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국's post
정승국
ptrednsoSoa29mr2gmgma8e36pt7b2i7 6:25ee8123i 1iS6t0t2i1a18t ·
(이철승 교수 불평등 3부작에 대한 이승윤 교수의 비평문을 읽고)
1. 이승윤 교수님, 잘 지내시죠?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 3부작에 대한 교수님의 비평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북토크 날, 두 분간의 토론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아주 궁금합니다. 두 분이 워낙 전문가들이라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젔겠지요. 교수님이 올리신 글에 대해 저도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2. 근원과 비근원적인 것에 대해
"이는 이철승의 분석이 놓치고 있는 핵심을 드러낸다. 문제의 근원은 특정한 고용 제도나 문화적 유산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에 있다."
- 근원은 노자관계이고 고용제도는 비근원적이라는 구분이 과연 생산적일까요? 이철승 교수의 주장은 내부자-외부자론에 연결되어 있고, 주지하다시피 이 이론은 유럽 대륙국가들(프랑스 등)과 남부유럽국가들(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노동시장구조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과도하게 크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이 아주 낮은 원인을 노자관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노동시장제도(dualizing institutions)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이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방향도 탈이중구조적인 de-duailing 노동시장정책이 되는 거죠.
- 내부자-외부자 이론(또는 dualization theory)의 구축에 중요한 기여를 한 Silja Haeusermann의 박사논문인 '연금개혁의 정치'는 연금개혁의 과정에서 독일사무직노조, 독일공무원 노조 등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주변부노동자 및 시간제에게 국민연금 적용 확대 등의 연금개혁에 반대했던 사례를 들어 더 이상 노동을 단일한 행위자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의 개편"을 역설하는 교수님은 과연 외부자 상황의 개선과 관련하여 노동을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자본주의의 황금기 이후 연금개혁의 정치든 노동시장개혁의 정치든 노동을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것은 여러 연구들에서 실증된 것이 아닐까요?
- 연공급 등 내부자 이해관계를 참호처럼 둘러싸고 보호하는 고용제도나 노자의 권력관계와 무관하거나 중립적인 기타 제도들은 비근원적이므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나요?
3.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해체와 단기계약의 확산
"현대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일의 형태를 바꾸거나 단기 계약을 활용하는 경영 방식a nexus of short-term contacts으로 진화하면서, 장기적 성장을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던 과거의 모델a nexus of reciprocal relationships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술 변화로 인해 전통적 노동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자본이 노동을 추출하는 방식이 진화되고, 이 과정에서 ‘숙련’도 쪼개지며 와해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이다."
-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해체나 단기계약을 활용하는 방식이 자본주의의 유형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닐까요? 초단기계약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프랑스인데 그 이유는 이 나라가 다양한 규제와 제도를 통해 전형적으로 정규적 노동자의 이해를 방어하는 나라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기술변동의 과정에서 숙련이 쪼개지고 와해되나요? 중간적 숙련의 경우에는 그렇지만 기술변동이 고숙련노동자 및 지식노동자를 다수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요? 노동력의 불안정화는 글로벌화, 지식경제화, 기술변동, 서비스화, 여성노동력화 등과 함께 진행되고 있고 이들 메가 트렌드가 노동력에 미치는 효과는 부정적인 것 일색이 아니라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분석과 평가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4. 특수성으로 환원?
"따라서 한국의 불평등을 벼농사 체제나 386세대의 네트워크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문화적 특수성으로 환원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 구조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자간의 근본적 모순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아닌가요?
- 보통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라틴유럽 국가들의 노동시장구조를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깊은 분절성' a deep segmentation between insiders and outsiders 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정규직 임금과 비정규직 임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의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임금체계는 직무급이고 산별조직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정규직과 기타 노동자 사이에 차이가 나는 나라는 없습니다. 기이한 노동시장구조를 가진 나라죠. 그런 뜻에서 a super-deep segmentation between insiders and outsiders 라 표현할 수 있죠. 이 기이한 노동시장구조가 높은 비정규직 비율, 아주 낮은 전환율 등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특수성을 말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전개되는 자유주의화 liberalization의 일반적 과정 속에서 근본적으로 노자간 권력관계의 변동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요?
이승윤
정승국 교수님 안녕하세요, 직접 인사드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렇게 제 글을 읽어주시고 깊이 있는 질문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마터면 놓칠뻔 했는다가 어제 밤에 우연히 피드에서 읽었어요.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지점들에 대해 정중하게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다만, 작성하다보니 글이 조금 길어져서 제 담벼락으로 가져가서 답변 드릴게요.
