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1

04 조동일 -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

04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pdf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 1)

국제 • 지역연구 10권2호 2001 여름 PP. 81-102
조동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음 동아시아 소설 세 편은 가부장의 종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었다. (A) 일본 시마사키도손(島崎藤卞寸)의『이에(家)』(1912)
(B) 중국 바진(巴金)의『지아(家)』(1931) (C) 한국 염상섭의『삼대(三代)』(1931) 이들 소설은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역사적인 전환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양상은 나라에 따라서, 작가의 사 고방식에 따라서 달랐다. 비교연구를 통해 그 양면을 해명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동아시아 특유의 현상인지 보편적인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 비교의 범위를 넓혀 가부장의 죽음의 주제를 함께 다룬 서양소설도 함께 다루었다.
(D) 프랑스 로제 마르탱 뒤 가르(Martin du Garcl)의『티보가의 사람들
(Les Thibault)』(1922-1936) 네 작품은 가부장의 죽음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권위주의 가치관 에서 민주적 가치관으로 전환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므로 멈추지도 지연시킬 수도 없다고 하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면서 가부장의 구체적인 성 격은 서로 달랐다. (A)농민의 지도자, (B)과거를 보아 특권을 얻은 '신사(糸申 삐,' (C)금전으로 양반의 지위를 얻은 사람, (D)부유한 시민이 각기 그 사회 의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라고 했다.
가부장의 뒤를 잇는 후계자에는 순종형과 항거형이 있다. 가부장의 죽음 을 순종형은 아쉬워하고, 항거형은 환영했다. (A)의 후계자는 순종형이다. (B)의 후계자는 항거형이다. (C)와 (D)에는 순종형 후계자와 항거형 후계자 가 둘 다 있다.
(A)의 순종형 후계자는 서양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라져가는 일본 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B)의 항거형 후계자는 가부장의 전제에서 벗어 나기 위해 서양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C)에서는 다양한 후계자들이 빚 어내는 서양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보수주의 사이의 복잡한 갈등을 그렸다. (D)는 순종형 후계자의 우파 노선과 항거형 후계자의 좌파 노선 사이의 대 립을 보여주었다.

I . 서 론

중세사회는 가부장이 지배했다. 가족의 서열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2000년 국제지역연구 지원사업 연구비에 의하여 지원되었음.
 
남성 연장자가 재산권과 도덕적 권위를 함께 가지고 가족을 다스렸다. 가부장과 다른 가족의 관계는 기본양상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와 같으면서, 존중의 순위가 앞선다고 했다. 충효C볎孝)를 함께 소중하게 여기면서, 충보다 효를 앞세워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한 것이 그런 뜻이었다.
중세사회가 근대사회로 바뀌면서 가부장이 권위를 잃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 의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아버지와 아들, 남성과 여성, 연장자와 연소자 사 이의 차등을 전제로 한 질서를 거부하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주장이 대 두해 인간관계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변화가 아직 진행중에 있으며, 많은 논란과 진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학문에서 전담해서 다를 수 없고, 다각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사회학이나 역사학에서 그 나름대로 소중한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문학연구가 깊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 문학작품, 특히 소설은 변화의 양상을 아 주 잘 나타내고 있어, 자세하게 살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소설의 사회사 에 대한 깊은 이해는 시대변화를 총괄해서 파악하는 최상의 방안일 수 있다.
여기서 고찰하고자 하는 자료는 가부장의 종말을 다룬 동아시아소설이다. 중 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끝나고 근대가 시작된 시기인 20세기초에 일본 • 중국 • 한국에서 모두 가부장의 죽음을 그리면서 한 시대가 끝나는 양상을 문제삼는 소 설을 내놓았다. 일본에서는 시마사키도손의『이에(家)』(1912)가, 중국에서는 바 진의『지아(家)』(1931)가, 한국에서는 염상섭의『삼대』(1931)가 그런 주제를 다루었다 이들 작품은 프랑스소설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과 흡 사해 비교고찰의 범위를 거기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네 작품은 각기 자기 나라 현실을 반영했다. 가부장이 누구이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네 작품은 한 가족 내에 서 일어난 일을 사회 전반의 동향과 관련시켜 다루면서, 가부장의 종말이 지니 는 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한다. 네 작품은 신구 세대의 교체를 평가하는 기본관 점이 서로 일치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려고 하는 구세대에 대한 신세대 의 반론을 심각하게 문제삼았다.
이 네 작품을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해 고찰하면, 사회변화에 관한 새로운 이 해에 기여하는 소중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아직 없었다. 네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나, 비교연구는 프랑스의 것을 중국 것이나 한국 것과 들씩 짝을 지어 견주어 살피는 데 그쳤 다고) 동아시아 작품들 상호간의 비교연구는 아직 없었다. 여기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을 마련한다.
 
1) 마르k행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를 Yi-Ling Ru(1992)에서는 바진((巴金)의 『지아』와 Park In-Jea(1995)에서는 염상섭의『삼대』와 비교해 고찰했다.
Ⅱ. 시口卜사키도손의『이에(家)』
시마사키도손의『이에』는 세 집안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2) 고이즈미 (/]\泉)가(家), 하시모토(橋本)가, 나구라(名倉)가는 인척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생 활방식과 기풍이 달라 서로 대조가 되었다. 원래 같은 처지였는데, 시대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운명이 달라졌다.
세 집안 모두 신분은 농민이다. 도시민인 귀족이나 시민이 아니고 대대로 농 촌에 거주해온 농민이며, 서로 혼인을 한 것을 보면 지체가 같다. 그러면서 농민 가운데 상층농민이다. 땅을 많이 가져 지주 노릇을 하면서 돈벌이도 해서 생활 이 넉넉한 편이다. 어느 정도 학식이 있으며, 마을의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촌장 의 지위를 세습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이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겪 은 바를 작품화했다. 그래서 고향과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가라고 일컬어 진다(노영희, 1990: 13, 14).
작품에서 특히 고이즈미가와 하시모토가는 '구가(舊家)'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했다. 여러 대에 걸쳐서 농촌의 지배자 노릇을 한 상층농민 '본백성(本百姓)', 그 가운데서 마을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 '장옥(庄屋)'집안이다.3) 그 점을 자랑스 럽게 여기고 오랜 전통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다가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몰 락하거나 위축되었다. 그러면서 그 양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가문을 서로 대조가 되게 설정했다. 나구라가는 새 시대에 맞게 변신해서 번 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구가'의 과거를 청산했다. 세 가문의 상관관계에다 시대변화의 전폭을 집 약해서 나타냈다.
마을의 지배자인 '장옥'은 지주이고 권력자이면서, 현금 수입이 보장되는 숙 박업소, 상점 같은 영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무사(武士)'가 아니므로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지만, 지주이고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귀족과 상응하  위치에 있었다. 도시에서 '조닌(町人)'노릇을 하는 신분이 아니므로 농민으로 취급되었지만, 화폐경제 활동에 종사한 점에서 다른 시민과 상통했다.
1868년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자, 그런 구가'는 커다란 변화를 겪 이야 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을 관장하자 마을 촌장의 지위는 세습할 수 없게 되 있고,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산업체의 발달로 지방의 소규모 재래식 영업체가 타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분상의 제약이 풀려, 도시로 나가 시민으로 활동할 수도 있고,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이즈미(小泉)가는 시대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다가 크나큰 시련을 겪었다. 조상 대대로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기풍을 훌륭하게 이어 널리
 
