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1

[시인 김도언이 만나는 법] 대법원 상고심 판결 지연 피해자 박유하 교수

[시인이 만나는 법] 대법원 상고심 판결 지연 피해자 박유하 교수


[시인이 만나는 법] 대법원 상고심 판결 지연 피해자 박유하 교수
김도언 시인(소설가)

2023-07-10 03:59

내 삶을 계획할 수 없다는 고통





박유하 교수는 와세다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세종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사히신문사가 주관하는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화해를 위해서><역사와 마주보기>등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비롯, 나쓰메 소세키, 오에 겐자부로 등의 작품을 다수 번역하기도 했다)

위안부 해법 다룬 ‘제국의 위안부’ 명예훼손 고발 당한 후
학자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 정치화 되어 감정적 논쟁만…
大法에선 10년째 심리中 … “지연된 판결은 정의가 아니다”


2014년 6월, 위안부문제의 해법을 모색한 책 《제국의 위안부》가 <나눔의집>으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한 이후, 박유하 교수는 목하 10년째 묵직한 족쇄에 매인 삶을 살고 있다. (대법원 상고심은 6년째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피소 사태 이후 그는 국민적 화제 속에서 뜨거운 논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놓고 지식인 사회는 반반으로 나뉘었다. 일본에서도 지지와 비난이 교차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이 같은 주목은 박 교수가 전혀 바라지 않았던 일이다. 학자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정치화되어 감정적 논쟁으로만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정년을 맞은 박 교수지만 외양과 말투에선 ‘사양斜陽’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10대 성장기에는 불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고 했다. 일면 문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는 어떻게 한 사회를 집어삼킬 만한 논쟁을 촉발한 글을 쓰게 됐을까. 피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안부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민감한 정치적 화소話素인지 그가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연구자이고 학자로서 자연스럽게,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를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어요. 2000년 일본을 매개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반성적으로 돌아본 책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펴냈고, 2005년에는 절반 가량을 일본 비판에 할애한 《화해를 위해서》를 펴냈는데 이후 지식 공론장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국의 위안부》를 쓰게 되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나는 박유하이기 이전에 한국인이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구조적 강박에 대한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박 교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국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본의 사립명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대학에 진학한다. 이게 1970년대 후반의 일이었는데,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극히 드문 케이스다. 그래서 박 교수의 성장 배경과 환경 등이 궁금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수와 순천 분이었어요. 아마 여순사건 직후에 서울에 올라오셨을 거예요. 위에 언니 두 분은 순천에서 태어났고 오빠와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죠. 어머니는 은행원이셨고, 아버지는 내의를 만드는 사업을 하셨는데 한때는 신세계 백화점에 납품까지 하셨대요. 두 분 모두 교육열도 높으셨고요. 저학년 때까지는 형편이 괜찮았는데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큰언니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원까지 마친 후 외교관과 결혼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그게 중요한 계기가 되어 부모님도 생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셨고 그 와중에 저는 한국에 남아서 고등학교를 마쳤어요. 부모님과 언니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그게 동기 부여가 되어서 고민 끝에 일본에 있는 대학을 택한 것인데, 학원에 다니면서 한 달 속성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1년 정도 더 어학을 익힌 후 대학에 진학했어요.”








사실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공부를 잘했던 학창 시절, 일본은 박 교수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단다. 중학교 때,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관련 뉴스와 잡지 등을 통해 어렴풋하게 접했을 뿐이라고. 그런 그가 우연과 필연이 포개지면서 일본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데, 그때 선택한 학교가 게이오대학이다. 이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았다.




“사학 명문들인 게이오, 와세대, 아오야마가쿠인 세 군데 시험을 봤는데, 다른 학생들이 와세다를 많이 가기에 저는 게이오에 갔어요. 들어가서 알았는데, 게이오대학은 비교적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이더라구요, 상당히 열려 있었고 차별이나 편견이 없었어요. 또 게이오는 다른 대학과 달리 입학시험에 세계사 과목이 있었어요, 그것도 마음에 들었죠. 게이오대학 다닐 때 자유롭게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불문학사, 러시아문학사, 음악 같은 것들이었죠. 제가 유학생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학내 커뮤니티에 참여를 하기도 했어요. 그들의 별장에도 놀러가기도 했지만 일본 학생들의 주류 세계에 편입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늘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녔지요.”




