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김훈의 정치성(政治性) ] 2008 윤평중

남한산성은 '삶의 정치'를 다룬 김훈 소설의 영화화이다. 2008년 [비평] 봄호에... - Pyung-joong Yoon | Facebook

남한산성은 '삶의 정치'를 다룬 김훈 소설의 영화화이다. 2008년 [비평] 봄호에 실렸던 나의 김훈론(論)을 싣는다. 이 글을 쓴 사흘동안 나는 열병들린 것처럼 몰입했었다.
[김훈의 정치성(政治性) ~ 역사 허무주의와 삶의 정치] 2008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1. 김훈, 홀로 빛나다
2007년 12월, 『칼의 노래』가 백만 부 능선을 넘었다. 문학의 죽음이라는 풍문을 통타한 사건이었다. 대중이 열광하면 평단이 홀대하고 비평계가 주목하면 독자가 외면하는 악순환도 김훈이 비로소 끊었다. 1995년 47세에 첫 소설집을 상재한 늦깎이 작가는 2001년 『칼의 노래』를 필두로 내놓는 작품마다 주요 문학상을 휩쓰는 진기록을 세운다. 김훈은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으로 상찬된다.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선정의 말」).
되풀이되는 김훈의 위악과 위약(僞弱), 과장과 과소 사이의 불균형은 오로지 그 만이 구사 가능한 눈부신 미문(美文/迷文)의 블랙홀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말의 자기 배반 위에서 구동되는 김훈 언어의 향연은 진정성의 아우라를 동반하면서 창작 문법의 흠결들을 가린다. 이 글은 김훈의 문학성을 겨냥하지 않고 정치성을 묻는다. 혜성처럼 등장한 김훈 문학의 재능과 산고(産苦)는 개인의 것인 동시에 사회 진화의 산물이다.
21세기 벽두 한국문학의 지평에서 김훈은 홀로 빛났다. 그러나 그 광휘는 한국현대사의 성취 위에서 비로소 타오를 수 있었다. 박경리-조정래의 대하소설이 ‘혁명의 시대’였던 1980년대라는 집합적 독자의 지층을 요구했던 것처럼, 김훈의 독백적 소설 양식은 대중과 마주보고 선 21세기적 단독자(單獨者)의 시대적 초상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김훈 世說: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 2002년), 김훈이 거듭 드러내는 경멸과 유보는 김훈의 탈정치성과 정치초월적 허위의식에 대한 폄하와 비판으로 그에게 되돌아 왔다. 그의 反정치/탈정치의 제스추어가 ‘결국’ 보수정치에 기여하며 보수가 지배하는 현상 온존에 봉사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훈 문학에 내재한 근원적 정치성의 무늬와 결은 탈정치나 반정치 같은 거친 구호로 규정되지 않는다. 김훈의 정치성은 인간실존의 사실로부터 발원해 무의미의 의미를 획득하는 허무주의와 함께 탄생하고 사멸하는 운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김훈 문학은 모든 정치를 태동케 하고 멈추게 만드는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그 근원은 인간의 실존이라는 운명적 사실로 수렴된다. 인간 실존의 궁극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장하고 자기 충족적인 자연의 궤적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무심할 뿐이다. 무심한 자연과 무의미한 실존의 소용돌이가 겹쳐 빚어낸 아수라의 현장이 바로 역사이며 정치인 것이다. 김훈이 작품 곳곳에 자연에 관한 기나긴 묘사를 배치하는 것은 자연의 무위와 인간의 유위(有爲)를 대비해 유위의 허망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첫 작품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은 장장 세 쪽에 걸쳐 황량한 도시를 맹공하는 겨울바람의 행로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김훈의 정치성은 무심의 냉정함과 무의미의 압제에 직면해 장렬히, 또는 비루하게 사라지는 개인이 남긴 좌절의 기록으로부터 배태된다. 그가 형상화하고자하는 단독자는 운명이 쏘아보는 시선 앞에 속수무책이면서도 그 무력함을 온 몸으로 “식은땀을 흘리며”(『칼의 노래』, 19, 22, 189쪽) 버텨내는 존재이다. 김훈 문학의 정치성이 내장한 비밀은 궁극에 가서 패배가 승리의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다는 데 있다. 아니 정치성에 관한 김훈의 탐구에서 패배와 승리는 서로 상이한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는 이순신의 말처럼(『칼의 노래』59쪽).