2)『島村全集』6(1922) 소재 원문과 노영호] 역(1990)을 함께 이용한다.
3) 그 성격을 Harumi Befu(1968: 301-314);石井良助(1981: 77-80)에서 이해할 수 있
다.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룩한 고이즈미 타다히로(小泉忠實)가 미쳐서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 아들 고이즈미 산키치(小泉三吉)는 동경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개 척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한 가 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것은 어쩔 수 없으나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고 했다.
작가는 그런 집안이 일본 전통의 수호자라고 평가했다. 전통사회의 공식적인 지배자인 도시의 '무사는 시대변화와 더불어 쉽사리 변신했지만, 농촌의 “구가' 는 그렇지 못해 오랜 전통을 지키려다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 서 회고했다. 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내는 가부장의 죽음을 함께 그리면서, 가부 장의 신분을 시마사키도손은 농촌의 지배자로 설정한 것이 바진은 작품에서는 귀족으로 염상섭은 귀족의 신분을 얻은 시민으로 설정한 것과 주목할 만한 차 이가 있다 또한, 사라지는 시대에 대해서 시마사키도손은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 다른 두 사람은 심각한 비관을 한 것과 달랐다.
정식 귀족이든 사이비 귀족이든 귀족은 물러나야 하지만 신분적 특권을 지니 지 않고 농촌을 개척하고 수호하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은 옹 호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종말을 고하는 가부장의 신분을 “무사' 로 하지 않고 농촌 '구가'의 주인으로 해서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논거를 마련했 다. 바진과 염상섭은 할아버지 대의 가부장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 때 문에 손자대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시마사키도손은 아버지가 죽은 내력을 아들이 찾도록 했다.
작품이 시작될 때, 고이즈미 타다히로는 이미 죽고 없었다. 아들 고이즈미 •산 키지가 어릴 때의 기억을 살리고,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모 습을 찾고,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사유를 밝히는 작업이 작품의 진행과 더불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이 한 시대가 끝나는 당연한 과정 이라고 할 때에는 죽는 과정을 길게 서술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은 아버지를 추념하면서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고자 했다.
아버지는 신도(神道)를 독실하게 믿고 국학(國學)에 •심취했다. 아들이 하시모 토가에 가서 서재를 구경하면서 아버지를 회고한 대목에서 그 점이 처음으로 나 타났다. 두 집안 장서의 차이가 정신적 배경의 차이를 말해준다.
아버지가 심취했던 것과 같은 본거파(本居派)학설에 관한 저술이나, 만엽(萬葉)과 고사기(古事言己)에 관한 연구, 일본과 한(漢)의 사류(史類), 시가집 같은 것 은 적었지만, 그 대신 하시모토가 특유의 무술과 무도 등을 쓴 사본이 많이 일! 었다. 경서(經書)나 자류(字類) 등도 있었다. 누가 수집한 것인지 한역의 구약성 서도 있었다(노영희, 1995: 27) 
 
4) 원문은: “三吉㈆阿爺力:心\醉U%:수5 갓本居!辰㈆學說l:關수乙著述之㈆,萬葉수古事言己
고이즈미 산키치의 아버지가 일본의 국수주의 학문을 깊이 탐구하고 크게 승 상한 것과 달리, 하시모토가의 사람들은 무술, 유학, 기독교 등을 두루 이해하고 자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완고했던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심지가 굳으면서 또한 다정한 사람이었다. 오타네(種)라고 한 딸이 아버지를 회고한 대목에서는 아버지 의 인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는 딸이 배우는 습자교본에까지 신경을 쓰셨다. 정조가 아름답고,  신이 여인의 덕이라는 것,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푸는 것과 근면, 극기, 검약, 성실 독행(篤行) 등의 교훈을 쓰셔서 그것을 오타네에게 연습시켰던 것이 었다(노영희, 1990: 34).5)
그런 훌륭한 분이 미쳐서 죽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은 그 의문 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애쓰다가, 흑선(黑船)이라는 가상의 적과 싸운 탓임이 나 중에 밝혀졌다. 흑선이란 다름이 아니라 서양의 배이다. 직접 그린 그림이 남아 있어 추리의 증거가 되었다. 작품이 거의 끝날 때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그 그림을 찾아내서 오랜 의문을 풀었다. 그 대목을 들어본다.
그을련 오동나무 상자를 찾아왔다. 선조께서 죽음에 임박해서 자식에게 남 긴 편지, 옛 사람들이 베낀 듯한 무기,馬具그림, 출병 준비를 자세하게 쓴 서 류, 그밖에 여러 가지 옛 물건들이 남아 있는 것이 나왔다.
•산키치는 그 속에서 '흑선' 그림을 발견했다. 신기한 듯이 몇 번이나 들이 보 았다. 반지(/半紙) 정도의 크기의 종이에 옛날 사람의 눈에 비친 환상이 아주 거 친 목판본으로 찍혀 있었다. “마시 이 배는 유령이야." 하면서 산키치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이 네덜란드 배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미치신 것도 이 유령 때문이에요(노영희, 1990: 343).6)
 
㉦硏究之㈆和漢㉦史類之㉦詩歌㉦集之㉦,左樣v결J• 7) :호少%了-o力밓其力올 0橋本㈆家l:”特有캇武術,武道尹了는 춘書VÄ之寫本i)§澤山才, .經書子類.誰수集力危수漢譯㉦舊約全書  건%易石(『島村全集』6, 1922: 30). 
5) 원문은: “71」歠女良力§手習㈆手本:二象″C^,貞操㈆美U :  는 수, 隣㉦人象愛世次弓勤勉克己,儉約,誠實,篤行%了건수㈆訓言每書v결 ,3c 札춘惢種:二習世之危(『島村全集』6, 1922: 44)." 6)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의煤桐㈆箱搜出C毛來危.先祖i)§死際子供^遺C危手紙,先代수寫U武器, 馬具㉦圖出兵㉦用意춘細〈書w之書類,其f也種種尹了古v결殘o危物力s出毛來心三吉隊-c中Ic'黑船'㉦圖춘見o(才之.ho% 5 :二何度邕何度邕取上4平毛見危.半紙程㈆ 大푷 ㉦紙I:,昔㉦人㉦眼I:映o危幻影力§極〈粗v결木卞反(“刷o毛b .
 
