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지역연구 21권 4호 2012 겨울 pp.93-137
동아시아담론:
이론화를 향한 시론
고성빈|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동아시아담론은 동아시아의 역사문제를 풀어나가려 하는 지식인들이 개하는 논의이다. 아직은 동아시아를 사고하고 토론을 개한다는 함의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은 지 인 상상을 넘어서 사상화, 이론화로 가는 과정에 있다. 본고는 동아시아담론을 ‘비 의 방법론’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19세기 서세동 에 한 항의식에서 생성된 동아시아의식은 21세기에는 동아시아담론으로 계승 발 되고 지 인 상상에서 나온 새로운 구상들을 제시하고 있다. 담론의 내용에서는 지역의 공통 인 지향과 국가에 따라 혹은 담론을 개하는 주체에 따라 개별 인 특성이 나타나면서 개되는 것 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동아시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 인 흐름이 있지만, 그 안을 세 하게 들여다보면 보편화를 방해하는 요인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담론의 보편 인 흐름을 찾아 이론화를 시도해 보면서, 한 이론의 일반화를 방해하는 요인을 지 해 본다.
주제어: 비판의 방법론, 탈근대성, 메타서사, 지식인-시민 관계망, 초국적 공론장
I. 서 론
21세기에 등장한 동아시아담론은 동아시아인들이 마치 ‘미네르바의 부엉 이’처럼 근대의 저녁에 부르기 시작한 노래이다. 서구에서 발생하고 주도한 탈근대적 문제의식과 냉전체제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전개 되었다. 냉전체제가 종언을 고하면서, 이들은 미완의 근대를 성취하려고 함 과 동시에 그 문제점들을 성찰하는 탈근대를 동시에 사고하기 시작했다.
탈냉전이래로 동아시아는 많은 사고의 전환과 각성을 겪고 있다. 가장 두
드러진 것은 다음 몇 가지로 서술할 수 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동아시아가 겪어야 했던 제국․ 식민의 역사청산의식의 생성, 냉전체제에서 수동적 행위 자로 복무했던 경험에서 생성된 냉전적 사고의 탈피, 냉전시대 미국과의 의 존관계에서 작동되었던 권위주의 개발독재체제를 겪으면서 부국강병을 목표 로 하는 어두운 측면의 근대화에 맹목적으로 매진했던 것에 대한 성찰과 극 복을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자각은 이 시대에 등장한 지구화․ 신자유주의로 특징 지워지는 서구주도의 발전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거부하 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추동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적 변화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의 지역주의는 서구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새로 운 동아시아를 사고하려는 지적인 운동인 동아시아담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아시아사고 혹은 지역주의는 일종의 전반적인 추세를 나타내며 그것을
주도하는 실체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동아시아담론은 이러한 무형의 지 역주의 추세를 구체화하여 동아시아의 문제를 풀어나가려 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전개하는 지적인 논의이다. 여기서 담론(discourse)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동아시아사고가 현 단계에서는 체계적으로 이론화되지 않 았고 동아시아연대의 실현을 위해 지적인 상상과 토론을 전개하는 단계라는 함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동아시아를 사고하고 토론을 전개한다는 함 의로서 동아시아담론은 지적인 상상을 넘어서 사상화, 이론화로 가는 ‘생성
(becoming)’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서세동점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생성된 동아시아의식은 탈냉전시대 인 21세기에는 동아시아담론으로 계승 발전되고 지적인 상상에서 나온 새로 운 구상들을 제시하고 있다. 담론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지역의 차원에서 공통적인 지향과 국가에 따라 혹은 담론을 전개하는 주체에 따라 개별적인 특성이 나타나면서 전개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동아 시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흐름이 있지만, 그 안을 세 하게 들여다보 면 보편성을 방해하는 단층현상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담론의 보편적인 흐 름을 추출하여 이론화를 시도해 보면서, 또한 이론의 일반화를 방해하는 요 인을 지적해 본다.
II. ‘비판의 방법론’으로서의 동아시아담론
동아시아담론은 탈냉전이래로 생성 전개되고 있는 지역주의이다. 지역주의 담론은 세 경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경로가 별도로, 혹은 둘, 혹은 모 든 경로가 결합하여 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 하는 경로이다. 이것은 탈서구적 지향과 동아시아의 문화정체성, 정치경제적 자주성과 서구에 대한 대안을 논하려는 지향이다. 둘째, 지역화 혹은 블록화 (blockization)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동아시아보다 선행적인 EU가 이러한 경향의 좋은 사례이다. 이러한 흐름에서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추 구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비판이론적 사고이다. 이 경로는 지역에서의 미완 의 역사청산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역사상 대국주의와 국가주의에 의해 침 묵과 희생을 강요당했던 지역의 소수자의 편에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타자화되고 주류인 강자와 다수에 의해서 억압과 배제, 소외와 착취를 겪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의사소통의 공론장에 등장시키 려 한다. 또한 이들이 보기에는 지역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강조한다고 하 여 그것이 다른 형태의 타자화의 기제, 동․ 서이원론의 대립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주로 국가에 의해서 주도되는 블록화(동아시아공동체) 는 동아시아에서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사회 의 다양한 주체들의 생활세계의 표준화를 강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적 인 경계심을 견지한다. 필자의 연구는 동아시아 근대의 역사청산, 대국주의 와 국가주의적 지향의 초극, 소수자의 배제에 대한 ‘비판주의’를 지향하고 있
다.
대체로 동아시아의 지식계와 국가의 담론에서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
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는 달라서 단시일에 공동체를 결성하는 데는 시기상조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담론은 현 단계에서 동아시아의 현상을 비판 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비판이론’으로서 더욱 적실하다고 할 것 이다. 즉, ‘비판의 방법론으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인데, 이것은 딜릭(Arif Dirlik)의 ‘비판적 지역주의’와는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다르다. 딜릭은 동아 시아의 지역주의를 과거 대국들에 대한 저항담론으로 삼으면서 과거의 권위 와 봉건성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한다. 즉, 본토주의(nativism)를 외부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삼거나, 동아시아지역주의를 서구에 대한 타자화의 기제로 삼지 않을 것을 논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 한다고 해서 동아시아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에 빠지지 않는 태도가 요청된다.
이러한 딜릭의 사고에 더하여, 필자가 의도하는 비판은 이보다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지며 칸트의 비판철학을 참조하고 있다. 칸트가 말하는 비판에 기 초한 철학적인 입장의 함의는 독단론 및 회의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 경 우에 비판주의는 자신만의 역사적 전통과 경험, 습관적 의식에서 나오는 논 리들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한다는 의미이다. 논평이나 평가가 아니라 이성 능 력의 음미와 검토를 의미하고, 이러한 성찰과정의 결여로 인하여 이성론은 이성능력을 과신하여 독단론에 빠지고 반대로 경험론은 이성에 대한 불신으 로 회의론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비판주의는 이러한 태도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통해 인식을 가능한 경험의 범위에 국한시키고 이 한계 내에 서는 인식의 성립을 인정하지만 이것을 초월하는 인식은 성립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인식을 형식과 질료(소재)로 나누어 이성적인 것을 형식으로, 경험적 인 것을 질료로 여기면서 비판주의는 양자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종 합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또한 경험의 한계를 초월한 경우에는 전혀 무 의미한 것은 아니며, 객관적인 인식은 성립되지 않지만 이상으로서 우리의 인식을 규제하는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이성과 경험, 사 유와 실천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어느 하나의 집착을 벗어나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담론을 지역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 구성해 내려는 이 론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비판의 방법론’으로 삼자는 의미는 동아시아담론에 서의 탈서구주의, 탈대국주의, 탈국민국가주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편향적 사 고에서 모두가 스스로 독단과 회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 성찰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심부에 의한 통합성의 담론, 주변부에 의한 저 항성의 담론 모두를 비판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동아시아담론이 취해야 할 이론적 지향은 지역의 현실적 경험영역과 미 래에 대한 비전을 상상으로 설정하는 두 경향에서 어느 하나에 대한 독단과 회의에 빠지지 않고 종합적으로 사유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는 칸트의 비판적 사유와 더불어 우리에게 ‘지적인 상상’으 로서의 동아시아에 대해서 다음 같은 경구가 다시 미래의 가능성을 시사해준
다. 즉,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가 말 한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래의 동아시아를 상상한다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하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담론이 지향하는 바를 실천이라는 주제와 연결시켜 논할 때, 어느 정도는 선험적으로 가치지향-규범과 당위성 추구적 태도가 불가피 하다 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그것을 비현실적이라 고 배척하지 말고 동아시아의 사고와 행동을 어떤 이상적인 방향으로 인도하 고 스스로 비판하고 규제하는 나침반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러한 반성적 태 도에서 접근해야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을 떠난 위치에 서서 동아시아에서의 ‘공동체적 정의’를 창출하고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를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III. 근대적 주체 찾기와 탈근대적 성찰
동아시아인들은 서세동점과 냉전시대를 통틀어서 서구 근대의 창조의 힘 에 경탄하고 파괴의 힘에 불행을 경험하였다. 서구 근대는 개인 주체의 자각 으로 시작되었으며 국가주의적 주체의 발견과 팽창으로 발전되었다. 냉전시 대까지 동아시아는 국가주의적 주체와 경제근대화를 우선시하고 열심히 모 방하고 받아들였다. 개인과 시민주체의 자각은 국가주의에 그리고 그것은 다 시 대국주의에 억압당하고 허리를 굽혔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대국의 노리개 였으며 그 축소판(miniature)이었던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체제와 경제위주의 근대화는 시민주체와 탈대국주의, 탈국가주의적 자기성찰에 시대적 전환 작 업의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이제 동아시아는 서구 근대에 대한 맹목적 모방, 대국주의에 복종하던 국가주의가 파생한 문제들에 대한 비판으로 탈서 구, 탈대국주의, 탈국가주의를 또한 외면적인 경제근대화에만 매진하던 태도 에서 내면화된 근대성의 자각으로서의 ‘주체 찾기’를 모색하게 되었다. 국가 주의와 부국강병의 서사가 위축시켰던 개인의 주체적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 고 서구와 대국주의에 억압당했던 내가 사는 동아시아지역의 주체를 역사의 중심무대에 올려놓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완의 근대성을 완성시키려는 개인, 시민, 지역 주체 찾기가 수반할 수 있는 문제점 을 동시에 사고하는 탈근대성을 보이기도 한다. 즉, 자신과 지역의 주체 찾기 를 모색하면서도 주체에의 집착으로 인한 타자화의 차별적 사고를 초탈하려 고 노력하는 것이다.