2. 순결한 시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 실존의 궁극과 역사 허무주의
김훈은 정치의 근원이 개별적 인간의 실존이자 몸임을 밝힌다. 정치는 여럿 사이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여럿을 구성하는 것은 대체될 수 없는 단독자이다. 여럿 사이에서 행해지는 밀고 당김은 권력의 우열을 전제하므로 정치의 현장은 항상 비대칭적이다. 정치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비대칭성과 불균등성을 적나라한 집체적 폭력으로 선포하는 사태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권력자의 정복욕이나 인간 품성의 사악함으로부터 나온다기보다 정치라는 ‘사상(事象)의 필연적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김훈 문학의 정치성이 가장 탁월하게 구현된 작품이 역사소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긴박한 역사의 변환기는 정체(政體)와 정치의 근본을 수정처럼 투명하게 폭로한다. 『칼의 노래』·『현의 노래』·『남한산성』은 모두 정치공동체의 존망을 눈앞에 둔 전면적 위기상황을 다룬다. ‘전쟁은 정치의 극한’이며, 전쟁이야말로 ‘적과 동지 사이의 생사를 건 투쟁’인 정치의 잔혹한 맨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치의 원형은 집단적인 생사투쟁으로 소급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정치의 고귀함이라는 가치 담론을 송두리째 괴멸시키는, 가끔 잔혹취미로 오해되기도 하는 전장 살육 장면에 대한 김훈의 생생한 묘사는 정치의 원형 속에서 부서지는 실존과 몸의 허망함을 극한까지 밀어 붙인다. 몸을 가진 개체를 통해 작동하는 적과 동지의 투쟁이라는 정치의 근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신라 기병들은 말발굽으로 포로들을 밟고 달려갔다. 들판 저쪽으로 몰려간 신라 기병들은 다시 방향을 돌려서 다가왔다. 말들이 진땀을 흘렸다. 신라 기병들은 한나절동안 열 번을 오가며 포로들을 밟았다. 포로들은 모두 두개골이 으깨지고 창자가 터져죽었다. 겨울 들판에 김이 올랐다. 살점과 골편들이 튀어 올라 기병들의 갑옷에 엉겨 붙었고 말 정강이가 피에 젖었다." (『현의 노래』 81~82쪽)
"사람과 말의 시체들이 뒤엉켜서 썩어가고 있었다. 엎어진 시체의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틈으로 봄풀이 돋아 올라 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들은 바람에 흔들렸다. 독수리가 파먹던 창자에 구더기가 슬어 날벌레들이 들끓었다. … 야로의 군사들은 창으로 시체를 뒤적이며 죽은 자들이 놓친 병장기들을 거두었다. … 썩어서 흐물거리는 사체의 팔다리를 칼로 쳐내고 갑옷과 투구를 벗겼다. 갑옷에 묻어나는 살점들을 흙으로 비벼서 떨어냈다." (『현의 노래』 38~39쪽)
"한산, 거제, 고성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는 꽃핀 숲의 향기 속에 인육이 썩어가는 고린내가 스며 있었다. 축축한 숲의 향기를 실은 해풍의 끝자락에서 송장 썩는 고린내가 피어올랐고, 고린내가 밀려가는 바람의 꼬리에 포개져서 섬의 꽃향기가 실려왔다. 경상 해안은 목이 잘리거나 코가 잘린 시체로 뒤덮였다.
포탄과 화살이 우박으로 나르는 싸움의 뒷전에서 조선 수군은 적의 머리를 잘랐고 일본 수군은 적의 코를 베었다. 잘려진 머리와 코는 소금에 절여져 상부에 바쳐졌다. 그것이 전과의 증거물이었다. 잘라낸 머리와 코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모든 적들이 모든 적들의 머리를 자르고 코를 베었다." (『칼의 노래』 18쪽)
인간은 전쟁과 정치의 무의미를 차마 감당해낼 수 없었다. 무심한 자연과 싸우는 방법이 언어이자 예술이며, 무의미한 정치와 맞서는 고투의 기록이 윤리와 이념인 것이다. 아름다움과 당위의 담론들은 자연과 정치라는 사실의 바다로부터 태어났지만 사실과는 다른 가치의 집적물이다. 아름다움과 옳음은 소중하면서도 꺼질 것 같은 포말의 존재감만을 지닐 뿐이다. 가치와 당위는 무심함이라는 세계의 사실과, 무의미성이라는 삶의 현실이 추동한 암흑의 소용돌이를 밝히지만 그 빛은 꺼질 듯 위태롭다. 김훈의 도저한 역사 허무주의는 압도적인 무심함의 사실과, 무의미의 현실에 대한 명징한 인식에서 나온다.