서양의 배가 일본을 침공하지 못하게 자기가 막아 물리쳐야 한다고 하다가 정신이상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서양의 침공과 맞서다가 수난 을 당한 전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노영희, 1990: 53). 아들이 그 내력을 알 고 아버지를 동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작가의 생각이고, 독자 또한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시모토가는 산중의 숙박촌에서 대대로 약품 도매업을 경영하는 집안이다. 창업주의 화상을 족자에다 그려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창업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외지에서 간 사람이 보기에는 기이했다. 고이즈미가는 일본의 전통을 온통 지키려고 하면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힘겨운 과업을 맡아 감당하지 못하고 파멸한 것과 달리, 이 집안은 작은 것을 착실하게 지켜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평가할 것은 못된다.
나구라가의 사람들은 북해도(北海道)에 가서 장사를 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 다. 아이누민족에게서 삐]앗은 땅 북해도는 일본인 이주민에게 신천지였다. 미국 인이 서부를 개척하듯이 일본인은 북해도로 건너가 한 밑천 잡을 기회를 얻고자 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진취적이고 실질적인 사고방식을 가져, 그 기회를 잘 이용해 신흥일본의 발전적인 기풍을 보여주었다. 오랜 가문은 시대변화에 적 응하지 못해 몰락하거나 활기를 잃고 개척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하는 가문이 일어나 번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세 가문의 대조적인 특징을 통해서 시대변화를 보여준 것이 이 작품의 특징 이다. 다음에 다루는 중국과 한국의 작품에서는 한 가문의 여러 세대가 달라진 과정을 그린 것과 크게 다르다. 그런 차이는 '이에'라는 일본의 집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데서 유래했다. 일본의 집안은 다른 집안과 구별되는 생업과 가 풍을 대대로 이어가는 독립체이다. 반드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위로 발탁되어 계승을 하기도 하다. 혈통보다는 가풍의 동질성이 더욱 긴요하다.
계승자가 대대로 하던 일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 다. 시대가 변하면 어느 집안은 망하고 어느 집안은 흥한다. 가문이 인격체인 것 처럼 시대변화 때문에 밀려나기도 하고 시대변화에 앞서기도 한다. 망하는 집안 을 새로운 방법으로 일으키는 아들이 나와 가풍을 혁신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이 상례이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는 없었던 변화가 나타났다.
나라 전체의 오랜 전통을 지키려는 집안은 망하고, 자기 집안의 가풍만 착실 하게 이은 집안은 그 나름대로 견디고, 전에 없던 사업으로 집안을 일으킨 쪽은 크게 번성했다. 오랜 가문에서 선조를 숭앙하고 가부장을 대단하게 여기는 풍조 가 새로운 가문에서는 사라졌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
 
'宛伏-斯㉦船隊幽靈之  三吉;才f可力`思` 쑤付v) 7)和蘭陀船7)繪춘見危言o詹:.
'僕等㉦卜可爺力§狂I:成o%:邕7)邕,斯7)幽靈㈆御蔭간寸ia...(『島卞寸全集」6, 1922: 616)."
면서 작자는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가부장이 없어진 것을 아쉽게 여겼다.
작품 속의 고이즈미가는 집안이고, 산키치(三吉)는 작가의 모습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산키치의 추억 같은 것을 간직하고, 일본전통사회의 붕괴를 아쉬워하면서도 세상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한 가지 일을 누구든지 전문적으로 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일본 특 유의 시민의식을 가져, 자기는 소설가가 되었다. 과거에 대한 회고로 세상을 바 꾸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아 세태를 그리는 임무에 충실했으므로, 자연 주의 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산키치처럼 실패하지 않았다.

Ⅲ. 바진의『지아(家)』
바진의『지아(家)』는『춘(春)』(1938),『치우(秋)』(1940)와 함께 격류 Al- u丁그(激流三部曲)'을 고 이루었다. 그 셋을 다 다루지 않고『지아』만 들어 다른 두 작품과 비교해도 주목할 만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시대배경은 1919 년의 5• 4운동기이다. 그 때의 사회변화 때문에 오랜 내력을 가진 가문이 몰락 하고, 지배자인 가부장이 세상을 떠나게 된 사건을 서술했다. 구시대에 크게 행 세하는 위치에 있어 위세를 자랑하던 가문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점이 일본의 경우와 같다. 작가 자신이 그런 집안 출신이어서 자기가 겪은 바를 작품화하는 일을 시마사키도손과 바진이 함께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쥐에후에이(覺慧)라 는 인물이 바로 바진 자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진은 자기 집안과 같은 구시대 가문의 몰락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 는 가부장이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시마사키도손의『이에』와는 다르  염상섭의『삼대』나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과는 일치하는 2`니 정을 했다 죽고 없는 선조는 숭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고할 수 있다. 그러나 죽어야 할 노인이 죽음을 연장시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추태이다. 그 때문에 시 달리는 자손들은 공연한 고생을 한다. 그것은 한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 고, 역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진통이다.
이 작품에는 할아비지대, 아비지대, 그리고 주인공대의 세 세대의 인물이 등 장하는 점이 염상섭의 삼대』와 같다. 시마사키도손이 세 집안을 대조해 보인 것은, 집안 안에서는 세대에 따른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일본 사정 때문이고 중국과 한국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들이, 아들과 손자가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다. 염상섭은 삼대의 인물을 각기 하나씩으로 했는데, 바진은 제2대와 제3대의 인물을 복수로 등장시켰다.
“청대조복(淸代朝服)"을 입은 “역대선조(歷代先祖)”의 “화상(畵像)"을 모시고
(巴金, 1982: 107), 지위와 부를 함께 자랑하는 '신사' 가문의 지배자가 제1대의
 
까오(高)노인이다. 청나라 과거에 급제하 벼슬한 사람인 '신사가 중국의 지배신  이다.7) 그 집안의 남성 최연장자 까오노인이 다른 가족구성원을 지배했다. '까 로라는 성은 고고하다는 뜻을 간직하고 있어 노인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이름 은 있어도 가족들은 부를 수 없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노인이나 할아버지라고 지칭하면 된다.
까오노인은 구시대 귀족이고 지주이며, 전통적 가치관의 수호자이다. 가부장 이 당연하게 지니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집안을 엄격하게 다스렸다. 자손들  이나 하인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어떤 횡포라도 자행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 했다. 가세가 기울고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청산의 대 상이 되어야 할 시대의 모습을 작가는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제2대는 '커(克)'를 돌림자로 한 커밍(克明), 커안(克安), 커띵(克定) 삼형제이 다. '게라는 돌림자는 앞 세대의 완고한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지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밍(明)'• '안(安)'• 띵(定)'이 라는 이름은 밝고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 세 사람은 과거를 보아 급제하지 않았으니 '신사'의 신분을 잇지 못하고, 구시대의 가치관을 고집할 만한 학식도 없었다. 가세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알 고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커안과 커띵은 무위도식을 하는 방탕아이고, 인 륜도덕을 저버린 무리에 속해, 귀족 후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었다.
그런 위기를 타개하려고 커팅이 홀로 애썼다. 새 시대에 행세하는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어서는 논을 사는 대신에 증권을 구입했다. 귀족이 시민 이 되는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서 새로운 길을 적극 개척했다. 그 과업은 아직 첫 단계의 시도여서, 다음 세대가 이어서 맡아야 제대로 추진될 수 있었다. 제3대는 '쥐에(覺)'를 돌림자로 한 쥐에신(覺新), 쥐에민(覺民), 쥐에후에이(覺慧), 쥐에췬(覺群), 쥐에스(覺世) 등의 손자들로 이루어졌다. 한자 이름의 상징적 인 의미가 이 경우에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깨어난다는 뜻의 '쥐에를 들림자 로 하고, 깨어나서 얻을 수 있는 결과를 나타내는 '신(新)'• '민(民)'• 후에이 (慧)'• '췬(群)'• '스(世)'라는 말이 각자의 이름에 들어 있다. 5•4운동을 겪고 의식에서나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작자의 생각이 그렇 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름과 실제는 이긋날 수 있다. 망해야 하는 집안에 새 인물이 난다 는 보장이 없다.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구습이 일거에 혁신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손자 세대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그래서 대조가 되거나 대립을 일으키는 관계를 가졌다.
 
