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7

알라딘: [전자책] 싸우는 심리학 - 자본주의를 읽는 키워드, 에리히 프롬 병든 사회를 변혁하고 ‘인간의 시대’를 열다 김태형

알라딘: [전자책] 싸우는 심리학

싸우는 심리학 - 자본주의를 읽는 키워드, 에리히 프롬 병든 사회를 변혁하고 ‘인간의 시대’를 열다  epub
김태형
(지은이)서해문집2015-12-01

종이책 페이지수 400쪽,

책소개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을 온전히 복원해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이야말로 심리학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혁명의 심리학자라고 역설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후계자인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 단연 으뜸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는 심리학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혁명성을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기심과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따위의 거짓말에 속아 사람들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고, 병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심리학 본연의 의무라고 말한다.
---
목차
머리말 : 오늘, 사랑과 혁명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을 다시 읽는다


1부 사회적 존재

1.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후계자
―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살아 있는 구체적인 인간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의 탄생

2. 사회적 존재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사람은 과연 이기적인가? : 미국 심리학과 환경론의 오류
변혁은 왜 가능한가? : 사회적 의식의 능동적인 역할

3. 인간의 본성
― 인류의 탄생은 곧 사회의 탄생이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
실존, 그것은 사람에게 고유한 모순
이성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갈등 자체가 본질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인간은 낙원을 상실한 것인가
개인이냐 사람이냐
비이성 대 이성의 오류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2부 인간의 동기

1. 정신분석학과 인격
― 나의 행동은 목적을 위해 쓰는 가면에 불과하다
인격은 체계다 : 인간 심리에 관한 구조적 관점
인격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힘 : 인간 심리에 관한 역동적 관점

2. 사람의 동기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 사회적 구조야말로 사람의 운명
동기론 그리고 다중 동기의 원칙
왜 아직도 프로이트인가? : 성욕설과 생물학적 동기
사람의 기본 동기는 사회적 동기이다
진정한 동기와 거짓된 동기, 건강한 동기와 병적인 동기
사회적 욕구설과 본성적인 사회적 욕구
동기 대 동기, 서로 다른 욕구들의 투쟁

3. 사회적 성격과 무의식
― 진실에 대한 지식은 거의 다 무의식이다
새로운 동기의 출현, 사회적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사회적 무의식과 사회적 억압


3부 자본주의와 인감 심리

1. 초기 자본주의와 근대인
― 양심은 냉혹한 지배자다
종교적 초자아, 새로운 내적 권위의 탄생
세상 모든 것의 상품화
시장의 지배, 상품이 되어버린 ‘개인'들
근대인, 세상을 홀로 상대하는 철저한 고립자가 되다

2. 현대자본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무력화하는가
― 바뀐 것은 쇠사슬의 형태일 뿐
국가는 ‘그들'만의 권력 : 형식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지배한다 : 관료주의와 과학이라는 익명의 권위
사회적 암시와 세뇌, 또는 교육이거나 문화이거나
쇠사슬에서 투명 쇠사슬로 : 승자 독식과 사회 양극화

3. 현대인을 지배하는 감정들
― 파멸시키느냐, 파멸당하느냐
고립감 : 추방의 공포
무력감 : 복종과 의존과 학대의 연쇄들
권태감 :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무한한 권태
기타 감정들 : 무가치감과 회의감

4. 현대인의 주요한 동기
― 싸움터는 바로 여기,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 안에 있다
힘 : 무력한 자의 굴종과 숭배
현실 회피 : 현실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대세 추종 : 고립으로부터의 도피
인간 상품 : 만인은 만인의 상품
소유와 소비 : 행복에 관한 새로운 미신

5. 현대자본주의와 사회적 성격
― 새로운 인간의 탄생
권위주의적 성격 : 무력한 자의 심리
대세 추종적 성격 : 고립자의 심리
쾌락 지향적 성격 : 권태로운 자의 심리
시장 지향적 성격 : 인간 상품의 심리


4부 병든 사회와 정신 건강

1. 현대인의 정신 건강
―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정상과 비정상
‘혁명적’ 인간이 되는 길
병든 사회는 어떻게 병든 인간을 만드는가?
사랑을 철회하는 부모들
사람이 악을 선택하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

2. 세 가지 정신병
― 다수 대 소수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근친애적 공생 :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이기주의
자기도취 : 결여된 자기애에 대한 보상
죽음에 대한 사랑 : 현대인은 ‘죽었다’