담론을 실어 나르는 언어의 무력함과 곤핍함을 언어 창조자인 작가 김훈이 자주 고백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소’라는 소리가 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소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의 실체가 김철은 의아했다.”(항로표지航路標識 119쪽) 사실과 담론을 가르는 준엄한 심연 앞에서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싸움을 택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패배와 허무의 얼굴이다. “애초에 내가 도모했던 것은 언어와 삶 사이의 全面戰이었다. 나는 그 全面戰의 전리품으로써, 그 양쪽을 모두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순결한 始原의 平和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 나는 다만 떼죽음으로 쓰러지는 말들의 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참패하였다.”(『빗살무늬토기의 추억』「自序」)
김훈은 “모든 낱말과 시간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그 始原의 물가로”(『강산무진』「작가의 말」) 나아가려 하지만 이미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사실과 현실의 완강한 성채 앞에서 글쓰기는 부단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불모의 수레바퀴 안에 포박되어 있는 것이다. 김훈의 글과 이순신의 칼, 우륵의 가야금은 모두 사실과 현실의 벽 앞에 좌초하고 만다. 원고지 위에 한자 한자 우직하게 눌러 쓰는 것, 칼을 휘둘러 피로 강산을 물들이는 것, 악기의 소리로 ‘맹렬한 적막’을 깨우는 것은 모두 창조의 행위로써 사실과 현실의 총체적 무의미와 싸우는 몸짓이다.
김훈 소설의 주인공들은 맥락 안에 고정된 화자이건, 전지적 시점 주체이건 약여(躍如)한 개체적 면모를 보인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김훈의 소설 중에서는 단연 그렇거니와, 아마도 한국문학사가 생산한 단독자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형상화 중 하나일 것이다. 『현의 노래』의 우륵이나 이사부의 사실(史實)은 훨씬 미미하며 『남한산성』의 인물들은 훨씬 덜 극적이다.
게다가 이순신은 김훈이 찬탄해마지 않는 건조하고 투명한 『난중일기』를 남겼다.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던 역사 가운데서도 임진왜란의 피해가 가장 컸으며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데 비해 그 최후가 장렬했던 만큼 독자들의 심상에 선명하게 각인된 연유도 있다. 구국의 영웅에다가 당파 싸움에 초연했던 단아한 인격까지 덧입혀졌던 이순신은, 김훈에 의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무력감에 떨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압도적인 내·외부의 적들에 둘러싸인 충무공은 죽음처럼 고뇌하면서 자신을 삼키려하는 무의미의 아수라와 대면한다.
어쩔 수 없이 냉엄한 사실과, 어찌할 길 없이 비루한 현실의 조합으로 이루어 진 인간실존의 궁극은 몸이다. 별일없이 지나가는 일상은 이 사실을 은폐하면서 은밀히 재생산한다. 인간은 육신을 지닌 존재이며, 먹지 않고 배설하지 않으면 곧 죽는다. 어떤 극단의 사태나 영웅적인 순간도 이 평명한 사실을 비껴가지 못한다. 실존의 궁극을 해부하는 김훈의 메스가 먹는 것과 배설에 많은 서술을 할애하는 것은 고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존재의 한도가 육신이라는 사실은 일상성의 전제(專制)를 균열시키는 치명적 질병의 엄습과 죽음 앞에 다시금 선명해 진다.
중병과 배설에 관한 극사실적 묘사에 김훈이 정교한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실존의 궁극인 몸의 허망함과 인간의 자연구속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몸에 관한 사실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 죽음과 병 앞에 허물어지는 육신에 대한 외과 집도의적 사실 묘사보다 효과적인 것도 드물 터이다.
