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시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전투적 반전연대
등록 2020-09-18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니시무라 히데키 지음, 심아정 김정은 김수지 강민아 옮김/논형·1만9000원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은 비교적 길고 ‘설명적인’ 제목만큼이나 호흡도 긴 탐사취재 기록물이다. 저자는 마이니치 방송사 ‘북한전문기자’ 출신 니시무라 히데키씨. 저자 소개란을 보면 그는 “여섯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 취재했고,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며 취재를 해왔다”고 한다. 가히 ‘전문기자’의 이름 값을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한글판 4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본 그는 ‘이슈 집착력’과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다. 묻고 또 묻고, 꼬리를 물고 관련 인물들을 추적하여 그들로부터 증언을 듣고, 그들의 오늘이 어떠한지 확인하며 역사적 사건의 퍼즐을 맞춰간다. 기자 특유의 쉽고 생생한 문체 탓인지 묵직한 시대와 공간이 지루하지 않게 잘 기술돼 있다.
고마쓰제작소 오사카 공장의 포탄가공작업(<고마쓰제작소 50년의 역사>). 논형 제공
이 책이 추적하는 사건은 ‘스이타 사건’과 ‘히라카타 사건’ 두 가지다. 우선, 스이타 사건은 1952년 6월24일에서 25일 사이 ‘한국전쟁 한복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전후 몸살’(post-war conflict)을 앓는 일본 오사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전투적 반전 시위’다. 그날 밤 오사카대 도요나카 캠퍼스에선 노동자, 학생, 시민, 재일조선인 들이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 후 약 1000명의 시위대는 동양최대 국철 조차장이던 스이타 조차장에 난입, 25분간 구내 시위행진까지 벌였다. 책의 부제와 홍보관련 글에서는 ‘재일조선인’이 부각됐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의 반전 시위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초국적 연대였다는 것을. 이 본질적 측면은 역자후기에 잘 요약되어 있다.
“마르크스주의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자국의 방어’를 우선시하며 실천하지 못했던 인터내셔널리즘은 니시로쿠샤에서 그리고 스이타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이라는 거창한 슬로건 없이도 가능했다.” (역자후기)
“스이타 사건을 함께 겪어냈던 그 밤의 밝아오는 새벽 공기 속에서” 동지적 연대를, 그리고 연대적 인간의 존엄을 느꼈을 68년전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상상하자니 오늘 두 나라 시민들이 서 있는 자리와 교차해서 보게 된다. 두 나라의 날 선 대립의 역사도 그러하고, ‘친일’ ‘반일’ 담론이 정파적으로 소비되는 요즘, 이 책의 부제와 홍보의 쟁점이 ‘초국적∙전투적 한일 반전 연대’로 좀 더 기울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2차 대전 패망으로 초토화됐던 일본이 전후 고도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이 있다는 총론은 익히 널리 알려진 바다. 그 중에서도 오사카가 한국전쟁에 사용할 무기와 탄약의 생산기지였고, 이쿠노구 일대 영세공장에서 만들어진 부품이 국철 스이타 조차장을 거쳐 고베항에서 선적되어 한반도로 보내졌다는 상세한 내막은 그 시대를 추적하고 살려낸 바로 이 책이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다. 1952년 6월24일 밤 “산을 넘는 부대”까지 조직했던 이 반전시위는 저자 니시무라의 집요한 추적 끝에 거의 시간대별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같은 날 벌어진 히라카타 사건은 동양최대 무기공장으로 알려진 히라카타 조병창을 다이너마이트 시한폭탄으로 폭파한 사건, 동시에 무기공장 유치에 앞장섰던 지역 유지의 집에 방화를 시도한 사건이기도 하다. 방화는 미수로 끝났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니시무라 기자의 퍼즐에서 두 문장으로 만났다.
“히라카타 사건·방화미수 사건은 1952년 6월25일 새벽 2시 45분경, 피해자의 신고로 발각되었다. 스이타에서 ‘산 넘는 부대’와 ‘인민전철부대’가 이동 중이던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스이타 사건 연루자들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저자는 사건 둘째날인 6월25일 마이니치 신문 오사카 본사 발행 사회면에 실린 기사 하나를 단서로 부상자를 찾아 나선다.
