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soon Park ·

애국가의 시련과 위기
건국 100주년 애국가 작사자 확정을 위한 연구: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 (종문화사 2020)
생각하는 씨알님들께
코로나바이러스와 긴 장마로 온 세상이 큰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씨알님들은 이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속으로 더욱 알차고 깊고 커지는 계기로 삼고 있으시겠지요?
저는 그 동안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기독교 사상’에 1년 동안 연재하였고 다시 보완하고 확충하여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애국가가 위기와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무너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안창호 선생이 지어서 온 국민과 함께 불렀고 삼일운동 때 온 국민이 사무치게 부르고 임시정부에서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간절하게 부른 애국가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가 친일 나치 부역자일 뿐 아니라 애국가 작사자는 친일파 윤치호라면서 애국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궁화는 일본의 꽃이고 애국가는 친일의 노래라는 주장을 하면서 어떤 교수가 쓴 책 ‘무궁화의 두 얼굴’에 광복회 회장이 추천사를 쓰고 애국가와 무궁화를 친일의 노래와 꽃으로 선전하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애국가를 폐지하려는 세력이 생각보다 강고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래에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을 함께 보냅니다. 참고 하시고 애국가를 바로 이해하고 애국가에 대한 온갖 누명과 오해를 벗겨 주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빌며
작은 씨알 박 재 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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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책 소개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의 문을 안에서 여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먼저 안창호와 윤치호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 속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의 관계, 신념, 심리, 철학을 연구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다른 애국가요들과 애국가를 비교함으로써 누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을 논구하고 그들의 신념, 심리, 철학을 비교하고 연구했으며 안창호의 애국가요들과 다른 글들을 애국가와 비교하였고, 윤치호의 애국가요들과 시(詩)들을 애국가와 비교함으로써 안창호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밝혔다.”
“애국가에는 근현대 한민족의 주체적인 민주정신과 공동체적 의지가 가장 깊고 높은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서 애국가는 굳은 독립의지와 강인한 생명력, 강고한 저항의지와 고결한 신념, 나라와 민족에 대한 공동체적 사랑과 헌신,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가는 굳센 실천력의 불꽃을 한민족의 가슴에 피워내는 풀무였다. 애국가 1~4절에 새로운 정신과 활력을 불어넣고, 애국가의 정신과 뜻을 실천하고 온 민족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한국근현대의 가장 어두운 역사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 온 안창호는 애국가의 진정한 저자이고 주인이다.”
1장 '친일파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도한 1955년 애국가 작사자 연구', 2장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증언과 문헌자료의 비판적 연구', 3장 '역사의 상황에 비추어본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 4장 '안창호와 윤치호의 심리 철학적 비교', 5장 '애국가와 안창호·윤치호의 애국계몽가요들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6장 '애국가 작사의 과정 : 안창호는 어떻게 애국가를 지었는가?', 7장 '애국가의 독창성과 의미: 애국가는 우리에게 어떤 노래인가?'로 구성되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친일파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도한 1955년 애국가 작사자 연구
1. 애국가 작사자 조사활동의 정치적 배후: 이승만·친일파·국사편찬위의 결합
2. 당시 국사편찬위원회는 어떻게 안창호 설을 배척했는가?
3. 애국독립운동사학자들을 배제한 친일 실증사학자들의 ‘애국가’ 작사자 연구
2장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증언과 문헌자료의 비판적 연구
1. 애국가 작사자는 왜 자기 이름을 숨겼나?
2. 증언과 문헌에 대한 문헌 비판적 접근
3. 공통된 증언들의 핵심과 결론: 윤치호의 무궁화가를 바탕으로 안창호가 애국가를 지었다
3장 역사의 상황에 비추어본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
1. 1907~1910년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본 ‘애국가’와 작사자의 정신과 의지
2. 윤치호와 안창호의 애국심은 어떻게 다른가?
3. 친일파와 애국자의 깊은 신뢰와 우정
4장 안창호와 윤치호의 심리 철학적 비교
1. 애국가 작사자의 심리와 철학
2. 윤치호의 분열적 심리와 철학
3. 안창호의 통일적 심리와 철학
5장 애국가와 안창호·윤치호의 애국계몽가요들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1. 윤치호의 애국 시가(詩歌)들과 애국가의 비교
2. 안창호의 애국계몽가요들과 ‘애국가’의 비교
3. 무궁화가와 ‘애국가’를 닮은 윤치호와 안창호의 역사적 계승과 혁신
6장. 애국가 작사의 과정: 안창호는 어떻게 애국가를 지었는가?
