지만 양식있는 논쟁의 전개들은 단숨에 독파될 만큼 신선한 재미를 던져주는 한 편, 열강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에 대한 우려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했다. 이 책, <우리 역사 최전선>을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목차만이라도 읽어 보시기를...
(박노자 교수...1973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고작' 서른 둘. 한국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1989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그 짧은 공부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외국인인 사람이 이렇듯 깊은 성찰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그 바탕에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어 더욱 그렇다. 단순히 '훈수꾼이 바둑을 더 잘 두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는 몇십년 앞을 내다보는 천재이며-국사와 민족의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것임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다- 우스개 처럼 말하자면 전생에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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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os 2003-09-1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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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적 진보 vs 건강한 보수
우리의 근대 100년의 역사에 대해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건강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허동현 교수가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100년전 개화기와 현재의 국제정세가 놀랄 만큼 유사하고, 과거의 뼈아픈 경험으로부터 역사점 교훈 내지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점은 두 교수 모두 공통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00년의 사건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은 두 교수가 크게 다르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자생적으로는 탄생하기 힘든 배경을 지닌 한국인이다. 외모만으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가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애정은 어느 토종 한국인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신선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사회와 역사를 제3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무척 진보적이다. 그의 지적은 기존 이론과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까뒤집는다. 적어도 그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기존 교육을 받은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박노자 교수의 공격적인 지적에 대해 주로 반박글을 쓴 허동현 교수의 글을 읽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론이나 상식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고, 어떤 점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박노자 교수의 지적에도 이런 문제점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느낌이랄까.
두 교수의 논쟁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근대화에 끼친 일본의 영향력을 논함에 있어서도 박노자 교수는 일본이 만든 ‘국민’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개개인에 앞서 사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이 지금도 잔존하고 있음을 지적함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일본을 통해 번역된 근대라는 논점을 중심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한말 위정척사파 최익현의 평가에 관해서는 박노자 교수는 최익현을 빈라덴에 비유하면서 그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 지식인의 비애를 부각시킴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최익현은 몽상가에 불과하며 일부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결국 시대 흐름에 역행하였다고 주장한다. 박노자 교수는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여 미군의 한국 주둔에 반대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한다. 그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현실적인 상황을 중시하여 세계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우리의 근대사의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두 교수의 논쟁의 핵심적인 사항의 하나는 근대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는 것 같다. 역사 발전의 보편적 과정 내지 단계로서 근대화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여러 논쟁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관해서 개인적으로는 허동현 교수의 관점에 더 많이 공감이 간다. 우리의 근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박노자 교수의 지적이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근대화 되는 것이 반드시 개개인의 삶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근대화가 전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근대화의 개념을 도외시 한 채 역사적 평가를 하는 것은 국제적인 현실을 배제한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두 교수의 논쟁을 읽으면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의 근대 100년 역사에 대해 나는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교과서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 최익현과 빈라덴의 비교라든지 김일성과 박정희의 비교 등 - 무척 유익한 독서였다.
ps. 부록에 있는 ‘빈라덴의 편지’에서 빈라덴의 주장이 무척 논리적이고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빈라덴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의 공적 1호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모순적이고도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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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5-08-0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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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탈근대의 필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사학자들의 편애를 받는 부분이 개화기와 해방 전후 시기이다.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우선 다른 시대에 비해 참고자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다음으로 당시의 역사가 현재 우리 시대의 문제와도 맥이 닿아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책의 중심이야기 역시 개화기 즉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로 집중되어있다.
<우리 역사 최전선>은 이 시기에 펼쳐진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사상을 근대와 탈근대라는 두가지 시각으로 두명의 학자의 필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해방이후 우리 역사의 주류는 근대우월적인 사관이었다.대표적으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부국강병론이 그것이다.그리고 저항적 민족주의와 일제식 국가주의가 우리인식의 주류를 차지했다.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며 역사속의 개인과 소수자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흐름이 나온 것은 근자의 일이다.박노자 교수는 이러한 탈민족적,탈국가적인 역사해석과 소수자운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도 박노자 교수는 탈근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맡았다.박노자 교수는 근본적으로 서구의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부국강병이란 이름하에 무리하게 추진되는 일본따라가기식 근대화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진리에 처음부터 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갑신정변이나 황서영의 백서 사건들을 인류의 보편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예이다.반면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교수의 생각에 많이 동의하면서도 좀더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역사라는 것이 개구리 뛰듯 점프할 수 없다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필요불가결하게 거쳐가는 과정으로 이를 설명한다.그러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적이 없음을 주장한다.하지만 두사람 다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지향적이었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에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한다.이는 그동안 우리가 반동적이었던 저항적이었던 전체라는 이름 또는 국가와 민족이란 이름에 개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시 해왔기 때문이다.이러한 교육은 사실 아직도 유효하다. 예를 들어 지난 월드컵때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선수의 팀을 응원했던 한 네티즌은 수많은 네티즌들에 의해 매국노로 IMF를 몰고온 주범같은 부류로 몰렸다.(너 같은 X들이 많아서 IMF가 온 거다.라는 식의..) 얼마나 애국적인 국민인가? 다양성과 개인의 의지나 취향은 애국의 이름하에 묵살되어져야만 한다.이것이 우리들의 지배적인 역사관이고 국가관이다.
오래전에 그런 질문을 해본적이있다.만약 우리가 일본보다 강해서 일본을 침략했다면 우리는 선의를 사랑하는 민족이기때문에 '위안부'도 '일본에 대한 수탈'도 '일본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도 하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는 그러지 않았을거야 '라는 사람이있다면 교과서에 배운대로만 말하는 순진한 사람이거나 파시스트 둘 중에 하나였을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나온다. 일제시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한 일본인-대개 좌파거나 아나키스트 였지만-들이다.이들을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우리를 도왔기때문에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잠재적 파시스트 일원이다.그들은 그들의 소신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 반대한 것이다.역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어도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정의에 어긋나면 반대하는 것이 진정 옳은것이다.우리는 주변에 너무 많은 애국자를 갖고 있다.해외에서 뛰고 있는 스포츠 선수들도 우리에겐 한국의 국위를 떨치는 용사이다.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도 그런 호칭을 붙인다.어디가나 애국이고 국위선양이다.