7) Ho Ping-Ti(1962); 하병체 • 조영록 외(1987)에서 '신사'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다각 적인 고찰을 했다 
쥐에친과 쥐에스는 어린 나이이지만 위의 두 대가 보인 추태를 그대로 이어, 하녀 희롱하기를 일삼는 악동 노릇을 했다.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서려면 무 슨 짓이든지 못할 것이 없었다. 쥐에신은 신구 중간에 선 인물이다. 쥐에후에이 는 자기 집안의 구습을 거부하고 새 시대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낡은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역사적인 과업을 맡아나서는 역군이 되어 야 한다고 했다.
“니도 장차 신사가 되는 간니 아냐 기' 
“우리 할아비지도 신사있고, 우리 아버지도 신사였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들 도 마땅히 신사가 되어야 한단 말이지 기'
“신사 가문 속에 꽉 들어찬 공기를 감당할 수 없다....분명히 한 집안 사 람 인데도 방마다 딴 나라처럼 되어 하루도 겉으로 다투고 속으로 싸우지 않는 날 이 없단 말야.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재산 싸움에 지나지 않아!"8)
쥐에민과 쥐에후에이가 이런 대화를 나눈 부분에 구시대를 거부하는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선조 대대로 과거에 급제해서 신사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 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신사란 탐욕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기나 한다고 비관 하고, 자기네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새 시대의 사조를 받아들이고, 신교육을 받았다. 5• 4운동 의 이념을 확산하는 잡지『신청년(新靑年)』을 탐독하고, 신사가 되는 데 필요 한古文은 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영어를 공부한다. 외국어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영국인 교사에게서 영어를 배웠다. 스티븐슨의『보물섬』을 무대에 올리는 영어연극을 연습하면서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새 시대로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벌이 득세하 교 육비를 군사비로 전용하는 세상이었다. 학생들의 연극 공연을 군인이 방해해서, 충돌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항의집회를 열어도 대답이 없자, 동맹휴학을 했다. 쥐에후에이는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 일이 알려지자 할아버지는 쥐에후에이를 불러 잘못을 꾸짖고, 외출금지령 을 내렸다 쥐에신이 감독을 맡도록 했다. 그 대목에서 신구의 충돌이 아주 잘 나타난다.
너희들 학생은 하루 종일 독서는 하지 않고 시끄러운 일만 좋아한다. 요즘
 
8)巴金(1982: 18), 최보섭(1985)의 도움을 얻어 원문을 이해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f尔將來不也昰1;申士|喁?" 
“我們的,祖父是紳士,我們的父親是紳士,所以我們也應該是紳士다馬?" “受不了這種糸申士家庭中間的閉氣日馬?...明明是-家人,然而沒有-天不在明爭暗[鬪. 其實不過是爭點家로 !"
 
학교는 아주 몹쓸 곳이야. 난폭한 인간만을 만들어내고 있다.9)
이 1그畢-0- 근 근- .드느그 T二1- 亡자는 -%` 커다란 거리를 느꼈다. “앞에 가로누워 있는 사람은 그 의 할아버지가 아니고, 다만 한 시대의 대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아버 지와 손자라는 두 세대는 영원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10)고 했다.
할아버지 까오노인은 인륜도덕을 역설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향락을 취하면 서 살아왔다. 기생들을 가까이하는 풍류를 일삼았다. 주씨(周氏)를 첩으로 맞아 들여 만년을 즐기면서 수발을 들게 했다. 그러나 자기 아들이나 손자는 정해진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집안에 거느리고 있는 하인이나 하녀에게 도 각자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집안의 하녀 가운데 밍펭(鳴鳳)이라는 17세의 소녀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쥐에후에이를 사모했으며, 쥐에후에이도 그 쪽으로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어느 날 주씨가 부르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엄정한 통고를 했다. 핑러산(馮樂山)이라는 이에게 첩으로 주기로 했다는 까오노인의 결정을 전했다. 그 사람은 나이 60이고 처첩(妻妾)이 이미 여럿 있으나 부자이므로, 가서 잘 섬기면 고생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밍펭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쥐에후에이 도련님”하고 부르면서 호수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쥐에후에이는  펭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꿈속에서 재회했으나,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까오노인에게는 그런 사건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집안을 자기 마음 대로 다스리는 폭군 노릇을 계속해서 피해를 확대했다. 손자들의 혼사에 대해서 자기가 독점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당사자의 생각은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집안에 불만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큰손자 쥐에신은 그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체념했다. 이종누이를 사랑했지만, 궁합이 좋지 않고, 어미니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하는 따위의, 자기는   이유 때문에 해어지라는 조처가 내려, 할아버지가 정하준 아내를 맞이하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했다. 이종 누이가 불행한 결혼을 하고 이내 과부가 된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둘째 손자 쥐에민은 형의 전례를 따르지 않았다. 고종누이를 사랑하 장래를 약속하고,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혼처를 정해 장가들이려고 하자, 쥐에 민은 집에서 끄다. 집을 나가면서 큰형 쥐에신에게 남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 원문은: “14〈們學生整天不讀書,只愛I吊]事.現在I的學堂眞壞極了,只制造出來-些才島i싀l 人物(巴金, 1982: 67). 
10) 원문은 “f也覺得軀在f也面前的開不是f也的祖父, f也只是整整-代人的-個代表.知道f也們,祖孫孫兩代永遠不能竪互相了解的(巴金, 1982: 68)."
 
