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epub
김태형 (지은이)을유문화사2019-05-02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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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42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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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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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우리 사회에서 점점 심해지고 있는 극단주의의 실체를 파헤치고, 근절시킬 해법을 제시한 책으로, 극단주의가 만연한 사회 현상을 넘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도 알고자 심리학자에게 의뢰해 집필됐다. 극단주의를 일반 사회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닌 심리학자, 그중에서도 사회심리학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저자가 바라봤기 때문에 극단주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만이 아닌, 극단주의가 만연해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도 알 수 있다.
뉴스 속 사람들이 아닌 SNS나 메신저 안 우리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특정 성향을 드러낸 기사나 글에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고, 일부 장년층은 진위 여부가 확인 안 된 가짜 뉴스도 카톡으로 공유된 글이면 무조건 믿는다. 게다가 네트워크 안에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그 치우침을 더 굳건히 다지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타(차단)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1. 우리 사회에서 점점 심해지는 극단주의 경향
2. 극단주의 들여다보기
1) 내 편과 네 편: 배타성
2)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 광신
3) 자신의 믿음을 타인의 믿음으로: 강요
4)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 혐오
3. 극단주의 연구를 활성화시킨 테러리즘
1) 테러리즘 들여다보기
2)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4. 극단주의의 또 다른 이름, 광신
1) 광신이란 무엇인가
2) 서구 사회에서의 광신 연구
5. 종교에 드리워진 극단주의의 그늘
1)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2) 극단주의와 종교
6. 미국 심리학이 말하는 극단주의
1) 합의가 가장 중요한 사람들: 집단 사고
2) 집단이 만들어 낸 문제점: 집단 극단화
3) 미국 심리학이 제안하는 극단주의 예방책
4) 미국 심리학의 문제점들
7. 서구 극단주의 이론의 검은 이면
1) 민중 항쟁에 대한 극단주의 낙인
2) 심리학과 민중 혐오
3) 밀그램의 복종 실험과 짐바르도의 교도소 실험
4) 본질이 어용 이론인 미국 심리학
8. 무엇이 극단주의를 만드는가
1) 안전에 대한 위협
2) 극단주의의 길잡이, 권위주의적 성격
3)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혐오와 분노
4)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지배층
9. 한국에 퍼지고 있는 극단주의와 혐오
한국 부모들의 극단주의
한국 아이들의 엄마 혐오
약자 혐오와 극단주의 확산
10. 극단주의, 어떻게 예방하고 없앨 것인가
1) 안전한 사회
2) 정신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3) 왜 국가 차원의 공동체 건설이 필요한가
나가는 글
참고문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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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2001년에 9 · 11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이 그 사건을 빌미 삼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극단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지구촌을 뒤덮게 되었다.
P. 31~32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와 일본 경찰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일본 경찰 네가 바라는 것이 뭐냐?
독립운동가 몰라서 묻느냐? 당연히 대한 독립이다.
일본 경찰 그것은 우리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요구다.
독립운동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일본 경찰 독립에 대한 요구를 조금 누그러뜨릴 의향은 없는가?
완전 독립을 포기하는 대신 약간 자치권을 얻는 것으로 타협해 보지 않겠는가?
독립운동가 개수작 말고 꺼져라!