우리에겐 해결하지 못한 근대적 과제가 많이있다.하지만 단계적 발전만 주장하며 탈근대적 질문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특히 우리의 왜곡된 근대가 낳은 패해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지금쯤이면 우리도 민족과 국가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반성할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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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1-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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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근대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좌우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개화기를 건전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서적이었다.
Rousseau 2009-02-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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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자유주의자와 건강한 보수들의 논쟁?
우리역사 최전선 이라는 책제목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박노자라는 조금은 불편한 진보주의자와, 허동현이라는 보수(나는 수구라고 부르고 싶다.)의 논쟁은 어떻게 치열하게 상대방에서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 실망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의 상상과는 달리 둘다 공자왈 맹자왈 등의 너무도 당연하고 도덕적인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수로 알려진(http://www.nocutnews.co.kr/news/1156588 뉴스 참조) 허동현가 적극적으로 수구파의 논리를 말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노자는 진보라고 하지만, 안중근을 인종주의를 넘어서지 못한자(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6/12/021109000200612210640012.html)로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서 그들의 진정한 본심을 듣고 싶었다.
자칭 '건강한 보수'와 '개인주의적 진보'라는 두 사람의 글들은 서신교류(메일)라는 택스트이기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타인에게 공격받을 글들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내심 실망감을 갖게했다.
2. 희망
나의 기대와는 상관 없이,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일 잘못된 것이든, 아니면,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서 쏟아진 글이든. 이책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글들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글들이 이들의 진정한 모습이길 바란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를 고민하며, 우리사회를 올바른 사회로 만들길 원하는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은 기대승과 이황과의 사단 칠정 논쟁을 연상시킨다. 주장은 있지만, 토론과 경청은 없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며, 절대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두사람의 토론은, 그 토론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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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4-11-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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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추천도서] 책은 '모두 다'
책은 ‘모두 다’라고 봅니다. 정보와 지식의 제공자이기도 하고 조언자이기도 하며 토론의 상대자가 되기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유한해도 너무나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책은 인간보다 수명은 훨씬 길면서 거리상의 제약을 뛰어넘습니다. 책은 우리의 ‘개체성’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 미하일 불가코프
어떤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한 번 거꾸로 봐야 바르게 볼 수 있다.” 1930년대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기본 구도는 바로 이와 같은 ‘거꾸로 보기’입니다. 악하면서도 변증법적으로 선(善)을 행하게 돼 있는 악마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경직된 관료사회에서 숨 쉴 수 없게 된 외로운 작가인 ‘거장’을 돕는다는 설정입니다. ‘악마의 힘에 의한 구출’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거부하는 창조적 개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1980년대’는 이제 누구나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먼 과거’가 됐지만 당시 비판받아 마땅한 획일주의와 거대담론의 폭력성, 민족주의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혁명적 열정이 있었고, 지식인 중 일부는 자본주의적 ‘자기 판매’, 시장적 거래를 거부하며 민중 속에서 유기화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인의 세계관과는 별개로, 모든 게 상품화된 이 시대에 그의 열정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헌영 평전 / 안재성
박헌영은 단순한 개인은 아니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의 약 5분의 1을 일제치하의 고문실과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전향을 거부하며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는 일본강점기 조선 민중들의 숙원을 담은 공산주의 운동, 즉 민족해방운동의 가장 양심적이고 급진적인 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분단된 조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남한에서는 지하생활을 전전하는 수배자가 되었고 북조선에서는 끝내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 책에서 이러한 비극의 근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 프란츠 파농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주의자이기보다 변증법적 사고를 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폭력의 양면성․양가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폭력은 물론 본질상 악이지만 악이 만연한 식민지적 상황에서는 반체제 폭력이 불가피하고 선한 기능이 있는 ‘차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폭력의 변증법일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파농에게 배웠습니다.
민중의 세계사 / 크리스 하먼
한국 민중 운동사의 가장 큰 결점 중의 하나는 국제 연대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병영 국가의 폐쇄성 탓이기도 하지만 민중 운동은 타자를 인식하는 데 서툴렀으며, 폐쇄적 민족주의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 함정을 피해 일국 차원의 민중 운동을 전 세계적 민중 운동의 일부분으로 만들자면 이 《민중의 세계사》와 같은 책을 꼭 독파해야 합니다.
추천인 :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품은 막연한 동경 때문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립 레닌그라드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와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오슬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약자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불교 사상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말한 가르침에서 근대 철학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사상의 영혼’을 발견하고 깊은 감동 받은 바 있는 그는, 사회과학과 불교의 진리가 결국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그가 한국 불교에 던지는 통렬한 문제의식은 초기 불교의 경전에 대한 ‘해방적 시각’을 바탕으로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가르침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박노자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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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추천도서 2011-12-16 공감 (16) 댓글 (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밀린 원고 때문에 대학원 MT도 따라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죽치고 있다. 이런 날은 적당한 긴장상태에 있게 되는데, 그러한 긴장에 맞멎는 '배짱' 때문에 한편으론 여유롭기까지 하다(그 배짱의 유일한 근거는 원고를 쓰지 못한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뒷북성' 기사를 읽게 됐는데,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란 학술쟁점 기사가 그것이고, 작년말 교수신문 기사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교수신문에 자주 들락거리진 않았나 보다). '자료'의 가치가 있어서 보관해놓도록 한다.
교수신문(05. 12. 2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모델이 '러시아'라는 특이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근대사)는 최근 출판된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선인 刊)란 책에 실린 한 논문에서 "대한제국의 국제는 그 전제성으로 볼 때 러시아 차르 체제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라는 논문에서 "대한제국이 추진한 황제권 강화는 민국이념을 계승한 것이라거나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제를 본떴다기보다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통계승설과 일본모방설에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허 교수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러시아에 기대어 등장한 황제국 대한제국의 모델이 제정 러시아였음은 자명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장으로라면 황제권이 강하다는 형태적 유사성, 정치활동을 억압했다는 식의 전권적 지배, 급할 때 도와준 강국의 국가지배체제를 당연히 본받지 않았겠느냐는 식의 추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 교수가 동원하는 것은 주한 러시아 공사 스파에르의 보고서가 전부다. 스파에르가 "고종의 충신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지없이 미국화 되어버린 서재필의 산물인 독립협회는 반러 활동을 전개하는 일본과 영국 공사관의 괴뢰"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를 근거로 "고종의 독립협회 해산에는 러시아 측의 암묵적 지지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이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으로 무사히 돌입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방패막이 이상의 존재였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사료나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허 교수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빈약한 근거로 왜 허 교수는 이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교수신문에서 지난해 벌어졌던 '고종시대 논쟁'에서 '광무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대한제국'을 이끈 고종은 영정조의 민국이념을 계승한 개명군주라는 이태진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고종이 밀려오는 외세에 대응해 동도서기론을 취했던 이유에 대해 이태진 교수는 "고종은 서양의 입헌군주제나 입헌공화제에 대해 소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섣불리 이를 모방하기보다 선왕들이 추구한 민국정치 이념을 계승해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내실있는 왕정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허 교수는 "과연 군주 중심의 동도서기론적 대응이 민국이념이라는 자기역사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을까"라는 회의를 표한다. 그는 "민국이념을 계승하였다는 사진속의 고종황제는 어째서 차르의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일까"라고 계속 따진다.
