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3

후카이 토모아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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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이 토모아키 선생님의 책 『사상으로서의 편집자』가 출판되어 서점가에 나온 모양이다. 이 험한 시대에 이 책을 옮기는 사명을 맡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러웠다. (서궁동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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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
고교 시절,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양현석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동물원이나 해바라기의 포크 음악에 심취해 있던 나는 그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새로운 음악 문화에 환호하는 친구들과 대중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었다. 하지만 양현석 닮았다는 소리가 수없이 반복되자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고, 은퇴 후 그의 활동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후 대학 진학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나는 청와대 바로 옆의 아담한 교회에서 신학생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나는 그곳에서 유명 연예인과 처음으로 직접 인사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 교회에서 성장한 이수만 권사였다. 그런데 그분도 모 회사를 창업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교회에서 뵙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듬해 그는 HOT와 함께 대중 앞에 새로이 등장했다.

양현석과 이수만, 두 사람은 현재 한국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대표 기획사의 CEO가 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비틀즈의 산파역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이야기를 옮긴 이후부터는 내내 이 두 사람을 떠올렸다. 엡스타인처럼 양현석도 서태지 뒤에서 춤을 추며 화음을 맞추던 2인자였다. 이수만도 대중에게서 잊혀가던 철 지난 가수였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 모습은 20년 전과 전혀 달라졌다. 세븐, 빅뱅, 싸이, 악동뮤지션 뒤에는 양현석이 있고, 신화,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엑소의 뒤에는 이수만이 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중문화사는 가수나 배우의 화려한 이름들로만 채워져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의 대중은, 스타를 발굴한 기획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뒷이야기들은 이제 한국 대중문화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로 인식되고 있다.

대중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상’의 영역에도 문화예술의 배후 기획자 같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가수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지만, 사상가는 자신의 ‘사상’을 주로 책에 담아냈다. 강의나 강연 같은 실제 무대 공간에서 전파되는 ‘사상’의 알맹이도 결국 책에 담긴 것들을 음성화한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사상의 역사’, 즉 ‘사상사’에서 양현석과 이수만 같은 존재는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 즉 ‘편집자’가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상사 연구자들은 유명한 스타 사상가들의 삶과 행적, 그들의 문헌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고찰했지만, 그들이 스타가 되기까지 뒤에서 헌신한 편집자들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후카이 토모아키 선생님은 그러한 ‘사상사 연구’의 행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사상가로서 존재한 ‘편집자’의 활동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저자(사상가)‑독자(대중)’의 직접적 관계가 주를 이루었지만, 근대 이후 ‘저자‑편집자‑독자’라는 새로운 관계 구도가 설정되었음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지성의 프로모터로서 편집자의 존재 의미를 근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13년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정 선생님과 이 책의 번역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선생님은 편집자란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저자(Der Unsichtbare Zweite = The invisible Second)’라고 표현하였다. 그 출처를 물었더니 독일의 출판학(Buchwissenschaft) 연구자 우테 슈나이더(Ute Schneider)가 쓴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저자: 문학 출판사에서 편집자라는 직업의 역사』(2005)라는 책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편집자의 실존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치열함과 고충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갈 수밖에 없는 일이 가장 많은 직업군 중 하나가 편집자인 것 같아요.」
