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3

話し方から下着まで…米兵捕虜が分析した「日本人」の驚きの姿(一ノ瀬 俊也) | 現代新書 | 講談社

話し方から下着まで…米兵捕虜が分析した「日本人」の驚きの姿(一ノ瀬 俊也) | 現代新書 | 講談社

話し方から下着まで…米兵捕虜が分析した「日本人」の驚きの姿

米軍報告書は語る

敵という〈鏡〉に映しだされた赤裸々な真実。

日本軍というと、空疎な精神論ばかりを振り回したり、兵士たちを「玉砕」させた組織というイメージがあります。しかし日本軍=玉砕というイメージにとらわれると、なぜ戦争があれだけ長引いたのかという問いへの答えはむしろ見えづらくなってしまうおそれがあります。

日本軍と日本兵 米軍報告書は語る』は、戦争のもう一方の当事者である米軍が軍内部で出していた広報誌を用いて、彼らが日本軍、そして日本人をどうとらえていたかを探ります。

※本記事は一ノ瀬俊也『日本軍と日本兵 米軍報告書は語る』から抜粋・編集したものです。

米兵捕虜のみた皇軍兵士

まず最初に、日本陸軍を構成する兵士たちの振る舞い、身体的特徴とは何だったのかを問いたい。このことは、日本陸軍それ自体の特徴にも深くかかわるだろう。

IB(Intelligence Bulletin『情報公報』米陸軍軍事情報部が1942〜46年まで部内向けに毎月出していた戦訓広報誌)には日本軍戦法・兵器の解説以外にも、従軍米兵の回想や座談など、日本軍に関する多種多様な情報が収録されている。そのひとつに「日本のG.I.(The Japanese G.I.)」(1945年1月号所収、G.I.は米軍兵士の一愛称)と題する記事がある。これは日本軍の捕虜となり、戦争中に解放されたある米陸軍軍曹が1年以上共に暮らした日本軍兵士の日常生活や風習を〈他者〉の視点で細かく観察、報告したもので、たいへん興味深い。

彼がなぜ、どこで捕まっていたのかは機密保持のためか書かれていないが、内容から推察するに、航空兵で搭乗機を撃墜されてフィリピンの捕虜収容所に連行され、現地の抗日ゲリラに助けられるなどして解放され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記事の書き出しは次のようなものだ。

15か月間日本軍の捕虜になっていた米軍のある軍曹が、日本陸軍の日常生活についての目撃談を寄せた。トラック運転手の仕事を強要されて敵の将校や下士官兵たちとつきあい、日本語を勉強して理解できるようになった。彼の話は陸軍航空隊ですでに若干紹介されているが、Intelligence Bulletinにも掲載して日本陸軍の日常生活を知り、その基本的特徴を学ぶことにした。
最初に接した日本兵の一団は「日支事変」で3〜5年間戦った歴戦者だった。彼らは華北で戦っていた。将校の多くは英語が話せた。日本兵たちは中国軍の戦いぶりに賞賛を惜しまなかった。最も印象に残ったのは、中国兵が長刀だけでしばしば突撃してきたことだった。日本軍はどこに宿営しようとも中国軍に悩まされて困った、とこぼしていた。

米軍軍曹が最初に体験を語ったのが陸軍航空隊であったことが、彼を航空兵ではないかとみた理由である。彼が日本人と日本語で会話したときの内容が中国軍との戦争体験であり、そこで中国兵に対する評価が決して低くなかったのは興味深い。では個々の日本兵はどのように観察されていたのだろうか。