확인해 보니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설립자는 그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이고 학교 표어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vs Gladio Fortior’다. 나는 이것이 훗날 박유하 교수가 걷게 될 간단치 않은 지식인으로서의 길이 어떤 식으로든 암시된 게 아닌가 하는 비상한 느낌을 받았다. 인문적 통찰과 경세적 감각으로 일본 근대를 설계한 인물이 설립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박 교수의 내면에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근대적 가치나 민족주의의에 대한 특유의 첨예한 감수성의 맹아가 싹튼 건 아니었을까. 그후, 그는 펜을 무기 삼아 제국주의와 가부장제라는 폭력의 칼날에 맞서지 않았나.




게이오 대학 시절을 민들레홀씨와 같은 방외인처럼 지낸 박 교수는 일시 귀국해 결혼을 하고는 와세다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일본 근대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러곤 일본 근대문학의 대부격인 나쓰메 소세키를 주제로 박사 논문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쓴다.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그의 지적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 그러면 박 교수는 나쓰메 소세키의 어떤 지점에서 민족주의 비판의 모티프를 보았던 것일까. 사전에 질문이 전혀 공유되지 않았는데도 막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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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들어갈 즈음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나쓰메 소세키가 만주와 조선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가 있는데, 제가 읽어보니 민족주의적 우월의식과 계급의식 같은 게 있었어요. 예컨대 중국인을 비웃는 대목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걸 문학적 해학이나 유머라고 해석하고 있더라구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죠. 또 《마음》이란 소설도 남자의 관점이 지배적인 작품이었고요. 여성 차별적 시선이 있었던 거죠. 당시 일본 지식인 사회엔 민족주의 비판이 조금씩 대두되고 있었는데, 저는 문학 연구자였기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일본 민족주의의 정체성을 보게 되었던 거예요. 소세키가 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시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민족주의 비판은 제국주의 비판과 유리돼 있었어요. 사실 그 둘은 다른 것 같지만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동시대를 사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내가 박 교수의 저작들을 나름대로 잘 따라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의 위안부》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제국’은 남성 중심의 젠더의식에 대한 비판적 함의가 깔린, 거대한 메타포처럼 내겐 읽혔다. 다시 말해, 박 교수가 일련의 저술을 통해 비판하고자 했던 건, 남자로 표상되는 국가주의, 나아가 제국주의의 가부장적 지배와 폭력이고, 사실 이것은 일제시대뿐 아니라 인류 역사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돼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위안부를 동원하는 과정에는 학자들 주장처럼 “강제적”인 것도 있고 “자발적”인 것도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특히 자발적이라는 주장은 박 교수가 직접 한 것이 아니고 인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민족적 자존이라는 당위에 갇혀 일본에 뿌리 깊은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런 프레임에서 자신의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소신 발언을 한 한 학자의 양심을 반민족인 것으로 타기한 것은 아닐는지.


박 교수에게 《제국의 위안부》가 나눔의집에 의해 고발되었던 날의 기억을 물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고발을 당한 날짜가 2014년 6월 16일인데, 15일 일요일 아침에 지인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알려주셨어요.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목이 막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책을 낼 때마다 긴장을 하긴 했지만 고발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모종의 징후 같은 건 있었어요.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몇몇 호의적인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또 어떤 일간지에서는 인터뷰까지 했는데도 기사가 나오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조금 이상한 느낌은 있었어요.”