이 질문은 그럴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공식복장이 그랬다면 그것은 은연중 고종의 지향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적 차원의 겉치레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그간 대한제국의 성립에 영향을 준 국가모델을 명치유신을 거친 일본에 국한해서 논의해온 측면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역사적 변수를 도입해 좀더 꼼꼼하고 종합적인 시야를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러시아 모방설을 대한제국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고 있어 아쉽다. 즉, 러시아는 모델로 삼을 만한 게 못된다는 것. 그는 이승만의 저서인 '독립졍신'에 러시아가 아주 저급한 국가로 취급되고 있는 걸 예로 들며 "당시 서구중심주의자들이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음에 비해, 고종은 그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비밀경찰이 사회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보수적 반동 전제정치가 강화된 알렉산드리(*알렉산드르) 3세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부조적 방식에 대해서는 '고종시대 논쟁' 중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전제군주 등 유사성을 부각시켜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방식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상황이나 내적 동기 등을 밝혀내지 못한채 단지 '왜 러시아는 논하지 않나'라는 착상에 의존하면서 유사성을 지나치게 발견하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결국 허 교수가 골인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근대국민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고종과 그 측근세력이 차르체제를 '잠재모델'로 만든 대한제국은 국민을 국가를 담당하는 주체가 아니라, 백성을 신민으로 잠자게 하려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20년 가까이 대한제국 정치구조를 연구해온 서영희 한국산업대 교수(한국사)는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독특한 주장인데 나는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델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한국사) 또한 "읽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만약 사료나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이 국민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허 교수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이 서구 근대국가의 일반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국가가 아니라고 본다. 문명화의 정도, 통합기제의 유무, 국가간의 대등관계 등에서 볼 때 '택'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명치 이래 일본의 문명개화는 "서구 근대와 일본 고대의 유착"이며 "서구근대가 오역, 날조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헌법과 의회, 삼권분립 등의 정체를 갖추고 있었기게 일본적 국민국가 정도는 된다는 주장을 한다.
비서구권의 역사진행을 서구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틀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이제 '선택'과 '관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허 교수뿐 아니라 이 결여태를 상정하는 학자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번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캐치 업' 근대화를 걸어갔다고 보고 있다.
이 때 '번역'이라는 어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권에서 비문명권으로 지식이 흘러들어간 방식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번역'이라는 수사는 매우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번역=이식'이고, 더 세분화시켜봤자 번역->번안->통언어적 실천(토착화)인 셈이다. 하지만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미메시스'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미메시스는 상호적인 것, 즉 상호모방이다. 번역에서는 원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미메시스는 그와 달리 원래의 대상에는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 최종적인 과정으로 포함된다.
물론 예술에서 주로 쓰이는 이 미메시스의 개념을 역사과정에 확장시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으나, 서구의 결여태로서 비서구사를 규명하려는 논의구조가 왜 아포리아인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기자의 아이디어는 책 한 권을 쓸 만한 주장이다. '무리'가 아닌 걸 보여준다면 주목할 만한 업적이 되지 않을까?).
대한제국이 '진정한' 근대국민국가가 아니었다고 결론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대한제국이 진정한 국민국가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룰 때 그 반박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서구와 역사과정이 다르고, 국가 구성원들의 사회화과정, 교육정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조선이라는 특수한 왕조가 어찌어찌 당시의 대세를 따라 국체를 바꿔보려 했었던들 어찌 '진정한' 서구를 이루었을 것인가가 진정한 의문이다.
차라리 "외세가 없었다면 대한제국은 어떤 제3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그나마 과거사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서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따라서 대한제국이 일본, 러시아와 청국, 미국 등 어느 한 나라를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조선이라는 그릇에 이들을 해체재구성하는 혼성모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손쉬우면서도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강성민 기자)
06. 11. 10.
P.S.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 교수와의 역사 대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그 대담에서는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이 '쟁점'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지만,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러시아는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러시아쪽 사료들을 검토/분석할 수 있는 연구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안다. 국문학도/국사학도들이 일본과 중국쪽 사료 못지 않게 러시아쪽 사료들도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해방공간에 관한 사료들이 그러한데)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 건 아닌가...
P.S.2. 동향기사에 대한 허동현 교수의 반론도 게재되었던 걸 뒤늦게 발견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마저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6. 01. 06) ‘강한 주장 약한 사료’(교수신문 제384호)에 답한다
제정 러시아의 차르체제가 대한제국 광무황제가 꿈꾼 개혁모델이었다는 필자의 견해(「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5)에 대해 “강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사료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강성민 기자의 논평은 정당하다. 허나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기존 연구 모두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가설의 등장은 역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존의 연구는 개화파, 농민(민중), 국왕, 그리고 일본 중 누구를 근대 개혁의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광무개혁”의 실재를 부정하는 신용하 교수는 개화파를, “광무개혁”은 호평하면서도 대한제국은 “의사절대왕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김용섭 교수는 농민을, 대한제국이 주체적 근대 국민국가였다고 본 이태진 교수는 국왕을,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광무개혁”의 근대성을 부정한 이영훈 교수는 일본을 근대화의 주체로 본다. 강 기자의 논평에 힘을 실어 준 서영희 ․ 주진오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서 교수는 국왕을, 주 교수는 농민을 개혁의 주체로 보는 쪽에 서있는 것 같다.
