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
일본 정보전쟁의 총아 후쿠시마 야스마사(1852~1919)
제국 경영은 무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보전이 선행-동행한다. 일본도 이 점에 투철했다. 임진왜란때도 그랬지만 이른바 대동아전쟁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국가대전략 차원에서 정보전문가들을 치밀하게 대량 양성해 세계 각지에 파견했다.
후쿠시마 야스마사(1852~1919)는 일본에서 정보장교의 모델이자 '영웅'으로 간주되는 인물이다. 황혼의 조선왕조를 쇠멸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악연일 수 밖에 없다.
역사의 막후에서 진행되는 정보전과 모략극 차원을 넘는 스케일로 후쿠시마 야스마사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주 베를린 일본 공사관 정보장교로 있던 1892년 2월 11일 베를린을 출발, 1893년 8월 12일 도쿄에 도착한다. 1만 4천키로의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필마단기로 횡단한 것이다.
그가 거쳐간 곳은 폴란드, 러시아, 우랄산맥, 이르쿠츠크, 옴스크, 우루무치, 고비사막, 몽고, 만주, 지린, 훈춘, 블라디보스톡 등이었다. 산천유람이긴커녕 '대일본제국의 유라시아 국가대전략'을 확인하고 현지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전문가의 필사적 행로였다. 후쿠시마 야스마사는 영-독-불-중-노어 등 10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이었고 독일 체재중에도 현지 사교계의 총아일 정도의 수완가였다.
유라시아 대륙 종단 전에도 그는 유럽 전역과 발칸반도를 답사하고 인도와 버마를 살펴본다. 종단 후인 1895년~1897년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캅카스 지역, 바그다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사마르칸트까지 방문한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에 32편의 공식 보고서를 제출한다. 메이지 일본 대외 정책의 토대가 된 자료다.
후쿠시마 야스마사의 보고서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반도 침략에서 기초자료가 된다. 후쿠시마가 조국 일본을 위해 대대적 활약(?)을 한 셈이다. 모골이 송연한 것은 후쿠시마 야스마사 같은 전문가가 일본에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끔찍한 건 후쿠시마 같은 자를 일본사회가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일본과의 싸움에서 결기를 과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전쟁의 기초는 정보전이라는 교훈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적을 알고,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우리와 접한 일본과 중국은 공히 수천년 전쟁 체험으로 정보전과 모략-위계에 능수능란한 국가다. 우린 두 나라를 좀 더 깊이, 더 넓게 연구해야 한다.
(참고문헌: 충북대 사학과 신영우 교수의 충북일보 연재기사는 침략의 선봉이 된 '대일본제국'의 정보전쟁과 모략전의 실태를 상세하게 해설한다. 아래 사진도 신 교수의 강연자료 사진을 인터넷에서 빌려왔다. 또한 이병한 교수는 '유라시아 견문' 제3권 585~590쪽에서 후쿠시마 야스마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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