저자의 뒤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편집자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울러 이 선생님은 프랑수아 발(François Wahl)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라캉, 데리다, 바르트 등을 발굴해 스타 사상가로 키워낸 프랑스의 명문 출판사 쇠이유(Seuil)의 편집자 프랑수아 발, 그도 만년에 인생을 회고하며 ‘편집자’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신념과 저자의 신념이 만나는 지점에서 책이 탄생하는 겁니다.……저는 편집자가 마치 철학자처럼 원칙과 신념을 갖고 움직이기를 바랐습니다. 편집자도 일종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그러나 결코 자신의 이름을 책에 올릴 수 없는 ‘숨어 있는’ 저자, 또는 ‘슬픈’ 저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선호했습니다.……골드만의 책 이름을 빌려 ‘숨은 신’이라고 한다면 편집자로서 지나친 오만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편집자는 우선적으로 여성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는 세상에 무언가를 낳기 위해 산고를 치릅니다. 우리는 흔히 작가의 고통, 창작자의 산고만을 머리에 떠올리곤 하는데 오히려 편집자와의 관계에서 본다면 작가는 남성적인 존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씨를 뿌리고 편집자가 이를 거두어 자신의 품에서 작품을 산출하는 것이지요. 작가의 ‘남성성’은 편집자의 이러한 ‘여성성’ 덕분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라캉, 데리다, 바르트의 편집자 프랑수아 발과의 만남, 지식인이여, 편집자가 되라」, ≪세계의 문학≫ (민음사, 2003년 봄))
‘작가’는 사상의 씨를 뿌리지만 홀로 존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골방의 유리병에 갇힌 사상의 씨앗이라면, 해와 흙과 비와 바람을 만날 수 없으며, 당연히 뿌리와 줄기도 뻗을 수 없겠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편집자와의 관계성 아래서 비로소 사상을 꽃피워 낼 수 있다. 프랑수아 발의 말처럼 ‘작가의 남성성과 편집자의 여성성의 만남’은 서로 다름의 화해 프로세스가 아닐까?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러한 화해의 과정을 결여한 작가에게서 진정성 있는 ‘사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된다. 즉 ‘편집자 없는 사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후카이 토모아키 선생님도 이 책에서 ‘저자‑독자’의 관계가 근대에 이르러 ‘저자‑편집자‑독자’로 변화하여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발달한 현재의 출판 환경에서는 결국 ‘대중’마저도 직접 편집자의 기능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편집자’가 그 확고한 입지를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편집자들은 대중의 기호와 성향에 눈치를 보게 되며, 그 결과 대중이라는 편집자가 설정한 방향대로만 책이 산출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중 스스로가 사상의 씨앗을 뿌리는 작가가 되어 e-book을 통해 책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는 ‘편집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는 ‘누가 편집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이 더욱 긴급하게 요구된다고 보았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편집자는 단연 에른스트 로볼트(Ernst Rowohlt)였다. 그가 바라본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상황은 마치 2013년의 고국 풍경인 것만 같아 가슴을 치며 한글로 옮겼다.
「그(로볼트)는 바이마르 시대의 자유가 지나치게 방임되었던 것,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현상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나친 자유는 대중에게 오히려 불안과 불투명성을 느끼게 하여 사회를 급속히 보수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빌헬름 제정기라는 옛 시대가 그저 좋은 시대인 것만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대중은 바이마르의 급진적인 자유를 목도하면서 겨우 수년 전에 존재했던 옛 시대가 마치 ‘좋은 시대’였던 양 ‘이상화된 추억’을 떠올리며 비교하였다. 그럴 때 마침 경제적으로도 꽉 막혀 있었고 소수 정당들의 난립으로 분쟁의 흙탕물로 변해버린 막막한 정치판을 바라보아야 했으며, 과격한 문화적 표현들만 난무하는 듯한 바이마르 정부보다 오히려 한때 기세를 떨쳤던 빌헬름 제정기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그 시절을 그리움 가득히 회상하게 된 것이다. 로볼트는 이러한 대중들이 지닌 정치의식의 치졸함과 변덕스러움을 통감하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이 지나고, 다시 내일이 오면 정치적 입장을 한 순간에 뒤집어버리는 대중들을 앞에 두고 그는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언론의 광장을 제시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본서, 175~176쪽)
후카이 선생님은 이 시대에 ‘사상’을 조타하는 새로운 ‘편집자로서의 대중’이 전면에 나서고 있음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급기야 대중은 사상의 씨앗을 뿌리는 저자의 영역까지도 잠식해가고 있다. 매체의 발달과 함께 대중이 사상을 주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후카이 선생님은 로볼트가 직시하고 있던 나치스 시대 직전 독일 대중의 어리석음을 우리가 준엄한 경고(반면교사)로 삼아주길 촉구하고 있다. 1934년 레비나스는 자신의 논문 서두에서 “히틀러의 철학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 유치함이 지금 독일 영혼에 비밀스러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적었다. 그릇된 향수에 취한 대중은 언제든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우왕좌왕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80년 전 독일이 그랬고,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그런 상태이다.

