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4

「世の不条理を正すことに人生をかける」 慎泰俊を突き動かす「国籍」と「一冊の本」:朝日新聞GLOBE+

「世の不条理を正すことに人生をかける」 慎泰俊を突き動かす「国籍」と「一冊の本」:朝日新聞GLOBE+

Breakthrough 돌파하는 힘
평소 “민간판의 ‘세계은행’이 된다”고 말했다. 「그라면 해 보일지도, 라고 생각하게 하는 실행력이 갖추어져 있다」라고, 주위는 입을 모은다=이토 진노스케 촬영

"닭을 샀던 고객의 사업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3 년 전 그 고객,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있었습니다"

신태준(40) 아래에는 아시아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보고가 도착한다. 신이 창업한 회사의 금융서비스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목소리다.

대표를 맡은 오상 앤 컴퍼니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에게 소액의 돈을 융자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다룬다. 일본을 거점으로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미얀마, 인도에서 사업 전개해, 대출처의 9할 이상은 아이가 있는 여성이다. 회사명은 니노미야 존덕이 만든 신용조합 「고상강」에 연관된다.

일본엔으로 해서 1마리 500엔으로 샀던 닭이 1마리당 연간 200개 정도의 계란을 낳고, 1개 10엔으로 팔리면 이익을 식비에 대어진다. 빌린 1만엔으로 재봉틀을 사면 손바느질의 몇 배나 생산할 수 있다. 신의 고객은 충분한 돈이 수중에 없지만, 생활을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도쿄도 시부야구의 사무실에서

신은 이른바 벤처 기업가이지만 단순히 그렇게 말하면 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내가 인생을 걸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큰 부조리를 바로잡는 것. 하지만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죽을 때 만족할 수 있다.” 자신이 10년 정도 전 자저에 적은 문장이다.

신의 인간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적'일 것이다. 신은 '조선적'을 가진다. 조선적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국적이 아니다. 법률적으로는 '무국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취급으로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전후 편의적으로 준 것이다. 신은 조선적에 대해 “국적과 비슷하며 단순한 기호일 뿐”이라고 한다.

신태준씨의 재입국허가서=이토진노스케 촬영

국적이 없기 때문에 여권이 없다. 대신 일본 정부에서 발행된 '재입국허가서'를 들고 해외로 나가면 공항에서는 입국심사관으로부터 수상한 눈을 돌린다.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tionality?"(어디에서 왔는가? 국적은 어디인가?)

몇 번 말한 것? 별실에서 조사처럼 사정을 듣는 것도. 지난해는 다보스 회의를 위해 방문한 스위스 공항에서 신원 확인에 1시간 이상 걸렸다. 그 때마다 에모 말할 수 없는 부조리를 느낀다. 태어난 처지의 차이로, 왜 불이익을 이렇게 해야 하는가.

■아버지가 모아 준 100만엔

조선초중급학교, 중고급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에 입학. 대학 1학년 무렵은 “인권운동을 통해 세상에 기회평등을 가져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세계의 규칙은 자본주의. 우선은 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하려고 유학을 목표로 했지만, 직력이 없는 것이 울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대학원 파이낸스 연구과에 합격했지만, 입학에 필요한 120만엔 정도의 돈이, 부유하지 않았던 신의 가정에는 없었다. 곤란해지자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100만엔의 현금이 들어간 두꺼운 봉투를 포켓에서 꺼냈다. 가족의 일로 타인에게 부탁할 때마다 절대 없는 성격의 아버지가 지인이나 친척에게 고개를 숙이고 모아준 것이었다. 나머지 20만엔도 어떻게든 공면할 수 있었다. 「그 때의 100만엔이 없었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

재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미국 금융기관 모건 스탠리 캐피탈에 정사원으로 채용되어 투자업무 프로로 경력을 걷기 시작했다. 빈곤을 줄이겠다는 초심은 잊지 않게 했지만 일이 파도를 타면 뜻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해졌다. 「자본주의의 실행자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오상·앤·컴퍼니의 오피스에 있는 신태준의 책장. 영어책을 많이 읽고 있다=이토 진노스케 촬영

그 무렵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가 빈곤의 현실과 그것을 없애는 방책을 적은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에 나섰다. 마음을 흔들어 블로그에서 유지를 모집하고 공부회를 시작해 2007년에 마련한 NPO법인의 Living in Peace로 발전.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알고 “금융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투자와 NPO의 두 발 짚. 자본주의 최전선의 일과 사회공헌을 동시에 하는 것은 왜인가? "투자업무는 사회의 성장을 지지해, 그 과실을 분배하는 것이 NPO. 둘이 함께 사회가 풍부해진다".

