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 간첩죄 19년 옥살이 이대식의 자서전
이대식 (지은이)열린서원2025-04-05





377쪽
책소개
1972년 2월 16일 새벽 5시 반경, 이대식은 험상궂게 생긴 중년의 두 남자에게 체포되어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1972년 7월 15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1972년 겨울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1990년 3·1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19년만의 출소였다. 2012년 5월 6일 아침 7시경 그는 다시 시경 수사관에 체포되어 옥인동 보안수사대로 끌려갔고 2016년 3월 23일 대법원에서 GPS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대식은 2016년 재심 청구를 했다. 원심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수많은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대식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것이다. 재심재판부는 원심재판부에서 인정한 11개 항목의 공소사실 중. 이대식은 재심 판결에서 최종적으로 3년 형이 확정되었다. 8개 항목은 무죄로 선고하고, 3개 항목은 유죄로 인정했다
목차
머리말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모퉁이 / 5
추천사 1938년생 안동사람 이대식 – 김진향 / 8
1. 유년시절 / 14
2. 일제해방과 인민위원회 / 30
3. ‘소개령’에 의한 참상 / 50
4. 전쟁과 피난민 / 53
5. 처음 만난 인민군 / 57
6. 인민군의 ‘안동해방’과 후퇴 / 61
7. 중고등학교 시절 / 82
8. 대학시절 / 92
9. 4・19 봉기 / 99
10. 군 입대로 피신 / 121
11. 일본여행 / 125
12. 1970년대 초의 사회상 / 131
13. 체포 및 감옥살이 / 135
14. 검사 취조 / 149
15. 서대문구치소에서의 경험 / 152
16. 한영식 선생의 잔영 / 165
17. 대전교도소 특별사(特別舍) / 167
18. 19년만의 출소와 추풍령 휴게소에서의 인수인계 / 240
19. 사업과 결혼 / 245
20. 쑥탕(이금춘, 조상철)과의 관계 / 255
21. GPS 간첩사건 / 265
22. 보안관찰법소송 승소 / 275
23. 대북사업 관련 단상 / 278
24. 평양방문 / 286
25. 북한사람들에 대한 인상 / 299
26. 하나됨을 위한 북녘사람들의 열정 / 331
27. 재심신청 / 357
부록 유위하 선생에 대하여 / 366
해제 한국판 매카시즘의 늪에서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를 어떻게 읽을 읽을 것인가? – 이현휘 / 377
접기
추천글
일재 식민과 분단, 폭압적 야반의 시대를 홀연히 건너온 이대식 선생님의 굽이급이 인생길을 들여다보는 내내, 이대식 선생님의 존엄 있는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 존엄을 향한 파란 많은 인생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대식 선생이 만 일곱살에 맞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 이승만 장기독재와 부정부패,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와 박정희 18년 장기독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폭압적 시민학살과 건두환의 군사독재 연장… 그 모든 파란 많은 우리의 현대사가 이대식 선생님의 인생사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의장)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이대식의 삼을 그토록 처절하게 유린할 수 있었는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이대식의 삼 전체를 그토록 잔혹하게 파괴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대식의 사형선고를 강제한 망상적 간첩조작이 태연하게 정당화될 수 있었는가? 도대체 한국사회에 깊이깊이 뿌리 내린 무자비한 폭력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 이현휘 (한러상공센터 국제정세 분과장)
저자 및 역자소개
이대식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38년 경북 안동 출생
1945년 해방
1960년 고리대 법대 재학 중 4.19혁명 참여
1967년 사업 상 일본 방문
1972년 2월 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
1990년 2월 가석방
1991년 대동무역 설립
1994년 대북사업 시작
2016년 재심 결과 간첩죄 무죄, 국가보안법 일부 유죄로 무기징역 파기, 3년 형 학정
최근작 :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72년 2월 16일 새벽 5시 반경, 이대식은 험상궂게 생긴 중년의 두 남자에게 체포되어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1972년 7월 15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1972년 겨울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1990년 3·1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19년만의 출소였다.
2012년 5월 6일 아침 7시경 그는 다시 시경 수사관에 체포되어 옥인동 보안수사대로 끌려갔고 이2016년 3월 23일 대법원에서 GPS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대식은 2016년 재심 청구를 했다. 원심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수많은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대식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것이다. 재심재판부는 원심재판부에서 인정한 11개 항목의 공소사실 중 8개 항목은 무죄로 선고하고, 3개 항목은 유죄로 인정했다. 이대식은 재심 판결에서 최종적으로 3년 형이 확정되었다.
재심 판결은 이대식의 삶을 평생 무자비하게 유린한 폭력으로부터 이대식을 완전히 해방시켜 준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판 매카시즘은 또다시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를 무자비하게 유린할 것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종북주의자,’ ‘국가전복세력’ 등과 같은 온갖 악담을 동원해서 격렬하게 매도할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에서 해방 전후사를 서술한 부분, 특히 당시 이승만과 미국이 수행한 정치적 역할을 비판한 부분, 10년 넘게 대북 사업을 수행하면서 북한을 새롭게 성찰한 부분, 특히 북한이라는 ‘악마’의 이미지를 자각적으로 탈각하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 등을 읽으면서 견딜 수 없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를 당장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이대식의 삶을 그토록 처절하게 유린할 수 있었는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이대식의 삶 전체를 그토록 잔혹하게 파괴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대식의 사형선고를 강제한 망상적 간첩조작이 태연하게 정당화될 수 있었는가? 도대체 한국사회에 깊이깊이 뿌리 내린 무자비한 폭력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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