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2008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냉전의 지구사>를 읽고 있는데 나와 입장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저자는 냉전이 미국 - 소련 간의 대립이 유럽에서 제3세계를 거쳐 전세계로 파급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인식한다. 물론 저자는 특히 제3세계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파급이 일방향적이지만은 않았고 상호의존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냉전이 미소 간의 대립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연구사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성을 강조했던 전통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계되어 경제적 요인을 강조했던 수정주의를 거쳐 저자가 도달해 있는 위치는 존 루이스 개디스의 이데올로기 - 지정학적 요인론을 매개로 하여 앞의 것들을 나름대로 통합하며 제3세계를 강조하는 방향인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매개로 한 문화사적 담론분석도 어느정도 참고한 것 같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종합과 종합을 전제로 한 제3세계와의 상호관계를 강조하여 현대 세계의 형성에 주목하는 듯한 모양새이다.
이 현대 세계의 형성의 전사前史로서의 냉전을 바라볼 때 저자는 미소 간의 대립과 그것의 제3세계로의 확장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있는데, 이것은 15세기 이후의 세계사의 동향과 연결시켜 이해하자면 유럽에서 나타난 근대성의 두 유형인 미국적 근대와 소련적 근대,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대서양적 근대성과 유라시아적 근대성이 전세계로 파급되어 가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 파급의 전기적 형태가 유럽 제국주의 - 식민주의였다면 후기적 형태이자 최종적 형태가 미소 대립 - 냉전이었다는 것인데.. 저자의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우려는 된다만 이해한 게 맞다면 저자의 논지 자체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특히 유럽 식민주의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지점에서 많이 배웠다.
다만 나는 냉전이 대립에 기초하기보다는 월러스틴이 지적했듯이 미소 간의 협력과 공존을 그 본질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제3세계는 미소 간의 이러한 공존과 협력에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소련이 처해 있던 곤란은 초강대국인 두 국가 간의 협력과 공존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제3세계라 불리는 민족해방운동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자기 진영의 우위를 드러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이 중요한 건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저자가 말하는 현대 세계의 형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의 소멸이라는 부분을 제3세계의 주체성에 입각해 파악하는데 이러한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 지표가 되는 지역이자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불만족스러운 지점은 중국에 대한 분석이 예상보다 훨씬 소략하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1945년 이후에 제3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자 전형이 중국, 그리고 그 중국을 이끈 모택동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41년 이후 중국이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주요한 행위자 4국 중 하나라 생각했으며, 스탈린의 소련 또한 이미 레닌이 그러했지만 예상치 못한 중국 공산당의 성공에 고무되어 아시아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였다. 이 중국이 친소련적 지향에서 반소적 지향으로, 그리고 미국과의 수교로 이어지는 변화를 겪으며(이 모든 변화가 모택동에 의해 이뤄졌다), 냉전이 종식에 이르러 세계사의 흐름이 크게 변했다고 본다.
그런데 저자는 이 중국에 그리 분석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은 이름부터가 중국中國이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앙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만, 동시에 사방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는 위치이다. 나는 이러한 '중국' 인식이 모택동에게 상당히 주요했다고 보는데 레닌 - 스탈린의 소련이 서구로부터의 위협을 강하게 인식하며 냉전으로 가는 인식을 형성했듯이 중국 또한 소련, 미국, 베트남, 인도 등으로 이어지는 주변국으로부터 포위되어 있다는 인식 속에서 외교 정책을 전개하며 친소련에서 친미로 이어지는 변화를 이뤄냈다. 베트남전쟁에서 드러난 소련(과 북베트남) - 중국 간의 대립과 소련 - 미국 간의 협력이라는 대비는 제3세계가 처해 있는 위치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와 나의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현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라는 전세계적 차원의 변화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저자가 미소와 제3세계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려 했던 의도와 달리 제3세계로 "인한" 미소라는 두 초강대국의 '곤란'을 드러내는데 다소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소의 세계 지배와 관리라는 냉전적 논리가 중국을 위시한 제3세계의 주체성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내렸으며 심지어 관리의 두 축 중 하나인 소련이 맥없이 자멸하자 미국은 제3세계 관리에 완전히 실패하게 되고 그 결과가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나타나며 궁극에는 유라시아 국가들 간의 연합과 신냉전 구도가 아닌가 싶다.
미국은 경제사적으로는 유럽 - 일본의 성장으로 인한 미국 자본주의의 곤경을 해소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구현하지 못하고 되려 그러한 시도가 정치적으로 관리에 실패한 제3세계에게 근대화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바람에 총체적 실패로 이어지는 길을 걷지 않았나 싶다. 대립에 있어서는 미국이 우위성을 지닐지 몰라도 관리에 있어서는 완전한 실패로 점철되어 온 것이 아닌가. 여담이지만 나는 이 연장에서 트럼프를 위시로 한 미국의 신고립주의 또한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서 미국 "없는" 세계화로 이어지며 미국 패권의 근본적인 타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갖고 있다. 이런 미소 초강대국의 곤란을 저자가 잘 드러내고 있는가, 나는 이 지점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책을 읽고 있다.
끝까지 읽고 평하려 했는데 하다보니.. 아직 완전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다 읽지도 않아서 저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 보기는 어렵다. 더 읽어보면 생각이 변할 수 있다. 다만.. 미소 간의 대립이라는 유럽을 기원으로 하는 근대성 내에서의 유형적 대립을 강조하는 저자의 관점 자체는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든다.. 아무튼 끝까지 독서를 해보고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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