"아내는 두통 발작이 도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냈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아내는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있을까 싶게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마스크를 쓴 간병인이 기저귀로 아내의 사타구니를 막았다. 아내의 똥은 멀건 액즙이었다. 김 조각과 미음 속의 낱알과 달걀 흰자위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 나왔다. 삭다 만 배설물의 악취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다." (「화장火葬」 45쪽)
"어머니는 아랫도리를 벗고 있었다. 대소변을 자주 지려서 관리인이 옷을 벗겨 놓은 모양이었다. 방바닥 비닐 장판 위에 흘린 똥을 밟고 다닌 자리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고향의 그림자」 204쪽)
"아랫도리를 벗은 어머니의 허벅지 가죽은 길게 늘어졌다. 방바닥에 흰 머리카락인지 음모인지 터럭들이 흩어져 있었다. 악취는 맹렬했다." (「고향의 그림자」 205쪽)
"그의 마른 몸은 가벼워서 위태로웠다. 그의 물똥은 소화되지 않은 탕약을 쏟아 냈다. 똥은 새카맸고 악취를 풍겼다. 그 똥의 악취는 지난여름의 매미 울음소리처럼 다급하고 맹렬했다."(「머나먼 속세」 302쪽)
"왕의 항문은 조일 힘을 잃고 열려 있었다. 창자가 항문 밖으로 삐져나와 죽은 닭의 벼슬처럼 늘어졌고 오그라진 성기는 흰 터럭 속에 숨어있었다. 늙은 비빈들은 침전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시녀들이 똥오줌과 해수가래를 받아 냈다. 떠먹인 미음과 국물이 이내 밑으로 흘러내려, 왕의 아랫도리는 늘 벗겨져 있었다." (『현의 노래』 44쪽)
살육의 현장에서 가차 없이 부서지고 썩어가는 몸과, ‘찌를 듯이 날카롭고 맹렬한 악취’에 포위된 육신에서 시작한 김훈의 역사 허무주의는 삶의 엄혹한 사실성을 증명하는 먹는 행위에서 완결된다. 치명적 질병이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먹어야 산다. 전쟁터에서도 우리는 먹어야 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칼의 노래』 159쪽)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먹는 것의 존재규정성이 정치적으로 번역될 때 돈과 ‘밥벌이’의 문제로 전화된다. 밥벌이는 계량경제의 지표로 환원되지 않는 자족성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존엄을 떠받치는 최후의 보루이다. 몸의 유지와 밥벌이라는 준엄한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것으로 귀환하지 않는 모든 이론과 실천은 허랑방탕한 것이다. 정치는 몸을 돌보고 밥벌이를 굳건한 토대 위에 정초하는 것에서 시작해 종국에는 다시 몸과 밥벌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인간 실존의 궁극이다. 실존의 궁극은 역사 허무주의를 낳는 동시에, 허무의 역사를 견디는 최후의 힘을 우리에게 준다. 단독자가 꿈꾸는 순결한 시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자연의 무심함과 정치의 무의미는 몸과 밥벌이를 통해 교접한다. 무심과 무의미의 교차는 혼돈을 부르고 몸은 그 혼란 속에서 부서진다. 파열되는 몸의 고통과 정치적 삶의 신산함이 낳는 무의미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실존의 원점에서 배태된 허무는 회피될 수 없으며 단지 대면될 수 있을 뿐이다. 허무는 다만 역사 허무주의의 극한에서 가까스로 성찰된다. 무의미의 수용과 성찰 안에서, 모호하고도 애매한 의미가 피어난다. 결국 김훈 문학은 무의미의 의미에 관한 자기 성찰의 보고서이다. 김훈 문학의 정치성은 이 지점에서 발원하며 바로 그 곳으로 돌아간다.
3. 김훈의 정치성 ~ 진리의 정치 비판
정치의 무의미 앞에 인간은 전율했다. 무심과 무의미의 심연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인류는 예술을 창조하고 담론을 만들며 진리의 정치를 개발했다. 진리의 정치 이념은 무심함의 사실과 무의미라는 현실의 압도적 무게를 덜기 위해 입안되고 실험되었다. 진리정치는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인류라는 종을 결정적으로 진화시켰으나 이윽고 막대한 진화의 값을 요구하게 된다.
진리의 정치는 “실천적 삶의 요체인 정치 영역에 강력한 진리 주장을 부과하는 정치 이념이다.” (졸고, 「진리의 정치와 삶의 정치」『철학연구』 제79집(서울; 철학연구회, 2007년 겨울호), 302쪽). 진리의 정치는 이론적 지식을 정치적 실천과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통합된 정치적 진리를 개명된 엘리트들이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플라톤이 원형적으로 축조한 진리정치는 정치사상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양의 경우 진리의 정치 이념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동아시아 문명의 지평에서는 국정철학화한 유교가 진리정치의 모델로 작동했다.