“이 기사에 의하면 경찰관이 권총을 발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부상당한 시위대원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친분이 있던 정신과 의사를 통해….” 니시무라는 부상당한 시위대(그는 일본인이다)를 결국 찾아내고 마는데, 그 기쁨을 “가슴이 고동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생각하면서 전해 받은 번호로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간격을 두고 등장하는 감성적 언어들은 이 책의 입체적 면모를 강화시켜주는 요소다. 나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 이름과 프로필 그리고 행위와 행위장소 등을 메모해 가면서 읽었다. 주로 소설을 읽을 때의 습관이다. 한 편의 ‘르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따금 ‘울컥한’ 순간을 선사한다. 내게 그러한 순간을 묻는다면 단연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의 말을 만났을 때다. 그는 스이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겠다며 찾아온 니시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위대의 후미에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고 해서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습니다”
김시종은 제주 4·3봉기를 경험한 섬 사람이고 스이타 사건 발생 3년 전에 오사카에 왔다. 그 시절 재일조선인 다수가 제주 출신이라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연동된 책이 한 권 있다.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 문학상> 수상작인 구소은의 <검은모래>(은행나무, 2013년)가 그것인데 스이타 사건을 다룬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은 일제강점기 미야케지마 섬에 정착한 제주 해녀 4대의 삶을 그린 <검은모래>와 꼭 함께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제주’, ‘일본’, ‘전쟁’, ‘디아스포라’를 두루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와그 공간을 이해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분명 사건 중심으로 추적하는 글이긴 하나, 전후 이념적 갈등을 못잖게 겪었던 일본 현대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효과를 부여한다. 일본에서도 ‘공산주의자 색출 작전’(이 책에서는 “레드퍼지”로 표기됨)이 벌어졌다는 건 흥미롭고 그 색출 작업이 한국전쟁이라는 변수 탓에 더욱 도드라진 것이 의미심장하다. 언론도 이 색출 작업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 북한의 발표 내용을 받아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에 대한 사흘 간의 간행정지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자 신문, 통신, 방송 등 50개 보도기관에서 704명이 해고되는 건 물론 여러 산업현장, 심지어 정부기관에서도 1천명 이상이 해고됐다고 한다.
야마다 마을을 행진하는 시위대. 논형 제공
그러한 냉전의 한복판에서 일본은 미군기지 역할을 한 사실상 ‘참전국’이었음을, 그리하여 군대도 전쟁도 거부한다는 일본헌법 9조 위반은 이미 1950년대 초 벌어진 일이었음을 폭로하는 것도 이 책의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를 물리적으로 증명키 위해 저자는 겨우 스물한 살의 나이에 ‘해상보안관’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한 나카타니 사카타로의 형 도이치를 찾아가 사카타로 죽음의 진실을 재건(reconstruct)해 본다. “동생은 전후 제 1호 전사자예요. 전쟁에 참가했으니까요….” 저자는 이런 형의 말을 기록하고, 더 나아가 그의 전사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해상보안청의 편지 내용까지 폭로한다.
“이것은 미군의 명령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시끄러워질 것이니, 부디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도록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바로 ‘민간군사기업’에 관한 얘기다. 21세기 전쟁터에서 전투-비전투 영역을 망라하고 목격되는 전쟁 외주 현상, 이른바 ‘민간군사기업’(PMC)의 활약은 언론인을 포함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21세기 서막을 열어 젖힌 대표적 전쟁이 벌어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컨트랙터”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수많은 전쟁산업 종사자들이 전투병, 비전투병을 망라하고 몰려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본의 한국전 참전방식도 PMC 현상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의 말을 이어보자.
“전쟁은 군대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일본인이 ‘협력’한 실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전 당시) 한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8000명이 얼마나 많은 인원인지…. 물론 그들은 군인이 아니다. 말하자면 민간군사회사의 선봉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기지국가’라 불리는 이유다. 일본은 한국전쟁에 실질적으로 ‘참전’하고 있었다.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시리즈’ 두번째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국제분쟁전문기자 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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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
니시무라 히데키 (지은이),심아정,김정은,김수지,강민아 (옮긴이)논형2020-07-25
400쪽
일본인 '위안부' - 애국심과 인신매매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책소개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권. 저자 니시무라 히데키는 마이니치방송에서 30년이 넘도록 북한취재 전문 기자로 활약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의 과거를 상기하면서 왜 전범국 일본이 아닌 식민지였던 조선이 분단되었는지 문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이 소해정과 LST(전차양륙함, landing ship tank)를 보내 사실상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국헌법의 토대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하다. 일본이 한국전쟁 당시 무기를 수송하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국헌법 제9조를 국가가 앞장서서 보란 듯이 위반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946년에 공포되어 이듬해 시행된 일본국헌법 제9조 1항과 2항에는 '전쟁'과 '군대'를 포기한다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이는 일본국헌법이 줄곧 '평화헌법'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미국의 병참기지가 되어 여러 군사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 사실은 일본국헌법의 중심축을 흔들 수 있는 것임에도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비하다.