3. 사랑은 기술인가, 프롬의 사랑학
― 사이비 사랑을 밝혀내는 건 심리학자의 책무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랑도 능력이다
자유와 독립 없이는 사랑도 없다

4. 정신 건강과 행복
― 사람답게 사는 데 참 행복이 있다
주관적 동기의 충족이 행복인가
쾌락주의적 행복론의 오류
행복의 조건
만인의 행복, 사람답게 사는 삶


5부 병든 세상을 변혁하라

1. 사람은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가?
― 사람만이 희망이다
정신 개조인가, 사회 개조인가?
혁명적 인본주의의 탄생

2. 왜 사회주의인가?
―노예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전한 사회란?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대안이다
새 사회를 위한 제안 : 고도의 지방분권화부터 기본소득까지

3. 다가올 세상은 인간의 시대
―열 명의 의인을 기다리며

----

저자 및 역자소개
김태형 (지은이)

심리학자.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주류 심리학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학계를 떠나 사회운동에 몰두하다가 중년에 이르러 다시 심리학자의 길로 돌아왔다. 기성 심리학의 오류와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고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2005년부터 활발한 연구, 집필, 교육, 강의, 상담을 통해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역사학자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접하면서 민족과 통일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줄곧 북쪽 사회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분단이 한국인들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썼고, 2017년부터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싸우는 심리학》 《트라우마 한국사회》 《불안증폭사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감정의 안쪽》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월북하는 심리학>,<혐오 시대 헤쳐가기>,<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총 5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오늘, 한국사회를 알고 싶다면
에리히 프롬을 다시 읽어라!

이 책은 최초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을 온전히 복원해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시도한다.
1%만을 위한 승자독식 자본주의의 암울한 한국사회에서
그의 빛나는 혁명성을 계승해보자. 병든 사회에 맞서 싸우자.

왜 ‘싸우는’ 심리학인가? 왜 에리히 프롬인가?

≪불안증폭사회≫ ≪트라우마 한국사회≫의 저자 김태형이 이번에는 심리학의 실천적 해법을 기치로 내걸고 나섰다. 작금의 대한민국과 같이 병든 사회에 맞서는, 이른바 ‘싸우는 심리학’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결연히 싸움터에 들고 나온 무기가 자못 의아하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이 그 주인공인 것. 왜 오늘날의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시도하면서 수십 년 전의 인물인 에리히 프롬을 호출한 것일까?
저자는 에리히 프롬이야말로 심리학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혁명의 심리학자라고 역설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후계자인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 단연 으뜸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는 심리학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는 심리학의 근본 문제 중 하나로서, 지금까지의 심리학은 사람을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예컨대 사람의 기본적인 동기를 생물학적 본능(성욕)이라고 생각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서커스 동물 조련사들이 애용하던 훈련법을 심리학으로 이론화한 행동주의 심리학, 한때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로 악용되다가 최근 들어서 다시 부활한 진화심리학, 인간의 사고와 컴퓨터 혹은 인간 심리와 뇌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련의 기계론적 실험심리학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심지어 인본주의 심리학조차, 에리히 프롬의 탁월한 심리학 이론 중에서 ‘혁명성’을 완벽히 거세한 개량품 혹은 모조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혁명성을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기심과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따위의 거짓말에 속아 사람들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고, 병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심리학 본연의 의무라고 말한다. 특히 심리학이 단순히 개개인의 ‘힐링’ 또는 ‘자기계발’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최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심리학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다.
한국인, 나아가 현대인을 둘러싼 세계는 1%의 지배계급이 99%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다. 전 지구적인 승자독식 경쟁이 생활화되고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고립자로서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승부에 대한 강박감과 패배에 대한 공포, 개인 이기주의와 대인 불신감, 고립감과 무력감, 가학 심리와 같은 심리들을 갖게 된다. 인간의 심리는 당대의 사회 현실과 결부된 ‘구체적인 생활’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더 이상 병든 사회에 순응하거나 적응하려 하지 말고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든 세상에 순응해서 얻을 것이라곤 오직 정신병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세상을 변혁하는 활동을 한다면 개개인은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다수가 그렇게 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진짜 ‘힐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심리학자 김태형이 에리히 프롬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지금 이곳에 필요한 심리학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절박한 사유와 실천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프롬의 탁월한 심리학 이론과 빛나는 문장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의 한계는 무엇인지, 그의 이론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실천적 해법과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그래서 때로 프롬의 목소리는 저자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기도 하고,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는 이중창처럼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저자의 주장을 프롬이 강력하게 지지해주기도 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사이에 둔 동서양의 두 심리학자가 이렇게 만나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꽤나 인상적인 책읽기의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수많은 ‘거인’들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요즘처럼 한국인의 심리를 궁금해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를 연이어 강타하는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 그리고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역사적 반동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심리학이 한국인의 심리를 해명하는 것은 절박한 대중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 본연의 의무이기도 하다. 심리학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래서 나는 심리학의 역사를 에리히 프롬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롬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라는 과학적인 명제에 입각해 인간 심리를 연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인간 본성’에 관한 독창적이고 탁월한 이론을 업적으로 남길 수 있었다. (…) 프롬은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가장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프롬의 심리학만큼 인간의 본질에 바짝 다가선 심리학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롬의 심리학을 알지 못하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한국인, 현대인,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간의 시대’는 프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머리말 중에서