多くの日本兵は農村出身で、そのためわずかな教育しか受けていなかった。だがほとんどの者は読み書きができる。彼らは21歳になると兵役の義務を負うが、学校に行っている者は25歳まで延期してもらえる。訓練はたぶんどの国の陸軍よりも厳しいものだ。彼らを頑健にするためであり、たいていの者はそうなる。日本兵たちは私に、訓練期間の終わりに多くの名誉あるハラキリが行われる、なぜなら厳しい懲罰に耐えられないからだと語った。体罰はひどいものだ。兵は上官に殴られ、蹴られている間直立していなくてはならない(図1)。もしビンタを受け損なえば立ち上がって直立し、再び罰を受けねばならない。私は兵が殴られて気を失い、宿舎へ運ばれていくのを見たことがある。あるときなどは大尉が兵の睾丸を蹴るのを見た。上級の者はそれがささいな怒りによるものでも、いつでも罰を加える権限を持っている。
日本軍の最下級兵は一つ星の兵、すなわち二等兵である。彼は他の者の服を洗い、食事を作り、寝床や荷物を整え、その他のあらゆる嫌な仕事をしなくてはならない。からかわれ、何か間違いがあれば身代わりとされる。6か月野戦を経験すると自動的に二つ星の一等兵に進められる。彼の生活に二等兵を殴ってもよくなったこと以外の喜びは特にないため、熱心に殴っている。しかし、もし二等兵がいなければ相変わらず殴られている。
図1。

農村出身であるが読み書きができる。訓練は殴打を含む過酷なもので脱落者も多い。軍隊内から暴力がけっしてなくならないのは、殴られている者もやがて下級者が来たら彼らを殴れる立場になるからだ。この場合、戦局悪化による輸送の途絶などで下級者が来ないと実に悲惨なことになり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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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とは?

そもそも米軍は、このような生活をしていた日本兵たちを、どのような〈人間〉として認識していたのだろうか。まずはIBで〈日本人〉がどう語られていたのかをみよう。

戦争初期に出たIB1942年10月号「日本人の特徴」は、日本人の「人種的起源」について「彼らが信じている人種的純潔性とは異なり、実際は少なくとも四つの基本的人種の混血である。マレーから来たマレー系、華北から来たモンゴル系、朝鮮から来た満州・朝鮮系、そしてアイヌのような日本固有の部族」と述べている。

米軍将兵が戦うべき平均的日本兵は背が低くがっしりした農民、漁民たちで、この形質の発現にもっとも強く影響するのは、初期にマレーから渡来してきた人々の血統である。日本人と中国人の一部は人種的背景が同じであるため、日本の農民と華南人、さらに生粋マレー人との相違もごくわずかである。一方、日本の農民=兵士と「ほっそりしていて肌の色が明るい」華北人(モンゴル系)とは正反対の外見である。

図2。

なぜ米軍が日本人の「人種的」起源や外見にかくもこだわったかというと、同盟国軍たる中国軍兵士との区別をつけねばならなかったからだ。【図2】はIBの挿図で「左が農民階級の日本兵、右が華北人の兵士。外見的特徴に注目」との説明書きがあるが、日本人たる私からみるとどちらも〈日本人〉にいるような気がする。

戦時中の米軍もそう考えたらしく、日中両軍の兵士は外見とは別のポイント、つまり次のような「文化的な特徴、癖」で区別し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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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し方 日本語には英語の「l」に相当するものがないので日本人の生徒はこれを発音するのがとても困難であり、よく「r」に置き換える。一方、中国人は通常「r」を「l」に換える。よって英語で短い話をさせると判別上有効である。例えば「Robins fly」と言わせれば、英語をほとんど知らない日本人は「Robins fry」と言うし、中国人に言わせれば「Lobins fly」と言う。

歩き方 日本人が歩くとき、姿勢は悪く、足を引きずって歩きがちである。家では足の親指と人差し指の間の革ひもで足に固定する木のサンダル(ゲタ)に慣れ親しんでいる。このサンダルの基部は小さく、歩くとき、足は地面から完全には離れない。ゲタを履くと歩き方がだらしなくなる。日本軍兵士の足の親指と人差し指の間には、ときに〔ゲタの鼻緒のため〕異様な隙間がある。親指側にはゲタの鼻緒で圧迫されてできたたこがある。