저자는 방대한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전후'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은폐되어왔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취재의 여정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들의 운동과 사상에 휘말려 들게 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부 3대 소요 사건의 하나, 스이타 사건
1장 스이타 사건 연구모임
1. 스이타 사건/ 2. 쥬소十三/ 3. 연구모임
2장 스이타 사건
1. 스이타조차장으로 향하는 시위행진/ 2. 일본공산당·오사카대 세포 책임자/ 3.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오사카대 학생
3장 히라카타 사건
1. 히라카타 방화 사건/ 2. 히라카타 공창의 시한폭탄 설치 사건/ 3. 사건의 막후
4장 재판 투쟁
1. 스이타 묵념 사건/ 2. 소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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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저자는 스이타 사건 그 자체를 쫓고 있기도 하지만, 관련자들이 살아간 사건 ‘이후’의 삶을 비춰낸다. 스이타 사건은 일본의 3대 소요 사건 중 하나로, 소요죄와 표현의 자유 사이를 왕복하며 갈등했던 헌법 판례로 다루어지면서 헌법 연구 분야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스이타 사건이 지닌 또 하나의 측면, 즉 제국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얼룩’과도 같은 존재인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벌인 한국전쟁 반대운동이었다는 점은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스이타 사건은 일본의 전후 운동사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에 관한 신문 기사와 보도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주류의 거대서사에서 생략된 존재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 출몰하고 그 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저자가 사건 관련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록함으로써 밝혀낸 것은 사건의 진상이나 전모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에 그들이 살아온 삶의 굴곡과 주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펼쳐서 기록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건 당사자가 아닌 니시무라‘들’이 ‘공감적 청자’를 자처하며 스이타 사건 연구모임을 만들어 함께-듣는 장(場)을 만든 덕분이다.
한국전쟁은 저자의 표현처럼 ‘국제적 내전’의 성격을 지녔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인데, 여기서 ‘일본’은 영토로 구획된 국민국가로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족과 국가 혹은 시민이라는 주어진 정체성의 토대가 ‘반전’이라는 공통의 지향으로 흔들림으로써 연결될 수 있었던 이들이 함께 싸워낸 시공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이 책에는 삐라를 뿌리고 경찰에 쫓기던 부덕수가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친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일본어가 어설펐던 자기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도움을 준 일본인 노동자들을 상기하고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마음이 서로 통했던 것”이라며 그런 마음이 지금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이 현재에 일어난다면 어떨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대기업 경비원이 낯선 남자에게 과연 문을 열어 줄까. 그리고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삐라 살포를 하다가 도망쳐 온 그를 도와줄 것인가.”
이 책 곳곳에는 조선, 조선반도, 조선전쟁 등 생경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지금 ‘조선’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에게 ‘조선’은 식민화되기 이전의 박제된 과거 모습 그대로 회귀하여 만날 수 있는 조국도 아니며, 인민이라는 수식어를 무색케 하는 북의 ‘공화국’을 지칭하는 말도 아니다. 제주에서 4·3의 피바람을 피해 소중한 이들을 남겨둔 채 작은 배로 밀항한 이들이 흘러들어와 살았던 동네 이카이노(猪飼野)에도 ‘조선’은 있었고, 한국전쟁에 사용될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열차를 저지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묶고 누웠던 철로 위에도 ‘조선’은 있었으며, 한국전쟁 반대운동을 하며 인민전철에 올라탄 그 밤에도 일본인과 재일조선인 청년들의 마음에는 함께 꿈꾸던 ‘조선’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제를 넘어선 의미, 즉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어떤 공통의 ‘심정’의 장소에 가깝다.
이 책은 김시종이 크로포트킨의 말을 빌려 부덕수(夫德秀)에게 보낸 전언으로 끝을 맺는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일본의 헌법학자 마에다 아키라(前田朗)는 이 문구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너무 상냥하고,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도 격렬한 이 말의 의미를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이라고 다를까.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에서 겪어낸 참전과 반전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독자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 즉 ‘조선’이라는 심정과 ‘일본’이라는 장소성이 생략된 한국전쟁의 일면적인 토대를 흔들며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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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니시무라 히데키 (西村秀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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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学) 경제학부 졸업 후, 마이니치방송(毎日放送)에 입사. 1982년 김일성 탄생 70년 행사 이래, 여섯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 취재했고,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며 취재를 해 왔다.
