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9

대만의 위안부 논쟁에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의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듯

Facebook

1tlaSponsoS7uhred
 
근현대 한국과 대만의 역사는 일본에 의한 피식민이라는 역사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위안부라고 하는 명백한 연결의 매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연유로 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자 동상이몽의 상태에 빠져있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대만에서는 이미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위안부 동상과 위안부 박물관이 세워진 바가 있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거나 배상과 청구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현안으로 다루어 지지는 못하였다.
대만의 위안부 논쟁에는 위안부 자체가 가진 피식민지 여성과 성노예의 비극에 집중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여성의 의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듯 하며 역사와 외교의 문제로는 전화되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일본에 친화적인 입장에 있는 민진당 정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위안부 문제에 한국과 같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점도 있다. 타이난 하야시 백화점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 역시 국민당 계열의 단체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세워졌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한 관건이다. 타이난이 민진당의 텃밭이라는 점도 고려해 본다면 국민당이 위안부 동상 건립을 추진한 것은 일종의 판 흔들기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이후 위안부 동상에 심기가 많이 불편해진 일본상공회의소의 임원이 이 동상에 발길질을 한 것이 포착되어 한 때 대만 언론에서 다루어 지기는 했으나 얼마 못가 기세가 사그라 든 사례가 있었다. 즉 대만의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를 내세운 민진당과 국민당의 신경전 혹은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를 내세운 공약과 이에 대한 메니페스토가 아래에서 인용한 대만 여성 정치인말고는 아직 제대로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것도 대만 위안부 문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만 대중들이 위안부를 보는 시각에 내-외성인 간의 반목과 분열이 깔려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보인다. 결론만 말하자면, 국민당 정권이 대만에 와서 자행한 백색테러와 권위주의 통치가 일본에 비해 하등 나을 바가 없는 작태였다고 하면서, 국민당 군대에 있던 군중낙원을 반공창의 사례로 들어 국민당 정권이 일본의 위안부가 진배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현재 대만에서 배타성을 가진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성향은 이 내외성인 간의 갈등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저에는 대륙에 대한 반감과 저항(anti-continental)의 의식형태가 존재한다.그리고 이러한 구도를 이론적인 완성은 일본인 학자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본인 학자의 논리에 따르면 식민시기 이후 대만의 사회문제는 식민의 폐해에 기인하지 않고 대만의 집단갈등에 나온 것이라는 모호한 근거와 이론적 합리를 부여 받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주장들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듯 하다. 예전 내가 아리산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답사를 갔을 때, 현지 원주민 마을 대표는 일본인들과 대만 원주민들은 식민시기 초반부터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국민당 정권으로 부터 수혜를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던 중 문득 이 대표가 사는 집의 천정에 달린 무선 통신설비와 설치연도를 보니 국민당 정권 시기에 설치된 것이다. 역시 본인과 마을의 이익을 위해 현 정권에 영합하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 또 다른 답사에서 들은 2.28 사건의 생존자의 증언 등을 참고해본다면 이러한 기억들은 분명 특정 주체에 대한 지향성이 존재한다.
즉 국민당 정권이 대만에 와서 한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국민당을 대륙 출신의 외래 정권으로 보는 인식의 기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위안부 자체에 대한 사실보다는 현 대만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륙에 대한 반감이 기저에 깔려 있으며, 일본을 자신들의 파트너로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 민진당 정권이 반중국의 대항 구도를 형성하고 이를 보완, 보충하기 위한 동아시아에서의 파트너로 일본을 낙점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과의 경제, 사회적 관계를 강화시켜나가려고 하는 판국에 이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식민시기의 수해와 배상 문제는 다시 언급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
여러 시도들이 있지만 국민당과 그 지지자들이 열세에 빠져있는 대만의 현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대한 청구와 배상을 목적으로 한 정치-역사 문제로 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반면 여성학과 여성주의의 접근방식으로만 위안부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이 대만 위안부 논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6ta mSnApSsuogelunssrsaStmu oagtm 2rred3:5gsd0
 