시민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오늘 그 “발전”의 뿌리를 놓고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 경제사학계의 식민지근대화론이 평행선을 달린다. 외세를 배격한 민족의 자주를 강조하는 대한제국 높이기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일까?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 떠넘기는 과오 감추기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고 개화기의 근대화 노력을 외면하며 오늘 우리가 이룬 경제성장의 뿌리를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대한제국 때리기도 정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종래 연구 동향을 일별할 때, 필자가 품은 의문은 다음과 같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을, “온건” 개화파는 중국을, 친미 개화파는 미국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고종과 주변세력은 갑신정변 실패이후 청국을, 그리고 아관파천 이후 러일전쟁 전까지 일본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왜 그들은 러시아에 의지하려고만 하고 러시아를 개혁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일본이 자국의 제도를 모델로 한 갑오경장을 유도했듯이, 러시아도 삼국간섭 이후 자국을 모델로 한 조선의 개혁을 이끌어 내려하지는 않았을까? 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민족”과 “자주”를 오용하는 국수적 성격의 대한제국과 고종황제 띠우기에 보이는 맹점을 지적하려는 데 그 주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잠정적 결론 하나는 대한제국은 그 개혁모델로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연명하던 허울만 남은 제국인 대한제국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추후 실증적 작업이 뒷받침될 때 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필자는 웨베르 주한 러시아공사가 아관파천 때 의정부를 다시 설치한 것에 대해 "고종이 러시아의 국무회의(Gosudarstvennyi Sovet) 절목을 참고하여 부활시켰다"고 보고한 러시아 문서를 찾았다. “강한 주장”을 입증하는 충실한 사료가 앞으로 속속 발견될 전망이다.
허나 필자는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로 보았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차라리 졸고가 개화기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근대화 예정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면 수긍이 간다. 물론 근대화란 역사적 필수가 아닌 하나의 가능성 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근대 기획의 문제는 근대 자체를 비판하여 넘어서려는 탈근대의 문제와 구별되어야 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근대 기획―식민지 근대 극복과 하나 되는 국민국가 수립―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傳言만으로 一針을 주신 주진오, 서영희 교수께 감히 졸고 일독 후 가편을 청한다.(허동현 / 경희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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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1-10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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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79쪽
알라딘 리뷰
"박노자와 허동현의 e-mail 편지"
'건강한 보수주의자'와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가 메일을 주고 받는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한국의 근대 10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박노자의 글과 실패의 1차 책임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허동현의 글이 맞붙는다. 그러나 '우리 역사 최전선'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싸움은 온화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는 얼굴도 안 볼 것 같은 격론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서로 대립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함께 더 잘 살기 위해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성실한 논쟁이 조금은 낯설다. 어떤 부분은 의견이 다르고,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난망함이 있지만 박노자와 허동현은 '함께 고민한다'는 미덕을 잃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사와 근대적 인물을 현재의 눈으로 톺아보는 이 책은, 박노자와 허동현 각자의 관점이 살아있어 더 흥미진진하다. 박노자는 진짜 미국인이 되고자 한 조선 지식인의 좌절에서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의 벽을 읽어낸다. 현실에서도 친미는 그래서 위험하단 생각이다.
반면, 허동현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백인과 동등해 질 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배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다. 민족주체성만 있다면 인종 편견의 시련은 견딜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미국을 침략자로 보는 시각도 비주체적이라며 지미(知美)의 관점을 내세운다.
이렇듯, 한국의 지난 100년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며 이들은 앞으로 한국의 100년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과거의 잘못은 반복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두 학자의 노력이 보기 좋다.
12장은 특별히 대담으로 꾸몄는데, e-mail 편지론 해소할 수 없었던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솔직한 대답에 대담은 유쾌해지고, 맞웃음을 짓는 박노자와 허동현의 모습에 글쓴이의 마음도 소리없이 웃는다. - 최성혜(2003-09-02)
책소개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우리의 '근대'가 시작된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동양과 서양, 척사와 개화, 쇄국과 개방,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친미와 반미, 진보와 퇴보, 혼재와 대립이 만연한 시기로부터 박노자와 허동현은 우리가 놓친 역사적 인물과 사건 11가지를 짚어낸다.
'그때 거기'에 '지금 여기'를 겹쳐 보면서 100년 전의 근대, 100년 후의 근대를 논한다. 원래 박노자와 허동현은 경희대학교에서 함께 지내다가 박 교수가 오슬로 대학으로 간 후에 이메일로 안부와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사적인 e-mail로 시작된 것이 어느새 입소문이 나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본문은 모두 12장이다. 11장까지는 e-mail 편지를 그대로 옮기고(서간체라 읽기 좋다), 내용에 부합하는 사진자료를 추가했다. 12장은 박노자와 허동현의 대담이다. 서로 어떤 역사학자인지 평가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부록으로 본문에서 거론한 문헌 및 기타 자료의 원문을 수록해 독자가 직접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목차
책머리를 대신하여
서설: 역사는 반복되는가|'미국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려면
'중국 이후' 대비 못한 100년 전의 실패 반복 말아야
실패의 1차적 책임은 당사자에게, 내부에서 원인 찾아야
1. 윤치호와 영어 배우기|진짜 미국인이 되고자 한 조선 지식인의 좌절
지나친 친미는 좌절만 가져다줄 뿐
미국을 배우되 주체성 잃지 않을 수도
2.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일본 통해 서구문명 받아들인 조선의 혼란
우리 식 서구 읽기, 아직도 요원한가?
일본이 씌운 '국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3. 빈 라덴과 최익현|위정척사운동은 정의인가 몽상인가
전통 엘리트의 보수 자구책 강구는 당연
그들이 지키려 한 건 시대착오적 구체제
4. 유교와 사회주의|유교사상이 극동 사회주의 밑바탕 됐나
유교의 인본주의가 극동 사회주의로 이어져
유교 지식인들의 지향점은 자본주의적 근대
5. 변방 세력의 혁명|'중심의 교체'가 꼭 진보만은 뜻하진 않는다
혁명 결과보다는 방법과 과정이 중요해
평등사상 없는 혁명은 '진보'가 될 수 없어
6. 갑신정변 다시 보기|근대화 시계 10년 늦춘 '실패한' 혁명
폭력과 살육 서슴지 않은 근대화 지상주의자들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 적은 없어
7. 홍선대원군 다시 보기|대원군은 실패한 정치가였나?