1.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결론
2 애국가는 어떻게 지어졌나?
3. 애국가에 담긴 안창호의 사상과 정신
7장 애국가의 독창성과 의미: 애국가는 우리에게 어떤 노래인가?
1. 애국가: 독립정신과 민족정신의 불꽃을 피워내는 풀무
2. 해방 이후의 다른 애국가요들과 애국가 비교
3. 애국가는 우리에게 어떤 노래인가?
참고문헌
책속에서
여기서 간단히 ’무궁화가’와 ‘애국가’를 비교해보자. 윤치호의 ’무궁화가’는 1절 첫 머리에서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라고 하여 조선왕조와 황실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고, 2절은 “애국하는 열심의기 ··· 충군하는 일편단심”으로 왕조와 황실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3절은 온 국민이 “한 맘으로 나라 사랑하여 직분만 다하자”고 하며, 4절은 “우리나라 우리 황제 황천이 도우사, 군민동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라고 하여 하나님이 황제를 도울 것을 기원하고 국민은 군주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머문다. 이 노래에서는 황실과 황제가 중심에 있고 노래의 대상이고 목적이다. 국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황실과 황제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은 맡은 바 직분을 다할 뿐 국민의 주체성과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애국가’는 1절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라고 함으로써 국민의 간절하고 사무친 심정과 기원이 나온다.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이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하여 국민의 기상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3절은 “가을 하늘 공활한데 구름 없이 높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라고 하여 아무 거칠 것이나 막힘이 없이 자유롭고 활달한 국민의 심정을 나타냈다. 4절은 “이 기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고 함으로써 국민의 기상과 마음으로 형편과 처지에 매임 없이 힘써 나라를 사랑하자고 역설하여 국민의 주체적 의지와 적극적 행동을 부각시켰다. 다만 “님군을 섬기며”는 1907년 당시 황제와 왕조가 온존하고 있는 형편에서 교육운동을 펼쳐야 했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한일합병 후 <신한민보> 1910. 9.21.에 실린 ‘애국가’에서는 “님군을 섬기며”를 “국민을 모으며”로 바꾸었다. ’무궁화가’와 ‘애국가’의 차이는 분명하다. ’무궁화가’는 황실과 황제를 위한 노래이고, ‘애국가’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노래다.
저자 및 역자소개
박재순 (지은이)
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한신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봄, 함석헌 선생을 만나서 성경과 동양고전을 배우며 씨알 사상의 연구를 시작했다. 1980~1985년에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으로서 ’국제성서주석’의 번역과 ’현대문헌비평적 연구방법론’을 연구했고, 한신대와 성공회대에서 연구교수와 겸임교수로(1992~2006) 강의했다.
최근 작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
출판사 제공 책소개
- 건국 100주년, 애국가 작사자 확정을 위한 연구 -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
‘애국가’를 짓고 부른 지 110년이 지나도록 국가가 ‘애국가’의 작사자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민족과 역사에 무책임한 일이다. ‘애국가’를 짓고 부르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애국가’ 작사자의 지위를 돌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저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지난 4년 전부터 도산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면서 ‘애국가’ 작사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그 결과 저자는 도산이 ‘애국가’ 작사자임을 확신하였고, 이 책에서 도산이 ‘애국가’ 작사자임을 증명한 것이 기쁘고 다행으로 여긴다.