2d
Reply
Author정승국이승윤 네. 감사합니다
2d
Reply
==
이승윤
ornSpesotdpm1far t11 6g0669eb:3c4h21a16085lc5 mlSagmft5el5eu ·
정승국교수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제 글을 읽어주시고 깊이 있는 질문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지점들에 대해 정중하게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1. 이중화론(dualization)과 이철승 교수님의 논의에 대하여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내부자-외부자론과 이중화 이론은 중요한 이론적 전통이고, Häusermann을 비롯한 학자들의 기여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비평한 이철승 교수님의 3부작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제도주의적 이중화론(dualizing institutions)을 주된 분석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명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철승 교수님의 핵심 주장은 한국의 불평등을 두 가지 특수한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먼저 (1) 386세대의 조직화된 네트워크 권력- 이것의 이 특정 세대의 ‘점유의 정치’로 인한 권력의 획득,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지 못한 다른 ‘세대’ 간의 격차를 주장, 다른 하나는 (2) 쌀농사 체제에서 기원한 문화와 관습. 여기서 비롯한 연공서열제와 땅에 대한 집착(부동산 갈등까지 설명하시지요)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도적 이중화보다는 세대론과 문화론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원인을 제도 조합이 아닌 특정 세대의 권력 자원과 역사적 문화 유산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유럽의 이중화 이론과는 다른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2. '근원'이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
제가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를 강조한 것은 제도나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제도와 문화가 어떤 맥락에서, 누구의 이해를 위해, 어떤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저 역시 노동을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2023년 출간한 제 책 Varieties of Precarity는 바로 노동자 집단 내부의 이질성과 분화를 규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제 비평문에서도 "권력을 점유한 이후, 분배의 시간을 마주하면서부터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달라진다"고 명시했습니다.바로 이 지점에서 제 문제의식이 시작됩니다. 노동 내부의 분절이 실재한다면, 그것을 세대라는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Häusermann의 연구는 중요합니다. 독일 사무직·공무원 노조가 주변부 노동자의 사회보험 확대에 반대한 사례는 노동 내부의 이해 분화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세대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그리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대 내 불평등이 세대 간 불평등보다 큽니다. 이철승 교수님도 이 점을 인정하십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불평등을 설명하면서 세대를 핵심 설명변수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론적으로 충분한가?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
Häusermann이 말하는 내부자-외부자 분절은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 산업(제조업-서비스업) 등의 지위를 중심으로 분석됩니다. 물론 연령과 성별도 중요한 변수이지만, 이는 노동시장 지위와의 교차성 속에서 작동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제도 속의 행위자'에 주목하여 제도 자체가 주요한 연구대상이지 정규직 노조의 선택지 그 자체가 주목의 대상이 아닌 것을 교수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반면 이철승 교수님의 논의는 386세대의 '조직화된 네트워크 권력'을 한국 불평등의 핵심 동인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구조적 분절을 세대 코호트의 문화적, 정치적 특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며, 같은 세대 내부의 계급적 분화—대기업 정규직 386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386의 현격한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제가 비판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세대론은 노동 내부의 분절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3. 기술변동과 숙련에 대하여
교수님 말씀대로 기술변동의 효과는 복합적입니다. 고숙련 지식노동자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고, 소위 저숙련 노동이 확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시에 제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많은 영역에서 숙련 그 자체가 해체되는 과정입니다.
전통적인 일자리 개념이 와해되면서, 직업이 프로젝트로, 프로젝트가 일감으로, 일감이 단기 과업으로, 그리고 미세노동으로 분해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업무를 더욱 잘게 쪼개어 노동 추출을 용이하게 만듭니다. 숙련이란 여러 업무의 통합적 수행 능력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업무가 파편화되면서 자신이 보유한 숙련을 온전히 활용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중노동시장론과 제도주의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케써린 텔렌의 최근 연구들도 미국의 비정규직 확대나 이른바 '아마존화' 과정을 단순히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 선택의 결과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노동 추출 방식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제도가 작동하는 보다 근본적인 동학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제 문제의식과도 연결됩니다.
제 표현이 일면적이었다면 보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한국적 특수성과 보편적 경향에 대하여
교수님께서 한국 노동시장의 "super-deep segmentation"을 지적하신 것은 정확합니다. 대기업 정규직과 기타 노동자 사이의 격차,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 낮은 전환율 등은 분명 한국의 불평등에 기여하는 아주 큰 문제입니다.