‘제국의 위안부 사태’ 이후 박유하 교수를 지지해온 측에서는 그가 고발을 당한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특정 지원단체가 움켜쥐고 있던 정치사회적 기득권과 이익을 박 교수가 침해하려 들자 맛보기로 응징한 것이라는 해석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책이 나오고 가만히 있었으면 고소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책이 나온 이후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뵈러 갔고, 그리고 할머니들과 친해지게 됐어요. 그리고 할머니들을 접촉하면서 만든 어떤 영상을 심포지엄에서 틀기도 했어요. 그게 제가 고소를 당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머니들을 만났던 이유는 정말로 할머니들이 무얼 원하시는지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 할머니들이 진짜 원하시는 게 뭔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나눔의 집 측은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자기들 말고 다른 사람이 할머니들을 접촉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걸까. 고소를 하면서 그들이 가처분 신청을 한 내역 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박 교수의 접근 금지도 있는 걸 보면, 자신이 할머니들을 만났기 때문에 고발을 당했다는 박 교수의 추정은 충분히 합리적인 듯싶다.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당시 기소가 있기 전 검찰 주관하에 조정위원회가 있었다고 했다. 조정위원회가 박 교수에게 제안한 조건은 이미 법원의 가처분 명령에 의해 펴낸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원고측 신청을 법원이 일부 받아들여 초판본에서 34곳을 삭제하고 출판한 판본)을 아예 절판할 것과 당시 일본에서 출간 준비 중이었던 책을 초판본이 아닌 삭제판으로 내라는 것이었다. 박 교수는 학자의 양심상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2015년 2월, 삭제를 인용하는 첫 가처분 판결이 나왔을 때 저는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었어요. 그때부터 재판에 대해서 낙관을 거둬들이게 되었어요. 법원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주리라는 믿음이 사라졌다고 할까요. 가처분 판결 때 결과를 낙관한 변호사가 법정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안 나갔는데, 그게 불찰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이 사건은 2015년 11월 검찰 기소로 이어졌고, 2017년 1월 1심에선 무죄, 10월의 2심에선 유죄가 선고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교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결은 물경 6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사법부 구성원으로부터 폭넓은 존경을 받는 이인복 전 대법관은, 2022년 9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유하 교수 사건 같은 경우는 대법원이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고 무죄 취지 파기환송을 함으로써 한국의 사법부가 학문과 표현이 자유를 옹호한다는 걸 보여줬어야 한다고 소신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지금 대법원의 판결 지연에 따른 대표적 인권 피해자라는 게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의견인데, 당사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혼자만 정지된 시간 속에 남겨진 느낌이에요. 해방감이 전혀 없어요. 거취를 정할 때도 늘 구속을 당하는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려면 여론이 받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심 판사의 임기가 내년이면 끝나는데 결국 그때까지 안 나올 공산이 클 것 같아요. 저는 이미 대법원이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판결이 나오든지 저는 내가 무죄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판결이 나오려면 문재인 정부에서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법원장이나 담당 판사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분들이잖아요. 지금 정부에서 판결이 나오면 그게 어떤 판결이든 정치적 판결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제국의 위안부》 사건은 인간의 양심과 소신,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지적, 문화적 성숙도와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이슈임에 틀림없다. 이 땅의 법률가와 법조인들에게 《제국의 위안부》 사건과 그 법적 처리 과정에 대해 할 얘기는 없는지 마저 물었다.

“작년에 쓴 책 《역사와 마주하기》에서도 했던 말인데요.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국의 문제로 봐야 해요. 검찰이나 법원에 계신 어떤 분들은 이걸 계속 전쟁범죄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아요. 법이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그래서 정말 중요하죠. 그리고 법이 지나치게 정치화될 경우 개인의 삶을 옭아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박 교수는 결코 바라지 않을, 다소 감상적인 표현일 수 있는데, 익숙하고 수월한 세상의 질서나 힘에 기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불온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고아孤兒의 영’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고아의 영혼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대신 자유로운데, 그 자유로움으로 우리 사회가 말하지 않고 보지 않았던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에게 사회적 핍박과 처벌이 가해진다면 (부모의 권위에 물들지 않은) 고아의 드물고 자유로운 시선과 목소리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순간 ‘꼰대’로 전락하는 일이다.

“아무런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 저의 삶을 제가 준비할 수 없다는 게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실체 없는 안개 사원 같은 대법원의 판결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박유하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자신에게 도래할 삶을 상상하고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지에의 자유로운 열정으로, 또는 정리와 충전과 모색으로 충만해야 할 시간을 차압 당했다는 것은. 우리는 이 해괴한 가해의 유력한 목격자이며 공범이 될 것인가.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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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 
김도언작가가 제안하고, 찾아 와 긴 시간 들어주고, 난삽한 얘기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인터뷰.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사람에게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자신에게 도래할 삶을 상상하고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지에의 자유로운 열정으로, 또는 정리와 충전과 모색으로 충만해야 할 시간을 차압 당했다는 것은. 우리는 이 해괴한 가해의 유력한 목격자이며 공범이 될 것인가.”