진리의 정치는 무심한 자연과 무의미의 정치를 압도하는 현란한 유위와 유의미의 체계를 제공한다. 무의미의 암흑에 잠겨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구원의 섬광이었다. 진리의 정치를 통해 우리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비약할 수 있었고 자연에서 문화로의 비상이 가능했다. 매혹적인 진리정치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정당하다. 문제는 부분적 진리가 전면적 진리를 참칭할 때 발생한다.
영원한 진리의 이름을 독점하면서 절대적 권위를 자임하는 진리의 정치는 이견과 비판을 적대시한다. 그것은 민주적 다원주의 정치를 질식시킬 뿐 아니라 정치의 원점인 삶의 질감까지 보통사람에게서 앗아 간다. 진리정치에 반대하는 자는 사문난적이 되거나 박멸되어야 할 역사의 적으로 규정된다. 화석화한 진리의 정치는 죽임과 죽음의 정치로 타락해 갈 수도 있다. 자기 충족적 물신으로 화한 진리정치가 아귀처럼 끊임없이 희생자를 찾아 헤맬 때 ‘지상낙원 건설에의 시도가 오히려 지옥도로 현실화’한다.
근사한 이념이 필요 없는 우파의 테러보다 이상주의적 이념에 의해 추동되는 좌파의 테러가 때로 훨씬 사악한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진리정치의 동학 때문이다. 스탈린의 대숙청과 마오쩌뚱의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은 진리정치의 기치아래 수천만의 자국민을 도살했으며 살아남은 인민의 육신과 정신조차 폐허로 만들었다. 마오의 역사 실험을 흠모한 크메르 루즈는 순결한 이상사회를 실현한다며 캄보디아 전체를 킬링필드로 전락시켰다. 마르크스주의 진리정치를 유교적 진리정치와 ‘주체적으로’ 결합시킨 북한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국가로 타락한 것은 거의 필연적인 사태이다.
한국 현대정치사는 진리정치의 한 순화된 판본을 보여 준다. 무도한 군사독재와 싸우면서 한국사를 비약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민주화 운동정치는 한국화한 진리정치의 힘에 크게 의탁했다. 그 과정에서 유교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진리정치의 논리를 습합시킨 운동정치는 점차 과부하 되어 스스로의 토대를 균열시킨다. 독단적 진리정치의 대변자들은 막상 권력을 잡게 되자 비판과 검증을 통한 민의 수렴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할 정도로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 삶의 지평과 괴리된 자폐적 진리의 정치가 민심을 잃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자기 파괴적인 지경에 이른 진리의 정치는 때로 자신이 발원한 삶의 지평까지 은폐한다. 그 과정에서 진리정치는 실존의 극점이 산출한 역사 허무주의를 일대 스캔들이라고 비난하는 데까지 이른다. 영롱한 진리정치에 공감하는 지식인들이 김훈 문학을 의심의 눈길로 주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김훈이 보기에는 극단화된 진리의 정치야말로 건전한 삶을 위협하는 최악의 추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진리정치가 흘러넘치는 한국현대사의 시평(時平)에서 ‘반시대적 고찰’에 가까운 김훈 문학의 정치성은 진리정치의 과잉에 대항하는 또 다른 과잉의 수사학이다.
한국적 진리정치는 진보를 주창하고 도덕성을 자랑했다. 민중을 사랑한다고 외쳤으며 역사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공언했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진리정치의 사도를 자처했고 실천의 미명아래 공공연히 권력정치로 투신했다. 위에서 내려 보며 남을 가르치는 화려한 계몽의 수사(修辭)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닿지 않고 겉돌았다. 공중에 떠도는 번다한 해방의 말보다 민중의 실감과 괴리된 것도 드물었다. 김훈은 공소한 한국적 진리정치의 정문(頂門)에 다음과 같이 일침(一針)한다.
"라파엘의 집
서울 종로구 인사동 술집골목에는 밤마다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들이 몰려들어 언어의 해방구를 이룬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논하며 비분강개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술버릇이다.