이 가상의 대화에서 독립운동가는 대단히 비타협적이다. 즉 일본과 타협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런 그의 태도를 배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아가 그는 극단주의자인가? 당연히 아니다. 독립운동가는 배타성이 아닌 비타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흔히 비타협성은 억압당하는 계급 혹은 민족의 편에 확고히 서는 당파성에서 비롯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거부하고 대한 독립이라는 목적을 긍정하며 억압받는 민족과 정의의 편에 굳건히 서 있는 당파성과 그것에서 비롯된 일본 제국주의와 불의에 대한 비타협성은 극단주의가 아니라 인류 역사를 진보시켜 온 원동력이다. 접기
P. 190 짐바르도의 실험은 대중에게 인간은 상황적 압력이 있으면 누구나 다 악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다 잠재적 악마니까 나쁜 짓을한 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속삭인다. 이런 악마적인 속삭임은 이 짐바르도의 실험이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잔학 행위를 저지른 미군 병사들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는 데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스타인은 이런 일반적인 주장들, 특히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 병사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이 사건에서 군인들은 죄수들을 개 목줄로 묶어서 끌고 다니고, 죄수들에게 구강성교 장면을 연출하게 하고, 담배를 피우는 여군 병사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도록 시켰다. (여군 병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다고 동의했다.) 미군 병사 한 명은 남자 포로들을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하고, 빗자루 대와 의자로 폭행하고, 주먹으로 치거나 발로 차고, 강제로 여자 속옷을 입혔다. 이러한 학대 행위는 군 지휘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행실 나쁜 일부 병사들이 저지른 일탈 행위가 아니라, ‘상황의 압력(situational forces)’이 초래한 예상 가능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접기
P. 191~192 아부그라이브 사건은 부정의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의 정신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정신이 거의 병들지 않지만 부정의한 일을 하는 사람의 정신은 필연적으로 병든다. 과거에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국인들은 독립군 등을 조직해서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독립군은 일본의 민간인은 물론이고 일본군을 대상으로 하는 잔학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반면에 일본군은 불타는 집에 살아 있는 아기를 던져 넣는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끔찍한 잔학 행위들을 저질렀고, 731부대를 운영하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독가스 실험을 하는 등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잔혹 행위를 자행했다. 왜 똑같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음에도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던 것일까? 단순하게 답하자면 독립군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하고 있었지만 일본군은 부정의한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기
P. 228~229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을 혐오하기 마련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그것이 실재적인 위협이든, 정신적인 위협이든 간에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을 혐오하거나 증오하게 되고, 그 대상을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나아가 만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 무차별적 타인들 - 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믿게 되면,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인간 혐오 심리에 물들게 된다. 앞에서 교정 테러리즘으로 명명되었던 미국의 총기 난사범들은 왜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신에게 직접 피해를 끼치지 않은 무차별적인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했을까? 이들의 행동은 인간 혐오 심리를 배제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접기
갈등하는 개인 혹은 집단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한국 사회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학대하는 학대 위계 사회인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접촉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갈등과 학대 현상, 나아가 극단주의 경향이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데이비스의 제안처럼 전 사회적 범위에서 사람들이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의미 있는 접촉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격차 해소를 통한 관계 회복은 필수적이다. 접기 - caam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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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태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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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주류 심리학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학계를 떠나 사회운동에 몰두하다가 중년에 이르러 다시 심리학자의 길로 돌아왔다. 기성 심리학의 오류와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고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2005년부터 활발한 연구, 집필, 교육, 강의, 상담을 통해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역사학자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접하면서 민족과 통일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줄곧 북쪽 사회와 사람... 더보기
최근작 : <월북하는 심리학>,<혐오 시대 헤쳐가기>,<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총 5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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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극단주의자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기존 심리학의 그릇된 관성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혐오를 하거나 받는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오찬호(『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극단주의자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이별을 통보한 연인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테러 사건 등. 그런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극단적이 됐을까? 이런 극단적인 성향은 바뀔 수 있긴 한 걸까?
뉴스 속 사람들이 아닌 SNS나 메신저 안 우리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특정 성향을 드러낸 기사나 글에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고, 일부 장년층은 진위 여부가 확인 안 된 가짜 뉴스도 카톡으로 공유된 글이면 무조건 믿는다. 게다가 네트워크 안에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그 치우침을 더 굳건히 다지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타(차단)하고 있다.
이렇게 공통 성향을 가진 집단끼리 나뉘고, 세대 간, 이성 간, 계층 간 배척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제 극단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가 서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한 언론사가 여론 조사 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인은 자기 계층의 이익만 좇느냐’는 5점 척도의 질문에 4.17이라는 높은 수치로 ‘그렇다’는 답변이 나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최근까지 각종 혐오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관련 어휘가 등장하지 않았을 뿐 가장 노골적 차별이 증가하고 있는 영역은 계층 갈등, 빈부 차별”이라며 “이른바 갑질로 표현되는 빈부 차별이 쉽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일상에는 깊게 뿌리내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한국일보, 2019년 1월 2일자 기사).