나는 우리 집안에서 일찍이 아무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결혼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행동을 실행했습니다... 나는 의연하게 이 길을 가렵 니다. 나는 구시대의 세력과 싸우겠습니다. 만약 어르신네들이 혼인에 관한 일을 취소하지 않으면, 나는 결단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11)
쥐에신이 귀가를 권유하자, 쥐에민은 거절하는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은 말했다.
내가 지금 작은 방안에 들어앉아 있는 꼴이 탈옥한 죄수 같습니다. 움직이 려 고 해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다시 잡혀 사형수의 감옥에 들어 갈까 두렵습니다. 사형수의 감옥이란 우리 집입니다.12)
그러나 할아버지의 태도는 완강했다. 손자의 반항을 보고 격노했다. 어른이 기 0 -하 1- 이 근으 자식이 함부로 그르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태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 절망했다. 손자 쥐에민의 항거, 그리고 아들 커띵의 방탕 때문에 상심하 병석에 누웠다. 쥐에민을 만나기 를 원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인 건을 취소한다고 하자 쥐에민이 비로소 할아 비지의 병석에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자 마음의 안정을 얻어 숨을 거 두었다. 그렇게 해서 너무나도 오래 계속된 낡은 시대가 끝났다.

Ⅳ. 염상섭의『삼대』

염상섭의『삼대』에13) 등장하는 제1대인 할아버지 조의관은 전통적인 가치 관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한 점에서 까오노인과 같다. 그러나 바진이 그린 까오 노인은 귀족이어서 귀족의 위업을 지키려고 했는데, 조의관은 귀족의 지위를 사 서 가진 사람이다. 그 경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을사조약 한참 동안에 돈 이만당 지금 돈으로 사백원을 내놓고 사십여세 에 옥관자를 붙인 것이다. 차함은 차함이로되 오늘날의 조의관이란 택호가 아주 터 무니 없는 것은 아니요(『한국문학전집』3, 1959: 72).
 