21세기 전환기의 동아시아의 자각은 근대성과 관련하여 몇 가지 토론주제 를 지역에 던져준다. 첫째, 근대성은 지역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것이며 또한 그것과 근대화의 분리적 사고태도는 타당한가. 둘째, 근대의 완성과 탈근대 적 성찰의 함의와 내용은 무엇인가.
첫 번째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동아인은 서구에서 생성된 근대성의
기준을 보편으로 삼아서 동아시아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하 여야 할까 하는 고민에 봉착한다. 즉, 이러한 문제는 보편주의와 역사주의와 의 관계문제이다. 이에 대해 본 연구는 보편성 안에서 각 국민국가 역사의 특수성을 포용하는 태도를 취하기로 한다. 신복룡(2011: 32)은 한 국가의 사 상사를 정리하는 데 세계의 보편성과 한국의 역사성 사이에서 다음 같이 설 파한다. “…서양과 한국의 이와 같은 차이가 마치 인간이 삶의 원형이 달랐 다거나, 또는 세계사의 어떤 보편성과 많이 다른 특수성이 우리에게 있었다 는 논리로 발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삶의 모습에서 다름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인이나 한국사상이 유별나게 특수한 것은 아니다. 서양인의 삶에서 우리 모습이 보이고 우리 삶에서 인류보편의 모습이 보인다. 더욱이 고대사로 거 슬러 올라갈수록 동서양의 삶의 모습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인류 보편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따라서 이 절에서 서구 학풍을 경계하는 것은 사상사의 연구방법론에 한정하는 것이지 삶의 특수성을 강조하려는 것 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계사 속에서의 한국, 동양사 속에서의 한국의 모습 을 찾아야 하며, 특수성이라는 족쇄에 자기를 가두어 둘 필요가 없다. 어디에 산들 사람 사는 모습이 그렇게 다르겠는가? 서구중심주의가 우리에게 드리운 그늘과 음습함을 제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외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질서 속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만의 특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파한다(신복룡, 2011: 44). 이렇게 사상사 연구에서 서구중심주의의 어두움을 제거한 보편성과 국가역 사의 특수성과 공통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항할 필요 없이 수용할 수 있다 고 주창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의 공간적 경계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또한 퀴세(Francois
Cusset)의 논지를 상기시킨다. 그는 프랑스 사상을 통해 지적인 자양분을 획
득했던 미국의 비판적 지성들의 저작이 프랑스에서 번역되고 있는 현상을 ‘회귀효과’로 표현하면서, 이렇게 지적인 공간의 경계를 무력화시키는 노력 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이론이 ‘탈맥락’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이론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그 탄생이 아니라 여행에 있으 며, 상이한 사회와 국가마다 탄생한 맥락을 떠나 다르게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을 지적한다. 때로는 실제 이론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끊임없이 재생될 수 도 있다. 그러나 퀴세는 “물론, 적어도 안목을 잃지 않고, 원래 이론과 텍스 트의 근본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동, 수용의 효과, 늘어나 는 오해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저는 특별히 반대 현상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 이길 원했습니다. 이동의 효과 덕분에, 혹은 원래 주장에 대한 첫 수신자가 아니었던 사람들의 발명품 덕분에 가능했던 근본 명제들에 대한 쇄신 혹은 확장인거죠. 다른 한편으로 시대에서처럼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푸코(Michel Foucault)나 들뢰즈(Gilles Deleuze)에 대해 다른 문화권들이 하는 것을 보면 내게 또 다른 시대, 우리의 시대(적어도 20년 정 도 그들 이후)도 다른 의미와 용도들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異문화간의 이동뿐 아니라 일시적 혹은 역사적인 이동 이기도 합니다.”라고 하면서 이론의 이동과 재창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교수신문, 2012/04/16; 퀴세, 2012).
이렇게 신복룡과 퀴세가 표명하는 지식의 경계성을 상대화하려는 시도, 그 리고 이론이 탄생한 공간을 떠나 오히려 다른 공간의 다른 맥락에서의 재창 조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안목에서 우리는 서구에서 유래한 근대성도 동 아시아에서 서구 중심주의를 소거한 측면을 공통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려 는 노력이 의미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출발한 탈근대담론 마저도 동아시아에 적용하여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의 적용에서 외래의 것과 자생적인 것을 과민하게 구분하려는 근본주
의적(fundamental) 태도는 근대화의 거대서사에 집착하던 태도와 유사하다. 외래의 것에 대한 자구와 의미의 정확한 번역에만 매달리는 것 보다 차라리 ‘반역적 오독’(문강형준, 2012)을 하기도 하고 혹은 실제로 적용하여 현실에 서 나타나는 현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외래의 것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한 후 탄생하는 혼종(hybrid)을 다시 왔던 곳으로 수출하는 지식의 회귀를 비롯한 끝임 없는 이동현상이 탈근대적 인 ‘지식의 탈경계현상’이다. 이런 이해에서 근대성과 근대화가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어떤 충격파를 생성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탐구하는 것 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다음으로 여기서 사용하는 보편적인 개념으로서의 근대성(modernity)과 근대화(modernization)를 별도의 개념으로 분리시켜 고려하면 무슨 차이가 나타나는가를 사유해 본다.
칸트(2009: 13)는 1784년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미성숙이란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다.’라고 설파한다. 바꾸어 말하면 계몽과 주체적 자아의 성숙 으로 표현되는 근대성이란 자신의 운명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 로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시아는 근대성에 관한한 칸트의 이 러한 통찰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당연히 외부에서 구성하는 주체에 의존하지 않고 고유의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주체는 이 러한 과정에서 내면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성의 보편적 기획인 계몽과 주체적 자아의 성숙은 타자화와 배제를 옹호하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
다. 더구나 근대화의 힘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타자를 폭력주의로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근대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칸트(2009: 34-38)는 ‘완 전한 시민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문제는 합법적인 국제관계의 문제에 의존 하며 이 후자의 해결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하면서 ‘국가들이 모든 힘을 쓸데없이 무력확장에만 낭비하고 있고, 내적교육을 통해 국민의 사고방식을 서서히 계몽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방해한다면, 또 국민으로부터 그러한 의도에 대한 모든 지지기반조차 빼앗아 버린다고 한다면, 도덕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시민의 계몽이 국가와 국제관계의 성숙 에까지 연결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원리는 동서양을 초월하여 적용 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칸트의 시민의 계몽과 주체적 자아의 성숙은 따라서 서구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서세동점의 시대의 서 구도 근대성으로 가는 성숙의 과정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21세기에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 근대성의 완성으로의 각성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칸트의 논리로 근대를 사고한다면 동아시아가 서구와 근대를 접했
을 때 근대성으로 대변되는 개인과 시민으로서의 계몽과 주체의 발견보다도 국가주의적 근대화-부국강병-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모방의 길로 매진했 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탈냉전이 되면서 동아시아가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면서 자각하고 성찰한 것은 그동안 맹목적으로 서구적 근대화의 기획 들-서구중심의 지식․ 문화 위계의식, 대국주의, 국가주의, 부국강병-을 모 방해 왔으며 개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주체의 발견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던 사실이다. 즉, 동아시아는 지식과 문화, 국가발전 이념과 전략 모든 방 면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서구에서 사고의 근거를 빌리 고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동아인은 서세동점에서부터 냉전시대까지 부국강 병의 꿈을 키우며 개인과 지역의 주체가 대국주의에 순응적인 국가주체에 의 해 억압당한 체 지내왔다. 이것에 대한 동아시아의 성찰은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의식운동으로 발전한다. 하나는 근대성의 보편적 사고에서 유래하는 개인과 시민주체, 나아가 탈서구의 지역주체를 발견하는 일이고, 다음으로는 그러한 주체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초극하는 것이다. 전자는 미완의 근대를 성찰하고 완성하는 일이고, 후자는 탈근대적 문제의식이다. 이와 같은 근대에 대한 동아시아의 초기의 태도를 인도 시인인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는 날카롭게 파악하고 비판한다. 그는 근
대화와 근대성을 구별하였다. 칸트의 가르침대로 라면 동아시아의 근대성은 마땅히 ‘서구의 지도와 모방 없이 생각과 행동에 주체성을 지니는 것’이다. 즉, 근대성은 주체적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 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평화주의자 였던 타고르는 근대가 창출한 민족주의와 지나친 애국심을 일종의 우상숭배 로 보는 지식인이었다. 심지어 조국인 인도의 독립운동이 국수적 민족주의로 빠져 드는 것을 경계하였다. 자연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의 위대함은 인정하였으나 민족주의와 전통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적 성향에는 회의적이었다. 그의 사상에서는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인도지배 의 부당성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서구 문화에 깃들어 있는 자유, 비판 정신 등에서는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근대화 가 생성한 팽창적 국가주의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서구 의 근대성에 내재한 주체발견의 장점은 별개로 인정하고 배우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동양과 서양문화의 상호보완성을 인정하는 융합적인 사 상을 가지고 있었다(Sen, 2006: 89-93, 105-107; 센, 2008: 109-138). 1916
년 타고르는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때 그가 목격한 일본이 보여준 부국강병 위주의 서구식 근대화는 자기 몸에 남의 것을 가져다 합성하는 것이었으며 근대성의 정수인 주체와 자유, 민주적 비판정신을 억압하는 체제였다. 그의 사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본은 분명 서구 근대화의 침략적인 측면만을 배웠지 근대성의 정수인 주체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와 비판정신을 배우지 는 못한 것으로 비쳐졌음에 틀림없다(Sen, 2006: 109-111). 그의 이러한 통 찰에서 유래한 비판은 당시 일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후 탈냉전이 될 때까 지 동아시아의 발전양상은 메이지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길을 밟아 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이미 서구에서는 자신의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 나고 있었으나 일본과 아시아는 아직 이것을 간파하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못 하였다. 서구에서도 근대적 사고에서의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적 사고, 과학 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숭배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있 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세기의 전환기에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의 ‘생명철학’과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의
‘민족자결주의’의 등장이 이러한 사조를 대변한다. 따라서 동아시아담론으로 찾아야 하는 주체는 단지 서구만의 근대성이라고 규정하고 범주화 할 수 없 는 ‘보편적’인 것이다. 즉, 근대성은 이미 서구만의 것이 아닌 탈경계적인 가 치이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 동아시아에서 생성된 동아시아담론은 이러한 부 재했던 근대성을 자발적으로 완성시키자는 지적인 각성이자 운동이다. 그것 을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청산이 필요하다. 따라서 동아시아담론은 중심부와 주변부 모두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하여 제국․ 식민의 의식구조 에 대한 자각과 해체를 지향한다. 그래야만 21세기 동아시아의 중심․ 주변이 라는 양대 구조의 해체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제국․ 식민의 의식구조의 극복과 해체를 통해 개인과 시민으로서의 주체 찾기와 지역에서의 탈대국주 의, 탈국민국가주의로 대변되는 탈근대적인 초국적 자아를 꿈꾸고 있는 것이
다.