한층 더 금융의 커리어를 쌓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오상을 설립. 농촌의 생활 향상에 힘을 다한 니노미야 존덕의 「경제 없는 도덕은 희언이며, 도덕 없는 경제는 범죄이다」라는 말을 비즈니스로 구현해 갔다.

그 후,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을 각국에 마련하거나 자회사화하거나 하여 맹렬한 스피드로 회사를 크게 했다. 세계 그룹 종업원은 5500명을 넘어 고객은 75만명을 돌파하며 대출잔고는 400억엔에 이른다. 노하우를 가진 직원을 현지에서 키우고, 그 토지에 맞는 서비스를 넓혀 간다.

■ 보람에 좌우되지 않는다

고객의 여성들과 함께. 마지막 열의 제일 왼쪽이 신태순=고상·앤·컴퍼니 제공

일은 '현장'을 고집한다. 코로나 패에서 횟수는 줄었지만 농촌 생활 사정을 알고 싶다면 현지 사람과 침식을 함께하고 실정을 알고 1 만엔, 2 만엔의 돈을 필요로하는 사람 에 대출하고 싶습니다. "필요한 돈이 필요한 타이밍이라면 더 많은 사람의 삶이 좋아진다"는 확신이 있다.

사업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으며, 수년 내 주식 상장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의 보람의 하나는 상장에서 얻을 수 있는 부이지만, 신은 거기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대표의 신보다 월급이 높은 사원은 많아 자신의 재무상황을 사원에게 공개하고 있다. 결혼을 계기로 이사했지만, 최근까지 살았던 것은 축 40년의 원룸이었다.

세계 최대급 투자펀드 콜버그 클라비스 로버츠(KKR) 일본법인에서 사장·회장을 맡은 우타다 히데노부(70)는 신중을 잘 아는 혼자 사업에 공감해 개인으로 출자한다. "뜻이 없는 채로 돈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머니 게임이지만, 신씨는 빈곤을 줄인다는 명확한 뜻이 있다"

신은, 자신의 사업만으로, 자신이 안는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도움을 담당하는 의의는 느끼고 있다. 「보람 있는 일이네요」라고 이야기를 돌리자, 잠시 생각했다. "보람이 있어요…

신은 지금도 재입국허가서를 가지고 참을성있게 출입국을 반복한다. 여권을 원하면 일본 국적 등으로 할 선택도 있지만 그 생각은 없다. “조선적을 바꾸면 눈앞의 부조리는 회피할 수 있어도 부조리 그 자체를 없애는 것에는 연결되지 않는다. 겸손한 개인 항의 활동과 같은 것입니다.

정의에 대한 생각은 사람 한배 강하지만, 부조리와 가난함을 스스로 체험해 온 만큼, 타인에 대한 신의 눈빛은 부드럽다. 앞으로도 유연하게 부조리와 빈곤에 맞서게 될 것이다. (문중 경칭 약어)

■프로필

  • 1981 도쿄도 스미다구에서 태어난
  • 1994 도쿄조선 제7초중급학교(도쿄도 시나가와구)에 입학
  • 1997 도쿄 조선 중고급학교(도쿄도 기타구)에 입학
  • 2000 조선대학교 법률학과에 입학
  • 2006 와세다 대학 대학원 금융 연구과 입학
  •     대학원 재학 중 미국 금융 모건 스탠리 캐피탈 직원
  • 2007 NPO 법인 'Living in Peace' 설립
  • 2010 투자 펀드 「유니슨 캐피탈」에 입사
  • 2014 「오상・앤・컴퍼니」를 설립

혼슈 종단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호쿠리쿠 지방에서 촬영 한 1 장 (본인 제공)

독서 를 좋아… 1학년 때 소설가 빅토르 유고 '레 미제라블'의 아동판을 읽고 5학년 때 요시카와 에이지의 대작 '삼국지'를 독파했다. 란도셀을 짊어지면서 책만 읽고 있었으므로, 주위의 사람들은 「마치 현대의 니노미야 킨지로다」. 지금도 독서를 좋아하고 역사, 과학, 소설 등을 좋아하는 장르. 사업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