11) 원문은. “我做了我門家裏從來沒有人敢做的剚靑,我實行逃婚了...我要和舊勢力奮鬪到
底.如果f尔們不打消那件親事我臨死也不回來(巴金, 1982: 315)."
12) 원문은: “我這時候座在-個小房間裏好象是-個逃獄的犯人,連動也不敢動,恐1`白動就會被捉回到死囚牢中去.死囚牢是我底家庭(巴金, 1982: 321). '  13)『한국문학전집』3 (1959) 수록본을 이용한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위협해 국권을 장악한 을사조약을 체결할 무렵에 돈을 내 고 벼슬을 샀으니, 매국내각의 일원 중 한 사람이 돈을 챙겼다. 벼슬이란 다름이 아니라 실직은 아니고 명예직인 중추원 의관(議官)이다. 그 때문에 생기는六1-기 으 없지만 조의관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근래에는 편입해 들 어간 집안에서 선조를 위하고 족보를 다시 만드는 일에 돈을 내놓아야 할 형편 인데 마다하지 않았다.
돈을 내놓게 된 일을 설명하면서, “양자로 들어가면 재산 상속을 받을 권리 도 있지만 없는 양부모면야 벌어서 봉양할 의무도 지는 것이다(『한국문학전 집』3, 1959: 73)”라고 하는 말을 앞세웠다. 족보상 누구니0 丁소 그-01라고 하면서 족보에 편입했는데, 그 누구라는 위인이 없는 사람이다. 없는 사람은 더 위해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편입하 들어간 집안에서 선조를 위하는 사업을 벌이고보니 돈이 만당은 든다 하고, 일을 맡은 사람들이 오천냥은 자기들이 모을 터이니 오천냥은 조의관이 마련하라고 했다. 자기네가 돈을 모은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조의관의 돈을 오천 냥이나 뜯어먹자고 해서 벌인 일이다. 조의관도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돈을 깎자고 하고 지불기일을 늦추고 하는 등의 술책을 쓰기는 하면서도, 선조를 위 하는 일이 소용없다고 거절하지는 못하고 끌려들었다.
조의관은 이처럼 시민의 능력으로 벼슬을 얻이 귀족이 되고서는 시민임을 부 인하고 귀족 가문의 일을 열심히 했다. 이미 널리 개방되어 있는 변신에 과도한 대가를 지불하고 뒤늦게 참가하고서 귀족의 수호자 노릇을 하는 성스러운 사명 을 수행하겠다고 하니 가관이다. 조의관이 시대 변화를 멈추거나 되돌리려고 한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일이었다.
조의관의 죽음은高노인의 죽음보다 더 길게 서술되어 한 시대가 종말을 고 하는 진통을 한층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통한 일이 아니다.高 노인이 되돌아온 손자를 보고 안도하고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위안도 허용하지 않았다. 조의관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장엄한 의미도 지니지 못 했다. 한 시대의 종말이 아니고 시대착으의 종말이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한국에서 사회사의 진행이 다르게 이루이져 그런 차이가 생겼다. 중 국에서는 과거에 급제해야 '신사가 되므로 가짜 귀족이 있을 수 없어 진가의 는 란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돈을 내면 '양변이 되는 한국에는 가짜 귀족이 얼마든 지 있어 진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가짜이면서 진짜보다 더욱 진짜로 행세 하려고 한 조의관의 죽음은 진가를 구분하려고 한 무리한 시도의 종말이다.
조의관의 죽음에는 또한 돈 가진 사람의 비극이 집약되이 있다. 조의관은 아 내를 잃고 수원집이라는 첩을 들어앉힌 것이, 벼슬을 사고 족보를 하면서 돈을 쓴 것과 함께 손꼽을 수 있는 하나의 오입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수원집은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노인 수발을 잘 들어 투자한 보람을 찾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병이 심해지자 노인과 수원집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는 사라지고 적대적 인 관계가 확대되었다. 그래서 일생을 편안하게 마칠 수 없었다.
노인은 자기가 죽으면 수원집이 재산을 차지할 것을 염려했다. 아 지 믿을 수 없어 손자를 불렀다. 일본 경도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손자 덕기에 게 연락하 빨리 돌아오라고 했다. 노인이 사태를 바로 판단해 마땅한 공세를 취 했다. 다행히 노인이 운명하기 전에 손자가 도착했다. 유가증권과 함께 유언장이 들어 있는 금고 열쇠를 손자에게 전하고 재산을 대부분 손자에게 상속해, 노인 이 승리했다. 그러나 수원집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으니 패배했다고 해 야 한다.
노인이 운명하기 전에 대학병원에 입원했더니 의사들이 비소중독이라는 진단 을 내렸다 시신을 해부해 진상을 알아보자고 하자 아들 상훈은 찬성했는데, 손 자 덕기는 반대했다. 덕기는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덮어두기로 했다. 할아버지 가 병석에 누운 동안 계속 먹은 한약을 수원집이 관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한약에 비소를 넣어 노인이 일찍 죽게 했을 수 있다. 덕기가 도착하기 전에 노인이 죽어 자기가 승리를 거두려고 했을 수 있다.
노인은 그런 줄 모르고 죽었다. 아들 상훈은 아무 것도 모르고 다만 의혹을 풀기 위해 아버지의 시신을 해부하자고 했다. 손자 덕기는 짐작하는 바가 있으 나 드러내서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 시신 해부에 반대했다. 비소중독이 라고 진단한 의사를 후하게 사례하고 일을 일단락 냈다. 그러나 독자의 의심은 지위지지 않아 추리를 계속하게 한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 노인은 돈이 있기 때 문에 독살되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하수인 노릇은 누가 맡았든 그 배후는 돈이다.
조의관은 시대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 사람이다. 과거의 위계 질서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돈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돈이 자기를 공격하는 작 용을 멈추지 못해 수명이 단축되었다. 돈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횡포를 자행해 사람 잡는 새로운 시대의 희생자가 되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은 이 루지 못하고, 시대변화의 희생자가 되었다.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구시대의 종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 지 않고, 새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돈의 횡포를 고발하고 위험을 경고한 것은 시마사키도손이나 바진은 하지 않은 일이다. 시마사키도손은 돈의 지배가 바람 직하지 않지만 받아들여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바진은 돈벌이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살아가는 희망 찬 시대가 도래한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염상섭은 돈 은 가진 쪽이든 가지지 못한 쪽이든 함께 불행하게 만든 사실을 들어 새 시대를 비판했다.
제2대의 조상훈은 아버지를 따라 귀족이 되기를 거부했다. 양반 노릇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반발했다. 자기 돈을 들여 남의 조상을 위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했다. 자기는 그런 허세를 배격하고 실리를 숭상하는 시민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것은 어디서나 있는 당연한 일이므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
다.
그런데 유럽에서와는 달리, 시민이 되기 위해서 문명권의 소속도 바꾸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동아시아의 전통을 버리고 유럽문명권의 가치관을 적극 받아  이려고 했다. 미국유학을 하고, 예수를 믿어 구습을 타파하자고 했다. 그것은 빗나간 길이었다. 그 점을 납득할 수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그- 1- 브畢으 ℃죠 = -1- 1- 그으 기울였다.
시마사키도손은 이미 과거가 된 첫째 세대에 특별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바진은 셋째 세대의 항거를 그리는 데 힘쓴 것과 대조가 되게, 염상섭은 둘째 세대의 선택이 그릇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을 긴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삼십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비리고 나서려고 허 비 적거릴 때 누구나 그리 하였던 것과 같이 그도 젊은 지사로 나섰던 것이요, 또 그러느라면 정치적으로는 길이 막힌 그들이 모여드는 교단 아래 밀려가서는 무 릎을 꿇었던 것이 오늘날의 종교생활의 첫 발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만일 요 새 말로 자기청산을 하고 어떤 시기에 거기서 발을 빼냈더라면 그가 사상으로도 더 새로운 시대를 나오게 되었을 것이요,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성격대로 순조로운 길을 나아가는 동시에 그러한 위선적 이중생활 속에서 헤매지-1- 1- 0} 1-죠0畢 을 것이다(『한국문학전집』3, 1959: 29-30).
구세대와 결별하는 신세대의 출발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시대를 발로 차버리기만 해도 지사(志士)가 된다고 한 것은 지나쳤다. 정치에는 뜻을 두지 못해 종교계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 문제였다. 자기청산은 하지 않고 세상만 나무란 데 잘못이 있어, 우월감을 버리지 않고 더 키워 위선 적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구시대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해 양반을 사고, 남의 조상을 위 하는 데 거액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고 반발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 지가 부당하기 때문에 자기의 반발은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꾸중 이 잘못되었다는 이유에서 모든 도덕적 책임을 무시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 다. 그래서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패륜아가 되었다. 돌보아주어야 할 친구의 딸을 유린해서 타락시키는 짓을 서슴지 않고 했다.
기독교와 미국유학은 구시대를 매도하는 데는 큰 효력을 발휘했으나, 새 시 대를 이끌어나갈 지침이 되지 못했다. 이 땅에서 역사와 더불어 가꾸어온 모든 가치관, 사람이 살아가는 마땅한 도리까지도 타기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자기 는 거룩한 정신을 가진 우월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정신적인 진주군처럼 군 림했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유린하고 희생시켜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 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유럽문명권 추종을 근대화라고 여길 때 반드시 나타나는 공통적인 폐단이다.
시마사키도손이 서양의 흑선과 싸우다가 미쳐서 죽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막연하게 제시한 공포를 염상섭은 구체화해서 보여주었다. 전통에 반발하기 위 해 서양 추종자가 된 조상훈은 삶의 중심을 잃었다. 흑선과 싸우는 방법을 제대 로 알지 못해 미친 것처럼, 서양에서 가져온 잣대를 내세워 모든 기존의 가치를 부인하다가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다. 서양의 도전에 대한 대 응이 빗나가서 생긴 두 가지 파탄을 두 작가가 각기 보여준 것을 한 데 합쳐 이 해해야 전후의 맥락이 드러난다. 방향은 반대이지만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한 미 친 짓이라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을 두고 시마사키도손은 동정하 면서 이해하려고 하고, 염상섭은 비판하면서 배격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봉건시대에서 지금의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간에 선 것 같다고 생각했다(『한국문학전집』3, 1959: 30)”고 말했다. 건너오 기는 했지만 그 길은 외나무다리이므로 위태롭다. 아들은 안전하고 튼튼한 행로 를 다시 찾아야 했다. 완고한 사상을 버리고 개화를 한 것만 자랑일 수 없다. 무 스 1- 지 2`으 하든지 돈 벌고 행세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제3대의 아들은 귀족의 삶과 시민의 삶을 다 거부하고, 무산계급과 함께 투 쟁하는 새 시대의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병화는 쥐에민처럼 집을 뛰쳐나 가서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자기 집안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항거했다. 그런 인물인 김병화는 주인공 조덕기의 친구로 설정했다. 정통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
조의관의 손자이고, 조상훈의 아들인 조덕기는 위험인물이 아니며 나서서 행 동하지 않은 온건파 지식인이다. 과격파와 온건파 가운데 온건파를 정통으로 설 정하고, 투쟁을 격화시키는 것보다 화합을 이룩하는 데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그런 위치에 있는 덕기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온건파가 살기 에는 너무 험악한 세상이고,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독살설이 피져, 약을 지이준 한의사, 한의사를 소 개해준 사람 등의 관련자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같은 시기에 좌익운동에 대한 일제 탄압이 자행되어 김병화와 그 배후의 인물, 그밖의 여러 가담자가 잡혀7갔
다. 조덕기는 그 두 가지 일에 함께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찾자 자수해 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조덕기가 조부를 독살하고 유서를 위조해 재산을 가로챘다고 의심하 고, 그렇게 한 이유는 김병화의 사주를 받고 좌익운동에 자금을 대주려고 한 데 있다고 추리했다. 일제 경찰이 자랑하는 새 시대 범죄 수사의 논리는 그 나름대 로 완벽해서 무리를 하지 않고서도 죄인을 만들어내는 것을 장기로 삼았음을 알 아차릴 수 있다. 경찰과 싸워 협의를 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거에는 증거로 논리에는 논리로 맞서야 했다.
독살건을 두고서는 의사에게 지나친 사례를 한 것이 문제되었으나, 한약제 중에 중독소가 있는가를 연구하라고 부탁”한 것이고, “지위와 명예를 보아 과분
한 액수는 아니”라고 했다. 조부가 살아 있을 때 금고 열쇠를 전하는 것을 현장 에서 보았다고 수원집이 증언하지 않을 수 없어 도움을 얻었다(같은 책, 354면)  김병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께 자라난 죽마고우가 집을 뛰어나와 굶고 다니 는 것을 구제할 겸 전향시키려고 가까이 했다고 했다(『한국문학전집』3, 1959  30).
다른 피의자들은 계속 조사를 받는데, 조덕기는 석방되었다. 그래서 자기 문 제는 일단 해결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계속 어렵고 복잡하게 읽혔다. 서 로 대립되어 싸우는 진영 가운데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그 중간에서 조정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조덕기의 위치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 다. 화해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싸움의 당사자들보다 더욱 힘든 노력을 해야 했
다.
조덕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면서도 동조하는 양면의 식을 가지고 김병화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했다. 전통적 가치를 가진 귀족 유럽문명권 취향의 시민, 무산계급 운동가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 고 벌여놓은 노선 차이를 줄이고 화합을 시도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 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어서 아무 해결책이 없었다.
좌익운동을 하다가 비참하게 된 사람의 딸 필순이를 동정하다가 애정을 느끼 면서 가까이 하는 자기를 발견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외도를 되풀이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의문긘 가지는 대목에서 작품이 끝났다. 할아버지와도 다르고, 아버지와도 다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재산은 그대로 이어 가진 사람의 우월감이 없는 사람에 대한 횡포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청산되지 않고 남 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마사키도손과 바진은 작품에서 그린 것과 같은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며, 자기가 겪은 바를 작품화했다. 그래서 가부장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으며 비판 을 하면서도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염상섭은 중인이었다.14) 중인의 신분을 가진 시민이다 중인이기에 그 나름대로 주체성이나 자부심이 있었다. 조의관처럼 양 반 행세를 하지도 않았으며, 조상훈처럼 일거에 외래사조에 경도되지도 않았다. 구시대 가부장의 죽음에 대해서 다른 두 작가보다 더욱 냉철하게 비판하는 자서] 를 보인 것이 그 때문이다. 당연히 물러갈 것이 물러7갔다고 했을 따름이고, 안타 깝게 여기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염상섭은 조덕기와-1- 1- 1그~畢으- 1•죠1- (0 -고 -토 7<1 1二1 ㉦-근- 가졌다. 일본에 유학한 새 시대의 지식 인이고, 좌우익의 사회운동을 들 다 이해하면서 그 절충점을 찾고자 했다. 그러 나 조덕기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그 집안을 이어나가는 위치에 일! 었지만, 염상섭에게는 그런 유산이 없었다. 그런 차이점 때문에 조덕기에게 대해 서도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하므로 김병화를 따로 등장시켰다. 사상적
 