김도언 작가는 고발 당했을 때 치열하게 함께 싸워 준, 오래된 동지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페북에서 만난 귀한 인연이 이렇게도 결실을 맺었습니다. 
[시인이 만나는 법] 대법원 상고심 판결 지연 피해자 박유하 교수
LAWTIMES.CO.KR

2014년 6월, 위안부문제의 해법을 모색한 책 《제국의 위안부》가 <나눔의집>으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한 이후, 박유하 교수는 목하 10년째 묵직한 족쇄에 매인 삶을 살고 있다. (대법원 상고심은 6년째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
55 comments
Park Yuha
김도언 이상하게 본문에서 태그가 안 되어서 여기 붙여 둡니다.
Reply22 hEdited
Dohyung Kim
적어도 김 작가를 인터뷰어로 둔 것은 행복한 일이네요.
Reply22 h
Park Yuha
Dohyung Kim 그럼요. 행운이죠.
Reply22 h
Dohyung Kim
저도 게이오 미타캠퍼스에서 1년 공부했으니 저의 게이오 선배네요.
Reply22 h
Park Yuha
Dohyung Kim 아하. 선배인지 후배인지 담에 따져봐요.^^
Reply22 h


Jin Young Oh
제가 좋아하는 두 분의 만남이 어떤 기사로 나올까 기대가 컸는데 역시👍 !!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하는 훌륭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Reply22 h
Park Yuha
오진영 글 잘 쓰시는 오작가님이 보장하는 인터뷰,가 되었네요.^^
Reply22 hEdited
허리미
박유하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 상태가 슬럼프라 댓글도 못쓰고 늘응원만 합니다.
Reply21 h
Park Yuha
허리미 별말씀을요. 마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ply21 h
이충원
오진영 오늘부로 김도언 작가님 찐팬이 되기로 ㅎ
Reply16 h


김종민
반드시 대법원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Justice 라고 하니 존재의 이유를 대법관들이 증명해야 합니다.
Reply22 hEdited
Park Yuha
김종민 지금은 그냥 해방만 시켜줘도 감지덕지입니다. 형사가 끝나도 민사, 가처분 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10년 안 채워주면 좋겠어요.
Reply22 h
김종민
박유하 곧 좋은 결과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힘내세요 ~
Reply19 h


Seung Cheol Ahn
사람들이 많이 알아야 해요 정말
Reply22 h
HyunCheol Park
좋은 인터뷰라고 하기엔 답답한 현실이 숨막히게 다가오는거 같아요. 박유하이기 이전에 한국인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 제게도 다양하게 번역되어 들리는 거 같아요. 제 페친들 중에는 공유해도 얼마나 공감을 얻을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공유할게요.
Reply22 h
Park Yuha
박현철 세상은 보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요. 공유 고맙습니다.
Reply22 h


Jong Hyun Kim
"나눔의 집 측은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자기들 말고 다른 사람이 할머니들을 접촉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걸까"
인터뷰 기사
행여 놓친 글이 있나 싶어서 몇 차례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위에 옮겨놓은 글이 사실 일거라 사료됩니다.
저들의 밥 그릇이 치워질까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이중 삼중 철저하게 앵벌이 하려는 천박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 더는 뭐라 폄하 하기도 귀찮습니다.
건강하세요^^
Reply22 h
Park Yuha
Jong Hyun Kim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ply21 h


최영선
게이오 대학 선배이심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어판으로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않았습니다. 논지(시각)를 여러 잇슈를 통해 알고 있어서 사실 선뜻 읽기가 두려웠어요.
교수님 페북 글에 비치는 젠더의식과 표면상으로는 반대에 있어서, 그 의문점을 조금씩 용해해 가고 있어요(학문적 시각의 자유는 존중 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시간을 들여 읽어 보겠습니다.
교수님 글은 한정언어가 아닌 정밀어(elaborated)의 백미를 느끼게 해 주시죠.
온화한 표정의 사진도 같은 맥락이시고요.
Reply21 h
Park Yuha
최영선 반갑습니다.^^ 책도 읽어 주신다니 감사하고요. 긍정적 시선과 괴리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Reply21 h