그런데 갑자기 계층 갈등이라니, 그것과 극단주의가 무슨 상관인가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극단’ 하면 중용의 반대 의미인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느낌을 떠올리고, ‘극단주의자’도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극으로 치닫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내린 정의는 다르다. 심리학자인 김태형 소장은 극단주의를 심리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네 가지 특징을 이야기한 후 정의 내리는데, 이 특징들은 극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배타성’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 ‘광신’
자신이 믿는 것을 타인도 믿으라고 요구하는 ‘강요’
자신이 믿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증오하는 ‘혐오’
저자는 위 네 가지 특징을 기초로 극단주의를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정의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왜 극단주의가 서로를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건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설령 극단주의자가 나한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해도 그냥 거부하면 그만 아닌가?
극단주의는 무엇이 만들어 낸 괴물인가
극단주의 연구자들은 극단주의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안전에 대한 위협’을 꼽는데, 신체적?경제적 위협 같은 실재적인 위협은 물론이고 가치 체계나 세계관이 무너질 수 있는 정신적 위협도 포함한다. 안전에 대한 위협은 사회 안전망과 직결될 뿐 아니라 자존감 손상이나 삶의 의미 상실과도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다. 수능 중심의 우리나라 교육은 세계관이나 정체성 확립과 거리가 먼데, 세계관과 정체성 확립에 실패하면 극단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신적 위협이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권위주의(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적 성격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력감으로, 무력감이 심하면 그만큼 힘을 갈망하게 되고 이것이 심리 전반을 규정하게 되어 권위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진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흑백 논리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이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극단주의와 얼마나 가까운지 잘 보여 준다. 어떤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강자에게는 굴종하는 반면, 약자에게는 잔인한 공격을 일삼는 사회 풍조가 확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계층 간 갈등이나 서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를 언급한 앞부분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위협하는 대상에게 분노하고 혐오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시하거나 괴롭힌 그 사람만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거나 유사한 경험이 반복되면 몇몇 사람에 대한 혐오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일반화되어 모든 인간을 혐오하게 되고, 인간을 학대하거나 공격하는 짓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극단주의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만약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은 극단주의를 부추기거나 최소 묵인하지 않을까? 설마 인간으로서 그러겠냐고 손사래 칠지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극단주의로 민중 내 갈등을 조장해 온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사회 지배층이다. 그들은 나뭇가지 뭉치는 부러뜨리기 힘들지만,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씩 부러뜨리기는 쉽다고 생각한다(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할 때 반드시 분할 통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이 각종 사회 집단을 이간질시키는 간단한 방법은 ‘차별’이다. 차별당하면 억울하고, 억울하면 분노를 표출하게 되며, 이 분노는 주로 사회 지배층이 아닌 다른 계층들을 향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다른 계층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로 만들어진 극단주의가 한국 사회에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 주는데,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엄마 혐오’다. 엄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악역을 맡고 있다. 아이를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과 (본인 기준이지만) 애 잘되라고 잔소리하는 건데, 이 잔소리 때문에 아이들의 혐오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 알면 정말 놀랄 걸요”라는 한 중학교 교사의 말도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엄마는 한 아이에게 최초의 인간관계 대상이자 기본적인 인간관계 대상이기에 엄마와의 인간관계가 아이의 인간관과 인간관계를 좌우한다는 거다. 만약 아이가 엄마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 아이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엄마 혐오가 인간 혐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극단주의가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없애야 할 극단주의의 씨앗들