'근대화'가 평가의 잣대 되어서는 안 돼
대원군은 위기 관리 떠맡은 '세도정권 대리인'
8. 황사영 백서와 외세|외국 군대 요청, 종교 수호인가 민족 배반인가
황사영이 지키려 한 것은 보편적 정의
자기 신념 위에 또 다른 폭력 부른 건 잘못
9. <조선책략>의 허와 실|친미(親美), 순진한 착오였나 현명한 전략이었나
현대 친미론의 토양 만드는 데 이바지
미국 끌어들여 청·일 견제한 생존전략
10.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조선 독립 도운 일본인은 사회주의자인가
소수 사회주의자의 자각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
이젠 관용과 대화로 동아시아 전체가 연대할 때
11. 후세인과 박정희|전후(戰後) 이라크 국민의 선택은?
후세인정권은 이라크 주민 생존 담보한 국민국가
개발독재가 외세의 지배보다 나은가?
12. 허동현·박노자 대담|"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가는 첫걸음"
부록 - 원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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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동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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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문학박사
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원장
저서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당대, 1999)
『건국·외교·민주의 선구자 장면』(분도출판사, 1999)
『근대 한·일관계사연구』(국학자료원, 2000)
공저
『우리역사 최전선』(푸른역사, 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푸른역사, 2005)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푸른역사, 2009)
『인문학 콘서트 3』(이숲, 2011)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1)
역서
『유길준 논소선』(일조각, 1987)
편저
『조사시찰단 관계자료집』(국학자료원, 2000)
『장면, 시대를 기록하다』(샘터, 2014)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1(1948-1949)』(경인문화사, 2016)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1949-1951)』(경인문화사, 2019) 접기
최근작 : <역사관과 역사학자>,<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 (1949~1951)> … 총 42종 (모두보기)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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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조선학과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당신이 몰랐던 K>,<인권 현장으로 떠나는 평화로운 화요일>,<팬데믹 시대에 경계를 바라보다> … 총 95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허동현(지은이)의 말
"이 때까지는 힘으로, 어떻게든 상대방을 부정하려고만 했는데 그래가지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지금 저희 두 사람이 하는 작업도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통분모를 찾고, 지향점을 찾는 거죠.
자동차로 이야기하자면 진행 방향은 보수나 진보나 똑같다고 봅니다. 자동차를 몰고 갈 때 액셀러레이터만 밟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웅덩이가 나오면 브레이크를 잡아야죠. 둘의 역할이 잘 배분되어야 잘 가죠."
평점
분포
8.8
209p. 자기만의 가치와 신념을 고집하며 지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고귀한 목적을 이루려 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면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관용과 대화만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 아닐는지요.
rushfire 2022-10-12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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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의견이지만결국은하나인주제를다루는책^^
송지은 2008-05-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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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논쟁
몸이 아플 경우, 내 몸은 두가지로 반응한다. 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배제하고 자정작용에 의해 스스로 나으려는 동물적 본능에 자신을 맡겨두는 것, 그래서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습관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약이던 음식이던 배불리 먹어서 몸을 보하는 것,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인지 나로서는 잘 판단할수
없다. 다만 상반된 두 방식 모두 그때 그때 내 몸이 원하는 방식이란 확신은 있다.
무엇이 진보며 무엇이 보수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내게 진보와 보수의 개념 역시 그렇다. 진보와 보수가 민족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 민족을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진보와 보수가 지향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이 둘 모두가 몸- 민족이 원하는 치유 또는 건강 유지의 합일점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 생각은 '박노자, 허동현 교수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비록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우리나라 인문 문화사에 기록되어진 숱한 논쟁들처럼 물고 뜯는 난장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함께 모색하며 고민하는 두 분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 책은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보수주의자 허동현 교수가 100년전 근대 여명기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화두를 놓고 반면교사로서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서출발한다. 되짚어 보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나의 실존적 상황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내가 당장 국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우리 앞에는 긴 미래가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지만 어떤 모습이 될른지는 불투명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반복된다' 는 명제하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꿰뚫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더우기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시선은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역사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밖에도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내용을 보강하는 많은 삽화며 '그래서?'의 해답편이 되는 두 교수의 좌담이며 부록으로 딸린 원전 읽기(단순한 출전 소개가 아니라 주요 원전이 그대로 실렸다) 등이 그것이다.
역사물은 고리타분하다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는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상당히 아쉬웠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하지만 양식있는 논쟁의 전개들은 단숨에 독파될 만큼 신선한 재미를 던져주는 한 편, 열강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에 대한 우려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했다. 이 책, <우리 역사 최전선>을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목차만이라도 읽어 보시기를...
(박노자 교수...1973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고작' 서른 둘. 한국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1989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그 짧은 공부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외국인인 사람이 이렇듯 깊은 성찰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그 바탕에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어 더욱 그렇다. 단순히 '훈수꾼이 바둑을 더 잘 두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는 몇십년 앞을 내다보는 천재이며-국사와 민족의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것임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다- 우스개 처럼 말하자면 전생에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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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os 2003-09-1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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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적 진보 vs 건강한 보수
우리의 근대 100년의 역사에 대해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건강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허동현 교수가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100년전 개화기와 현재의 국제정세가 놀랄 만큼 유사하고, 과거의 뼈아픈 경험으로부터 역사점 교훈 내지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점은 두 교수 모두 공통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00년의 사건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은 두 교수가 크게 다르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자생적으로는 탄생하기 힘든 배경을 지닌 한국인이다. 외모만으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가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애정은 어느 토종 한국인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신선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사회와 역사를 제3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무척 진보적이다. 그의 지적은 기존 이론과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까뒤집는다. 적어도 그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기존 교육을 받은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박노자 교수의 공격적인 지적에 대해 주로 반박글을 쓴 허동현 교수의 글을 읽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론이나 상식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고, 어떤 점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박노자 교수의 지적에도 이런 문제점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느낌이랄까.
