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5

Juman Kim - 「반포퓰리즘 선언! 민주주의 위기와 정체성 서사」

Juman Kim - Kyungho Song 박사께서 감사하게도 Hyemee Kim과 제가 우리말로 옮긴 책,... | Facebook


Kyungho Song 박사께서 감사하게도 Hyemee Kim과 제가 우리말로 옮긴 책, 「반포퓰리즘 선언! 민주주의 위기와 정체성 서사」를 경향신문 칼럼에서 소개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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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일전에 저자인 로저스 M. 스미스 교수와 조선의 기미독립선언서(1919)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바 있는데, 스미스 교수는 이후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잘 풀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가 많고 특별히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송 박사께서 칼럼에서 이 점에 주목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송 박사님의 경향 신문 칼럼을 공유하고요, 

스미스 교수의 한국어판 서문 중 해당 부분(14-18쪽)을 아래에 붙여 봅니다. (주석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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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퓰리즘 선언! 민주주의 위기와 정체성 서사」,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이 한국어판은 한국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아마도 북미와 남미, 유럽을 시끄럽게 하는 불안한 정치적 추세에서 운 좋게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나는 비록 멀리서나마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한국 정치가 내 전문 분야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개진한 주장 중 하나는 바로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의 지평이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현대 미디어와 교통 시스템의 도움으로 오늘날에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아주 멀리 떨어진 국가들의 정치적 관점들, 경험들, 발전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불가피하게, 이와 같은 인식이 한 국가 내의 정치와 여러 국가 간의 정치를 결정짓는다.

1919년 3월 1일, 9년간의 일본 식민지 경험 끝에 삼일운동 지도자들이 전국적인 시위에 나서며 「기미독립선언서」를 공표했을 때, 사실 그들은 미국혁명의 지도자들이 만든 「독립선언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아미티지David Armitage가 밝힌 것처럼, 한국의 지도자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한국 국민의 정체성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서사를 전했다. 그들은 한국인을 “오랜 사회 기초”를 가진 민족으로, 또한 선조들이 대대로 찬란한 “위업”을 닦아왔으며 “심성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민족으로 그렸다. 그러나 미국혁명의 지도자들과는 뚜렷이 대조적으로, 한국의 지도자들은 관대하게도 점령자인 일본을 비난하고 질책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기미독립선언서」의 작성자들이 한국을 다시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는’ 독립의 상태로 돌려놓을 것을 다짐하는 바로 그때에도, 그들은 그것이 동아시아와 전 세계의 안녕에 기여하고, 한국인의 창조적 잠재력이 표출되어 새 시대의 진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을 통해 그 대의의 상당 부분을 정당화했다. 

그들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의 일환으로 “자기의 건설”을 추구했으며, 그것이 결국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을 도울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도덕”과 “신문명”을 지향하는 “세계문화의 대조류”의 일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민족적 정화精華” 피울 수 있게 “자족自足한 독창력을 발휘”하고자 했는데, 그와 같은 일은 그들 선조의 정신뿐 아니라 “전 세계 기운氣運”의 도움을 받는 방법으로 행해질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한국의 독립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단순히 ‘자치하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역설한 것만이 아닐뿐더러, 단순히 그들의 역사와 전통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자랑한 것만도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파괴에 이어서 일어난 민족 독립, 민주주의, 인간의 자유를 위한 전 세계적인 운동들의 사정에 정통해 있었던 삼일운동 지도자들은 전 세계적인 진보적 혁신의 대업에 동참할 협력자이자 모든 이들이 유익함을 얻을 평화의 원천으로서 한국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일운동 지도자들은 편협하고 순전히 공동체 내부만을 향하는 민족주의 대신에 관대하고 널리 유익함을 줄 수 있는 관념의 국민 정체성을 개진했다. 이는 이 책에서 내가 가능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것과 핵심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미독립선언서」의 역사는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우세한 국민 정체성 서사와 국가 정체성 형태가 전 세계의 운명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중대한 의미를 주는 오늘날 특별히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물론 1919년 이후에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본제국은 독립운동을 탄압했으며, 일제로부터 해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다. 게다가 1948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각각 고유한 헌법과 고유한 방법으로 정의한 한국인/조선인의 정체성을 지닌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함재학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주장했듯이 학자들은 북한의 1948년 헌법이 조선인을 가리켜 “인민”이라 칭하고, 남한의 1948년 헌법이 한국인을 가리켜 “국민”이라 칭한 것의 중요성을 놓고 의견을 달리해 왔다. 어떤 학자들은 “국민”이라는 표현이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반드시 능동적인 정치 주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을 더 강조하는 반면, “인민”은 좀 더 사회학적이거나 더욱 추상적인 이론적 관념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쥐스틴 귀샤르 Justine Guichard는 ‘국민’과 ‘인민’ 개념의 의미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건국 이후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에서 그 뜻이 점차 변해왔다고 주장한다. 귀샤르는 특별히 북한의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이 “인민”을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 인텔리”라고 정의하면서 ‘인민’이라는 용어에 1948년 헌법에서 표현된 것보다 더욱 계급 중심적이며 덜 포용적인 특수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강조한다. 남한의 경우, 헌법의 용례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국민’이라는 용어가 시사하는 시민성을 더 강화하고 동원하고자 했던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때때로 ‘국민’ 대신 ‘민중’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왔다.