근대성과 근대화의 차이에 대한 논쟁은 동아시아에 대한 비판적 사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주제이다. 동아시아에서 근대의 주체를 완성시키는 작업과 탈서구, 탈대국주의, 탈국민국가주의, 탈동․ 서양 이원론, 중심․ 주변의 탈위 계주의 등을 이루는 것은 같은 맥락의 작업이다. 타이완의 비판적 지식인인 천광싱(陳光興, 2008: 5-65; 1996, 73-139)은 이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타이 완 상황에서의 ‘탈제국․ 탈식민․ 탈냉전’ 의식운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러한 총체적인 지적․ 문화적 의식운동은 근대의 국가주의적 주체에 압도당한 개인과 시민의 주체를 되찾으면서 그것을 다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라는 타자화의 논리에 구속시키지 않고 탈근대의 ‘초국적이고 초자아적인 주체’의 길을 모색할 것을 지향한다. 이것이 세기의 전환기에 등장한 동아시아담론이 지향하는 지적인 상상이자 프로젝트이다. 동아시아의 문제는 서구의 근대가 대외적으로 팽창적 국가주의로 타락하면서, 그 내부에서는 비판적 탈근대의 사유가 싹트는 동안에도 동아시아는 서구의 어두운 측면의 근대를 철저히 모 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구에서도 근대에 대한 내적 인 성찰(반전평화주의와 탈식민주의)과 더불어 탈제국주의적 사고인 민족자 결주의가 등장하고 있었으며 당시 동아시아 근대의 선두주자인 일본은 이러 한 근대의 어둡고 밝은 양 측면 모두를 사고할 수 있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 었고, 여타 주변부는 일본의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경외와 증오의 두 시각으 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서구의 침략을 받으면서 제국주의를 최전선에서 경험하였다. 중화 를 전복시키려는 체계적, 문화적 충격에 고통을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과 쇠 락을 겪는다. 한국 등 주변부의 정체성은 중국보다 더욱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신속하게 서구적 근대화를 모방하고 매진하면서 국가주체로 서 시민주체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내적인 부조화를 주변부를 침략함 으로써 발산하였다. 일본의 ‘탈아론’은 서구로 진입하려는 자기정체성의 형 성과 주변부의 타자화를 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일본은 서구의 근대를 오로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과 부국강병에만 연관시키고 무엇이 그런 표면적 우 월성을 창출하였는지를 간과했다. 근대화보다는 근대성이 더욱 본질에 가까 운 것이라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근대의 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전자는 물질적인 진보를 후자는 정신적인 성숙, 개인이 자아를 주체적으로 활용하여 비판하고 발현시키는 능력이다. 또한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식민화 했던 일본이 메이지이래 현재까지도 자유스러운 사고를 억압하는 방식의 근 대화와 천황제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적 권위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개 인의 주체적 자아에 대한 자각과 발전을 이루었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일 본의 동아시아사고가 억압적이고 침략적인 성격(대동아공영권이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현상을 보면 자명해진다.
서세동점의 시대 중국을 근대와 관련시켜 보면 일본에 의해서 타자화 된
주변부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부상하는 중국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 로 편향적인 근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개혁이래로 빠른 속도로 지속되는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부작용, 그리고 국가주의적 정서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의 개혁은 국가주체와 물질적 번영에만 매달려 근대성의 시민주체와 비판정신을 간과하면서 억압하고 있다.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순간, 이러한 물질주의적 발전은 다중의 소비주의로 출구를 찾게 되면서 뜻 있는 자들의 허무주의는 팽배해지고 소수의 반체제인사들의 활동이 동시에 증대하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권위주의체제는 근대성의 발전을 억압하고 지 체시킨다. 동아시아의 소수자인 티베트와 타이완을 대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의 지배논리는 서구의 제국주의가 아니라 ‘다민족통합공동체’로 표현되는 중 화주의이다. 그리고 중국이 주장하는 역사적 피침략의 경험은 이들 소수자의 중화체제에의 편입을 해방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는 동아시아’ 시각에서 평하면, 중국이 따르는 것은 서구의 나빴던 근대적 제국주의의 발 현일 뿐이다. 국가주의적 주체로서 시민적 주체를 억압하는 것은 결국, 탈국 가주의와 탈대국주의를 지향하는 동아시아담론의 탈근대적 성찰의 시야에서 근대성의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서세동점의 시대에 일본의 신속한 근대화와 동아시아 연대주의에 호응하면서 식민화되는 치욕의 역사를 겪는다. 그러나 해방이 된 후에도 미국주도의 냉전체제에 부속국가로 편입되면서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주체를 찾지 못하였다. 미국의 비호를 받는 군사정권에 의해 급작스레 진행 된 경제개발로 근대화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자연적으로 미국 의 패권에 의존하는 국가주의적 주체는 개인과 시민의 주체를 억압하였다. 이러한 상태는 지식과 문화, 시민의 생활영역에서도 서구에의 의존성을 심화 시켰고, 따라서 근대성의 자각은 지체되었다. 탈냉전이 도래하면서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성찰과 자각을 하게 된
다. 서구에 의존하던 행태를 초탈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지역주체 찾기로 이어지고, 미국에 편승하던 것에 대해서는 탈대국주의, 부국강병에 매진하면 서 시민주체를 억압했던 것에 대해서는 탈국가주의를 주창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주변부인 한국에서 생성되고 주로 전개되는 동아시아 담론은 탈대국주의, 탈국민국가주의, 중심․ 주변의 탈위계주의적 지향이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농후하다.
동아시아담론은 이렇게 주체 찾기의 근대와 동시에 주체에의 집착을 초탈
하는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표방한다. 지구화와 정치경제적 다극화, 문화적 다원성의 세계에서는 주변부의 사고가 중심부와 동일하게 하나의 독립적 대 안으로 등장한다. 지리적인 실체적 경계의식은 여전하지만 지식과 문화영역 의 상상의 경계의식은 탈중심, 탈주변의 길을 가고 있다. 동아시아담론은 이 러한 근대적 주체의 완성과 동시에 주체의 집착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탈 근대적 문제의식을 동시에 사고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이중적인 기획은 서구가 동아시아에 전수한 근대(화)의 사조들을
일종의 동아시아인의 의식을 지배했던 ‘메타서사(meta-narrative)’로 규정하 고 그것의 극복을 지향하는 운동인 것이다. 탈근대성(포스트모더니즘)의 사 상가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는 근대가 언어게임과 서사(narrative) 의 규칙을 조직함으로써 진실과 허위를 판단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메타서 사’를 구축한 것에 대해 회의와 불신을 나타낸다. 이러한 메타서사는 ‘사변적 거대서사’와 ‘해방의 거대서사’ 두 가지로 대별되며, 인간의 삶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기제로 작용했다고 여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근대는 국가주의 적 주체와 부국강병의 거대서사를 창출하면서 인간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탈근대성의 추구는 성장과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가치부재의 현대사회에서 시장경제의 거대서사의 억압 을 비판하면서 세상을 좀 더 공명정대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이다(말파스, 2008: 50-55, 140; Lyotard, 1989: 409; 1994). 이러한 근대 의 거대담론을 비판하는 탈근대성의 비판적 문제의식은 인간사회의 일상적 인 삶을 중시하는 작은 서사를 복원시킬 것을 촉구한다. 동아시아담론은 이 러한 동아시아의 근대가 초래한 대국주의, 국가주의, 부국강병의 거대서사가 해방을 가져오기보다는 억압을 가져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개인과 시민, 지역 주체를 찾으려는 작은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한 이것이 새로운 타 자화의 기제가 되지 않도록 ‘초자아적 주체’를 구성하려는 탈근대성의 문제 의식을 표방하고 있다.
IV. ‘동아시아’의 함의-저항의 서사에서 유동하는 의식공간 으로
미완의 근대를 완성하면서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담론에 반영하려는 노력 은 동아시아의 함의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근대화 초기 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동아시아의 함의가 생성되어 전개된 것을 살펴보면, 서 구 근대의 메타서사가 규정한 동아시아의 고정적 개념은 그 시대적 서사가 점차 유효성을 상실하면서 탈근대적 유동성의 동아시아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담론의 논지들을 검토해 보면 그 함의는 ‘유동하는 의식의 공간’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서는 마치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동의(혹은 유목의) 철학에서 동아시아가 탈영토화(질서에서 일탈하는 일) 되어 재영토화(질서를 재구성하는 일)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21세 기 동아시아는 유동성, 탈중심, 분산적, 무지도자성의 리좀(rhizome)적 구조 로 생성되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근대의 위계적 질서를 상징하는 나무 가 아닌 뿌리줄기인 리좀은 무질서로 보이지만 질서를 추구하면서 생성하는 동아시아의 모습을 상징한다.
또한 리오타르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
력’논리를 탈근대론으로 가져온다. 그에 따르면 탈근대는 보편적인 기준이 주어진 상태에서의 ‘규정적 판단력’이 아닌 생소하게 느껴지는 어떤 문화와 의식, 특수한 경험을 ‘반성적 판단력’을 사용하여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이끄는 어떤 규칙을 찾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규칙을 찾아나서는 것이며 새로운 이론의 가능성을 여는 것으 로 파악한다(말파스, 2008: 178-182). 즉 동아시아담론은 근대의 거대서사를 떠나보내면서 보편적 기준이 부재한 가운데 탈냉전 이후 생성되는 지구화와 관련된 새로운 현상들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과 그 의미에 대한 새로운 규칙 을 찾아 나서면서 새로운 이론의 가능성을 여는 탈근대적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세동점과 냉전시대 근대적 메타서사의 맥락에서 ‘저항의 동아시아’ 가 21세기에는 탈근대적 유동성의 맥락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개념을 찾는 노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유를 동기로 삼아 ‘동아시아’의 함의를 찾는 여행을 떠나 보자.