---

[ 이 책의 주요내용 소개 ]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싸움터는 바로 여기,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 안에 있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사회이다. 즉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인간의 진정한 동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적이고 병적인 동기(예를 들어 이기심, 탐욕 등)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인 것이다.
- 현대 자본주의 사회, 즉 시장과 자본이 국가권력과 결탁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 상품’이 되어버렸고, 허울뿐인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 국가는 ‘그들’만의 권력일 뿐이다. 또한 ‘관료주의’와 ‘과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권위)이 생활의 전 영역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교육 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결국 승자독식과 사회 양극화로 귀결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란, ‘쇠사슬’이 ‘투명 쇠사슬’로 바뀐 것일 뿐, 인간은 억압 속에서 인간의 본성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 그 결과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특유하게 나타나는 고유의 감정들을 갖게 되었다. 즉 사회로부터 추방될까 두려워하는 ‘고립감’, 강한 자에 대한 복종과 의존 또는 학대에 따른 ‘무력감’,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이 억압된 데 따른 ‘권태감’과 ‘무가치감’(자존감 손상), ‘회의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고통이 심각한 정신병적 수준에 이르고 있다.
- 이러한 병적인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병적인 동기로 사람들을 이끈다. 첫째, ‘힘’에 대한 추종. 이는 무력감에 시달리는 자들의 비굴한 굴종 심리로서, 약한 자를 짓밟고 강한 자를 숭배하는 심리를 낳는다. 한국사회에서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도 바로 이와 연관된다. 둘째, ‘현실 회피’의 동기. 사람들은 이제 정말 중요한 문제, 즉 현실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잡담과 시시껄렁한 유흥뿐이다. 셋째, ‘대세 추종’의 동기.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될 것이 두려워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려고만 한다. 넷째, ‘인간 상품’으로서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을까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다섯째,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광적인 믿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 이와 같은 병적인 감정과 병적인 동기들은 현대 자본주의에 걸맞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성격을 탄생시켰다. 즉 무력한 자의 심리인 ‘권위주의적 성격’, 고립자의 심리인 ‘대세 추종적 성격’, 권태로운 자의 심리인 ‘쾌락 지향적 성격’, 인간 상품의 심리인 ‘시장 지향적 성격’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요한 성격 구조다. 물론 이것은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지, 원래 인간의 본성인 것은 아니었다.


노예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명적 인본주의’,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대안이다!

-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그렇기에 이 병든 사회를 변혁해야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미치지 않고’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심리학의 주요 문제로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이나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류애를 가질 수 있을 때만이 사회 변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신념을 기초로 한 ‘혁명적 인본주의’,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제안한다. 옛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 물질주의(생산력 우선주의)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는 탐욕과 쾌락주의를 부추겨 결국 ‘미국의 슈퍼마켓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건들’을 부러워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근본인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제안의 하나로, 고도의 지방분권화(얼굴을 직접 맞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출 대의제)와 기본소득(돈을 벌든 안 벌든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등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말을 인용하면서 ‘열 명의 의인(義人)’만 있다면 인류에겐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접기
---
구매자 (1)
전체 (4)
공감순
   