 0 0회 00(1998)에서 염상섭을 중인작가의 하나로 다루었다.
인 입장에서는 조덕기가, 과거와의 단절을 확실하게 한 점에서는 김병화가 새 시대의 주역이라고 하는 이중의 견해를 제시했다.
\/.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Les Th/bau/t) 
마르탱 뒤 가로의『티보가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아버지 티보 영감은 보수 화된 시민의 전형이다. 재산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으른 것을 자랑 스럽게 여기고 자기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가톨릭 신앙이 돈독해 가 지관을 분명하게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경박하고 퇴폐적인 풍조를 준엄하게 나무랐다 자기 생각은 무엇이든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확신하고 가족 0 마음대 로 지배하는 전제적인 아버지의 전형이다.
시민이 사회를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서자 그렇게까지 타락했다. 귀족과 맞서 싸울 때 지녔던 자유주의자의 기풍을 다 버리고, 귀족의 특징을 온통 물려받았 다. 그러면서 지위를 유지하고 위신을 찾는 데 귀족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귀족의 신분은 국가에서 공인하고 당연히 상속되지만, 시민의 지위는 누가 보장해주지 않아 당대에 얻고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위 유지를 격정해 안달하는 보수주의자는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게 마련이 다. 그 때문에 희생되는 일차적인 피해자가 가족이다. 티보 영감은 아-= 근 긘 0 드 근 보가가 았다. 아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재산을 늘리고 위신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허사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자기가 계획한 대로 강하게 키우려고 엄히 다스렸다.
티보 영감에게는 아들이 들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달랐다. 큰아들 앙트안느(Antoine)는 계승형이어서 아버지가 기대하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실행했다. 작은아들 자크(Jacques)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항거형이었다.
큰아들은 자랑스러운 가문의 명예는 소중하게 여겨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도 위선이나 허세는 버리려고 했다. 아버지가 크게 내세우는 신앙은 받아들이 지 않고, 의사를 직업으로 택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 었다. 재산보다 전문지식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남들과의 관계를 군림에서 봉사로 바꾸었다.
큰아들이 그렇게 달라진 것은 부유한 시민이 기능적인 소시민으로 바뀌는 시 대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금융자산으로 살아가던 시민의 아들0 2`l-소 세 때문에 재산이 줄어들자, 재산보다 능력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직장인이 되어 봉급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이 되는 변화를 이러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닥치 기 전에 앞질러 보여주었다. 그것이 작가가 희망하는 사회안정의 방법이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에게 의지해 살다가, 열 다섯 살 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가출한 적이 있다. 그런 철부지 짓을 해서 가문의 명예 를 손상시켰다고 하는 꾸중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서 더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 다.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가까워질 수 없었다. 양쪽의 생각을 확인해보자.
자크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의 자부심을 조금이라도 만 족 시킬 수 있게 자크가 해주기만 한다면,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크는 어긋난 짓이나 하면서 제 멋대로 놀아 자기 자존심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
다.15)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들은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다. 자존심을 만족시키려면 아들은 자기가 미리 정해놓은 들에 따라서 살아야 했다. 아들이 아들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 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이 자기의 재산과 다름없다는 사고방식이다.
소년 시절에 생각이 미치면, 보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아주 어릴  부터, 형체를 갖추어 발동하는 본능은 무엇이든지 아버지를 상대로 한 싸움을 벌였다. 모든 것을.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무질서, 무례, 게으름 같은 것들을 일! 는 대로 드러냈다. 열등생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나 강요 된 율법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16)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에 택한 일탈행위가 나날이 확대되었다.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해방을 열렬하게 회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 시민이 면서 시민이기를 거부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버리고, 시민이 지배하 는 사회를 뒤집어엎는 길로 나아가는 반역자들이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시민사회의 내부적인 파탄이다. 시민이 사회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바로 나타난 위선과 횡포가 내부의 분열
 