그 술집골목 한복판에 '라파엘의 집'이라는 시설이 있었다. 참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린이 20여명이 거기에 수용되어 있었다. 시각-지체-정신의 장애를 한몸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중복장애 어린이들이다. 술취한 지식인들은 이 '라파엘의 집' 골목을 비틀거리며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전 한닢을 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파엘의 집'은 전세금을 못 이겨 2년 전에 종로구 평동 뒷골목으로 이사갔다.
'라파엘의 집' 한달 운영비는 1200만원이다. 착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1천원이나 3천원씩 꼬박꼬박 기부금을 내서 이 시설을 16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후원자는 800여명이다. '농부'라는 이름의 2천원도 있다. 바닷가에서 보낸 젓갈도 있고 산골에서 보낸 사골뼈도 있다. 중복장애 어린이들은 교육이나 재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아주면 온 얼굴의 표정을 무너뜨리며 웃는다.
인사동 '라파엘의 집'은 술과 밥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이 식당에는 인사동 지식인들이 몰려든다."(김훈,「거리의 칼럼」) (『한겨레신문』 2002년 3월 8일자)
4. 삶의 정치를 위하여
김훈 문학은 진리정치의 해악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깊이 정치적이다. 실존의 궁극에서 나온 김훈의 탐미적 역사 허무주의는 진리의 정치가 볼 때 보수주의자의 퇴폐적 몽상이거나 시대착오적 복벽론(復辟論)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훈은 이런 선입견과 몰이해에 대해서도 묵묵히 직면할 뿐 항변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정치와 대극되는 삶의 정치를 직설하지 않고 은유함으로써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작가로 남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남한산성』 「하는 말」) 진리정치의 언어는 냉엄한 국제 정치의 사실 앞에서 전면적으로 무력하고 위선적이었다. 오랑캐라 멸시했던 청의 칸에게 땅에 이마를 찧으며 절함으로써 생명을 구걸한 ‘조선 왕’의 모습은 조선조 진리정치에 대한 완벽한 파산 선고가 아닐 수 없다. 폐허가 된 진리정치의 빈 터는 대장장이 서날쇠 같은 민중에 의해 채워진다. ‘성안의 봄’에서 삶은 계속된다.
"서날쇠는 뒷마당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 뿌렸다. 똥물은 잘 익어서 말갛게 떠 있었다. 쌍둥이 아들이 장군을 날랐고, 아내와 나루가 들밥을 내 왔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온 날 나루는 초경을 흘렸다."(『남한산성』 363쪽)
스러져가는 가야를 떠나 신라로 들어간 궁중 악사 우륵의 말년에 대해 『현의 노래』는 「악기 속의 나라」라는 소제목을 붙인다.(『현의 노래』 323쪽) ‘나라 속의 악기’가 아니다. 악기가 창조하는 소리는 나라보다 크고 유장하며, 삶은 진리정치보다 광대하고 심원한 것이다. “우륵의 몸이 소리 속으로 퍼져나갔고 소리가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몸은 소리에 실려, 없었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 나갔고, 흘러나간 몸이 다시 돌아와 줄을 당겼다.”(『현의 노래』 329쪽) 일체가 된 소리와 몸과 삶이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면서 진리정치의 경계를 초월한다.
삶의 정치는 생활세계에서 보통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리는 생명정치이며 욕망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는 미시정치이다. 진리정치가 오연(傲然)한 자기 확신에 기초한 거대 기획을 선호하는데 반해, 삶의 정치는 인간의 지식이 본질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잠정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경우 불확실성의 정도가 더 심하다고 믿는다. 삶의 정치가 겸허하고 유연한 실사구시의 정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보통사람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삶의 정치에 민주적 비판과 검증이 수반되지 않을 때 목적의식을 상실할 수도 있다. 독단적 진리정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상호주관적 비판과 검증은 삶의 정치가 상대주의나 기회주의로 타락하는 것을 억제하는 항체이다. 김훈 문학은 바로 이 부분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완정(完整)한 삶의 정치 기획을 요구하는 것은 작가의 몫을 넘어 선다.