프랑크푸르트 학파 중 에리히 프롬이 단연 으뜸이다.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이 공상적이고 자폐적인 결론에 치닫는 반면, 프롬은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은 프롬 개론서로 매우 훌륭하다. 제목도 잘 지었다. 우리에게는 싸우는 심리학, 혁명적 휴머니즘이 필요하다!
초연 2017-06-10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프롬을 넘어서는 사회적 인간에 대한 분석과 통찰, 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충분히 설명해 주는.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심리학 책.  구매
start 2015-02-19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제목과 소개글, 에리히프롬이 아까운 책. 어디를 읽어도 자본주의와 싸우는 심리학은 없다. 386이 자존감이 높다는니 하는건 넘어간다 쳐도 사회주의 실패를 정신개조를 못해서, 10명의 의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대목에서 실소가 나왔다. 해도해도 너무한
깔깔마녀 2015-01-26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정리한 책. 저자의 주장은 다소 도식적이고 아주 단순하지만(이 사람이 정말 심리학자인가 싶을 정도로 인간심리에 대한 이해는 아주 단순하다) 그냥 에리히프롬의 사상을 쉽게 정리 할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는 책이다.
펜실베니아 2019-07-19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1)

   
싸우는 심리학 새창으로 보기

막장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한국인은 참 힘들다. 갈수록 사회양극화는 심화되고 사람답게 살기가 힘들어 진다. 이런 답답한 시대에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어떻고, 인생의 참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현대인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에 대한 상관관계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맞는지 여부는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을 신장시키는가, 아니면 유린하는가의 물음과 같다. 만일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을 유린하는 병든 사회를 조장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넘어야 할 벽이 되는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의 실현을 돕는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면 더 발전시켜야 함은 당연하다.



일찍이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이고 다각도로 분석하여,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을 권위주의적, 대세 추종적, 쾌락 지향적, 시장 지향적 성격의 소유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특징이 인간의 욕구와 일치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는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프롬은 현대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병적인 사회이며,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립되어 있고, 무력해 진 존재라고 규정한다.



프롬의 심리학은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 바라본 최초의 심리학이다. 흔히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라고 하는 심리학 등은 틀렸다는 것이 프롬의 주장이다. 사람에게 있어 생물학적 동기는 사회적 동기에 비해 인간 본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롬은 자신의 심리학을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이라고 스스로 명명했다. 사람의 진화역사는 동물의 진화역사와 다르다는 점, 사람의 기본 동기는 생물학적 동기가 아닌 사회적 동기라는 점, 그리고 인간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몸이나 뇌가 아니라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롬은 정신분석학의 비판 정신을 계승하고, 사람의 무의식에 계속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정신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사회를 비판함은 물론 병든 세상에 대한 적응이 아닌 변혁을 권장하며, 변혁을 위한 이론을 탐구한다.



프롬이 말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려는 속성이고, 세계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고 변혁하는 속성이며, 의식을 이용해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지휘하는 속성이다. 따라서 자주와 자유가 인간 발달의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프롬은 건전한 사회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인 사회, 절대 다수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대다수가 알다시피 소련식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프롬은 소련식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물질주의적 목표를 추구하고 정신개조를 경시한 점에서 찾았다. 사회주의자들이 오히려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었으며, 사회주의적 인간이 저절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환상 때문에 정신혁명을 개을리 했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이 없지는 않다. 프롬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해답으로 내세웠다. 건전한 사회의 특징에 부합하는 것을 충족하는 사회,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인 사회, 모든 사람이 개성화된 사회, 집단적이고 건강한 문화생활이 보장되는 사회다. 이를 위해 프롬의 제안 중 꼭 주목해야 할 두 가지를 지목했다. 참여 민주주의와 대면집단, 최저생계비 제도가 바로 그 주인공.



프롬은 진정한 의사결정은 대중 투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 했다. 단지 옛날의 ‘부락회의’에 해당되거나 또는 500명 정도로 구성된 소집단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참여 민주주의와 대면집단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이유이다. 대신 고도의 지방분권화와 효율적인 중앙집권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기본 소득과 인간의 존엄 유지를 위해 최저생계비 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다.