제가 우려한 것은 이러한 특수성의 원인을 쌀농사 체제의 문화적 잔재나 386 특정세대의 네트워크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프랑스의 초단기계약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프랑스의 경우 강력한 정규직 보호 제도가 역설적으로 초단기계약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제도가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중구조 역시 단순히 문화나 특정 세대의 네트워크 때문이 아니라, 보다 구조적인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게재확정된 논문에서 전개한 논리는 한국의 수출주도 성장전략과 선별적 복지체제의 결합이 '외재적 비용전가(external cost-shifting)'라는 독특한 조정경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대기업의 국제경쟁력 유지를 위해 고용 및 복지 비용을 체계적으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제도 '내부'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만드는 '내재적 유연화'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은 [기업 규모]라는 경계를 통해 비용과 위험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제도화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제도의 중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국의 특수성은 단순히 유럽식 이중화론의 변형이 아니라, 발전국가 시기부터 형성된 외재적 비용전가를 통한 조정경제라는 경로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재벌 중심의 공급망 구조, 약한 공적 사회안전망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단순히 문화나 세대로 환원될 수 없는 구조적 특성입니다.
위의 논리를 전개해본 (곧 출간될) 제 논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도 교수님의 귀한 비판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저는 이철승 교수님의 작업이 한국 불평등 논의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대론의 한계와 문화환원주의의 위험, 그리고 논리적 불명확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제도 분석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앞으로 더 정교한 논의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토론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Seung Hoon Yang
자본주의의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전개라는 통시적 변수, 공시적으로 살펴야 할 문화적 차이, 거기에 통시적이면서 또한 고유한 국가별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내는 세대/동아시아적 특수성이라는 공시적 변수. 그게 얽힌 쟁점을 두 분(세 분?)이 토론을 흥미롭게 해주셔서 아주 잘 읽었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도 각각의 설명력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힘을 주고 만드냐에 따라서 판이하게 다른 의제들이 나오긴 해서요. 저는 다소 절충적이라 합이 모아지는 쟁점이 있긴 할 것 같네요.
2d
Reply
Edited
이승윤
Seung Hoon Yang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네 의제별로 여러 논의와 이론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다 다르죠. 교수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적어도 이 논의에서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어떤 인과관계로 설명 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의제였고 그 측면에서 저는 386세대론과 ‘쌀농사체제가 낳은 위계문화’로 인과적 설명을 하는데 한계가 크다는 것입니다.
2d
Reply
Seung Hoon Yang
이승윤 그러니까요. 쌀농사체제는 그거대로, 386세대론 그거대로 뭔가를 설명하는 부분은 분명히 설명력이 커 보이는 것 같은데, 그걸 '한국 사회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한 주요 변수로 상정하는 건 일종의 실험인데 충분히 그 한계에 대해서 지적해야 하는 것 같아요. 후자가 불평등 세대와 그 전의 테제이고, 전자가 2번째 책(쌀 재난 국가)이잖아요? 모험의 결과를 키워 큰 테제로 가다가 퍼진 느낌이요. ㅎㅎㅎ 이 중 세대에 대한 부분은 다시 제한적 설명으로 끌고 갈 수 있을 텐데, 쌀농사체제는 여전히 구체성으로 투사하기엔 막연해 보이긴 합니다. (그 작업을 계속 하시려 할 텐데 쉽지가 않아 보이는 단상 정도..)
==
https://www.facebook.com/sophia.lee.12764?comment_id=Y29tbWVudDoyNDk5MTI0ODMwNzE2MDU4NV8xNTM3ODkwNDE0MjMwMDI4==
이승윤 250924
tdoSprsoenii8u1e2:l2thm42epe0fbug016 Slc17ut2r52uhu1a0h ct1 ·
이철승 교수님(서강대 사회학과)의 불평등 3부작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 『오픈 엑시트』에 대한 저의 비평글이 최근 ‘문학과 사회’ 2025 가을호에 나왔는데, 오늘은 교수님과 토론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철승 교수님께서 매섭게 해달라, 겸허히 듣겠다고 여러차례 말씀해주셔서 게재된 비평문보다 오늘 토론은 조금 더 매운 맛으로 하려고 합니다. 저도 많이 배우고, 무엇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
[문학과사회] 비평문 중.