두 교수의 논쟁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근대화에 끼친 일본의 영향력을 논함에 있어서도 박노자 교수는 일본이 만든 ‘국민’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개개인에 앞서 사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이 지금도 잔존하고 있음을 지적함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일본을 통해 번역된 근대라는 논점을 중심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한말 위정척사파 최익현의 평가에 관해서는 박노자 교수는 최익현을 빈라덴에 비유하면서 그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 지식인의 비애를 부각시킴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최익현은 몽상가에 불과하며 일부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결국 시대 흐름에 역행하였다고 주장한다. 박노자 교수는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여 미군의 한국 주둔에 반대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한다. 그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현실적인 상황을 중시하여 세계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우리의 근대사의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두 교수의 논쟁의 핵심적인 사항의 하나는 근대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는 것 같다. 역사 발전의 보편적 과정 내지 단계로서 근대화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여러 논쟁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관해서 개인적으로는 허동현 교수의 관점에 더 많이 공감이 간다. 우리의 근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박노자 교수의 지적이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근대화 되는 것이 반드시 개개인의 삶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근대화가 전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근대화의 개념을 도외시 한 채 역사적 평가를 하는 것은 국제적인 현실을 배제한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두 교수의 논쟁을 읽으면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의 근대 100년 역사에 대해 나는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교과서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 최익현과 빈라덴의 비교라든지 김일성과 박정희의 비교 등 - 무척 유익한 독서였다.
ps. 부록에 있는 ‘빈라덴의 편지’에서 빈라덴의 주장이 무척 논리적이고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빈라덴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의 공적 1호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모순적이고도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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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5-08-0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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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탈근대의 필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사학자들의 편애를 받는 부분이 개화기와 해방 전후 시기이다.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우선 다른 시대에 비해 참고자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다음으로 당시의 역사가 현재 우리 시대의 문제와도 맥이 닿아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책의 중심이야기 역시 개화기 즉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로 집중되어있다.
<우리 역사 최전선>은 이 시기에 펼쳐진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사상을 근대와 탈근대라는 두가지 시각으로 두명의 학자의 필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해방이후 우리 역사의 주류는 근대우월적인 사관이었다.대표적으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부국강병론이 그것이다.그리고 저항적 민족주의와 일제식 국가주의가 우리인식의 주류를 차지했다.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며 역사속의 개인과 소수자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흐름이 나온 것은 근자의 일이다.박노자 교수는 이러한 탈민족적,탈국가적인 역사해석과 소수자운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도 박노자 교수는 탈근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맡았다.박노자 교수는 근본적으로 서구의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부국강병이란 이름하에 무리하게 추진되는 일본따라가기식 근대화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진리에 처음부터 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갑신정변이나 황서영의 백서 사건들을 인류의 보편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예이다.반면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교수의 생각에 많이 동의하면서도 좀더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역사라는 것이 개구리 뛰듯 점프할 수 없다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필요불가결하게 거쳐가는 과정으로 이를 설명한다.그러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적이 없음을 주장한다.하지만 두사람 다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지향적이었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에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한다.이는 그동안 우리가 반동적이었던 저항적이었던 전체라는 이름 또는 국가와 민족이란 이름에 개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시 해왔기 때문이다.이러한 교육은 사실 아직도 유효하다. 예를 들어 지난 월드컵때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선수의 팀을 응원했던 한 네티즌은 수많은 네티즌들에 의해 매국노로 IMF를 몰고온 주범같은 부류로 몰렸다.(너 같은 X들이 많아서 IMF가 온 거다.라는 식의..) 얼마나 애국적인 국민인가? 다양성과 개인의 의지나 취향은 애국의 이름하에 묵살되어져야만 한다.이것이 우리들의 지배적인 역사관이고 국가관이다.
오래전에 그런 질문을 해본적이있다.만약 우리가 일본보다 강해서 일본을 침략했다면 우리는 선의를 사랑하는 민족이기때문에 '위안부'도 '일본에 대한 수탈'도 '일본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도 하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는 그러지 않았을거야 '라는 사람이있다면 교과서에 배운대로만 말하는 순진한 사람이거나 파시스트 둘 중에 하나였을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나온다. 일제시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한 일본인-대개 좌파거나 아나키스트 였지만-들이다.이들을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우리를 도왔기때문에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잠재적 파시스트 일원이다.그들은 그들의 소신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 반대한 것이다.역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어도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정의에 어긋나면 반대하는 것이 진정 옳은것이다.우리는 주변에 너무 많은 애국자를 갖고 있다.해외에서 뛰고 있는 스포츠 선수들도 우리에겐 한국의 국위를 떨치는 용사이다.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도 그런 호칭을 붙인다.어디가나 애국이고 국위선양이다.
우리에겐 해결하지 못한 근대적 과제가 많이있다.하지만 단계적 발전만 주장하며 탈근대적 질문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특히 우리의 왜곡된 근대가 낳은 패해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지금쯤이면 우리도 민족과 국가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반성할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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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1-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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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근대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좌우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개화기를 건전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서적이었다.
Rousseau 2009-02-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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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자유주의자와 건강한 보수들의 논쟁?
우리역사 최전선 이라는 책제목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박노자라는 조금은 불편한 진보주의자와, 허동현이라는 보수(나는 수구라고 부르고 싶다.)의 논쟁은 어떻게 치열하게 상대방에서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 실망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의 상상과는 달리 둘다 공자왈 맹자왈 등의 너무도 당연하고 도덕적인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수로 알려진(http://www.nocutnews.co.kr/news/1156588 뉴스 참조) 허동현가 적극적으로 수구파의 논리를 말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노자는 진보라고 하지만, 안중근을 인종주의를 넘어서지 못한자(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6/12/021109000200612210640012.html)로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서 그들의 진정한 본심을 듣고 싶었다.
자칭 '건강한 보수'와 '개인주의적 진보'라는 두 사람의 글들은 서신교류(메일)라는 택스트이기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타인에게 공격받을 글들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내심 실망감을 갖게했다.