‘아시아’라는 개념은 너무 막연하다. 이것은 지리적, 관념적 특성을 모두 내포한다. 지리적으로 아시아는 유럽의 동쪽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따라서 유럽은 서양(미국도 문화적으로는 유럽이기 때문에 서양에 포함된다)으로 아 시아는 동양이라는 통칭으로 불렸다. 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는 아시아의 동 쪽 끝인 극동(the Far East)이라고도 불렸다. 이 호칭은 서구 중심적이다. 그 러나 아시아에 대한 함의는 지리적으로 서구의 동쪽에 위치 한다는 단순한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즉, 관념적으로는 서구에 대한 비서구(서구가 아닌 모든 세계)지역을 나타내며 여기에는 서구보다 열등한 비문명지대라는 차별 인식이 배어 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구열강들은 거의 모든 아시아지역을 식민화하였고 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는 일종의 비서구의 통칭이었다. 그러나 아시아는 문화적 공통성을 거의 찾을 수 없는 다섯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교권 국가들이 주로 있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서남아시아, 중 국과 러시아 국경지대에 걸쳐 존재하는 중앙아시아, ASEAN을 포함하는 동 남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 몽골, 러시아의 일부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이 다. 이 중에서도 중국은 이 모든 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어느 한 지 역에만 속한다고 하는 단순한 분류가 힘든 위치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동아 시아담론의 한 주체인 중국 지식인들의 논리가 한국, 일본 지식인들의 것과 구별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는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말로 그 특성을 표현할 수 있다. 즉, 언어, 종교, 인종, 문화 등이 지역마다 다채로운 요리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양성을 논할 때 그 의미는 사고가 다양하다는 게 아니라 근대화의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서구와 비교해서 상호 불균등의 정도가 심하 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논하게 될 동아시아에도 적용되며 이렇 게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비교되었을 때 근대화의 양과 질적인 차이가 심 대한 것은 우리에게 복잡한 사상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아시아의 다섯 지역은 모두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에는 시
대와 왕조에 따라 산발적인 수준을 넘어서 역사적인 변동을 수반하는 문화, 정치, 경제적 상호관계가 거의 없었다. 아시아라는 상상의 집합체가 어떤 공 동의 역사적 경험과 사상적 지향을 다 같이 공유해 본적이 없었다는 의미이
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이 하나의 아시아로 통칭되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아시아가 하나의 통칭인 아시아로 불리는 이유는 한 가지, 아시아는 비서구라는 사실이다. 즉, 아시아는 서구의 대상으로 존재 하는 비서구로 분류되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은 무시되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구는 아시아를 식민화하면서 근대화의 실험과 업적의 과시를 위한 식민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일종의 자기정체성을 투사하는 거 울로 인식하였다. 이렇게 서구인들의 인식에는 대상화된 아시아주의라고 하 는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었다(Said, 1979). 따라서 우리가 아시아라고 했 을 때, 그것은 아시아의 적극적 정체성의 표현이 아닌 서구정체성을 확인시 켜주는 대상이거나 혹은 타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사이드(2008: 128-129; Said, 2006)는 서구 제국주의와 아시아 정체성 형 성 간의 연관성에 대해서 다음 같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체성은 우 리가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혹은 영적 존재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부과 하는 어떤 것이다. 문화의 논리와 가족의 논리가 여기에 더해져서 정체성의 위력을 증대시킨다. … 알제리와 팔레스타인 같은 장소를 볼 때, 정체성은 더 강력한 문화, 더 발전한 사회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짓밟 고 그 위에 자신을 부과하는 과정이다. 제국주의는 정체성 수출이다.” 여기 서 사이드가 지적하는 것은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목격되듯이 강자의 약자에 대한 정체성 수출은 억압적 방법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상업자본주의와 결탁한 문화수출 은 억압적 방법을 비억압적으로 보이게 한다. 서구의 제국주의는 아시아를 침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아시아라는 식민정체성을 구성했다.
아시아는 서구에 대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적실하지 않다. 서구에 대한 저항에서도 아시아의 분리된 지역 모두가 상대적이다. 중동은 저항하지만 인도와 동아시아에서는 저항이 중동에 비해 양과 질에서 다르고 국가마다 서로 상대적이다. 그래서 서구에 대한 저항은 공통의 배경과 지향이 되기 힘들다. 경제협력, 지적․ 문화적인 교류라는 측면 에서도 아시아의 다섯 지역은 미국, 서구와의 관계성이 양과 질적으로 차이 가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서구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으로 ‘아시아’라고 막연하게 통칭할 때는 여기에 동아시아와 다른 모든 아시아지 역을 포함하지만 분석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아시아와 동아시아를 같은 의미 로 사용할 이유는 희박하다.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도 원래는 없었던 개념이자 호칭이다. 근 대의 초기에 일본의 창안으로 생성된 ‘동양’도 오늘날의 동아시아가 아니다. 동양은 서양과 대비되는 아시아를 포함하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 동아시아 담론으로 구체화된 동아시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동아시아는 서세동점이래 로 국민국가, 민족주의와 함께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유동이 연동되어 생성 을 지속하고 있는 ‘상상의 공동체’ 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동아시아의 개념은 서구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하였다면, 탈냉전 이래로 전개되 는 동아시아담론에서의 동아시아의 함의는 지적․ 문화적으로 정치․ 경제적으 로 가장 구체적인 의미를 창출하면서 생성되고 있다. 탈냉전으로 시작된 21 세기 동아시아담론에서의 동아시아의 함의는 서구의 대상적 존재에서 벗어 난 ‘주체화된 동아시아’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고하는 동아시아는 철 저하게 탈냉전과 21세기의 산물이다. 즉, 동아시아담론은 탈대국주의, 탈국가 주의, 탈제국․ 탈식민․ 탈냉전의식, 미국 주도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동아시아적 대안 찾기의 문제의식에서 생성된 지적인 지향이자 운동이다. 따 라서 탈냉전 이전의 동아시아를 논하는 것은 오늘날의 동아시아사고로써 마 치 과거에도 같은 동아시아가 있었던 것처럼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동아시아담론에서도 서세동점의 시대에 생성된 동아시아의식과 논의에 서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은 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이삼성(2009: 86-116)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 중심에 중국을 위치시키고 고대로부터 서세동점의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동 아시아역사는 두 가지 경로를 매개로 형성된다. 하나는 중국의 중원 농경문 화와 북방 초원지대 사이의 갈등과 긴장관계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한반 도, 일본, 베트남을 포함한 남방과의 관계이다. 그는 전자를 중국-북방 축으 로, 후자를 중국-동남방 축으로 설정하여 서세동점의 시대 중화체제가 붕괴 하면서 일본이 중화를 대체하는 시대까지를 서술하였다. 그의 연구는 동아시 아의 정치와 국제관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중국과 북방유목민, 동남방인들이 21세기에 생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의식으로 자신들을 바라보았을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그가 사용한 동아시아 의 함의는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오늘날의 개념을 ‘이념형’으로 빌려서 사용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이러한 과거보기에 대해 민족주의를 예로써 두 가지 착각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오늘날의 민족주의 개념으로 과거의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거의 동류집단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 에서 오늘날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에 부여하는 의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 을 것이라는 주장이다(이삼성, 2009: 135-136). 이러한 양극단의 착각을 동 아시아의식에 적용하면 과거의 중국-북방 축과 중국-동남방 축이 오늘날 형 성되는 동아시아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없지만, 당시 양대 축에 존재하 던 정체성을 오늘 날의 동아시아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없
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동아시아는 과거 양대 축의 정체성을 근거로 하면서 새로운 상황을 매개로 하여 새롭게 생성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 내 릴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는 시간과 공간의 연동과 변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변화 생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 성의 주체는 동아시아를 타자로서 바라본 서구인이거나 또는 자신의 모습으 로 바라보았던 동아시아인이었다.
21세기 동아시아담론은 일종의 지적인 지향인데 그 인식의 범주에는 ASEAN+3가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즉, 새로 등장하고 있는 동 아시아의 의미와 함께 지리적 경계 짖기는 일반적으로 한․ 중․ 일과 ASEAN 회원국인 동남아국가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근래에 동아시아공동체구축에 대 한 논의에서도 이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동아시아를 아시 아와 혼용하여 표기하지 않고 하나의 분석단위로 여겨 동아시아로 확실하게 표기하고 지칭할 것이다. 서구 혹은 서양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사용할 때 에도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구분을 분명히 할 것이다. 예 를 들어 조선말기의 지식인, 일본의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들의 아시아라는 개념과 표기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동아시아를 실제적으로 지칭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현재의 동남아를 포함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호하다. 단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이념에서는 동아시아 3국과 동남아시아 를 총괄한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책의 표제나 논문제목, 연설문 등에 나오는 아시아 라는 표기는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인용하는 자료에서 나 오는 아시아라는 용어는 그 내용과 의미가 모호한 아시아보다 구체적으로 따 져서 동아시아를 나타낸다면 필요에 따라서는 동아시아라는 용어로 대체할 것이다. 즉, 우리들의 논의에서 동아시아를 매개로 한 경우와 아시아를 매개 로 한 경우를 확실히 구분하여야 한다. 모호하게 규정된 아시아보다는 세분 하여 구분된 동아시아를 다루는 동아시아사고, 동아시아학, 동아시아담론이 라는 개념은 ASEAN+3에서의 지식계와 정부주도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적절한 호칭이 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동아시아라는 호칭과 지리적 경계에서의 記標와 言表로서의 의 미와 더불어 동아시아가 지니는 起義를 고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동아시 아지역 국가들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과 의미는 일치하는 측면과 그렇지 않은 측면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지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동아시아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서 그들이 속한 국가의 동아시아 담론의 특성과 미묘한 상이점이 들어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상기의 논의대로 동아시아 자신에 의한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등장하
기 전까지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일종의 서구의 창안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딜릭(1993: 291)은 ‘아시아〮 ․ 태평양’지역이 하나의 지역으로 성립하는 과정을 살피면서 아시아가 유럽의 역사적 창안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
다. 특히 이 지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구축되는 모순구조를 강조하는 데, 이 모순구조는 “지역현실을 구성하는 인간활동의 공간적 시간적 움직임들을 물 리적인 범주들 속에 담아 들이고자 하는 하나의 추상적 표상”이라는 점을 감 안할 때 포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아태지역이 역사적 산물이자 세계체제 적 산물이며 더불어 아시아적 지향들이 뒤엉킨 구조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 부단히 변화해온 현실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며 그 경계와 구조가 끊임없이 유동적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는 오늘날 지구상의 지역구 분은 오직 팽창하는 유럽의 지리, 문화적 부산물이며 2차 대전 이후 미국패 권이 조성한 세계에 대한 지정학적인 구획화의 결과이다(이수훈, 2004: 224).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지역’은 강대국들의 ‘지적범주’이거나, ‘정치적 고안’ 아니면 ‘문화적 창안’이었으며 이런 용어들에는 공통적으로 이전에는 인식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의 일부가 새로 발견되었다 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따라서 2차 대전 이후 지역연 구(area studies)가 학문분야로 등장한 이래 미국이 세계적 패권국으로 등장 하면서 특히 비서구 지역들은 미국의 패권적 지배와 통제의 필요에 따라 자 의적으로 구획되고 정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유럽중심의 논리 를 적용하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명칭과 개념도 일종의 서구 ‘오리엔탈리 즘’적 인식에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과 21세기가 도래하면서 등장한 동아시아담론은 이렇게 수 동적으로 정의 내려진 동아시아개념을 거부하고 동아시아에 의한 동아시아 개념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김명섭(2005: 296-298)은 이렇게 새로운 동아시아개념의 모색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가 ‘극동’이나 ‘대동아’라는 개념을 어내고 정착되는 과정은 세계적 수준의 냉전 및 동아시아의 열전과 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파한다. 즉, 극동에서 동아시아라는 변화는 유럽중심적 권력 구조에서 미국중심적 ‘지식권력구조로의 전이’를 의미하는 데 그 과정에서 유럽이 만든 극동이라는 개념과 일본이 만들어낸 대동아라는 개념은 사라지 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동아시아는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함하는 프로젝트로 서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앞으로 더욱 널리 사용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민족 이 상상의 공동체이듯이 동아시아지역도 상상의 공동체일 수 있다면 동아시 아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미국주도의 제국적 평화를 넘어서 국제적 평화 를 추구하는 동시에 국가주의라는 함정을 피해서 초국적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결 국 탈냉전 시대의 동아시아담론이 표방하는 탈국민국가주의적인 신질서 구 상으로서의 동아시아공동체를 수립하려는 지적인 상상과 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아시아담론은 이러한 중심, 주변구도를 넘어선 ‘상상의 공동체’로서 의 동아시아에 의한 동아시아개념을 새로 창출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하고 있 다고 보여 진다.