「침기」에는 빠진다 ………몸을 단련하는 것이, 어쨌든 좋아. 13년에 혼슈 종단 울트라 마라톤(총 1648㎞)을 약 1개월에 걸쳐 완주했다. 지금도 휴일은 다카오산에 나가, 왕복으로 약 30킬로를 달린다. 격투기도 좋아하고, 가라테와 킥복싱은 경험이 끝난 상태. 요즘은 빠져있는 것은 침기의 브라질리안 주술로, 부드럽게 체육관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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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through 突破する力
日ごろ、「民間版の『世界銀行』になる」と語っている。「彼ならやってみせるかも、と思わせる実行力が備わっている」と、周囲は口をそろえる=伊藤進之介撮影

「ニワトリを買った顧客の事業がこんなに大きくなりました」「3年前のあの顧客、子どもを大学に送ることができました」

慎泰俊(40)のもとには、アジアの国々の同僚から報告が届く。慎が創業した会社の金融サービスで、お金を借りられた人たちの声だ。

代表を務める五常・アンド・カンパニーは途上国の貧しい人に少額のお金を融資するマイクロファイナンスを手がける。日本を拠点にカンボジアとスリランカ、ミャンマー、インドで事業展開し、融資先の9割以上は子どもがいる女性だ。社名は二宮尊徳がつくった信用組合「五常講」にちなむ。

日本円にして1羽500円で買ったニワトリが1羽につき年間200個ほどの卵を産んで、1個10円で売れたら利益を食費にあてられる。借りた1万円でミシンを買えば手縫いの何倍も生産できる。慎の顧客は十分なお金が手元にないが、暮らしを少しでもよくしたいと思う人たちだ。

東京都渋谷区のオフィスで

慎はいわゆるベンチャー起業家だが、単にそう言っては彼の本質をとらえられない。「僕が人生をかけられるのは、世の中の大きな不条理を正すこと。虐げられている人、代弁されることがない人、貧困の中に死にゆこうとしている人がいる世界の状態を、すこしでもよいものに変えられるのであれば、僕は死ぬときに満足できる」。自身が10年ほど前、自著に記した文章だ。

慎の人間形成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ものは何か。それは、「国籍」だろう。慎は「朝鮮籍」を持つ。朝鮮籍とは、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北朝鮮)の国籍ではない。法律的には「無国籍」ともいえる扱いで、朝鮮半島から移り住んだ人たちに国が戦後、便宜的に与えたものだ。慎は朝鮮籍について「国籍とは似て非なるもので、単なる記号でしかない」という。

慎泰俊さんの再入国許可書=伊藤進之助撮影

国籍がないから、パスポートは持っていない。代わりに日本政府から発行された「再入国許可書」を持って海外に出かけると、空港では入国審査官から不審の目を向けられる。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tionality?」(どこから来たのか? 国籍はどこなのか?)

何度言われたことか。別室で取り調べのように事情を聴かれることも。昨年はダボス会議のために訪れたスイスの空港で、身元確認に1時間以上かかった。そのたび、えもいわれぬ不条理を感じる。生まれた境遇の違いで、どうして不利益をこうむらなくてはいけないのか。

■父親がかき集めてくれた100万円

朝鮮初中級学校、中高級学校を経て、朝鮮大学校に入学。大学1年生のころは「人権運動を通じて世の中に機会平等をもたらしたい」と思ったが、のちに「世界のルールは資本主義。まずはこれを知るべきだ」と考えた。海外でMBA(経営学修士)を取得しようと留学をめざしたが、職歴がないことが響いて断念せざるをえなかった。

その後、早稲田大学大学院ファイナンス研究科に合格したが、入学に必要な120万円ほどのお金が、裕福ではなかった慎の家庭にはなかった。困っていると、父親がある日突然、100万円の現金が入った分厚い封筒をポケットから取り出した。家族のことで他人に頼みごとは絶対しない性格の父親が知人や親類に頭を下げ、かき集めてくれたのだった。残りの20万円も何とか工面できた。「あのときの100万円がなかったら、いまの自分はなかった」

在学中、アルバイトをしていた米金融機関モルガン・スタンレー・キャピタルに正社員で採用され、投資業務のプロとしてキャリアを歩みはじめた。貧困を減らすという初心は忘れないようにしたが、仕事が波に乗ると志が薄れるのではと、かえって不安になった。「資本主義の実行者で終わっ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

五常・アンド・カンパニーのオフィスにある慎泰俊の書棚。英語の本をたくさん読んでいる=伊藤進之助撮影

そのころ、米経済学者ジェフリー・サックスが貧困の現実とそれをなくす方策を記した「貧困の終焉」という本に出合った。心を揺さぶられ、ブログで有志を募り勉強会を始め、2007年に設けたNPO法人のLiving in Peaceに発展。マイクロファイナンスを知り、「金融で何かできるはずだ」と考えた。