나는 과문한 탓에 한국인들이 정치적 집합체로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사용해 온 여러 서로 다른 용어들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이와 같은 토론에 끼어들 수 없다. 또한 나는 한국인들이 어떠한 국민 정체성 관념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지 특별한 제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설명들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다른 거의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서로 경합하는 다수의 대답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한국인/조선인 정체성이 지배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1948년 건국 이래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에서, 또한 남북한 사이에서 계속됐다. 정체성에 대한 서로 다른 관념들은 다음에 관한 상이한 시각들과 밀접히 연결된다. 정치권력의 적합한 체계화, 가장 바람직한 경제 시스템, 그리고 한국/조선의 혈족, 혈통, 전통, 핵심 가치 등의 본질에 대한 대조적인 설명들이 그것이다.

마지막에 언급한 사항과 관련해, 이른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공산주의 사회 북한에서 1990년대에 김일성 일가의 세습 지배를 확립하는 와중에 한국인/조선인의 신성한 전설적 시조 단군의 신화를 특별히 강조하게 된 것은 사뭇 얄궂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가 1948년 남한 헌법과는 달리, 당시 일제 신민으로서의 한국인을 뜻하는 것으로 종종 해석될 여지가 있었던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남한 사회와 북한 사회 내에는,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는 한국인/조선인의 정체성에 관해 매우 다른 서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폭넓고 다양하면서도 정치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원들이 많이 있다. 개중에는 더 계급 중심적인 것도 있고, 정치적 시민성이 중심인 것도 있으며, 더 혈족 중심인 것, 더 종교적인 것,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것, 그런 성향이 확실히 덜한 것도 있다.

오늘날 여러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권위주의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적 서사들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더 포용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국민 정체성에 관한 설득력 있는 서사들을 발전시킬 그럴 듯한 발전 방법들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이 누구이며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할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 자신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에 담긴 나의 사상과 의견이 한국인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고 발전적인 장래의 진로를 찾도록 돕는다면, 이 책을 쓸 때 품었던 나의 소망은 충분히 이뤄질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을 위해 힘써주고 번역을 맡아준 김주만·김혜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두 사람은 훌륭한 학자이자 내 좋은 친구들이다."
로저스 M.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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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N.CO.KR

[공감]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우리 모습이 아니다
우리 집에는 많은 규칙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나둘 늘어났다. 신생아 때는 밥 잘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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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퓰리즘 선언!: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체성 서사
 That Is Not Who We Are!
| 양장본 Hardcover
종이책26,100원
원서/번역서51,250원
로저스 M. 스미스 저자(글) · 김주만 , 김혜미 번역
한울아카데미 · 2023년 05월 17일 (1쇄 2023년 05월 03일)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3년 6월 1주 선정
우리는 누구이고, 또 누가 되어야 하는가?

포퓰리즘 시대에 쓰는 ‘우리’ 정체성 서사

민주주의 공동체에서 순수하고 통일된 집합 정체성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가 노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인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을 부지불식간에 조장할 수 있다.
이 책은 정체성 내러티브 경쟁의 틀로 포퓰리즘 시대 미국의 정치를 분석한다. 세계 곳곳에서 병리적 포퓰리즘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열광을 이끌어내며 기승을 부리는 오늘의 현실에 주목하는 이 책은, 이런 현상을 가능케 한 포퓰리즘 서사의 힘과 한계를 명쾌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에 맞서는 더욱더 포용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정체성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규범적 이상과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든 서사들보다도 더 훌륭한 정체성 서사를 쓰고자 하는 정치인, 정치인 지망생, 지식인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수용하고 재해석해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또한 그 서사가 가리키는 목표대로 ‘우리’의 공동의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로저스 M. 스미스
인물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정치/외교학자


1974년 미시간 주립대학교 제임스 매디슨 칼리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1978년에 석사학위를, 1980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에서 21년을 가르친 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유펜) 정치학과로 자리를 옮겨 다시 21년을 가르치고 지난 2022년 여름에 은퇴했다. 정치사상, 미국 헌법, 시민권, 정치발전사 등 분야의 권위자로 Liberalism and American Constitutional Law(1985), Civic Ideals(1997), Stories of Peoplehood(2003), Political Peoplehood(2015) 등의 단독 저서 외에도 다섯 편의 편저와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미국학예원(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미국정치사회과학학술원(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s), 미국철학회(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등 유서 깊은 학술 단체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8~2019년에는 미국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114대 회장을 지냈다. 현재 유펜 정치학과에 크리스토퍼 H. 브라운 명예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Civic Ideals의 후속작인 Civic Horizons 집필을 비롯해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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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주만
인물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정치/외교학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유펜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학교 법정학과/국제관계학과에서 생도들을 가르친 바 있으며, 
오레곤대학교 정치학과와 로스쿨 방문교수를 지냈다. 