그 동안 이 나라의 정부와 지식인 학자들은 어째서 ‘애국가’ 작사자를 밝히지 못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독립운동 과정에서 도산을 정치적 적대자와 경쟁자로 여기고 끊임없이 음해하고 적대시했던 이승만이 친일파 지식인들을 앞세워 도산에게서 ‘애국가’ 작사자의 지위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둘째,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사편수회서 실증사학을 익힌 이병도 등에 의해서 실증사학이 확립되었고 한국의 지식인 학자들이 개별적인 사실과 단편적 문헌자료에 의존하는 실증사학의 방법론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애국가’ 작사자로 알려진 안창호와 윤치호는 ‘애국가’를 짓고 부르던 그 시대의 특수한 역사 사회적 상황 때문에 ‘애국가’ 작사자를 밝히지 않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애국가’를 지은 1907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안창호와 윤치호는 ‘애국가’ 작사자에 대하여 굳게 침묵을 지켰다. 이처럼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의 문은 안에서 잠겼으므로, 밖에서는 열 수 없고 역사의 안으로 들어가서 열어야 했다.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의 문을 안에서 여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먼저 안창호와 윤치호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 속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의 관계, 신념, 심리, 철학을 연구,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다른 애국가요들과 ‘애국가’를 비교함으로써 누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학술원 통신>2018년 4월호에서 안창호의 애국계몽가요와 ‘애국가’의 시상과 표현을 비교함으로써 안창호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밝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을 논구하고 그들의 신념, 심리, 철학을 비교하고 연구했으며 안창호의 애국가요들과 다른 글들을 ‘애국가’와 비교하였고, 윤치호의 애국가요들과 시(詩)들을 ‘애국가’와 비교함으로써 안창호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밝혔다. 그 동안 ‘애국가’ 작사자와 관련해서 제시된 모든 증언들과 문헌자료들, 여러 연구자들의 논의와 주장들을 자세히 비교·검토하고 비판함으로써 저자는 안창호가 ‘애국가’ 작사자라는 확실한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안창호와 윤치호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애국가’ 작사자인지 뚜렷이 드러난다. 윤치호와 안창호는 역사적으로 계승과 혁신의 관계 속에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정치 사회적 성향과 지향이 확연히 달랐다. 안창호는 독립협회의 청소년 회원들을 중심으로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윤치호는 독립협회 시대를 대표하고 안창호는 신민회 시대를 대표한다. 독립협회는 친일파와 고위관료, 지식인과 민중이 뒤섞였고 황제와 협력하고 타협하면서 입헌군주제를 내세우고 문명개화를 추구했다. 신민회는 민주공화정을 확고하게 내세우고 독립전쟁을 준비하며 민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교육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윤치호가 독립협회를 이끈 사람이라면 안창호는 신민회를 이끈 사람이다. 윤치호가 ’무궁화가’를 지었다면 안창호는 ‘애국가’를 지었다.
윤치호는 독립협회와 ’무궁화가’와 짝을 이루고 안창호는 신민회와 ‘애국가’와 짝을 이룬다. 윤치호, 독립협회, ’무궁화가’는 정신과 결이 일치하며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안창호, 신민회, ‘애국가’는 정신과 맥이 일치하며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윤치호와 안창호의 정신과 결이 서로 다른 것처럼 독립협회와 신민회도, ’무궁화가’와 ‘애국가’도 그렇게 서로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너무 뚜렷하고 확실하여 ‘애국가’를 독립협회와 윤치호에게 가져다 붙일 수 없고 ’무궁화가’를 신민회와 안창호에게 가져다 붙일 수가 없다. 독립협회, ’무궁화가’, 윤치호의 정체와 신념, 정신과 기질은 일치한다. 신민회, ‘애국가’, 안창호의 정체와 신념, 정신과 기질도 일치한다. ’무궁화가’의 정신과 유형은 안창호의 것이 될 수 없고 ‘애국가’의 정신과 유형은 윤치호의 것이 될 수 없다.
‘애국가’를 짓고 부르던 그 시대의 역사적 관계와 정황 속에서 안창호와 윤치호의 심리와 철학, 정치적 신념과 의지를 연구하고 비교하면 둘 가운데 누가 ‘애국가’ 작사자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역사 속에 은폐된 진실의 문은 언제나 역사의 껍질을 벗겨내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열어야 한다.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학자들인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함석헌은 역사를 전체의 맥락에서 역사의 알맹이인 역사의 의미와 목적, 정신을 탐구했다. 이들과 함께 이들의 정신과 자세로 안창호와 윤치호의 역사와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민족은 '애국가'를 부르며 가장 고통스럽고 험난한 역사의 고개를 넘어왔다. '애국가'는 나라를 잃은 한민족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한 노래이며 깨어지고 흐트러진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준 노래이며 쓰러진 영혼을 깨워 일으킨 노래다. 한민족은 이 노래를 짓고 부른 안창호와 함께 역사의 고통과 어둠을 헤치고 살아왔다. 이 노래 속에는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강인한 생명과 고귀한 정신의 무궁한 힘과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대한민국은 '애국가'를 민족과 국가의 정신과 뜻을 담은 노래로 소중히 여기며 불러야 한다.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에 우리 선조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추구하였다. '애국가'는 분단된 민족을 단합과 통일로 이끄는 민족통일의 노래가 될 수 있다. 한국근현대의 험난한 시절에 아리고 쓰린 아리랑 고개를 우리 민족은 '애국가'를 부르며 넘어왔다. 앞으로 닥칠 어떤 시련과 난관도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며 함께 이겨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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