프롬에 따르면 20세기에 인간은 죽었다. 그러나 10명의 의인만 있다면 인류는 다시 살아날 것임을 예언했다. 혁명가로 살 것인가? 반항자 또는 변절자, 기회주의자로 살 것인가?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 접기
깨비 2015-03-31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싸우는 심리학 새창으로 보기
에리히 프롬에 대한 적극적 분석으로 필자가 재구성한 사랑과 변혁의 심리학. 주류심리학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데, 심리학 책에서 사회변혁, 기본소득, 국가보안법 등의 단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독특하고 재미있다.
ENergy flow 2015-01-09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강추!! [서평]‘병든 사회를 변혁하고 '인간의 시대'를 여는 길 <싸우는 심리학> 새창으로 보기 구매
[서평] 김태형 저 <싸우는 심리학>을 읽고 / 2014. 10., 400쪽, 서해문집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행복의 지름길인가? 먹고 살만 하면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은데 왜 그렇지 않을까? 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진실과 불의를 왜 외면할까? 사람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은 끝이 없다. 사회와 집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개인의 삶과 생각, 일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살펴보아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해 해답을, 또는 해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불안증폭사회>와 <트라우마 한국사회>에 이어 김태형 사회심리학자가 내놓은 세 번째 '한국사회 심리분석 보고서 시리즈’이다.
저자는 이미 두 저작을 통해 심리학을 대중적이고 실질적인 학문으로 쇄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보통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라고 하면 ‘에고’나 ‘리비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어려운 개념이나 번역 때문에 꺼려지는 데. 저자의 심리학은 쉬우면서 정교해 보인다.

전작인 <불안증폭사회>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시대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들의 불안심리와 한국사회가 한국인들의 불안을 어떻게 증폭시키고 있는지 분석했다.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100여년 한국현대사를 통해 사회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 끼쳐 온 역사적, 집단적, 계층적 트라우마를 자세하게 분석하여 보여주었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이번 책 <싸우는 심리학>은 <불안증폭사회>와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시작한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인의 심리를 체계적 학문으로 보여 준다. 그가 분석한 한국인의 심리가 어떤 학문적 연구 과정에서 도출된 것인지 드러낸 것이다. 어쩌면 저자가 <불안증폭사회>와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펴낸 과정에서 연구, 분석한 과제들을 통해 자신의 심리학을 정립할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심리학에서 실마리를 찾았고, 그 출발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동물이 아니라)이며, 사회적 존재는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다소 익숙한 명제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동물과 구분되는데, 이를 확고히 다져야 할 심리학이 그동안 '생물학적 존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구의 주류심리학은 사람을 ‘개인적'인 존재이자 '생물학적' 존재로 국한하여 심리현상을 분석해 왔다.

“프롬이 주장하는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신분석학의 비판 정신을 계승하여 전투성을 유지한다. 둘째, 사람의 무의식에 계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진다. 셋째, 정신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사회를 비판한다.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은 소외, 불안, 고독, 심각한 공포의 감정, 활력 및 기쁨의 상실 등 인간을 병들게 만드는 원인이 병든 사회에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어떤 사회를 병든 사회라고 하는지, 또 병든 사회가 인간의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 병들게 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밝혀내야 한다. 넷째, 병든 세상에 대한 적응이 아닌 변혁을 권장하며, 변혁을 위한 이론을 탐구한다. 병든 세상에 순응하거나 적응해서 얻을 것이라곤 오직 정신병뿐이다. 따라서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은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처럼 세상에 적응할 것을 권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병든 세상을 변혁하는 사람이 되도록 사람들을 고무해야 하며, 그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을 연구해야 한다.”(31쪽)

저자는 이제라도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혁명성을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심리학 본연의 의무라고 말한다.
특히 심리학이 단순히 개개인의 '힐링' 또는 '자기계발'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최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심리학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다.

저자는 ‘싸우는 심리학’을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후계자인 에리히 프롬(1900~1980)으로부터 찾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등으로 유명한 프롬은 애초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정통했으나,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정신분석학과 결별한 뒤 ‘인본주의적 정신분석학’이라 불리는 자신의 심리학을 이끌어 냈다. 저자가 프롬에게 주목한 결정적 이유는 그가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바라본 최초의 심리학자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대놓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동물은 먹기 위해 살지만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다. 그러나 성욕을 인간 존재의 근간으로 봤던 프로이트로부터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거의 동일하게 취급하는 최근의 기계론적 실험심리학까지, 이 단순한 명제에 입각해 인간의 본질을 따져묻는 심리학은 없었다.