当時は、投資とNPOの二足のわらじ。「資本主義最前線の仕事と社会貢献を同時にやるのは、なぜか?」とよく聞かれたが、慎の中に矛盾はなかった。「投資業務は社会の成長を支え、その果実を分配するのがNPO。二つがそろって社会が豊かになる」。

さらに金融のキャリアを積むと、会社を辞めて五常を設立。農村の生活向上に力を尽くした二宮尊徳の「経済なき道徳は戯言であり、道徳なき経済は犯罪である」という言葉をビジネスで体現していった。

その後、マイクロファイナンス機関を各国に設けたり子会社化したりして猛烈なスピードで会社を大きくした。世界のグループ従業員は5500人を超え、顧客は75万人を突破し、融資残高は400億円にせまる。ノウハウを持つ従業員を現地で育て、その土地に合ったサービスを広げていく。

■やりがいに左右されない

顧客の女性たちと一緒に。最後列の一番左が慎泰俊=五常・アンド・カンパニー提供

仕事は「現場」にこだわる。コロナ禍で回数は減ったが、農村の生活事情を知りたいと思ったら、現地の人と寝食を共にし、実情を知ったうえで、1万円、2万円のお金を必要とする人に融資したいと考えている。「必要なお金が必要なタイミングであれば、より多くの人の生活がよくなる」という確信がある。

事業を大きくするには資金を調達する必要があり、数年内の株式上場をめざす。一般に起業家のやりがいの一つは上場で得られる富だが、慎はそこに重きをおかない。代表の慎よりも給料が高い社員は多く、自身の財務状況を社員に公開している。結婚を機に引っ越したが、最近まで住んだのは築40年のワンルームだった。

世界最大級の投資ファンド、コールバーグ・クラビス・ロバーツ(KKR)日本法人で社長・会長を務めた蓑田秀策(70)は慎をよく知る一人で、事業に共感して個人で出資する。「志がないままお金を動かすのは単なるマネーゲームだが、慎氏には、貧困を減らすという明確な志がある」

慎は、自分のビジネスだけで、自身が抱く志を実現できるとは思わないが、その一助を担う意義は感じている。「やりがいがある仕事ですね」と話を向けると、しばらく考え込んだ。「やりがい……ですか。やりがいがゼロでも、いい仕事をするべきだと思う。お客様から感謝の言葉をいただいたらうれしいですが、それに左右されず、常に同じ質の仕事をしたい」

慎はいまも再入国許可書を携え辛抱強く出入国を繰り返す。パスポートがほしければ日本国籍などにする選択もあるが、そのつもりはない。「朝鮮籍を変えれば、目の前の不条理は回避できても不条理そのものをなくすことにはつながらない。ささやかな個人抗議活動のようなものです」とさらりと言う。

正義への思いは人一倍強いが、不条理や貧しさを自ら体験してきた分、他者に対する慎のまなざしはやわらかい。これからも、しなやかに不条理や貧困に立ち向かうだろう。(文中敬称略)

■プロフィル

  • 1981 東京都墨田区に生まれる
  • 1994 東京朝鮮第7初中級学校(東京都品川区)に入学
  • 1997 東京朝鮮中高級学校(東京都北区)に入学
  • 2000 朝鮮大学校法律学科に入学
  • 2006 早稲田大学大学院ファイナンス研究科に入学
  •     大学院在学中、米金融モルガン・スタンレー・キャピタル社員に
  • 2007 NPO法人「Living in Peace」を設立
  • 2010 投資ファンド「ユニゾン・キャピタル」に入社
  • 2014 「五常・アンド・カンパニー」を設立

本州縦断ウルトラマラソンに参加したとき、北陸地方で撮影した1枚(本人提供)

読書好き………小学生のころ「通学は電車とバスで往復2時間。その間ずっと本を読んでいた」。1年生で小説家ビクトル・ユーゴー「レ・ミゼラブル」の児童版を読み、5年生で吉川英治の大作「三国志」を読破した。ランドセルを背負いながら本ばかり読んでいたので、周りの人たちは「まるで現代の二宮金次郎だ」。いまも読書が好きで、歴史、科学、小説などが好きなジャンル。ビジネス書はほとんど読まない。

「寝技」にはまる………体を鍛えることが、とにかく好き。13年に本州縦断ウルトラマラソン(計1648キロ)を約1カ月かけて完走した。いまも休日は高尾山に出かけて、往復で約30キロを走り込む。格闘技も好きで、空手とキックボクシングは経験済み。最近はまっているのは寝技のブラジリアン柔術で、足しげくジムに通っている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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