저자는 서구 심리학(특히 미국 심리학의 집단 극단화 이론)이 어떻게 지배층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야욕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고 옹호해 왔는지 - 안타깝게도 한국 심리학계는 이런 미국 심리학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무관한 일로 치부할 수 없다 - 와 민중 항쟁까지도 극단주의로 몰아세우며 엉뚱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행태를 비판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득권의 이면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분석과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학대 위계 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 사회 내 약자 혐오와 극단주의 확산의 여러 사례를 들면서 우리 사회에 맞는 극단주의 예방법과 근절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극단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용된 단어다. 특정 이념을 광신하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를 ‘과격분자’라는 나쁜 이미지로 포장하면서 ‘극단적’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래서 불평등에 항의하며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친 집단으로 매도되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누가 진짜 극단주의자인지를 짚으면서, 이들이 왜 자신의 욕망을 약자를 비난하는 동력으로 사용하는지 정교히 관찰한다. 특히, 인간과 사회 사이의 무수한 실타래를 외면한 미국 주류 심리학을 비판하며 기득권의 민낯을 까발리는 대목이 통쾌하다. 기존 심리학의 그릇된 관성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혐오를 하거나 받는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오찬호(『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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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를 정의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미국과 한국의 현실 적용과 해결책까지 재밌게 제시합니다. 우리나라 분이라는 게 놀랍네요..꼭 문체가 매우 지적인 미국인 같거든요~~ 구매
vilimoon 2020-06-07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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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냐 우파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성장이냐 분배냐, 문명이냐 야만이냐, 갑이냐 을이냐. 인간의 특성 중 가장 나쁘고 고질적인 것이 있다면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그 사고 속에는 내 편은 무조건 선이고, 내 편이 아닌 타인이나 집단은 반드시 배척해야 할 악이라는 관념이 배어 있다. 모든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남(others)’이 존재한다. ‘내 편’은 무조건 맞고, ‘남’은 무조건 틀린다. 타자에 향한 혐오를 드러내는 이런 ‘편 가르기’ 프레임의 천박성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극에 달한다. 여성이나 난민에 대한 배타성은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확신하는 것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극단주의’에 빠진다. 오랫동안 굳어진 이분법적 사고에서 시작된 극단주의는 인간관계를 해치면서 우리 사회 전체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곧잘 자신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그 어느 한 편과 동일시되고 그 때문에 배척당하기 쉬운 ‘극단주의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한번 그렇게 ‘찍히면’ 거의 속수무책이다. 지금 우리 삶의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극단주의가 발견된다. 어디든 극단주의자나 극단적인 집단이 있다. 다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얼마나 강하게 배척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일치하거나 ‘내 편’이라고 느껴지는 집단에 속하려고 한다. 내 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장, 사정, 이익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들을 비하하는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려고 한다. ‘~노?(일베에서 시작한 말투)’, ‘젠신병자(트랜스젠더와 정신병자의 합성어로, 트랜스젠더를 비하하는 용어)’ 같은 혐오 발언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극단주의는 매우 편협하고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냉혹하게 배타적으로 된다.
그런데 극단주의는 ‘유유상종(類類相從)’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인가. 동질감이 극단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주범인가.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본질인데, 동질감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사실 특정 집단 안에 공유하고 있는 동질감을 문제 삼으면서 그들을 극단주의라고 규정하는 논리는 극단주의의 정의를 오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집단의 실체를 왜곡한다.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가 화두로 삼은 출발점이 바로 극단주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의와 그것이 일어나는 다양한 배경에 대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극단주의는 배타성, 광신, 강요, 이 세 가지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배타성은 이미 언급했다. 배타성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타자나 집단을 배척하는 경향이다. 광신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을 무시하고 주관적인 믿음이나 망상에 집착하는 비이성적인 반응이다. 강요는 진실과 거리가 먼 헛된 생각을 타인에게 믿으라고 억지로 요구하는 태도이다. ‘가짜 뉴스(Fake News)’를 만들고 유포하는 것도 극단주의자가 할 수 있는 강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가짜 뉴스는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에 ‘정식 기사’로 둔갑하여 나타난다. 감쪽같이 변장한 가짜 뉴스들은 사람들의 입맛에만 맞으면 쉽게 유포되어 확산한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객관적 사실의 자리를 대신하는 ‘탈진실 시대(post-truth)’는 극단주의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시대적 환경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짜 뉴스는 역설적이게도 종교에 특히 많다. 과거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휴거 종말론은 사이비 종교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가짜 뉴스다. 종교와 극단주의는 서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일신교인 기독교와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기독교 ·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각각 성경과 꾸란의 무오류성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이 믿는 교리를 타인에게 강요한다. 극단주의자는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생각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극단주의자는 자기 생각을 거부하는 타인을 증오한다.