“프롬은 프로이트처럼 단지 지지를 표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존재(구체적으로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어떻게 사회적 의식(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상부구조)을 규정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명확히 밝히기를 원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경제적 기초가 어떻게 해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변환하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정신분석의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학설에 있는 이 간극을 메울 수 있고, 경제적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결부시키는 메카니즘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36쪽)

저자는 그동안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생물학적 존재’로만 인식해왔다고 비판한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인식한다면 그에 따라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이며 생물학적 존재의 본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려는 속성, 세계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고 변혁하는 속성, 의식을 이용해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 지휘·통제하는 속성” 등을 세가지 근본 속성으로 꼽을 수 있다.

“프롬은 마르스크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 본성의 문제를 그 나름대로 심리학적 차원에서 해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첫째로 인간 본성이 존재하며, 둘째로 인간 본성은 생물학적 속성이나 특정한 시기의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도 아닌 사회,역사적 산물이며, 셋째로 인간 본성에는 불변의 요소들이 있어서 그것이 사회역사의 발전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48쪽)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자신의 본성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저자는 프롬의 견해를 빌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인위적인 동기’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병든 사회’라고 진단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의 병적인 동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절대 다수의 심리학자들조차 진정한 동기와 인위적 동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수의 현대인들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적 동기의 좌절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위적 동기를 진정한 동기로 착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근현대인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바라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바라는 데 불과하다는 프롬의 지적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125쪽)

“진정한 동기와 병적인 동기를 구분하는 것은 올바른 심리학의 첫째가는 임무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병적인 동기가 사람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폭로해야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다’ ‘사람은 원래부터 탐욕스럽다’는 따위의 잘못된 대중적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에 의해 정신적으로 불구화되어 있는 사람의 특성을 인간 본성으로 간주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사람에 대한 냉소적이고 허무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126쪽)

현대인에게 만연한 고립감, 무력감, 권태감 등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들을 자발적 노예로 만들기 위해 강요해온 ‘인위적 동기’에 휩쓸리며 살아온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현대인들은 대체로 권위주의적(무력한 자의 심리), 대세추종적(고립자의 심리), 쾌락지향적(권태로운 자의 심리), 시장지향적(인간 상품의 심리) 성격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처럼 병든 마음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그 원인을 제공하는 병든 사회를 변혁해야만 해소될 수 있다.

“좀 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프롬은 ‘진실에 대한 지식은 거의가 다 무의식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보다 사람이 진실을 억압하는 까닭이 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실이 가져올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156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의 경험을 통해 그 사회가 사람을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저항하면 온갖 불이익과 탄압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기에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의식화는 새로운 진실을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누군가가 삶을 통해 이미 말고는 있지만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진실을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식화의 성공 유무는 억압을 지탱해주는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의식화는 본질적으로 그가 이리미 알고 있는 진실이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억압을 제거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롬에 의하면 억압의 주요한 원인은 공포이다. 따라서 개인 치료든 사회 치료든, 의식화는 공포가 완화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한국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공포인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를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의식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57쪽)

저자는 사람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건전한 사회’를 상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프롬이 말한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프롬은 “물질주의적 목표를 추구하고 인간의 정신 개조를 경시했다”며 옛소련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사람이 경제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은 버리지 않는다. 되레 그는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의 (형식적인) 소유권이 아니라 경영과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가하는 것”이라며 훨씬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저자는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가 아니라 로봇화(자본주의와 옛소련 공산주의)냐 인본주의적·공동체주의적 사회주의냐”를 묻는 프롬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또 참여 민주주의를 실질화하기 위해 서로 얼굴을 맞댈 수 있는 ‘대면 집단’을 중심으로 권력을 구성하자든가, 인간 존재의 존엄 유지를 위해 기본소득과 유사한 최저생계비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 등 프롬에게서 오늘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져오자고 제안한다.

“근본적인 사회주의,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회주의를 프롬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로 명명했다. 그렇다면 프롬이 생각했던 건전한 사회, 인본주의적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는 무엇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된 사회이다. 그러러면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이니까.”(365쪽)

이 책은 독자들이 한국인들뿐 아니라 오랫 동안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서 살아온 지구인들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투표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서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물론 대다수 한국인들의 사회심리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더할 나위가 없이 훌륭해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한국인의 심리가 궁금한 모든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싸우는 심리학>에 대해 단원별로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http://blog.daum.net/hy2oxy/8692613)에 올렸으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기 바랍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강연 동영상

1부 인간본성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https://youtu.be/W9JgdaGisZY
2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https://youtu.be/4jqVZja4Zzo

[인상 깊은 문장]