특히 한국의 동아시아담론에서는 이러한 중심․ 주변의 탈위계주의적인 동 아시아개념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한국의 담론에서 동아시아개념은 역사적 으로 중국 중심의 중화체제, 일본 중심의 대동아공영권, 2차 대전 이후의 미 국 중심의 패권구조의 인식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특성이 잘 나타난다. 민두기(2002: 39)의 조망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21세기의 “새로운 지적인 상상의 공간(a space in a new intellectual imagery)”이란 함의를 가지고 있
다. 즉 동아시아는 단순한 아시아의 동부를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 ‘지향을 가진 지역질서’라고 하는 구상으로서 원래 미국의 고안이었던 지리 적인 개념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백영서(2004: 14)의 “동 아시아를 지역을 구성하는 주체의 행위에 따라 유동하는 역사의 공간”으로 파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개념은 지역을 구성하는 인간의 의식 적 활동에 비추어서 지역의 경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동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날 영위해 온 역사적 경험과 현대에 들어와서 두드러 진 민주화와 경제발전, 사회변화, 이에 따른 지역정체성의 자각을 포함한 인 간의 행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날 새로운 동아시아인에 의한 동아시 아가 생성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담론에서처럼 동아시아를 이렇게 ‘유동하는 의식의 공간’으로 그려 보면 탈냉전시대 미국패권체제의 퇴조와 중국의 등장이라는 세계사적 변화 움직임에 지역적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새로운 동아시아의 가치관과 역사인식을 세우려는 의식운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 다. 이러한 발상은 서구의 근대주의에서의 지역개념과 미국주도의 동아시아 의 냉전구도를 탈피하면서, 또한 중국과 일본의 중심부의 동아시아사고를 극 복하려는 노력을 동아시아담론에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동아시아개념은 서구의 창안으로서의 지역개념을 거부한다는 면에 서는 한국의 담론과 공감을 나타내지만 다른 면도 있다. 특히 중국지식인들 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들의 동아시아개념 형성과 나아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구체적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지식인들과의 교류에서 영향을 받 은 바 크다(허자오티엔(賀照田), 2009: 81-99; He Zhaotian, 2007: 466- 476).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지식계가 ‘중국 대 서구(China vs. the West structure)’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왔기 때문에 다른 동아시아 국 가들에 대한 위계적 인식을 떨쳐내기가 아직도 힘들다는 것을 나타낸다
(Chen Kuan-Hsing, 2002: 241). 이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 의 존재에 대해서는 서구를 향한 정도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중국적 세 계인식의 표현이다. 최근에 한국(및 여타 동아시아국가)지식인들과의 교류가 빈번해 지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접하고 상호토론을 전개하면서 드디어 그들도 아시아라는 막연한 통칭과 구분되는 동아시아문제를 인식하 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허자오티엔, 2009: 81-99). 다음 같은 논의에서 이 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신좌파이면서 자칭 비판적 지식인인 왕후이(汪暉)(2003: 245-246) 는 동아시아란 용어보다 중국에서는 아시아란 용어에 더 친숙하다고 밝히면 서 양자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 형성된 개념이라서 서로 다른 역 사적,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시아개념의 역사적 생성과 정을 분석하면서 19세기 유럽중심적 사상에서는 유럽의 세계사라는 역사의 틀 안에서 아시아개념을 세웠고 이로 인해 아시아란 범주를 유럽중심의 역사 적 목적론 속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혁명은 사회주의운동과 민 족자결권이라는 틀 속에서 아시아혁명의 의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의 제 국주의이념에서는 중국과 한반도 그 밖의 지역을 동양 혹은 동아시아란 범주 에 넣어 이들 사회의 실체의 주체성을 제거하였다. 따라서 왕후이는 중국의 경험에서 보면 동아시아라는 용어는 흔히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역사를 상 기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분석이 없이 막연하게 아시아와 동아시아라 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중국은 지역이 광활하고 다민족, 다문 화의 사회이므로 아시아라는 의미가 동아시아보다는 훨씬 알맞은 개념이라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시아라는 개념과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서로 대립시킬 이유는 없다고 하면서 양자의 호칭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사용 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서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고가 잘 대변하는 것은 중국학자들은 여전히 동아시아라는 용어보다는 아시아라는 용어를 더 즐겨 사용한다는 사실이며 이 둘을 구체적 으로 구분하여야 한다는 데 별로 문제의식이 없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되는 데 첫째, 상기에서 언급한대로 중국의 지리적 광대함에 비추어 볼 때 역사적으로 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서 상호교류와 갈등을 겪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동아시아의 범주인 ASEAN+3만을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기가 익숙 하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여전히 아시아와 분리된 동아시아라는 호칭과 개 념에 생소함을 느끼고 있다. 둘째로, 아시아라는 호칭과 개념에 동아시아를 함축적으로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구분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러한 모호한 동아시아의식은 21세기에 전개될 중 국의 동아시아담론에 중요한 전제를 던져 주고 있다.
중국에서 동아시아담론을 전개하는 쑨거(孫歌)는 왕후이보다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동아시아를 조망하고 있다. 그녀는 ‘기능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주 장한다. 그러면서 “동아시아란 실체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으며 탈냉전구조 속에서 동아시아인들은 긴급히 연대를 하지 않으면 미국에 대항할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孫歌/丸川哲史, 2002)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 한 그녀의 인식에는 동아시아를 일종의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 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동아시아에 관심을 두면 서도 ‘중국 대 서구’라는 이원적 세계관의 영향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 다는 사실이 잘 들어나 있다. 이러한 면은 중국의 동아시아담론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 다른 것은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왕후이가 언급한대로 중국은 지리적으로 광 대하여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행동반경을 가진 한국과는 이웃을 보는 시각 에서 동아시아를 넘어선다. 또한 중국은 오랜 기간 동안 동아시아뿐만 아니 라 아시아전체에 걸쳐서 중심국이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한 부분인 동아시아 에 대해서만 특별히 한정되고 집중된 인식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쑨 거는 중국인이 동아시아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잠재의식 속에서 중국을 아시아의 중심, 최소한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이 아시아를 논하지 않는 것은 탈아시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 라는 모호한 말이 가리키는 바에 내재화 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孫歌, 2000: 57)라고 하고 있다. 결국 서구의 중국침략이래로 오늘날까지도 중국은 ‘중국 대 서구’라는 이원론적 인식이 내면화 되면서 동아시아는 중국이 서구 에 대항하는 구조에서 하위체제인 종속변수로서 보는 경향에서 탈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중국과는 달리 아시아보다 동아시아를 더욱 강조하는 것은 근대 이후의 세계체제가 한국, 중국, 일본에 영향을 미칠 때 동아시아구조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전 아시아지역구조에서 일 어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그 성격도 다르게 나타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 히 한국의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동아시아구조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일 반적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지식계에서는 한․ 중․ 일 3국의 상호관계성은 동 아시아라는 틀 안에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들은 한․ 중․ 일을 주요 무대로 하여 지속적으로 영위된 역사적 경험은 분명히 존재하였다고 보 면서 그것을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정리하여 접근하고 앞으로의 발전전망에 시사점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일본 지식인들도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과 공통적으로 아시아라는 개념 이 유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일본 이 근대국가 형성에 여타 동아시아국가보다 앞서 나가면서 심지어 주변을 침 략하면서 새롭게 일본의 시각에서의 개념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사실은 중국과 한국에 앞서서 일본이 동아시아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앞섰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서세동점의 시대에 미쳐 서구에 대해 조직화된 저항을 하지 못했고 동아시아사고를 이론화시키는데도 실패 하였다. 따라서 비록 후일에 침략이론으로 귀결되었으나 일본의 동아시아사 고에 의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은 면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은 아시아라는 개념에 앞서서 ‘동양’이라는 개념을 먼저 사용했다. 일 본이 아시아라는 개념보다 ‘동양’이라는 개념을 먼저 사용하게 된 배경에 대 해서는 다나카(Stephen Tanaka)의 연구에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 중엽에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은 ‘도요 도도쿠, 세이요 게이(東洋은 道德, 西洋은 藝, 즉 技術)’라고 하면서 이 용어를 동양적 가치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였 고, 1880년대에는 ‘도요(東洋)’가 동쪽의 문화를 칭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서는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등에 의해 동양의 문화와 평화와 연관된 특징을 포괄하 는 반서양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다나카, 2004: 170-175, 193). 이렇게 ‘동 양’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일본은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의 변화들 즉, 중 화체제의 몰락과 서세동점에 대해서 독자적인 이념체계로 사고할 수 있는 언 어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질서와 능력 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시기에 일본은 동양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근대적 정체성과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동양사’라는 학문분야를 생성시 킨다. 즉, 東京大學 出版會에서 나온 東京大學 百年史 1권(1986)에는 “동 양사가 일본의 역사관을 수립했으며 도쿄대학 문학부 역사학과가 사실상 이
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다나카, 2004: 186-187 재인용)라고 호언하면서 일본이 ‘동양’이라는 개념에 부과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일본은 중화의 주변이었기 때문에 중화주의 인식론적 극복과 탈피를 위해