극단주의를 분석한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유유상종’을 극단주의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특히 캐스 R.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폐쇄적인 의견을 나누게 되면 더 극단적인 입장이 나온다는 이른바 ‘집단 극단화 이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선스타인을 비롯한 서구 학자들이 믿는 집단 극단화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집단 극단화 이론은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인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동질감을 냉소적으로 보게 만들며 동질감을 공유하면서 구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을 억압하는 이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극단주의 자체뿐만 아니라 극단주의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타인이나 집단을 억압하는 특정 세력을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희생양’에 ‘극단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면 민중의 분노는 ‘희생양’에 향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를 권력층이 아닌 자신보다 약한 타인이나 집단에 표출한다.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사회심리학의 관점으로 극단주의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 극단주의로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극단주의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볼 수 없다. 분명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극단주의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단주의는 한 가지 원인이나 특징을 콕 집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학제간 접근을 통한 극단주의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극단주의는 평범하게 사는 일반인과 거리가 먼 남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는 특별한 반응이 아니다. 극단주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사람이라면 완벽할 수는 없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 또는 전체를 판단하는 오만함, 내가 믿고 있는 지식이 옳다는 착각 등은 살아가면서 몇 번 이상은 인간이라면 다 빠질 수 있는 ‘생각의 함정’이다. 삶의 모든 순간 동안 현실 감각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이 맞는지 성찰하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보는 능력도 있다. 잘못된 사고방식을 원천봉쇄하고 살 수는 없지만 경계할 수 있다. 결국 ‘생각의 함정’에 몇 번씩 빠지더라도 탈출하려고 노력한다면 극단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생각의 함정’에 너무 오래 갇혀 있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단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비이성적 믿음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Trivia
* 데스먼 투투 성공회 대주교는 극단주의를 “다른 관점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자신의 견해를 대단히 배타적으로 고수할 때, 다를 수 있음을 용인하지 않을 때”라고 정의했다. (초판 1쇄, 26쪽)
→ ‘데스먼 투투’는 ‘데스먼드 투투(Desmond Tutu)’의 오식으로 보인다.
* ‘광신(fanaticism)’의 어원은 로마어 ‘fanum’인데, 이 말은 ‘성스러운 장소 혹은 사원’을 의미한다. 현재에는 터키에 속하는 카파토키아 지역의 여신인 코마나가 로마로 수입되면서 벨로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이 벨로나 여신을 추종하는 신도들이 사원에서 미친 사람들처럼 피투성이의 제의를 벌이는 것을 본 로마인들이 이들을 ‘광신도(fanatici, fanatic)’이라고 불렀다. (초판 1쇄, 60쪽)
→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한 언어는 ‘로마어’가 맞긴 하나 오늘날에는 주로 ‘라틴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카파토키아’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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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24 공감(30)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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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 뒤에 숨은 음모는? 새창으로 보기
주위를 보면 온통 극단적인 사람들 투성이다.
서울역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이들도 그랬고,
즐겨가는 커뮤니티에서 한 정치인을 공격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저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기세로 총공격을 해댔는데,
이는 진보나 보수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게 바로 책,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자 김태형이 쓴 이 책은 극단주의에 대해 다루는데,
그 방식이 몹시 독특했다.
심리학 분야는 워낙 미국에서 연구가 많이 된 학문이라,
대부분의 학자는 미국 학자의 주장을 진리인 듯 소개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학자의 사례를 덧붙인다.
하지만 김태형은 매우 긴 분량에 걸쳐 극단주의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는데,
그 반박은 현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미국의 주류 심리학은 편향된 정보가 극단주의를 부추긴다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다 보면 극단주의가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명료한 반박,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 극단주의가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즉 진보적인 청년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오는 극우 노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 노인들이 극단주의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122쪽)]
이유인즉슨 사람들은 정치적 지향 같은 중요한 의제를 다룰 때는
정보의 취사선택을 매우 편향적으로 하기 때문에,
설사 가짜뉴스라 할지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면 그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노래 ‘Yesterday’의 가사를 써놓고 ‘BBC도 박대통령 탄핵을 비판했다’라고 했을 때,
태극기 부대원들이 열광했던 건 그들이 영어를 몰라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원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주류 심리학이 이런 엉터리같은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면에 불순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배층이나 엘리트는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민중이 더 이상 참지 못해서 들고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다...민중항쟁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지배층의 계급적 동기가 반영된 것이 바로 미국 심리학의 수동적인 인간관이다. (149쪽)]
즉 미국의 집단심리 연구는 “태생적으로 어용학문이었다” (155쪽)는 게 저자의 말,
심지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 등 일련의 심리연구들도
사실은 조작된 것이란다.