“물론 사회와 부모의 학대로 화가 난 아이들도 나름 반항을 하기는 하는데, 그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예의범절을 무시하는 태도, 너무 먹지 않거나 너무 먹는 행위, 공격과 사디즘, 그리고 수많은 자기파괴적인 행위 등이 그것이다. 반항은 흔히 일종의 전면적 태업(세계에 대한 관심의 소거, 태만, 수동에서부터 가장 병적인 형태의 완만한 자기 파괴에 이르기까지)으로 나타난다.’(프롬)”(279쪽)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가장 일반적인 반항 형태는 소극적 반항이다. 요즈음 아이들 사이에서는 세상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 완전한 의욕 상실, 나태함, 무의식적인 자기 학대와 파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들의 태업 역시 자신을 훈계하는 나이 든 어른에게 쌍욕을 하며 대드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학대자에 대한 반항의 한 형태이지만, 태업이 반항보다 예후가 더 나쁘다.”(280쪽)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하다. 현대인이 권위주의적, 대세추종적, 쾌락지향적, 시장지향적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는 그들 중 다수가 악마가 되지 않은 것은,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해 인간 본성이 고통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람은 선을 택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악성 정신병자가 되면 더 이상 선을 선택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악이란 곧 정신병이다. 정신 건강을 보통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악인이 아니므로, 그가 '특별한 이유'와 맞서 싸울 용기만 낸다면 언제라도 선을 선택할 수 있다.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고 '양심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신병과 결합된 악인이야말로 진정한 악인이다."(285쪽)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회적 존재이다. 프롬도 동의했듯이, 사람에 관한 모든 중요한 문제는 그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파생된다. 사람은 완전한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원할 뿐 자궁 속이나 동물로 되돌아가려는 동기 따위는 없다.”(301쪽)

“인류는 완전한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해 줄기차게 싸워왔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권위주의적, 대세추종적, 쾌락지향적, 시장지향적 성격을 강요함으로써 현대인을 정신적 사망에 이르도록 강제했다. 그리하여 인류는 완전한 사회적 존재가 되기 이해 계속 전진하는가, 아니면 정신적으로 완전히 사망함으로써 파국을 맞이하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프롬의 착각과는 달리 인류의 싸움은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동물 대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현대 자본주의를 변혁하려는 ‘다수’와 인류를 멸종 위기로 몰아붙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사수하려는 ‘소수’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302쪽)

“만약 사람을 사람으로서 사랑하지 못한다면, 즉 인간 본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그의 인간 본성을 파괴하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 사이의 사랑이 빈번하게 서로를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우선 상대방의 부와 성공을 사랑한다. 상대방을 상품으로서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사코 우기지만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다.”(310쪽)

“이렇게 현대인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박탈한 첫째가는 범인은 병든 사회이다. 병든 사회는 현대인을 권위주의적, 데세추종적, 쾌락지향적, 시장지향적 성격자로 만듦으로써 그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박탈한다. 그 결과 현대인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더 병적인 사랑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더 이상 인간 본성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가 아니므로 사랑의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 본성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적 존재의 능력이므로, 한두 가지의 심리적 특성이나 기술 계발로는 사랑의 능력을 가질 수 없다. 연애 특강을 통해 사교술을 제아무리 익혀도 사랑의 능력이 생기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랑의 능력은 오직 전체 심리를 변혁해 완전한 사회적 존재를 향해 나아갈 때에만 가질 수 있다. 프롬이 <사랑의 기술> 서문에서 말하려고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프롬의 충고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사랑은 기술이자 능력이다. 따라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당장 ‘사람에 대한 지식,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부터 배워야 한다. 또한 사랑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완전한 사회적 존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316쪽)

“인간 본성을 실현하면서 살아가야만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사람에게는 인간적 목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프롬은 인간적 목표를 ‘참된 이상’으로, 비인간적 목표를 ‘거짓된 이상’으로 표헌하기도 했다. 인간적 목표, 즉 참된 이상은 ‘자아의 성장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촉진하는 목표’이다. 반면에 비인간적 목표, 즉 거짓된 이상은 ‘주관적으로는 매혹적인 경험이면서도 실제로는 삶에 유해한 강제적이고 비합리적인 목표’이자 ‘병적인 목표’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사람답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쾌락을 위해서, 그리고 밥그릇을 위해서 살다가 죽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쾌락을 위한 삶, 밥그릇을 위한 삶은 사람에게 그 어떤 기쁨이나 즐거움, 참된 행복도 주지 않는다.”(329쪽)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를 이어야 하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에, 자기에게는 어떤 이익의 분배도 돌아오는 것이 아닌, 그리고 어떠한 흥미 없는 물건을 만드는 데 자신의 신체 능력이나 지적 능력의 일부분을 고용자에게 팔아넘기고, 소비자로서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한다. 불만족, 권태, 즐거움과 행복의 상실, 삶의 허무감 등은 이런 데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다.(프롬)”

