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셔먼호가 영국이랑 뭔 상관인데? 그거 미국 배 아니야?
by이동해Nov 06. 2022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사실, 영국의 무역회사가 조선을 상대로 무기를 밀매하려다 발생한 일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죠.
조선은 쇄국을 내세우며 거부했습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제지를 무시했어요. 끝내 충돌이 일어나 배는 불타고, 탑승 인원은 모두 사망했죠.
보통 1871년에 발생한 신미양요의 배경으로 설명됩니다. 미국인의 사망과 배 침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거였죠.
하지만 연구자 한승훈(건국대 글로컬캠퍼스 교양대학 조교수)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두고 놀라운 얘길 합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사실 영국의 무역회사가 조선을 상대로 무기를 밀매하려다 발생한 일이라는 겁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 배인데, 그것 때문에 신미양요까지 일어났는데, 영국 회사는 대체 어떻게 끼어든 것이며, 무기 밀매는 또 무슨 소리일까요?
2022년 9월, 학술지 《한국사연구》 198호에 게재된 한승훈의 논문〈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영국〉을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소유주는 미국인, 사용자는 영국 회사?
무역회사가 꼭 배를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돈 주고 상품을 실어 날라줄 배를 구하는 경우도 많죠.
배를 소유하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제너럴 셔먼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의 주인은 미국인 프레스턴(W. B. Preston)이었습니다.
프레스턴은 자기의 배를 사용하겠다는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었어요. 바로 영국 국적의 회사 메도우즈 상사(Meadows & Co.)였죠.
메도우즈 상사는 배에 화물을 싣고, 그걸 관리할 사람으로 영국인 호가스(G. Hogarth)를 함께 태웠습니다.
배에는 또 다른 영국인, 통역 담당 토마스(R. Thomas)도 있었어요.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선교사였죠. 배의 주인은 미국인이긴 하나, 그 배를 사용하는 건 영국 회사였던 겁니다.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는 톈진을 떠나, 옌타이를 거쳐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9월 2일, 제너럴 셔먼호와 탑승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무기 밀매한 걸 어떻게 알아?
메도우즈 상사가 판매한다고 신고한 물품은 의류, 유리, 양철이었습니다. 무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죠. 그렇다면 뭘 근거로 무기 밀매가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867년 5월 10일에 있었던 한 회합 기록을 보겠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양 열강에게 큰 이슈였어요.
다들 조선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던 중 벌어진 일이기에, 사건의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을 논의할 필요가 있었죠.
이 자리엔 미국 국무장관 수워드(W. H. Seward)와 주미 영국 공사, 프로이센 공사, 프랑스 공사가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수워드는 제너럴 셔먼호가 “군수물자를 싣고 굉장히 의심스러운 성격의 원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배에 군수 물자가 실려 있었다고 콕 집어 말한 겁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니 만큼, 각 정부 부처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충분히 들었겠죠.
조선이 남긴 기록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1866년 8월 22일 황해 감사 박승휘는 제너럴 셔먼호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보면, 배에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의 조총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배의 탑승인원이 30명이 안 되었는데, 딱 보기에도 너무 많은 무기가 있었던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무기의 판매는 예민한 문제입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이때도 무기 판매는 나라 간 조약으로 까다롭게 규정해두었습니다.
메도우즈 상사는 당연히 무기를 몰래 판매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들은 지역 최고위 책임자인 평안 감사 박규수를 만나려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무기 판매를 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고급 관리와 접촉하려든 거죠.
근데 왜 조선에 무기를 팔려고 한 건데?
그런데 그 많은 무기를 왜 하필이면 조선에 팔려고 했던 걸까요? 1866년의 조선과 그 주변의 정세를 살펴봐야 합니다.
1866년은 2월, 조선에서는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병인박해라고도 하죠. 이때 여러 프랑스인 신부가 죽습니다.
살아남은 한 신부는 7월 조선을 탈출해 톈진으로 넘어갔어요. 그곳에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실제로 프랑스 함대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곧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조선에도 들려왔죠.
제너럴 셔먼호가 톈진항을 떠나 조선으로 향한 시점을 떠올려볼까요. 1866년 8월 9일입니다.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할 거라는 얘기가 한창 떠돌던 때였죠.
