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4

[정은광의 제주 산책] 1.그날의 영혼을 위로하고픈 동백의 붉은 춤사위

동백꽃 지는 봄날... - 제주의소리


동백꽃 지는 봄날...

정은광 (news@jejusori.net)
승인 2019.03.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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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광의 제주 산책] 1.그날의 영혼을 위로하고픈 동백의 붉은 춤사위

새로운 인연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올봄 제주에 터를 잡은 본산 정은광 교무(원불교 서귀포교당) 역시 마찬가지다. 원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철학, 미술, 미학에 조예가 깊은 정은광 교무가 20일 간격으로 [제주의소리]에 ‘제주 산책’을 연재한다. 신실한 신앙심과 따뜻한 시선으로 섬 곳곳을 누비면서 풀어낼 글과 그림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주]



스승님의 말씀 노트에 이렇게 적혀있다.

‘옳은 일은 죽기로써 생명을 바쳐 하고, 그른 일은 죽기로써 생명을 바쳐 끊어 버리는 공부를 계속하면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

세상사가 죽기로써 하게 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안 되는 일도 있다. 그게 사실은 머리 아픈 형세가 된다. 그래서 “안 되면 되게 하라”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어떤 일에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되게 하는 데는 무수한 공력(積功)이 들어간다. 다시 말해서 관심과 노력 그리고 성실함이 몸과 마음으로 천의(天意)를 감동시키는 일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2019년 정초, 제주에 와서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란 것은 쉼 없는 정성스러운 마음이고, 청정심이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에 내가 스스로 묶여보는 것이다. 그런데 선뜻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내 자신에게 말해 버렸다. 그리고 무심하게 제주 생활의 바람 속에 또는 한라산을 넘어오는 빗소리에 또는 알 수 없는 큰키나무의 무성한 열대나무의 이야기 속을 거닐곤 했다.

어느 날 서귀포 길을 걷다 잘못 들어 토평동 골목길을 무심하게 거닐었다. 그 중간에 동백의 꽃들이 아무 이유 없이 길가에서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어쩌면 무심한 꽃이 그 빨간 동백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한 겨울의 시간들을 지내고 무욕의 마음처럼 붉은 가슴으로 떨어지는 그 꽃을 바라보는 게 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지낼 즈음 풍력발전기의 벅찬 팔랑개비를 따라 북제주 조천읍 어딘가를 혼자 차를 몰고 갔다. 거기에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었고 1948년 4.3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참 진지하게 해설을 해주신 이여숙 해설사님께 감사한다.

저녁이 되어 나올 때, 내게 동백꽃 배지를 하나 주었다. 제주사람들의 정열과 순수의 마음을 표현하며 붉은 단심으로 우리는 역사의 길목에서 살아온 세월이 벌써 70년이 흘렀다고 전했다.

오늘 서귀포문화원 4.3 특강에 자랑스럽게 그 배지를 한복 저고리 가슴에 달고 제일 앞자리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내가 그 상징의 배지가 동백의 혼이라도 위무하는 것처럼 느꼈을지 몰라도, 남다른 뜻이 있는 소중한 배지라는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정은광 교무의 동백꽃 그림.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아직도 그때의 서러움과 어이없이 당한 영혼들에게 진혼을 올리고 싶은 계절이 바로 동백이 뚝뚝 떨어지는 이 찬바람 부는 4월이다.

사람의 마음은 굳어질 때 단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이 무심한 듯해도 스스로 용서하고 해원을 할 때 정리되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그래서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이것저것 생각을 모두 접고 단순해지며 또 꽃처럼 붉은 정열을 한곳에 바친다. 그것이 바로 동백의 그 형상이라고 생각한다.

노자는 검박, 사랑, 겸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그 뜻이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란 뜻이다. 아마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자주 인용했던 구절로 알려졌다.

자애로움으로 용감할 수 있고, 검소 절약함으로 널리 베풀 수 있고,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음으로 만물에 으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백은 이 시대의 절개와 용감 그리고 검소함이 꽃으로 변해 이 사월에도 붉은 춤사위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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