Jinyong Park
와! 매번 느끼는거지만 김도언 작가는 글을 참 잘 쓰세요. 어렵지도 않게 귀에 쏙쏙
Reply21 h
Park Yuha
Jinyong Park 명징하죠.^^
Reply21 hEdited


우영동
반일이 국시인 나라에서 결국엔 역사의 법정에 맡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직 이땅은 후조선시대의 연장이라..
Reply21 h
Jimin Kang
인터뷰 기사 보면서 먹먹하고 눈물난건 오랜만이네요 교수님, 시인님 두분다 감사합니다
Reply20 hEdited
Park Yuha
Jimin Kang 고맙습니다.
Reply19 h


Jang-Won Choi
‘나는 나 개인이기 이전에 한국인(또는 일본인)이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구조적 강박의 두 나라....기사 글 잘 읽었습니다.
Reply20 h
Park Yuha
Jang-Won Choi 최선생님은 더 잘 이해하실 걸로.
Reply13 h
Jang-Won Choi
朴 裕河 제가 멀리서 조용히나마 응원드리는 이유입니다
Reply12 hEdited


김규원
잘읽어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원하시던 결과가 올것임을 의심하지않습니다. 한국사회가 점점더 성숙함을 지향하니까요. 부디 힘내시길.
Reply19 h
Park Yuha
김규원 김선생님 믿음에 묻어가 보겠습니다.^^
Reply13 h


권해진
참 글을 잘 쓰시는 작가분과 인터뷰를 하셨군요. 모두 공감합니다. 대법원이라는 거대한 법률가들이 정치앞에선 한낮 조무라기로 보이는건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연히 인천 배다리에서 교수님 뵌지가 그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곧 바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늦었지만 ...
Reply19 h
Park Yuha
권해진 네, 아마 직후일 겁니다. 오래 됐네요^^
Reply13 h


Kibum Sung
저번 중앙일보 컬럼 이후 또 지면으로 뵈었습니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꼭 명심해야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면의 절반이 교수님 인생 여정에 관한 것이라 뜻깊게도 읽었습니다
May be an image of 1 person and text
Reply18 hEdited
Park Yuha
Kibum Sung 아 이렇게 나왔군요.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Reply13 h


김수영
인터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척 아렸습니다. 김도언 작가님의 차분한 행간에 선생님 삶에 패였을 울퉁불퉁한 고랑이 느껴졌습니다.
Reply17 hEdited
Park Yuha
김수영 마음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ply13 h


오승엽
악랄하고 비열하게
법을
정치에
교묘히
써먹은 폐해를
혼자서 당하신 듯하여
대한인일 수밖에 없는
일 인으로서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입니다.
교수님과 작가님께 응원과 존경의
말씀 올립니다!!
Reply15 h
Park Yuha
오승엽 마음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ply13 h


Hyonggun Choi
인터뷰 기사 잘 읽었습니다. 아주 공감되는 좋은 글입니다. “인간의 양심과 소신,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법정에 올리는 만행이 다시 있으면 안 되겠지만, 제대로 판결이 내려져서 역사에 남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법원까지 상고한 꼿꼿한 뜻에 걸맞는 외유내강의 부드러운 사진까지 아주 좋습니다. 하하 좋은 소식은 천천히 옵니다!
Reply13 hEdited
Park Yuha
Hyonggun Choi 네, 인터뷰어가 워낙 멋진 분이어서 가능했죠.
Reply13 hEdited


이영송
박 교수님과 학문과 재판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평강을 빕니다
Reply12 h
Park Yuha
이영송 감사합니다.
Reply6 h


Dongjin Kim
신속히 재판받들 권리마저 앗아간 한국판 뒤레퓌스 사건입니다. 예비 법조계가 나중에는 공부해야할 사건으로 잘 기록해야합니다. 무죄는 물론 존경까지 받으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Reply11 hEdited
Park Yuha
Dongjin Kim 마음, 고맙습니다.
Reply6 h