8月14日是 #國際慰安婦紀念日,我到
阿嬤家- 和平與女性人權館
與婦女團體一起記得阿嬤們的遭遇。
阿嬤們是一群在第二次世界大戰中,被迫淪為性奴隸和承受虐待的女性受害者。
28年前,
婦女救援基金會
開始了這場為所有阿嬤以及台灣當時受害婦女的平反及照護之路,從一開始阿嬤們完全無法發聲、難以說出自己所受到的傷害,到現在包括阿嬤們的後代也一起參與投入相關的平反工作。
這一路以來,我們見證台灣民間的力量,就像鑽木頭一樣愈鑽愈深,雖然我們不知道還剩多少就能鑽透了,但是改變已確實到來。
我還是學生時,教科書沒有包括這段歷史,現在教科書內容可以看到阿嬤們的歷史。學生們開始有些認識,雖然還不一定能真正理解。
最近這幾年,我每一年8月14日都會參加婦援會的活動,可以深刻的感受到這股力量,真的讓整個台灣與世界愈來愈願意,也愈來愈能正視 #戰爭中女性受到的宰制與傷害
「慰安婦」這個詞沒有受害者的主體性,它沒有辦法讓人感覺到阿嬤受到的傷害嚴重性。我支持婦媛會的正名訴求, #軍事性奴隸,才能讓我們真的感受到阿嬤們的苦難與傷痛。
民主與人權社會反對奴隸制度,當然更反對軍事武力下的性奴隸。
時代變革,奴隸可以大聲要求返還原本就應擁有的自由;但當性暴力倖存者說出她們的遭遇及盼望時,卻會面臨社會上再一次的歧視,以及再一次的汙名化。
所以一個車禍或天災的倖存者可以獲得社會的同情與賠償;但軍事性奴隸倖存者卻只能多年噤聲。
1996年聯合國經濟及社會理事會的人權委員會報告明確指出:「慰安婦」一詞根本沒有反映出那些在戰爭期間被迫淪為性奴隸和承受虐待的女性受害者承受的苦難,因此他們堅信 #軍事性奴隸 一詞是更確切和恰當的用語。
我非常認同也支持。
目前108課綱中已經有慰安婦的歷史,接下來我將推動在課綱中補充正名 #軍事性奴隸。讓未來台灣的新世代,不分性別,都能夠知道這群女性受害者真正的痛苦;在認識後也才能夠去反思戰爭及性暴力對女性帶來的傷害。
我照片中所在的 #阿嬤家─和平與女性人權館,是 #台灣第一座慰安婦實體博物館,即將於 #今年11月10日閉館。誠摯邀請大家把握最後機會前往參觀,見證勇敢發聲阿嬤們的身影和故事。
⌂開館時間⌂
週三至週日10:00-17:00 (每週一、二休館)
團體預約導覽、場地租借請洽02-2553-7133
See translation

8 월 14 일은 # 국제 위안부 기념일인데, 할머니의 가정 평화와 여성 인권 박물관에 가서 할머니와 여성 단체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했다. 할머니들은 2 차 세계 대전 중 성 노예가되어 학대를 견뎌낸 여성 피해자 집단입니다. 28 년 전, 여성 구조 재단은 당시 대만의 모든 할머니와 여성 피해자들을 재활하고 돌보는이 길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할머니들은 완전히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들이 겪은 피해를 거의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후손들도 관련 재활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 正视 史 及 伤痛 # 할머니에게 진정한 품위를 부여하고 재활을 받아야합니다. 여행 이후 우리는 드릴에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대만 사람들의 힘을 목격했습니다. , 그러나 실제로 변화가 왔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교과서에는이 역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제 교과서의 내용으로 할머니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8 월 14 일 여성 구호 협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이 힘을 깊이 느낄 수있어 대만과 세계가 점점 더 # 전쟁에 맞설 수있게되었습니다. 중국 여성들이 겪는 지배와 피해. 

# 伤 要 正名 #이 부상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위안부라는 용어는 피해자의 주관성이없고 할머니가 겪는 부상의 심각성을 사람들이 느끼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고통과 고통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여성 사회의 시정 요구 # 군성 노예를지지합니다. 민주 · 인권 사회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물론 군사력 하에서 성 노예 제도를 반대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노예들은 자신이 가져야 할 자유를 큰 소리로 요구할 수 있지만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희망을 말할 때 그들은 다시 사회에서 차별과 낙인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통 사고 나 자연 재해의 생존자는 사회로부터 공감과 보상을받을 수 있지만, 군 성 노예 생존자는 수년 동안 만 침묵 할 수있다. 1996 년 유엔 경제 사회 이사회의 인권위원회 보고서는 '위안부'라는 용어가 전쟁 중 성 노예가되어 학대를 당했던 여성 피해자들의 고통을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군사 성 노예라는 용어는 더 정확하고 적절한 용어입니다. 나는 매우 동의하고지지합니다. 현재 108 개 강의에 위안부 역사가 있는데 다음으로 강의 요강에 #Military Sex Slave라는 이름을 추가하도록 추진하겠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미래의 대만의 새로운 세대가이 여성 피해자 집단의 진정한 고통을 알게하십시오. 그들이 알게 된 후에야 만 전쟁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반성 할 수 있습니다. 제 사진에있는 # 阿嬷 家 ─ 평화와 여성 인권 박물관은 올해 11 월 10 일에 문을 닫는 대만 최초의 위안부 박물관입니다. 용감한 할머니의 모습과 이야기를 직접 만나볼 수있는 마지막 기회를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You, 李昇燁 and 5 others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