歯 日本人の歯の質は悪い。そのため歯を完全に治療すると人々の間で目立つ。出っ歯はありふれている。中国人はよりましな、真っすぐで歯学的特徴のない歯を持っている。

個人の清潔さ 日本人は可能であれば必ず一日一回風呂に入る。清潔さが無視されることはほとんどまれである。兵士は入浴設備のない所では即製で温浴設備を作る。

下着 実に多くの日本兵を下着の二つの特徴で区別できる。(1)下帯──厚い、毛で織った畝模様のある帯が夏と冬を問わず、特に農民や労働者の間でよく腰に巻かれている。日本人はこの帯の暖かさが体力を高めると信じている。加えて兵が多数の赤い糸の結び目を付けた黄色い布〔千人針を指す〕を、戦いの「お守り」の印として巻いていることがある。この幸運の印は、故郷の女性たちが別れの贈り物として用意する。(2)腰布──軍服を着た兵が腰布を、外国式の下着を付けるのと同じ場所に巻いている。これは軽い木綿でできていて、腰に巻く細ひもで支えられている。下帯はゆるく折りたたまれる。裏に武器や爆発物を隠すポケットが付いているとされている。小型ナイフくらいなら隠せるかもしれないが、小火器まで隠すことはないだろう。




では、IBの読者たる米兵がいずれ戦場で相対する日本兵の体格はどうだろうか。いうまでもなく米兵の方がよい。「平均的なアメリカ兵は日本兵よりも背が高く重い。彼の身長はおよそ5フィート8インチ〔172.7センチ〕、体重は150〜155ポンド〔68.0〜70.3キロ〕である。平均的日本兵は身長5フィート3.5インチ〔161.3センチ〕、体重116〜120ポンド〔52.6〜54.4キロ〕である。よって米兵は身長で4.5インチ〔11.4センチ〕、体重で30〜35ポンド〔13.6〜15.8キロ〕勝っている」とさ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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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体格を分析し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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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体格を分析したのか

私は、IB1942年10月号「日本人の特徴」が日米兵士の体格差をかくも詳しく考察したのは、今後の戦いにおける両軍将兵間の格闘戦生起を見越して、日本兵の肉体上の劣位を味方に周知しておくためではなかったかと思う。

実際、IB同記事は日米両軍兵士の身体能力について、

日本人農民の手足は短くて太く、アメリカ人の手足を測定すると通常彼らより勝っている。これらの身体的特徴は偉大な筋力と持久力の証ではあるが、敏捷さではおそらくアメリカ兵にかなわない。すべての日本人は柔道(柔術)、自衛術を習っていて比類なき格闘戦の能力を持っているとされてきた。間違いなく多くの日本兵が学校での訓練を通じてこの技量を身に付けている。しかし、柔道の価値を外国人は過大評価しがちである。それに、平均的な農民は筋力の鍛錬は積んでいたとしても、身体の動きはぎこちない。

と優劣の観点から比較分析している。こうした一種のレッテル貼り的な説明がなされたのは、当時の米軍内に日本人を「比類なき格闘戦の能力」を持った一種の超人(superman)とみなす風潮があったため、これを否定し去る必要があったためだろう。

なぜ日本人はそのようにみられていたのか。アメリカ人が戦前、「劣等人」と見下していた日本人に東南アジア一帯の占領を許したことは、彼らを非常に驚愕・恐怖させ、日本人は実は得体の知れない「超人」だ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思い込みを米軍内に生み出した。古い黄禍論の一変種ともいうべき「日本兵超人伝説」の誕生である(ジョン・W・ダワー『容赦なき戦争』1986年)。つまり開戦当初の米兵たちは、普通の日本人がいったいどんなものかすらもよく知らないがゆえに、途方もない不安を抱えていたのだ

これとは別のIB記事は、英軍将兵80人が「中国軍であるかのように装い、友軍の信号を送ってきた日本軍に騙され」て捕虜になり、「連合軍に日本軍と中国軍の区別を付けるのが難しいことを、将来日本軍は利用してくるであろう」(1942年12月号「英軍捕虜の報告」)と警告している。実戦で日中両軍兵士の区別ができず実害が出た(とされる)ことも、大まじめに日本人の〈識別法〉が論じられた理由であったろう。

さらに【つづき】〈米軍が宣伝していた、日本兵が「超人」ではない「興味深い」根拠〉では、米軍の日本軍と中国軍との兵士識別法や、日本兵超人神話の崩壊について、くわしくみ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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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방법에서 속옷까지 ... 미병 포로가 분석 한 "일본인"의 놀라움의 모습 (이치 노세 토야) | 현대 신서 | 코단샤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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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말하는 방법부터 속옷까지… 미병 포로가 분석한 '일본인'의 놀라움의 모습
미군 보고서는 말한다


이치노세 슌야
프로필
적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진 적나라한 진실.

