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윤평중 칼럼] 조국 사태는 ‘위장된 축복’이다 201910

정경심 교수 대법 확정판결.
조국 사태 때문에 상처입은 분들이 너무나 많다.
비판자들과 지지자들, 보수와 진보 모두 그렇다.
조국 사태에 대해 여러 꼭지의 글을 쓴 나도 예외가 아니다.
아래 기명 칼럼은 조국 사태의 한가운데서 쓴 2019년 10월의 글이다.
조국 사태의 후유증은 넓고도 깊다.
지식과 학문, 양심과 판단력이 특정한 신념(당파성)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지는 풍경은 쓰라리고 또 쓰라렸다.
내가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조국 사태가 말과 언어의 공통 토대를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또는 말과 언어의 파괴가 조국 사태라는 상징적 사건으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타인의 말(언어)에 대한 신뢰라는 근본 바탕없이 인간의 삶은 성립할 수 없다.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없이는 공동체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게 조국 사태의 최대 교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윤평중 칼럼] 조국 사태는 ‘위장된 축복’이다

[윤평중 칼럼] 조국 사태는 ‘위장된 축복’이다
  • 조국 사태 나라를 둘로 쪼개 사회적 內戰 무한 증폭
  • 文 정권 ‘조국 대통령’ 프로젝트 좌초시켜 너무 다행
  • 산업화 對 민주화 대립 구도 이번 사태로 終焉… 새로운 시대정신 열망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9.10.0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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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국 사태가 온 나라를 둘로 갈랐다. 두 달 가까운 심리적 내전(內戰)이 진영 간 세(勢)를 과시하는 사회적 내전으로 무한 증폭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고통도 극심하다. 조국 사태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갈라놓았다. 사회적 신뢰가 사라진 폐허의 공간에서 우리는 황량하고도 황망하다. 나라 전체가 공황 상태다.

하지만 모든 고난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최악의 고난 앞에서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정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 현대사는 곧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현실을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으로 뚫고 전진한 역사였다. 조국 사태라는 사회적 재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건 전적으로 우리네 결단에 달렸다.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멀지 않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권의 최대 기획인 '조국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좌초시켰다. 지금의 위기를 위장된 축복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다. 한국 정치사에서 최다 의혹 보유자(?)일 조 장관의 권력 범죄 혐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게 사모펀드 건이다. 진보 진영의 회계감사 전문가들조차 중대 범죄 혐의를 연이어 내부 고발할 정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조 장관이 국가 전체의 사정(司正)과 감찰을 통할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직후 그 가족의 악취 나는 투자가 본격화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최악 후흑(厚黑)의 달인인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국가적 재앙을 피할 수 없었을 터이다. 만약 조 장관이 법무장관직 대신 총선과 대선으로 직행했더라면 야망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사태는 '지식인의 아편'을 폭로했다는 점에서도 고난이라기보다 축복에 가깝다. 진보 명망가들의 정의와 공정 담론이 그들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은폐하거나 독단적 진영 논리에 악용되는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궤변과 요설로 조국 응원에 복무한 유명 지식인들의 민낯은 참으로 비루한 것이었다. 입만 열면 인의(仁義)를 외치면서 복장과 말을 꾸며 당파적 기득권을 추구하는 지식인을 한비자(韓非子)는 통렬히 비판한다.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하는 어용 지식인들이야말로 나라를 좀먹는 해충(오두·五�) 가운데서도 최악이라는 게 한비자의 뼈아픈 일갈이다.

조국 사태는 국가적 난제였던 검찰 개혁을 한국 사회의 일반 의지로 승화시켰다. 여야와 보수·진보 모두 이 사태가 종결된 후 검찰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한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사항으로 압축된다. 
  • 제왕적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 공룡화한 검찰 권력을 분산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과제다. 

이 과제에 역행하는 문 정권의 공수처 설립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공수처와 검찰을 모두 거느린 대통령 권력이 초(超)비대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찰에 대한 의회와 시민의 통제를 제도화하고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관철할 최적(最適)의 순간이다.

한국 현대사를 제약한 산업화 대(對) 민주화의 대립 구도가 조국 사태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절대 빈곤 탈출의 산업혁명을 선도(先導)한 보수는 눈부신 성공에서 온 자만(自慢)의 질주로 갑작스럽게 스러졌다. 박근혜 정권의 전격 퇴장이 그 결과다. 박근혜 탄핵은 산업화 세력과 보수에 대한 국민적 불신임을 의미하며 철회된 신임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찬란한 압축적 민주혁명을 이끈 진보도 특유의 무능과 오만(傲慢)으로 굉음을 내면서 무너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그 단말마의 몸부림이다. 승자의 저주(咀呪)에 빠진 민주화 세력과 진보는 조국 사태의 폭주로 국민적 신망(信望)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립이 만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 관계는 끝났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다수 시민이 자한당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서 유동(流動)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효(時效)가 끝난 역사의 빈 공간에서 폭풍 같은 정치적 에너지가 소용돌이친다. 2012년 대선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은 그 실패한 전조(前兆)였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딛고 도약할 새로운 공화(共和)의 시대정신을 처절하게 열망한다. 총체적 재난인 조국 사태를 새 시대의 축복으로 바꾸는 주체야말로 진정한 공화정의 시민이다. 우리는 불의한 권력 앞에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자유 시민이다.

#윤평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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