2. 희망
나의 기대와는 상관 없이,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일 잘못된 것이든, 아니면,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서 쏟아진 글이든. 이책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글들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글들이 이들의 진정한 모습이길 바란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를 고민하며, 우리사회를 올바른 사회로 만들길 원하는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은 기대승과 이황과의 사단 칠정 논쟁을 연상시킨다. 주장은 있지만, 토론과 경청은 없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며, 절대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두사람의 토론은, 그 토론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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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4-11-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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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추천도서] 책은 '모두 다'
책은 ‘모두 다’라고 봅니다. 정보와 지식의 제공자이기도 하고 조언자이기도 하며 토론의 상대자가 되기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유한해도 너무나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책은 인간보다 수명은 훨씬 길면서 거리상의 제약을 뛰어넘습니다. 책은 우리의 ‘개체성’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 미하일 불가코프
어떤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한 번 거꾸로 봐야 바르게 볼 수 있다.” 1930년대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기본 구도는 바로 이와 같은 ‘거꾸로 보기’입니다. 악하면서도 변증법적으로 선(善)을 행하게 돼 있는 악마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경직된 관료사회에서 숨 쉴 수 없게 된 외로운 작가인 ‘거장’을 돕는다는 설정입니다. ‘악마의 힘에 의한 구출’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거부하는 창조적 개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1980년대’는 이제 누구나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먼 과거’가 됐지만 당시 비판받아 마땅한 획일주의와 거대담론의 폭력성, 민족주의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혁명적 열정이 있었고, 지식인 중 일부는 자본주의적 ‘자기 판매’, 시장적 거래를 거부하며 민중 속에서 유기화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인의 세계관과는 별개로, 모든 게 상품화된 이 시대에 그의 열정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헌영 평전 / 안재성
박헌영은 단순한 개인은 아니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의 약 5분의 1을 일제치하의 고문실과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전향을 거부하며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는 일본강점기 조선 민중들의 숙원을 담은 공산주의 운동, 즉 민족해방운동의 가장 양심적이고 급진적인 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분단된 조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남한에서는 지하생활을 전전하는 수배자가 되었고 북조선에서는 끝내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 책에서 이러한 비극의 근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 프란츠 파농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주의자이기보다 변증법적 사고를 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폭력의 양면성․양가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폭력은 물론 본질상 악이지만 악이 만연한 식민지적 상황에서는 반체제 폭력이 불가피하고 선한 기능이 있는 ‘차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폭력의 변증법일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파농에게 배웠습니다.
민중의 세계사 / 크리스 하먼
한국 민중 운동사의 가장 큰 결점 중의 하나는 국제 연대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병영 국가의 폐쇄성 탓이기도 하지만 민중 운동은 타자를 인식하는 데 서툴렀으며, 폐쇄적 민족주의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 함정을 피해 일국 차원의 민중 운동을 전 세계적 민중 운동의 일부분으로 만들자면 이 《민중의 세계사》와 같은 책을 꼭 독파해야 합니다.
추천인 :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품은 막연한 동경 때문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립 레닌그라드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와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오슬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약자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불교 사상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말한 가르침에서 근대 철학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사상의 영혼’을 발견하고 깊은 감동 받은 바 있는 그는, 사회과학과 불교의 진리가 결국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그가 한국 불교에 던지는 통렬한 문제의식은 초기 불교의 경전에 대한 ‘해방적 시각’을 바탕으로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가르침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박노자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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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추천도서 2011-12-16 공감 (16) 댓글 (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밀린 원고 때문에 대학원 MT도 따라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죽치고 있다. 이런 날은 적당한 긴장상태에 있게 되는데, 그러한 긴장에 맞멎는 '배짱' 때문에 한편으론 여유롭기까지 하다(그 배짱의 유일한 근거는 원고를 쓰지 못한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뒷북성' 기사를 읽게 됐는데,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란 학술쟁점 기사가 그것이고, 작년말 교수신문 기사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교수신문에 자주 들락거리진 않았나 보다). '자료'의 가치가 있어서 보관해놓도록 한다.
교수신문(05. 12. 2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모델이 '러시아'라는 특이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근대사)는 최근 출판된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선인 刊)란 책에 실린 한 논문에서 "대한제국의 국제는 그 전제성으로 볼 때 러시아 차르 체제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라는 논문에서 "대한제국이 추진한 황제권 강화는 민국이념을 계승한 것이라거나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제를 본떴다기보다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통계승설과 일본모방설에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허 교수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러시아에 기대어 등장한 황제국 대한제국의 모델이 제정 러시아였음은 자명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장으로라면 황제권이 강하다는 형태적 유사성, 정치활동을 억압했다는 식의 전권적 지배, 급할 때 도와준 강국의 국가지배체제를 당연히 본받지 않았겠느냐는 식의 추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 교수가 동원하는 것은 주한 러시아 공사 스파에르의 보고서가 전부다. 스파에르가 "고종의 충신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지없이 미국화 되어버린 서재필의 산물인 독립협회는 반러 활동을 전개하는 일본과 영국 공사관의 괴뢰"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를 근거로 "고종의 독립협회 해산에는 러시아 측의 암묵적 지지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이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으로 무사히 돌입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방패막이 이상의 존재였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사료나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허 교수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빈약한 근거로 왜 허 교수는 이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교수신문에서 지난해 벌어졌던 '고종시대 논쟁'에서 '광무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대한제국'을 이끈 고종은 영정조의 민국이념을 계승한 개명군주라는 이태진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고종이 밀려오는 외세에 대응해 동도서기론을 취했던 이유에 대해 이태진 교수는 "고종은 서양의 입헌군주제나 입헌공화제에 대해 소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섣불리 이를 모방하기보다 선왕들이 추구한 민국정치 이념을 계승해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내실있는 왕정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허 교수는 "과연 군주 중심의 동도서기론적 대응이 민국이념이라는 자기역사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을까"라는 회의를 표한다. 그는 "민국이념을 계승하였다는 사진속의 고종황제는 어째서 차르의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일까"라고 계속 따진다.
이 질문은 그럴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공식복장이 그랬다면 그것은 은연중 고종의 지향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적 차원의 겉치레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그간 대한제국의 성립에 영향을 준 국가모델을 명치유신을 거친 일본에 국한해서 논의해온 측면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역사적 변수를 도입해 좀더 꼼꼼하고 종합적인 시야를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러시아 모방설을 대한제국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고 있어 아쉽다. 즉, 러시아는 모델로 삼을 만한 게 못된다는 것. 그는 이승만의 저서인 '독립졍신'에 러시아가 아주 저급한 국가로 취급되고 있는 걸 예로 들며 "당시 서구중심주의자들이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음에 비해, 고종은 그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비밀경찰이 사회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보수적 반동 전제정치가 강화된 알렉산드리(*알렉산드르) 3세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부조적 방식에 대해서는 '고종시대 논쟁' 중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전제군주 등 유사성을 부각시켜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방식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상황이나 내적 동기 등을 밝혀내지 못한채 단지 '왜 러시아는 논하지 않나'라는 착상에 의존하면서 유사성을 지나치게 발견하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결국 허 교수가 골인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근대국민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고종과 그 측근세력이 차르체제를 '잠재모델'로 만든 대한제국은 국민을 국가를 담당하는 주체가 아니라, 백성을 신민으로 잠자게 하려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20년 가까이 대한제국 정치구조를 연구해온 서영희 한국산업대 교수(한국사)는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독특한 주장인데 나는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델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한국사) 또한 "읽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만약 사료나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이 국민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허 교수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이 서구 근대국가의 일반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국가가 아니라고 본다. 문명화의 정도, 통합기제의 유무, 국가간의 대등관계 등에서 볼 때 '택'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명치 이래 일본의 문명개화는 "서구 근대와 일본 고대의 유착"이며 "서구근대가 오역, 날조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헌법과 의회, 삼권분립 등의 정체를 갖추고 있었기게 일본적 국민국가 정도는 된다는 주장을 한다.