서 ‘동양’이라는 개념을 창안하는 게 필요했다. 그 후에 일본의 동양이라는 개념은 그 보다 우수한 서구의 창안인 ‘아시아’라는 개념에 의해 압도당한다. 곧 비서구를 가리키는 ‘동양’은 東道西器같은 문화와 사상적 개념으로, ‘아 시아’는 정치적으로 사용된다. 일본은 중화의 주변이었기 때문에 몰락하는 중심인 중화를 대체하는 중심이 되기 위해 중국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부 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두 가지 입장 즉, ‘脫亞入毆’를 통해 서구라는 중심 의 일원으로서 아시아를 초월하면서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사고와, 일본중심 으로 새로운 ‘아시아일체’를 이루려는 아시아연대주의 사고가 생성된다. 그 러나 결과는 양쪽의 입장이 ‘탈아와 흥아의 이중변주’로 변환하면서 아시아 를 침략한 대동아공영권이념으로 개화하고 말았는데 다케우치 요시미(竹內
好)는 이것을 비판하기를 모두 ‘사상’의 차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심정’의 차원으로 흐른 결과라고 하였다(고성빈, 2010: 221-261; 2012: 193-230).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2003: 35-36)는 ‘아시아’라는 지역개념에 대해 서 서구인들은 역사와 문명은 진보하는 것이 정상이고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 지고 있는데 스스로의 그것을 진보적이라고 보면서 이에 대칭되는 세계를 아 시아, 동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설파한다. 따라서 아시아라는 말은 원래 유럽에서 들어온 것이며 그들은 ‘동양적 전제주의’, ‘아시아적 공동체’, ‘아시 아적 정체’ 같은 관념을 만들어내면서 아시아나 동양은 역사발전의 정체이자 미개사회로 여겼다. 즉 지역으로서의 아시아는 우월한 유럽인들의 후진적인 타자로서 창출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야마무로의 논의에서도 유럽인의 시각에서 창출된 아시아라는 이해와 관 련해서한국, 중국 지식인들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이해 가 한국, 중국과 달라지는 과정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는 ‘주어진’ 아시아 와 ‘만들어진’ 아시아를 구분하면서 주어진 아시아는 유럽인이 창출한 아시 아이며, 일본은 이것을 자각하면서 스스로 만들려고 고투하였다고 논한다(山室信一, 2001: 1-7). 그에 따르면 일본은 근대화과정에서 주변의 아시아국들 에 대해선 경쟁 및 적대관계였는데 반해 서구에 대해서는 일체화를 추구해야 할 지역으로서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즉, ‘아시아와 일본’으로 대 자화되고, ‘아시아속의 일본’으로 즉자화 된 이중의 시각이 형성되었다는 것 이다(야마무로, 2003: 45). 야마무로의 논의에서도 알 수 있는바,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이중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960:
238-240)의 ‘脫亞論’과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983: 3-144; Okakura, 1903)의 ‘아시아일체론’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후에 이러한 양자의 아시아 이해는 점차로 일본 동아시아사고의 ‘脫亞와 興亞의 이중변주’를 형성하는 계기로 발전한다.
상기의 한국, 중국, 일본 지식인들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자국의
역사적 경험에서의 (동)아시아를 조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곧 아 시아’라는 중화체제에서의 아시아개념, 중화체제를 탈피하여 자신의 개념을 세우려는 일본의 ‘동양’개념의 창출, 중화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식 민화되면서 미처 독자적인 동아시아개념을 생성시키지 못한 한국의 경험이 그것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조망과 개념에 대한 3국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그들의 동아시아담론의 특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담론에서의 동아시아 개념은 동아시아가 하나의 지역 으로서 한․ 중․ 일 그리고 동남아가 포함되는 ‘지적인 상상의 공동체’로 새롭 게 생성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이것은 담론이 ‘지적인 상상’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동아시아’를 창출하자는 ‘목적론적인 함의’를 띄고 있는 것을 나타 낸다. 딜릭이 ‘프로젝트로서의 동아시아’로서 정의 내리자, 백영서는 ‘지적인 실천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제창한다(Dirlik, 1999: 186-188; Baik, 2002: 283-284). 또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2003: 103-104)는 동아시아를 내부의 문제와 외부인 서구를 대면하는 일종의 ‘방 법’으로 삼자고도 한다. 즉, 동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음으로써 ‘자국 자민족 중심주의’를 ‘상대화하기 위한 수단이고 동아시아를 국가 간 관계로서 실체 화하지 않고 생활자의 상호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 틀로서의 지역개 념’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개념화의 시도에서는 동아시아를 경 험적인 개념이 아닌 일종의 ‘이념형’으로 설정하여 서구적 근대와 모방의 역 사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방법’으로서 삼자는 논리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이념형으로서의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동아시아가 ‘실체’가 아닌 일종 의 끝없이 만들어지고 진화하고 있는 ‘생성’의 개념임을 말해 준다.
V. 지식인-시민 협력적 관계망과 공론장이론
동아시아담론은 근대의 대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면서 21세기에는 ‘지식인-시민의 관계망(network)’으로서의 협력적 지역연대를 주 창한다. 이것은 사실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하여 우
리는 하버마스(Jurgen Habermas)(2009, 2007)의 비판이론-공론장(public sphere), 의사소통행위론-에서 논리와 개념을 접목하여 이론화를 할 수 있을 지 시도해 본다. 이것은 유럽의 상황에서 나온 이론이긴 하지만 지구화시대 의 탈국민국가주의적인 상황에서 추상적일 수 있는 의사소통행위가 권력체 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지식인․ 시민의 비판적 의사소통행 위의 관계망이 체계의 행위에 영향을 주려는 동아시아담론의 이론화에 도움 을 줄 수 있을지 검토해 보는 작업인 것이다.
첫째, 우선 동아시아담론에서 지적인 상상에서의 ‘지역연대’라는 개념은 실 체로서의 공동체라는 기구와 지역의 ‘협력적 관계망(cooperative network)’ 이라는 개념 사이에서 모호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직까지도 지역연대의 형태 에 대해서 담론의 지식인들은 그다지 상세하고 분명하게 정의내리지 않고 있 어서 혼란스럽다. 일종의 유럽연맹같은 지역의 통합기구를 의미하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유럽은 두 번의 대전을 경험하면서 독일의 반성을 기초로 탈대국주의와 탈국가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적인 힘의 차이를 상대화시키는 동질의 지적, 문화적 수준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동아시아는 아직도 대국주의와 국가주의가 강하고 정치경제적, 문화 적으로 불균형하다. 따라서 유럽같은 실체적인 기구로서의 공동체가 구축되 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실 체적인 공동체’로 가기 전에 ‘인식의 공동체’를 먼저 구축하자는 주장이 나 왔다(백영서, 2008: 233). 이렇게 실체적인 것으로 가기 전에 인식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현실의식에서, 또한 담론이 분명하게 탈대국주의, 탈국가 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21세기 협력적 지역연대는 실체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협력적 관계망’으로 이해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다. 즉, 담 론은 지구화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지구화의 산물인 관계망을 적극 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일에 지식 인들이 탈대국주의, 탈국가주의를 주장하면서 국가라는 단위가 구성원이 되 는 동아시아공동체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논리적 모순이 될 것이다. 국가의 집합체로서의 공동체는 유동하는 의식공간으로서의 동아시아개념에도 배치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인식의 공동체’를 구축하자는 주장이 ‘지식인-시민 협력적 관계 망’과 접하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다음 같은 논리에 근거할 수 있다. 즉, 프레이저(Nancy Fraser)는 ‘관계망’에 대해 일종의 사회조직형태와 의사소통 의 하부구조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은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조 직을 유연성, 확장가능성, 탈중심성, 공간적 분산성과 연결시키는 능력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지구화 시대의 관계망은 초국가, 탈중심, 공간적으로 분산 된 것이며 탈국가적이고 무지도자적 통치상태를 나타낸다. 흥미롭게 프레이 저(2010: 216-217; Fraser, 2008: 128-129)는 이러한 관계망의 개념을 상기 에서 언급한 들뢰즈의 ‘유동성의 철학’에서의 새로운 통치성의 수단으로 해 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초국적 공론장’에서의 정의론을 탐구하면서 정의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구하기 위한 합의과정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그녀의 논지 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유추하면 동아시아지역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위해 기준 혹은 원리를 구하는 일은 공정한 과정을 통해 일종의 합의 된 정의를 도출하는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망의 시각에서 보면, 현재 진행 중인 국가주도의 동아
시아공동체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구상이다. 담론을 주창하는 지식인들은 현재 진행 중인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에 대해 마치 국가가 그들의 논지를 받 아들이기나 하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ASEAN+ 3(혹은 ASEAN+6)가 논의를 진행 중인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은 철저히 국가 가 주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지식인-시민의 관계망에서의 의견이 끼어들 여지 도 없고, 참여하는 각국 정부와 대표들이 지식인․ 시민의 목소리를 고려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지식인, 시민의 소리가 권력체계에 고려가 되었을 지라도 어 떻게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지 너무나 추상적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담론의 지향에 의하면 사실 국가주도의 동아시아공동체는 저항의 대상이다. 즉, 담 론이 지향하는 이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국민국가를 통하여 무엇을 구성하려는 것 보다 지역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대국과 국민국가가 주도하려 는 국가주의적 경향에 대해 지식인-시민의 협력적 관계망을 통한 비판 작업 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둘째, 탈국민국가주의적 지향에서 지식인-시민의 관계망을 형성하여 대국
과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은 이미 지구화시대의 특징이다. 특히 주목이 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지식인-시민의 관계망형성은 지구화, 신자유 주의가 서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동아시아의 대안을 모색하는 출 발점이라는 것이다. 즉, 탈냉전과 함께 90년대 중반 이후 동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동아시아국가들로 하여금 미국주도의 금융자유화를 수용하게 하 였으며, 지구화,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패권이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강요하고 지도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지구화, 신자유주의가 민간부문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면서 확산되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주도의 사 회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대국과 국가가 주도하는 지구화 에 대한 저항은 비판적 지식인, 시민 집단에서 나오게 되었고, 이들은 미국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는 주요한 동력으로 등장 하게 된 것이다.