아마도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상업적 기회로 본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상황에서, 조선이 분명 방어에 힘쓸 것이고, 무기에 대한 강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겁니다.
1866년 10월, 주청 프로이센 공사가 상부에 올린 정세 보고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조선은 정규군을 거의 갖추지 못했고 무기도 부족하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이 무기를 판매하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는 그런 시도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즉,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한다는 소문은 동아시아에 있던 여러 유럽 상인들 사이에 기회로 다가왔던 거죠.
그런데 이건 정말 도박이었습니다. 조선이 엄격한 쇄국을 꾀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개별 상인이 무기를 판매한다? 만약 조선이 쇄국이란 원칙을 깨야할 정도로 절박했다면 불가능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에서 보듯 조선은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습니다. 물품과 배, 심지어는 사람까지 모두 잃고 말았죠.
그럼 메도우즈 상사는 왜 이런 도박을 감행했을까요? 1868년 메도우즈 상사는 파산 심의를 받습니다.
여기서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1865년부터 면화, 석탄 투자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며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이 손해를 메꿀 기회가 필요했던 거죠. 제너럴 셔먼호를 이용한 무기 판매는 그 실현이었고요.
결국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크게 한 탕 하려는 영국 무역회사가 주도해 발생했던 일인 겁니다.
이 일로 화물 관리인 호가스와 통역 담당 토마스, 두 명의 영국인이 죽었습니다. 또한 영국 국적의 상사가 재산상 커다란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불법 무기 밀매 사건을 키워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건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본 거죠.
제너럴 셔먼호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으신가요? 이걸 찾아낸 한승훈 선생님도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논문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영국〉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저는 더 따끈한 최신 논문과 함께 돌아올게요.
*귀중한 연구 해주신 한승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역사학계에선 매년 수천 편의 논문이 생산됩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귀중한 연구지만, 읽히는 일은 매우 드물죠. 어려우니까요.
논문들은 계속 새로운 얘길 하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논문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재밌고, 상식을 깨고, 의의가 깊은 근현대 관련 최신 논문을 찾아 쉽게 풀어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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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해방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노선과 통일운동(1945.11~1946.1)>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동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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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사실, 영국의 무역회사가 조선을 상대로 무기를 밀매하려다 발생한 일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죠.
조선은 쇄국을 내세우며 거부했습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제지를 무시했어요. 끝내 충돌이 일어나 배는 불타고, 탑승 인원은 모두 사망했죠.
보통 1871년에 발생한 신미양요의 배경으로 설명됩니다. 미국인의 사망과 배 침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거였죠.
하지만 연구자 한승훈(건국대 글로컬캠퍼스 교양대학 조교수)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두고 놀라운 얘길 합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사실 영국의 무역회사가 조선을 상대로 무기를 밀매하려다 발생한 일이라는 겁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 배인데, 그것 때문에 신미양요까지 일어났는데, 영국 회사는 대체 어떻게 끼어든 것이며, 무기 밀매는 또 무슨 소리일까요?
2022년 9월, 학술지 《한국사연구》 198호에 게재된 한승훈의 논문〈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영국〉을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소유주는 미국인, 사용자는 영국 회사?
무역회사가 꼭 배를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돈 주고 상품을 실어 날라줄 배를 구하는 경우도 많죠.
배를 소유하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제너럴 셔먼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의 주인은 미국인 프레스턴(W. B. Preston)이었습니다.
프레스턴은 자기의 배를 사용하겠다는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었어요. 바로 영국 국적의 회사 메도우즈 상사(Meadows & Co.)였죠.
메도우즈 상사는 배에 화물을 싣고, 그걸 관리할 사람으로 영국인 호가스(G. Hogarth)를 함께 태웠습니다.
배에는 또 다른 영국인, 통역 담당 토마스(R. Thomas)도 있었어요.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선교사였죠. 배의 주인은 미국인이긴 하나, 그 배를 사용하는 건 영국 회사였던 겁니다.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는 톈진을 떠나, 옌타이를 거쳐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9월 2일, 제너럴 셔먼호와 탑승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무기 밀매한 걸 어떻게 알아?
