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합동ㆍ으로갈라진이유? : 네이버 카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합동ㆍ으로갈라진이유?
기독 News
chldofks 11(ch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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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카페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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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증언
필자는 대한수교장로회 군산노회(합동)
소속 41년째로 2002년 군산노회 촬요합본집(1~63회)을 발행 편집하였고, 2019년 군산노회 제80주
년을 맞이하여 노회록 결의서 합본집 (64 ~ 80회)을 발행하는 위원장을 맡아 일하는 중에 한국교회가 이 나라 정치계와 사회에 끼친 영향
즉 한국 교회사와 한국 정치사가 어떻게 서로 엮여 나가는 지를 보면서 교회와 노회와 총회의 발자취가 얼마나 소중하고도 귀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사에서 1907년 평양에서 놀라운 성령의 나타남 속에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가운데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 예배당에서
제27회 총회시에 일본의 강압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한 바 그 자리에 있던 교회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김일성 김정일 우상이 세워져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우상숭배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총회가 신사참배 건에 대한 수의 건을 각 노회에 보낸 바 반대 표를 올린 노회는 유일하게도 경남 노회(당시 경상남도에는 경
남노회만 있었음) 뿐이었는데 6.25가 발발하여 우리나라 모든 지역은 공산당 침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반면 경남 노회가 있는 경상남도
만은 공산당의 침략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8.15해방 이후 북한은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양옥 목사가 김익두 목사를 포섭하여 김일성이는 하나님께서 북한에 세운 위대한 지도자라고
교회를 순회하면서 선전하게 하여 김일성을 환영하며 받아들인 결과 북한에 있던 모든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목사 장로 집사 이상
은 다 죽임을 당한 것도 탈북자의 간증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 때 한경직 목사는 공산주의에 대해 적극 반대하여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이승만과 같이 손잡고 이 남한 땅에 자유 민주주의를 세우
는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1950년 4월 21일 대구제일교회당에서 제36회 총회로 모여 성경 유오설을 주장하는 분들과 이를 반대하는 보수 신앙인들과의 싸움으로 총회
전에 성찬을 뒤짚고 화장실의 오물을 예배당에 뿌려 총회를 진행할 수 없어 정회한 후 6.25가 발발하여 많은 교회가 파괴되고 여러 많은 순
교자의 피를 흘리게 되었으며,
그 후 장로교는 보수 신앙을 추구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성서 비평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여
진보를 추구하는 기독교 장로회(기장) 즉 예장과 기장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정치계에서는 6.25발발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상의 피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세계 전쟁 역사에 유례없는 세계 67개국 나라에서
이 땅에 유엔파병 16개국, 의무지원 5개국, 물자재정지원 46개국의 도움의 손길과 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이 대한민국 땅에 와서 피를 흘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게 해 주었습니다.
그 후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즉 예장이 교회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 단체인 W.C.C(세계교회협의회)로 인하여 신앙 노
선이 맞지않아 탈퇴에 찬성한 분들은 승동교회에서, 그렇지 않은 분들은 연동교회에 모여 결국 1960년에 총회는 또 둘로 나누어지는 아픔
을 겪었습니다.
승동측 중심에는 박형룡 박사가 있었고, 연동측 중심에는 한경직 목사가 있었습니다.
승동측은 신앙 노선이 같은 교단과 합동하자고 하였고, 연동측은 신앙 노선은 달라도 나누워지지 말고 서로 통합하자고 외치는 중에, 승동
측은 고신파 목사들을 만나 우리는 신앙 노선이 서로 같으니 합하자고 하는데 합의되어 1960년 12월 13일 하오6:30 서울 승동 교회당에서
쌍방 총대들이 회집하여 고신 교단과 합동 총회가 성립되어 합동이라 부르게 되었고, 연동측은 폭을 넓혀 보수주의로부터 외면당한 모든
분들을 다 수용하고 통합하였기에 통합측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장이 합동과 통합으로 나누워지면서 이 나라 정치계는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 6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가 있었고, 나라는 혼란 중
에 1961년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청와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합동측은 1979년 9월 또 둘로 갈라졌는데 대전중앙교회 이영수 목사(주류)와 광주중앙교회 정규오 목사(비주류:개혁 총회)와의 교권
싸움에서 비주류측이 계속 수세에 밀리게 되자 총신대학 신대원을 쪼개어 서울 방배동에 신학교를 세우게 되어 결국 총회가 둘로 나누워지
자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났고, 다음 해인 1980년 5월 18일 광주 사태가 일어 났습니다.
왜 하필이면 전남 광주일까?
총회를 갈라놓은 장본인이 광주에 있었기에 5.18광주사태가 광주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보여질 때 저는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후 2005년 9월에 개혁 총회(처음에 비주류측)와 다시 합하게 된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그 후 예장을 통합과 합동으로 나누게 했던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도 수용하는 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있었습니다.
(회장에 통합측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이 때 보수 신앙인들 중에 소수만 적극 반대하였고, 대부분 보수주의 교회들은 구경만 하는 중에 행사장은 마쳤습니다.
그 후 정치계에서는 우파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친북인 주사파가 청와대로 들어와 정권을 잡게 되어 현정부는 북한과의 낮은 연
방제를 실행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질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 시점에서 한기총 대표 회장되신 전광훈 목사께서 기독교와 범국민 통합을 추진하여 2019년 10월 3일과 9일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현정권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며 일어섰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여 같
이 동참하여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 나라 위기 때마다 그 중심에 목사님들이 있었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바른 신앙 노선을 따라 나가는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나
누워질 때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는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하나하나가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이 나라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는 어떤 철학이나 인간 이론을 따라 가느냐에 따라 이
나라 정치계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땅에서 모세를 통해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하) 하신 말씀과 같이 한국교회가 깨어 바른 신앙노선을 선택해 걸어 간다면 이 나라 정치 경
제 사회 교육 군사 안보 외교 문화 예술 체육 전반에 걸쳐 무궁한 발전과 성장과 형통의 복이 임할 것을 주님께서는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바른 신앙노선을 따르는 우리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도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회가 깨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 즉 한국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와 기독교와는 공
존할 수 없기에 공산주의로 나가는 세력에 대해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싸워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와 한미동
맹을 굳건히 유지하고 복음으로 통일하여 예수 한국 민족 복음화를 이루어 전도와 선교를 향해 전심전력해 나아간다면 이 나라는 무궁한
발전과 축복이 있을 것을 한국 교회사와 정치사를 통해 분명하고도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쓴이 김탁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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