셋째, 아직도 영토국가적 주권의식이 유효하긴 하지만, 지식과 문화, 환경,
인권, 반전평화, 핵비확산 등의 국제적 사안에 대한 지식인, 시민운동의 차원 에서는 탈국경적인 토론과 운동이 가능할 정도로 영토국가적 주권은 절대적 위치에서 상대화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인-시민의 관계망을 동아 시아에 구축한다는 것은 국경을 초월하여 공통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의사소통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초국적 지역공론장’을 형성 한다는 의미이다. 동아시아담론이 지역공론장을 구축한다는 것은 공론을 정 치화할 수 있는 장으로 가져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선 지식인-시민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초국적 매개를 확보하여야 한다. 이것은 동아시아담론의 지식인들 간의 교류의 매개가 되고 있는 저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창작과 비평, 중국의 讀書, 일본 의 世界, 타이완의 臺灣社會季刊 등이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이외에도 더 많은 저널과 혹은 세미나를 통해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그다지 어 렵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리고 진보적인 지식인, 시민단체들, 예를 들면, 일 본의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9조회’, 한․ 중․ 일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위원회, 환경단체, 인권단체 등이 지역의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를 향해 요구하거나 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넷째,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협력적 관계망구축의 형식적인 문 제가 아니라, 내용적인 문제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동아시아담론에 서도 토론이 부실한 것 같다. 우선 어떤 의제를 지역적 차원에서 ‘초국적 지 역공론’으로 채택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가치와 해석이 충돌 할 가능성이 적은 환경이나 경제 등의 문제를 제외하고 지역의 소수자 문제 를 포함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다. 즉,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문제, 타이완, 티베트, 오키나와에서의 유동하는 정체성이 야기하는 자치 혹은 독립추구문제, 한․ 중․ 일 공동역사교과서 채택 문제, 영토분쟁문제 등은 국가, 지식인, 시민단체마다 가치가 충돌하고 있어 서 초국적 공론장으로 가져가서 공론화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마저 갈등 을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담론에서는 북한, 타이완, 티베트, 오키 나와 문제 등이 주변부이자 소수자의 권리문제로 접근이 되고 있다. 대표적 으로 유장근(2004: 61-62)은 국가내부의 또한 동아시아지역의 소수자를 무시 하는 동아시아담론의 국가주의적 접근방식을 문제 삼는다. 중국과 일본에서 는 중심부의 시각에서 해석이 되고 있는데 왕후이(2011: 145-345; 汪暉, 2010)는 최근에 나온 책에서 티베트와 오키나와 문제를 비교하고 논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서구가 문제를 야기하고 선동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어떤 문제를 초국적 공론장에서 공론 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동아시아담론이 중점적으로 토론해야 할 과제 이다.
다섯째, 동아시아의 소수자문제를 공론화 했다면, 당사자들의 대표가 공론 장에 참여할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동아시아의 소수자인 타이완, 티베트, 오 키나와와 북한의 지식인․ 시민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초국적 공론장에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가를 타진하여야 한다. 즉, 이들을 대표하는 지식인, 시민들이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리오타르의 탈 근대성론에서 강조하는 사회가 ‘공정’해지는 것이란 다른 이들로 하여금 “공 정함에 대한 게임에 참여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차이를 조정하고 그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말파스, 2008: 99)이다. 이렇게 동아시 아담론이 지역에서 합리적으로 의사소통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초국적 공론 장을 구축하는 과제를 지향한다면, 다음으로 지역에서 공론장을 구성하여 얻 으려는 정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남는다.
여섯째, 다행히 소수자 문제를 포함한 특정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공론장으 로 가져갔을 때, 그 공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가 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담론은 형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국 가경계의 틀을 넘어서는 초국적인 담론이다. 따라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자연적으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적 시각을 넘어서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 다면 문제를 바라보는 주체는 첫째, 보편적 세계시민주의 입장을 택할 수 있
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모든 개인이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둘째, 동아시아 국제주의적 입장이다. 여기에는 영토적인 경계를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의 합 의를 존중한다. 셋째, 동아시아지역 내부에서의 초국경적인 비판적 지식인,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이것은 지역적 관계망을 가진 지식인, 시민단체가 집 단의 합의로써 내세우는 견해를 따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를 관 계망으로 가진 환경단체나 인권단체, 일본 평화헌법수호를 위한 ‘9조회’ 등 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상기의 입장들을 제외한 다른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역의 공론을 대하는 주체가 상기의 입장에서 어느 쪽 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론은 달라지 질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상기의 입장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또한 반전평 화주의적 입장에서 접근 할 수도 있고, 진보-좌파적 혹은 보수-우파적인 입장 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담론은 다루려는 공론의 성격에 따 라 선택하는 입장을 고정시킬 것인지, 혹은 유동적으로 선택할 것인지를 토 론을 통하여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담론은 공론의 ‘정당성’과 정치적 ‘유효성’문제를 사 고하여야 한다. 프레이저는 초국적 공론장에서 공론이 비판적인 기능을 유지 하려면 현재 제기되는 공론이 지역적 차원에서 공정하게 형성된 ‘정당한’ 공 론이어야 한다고 한다. 다음에 특정의 정당한 공론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 역 국가체계의 행위에 의해서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관료적 ‘유효성’으로 전환 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하버마스의 ‘의사 소통행위’와 ‘공론장’ 이론이 국가적 영토경계를 인식의 범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Fraser, 2008: 78-85). 그렇다면 어떻게 동아시아지역이라는 초국가 적 공론장에서 공론이 정치적 유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사고하는 작 업이 필요하다. 즉, 지구화가 초래한 초국가적 시대에, 어떻게 지역의 지식 인-시민의 협력적관계망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행위 권력’이 지역국가의 입법적․ 행정적 권력체계로 효과적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동아시아담론을 이론화하는 데 중대한 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동아시아담론이 고민해야 할 것은 많다. 우선 국내의
지식인과 시민사회에서 의사소통행위권력이 체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해 하는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살핀다. 예를 들어 신분적 위계, 출신지역, 인종차 별의식, 특수한 정치문화, 정치인과 관료의 부패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 를 추론하여 지역의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행위가 지역의 권력체계에 영향 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을 고려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문화적 차 이, 대국주의, 중심․ 주변부 간의 위계주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불균형 등과 같은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이다. 이론은 현실의 복잡함을 전부 포착하여 하나하나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 다. 동아시아담론을 이론화하는 데 많은 문제점들의 존재를 종합적으로 고 려하면, 아직까지는 동아시아담론이 어떤 실체적인 것을 구성하려는 이론으 로서의 가능성보다도 일종의 비판이론으로서의 잠재력이 더 큰 것 같다. 그 러므로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어떤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이념형으로 삼아서 현실에서 안 되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방법론’으로 삼는 게 더 바람 직하지 않을까. 그리고 비판적 사유에 내재한 방향성이 종국에 가서는 그것 을 실천하는 힘을 생산하기를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
VI. 주변부와 중심부 시각의 차이
동아시아담론에서의 일반적인 사조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하나의
큰 장애를 피해 가지 못하는 데, 그것은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시각이 다르다
비판한다.
는 측면이다. 동아시아라는 공통적인 출생배경에서 나온 담론을 세 히 쳐다 보면, 지식계에서든 국가적 차원에서든 지역의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공통적 인 지향을 이루는 게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차이도 존재한다. 이러한 분화는 서세동점의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되면서 21세기 담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중심부(중국과 일본)와 주변부(한국과 아 세안)가 동아시아를 인식하는 경향과 당시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그 이후로도 동아시아사고는 차이점을 내면화하면서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동아시아담론도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다른 측면이 있다. 동 아시아라는 공통의 구조에서 유래하는 측면과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상황에서 오는 차별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사 고가 중심부, 주변부로 나누어진 국가단위로 분명히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식인 개인에 따라 중심국에서도 주변부적 사고를 가 지고 있을 수도 있고 주변부에서도 희소하지만 중심부에 근접한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동아시아담론의 생성과 전개는 그 사고의 주체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떠날 수 없다.
21세기 동아시아담론에서 중심과 주변부에서 공통적인 것은 탈서구, 탈미 국, 탈냉전적 사고를 지향하면서 동아시아의 주체성을 구성하려는 측면에 있 어서는 거의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음 같은 몇 가지 차별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주변부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이중의 저항이다. 중심부와 비교해서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가장 현저한 특징은 이들에게는 서구는 물론이고 중국 과 일본 모두가 저항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자연히 동아시아를 주도해 보 려는 의사는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주변부 사고가 위계적 인 지역구도를 거부하고 ‘관계망(네트워크)’을 중시하는 유동성의 사고를 지 향하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탈대국주의와 탈국민국가주의를 주창 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구의 근대적 사상과 과학을 앞세운 서세동점에 대면하여 저항과 모방을
추구하던 시절, 주변부인 한국의 동아시아사고는 중국의 보호와 일본의 연대 주의에 편승함으로써 동양제휴론 혹은 동양연대론에 협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의 이러한 의존적 동아시아사고는 중심부의 동아시아사고가 주 변부를 배제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따 라서 중심부 사고에서의 서구에 대한 저항과 주변부적인 저항은 성격이 다르 다. 한국 등 주변부가 주창하는 담론에서는 서구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중국 과 일본의 지역패권주의에도 저항하려는 측면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한국과 타이완, 베트남, 오키나와 같은 동아시아주변부는 서구, 중국, 일 본 등 중심부의 영향력이 항상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왔다. 따라서 주변부의 동아시아사고는 중심부와는 달리 서구와 중국과 일본에 대한 동시적이고 중 층적인 저항을 전개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중심부에서는 주변부에서 유래하는 지적, 문화적 자산에 대한 인식 이 미약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사고가 제한적 이다. 이러한 언급은 중국과 일본사회에 문화적 다양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 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중국 대 서구’, ‘일본 대 서구’의 이원론적 사고와 또 한 지역 내부에서는 ‘중국 대 일본’의 이원론적 구도로서 지식과 문화체계를 획정하여 인식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편향적인 태도는 자연히 동아시아 중심부가 주변부의 문화와 지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의식 자체가 미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주변부에서 출발하는 동아시아사고에서는 중심과 주변의 문화적
자산 모두를 의식하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부 한국의 지식인인 조 동일(1996: 40; 전형준, 2005: 292)은 한국문학을 연구해서 얻은 성과를 출 발점으로 해서 세계문학을 이해하고 제3세계의 다른 중심들과 접한 유대 를 가지면서 세계에는 중심이 따로 없다는 ‘무중심의 원리’를 입증하고자 하 였다. 정재서(1996: 44-53; 전형준, 2005: 292, 재인용)도 동아시아신화를 연 구하면서 중화주의를 해체하고 신화시대의 다원적인 문화상황을 복원시키려 고 하는데, 이는 ‘탈중심의 문화적 사고’를 지향하는 시도이다. 이외에도 동 아시아 주변부로 분류되어 논의하게 될 타이완의 지식계에서도 탈중심의 문 화적 다양성을 논한다.