‘민중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그들의 민중혐오 사상을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다나.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나라야말로 극단주의가 설칠 조건을 다 갖춘 나라라고 말하면서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것들이 자본주의의 개혁, 기층민주주의의 실현 등인데,
말이야 맞는다 쳐도 어째 좀 공허한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통해 극단주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으니,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위의 예에서도 보듯 저자가 진보적 스탠스를 취한 분이라,
태극기 쪽 분들은 불편할 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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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1-26 공감(28)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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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새창으로 보기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혐오’다. 인터넷의 여성혐오부 터 세대 갈등과 지역 갈등에서 비롯한 혐오, 시리아 난민에 대한 혐오. 장애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학벌주의 체제에서의 혐오 등 사회는 온갖 혐오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이런 혐오의 일면에 ‘내 생각만이 옳고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간주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극단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극단주의 개념은 현재 우리 사회의 혐오와 관련한 문제들을 심리학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일종의 매스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기존의 극단주의 연구를 되짚어 보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한국의 맥락에 맞는 극단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극단주의는 1)배타성, 2)광신 3)강요, 4)혐오로 구성된다. 단순히 타인을 배척하거나 자신만의 믿음을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극단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해야 하는데, 이러한 극단주의의 예시로 저자는 박사모와 일베, 안티페미니스트, 한국의 극우주의 정당 등을 든다. 또한 저자는 기존의 극단주의 연구가 양적인 측면만 강조되었을 뿐 ‘질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가령 ‘판사들이 토론을 통해 보다 감정적인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와 ‘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토론 이후 테러리즘을 더 지지하게 되었다’는 질적으로는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기존의 집단 극단화 이론에서는 동일한 극단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생각이 강해지는 것’ 자체가 ‘극단화’라면 이것은 대단히 공허하고 의미 없는 설명으로, 질적인 측면의 극단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나 흑인 노예 해방운동을 했던 이들을 극단주의자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충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저자는 심리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구의 담론을 수입하고,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게 재가공하는 담론업자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그가 보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질적인 면’들의 예시는 너무나 의도적이라(이를테면 그는 자유한국당을 극단주의 집단으로 분류한다), 자신의 당파성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심리학을 이용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면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구시대적 사회인식 역시 눈에 거슬릴 정도다. 그는 “IMF 경쟁 위기로 대규모로 직장에서 쫓겨난 한국의 가장들”을 언급하면서 개인에 대한 실제적 위협과 정신적 위협이 문제라고 말하는데, 이는 결국 가부장제의 1인 생계부양자 모델이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하는 기술이다. 실제로 IMF 위기 당시에는 실직한 남성들보다 실직한 여성들이 더 많았다. 또한 그는 "2017년의 촛불 항쟁에서도 항쟁 참여자들은 단 한 건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180p)고 서술하는데, 이는 당시 여성 시민들이 겪었던 숱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묵인하고 배제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몹시 불편하다. 그는 심리학이 사회 현상을 합리화할 뿐인 어용 학문이라고 비판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자신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극단주의를 예방하기 위한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공동의 목표'를 기반으로 한 '국가 공동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양성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나는 저자가 작금의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성소수자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가 최소한 구시대적 반쪽짜리 진보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압권인 것은 그가 극단주의의 요소로 배타성, 광신, 강요, 혐오를 제시하면서도 엄밀한 조작적 정의를 거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인지-행동주의로 위시되는 미국 심리학을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하지만, 최소한 개념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없다면 그것은 양적 사회과학, 곧 심리학의 전거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로써 저자의 공신력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중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부연하자면, 저자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단주의의 매개요인으로 다루면서도 그다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윾튜브나 카광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작금의 극우 스피커들 중에는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바라보고 약자들을 경멸하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진중권은 <네 무덤의 침을 뱉어라>에서 이런 파시즘적 전조를 문제삼은 바 있는데, 저자가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극단주의를 다룬다면 이 부분을 깊게 다루고 넘어가는 편이 더 시의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심리학 서적으로 보면 이 책은 반가울 수 있다. 기존 심리학 서적들은 사회 현상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심리학 책을 펼쳐본 사람들이 책을 덮고 더 답답해지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사회 현상이라는 고차적인 현상, 상위 현상은 심리학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151p)고 말하면서, 사회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서술은 자칫 '심리학적 환원주의'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저자가 비록 올드한 도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심리학을 다루면서도 나름대로 사회를 적절히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책이다. 