메도우즈 상사가 판매한다고 신고한 물품은 의류, 유리, 양철이었습니다. 무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죠. 그렇다면 뭘 근거로 무기 밀매가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867년 5월 10일에 있었던 한 회합 기록을 보겠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양 열강에게 큰 이슈였어요.
다들 조선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던 중 벌어진 일이기에, 사건의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을 논의할 필요가 있었죠.
이 자리엔 미국 국무장관 수워드(W. H. Seward)와 주미 영국 공사, 프로이센 공사, 프랑스 공사가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수워드는 제너럴 셔먼호가 “군수물자를 싣고 굉장히 의심스러운 성격의 원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배에 군수 물자가 실려 있었다고 콕 집어 말한 겁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니 만큼, 각 정부 부처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충분히 들었겠죠.
조선이 남긴 기록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1866년 8월 22일 황해 감사 박승휘는 제너럴 셔먼호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보면, 배에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의 조총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배의 탑승인원이 30명이 안 되었는데, 딱 보기에도 너무 많은 무기가 있었던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무기의 판매는 예민한 문제입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이때도 무기 판매는 나라 간 조약으로 까다롭게 규정해두었습니다.
메도우즈 상사는 당연히 무기를 몰래 판매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들은 지역 최고위 책임자인 평안 감사 박규수를 만나려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무기 판매를 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고급 관리와 접촉하려든 거죠.
근데 왜 조선에 무기를 팔려고 한 건데?
그런데 그 많은 무기를 왜 하필이면 조선에 팔려고 했던 걸까요? 1866년의 조선과 그 주변의 정세를 살펴봐야 합니다.
1866년은 2월, 조선에서는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병인박해라고도 하죠. 이때 여러 프랑스인 신부가 죽습니다.
살아남은 한 신부는 7월 조선을 탈출해 톈진으로 넘어갔어요. 그곳에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실제로 프랑스 함대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곧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조선에도 들려왔죠.
제너럴 셔먼호가 톈진항을 떠나 조선으로 향한 시점을 떠올려볼까요. 1866년 8월 9일입니다.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할 거라는 얘기가 한창 떠돌던 때였죠.
아마도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상업적 기회로 본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상황에서, 조선이 분명 방어에 힘쓸 것이고, 무기에 대한 강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겁니다.
1866년 10월, 주청 프로이센 공사가 상부에 올린 정세 보고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조선은 정규군을 거의 갖추지 못했고 무기도 부족하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이 무기를 판매하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는 그런 시도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즉,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한다는 소문은 동아시아에 있던 여러 유럽 상인들 사이에 기회로 다가왔던 거죠.
그런데 이건 정말 도박이었습니다. 조선이 엄격한 쇄국을 꾀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개별 상인이 무기를 판매한다? 만약 조선이 쇄국이란 원칙을 깨야할 정도로 절박했다면 불가능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에서 보듯 조선은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습니다. 물품과 배, 심지어는 사람까지 모두 잃고 말았죠.
그럼 메도우즈 상사는 왜 이런 도박을 감행했을까요? 1868년 메도우즈 상사는 파산 심의를 받습니다.
여기서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1865년부터 면화, 석탄 투자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며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이 손해를 메꿀 기회가 필요했던 거죠. 제너럴 셔먼호를 이용한 무기 판매는 그 실현이었고요.
결국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크게 한 탕 하려는 영국 무역회사가 주도해 발생했던 일인 겁니다.
이 일로 화물 관리인 호가스와 통역 담당 토마스, 두 명의 영국인이 죽었습니다. 또한 영국 국적의 상사가 재산상 커다란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불법 무기 밀매 사건을 키워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건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본 거죠.
제너럴 셔먼호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으신가요? 이걸 찾아낸 한승훈 선생님도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논문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영국〉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저는 더 따끈한 최신 논문과 함께 돌아올게요.
*귀중한 연구 해주신 한승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역사학계에선 매년 수천 편의 논문이 생산됩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귀중한 연구지만, 읽히는 일은 매우 드물죠. 어려우니까요.
논문들은 계속 새로운 얘길 하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논문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재밌고, 상식을 깨고, 의의가 깊은 근현대 관련 최신 논문을 찾아 쉽게 풀어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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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해방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노선과 통일운동(1945.11~1946.1)>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동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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