셋째, 주변부의 동아시아사고에서는 탈국민국가주의적 지향이 더욱 적극적 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21세기의 동아시아담론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근대는 국가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동아시아는 서구에 대한 저항과 모방을 동시에 지향하였다. 즉, 동아시아는 서구식의 근 대적 국민국가로 발전하려는 욕망을 실현하려고 함으로써 서구에 저항하려 고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베트남에서의 사회주의혁명도 일종의 근대의 국가주의 추구의 다른 모습이었다. 21세기 주변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동아 시아담론은 이러한 서구 근대를 모방했던 과거의 국가주의가 결국 대국주의 와 팽창적 국가주의인 제국주의적 발전을 가져왔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서양도, 동아시아도 그동안 ‘대국의 꿈’에 사로잡혀 왔다고 자아비판하는 것 으로 동아시아담론을 전개한다(白永瑞, 1999: 3). 특히 이러한 성찰은 중심 부보다는 주변부의 담론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넷째, 주변부의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간의 교류와 상호관계의 맥락 에서 보다 지식인․ 시민과의 상호 협력적 연대를 중심부에서 보다도 상대적 으로 더욱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심부에서 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 니다. 그러나 중심부에 의해 식민화 되거나 오랜 세월 동안 억압을 받았던 주변부에서 지식인․ 시민에 의한 저항의 역사적 전통이 아직도 더욱 많이 남 아 있는 것을 간과하지 못한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민중을 저항의 주체로 등 장시킨 것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시아 사회 주의운동은 강대국 간의 2차 대전으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전후 동 아시아에서 미국의 반공패권체제가 성립되면서 진보․ 좌파적 입장의 지식인, 시민의 저항운동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된다. 이때부터 공산화된 중국과 베트 남을 제외한 주변부에서는 복합적인 저항이 나타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미국 의 지지를 배후에 업은 권위주의독재정권에 대한 반독재민주화운동이며 동 시에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신식민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미국․ 일본의 반공동맹체제로 인해 청산되지 못한 동아시아의 역사문제와 관 련한 반일사조이다. 탈냉전은 이러한 동아시아 주변부의 진보․ 좌파적 전통 에서의 근대 국가주의적 폭력과 대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을 동아시 아담론의 논지로 다시 부활시켰다. 특히 이러한 비판과 저항운동의 전통으로 주변부에서는 국가주의적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수단으로 진보적인 지식 인․ 시민 연대를 주장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중심부보다 강하다. 이들은 21 세기 초국적 지역연대를 위해서는 우선 지식인-시민의 협력적 관계망의 역할 이 중심부의 위계적인 동아시아사고를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담론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서구에 대한 대안의 추구라는 공통적인 지향이 있음과 동시에, 지역내부에서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사고가 대조를 이루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심부의 지식계에서는 주변부적인 사고 즉, 탈국가주의와 탈대국주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논리들이 아직 내면화된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지역주의를 지향하는 정부 차원에서도 아직은 국가주의적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실 제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의 회원국문제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충돌했던 사 례를 보면 중심부에서 특히 국가주도의 동아시아사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심부인 중국과 일본은 과거 동아시아의 패권국들로서 주변부이자 피식
민지인 한국과는 다른 사고를 보여준다. 사실 동아시아담론은 한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생성되었고 지적인 상상의 주제들―탈대국주의, 탈국가주의, 관 계망으로서의 동아시아―도 주변부 입장에서 더욱 적극적일 수 있는 것들 이다. 한국 지식인들이 표방하는 이러한 지적인 상상의 주제들에 대한 인식 과 자각이 중국과 일본 지식계의 담론에서는 아직은 미약하게 나타난다. 미 국이라는 거대 패권국과의 경쟁을 의식하는 중국의 경우에는 ‘중국 대 서구’ 이원론적 세계관에 내면화되어 학문적 논리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며, 지역 에서는 일본과의 경쟁의식도 국가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지만 현실적으 로는 오히려 강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중국이 최근에 국력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세계적 패권지도국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일 것이 라는 예상이 학계를 풍미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예외주의적 사고’가 증대되 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예외주의는 주로 세계적인 지도패 권국가의 경우에 나타나는데 미국을 첫째의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질서를 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 분쟁에 적극적 으로 개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때로 무력사용을 하는 것은 일종의 국제사회의 윤리적, 사법적 질서를 세우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Hardt and Negri, 2000: 12, 34-38). 9 ․ 11 테러사건 이후에 미국은 아프가 니스탄과 이라크에 유엔 안보리결의를 무시하면서까지 군대를 파견하여 ‘테 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면서 이러한 예외주의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물론 도덕적 정당성 문제를 논외로 치고 보더라도 이러한 예외주의적 의식은 강대 국 특히 세계적 패권국의 경우에 나타나는 경향이 농후하다. 문제는 21세기 중국이 부상하면서 특히 동아시아에 이러한 예외주의적 사고를 점차로 증대 시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이러한 예 외주의를 중화주의적 사고에 이미 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의 지식계와 동아시아담론을 주제로 교류를 빈번히 하고 있는 왕후이, 쑨거 같은 지식인들의 논리에서도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예외주의적 인식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주동적으로 생성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담론에 중국지식 인들도 일부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외주의적 사 고를 어떻게 협력적 관계망을 지향하는 동아시아사고로 전환 발전시킬 수 있 을지 두고 보아야 할 과제이다.
21세기 일본 지식인들의 경우에도 대국주의와 국가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그것을 탈피하려는 논리들이 그다지 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특히 과거의 제국․ 식민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주변부인 피침략국 과 이해가 다른 부분이 많다. 우선 다케우치(竹內好)의 동아시아론은 역사의 구조성과 현상을 분리시켜 바라보면서 일본의 동아시아연대주의로서 서구에 대항한다는 당시의 구조성을 강조하면서 침략이라는 구체적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를 편다(고성빈, 2012: 193-230). 전후세대인 야마무 로(山室信一)와 요네타니(米谷匡史)는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일본과 중국, 한 국이 서구의 침략을 대면하면서 저항과 편승을 둘러싸고 일방적이 아닌 상호 폭력과 협력을 중층적으로 교환하였다는 ‘분리적 사고’를 보여준다. 또한 일 본의 사고에서는 脫亞入毆로 표방되는 일본의 근대 우등생의식(예외주의)과 중국과의 경쟁의식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亞주변부’의식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중심부의 동아시아사고는 동아시아 주변부에서도 존재하는 사상적 자원들을 보편적인 동아시아의 자산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경시한 체, 서 구와의 관계성의 맥락에서만 동아시아를 규정하면서 자국이 동아시아의 대 표라고 하는 독점적 동아시아사고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는 서 구가 동아시아를 자의적으로 개념규정하면서 우월적 위치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던 태도와 유사한 대국주의적인 사고에서 유래한다. 즉, 중국과 일본 의 중심주의는 서구에 대한 저항에서 동아시아가 생성된 주요한 동기였다고 규정함으로써 지역 내에서의 중심부에 대한 주변부의 저항을 희석시킴으로 써 주변부에서도 있었던 저항의식과 근대화에 대한 각성을 경시하고 있는 것 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서구만을 상대역으로 쳐다보면서 그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하는 중심부의 동아시아사고만 존중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주 변부 동아시아를 곁눈질하는 사고로는 편향적인 수준의 동아시아사고에 머 무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동아시아담론을 오리엔탈리즘에 대항 하기 위한 옥시덴탈리즘적 사고구조 속으로 집어넣고 단순화하는 것에 불과 하다. 이는 동아시아담론이 서구적 근대와 지구적 발전에 대한 동아시아적 대안을 모색하면서도 ‘서구 대 동아시아’의 이분법적 차별구도의 틀에 스스 로 묶이지 않는다는 논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태도는 동아시아담 론이 서구에 대항하려는 국민국가의 단순한 집합체의 연대주의가 아니며 오 히려 탈국민국가주의와 탈대국주의를 지향한다는 논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우리는 동아시아담론이 보편적 이론화의 길을 가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측면을 아직은 지적하는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차별적 인 시각을 뛰어넘어 모두가 동의하는 일반적인 사조를 아직은 찾을 수 없고, 서구가 두 번에 걸친 전쟁을 통해서 깨달은 탈대국주의의 교훈을 동아시아가 체감하고 실천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본 연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21세기 동아시아는 주변부의 인식과 담론 에 관심을 기우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부 지식 인들이 동아시아담론을 ‘지적인 상상이자 프로젝트’로 규정함으로써 미래의 발전 형태에 대한 무한한 토론과 소통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인 상상은 실천을 위해서는 문명론적인 사고와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 것은 지나치게 거대하고 사변적이라서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중 심부 국가들과 그 내부의 진보적이지 않은 지식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처음에 누군가의 지적인 상상에서 출발하던 프로젝트가 다음에는 누군가의 실험으로 실천의 길을 밟아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투고일자: 2012-06-16 심사일자: 2012-09-24 게재확정: 20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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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eoretical Essay on the East Asian Discourse
Ko, Sung Bin
Adjunct Professor, Department of Politics and Diplomacy
Jeju National University
The East Asian discourse can be defined as an intellectual campaign as well as an academic discussion, which tries to address historical issues in the region. The discourse still remains an intellectual imagination and is not yet developed into a matured thought or theory. This paper argues that the discourse is more effective as a methodology of criticism on regional issues than as an intellectual-civic campaign aiming at realizing some tangible results such as East Asian community or other political ends. With this in mind, this paper, firstly, tries to argue characteristics of the discourse, particularly in the analogy between incomplete modernism and post-modernism. Secondly, this study tries to define a concept of East Asia, discerning East Asian understanding of East Asia from Western one. Thirdly, it can be suggested that major arguments by the East Asian discourse be reexamined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Habermasian theory of ‘public sphere’ and ‘communicative rationality.’ Thirdly, the study points out some theoretical and practical setbacks that prevent the discourse from being developed into both a matured theory and a region-wide concrete vision based on a wide range of concurrence in East Asian intellectual-civic networks. These barriers are generally originated in a different understanding with regard to the regional issues among East Asians.
Keywords: methodology of criticism, post-modernity, meta-narrative, intellectual-civic network, supranational public-sphere
고성빈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제주도 제주시 제주대학로 66 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우) 690-756
Tel_064-754-2955 E-mail_ksb@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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