현재 메릴랜드주 타우슨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조교수 겸 
‘법과 미국 문명(Law and American Civilization)’ 과정 전공 주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 막스 베버(Max Weber) 등의 사상을 다룬 논문을 썼고, 
토니 주트(Tony Judt)의 “‘The Problem of Evil’ in Postwar Europe”을 「전후 유럽에서의 ‘악(惡)의 문제’」로 옮겨 국내에 소개했다. 

현재 민주주의의 근본 조건으로서의 좌절을 조명하는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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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an Kim is Assistant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nd Director of the Program in Law and American Civilization at Towson University. He is a political theorist whose research and teaching interests range widely over ancient and modern political thought, continental philosophy, contemporary and comparative political theory, and American constitutional law.

His current book project, Living with Frustration: The Quest for a Democratic Citizenship of Perseverance, which builds on his dissertation, examines three related yet distinct aspects of democratic frustration arising from the respective democratic aspirations: mutual respect, popular sovereignty, and progress.

Kim holds a Ph.D. from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both M.A. & B.A. degrees from Yonsei University. Previously, he taught political theory and public law at the Korea Air Force Academy, Penn, Rutgers University-Camden, and the University of Ore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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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혜미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루소의 정치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새가정≫에 「세상을 앞서간 여성들」, 「민주주의 이야기, 우리 문화 이야기」, 「한국에서 미국을, 미국에서 한국을, 새롭게 다시 보기」를 연재한 바 있고 
민주주의 정치, 다양성과 관용, 건강한 회의주의 등과 관련한 글과 번역을 준비 중이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가우처대학교 글로벌 교육처에서 국제 교류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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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1장 서사들의 불협화음
새로운 포퓰리즘 국면
정의와 진단
서사로의 전환
집합체의 과잉
경쟁하는 서사들의 격전지

2장 무엇이 훌륭한 국민 정체성 서사를 만드는가?
일반적인 대응
더 나은 서사는 가능한가?
어떻게 훌륭한 국민 서사를 쓸 것인가?

3장 오늘날 ‘우리 미국인들’은 누구인가?
미국인 서사들의 필요성
미국이 우선이다!
민주주의 서사들
‘여럿이 모인 하나’의 서사
「독립선언서」의 서사
오늘날의 「독립선언서」의 서사

후기: 아직도 설득되지 않은 독자들께 드리는 마지막 이야기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포퓰리즘 시대에 쓰는 ‘우리’ 정체성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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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9788946082526
발행(출시)일자 2023년 05월 17일 (1쇄 2023년 05월 03일)
쪽수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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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유럽에서의 “악(惡)의 문제”
토니 주트 김주만  
철학과 문화  46집 2022.02 143 - 174 (32 pages)
인문학 철학
이용수 48 인용하기 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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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권호 수록 논문
국문초록

토니 주트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를 전공했고 이후 근대 유럽사 전반에 대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역사가이자, 해박한 역사적 식견을 바탕으로 꾸준히 국제 정세와 시사를 논했던 명석한 평론가였다. 본 소논문에서 주트는 한나 아렌트 덕분에 우리에게도 이제 많이 익숙해진 “악(惡)”에 대한 담론의 역사를 살피고, 그것이 노정하는 난제를 특유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한다. 비록 주트가 이 글에서 아렌트의 개념과 주장을 직접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아렌트의 입장과 태도가 이 글의 주요 모티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트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곤 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첫째, 쇼아(Shoah: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렌트가 이해하고자 했던 절대적인 악이었는데, 실제로 전후 유럽에서는 이 “악의 문제”가 전혀 활발히 논의되지 않았으며 유럽인들은 오히려 한동안 이를 외면했었다. 둘째, 반대로 최근 서양에서는 홀로코스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루어 진다. 그러나 “악” 개념이 이제는 도리어 너무 남용되면서,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을 비롯한 특정 정치 집단들의 목적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악의 문제”에 대한 냉소주의가 조장되었다. 그렇다면, “악의 문제”를 외면한 종전 직후에도, 그것을 지나치게 활용하는 작금에도, 정작 “악의 문제” 자체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성찰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주트가 여기서 골몰하고 있는 난제다. 이 글은 20세기에 자행된 “악의 문제”에 대응해 온 각기 다른 집단들의 역사를 훌륭히 소개함과 더불어,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악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일깨운 아렌트 식의 “악의 평범성”론 뿐 아니라, 같은 것이 너무 자주 남용될 때 벌어지는 “의미의 축소와 둔감화 효과”를 뜻하는 “악의 평범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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