...‘(386)세대 권력 자원’을 주장하기에는 꽤나 중요한 지점이 간과되었다. 하나로 묶인 이 집단은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권력 자원을 동원한 것인가.
“조직화”를 통해 동원된 386세대가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을 점유한 이후, 분배의 시간을 마주하면서부터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달라진다.
....이는 이철승의 분석이 놓치고 있는 핵심을 드러낸다. 문제의 근원은 특정한 고용 제도나 문화적 유산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에 있다. 현대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일의 형태를 바꾸거나 단기 계약을 활용하는 경영 방식a nexus of short-term contacts으로 진화하면서, 장기적 성장을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던 과거의 모델a nexus of reciprocal relationships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술 변화로 인해 전통적 노동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자본이 노동을 추출하는 방식이 진화되고, 이 과정에서 ‘숙련’도 쪼개지며 와해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이다. 따라서 한국의 불평등을 벼농사 체제나 386세대의 네트워크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문화적 특수성으로 환원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오픈 엑시트 관련하여)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겪는 실질적 경험 및 배제의 메커니즘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의 분석은 주로 386세대라는 ‘내부자들의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작 그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외부자들의 세계’—플랫폼 노동자, 청년비정규직, 돌봄 노동자, 이주 노동자, 프리랜서 등—에 대한 정교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며, 어떻게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탐구 없이는 진정한 변화의 동력을 찾기 어렵다.
진정한 엑시트는 세대 간 화해나 문화적 개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 자체를 재편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벼농사 체제의 문화적잔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가 한국적 조건하에서 구현된 특수한 형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케이지 바깥에서 이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실질적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벼농사에서 소셜 케이지까지:
'불평등'의 역사적 계보와 구조적 전환의 과제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
「오픈 엑시트』를 중심으로
1. 배어 있는 것들, 그리고 새로이 스며드는 것들
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것은 학창 시절 한 선생의 '철부지'라는 꾸지람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학창 시절이 란 무조건 미친 듯이 공부를 해야 하는 '때”라며, 어원까지 설명해 가면서 한국적 시기 감각을 우리에게 설파했다. 어린 시절을 다른 문 화권에서 자유롭게 보낸 내가 그가 말한 '때'에 대해 느꼈던 의문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소환되었다.
'철이 없다' '철이 들다'라는 표현은 우리말 특유의 시기 감각이 담겨 있다. '철'은 본래 계절과 절기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농경 사 회에서 철마다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 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제때 씨를 뿌리고 제철에 거두어들이는 것, 절기에 맞춰 공동체가 움직이는 것이 모든 것이 '철을 아는' 일이 자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철부지'는 제때를 모 르는 존재, 아직 삶의 리듬을 체득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이자 '어 린' 상태를 가리켰고, '철이 든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이 치를 깨닫고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승윤
411
기존의 배타적 네트워크를 해체하고 포용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엑시트 옵션은 단순히 불평등한 현 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자체를 해체하고 더 공정한 사 회를 만들어가는 적극적 실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편소설 「복 있는 자들』이 얼핏 보여준 청년들의 표상 만으로도 우리는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하게 엉켜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제 몇 개의 반론을 제시해보겠다.
5. 나의 반론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이철승의 <불평등 3부작>이 그린 여정은 뿌리 깊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하며, 개인 의 실패로 치부되던 구조적 문제들을 가시화했다. 386세대 네트워 크가 어떻게 청년 세대를, 비정규직을, 여성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지, 수천 년간 이어진 벼농사 체제의 유산이 어떻게 오늘날의 연공서 열과 경쟁 문화로 현현하는지를 보여주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연구 물이다. 특히 학문적 사대주의가 만연한 한국 학계에서 고유한 이론 개발에 기울인 노력은 그 자체로 깊은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장을 넘기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 다. 그의 성실하고도 독창적인 연구 작업에 대한 찬사는 잠시 제쳐두 고, 이제 몇 개의 질문과 반론을 제기해본다. 과연 이러한 분석 틀이 한국 사회 불평등의 진정한 동력을 포착하고 있는가, 혹은 더 깊은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는 것은 아닌가.
첫번째로 지적해야 할 것은, 이철승의 세대론이 계급적 현실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가 (책에서 이미 밝혔듯이)
Seung Hoon Yang
저도 가고 싶네요 ㅠㅠ
Author이승윤Seung Hoon Yang 오늘은 ‘숙련형성’ 관련 논쟁을 추가해보려고 하는데 교수님께서도 이후 많이 조언 해주세요.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