“프롬은 미국의 심리학자들처럼 애매모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왜 사회주의여야 하는가?>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사람의 참 행복과 인생의 의미는 세상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선언했다. ‘인생을 짧고 위험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회에 공헌할 때에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아인슈타인)”(330쪽)

“프롬은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서는 건강하고, 즐겁고, 독립적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세상에 대해 생산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만이 두 발로 땅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사람은 오직 사회, 세계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살아야만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우리 한국인들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쳐왔던 것,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나믹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긴다’는 격언의 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331쪽)

“현대 자본주의가 인류를 멸망의 문턱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도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진지한 계획은 전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만 한다. 그것만이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혁되어야 하는 까닭은 윤리적, 종교적인 요청이나 현대사회이 병적인 특성에 기인한 심리학적인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프롬)”(342쪽)

“프롬은 현 체제 내에서 정치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정신 혁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정신 혁명에 도움이 된다.
1)우리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안다(사람이 병들어 있음을 자각한다.)
2)우리는 불행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다(인간 본성을 유린하는 병든 사회가 불행의 원인임을 안다.)
3)우리는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음을 인정한다(사회 혁명과 정신 혁명을 병진하되 우선은 정치 혁명에 집중한다.)
4)우리는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하며 어떤 생활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 안다(권위주의적, 대세추종적, 쾌락지향적, 시장지향적 성격에 기초하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에 맞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346쪽)

“사람은 권력과 자본의 주인이 됨으로써 최상의 높이에 있어야 하고, 이웃과 공동체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양심적으로 살 때 가장 높은 사회적 평가를 받아야 하고, 모든 허위와 불의를 비판하고 마음껏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사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전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보장받음으로써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 인본주의는 ‘모든 사회경제적 조치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는 ‘인간’이고, ‘인간의 탄생을 완성시키고 인간의 인간화를 완성시키는 것’을 역사적 목표로 한다. 그것은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듦으로써 사람의 최상의 높이로 발전시키자는 사상인 것이다.”(347쪽)

“건전한 사회는 정치혁명이 성공한 다음에도 자연 개조, 사회 개조, 정신 개조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동시적인 변혁을 줄기차게 추진해야만 건설 가능하다. 생산력의 발전, 민중 정권의 공고화와 발전, 만인의 개성화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사람은 완전한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한 분야에서만 변혁이 성공하고 나머지 부분이 정체한다면 건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의 통합적인 진보는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더라도 고립된 하나의 영역에서 백 걸음을 나아가는 것보다 인류의 진보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오래 지속된다. 수천 년에 걸친 ‘고립된 진보’의 실패에서 인간은 보다 확실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프롬)"(355쪽)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즉 다수의 민중이 완전한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제아무리 좋은 민주주의 제도에서도 우민은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없고, 제아무리 좋은 경제제도에서도 우민은 노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사회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주체성과 자발성이 필수적이므로 자연 개조, 사회 개조, 정신 개조, 문화 개조 등을 동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프롬은 이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각 분야에서 동시에 변화가 일어난 때라야만 진보가 있을 수 있으며 어느 ‘하나의’ 분야에 국한된 진보는 ‘모든’ 분야의 진보를 파괴한다.(프롬)”(364쪽)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는 최저생계비 제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 즉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존재이고 모든 인류는 한 형제이자 가족이라는 인간관이다. 이런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큼은 주판알을 튕기지 않는다.
사회는 마땅히 사람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능하다면 자본주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하다면, 인류는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386쪽)

“열 명의 의인만 있다면 인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조차도 없다면 인류는 결국 멸망할 것이다. 나는 프롬이 지적했듯이, 열 명의 의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물건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끝나고 ‘다가올 세상은 인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류는 21세기에 다시 살아나 사람이 원래 있어야 할 최고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389쪽)

[ 2015년 11월 19일 ]
- 접기
붉은구름 2015-12-06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