일본군이라고 하면, 공소한 정신론만을 휘두르거나, 병사들을 「옥쇄」시킨 조직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옥쇄라고 하는 이미지에 사로잡히면, 왜 전쟁이 그만큼 길어졌는가 하는 질문에의 대답은 오히려 보이기 어려워 버릴 우려가 있습니다.

『일본군과 일본병 미군 보고서는 말한다』는, 전쟁의 다른 한쪽 당사자인 미군이 군 내부에서 내고 있던 홍보지를 이용해, 그들이 일본군, 그리고 일본인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를 찾습니다.

※본 기사는 이치노세 슌야 『일본군과 일본병 미군 보고서는 말한다』에서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미병 포로의 황군 병사
우선, 일본 육군을 구성하는 병사들의 행동, 신체적 특징이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이것은 일본 육군 그 자체의 특징에도 깊이 관련될 것이다.

IB(Intelligence Bulletin '정보 공보' 미 육군 군사 정보부가 1942~46년까지 부내용으로 매달 내고 있던 전훈 홍보지)에는 일본군 전법·무기의 해설 이외에도 종군 미병의 회상이나 좌담 등 일본군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그 하나로 '일본의 GI(The Japanese GI)'(1945년 1월호 소수, GI는 미군 병사의 일애칭)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것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전쟁 중에 해방된 한 미육군 군조가 1년 이상 함께 살았던 일본군 병사의 일상생활이나 풍습을 <타자>의 시점에서 세세하게 관찰, 보고한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그가 왜 어디서 잡고 있었는지는 기밀유지 때문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내용에서 추찰하기 위해 항공병으로 탑승기를 격추되어 필리핀의 포로 수용소에 연행되어 현지 항일 게릴라에게 도움을 받는 등 해방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기사의 내보내기는 다음과 같다.

15개월간 일본군의 포로가 되고 있던 미군이 있는 군조가 일본 육군의 일상생활에 대한 목격담을 전했다. 트럭 운전사의 일을 강요받아 적의 장교나 하사관병들과 함께 일본어를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육군 항공대에서 이미 약간 소개되고 있지만, Intelligence Bulletin에도 게재해 일본 육군의 일상생활을 알고, 그 기본적 특징을 배우기로 했다.
최초로 접한 일본병의 일단은 '일지사변'에서 3~5년간 싸운 역전자였다. 그들은 화북에서 싸우고 있었다. 장교의 대부분은 영어를 할 수 있었다. 일본병들은 중국군의 싸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중국 병사가 장도만으로 자주 돌격해 온 것이었다. 일본군은 어디에 숙영하려고 해도 중국군에 시달리고 곤란했다, 울퉁불퉁했다.
미군 군조가 최초로 체험을 말한 것이 육군 항공대였던 것이 그를 항공병이 아닐까 본 이유이다. 그가 일본인과 일본어로 대화했을 때의 내용이 중국군과의 전쟁 체험이었고, 거기서 중국병에 대한 평가가 결코 낮지 않았던 것은 흥미롭다. 그렇다면 개별 일본병은 어떻게 관찰되고 있었을까.

