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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1 h ·
< 한국信연구소 오늘>
-광화문 전광훈 목사류 태극기부대의 등장배경과 그 상황 타개를 위한 한 생각-
"The revolt of the masses against "realism," common sense, and all "the plausibilities of the world" (Burke) was the result of their atomization, of their loss of social status along with which they lost the whole sector of communal relationships in whose framework common sense makes sense. In their situation of spiritual and social homelessness,
... Before the alternative of facing the anarchic growth and total arbitrariness of decay or bowing down before the most rigid fantastically fictitious consistency of an ideology, the masses probably will always choose the latter and be ready to pay for it with individual sacrifices - and this not because they are stupid or wicked, but because in the general disaster this escape grants them a minimum of self-respect."
"사실주의", 상식, 그리고 "세계의 모든 개연성"에 대한 대중의 반란은 그들의 원자화와 사회적 지위의 상실과 그와 함께 그 안에서 상식이 작동하는 공동체적 관계의 모든 요소들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그들의 이러한 영적이고, 사회적인 홈리스의 상황에서 ... 그들이 무법한 성장과 소멸의 자의성이냐 아니면 가장 완고하고 환상적으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일관성 앞에 머리숙이느냐의 양자택일 앞에서 그들은 아마도 항상 후자를 택할 것이고, 그를 위해서 자기 개인 희생으로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보같다거나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이러한 보편적인 재난의 상황에서는 (후자로의) 도피가 최소한의 자기존중감을 마련해주기 태문이다."
1. 윗 글은 한나 아렌트의 <The Origin of Totalitarianism, 전체주의의 기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요즘 아렌트의 전체주의 기원에 대한 성찰이 더욱 생각난다. 코로나 19 판데믹까지 겹쳐서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의 대중과 민중들은 그동안 혹독하게 겪어온 세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 무한 경제 발전과 성장의 한갓 도구로 전락하면서 집도 잃고. 가족과 일터, 동료와 이웃도 모두 잃고서 철저한 홈리스로 살아가는 위기를 맞았다.
2. 아렌트가 사용한 "영적(정신적), 사회적 홈리스"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해 보인다. 어디 한 군데 발불일 곳이 없이 전통의 가족도 해체되고, 사회적 리더라는 사람들도 실상을 보면 아주 이기적으로 결국 자기 재산과 자기 자식, 자기 명예만을 위한 사적 인간이었던 것이 보이니 대중들이 마음 붙일 곳이 없다.
3. 이렇게 철저히 원자화되고 고립무원이 된 시대의 대중들이 향할 곳은 모든 것이 흔들리고 조작될 수 있고, 힘있는 자의 사적 요구와 선호에 따라서 사실과 진실이 유동적인 때에, 그래도 그것이 상식에 어긋나고, 말도 안되는 픽션이나 허구라고 해도 지금 이것은 영원하며, 변치않는 진실이고, 당신들을 위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선동하는 사람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4. 전광훈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자신은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하나님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절대처럼 구술하고, 자신이 변하지 않는 지속과 진실을 주는 사람이라고 선전한다. 여기에 늙고, 어디 한군데 소속되지 못하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을 잘 해오지 않은,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에서 상식과 진실이 특정 힘에 의해서 무법적으로 깨어지고, 전쟁과 독재 등으로 각종 폭력을 많이 당한, 그래서 지금은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지속성의 토태를 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또한 사회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여느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지금까지 여서므로서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여성 신도들이 그 앞에서 "빤쓰"도 벗는 일도 마다 않는 비상식과 무아, 그러나 더이상 더 견고할 수 없는 강직한 신앙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5. 지금 한국사회 부동산 광풍으로, 영어 등의 높은 지식 장벽으로, 젊음이라는 자연의 벽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자신들에게 소속을 주고, 사명을 주고, 자신들도 무엇인가 역사 앞에서, 절대자 앞에서 할 일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그런 자신들의 삶과 사후까지 보장해 준다고 하는 전광훈에게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전광훈목사와 그에 동조하는 대형 보수교회 목사들은 그 옆에서 어부지리로 그렇게 대중의 약점과 헛점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배를 불리는 길이 보이니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종교적 늑대들이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국회의원들과 언론인들도 그래서 모두 그 옆에 꼬이는 것이다.
6. 여기서 대중들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자신들은 결코 아닌, 부자들을 위한 당을 지지하는 일이 생긴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좌절과 절망 앞에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명 표현인 자기 이익에 대한 관심조차도 놓아버리고 부자들을 위한 당인 보수 미통당을 따르고, 전광훈류의 신앙적 이데올로기에 취해서 자신이 가진 동전 한닢까지도 그곳에 헌금으로 바친다.
7. 그러면 이 상황의 타개를 위한 일로 어떤 일이 있을까? 지금 정부와 진보주의 정당들과 참된 종교의 신앙인들이 숙고할 문제이다. 무조건 전광훈은 참기독인이 아니고, 그를 상식적으로 이해 못하겠다고 하는 등의 비난만으로는 결코 이 난국과 거짓을 넘어설 수 없다.
나의 생각으로는 먼저 대중들에게 참된 소속, 자리, 집을 마련해주는 일이 시급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자신의 살 집, 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진보라고 외치며 사회를 위해서, 평등을 위해서 일해왔다고 말해온 사람과 그룹들이 솔선수범해서 이 일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그들대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이 일이 가능해지도록 묘안을 짜는 일이 시급하다.
이 일을 통해서 지도자와 인간의 말과 삶이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대중의 흔들리는 마음과 허공의 견고성을 향해 달려가는 그릇된 행보를 가장 기초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이 그래서 다시 사실과 진실과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8. 교육에서의 기회균등과 교육을 통한 삶의 발전과 진보의 길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야 한다. 교육적 불의로 인한 불평등과 불의가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것이 가장 심각한 불평등이고 한국사람들은 특히 그것을 못견뎌한다. 교육이 획기적으로 용이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대중들이 자기 자식 공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실패와 좌절만 안기는 교육으로는 전광훈류의 종교와 사이비가 넘칠 수밖에 없다. 학벌 차이철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우리사회의 특권대학의 이익 독점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고 핀란드 등에서 이룬 교육개혁을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된다. 누구라도 자신의 노력과 성실이 여전히 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9. 기독교는 더 이상 자신의 신앙을 절대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만들지 말고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기르고, 인간 신앙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허용하고 열어놓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 우리 시대 홈리스가 된 대중들에게 작은교회운동으로 교회가 참된 영적, 사회적 집으로서 역할할 수 있다. 그 일을 다각도로 연구하며 이 현실과 사회의 진정한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 참된 신앙적 권위로 거듭날 수 있다.
10. 이 일에서 지난 과거 민족의 역사에게 밖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 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다시 복권해주고. 위로하고 함께 하면서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방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수단으로 지금까지 분단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온 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늘 21세기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 땅에 들어와 함께 노동하며 살고있는 다른 민족과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을 진정으로 같은 인간과 이웃으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또다른 집과 고향을 마련해주는 일을 해나갈 때, 우리 사회 내에서의 태극기부대의 홈리스들에게도 깊은, 지속적인 치유가 될 것이다.
이상으로 우선 오늘 여기까지의 성찰을 올립니다.
#한국신연구소#현장아카데미#사유하는집사람회#한국여신학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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