종합하면 나는 이 책을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그러나 기존 심리학 서적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리버럴 성향의 기성세대에게 추천한다. 자유한국당을 “극우집단”으로 꼬집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통쾌함을 느꼈기도 하고. 이런 관점에서 학문적 비판은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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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일랑 2019-01-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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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새창으로 보기
서평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최근 들어 극단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이나 집단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깝게 한국 안의 여성(혹은 남성) 혐오 집단에서부터 멀게는 서양의 뿌리깊은 이슬람 혐오까지.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나서 기존 심리학에 대한 회의로 학계를 떠난 뒤 현재는 '심리연구소 함께'라는 장소를 운영중인, 소위 '재야고수'류의 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극단주의의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배타성, 혐오, 광신, 강요가 그것이다.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졌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병리적이라고 일컫는 극단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그는 기존의 심리학 이론들을 종합하며 이 네 가지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배타성이란 사람들이 외집단과 내집단을 구분하고, 외집단을 배척하려고 할 때 나타난다. 이처럼 외집단을 배척하려는 동기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데, 이 두려움이 혐오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사람들은 혐오를 표현할 확률이 높다. 광신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합리성이 결여된 신념이나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에야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부정이 결국 광신을 야기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처럼 배타성과 광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 혼자만 그러한 믿음에 빠져 있다면 극단주의라고 보기 힘들다. 저자는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과정이 관여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이 단순히 기존의 심리학 이론을 먹기 좋게 요약해 놓은 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현대의 주류 심리학계가 극단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주류 심리학을 인지주의(혹은 인지-행동주의) 심리학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인지주의 심리학이란 "인간을 본질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로 간주하는 ... 즉 인간을 '지적 능력이 있는 동물', '머리에 컴퓨터가 달려 있는 동물'로 바라보는 인간관"(85p)이다. 인지주의 심리학은 집단 극단화라는 이론으로 극단주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이론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90p)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신념이나 감정, 성향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인지주의적 관점에 걸맞게) 정보의 편중화가 극단화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편향적인 정보를 주고 받는 행위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줌으로써 기존의 성향을 더욱 강화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 따르면 극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람이 보다 많은 접촉을 할 수 있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집단 극단화 이론은 여러 가지 난점을 가진다. 첫째는 그것이 극단이라는 개념을 질적이 아닌 양적인 차원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들끼리 모이면 나쁜 신념이 확산되는 만큼, 좋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신념이 확산될 확률도 그만큼 크기 때문에 단순히 양적 확산을 가지고만 설명하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지주의 심리학이 지나치게 정보의 편중화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정보라는 것은 실제로 기존의 감정과 신념 등에 영향을 받아 구성되고, 어떤 경우에는 감정이 정보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하는데, 집단 극단화 이론은 이러한 감정적인 차원의 역할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접촉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반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름을 지나치게 강조한 다문화 교육의 실패 사례, 정당의 다양화 또는 이분화가 오히려 사회 분열과 정쟁을 야기함으로써 통합을 방해하는 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오히려 사회에 필요한 것은 통합과 "공유된 목표"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책은 이렇게 전반부를 지나가면서 비로소 저자가 진정 하고싶은 주장을 향해 간다. 저자는 왜 이런 심리학의 조류가 발달하게 됐다고 생각할까? 그는 심리학이 기본적으로 민중 혐오를 촉발시킨 기폭제로 역할했다고 하면서 나름의 계보학적 분석에 따라 이를 논증하고자 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피지배층을 광신적인 집단으로 규정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집단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발달하게 된다. 멀리는 독일 농민 전쟁과 프랑스 혁명, 노예 해방운동과 여성 해방운동에서부터 가깝게는 반이슬람주의에 이르기까지, 지배층은 언제나 피지배층을 예속화하고, 분열시킴과 동시에 그들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저자는 심리학의 발달이 인간의 주체성을 폄하한 역사들로 점철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은 인간을 본능과 욕동의 노예로, 따라서 초자아라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무력한 인간 존재로 바라본다. 이는 정신분석학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지심리학도 마찬가지다. 그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과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이론이 권력과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관을 양상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관은 필시 민중의 예속화를 정당화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그런 것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게 만든다.