많은 일본병들은 농촌 출신으로, 그 때문에 약간의 교육만 받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읽고 쓸 수 있다. 그들은 21세가 되면 병역의 의무를 지는데, 학교에 가고 있는 사람은 25세까지 연기받을 수 있다. 훈련은 아마 어느 나라의 육군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들을 튼튼하게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된다. 일본 병사들은 나에게 훈련 기간 말에 많은 명예 있는 하라키리가 행해지는, 왜냐하면 엄격한 징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벌은 끔찍하다. 병사는 상관에게 때리고 걷어차고 있는 동안 직립해야 한다(그림 1). 만약 빈타를 받지 못하면 일어서서 직립하고 다시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병사가 때려서 마음을 잃고 숙소로 옮겨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때 등은 대위가 병사의 고환을 걷어차는 것을 보았다. 상급자는 그것이 사소한 분노로 인한 것일지라도 언제든지 벌을 가할 권한이 있다.
일본군의 최하급병은 한 별의 병, 즉 이등병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옷을 씻고, 식사를 만들고, 잠자리와 수하물을 정돈하고, 다른 모든 싫은 일을 해야 한다. 놀리는 무언가 실수가 있으면 몸 대신된다. 6개월 야전을 경험하면 자동으로 2성급 일등병으로 진행된다. 그의 생활에 이등병을 때려도 좋아진 것 이외의 기쁨은 특히 없기 때문에 열심히 때리고 있다. 그러나 만약 2등병이 없으면 변함없이 때리고 있다.
그림 1.
농촌 출신이지만 읽고 쓸 수 있다. 훈련은 구타를 포함한 가혹한 것으로 탈락자도 많다. 군대 내에서 폭력이 꺾이지 않게 되는 것은, 때리고 있는 자도 곧 하급자가 오면 그들을 때릴 수 있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국 악화로 인한 수송 중단 등으로 하급자가 오지 않으면 실로 비참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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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란?
원래 미군은, 이런 생활을 하고 있던 일본병들을, 어떤 <인간>으로서 인식하고 있었을까. 우선은 IB로 <일본인>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었는지를 보자.

전쟁 초기에 나온 IB1942년 10월호 「일본인의 특징」은, 일본인의 「인종적 기원」에 대해 「그들이 믿고 있는 인종적 순결성과는 달리, 실제로는 적어도 4개의 기본적 인종의 혼혈이다.

미군 장병이 싸워야 할 평균적 일본병은 키가 작고 탄탄한 농민, 어민들로, 이 형질의 발현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초기에 말레이에서 도래해 온 사람들의 혈통이다. 일본인과 중국인의 일부는 인종적 배경이 같기 때문에 일본의 농민과 화남인, 더욱이 순수 말레이인과의 차이도 극히 적다. 한편 일본의 농민=병사와 '살짝 있어 피부색이 밝다' 화북인(몽골계)과는 정반대의 외모이다.

그림 2.
왜 미군이 일본인의 '인종적' 기원이나 외모에 구애받았는가 하면 동맹국군인 중국군 병사와 구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림 2】는 IB의 삽도에서 「왼쪽이 농민계급의 일본병, 오른쪽이 화북인의 병사. 외견적 특징에 주목」이라고 하는 설명서가 있지만, 일본인인 나로부터 보면 어느 쪽도 <일본인>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시중의 미군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고, 일중 양군의 병사는 외견과는 다른 포인트, 즉 다음과 같은 「문화적인 특징, 버릇」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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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문화적인 특징,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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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방법 
일본어에는 영어의 「l」에 상당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본인의 학생은 이것을 발음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고, 자주 「r」로 옮겨놓는다. 반면 중국인은 보통 'r'을 'l'로 바꿉니다. 따라서 영어로 짧은 이야기를 하면 판별상 유효하다. 예를 들면 「Robins fly」라고 말하면, 영어를 거의 모르는 일본인은 「Robins fry」라고 말하고, 중국인에게 말하면 「Lobins fly」라고 말한다.

걷는 방법 
일본인이 걸을 때 자세는 나쁘고 다리를 끌고 걷기 쉽다. 집에서는 다리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가죽끈으로 발에 고정하는 나무의 샌들(게타)에 익숙해져 있다. 이 샌들의 바닥은 작고 걸을 때 다리는 땅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습니다. 게타를 신으면 걷는 방법이 망설이지 않게 된다. 일본군 병사의 다리의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는, 때로는 [게타의 콧물 때문에] 이상한 틈이 있다. 엄지 측에는 게타의 비밀로 압박되어 생긴 타코가 있다.

치아 
일본인의 치아의 질은 나쁘다. 따라서 치아를 완전히 치료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 이빨은 흔히 있다. 중국인은 더 좋고, 똑바르고 치과적인 특징이없는 치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청결함 
일본인은 가능하면 반드시 하루에 한 번 목욕을 한다. 청결이 무시되는 것은 거의 드뭅니다. 병사는 입욕 설비가 없는 곳에서는 즉제로 온욕 설비를 만든다.