근대 이후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를 역동적으로 연결시켰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같이 ‘사상’ 그 자체로서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중이 그 영역을 잠식하여 앞으로 어떤 생물로 변해갈지 그 예단이 힘들다. ‘두 번째 저자’(슈나이더)나 ‘숨어 있는 저자’(발)와 같은 표현은 ‘편집자’가 결코 주변적이고 보조적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공공사회의 사상적 조류를 조타하던 ‘공공의 예언자’로서의 편집자를 강조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수의 대중이 ‘편집자’의 기능을 잠식해오는 이 시대에 기존 ‘편집자’들의 사명은 더욱 커져버렸다. 과거에는 편집자가 행하는 사상의 조타 활동에 대중이 많은 경우 이끌려 왔지만, 이제는 대중이라는 이름의 편집자가 몰고 오는 거대한 사상의 파고와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 파도의 방향이 공공의 순행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역행할 수도 있다. 그럴 때, ‘편집자’는 비로소 ‘공적인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을 일깨워 그들을 한 덩어리의 대중으로 뭉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사상’을 오롯이 담아내는 ‘기록’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던 한 전직 대통령의 유훈이다. 하지만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통한 괴벨스 시대로의 회귀를 획책하는 자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으며, 한국의 대중은 빌헬름 제정기를 그리워하던 나치스 직전의 독일 대중과 닮아 있다. 저자들은 자신의 사상을 열심히 씨 뿌려보지만 여전히 힘에 부친다. 인터넷과 SNS 매체가 대중에게 주어졌어도 여전히 대중이란 이름의 편집자에게는 편집 능력이 충분히 배양돼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으로서의 편집자’가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절실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편집자’는 거대한 ‘사상의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찾아나가는 항해사이다. 정치인, 기업가, 성직자 들은 사상을 구현하는 바다 위의 선장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들 각 배의 선장들이 조타의 의무를 등한시하고, 승객들을 권력 유지와 이윤 창출의 도구로 수단화하며, 위기 발생 시 그들을 사지에 방치해둔다면, 항해사는 선장의 오판을 바로잡아야 한다. 급류나 암초, 빙산 같은 위험한 사상의 바다가 눈앞에 확인되면 뱃길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항해사는 선장뿐 아니라 승객들도 일깨워야 한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은 선장과 항해사 모두가 승객을 버렸기에 일어난 참극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출판언론인, 즉 편집자들 가운데엔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함께 도망친 세월호의 항해사 같은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정치권력과 자본가, 성직자 들이 그릇된 사상으로 역사를 왜곡시켜갈 때 ‘편집자’가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 그때 대중은 비로소 거대한 사상의 바다 한가운데서 안전한 항행을 이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항해사로서의 편집자’는 사상의 바다를 온몸으로 파악하고 체득한 ‘사상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침몰할 것만 같아 위태로운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 때마침 이 책이 소개되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이유이다.
이 책은 교토대학의 아시나 사다미치(芦名定道) 선생님께서 처음 소개해주셨다. 마침 대한기독교서회의 ≪기독교사상≫이 창간 55주년을 맞아 기념 연재를 기획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서진한 사장님과 홍승표 편집장님이 지면을 허락해주셔서 번역 기회를 얻었다. 총 20회에 걸쳐 연재된 이 책의 내용은 한국의 목회자와 신학자, 신자 들에게까지 폭넓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기독교 사상은 물론, 독일의 출판과 정치, 문화, 예술의 주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종교와 무관하게 일반 독자들에게도 소개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마침 도서출판 ‘한울’의 박행웅 고문께서 연락을 주셨고, 이렇게 단행본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책을 알아봐 주신 도서출판 한울의 사장님과 헌신적으로 책을 만들어주신 편집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바쁜 학위 일정 속에서도 번역본을 읽어주며 교정에 힘써준 김진혁 박사(영국 옥스퍼드대학)와 안성헌 목사(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그리고 독일어 해독을 감수해주신 하시모토 유키(橋本祐樹) 목사(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와 서평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낙운해 교수님, 번역 시작 단계부터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신쿄출판사(新敎出版社)의 고바야시 노조무(小林望) 사장님, 후카야 유키(深谷有基) 편집장님, 어려운 일본어 표현에 막힐 때마다 고민을 해결해준 아내 가미야마 미나코(神山美奈子) 목사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사람을 신뢰하여 기탄없이 번역을 맡겨주신 후카이 토모아키 선생님께도 재차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부디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독자 스스로가 올바른 사상의 조타수, 즉 ‘사상으로서의 편집자’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을 자극하는 청량제가 되길 바란다. 그 바람이 이뤄진다면 지난한 번역 작업의 피로감도 모두 사라질 것 같다.
2014년 6월 10일
일본 니시노미야(西宮) 갑산(甲山) 아래에서
홍이표
역자 후기에 참고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 Ute Schneider, Der unsichtbare Zweite. Die Berufsgeschichte des Lektors im literarischen Verlag, (Wallstein Verlag, 2005); Emmanuel Lévinas, “Quelques réflexions sur la philosophie de l’hitlérisme”, in Esprit (1934), (repris dans Rivages poche/Petite bibliothèque: 1997), p.7. (안성헌 제공) ; ≪세계의 문학≫, 제107호(2003년 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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