15) 원문은: “N011 qu il füt incapable de d'aimer Jacques: il eüt suffi que le petit Illi procuråt quelque satisfaction d'orgueil, pour éveiller sa tendresse; mais les extravagan ces les écarts de Jacques l'atteignaient toujours au point le plus sensible dans S011 amour-propre (Roger Martin du Gard 1955.• 588)."
16) 원문은: "S'il pense sa Jeunesse, un goüt de vengence lui monte. DOS la prim e enfance, tous ses instincts, mesure Clifils prennent forme, entrent en lutte c℃ntre 1 e pore. Tous. Désordre, ilTespect, paresse, €111'il affie, par réaction. Un cancre et honte ux de I'étre. Mais crest ainsi Clifil s'insurge le mieux contre le code exécré (Roger M artin du Gard, 1955:1177) 
 초래해서 그 일부의 구성원이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길로 나아7갔다. 그 가운 데 단순한 허무주의자도 있고, 무정부주의자도 있고, 공산주의자도 있었다. 작자 는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반역이 정 당하다고 옹호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큰아들 쪽에서 중심을 잡고 작은아들의口  스 0 거리를 두고 다루었다.
작은아들은 허무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공산주의자가 되 어 무산계급의 혁명에 가담할 생각도 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일탈행위를 일삼는 철부지가 무산계급의 투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기 신념대로 살기 위해서 분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 에 반대하는 전단을 독• 불 양국의 군대에 뿌리려고 비행기에 올랐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큰아들은 안정과 행복을 누린 것은 아니다. 큰아들은 군의가 되어 전쟁에 나7갔다가 독가스에 상해 죽었다. 누구에게도 파멸을 가져올 수 있` 는 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시민사회는 진보와 번영을 약속하고 있다는 기대는 무너졌다. 보수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는 논거가 무엇인가 의문이
다.
Ⅵ 초 고P大卜
 
위의 네 작품에 나타난 가부장은 모두 질서와 서열을 존중했다. 사회전체에 서든 자기네 가문에서든 질서가 가치의 으뜸이라고 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는 서열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고 했다. 자기네 가문이 지체를 가리는 서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가문 내부에서는 자기 가 최고의 지위에 있으므로 다른 구성원을 통제하 동요를 막을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자식이나 손자는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하지 않고 일탈하거나 반발하 충돌이 일어났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부장은 거부하고 자손 을 받아들였다. 그 충돌에서 가부장은 패배했다.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키기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 사건을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구체 화한 것이 네 작품의 공통점인 설정이다.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서 시대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 서로 같다.
네 작품에서 모두 자손에 대한 가부장의 지배를 거부하고, 서열에 의한 질서 를 무너뜨리면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변화가 일어난 시기가 20세기초이 다. 경제사나 정치사의 변화에서는 유럽이 앞서고 동아시아는 뒤떨어지고, 동아 시아 각국에서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만, 가치관의 전환은 동시 대에 함께 일어났다. 그 점을 문제삼는 문학창작에서도 선후의 격차가 인정되지
그러면서 가부장의 성격에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마르텡 뒤 가르가 그 린 가부장은 시민이다. 프랑스에서는 귀족 0 대신하 시민이 주도세력이 되는 변 화를 먼저 겪은 다음, 시민의 사고방식이 과거의 귀족철검 보수화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세 작가의 가부장은 전통적인 지배세력이다. 시민사회로 들 어서기 전에 전통적인 지배세력이 지닌 문제점을 장차 전개될 시민사회의 관점 에서 시비했다.
마진은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취임하던 최고의 지배신분인 신사를 가부장 으로 등장시켰다. 그렇게 해서 중국 전통사회의 종말을 정면에서 그렸다. 시마사 키도손이 내세운 일본의 가부장은 귀족에 속하지 않은 상층농민이다. 귀족에 해 당하는 무사는 시대변화에 적응하는데 상층농민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고자 했던 사정을 다루었다. 염상섭이 문제로 삼은 가부장은 한국의 지배신분인 양반 의 지위를 대가를 지불하고 산 사람이다. 사이비 양반이 새로 획득한 지위에 더 욱 애착을 가지는 지나친 거동을 보여주면서, 돈이 화근이 되어 그런 꼴을 당한 다고 했다.
다른 세 작가는 작품을 진행하면서 가부장의 죽이가느1- -目근- 그렸다. 그 장 면을 길게 늘여 한 시대의 종말이 힘들지만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었 다. 임종을 맞는 자손들은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다 반발의 과정이 끝 나고 자기네가 다음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느끼게 했다. 시마사키도손은 가부장의 죽음이 작품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있었던 과거의 일로 하고, 아들이 그 내막을 찾아 나서게 했다. 반발의 과정은 없고 추모가 앞서게 했다.
 가부장에 대한 자손의 태도에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다고 했다. 마진과 마 르텡 뒤 가르는 형제가 서로 달라 형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하려고 하고 아우는 반발을 누르지 못해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우의 과감한 자세에 0口  하면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점이 대체로 서로 같으면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자 기 나라의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견주어보면, 마르탱 뒤 가르는 보수노선에, 바 진은 진보노선에 섰다. 염상섭은 반발이 우파와 좌파 두 노선으로 나누이진 것 을 보여주면서, 그 들의 일탈을 한꺼번에 넘어서는 조화의 방도를 찾고자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가부장에 대한 반발이 전통적 가치관에서 이탈하 밖에서 전 해진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구체화되므로 유럽에는 없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시마사키도손은 죽고 없는 가부장에 대한 추모를 내세운 것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서구화가 주체성의 상실이라고 염려하는 데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바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서구화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가졌다. 염상섭은 기독교를 앞세운 우파의 서구화와 마르크스주의를 따 르는 좌파의 서구화에 각기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길을 찾기 위해서 서구화가 아닌 대안이 있는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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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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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Patriarchs in East Asian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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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ll Cho
Professor of Korean litera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Three East Asian novels deal with a similar theme, the death of patriarchs:
(A) Simasaki Doson's le (Family, 1912) in Japan,
(B) Ba Jin's Jia (Family, 1931) in China,
(C) Yöm Sangsopöp's Samdae (Three Generations, 1931) in Korea.
By the death of patriarchs, they showed a same historical change from traditional to modern societies. But its specific features are different according to each country's situation and author's way of thinking. I compared them to identify both sides. To know whether results of such study are peculiar to East Asian situation or have more general meaning, the scope of comparition was widen, including a Western novel which deals the same t h eme of the death of patriarch:
(D) Roger Martin du Gard's Les Thibaut (1922-1936) in France
Four novels agree that the death of patriarchs can not stopped or delayed as it is an inevitable process of the historical change from traditional to modem societies, from authoritarian to democratic values.
But the concrete characters of the patriarch are different. (A) the leader of peasants, (B) Chinese gentry who got privileged status through civil examination, (C) one who obtained Korean gentry, the yangban's position by money, (D) the rich bourgeois were regarded as main keepers of traditional society value in each society.
There are two types of successor. Moderate successor regrets the death of patriarch. Revolting successor welcomes it. (A)'s successor is moderate. (B) 's successor is revolting. In (C) and (D) there are both successors moderate and revolting.
Moderate successor in (A) wants to inherit fading Japanese tradition to overcome Western impact. Revolting successor in (B) adopts Western liberalism to be free from the patriarchal despotism. (C) depicts complicated dispute of Western liberalism, communism, and conservatism among various successors. (D) shows a competition between the right way of moderate successor and the left way of revolting succ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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