속옷 
실로 많은 일본병을 속옷의 두 가지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다. (1)하대──두꺼운, 털로 짠 패치가 있는 띠가 여름과 겨울을 불문하고, 특히 농민이나 노동자의 사이에서 잘 허리에 감겨져 있다. 일본인은 이 띠의 따뜻함이 체력을 높인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병사가 다수의 붉은 실의 매듭을 붙인 노란 천(천인침을 가리킨다)을, 싸움의 「부적」의 표시로서 감고 있는 일이 있다. 이 행운의 표시는 고향 여성들이 이별 선물로 준비한다. (2) 허리 천 ──군복을 입은 병사가 허리 천을 외국식 속옷을 붙이는 것과 같은 장소에 감고 있다. 이것은 가벼운 목면으로 만들어져 허리에 감는 가늘고 끈으로 지지되어 있다. 하대는 느슨하게 접힌다. 뒤에 무기나 폭발물을 숨기는 포켓이 붙어 있다고 한다. 소형 나이프 정도라면 숨길지도 모르지만, 소화기까지 숨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IB의 독자인 미병이 어느 전장에서 상대하는 일본병의 체격은 어떨까. 말할 필요도 없이 미병이 좋다.
 “평균적인 미국병은 일본병보다 키가 무겁다. 그의 키는 약 5피트 8인치[172.7㎝], 체중은 150~155파운드[68.0~70.3㎞]이다. 
평균적인 일본병은 키 5피트 3.5인치 [161.3㎝], 체중 116~120파운드[52.6~54.4kg]이다. 따라서 미병은 신장으로 4.5인치[11.4㎝], 체중으로 30~35파운드[13.6~15.8kg] 이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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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체격을 분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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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체격을 분석했는가
나는, IB1942년 10월호 「일본인의 특징」이 미일 병사의 체격차를 가려도 자세하게 고찰한 것은, 향후의 싸움에 있어서의 양군 장병간의 격투전생기를 예측해, 일본병의 육체상의 열위를 아군에게 주지해 두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IB 동 기사는 미일 양군 병사의 신체 능력에 대해

일본인 농민의 손발은 짧고 두껍고, 미국인의 손발을 측정하면 보통 그들보다 이기고 있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위대한 근력과 지구력의 증거이지만, 민첩함으로는 아마 미국 병사와 관련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본인은 유도(유술), 자위술을 배우고 있어 비교할 수 없는 격투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 왔다. 틀림없이 많은 일본병들이 학교에서의 훈련을 통해 이 기량을 익히고 있다. 그러나 유도의 가치를 외국인은 과대 평가하기 쉽다. 게다가, 평균적인 농민은 근력의 단련이 쌓여 있었다고 해도, 신체의 움직임은 어색하다.
그리고 우열의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고있다. 이런 일종의 레텔 붙여진 설명이 이루어진 이유는 당시 미군 내에 일본인을 '타당한 격투전 능력'을 가진 일종의 초인(superman)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고 떠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일본인은 그렇게 보여지고 있었는가. 
미국인이 전전 '열등인'으로 내려다보던 일본인에게 동남아 일대의 점령을 용서한 것은 그들을 매우 경악·공포시켜 일본인은 실은 골칫거리인 '초인'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억을 미군 내에 만들어냈다. 낡은 황현론의 일변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병 초인전설'의 탄생이다(존·W·다워 '용사없는 전쟁' 1986년). 즉 개전 당초의 미병들은, 보통의 일본인이 도대체 어떤 것조차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엄청난 불안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다른 IB기사는 영군 장병 80명이 "중국군인 것처럼 치장해, 우군의 신호를 보내 온 일본군에 속아" 포로가 되어, "연합군에 일본군과 중국군의 구별을 붙이기가 어려운 것을, 장래 일본군은 이용해 온다"(1942년 12월) 실전으로 일중 양군 병사의 구별을 할 수 없어 실해가 나왔다고 하는 것도, 대단히 일본인의 <식별법>이 논의된 이유였을 것이다.


한층 더 【계속】〈미군이 선전하고 있던, 일본병이 “초인”이 아닌 “흥미로운” 근거> 에서는, 미군의 일본군과 중국군과의 병사 식별법이나, 일본병 초인신화의 붕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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