김훈의 텍스트들은 삶의 실감에서 분리된 채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진리정치의 기표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나아가 김훈이 암시하는 삶의 정치와, 돈과 효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제적 실용주의 사이에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엄존한다. 21세기적 삶의 문법인 실용성 담론은 자본주의적 욕망 확산과 충족에 전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몸과 밥벌이라는 실존의 궁극에 관한 김훈의 천착은 욕망의 무한확대라는 우리 시대의 대세를 거스른다. 삶의 정치가 말하는 소박한 생의 질감과, 화폐의 만능을 고취하는 실용성은 상호 충돌한다. 단기간의 돌관 방식으로 전시효과를 겨냥하는 부화(浮華)한 실용주의는 사회를 들뜨게 하고 안온한 일상을 위협한다. 평상심을 어지럽히는 ‘스펙터클의 사회’는 삶의 정치에 고유한 감수성을 파괴하고 만다.
김훈이 사랑하는 자전거 레이싱과, 숱한 지우개똥과 파지를 남기며 원고지 위에 땀으로 기록되는 그의 글은 뗄 수 없이 서로 이어져 있다. 자전거는 기계이지만 오직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전진하면서 대지와 발을 매개한다. 육필로 힘들여 쓰는 문자는 손가락을 통해 세계와 사유를 잇는다. 몸과 밥의 중요성에 대한 김훈의 근원적 성찰은 현실에서는 절제와 금욕의 효과를 낳는다. 그의 역사 허무주의는 현실정치의 풍향에 일희일비하는 오늘의 세태에 대한 촌철살인의 냉소이다.
김훈의 정치성이 생산하는 최대의 덕목은 단독자를 궁구(窮究)하는데 있다. 허무주의는 역사의 무게와 홀로 맞서는 개인의 고단한 심상(心象)이다. 홀로 있을 수 있는 주체만이 이 시대의 풍경인 군중의 부박(浮薄)과 패거리주의를 치유한다. 권력숭배와 물신경배를 제어하는 힘은 깨어있는 개체로부터 온다. 인간은 무의미의 암흑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밤의 어두움을 통과하는 단독자의 얼굴이야말로 김훈 문학의 통렬한 자화상이다.
[후기]
이 글이 다룬 김훈의 소설은 다음과 같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문학동네, 1995); 『현의 노래』(생각의 나무, 2001); 「항로표지」·「화장」·「고향의 그림자」·「머나먼 속세」,『강산무진』(문학동네, 2006); 『남한산성』(학고재, 2007); 『칼의 노래』(한정소장판; 생각의 나무, 2007))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All reactions:
You, Hyuk Bom Kwon, Jeong-Woo Lee and 77 others
7 comments
23 shares
Like
Comment
Most relevant

오석환
언어의 화려한 유희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문득 정신이 들어.ㅎ
장영돈
영화화된 남한산성은 상헌과 명길의 설전을 통해 활자로 찍힌 그의 간결한 단문의 미학이 현실성 없는 싯구를 외는 듯, 주문을 쏟아붓는 듯, 소화하기 어려운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문어와 구어의 치열한 쟁투에서 구어의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꽤나 지난한 시간이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빼어난 영상미로 시선을 사로잡는 노력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 Like
  • Reply
  • Edited
Chan Yong Cho
1623년 김류 이귀 등 계해정변 주도세력들은 임금을 폐위하고, 전 영의정 내암 정인홍(88세) 등 북인세력을 모조리 제거했다. 바보처럼 숭명배청(崇明排淸)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
그리하여 1636년 병자호란을 자초(自招)하여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 조선 백성 60만명이 청으로 끌려가는 등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지만, '존주대의(尊周大義)'니 '북벌(北伐)'이니 하며, 백성들을 옥죄이고, 그들의 서인(노론) 정권과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다. 구호·허풍과 교조적 명분만 난무(亂舞)했다.
김상헌 송시열 권상하 이항로 기정진 최익현으로 이어진 무능하고 부패한 서인(노론) 정권은 구한말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변종(變種)돼, 급기야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은 도그마(dogma)된 조선은 망하게 됐다.
2
Hyuk Choi
더이상 평할수없는 김훈선생의 깊은 성찰에 훌륭한 비평입니다. 작가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표현하는 자유가 있으나 위정자들은 삶의정치. 경세제민을 하지않는 진영패권주의와 기회주의를 포퓰리즘과 알량한 진리니 정의니 한것으로 인민을 고통에 몰아넣고 혹세무민하는것이 작금의 현실인것같네요.
2
Seong-yi Hong
교수님, 이제 읽었습니다. 제 머리 속 흐린 파편 조각들을 밝게 이어준 글입니다. 문장 하나 하나 담아 읽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나종혁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이름도 성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책도 도움이 되겠네요.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