저서로는 『北朝鮮·闇からの生還ー富士山丸スパイ事件の真相』(光文社、1994), 『北朝鮮抑留ー第十八富士山丸事件の真相』(岩波現代文庫、2004),『大阪で戦った朝鮮戦争ー吹田枚方事件の青春群像』(岩波書店、2004)가 있다.
최근작 :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총 7종 (모두보기)
심아정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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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가이자 동물권 활동가. 동물, 난민, 여성, 평화를 연구합니다. 돌고래, 닭, 돼지, 곰, 소, 개, 오리, 물살이(물고기의 다른 표현), 외국인, 장애인, 청소년 등 갇혀 있는 생명이 단 하나도 없는 세상을 바라며 연구와 활동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작 : <문화과학 112호 - 2022.겨울>,<난민, 난민화되는 삶>,<청년, 아시아를 상상하다> … 총 7종 (모두보기)
김정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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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번역가연맹(FIT/UNESCO 공식자문기구) 한국대표기관 (사)한국번역가협회 정회원. 한국통번역연수원 연구원. 근현대 문학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중이다. 행간의 의미와 표현들 사이에서 분투하며 전달과 동시에 표현을 중시하는 번역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김수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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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을 전공했다. 재니 재빈 재아 세 아이의 엄마이며 방사선사, 번역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직업을 통해 갖게 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동료들과의 협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내고 있다. 일본사에 관한 지식을 넓혀가며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근현대 한일관계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는 중이다.
강민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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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사적 관점에서 ‘전후 동아시아’에 확산된 ‘반공’과 ‘반미’라는 사회적 정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전쟁, 국가, 사회를 키워드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며 석사논문 「‘전후 동아시아’와 한국전쟁: 중국과 일본의 냉전체제 형성을 중심으로」를 썼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전범국 일본이 아닌
식민지 조선이 분단되었는가.
스이타 사건을 쫓은 마이니치방송每日放送
북한 전문 취재기자 니시무라 히데키의 르포르타주!
나는 시위대의 후미에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고 해서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습니다. -김시종, 300쪽
두 사람은 한반도 중앙부의 잘록한 부분을 가로지르는 선에 시선을 멈췄다. 북위 38도선이다. 이렇게 해서 지도에 다트를 던지는 것보다 약간 복잡한 정도의 절차를 거쳐 분할안을 제출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 133쪽
경찰과 대치할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시위대의 선두에는 175센티미터 정도의 유달리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한 남자가 있었다. 돌출된 광대와 먼 곳을 응시하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매는 굳건한 의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부덕수夫德秀. 재일조선인 2세다.
시위대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부덕수는 왜 선두에 서 있나. 그리고 누가 계획한 것인가. -니시무라 히데키, 32쪽
책소개
이 책의 저자 니시무라 히데키(西村秀樹)는 마이니치방송(毎日放送)에서 30년이 넘도록 북한취재 전문 기자로 활약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의 과거를 상기하면서 왜 전범국 일본이 아닌 식민지였던 조선이 분단되었는지 문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이 소해정(掃海艇)과 LST(전차양륙함, landing ship tank)를 보내 사실상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국헌법의 토대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하다. 일본이 한국전쟁 당시 무기를 수송하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국헌법 제9조를 국가가 앞장서서 보란 듯이 위반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946년에 공포되어 이듬해 시행된 일본국헌법 제9조 1항과 2항에는 ‘전쟁’과 ‘군대’를 포기한다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이는 일본국헌법이 줄곧 ‘평화헌법’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미국의 병참기지가 되어 여러 군사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 사실은 일본국헌법의 중심축을 흔들 수 있는 것임에도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비하다. 저자는 방대한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전후’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은폐되어왔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취재의 여정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들의 운동과 사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스이타(吹田) 사건은 1952년 6월 24일 밤, 오사카 스이타시(市)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이 미군의 병참기지로써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등 전쟁에 협력하는 것에 항의하며 학생과 노동자, 조선인이 일으킨 반전(反戰) 투쟁이다. 김시종(金時鍾) 시인은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는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다”고 사건 당시의 경험을 전한다.
900여 명의 시위대가 1952년 6월 25일 오전 0시를 기해 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대와 충돌, 파출소와 미군 승용차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도주하고, 한큐 전철 측에 임시전철을 운행토록 하여 이를 ‘인민전철’이라 부르며 승차하였으며, 20분 동안 조차작업을 중단시킨 것을 이유로 111명이 소요죄 및 위력업무방해죄 등의 혐의로 체포·기소되었다. 소요죄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1972년까지 재판에 걸린 기간만 해도 무려 19년에 이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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