사실 책의 전반부는 내용을 쉽게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점차 자의적이고 다소 지엽적인 분위기를 띤다. 자연스럽게 이론적인 엄밀성이 떨어지게 되고,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흐르게 되는데, 이것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 이르면서 극에 달한다. 그래, 극단주의가 뭔지 알겠고 그것의 배후에서 누가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지 나는 알겠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자녀에 대한 학대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공동체를 재구성함으로써 다양한 집단 간에 피상적인 아닌 의미 있는 관계와 연결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지면이 많이 할애되지 않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해결책이랄 것이 결국 문제제기를 또다시 번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앞서 '재야고수'라는 단어를 언급했는데, 이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선생님이 자신만의 언어로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변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열되고, 말하는 사람의 주장에 강세가 놓인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의 강의라는 게 그런 것처럼, 과장이 섞여 있으며 학문적 엄밀성은 다소 부족해보인다. 가령 정신분석학이 인간을 단순히 동물적인 존재로 보았다거나 심리학이 정보의 개념에만 편중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좀 걸러서 읽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심리학 특유의 개념주의적이고 인지주의적인 관점(심리학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가령 유럽의 철학적 전통의 사유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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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iepelt 2019-05-3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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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새창으로 보기
“아저씨, 한남충이에요?” “아! 아니야!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10살짜리 꼬마 입에서 지금 한국의 남성들이 가장 싫어할 단어 하나를 뱉어 버리니 말이다. 그냥 ‘문재인’을 문제인이라고 써서 살짝 놀렸을 뿐인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웬만한 남성들이 듣는다면 ‘극대노’를 할 말이었다.
솔직히 그 때를 생각해보면 화가 나기보다, 당혹스러웠다. 어떻에 10살짜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거지? 유튜브에서 봤나? 벌써 이 나이에 워마드에라도 들어가셨나?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역시 아이에게 어떻게 그 말을 알았는지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누구한테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언니들한테 배웠다는 것 이었다.” “언니가 몇 명 있는데?”라고 물어보니 대학생 언니까지 있고 자기가 막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혐오 표현이 대대손손(?) 내려와 10살짜리가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속어가 됐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난리인 것인가? 그래서였을까. 을유문화사에서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라는 책에 대한 서평단을 뽑는다고 했을 때, 정말 반가웠다. 어떠한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일까, 어떤 부분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것일까? 대안은 무엇일까? 등. 여러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받게 됐다.
뜨끈 미지근한 학문으로 극단주의를 해석하다.
솔직히 이과인 내가 문과의 과목들을 공부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 뜨끈 미지근 탐구 방법과 이로 인한 결과 때문이었다. 뭐 하나 확실한 것이 하나 없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 불만의 Top of top이 심리학이라는 과목이었다. 사람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것, 사회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차원의 일이그는 하지만, 언제나 저 사람이 분석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분야다. 수학에서의 ‘공리’라는 개념이나, 물리학에서의 ‘원자’ 혹은 ‘중력’이나 ‘빛의 속도’와 같이 변하지 않는 개념은 없고, 모든 것의 연결성만으로 이야기를 하니, 어떤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는 임팩트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적어도 하나를 건진 것 같다. 그것은 ‘배타성’이라는 키워드다. 저자는 극단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를 배타성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솔직히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았나 싶다. 280장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세 글자의 단어 하나를 건진 것인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우리 사회를 해석하고 알아가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불만
솔직히 이 책은 탁상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크다. 요즘 내가 읽는 독림 연구자들의 책들은 대개 현장에서의 연구가 기본이 되어 있다. 기자들이 쓴 책 또한 대부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동들이 반영된 것들이다. 하지만 대개 이 책에서 쓰여진 책들은 여러 자료들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농후하게 들었다. 저자 자신이 심리확과에서 수학했기에 심리학적 지식 조금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 조금 해서 만들어진 책이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가 아닐까 싶다. 그냥 인상비평이 아니다. 이 책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부분 또한 상당히 많다. 주제에서 벗어난 미국 심리학에 대한 비판을 왜 이 책에서 하는지 솔직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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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키상 2019-01-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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