비서구권의 역사진행을 서구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틀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이제 '선택'과 '관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허 교수뿐 아니라 이 결여태를 상정하는 학자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번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캐치 업' 근대화를 걸어갔다고 보고 있다.
이 때 '번역'이라는 어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권에서 비문명권으로 지식이 흘러들어간 방식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번역'이라는 수사는 매우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번역=이식'이고, 더 세분화시켜봤자 번역->번안->통언어적 실천(토착화)인 셈이다. 하지만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미메시스'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미메시스는 상호적인 것, 즉 상호모방이다. 번역에서는 원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미메시스는 그와 달리 원래의 대상에는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 최종적인 과정으로 포함된다.
물론 예술에서 주로 쓰이는 이 미메시스의 개념을 역사과정에 확장시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으나, 서구의 결여태로서 비서구사를 규명하려는 논의구조가 왜 아포리아인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기자의 아이디어는 책 한 권을 쓸 만한 주장이다. '무리'가 아닌 걸 보여준다면 주목할 만한 업적이 되지 않을까?).
대한제국이 '진정한' 근대국민국가가 아니었다고 결론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대한제국이 진정한 국민국가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룰 때 그 반박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서구와 역사과정이 다르고, 국가 구성원들의 사회화과정, 교육정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조선이라는 특수한 왕조가 어찌어찌 당시의 대세를 따라 국체를 바꿔보려 했었던들 어찌 '진정한' 서구를 이루었을 것인가가 진정한 의문이다.
차라리 "외세가 없었다면 대한제국은 어떤 제3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그나마 과거사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서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따라서 대한제국이 일본, 러시아와 청국, 미국 등 어느 한 나라를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조선이라는 그릇에 이들을 해체재구성하는 혼성모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손쉬우면서도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강성민 기자)
06. 11. 10.
P.S.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 교수와의 역사 대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그 대담에서는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이 '쟁점'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지만,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러시아는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러시아쪽 사료들을 검토/분석할 수 있는 연구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안다. 국문학도/국사학도들이 일본과 중국쪽 사료 못지 않게 러시아쪽 사료들도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해방공간에 관한 사료들이 그러한데)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 건 아닌가...
P.S.2. 동향기사에 대한 허동현 교수의 반론도 게재되었던 걸 뒤늦게 발견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마저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6. 01. 06) ‘강한 주장 약한 사료’(교수신문 제384호)에 답한다
제정 러시아의 차르체제가 대한제국 광무황제가 꿈꾼 개혁모델이었다는 필자의 견해(「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5)에 대해 “강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사료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강성민 기자의 논평은 정당하다. 허나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기존 연구 모두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가설의 등장은 역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존의 연구는 개화파, 농민(민중), 국왕, 그리고 일본 중 누구를 근대 개혁의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광무개혁”의 실재를 부정하는 신용하 교수는 개화파를, “광무개혁”은 호평하면서도 대한제국은 “의사절대왕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김용섭 교수는 농민을, 대한제국이 주체적 근대 국민국가였다고 본 이태진 교수는 국왕을,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광무개혁”의 근대성을 부정한 이영훈 교수는 일본을 근대화의 주체로 본다. 강 기자의 논평에 힘을 실어 준 서영희 ․ 주진오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서 교수는 국왕을, 주 교수는 농민을 개혁의 주체로 보는 쪽에 서있는 것 같다.
시민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오늘 그 “발전”의 뿌리를 놓고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 경제사학계의 식민지근대화론이 평행선을 달린다. 외세를 배격한 민족의 자주를 강조하는 대한제국 높이기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일까?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 떠넘기는 과오 감추기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고 개화기의 근대화 노력을 외면하며 오늘 우리가 이룬 경제성장의 뿌리를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대한제국 때리기도 정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종래 연구 동향을 일별할 때, 필자가 품은 의문은 다음과 같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을, “온건” 개화파는 중국을, 친미 개화파는 미국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고종과 주변세력은 갑신정변 실패이후 청국을, 그리고 아관파천 이후 러일전쟁 전까지 일본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왜 그들은 러시아에 의지하려고만 하고 러시아를 개혁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일본이 자국의 제도를 모델로 한 갑오경장을 유도했듯이, 러시아도 삼국간섭 이후 자국을 모델로 한 조선의 개혁을 이끌어 내려하지는 않았을까? 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민족”과 “자주”를 오용하는 국수적 성격의 대한제국과 고종황제 띠우기에 보이는 맹점을 지적하려는 데 그 주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잠정적 결론 하나는 대한제국은 그 개혁모델로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연명하던 허울만 남은 제국인 대한제국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추후 실증적 작업이 뒷받침될 때 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필자는 웨베르 주한 러시아공사가 아관파천 때 의정부를 다시 설치한 것에 대해 "고종이 러시아의 국무회의(Gosudarstvennyi Sovet) 절목을 참고하여 부활시켰다"고 보고한 러시아 문서를 찾았다. “강한 주장”을 입증하는 충실한 사료가 앞으로 속속 발견될 전망이다.
허나 필자는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로 보았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차라리 졸고가 개화기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근대화 예정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면 수긍이 간다. 물론 근대화란 역사적 필수가 아닌 하나의 가능성 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근대 기획의 문제는 근대 자체를 비판하여 넘어서려는 탈근대의 문제와 구별되어야 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근대 기획―식민지 근대 극복과 하나 되는 국민국가 수립―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傳言만으로 一針을 주신 주진오, 서영희 교수께 감히 졸고 일독 후 가편을 청한다.(허동현 / 경희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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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1-10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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