이창우
https://naver.me/GcWeJQRg
김도언 시인이 작년에 인터뷰한 이인복 전 대법관의 말씀.. 박유하교수도 진보적인 분인데 진보적인 분들이 이분을 비판하는 것을 보고 한국 지식사회가 이렇게 취약하구나 무죄취지 환송판결을 하고 논증을 멋지게 하면 대법원 위상이 올라갈 것.. 에서 최근 교수님이 굳이 정체성을 따진다면 진보라고 밝히신 글이 오버랩되면서 새삼 이 전대법관님의 혜안에 탄복하였습니다
[시인이 만나는 법] 이인복 전 대법관… 무위와 무심의 강렬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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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이인복 전 대법관… 무위와 무심의 강렬한 힘
[시인이 만나는 법] 이인복 전 대법관… 무위와 무심의 강렬한 힘
Reply9 h
Park Yuha
이창우 네, 이 분은 책만 읽고 하신 말씀이었죠. 제대로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발간후 첫 신문서평이 경향신문이었던 것도 그래서였을거구요.
Reply6 h


윤종만
얼마 남지 않은 김명수 대법원 시대가 끝나고 무죄 파기 환송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무삭제판 꼭 다시 출판되면 사서 가지고 있는 삭제판과 비교해서 읽어 볼 날 기대합니다.
Reply6 h
Park Yuha
윤종만 확신하는 마음에 감사드려요. 책에 대한 마음에도요.
Reply4 h
이창우
윤종만 불법체류자 노조설립 사건에 대해서 무려 상고 후 선고까지 8년이 걸린 이유에 비추어 볼 때 박교수님 사건의 경우 주심대법관이 상고기각(유죄)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학문의 자유 압살 등 비판을 받는 것이 싫고 그렇다고 파기환송(무죄)해주기도 싫어 장기간 묵히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만약 이렇게 대법관 개인 사정으로 재판을 장기간 방치하여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박교수님 사건도 주심대법관등이 임기만료되면 종결의 실마리가 풀리려나요 그러더라도 박교수님 지적처럼 만시지탄입니다
May be an image of map and text
Reply1 hEdited
Park Yuha
이창우 바로 그게 이유일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연구관들은 무죄로 올렸다고 들은 적도 있습니다.
Reply1 h
윤종만
이창우 상세한 설명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저는 김명수 체제하에서 유난히 장기로 끌고 가는 사건이(대법원 뿐만 아니라 1심, 2심에서도) 많은 점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나쁜 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Reply1 h


이지숙
우리는 밥만 먹고...
시인은 선생님 맘을 시원하게 털어놓게 하고...
선생님,
우리 또 밥 먹어요~~~
#시원한글은시인에게
Reply1 h
Amellia Han
작가님.고생많으셨습니다. 페이스북이 참 신박한 곳입니다. 저역시 여기서 김도언시인님을 알게되면서 그전에는 언론에 보도되는 모습만으로 알고있었던 작가님의 깊은뜻을 알게되어서 기쁩니다.
이제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Reply56 m
Park Yuha
Amellia Han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페북은 누군가를 알기에 아주 좋은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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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 
어제 올린 글은 긴 인터뷰인데도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시고 감상을 남겨 주셨다. 
사실 해마다 고발당한 날 전후엔 무언가 관련행사를 해 왔다. 코로나기간엔 쉬었지만 작년엔 책을 낸 걸로 갈음했다. 
하지만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무언가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한 회의가 생겨 금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김도언 작가가 직접 기획한 이 인터뷰가 뜻밖에도 그 ‘행사’를 갈음한 셈이 됐다. 그만큼 내겐 의미가 컸던 인터뷰다. 
법률가들에 대한 비판격 인터뷰가 되었지만, 형사1심 내내 마음을 다한 재판을 해 주었던 이상윤 판사며 ‘무죄를 내려야 한다’고 공적으로 말해 준 이인복 전대법관등, 멋진 법률가들도 이 9년동안 많이 (직간접으로)만났다. 나의 어떤 법률가 지인은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나를 집으로 초대해 성의를 다 한 만찬을 직접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니 기운이 넘쳐야 하는데 실은 6월 이후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 퇴임이후 여러 일들로 무리가 겹친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여 이번 주 잡힌 약속들을 취소 중. 당분간 건강을 우선하며 조용히 지내는 생활을 해야 할 듯 하다. 
물론 김도언시인과는 회복되는대로 다시 만나야 한다. 김시인이 바쁘다 해서 아직 뒷풀이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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