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송필경 - [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지음

(1) 송필경 - <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2023. 또다른우주. 일본 국민은 예의바르고... | Facebook


<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2023. 또다른우주.

일본 국민은 예의바르고 친절하다고 세계적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길가다 어깨를 살짝 부딪쳐도 서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서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일본이 20세기에 들어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여 끔찍한 고문과 살인에다가 심지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생체실험을 했으나 이들 국가와 당사자들에게 아직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 침략전쟁에 참전하면 정신적인 죄의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군, 아프가니스탄 침공한 러시아 군인들이 그랬습니다.
공손한 일본인들은 외국과 외국인에게는 왜 ‘죄의식 없는 악인’일까요?
얼마 전 ‘현장과 광장’이란 노동자 전선 잡지에서 <전쟁과 죄책>이란 책 감상문을 부탁받고 쓰겠다고 했습니다.
최근 20년 이상 우리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들여다보고 있는 저에게 전쟁의 죄의식이란 ‘죄책’은 저의 으뜸가는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면, 저항전쟁과 침략전쟁입니다.
저항전쟁은 민족과 국가 그리고 역사에 의무입니다.
침략전쟁은 그야말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죄악입니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죄책은 침략한 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윤리적인 의무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덕목으로 홍익인간을 앞세웠습니다. 그 동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참전은 단군의 후손으로써 처음으로 남의 나라 인민에 총부리를 겨눈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역사였습니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을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인류 윤리의 황금률입니다.
다시 말해 ‘네가 맞고 싶지 않으면 남을 때리지 마라’는 상식이어야 합니다.

저는 <전쟁과 죄책>을 읽으며 군국주의 일본이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민족에게 저지른 만행에서 우리가 베트남 민족에게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규모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자 순간 베트남에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탄타오(Thanh Thao; 1946〜)’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인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군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돌이켜 후회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외아들이어서 전쟁 최전선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으나, 자원입대하여 험한 호찌민 루트를 6개월간 걸어 남쪽으로 내려가서 치열한 저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같이 남으로 내려간 동료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10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시인이 생존율이 거의 없는 처절한 전장에 자원입대한 이유는 ‘역사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인 탄타오가 우리에게 요구한 죄책이란 침략전쟁의 죄악을 기억하고 돌이켜 후회하는 윤리적인 마음 상태가 아닐까요?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써 전쟁의 죄책을 기억하고 실제로 윤리적인 반성을 실천한 나라는 독일입니다.
다음은 그 예입니다.
1985년 5월 8일. 독일대통령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1920~2015)는 나치 패망 40주년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의 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40년 전에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가를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바이츠제커는 독일 젊은이들에게 어버이 세대의 잘못을 꼭 기억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인은 물론이고 그 후손들과 정치인들은 잔혹한 제국주의 침략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지금은 더 극성스럽습니다.
<전쟁과 죄책>란 책을 쓴 일본인 ‘노다 마사아키’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글쓴이는 1944년에 태어났으니 일본 군국주의를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습니다.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와 선배 의사들이 죄책감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의문을 품었습니다.
노다는 군의관으로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와 군국주의 세대의 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실천으로 태평양 전쟁에 전쟁범죄에 가담(戰犯)한 아버지 세대 의사들을 인터뷰해 그 죄악을 낱낱이 파헤쳐 <전쟁과 죄책>에 담았습니다.

노다와 인터뷰를 한 군의관들은 자신의 손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고문했고, 학살했고, 해부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노다는 이를 바탕으로 끔찍한 생체 실험과 세균전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당사자들의 생각과 감정을 자세히 담았습니다.
노다는 “일본의 현대 의학이 실은 전쟁의 은밀한 유산 위에 구축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양심적인 일본인은 드물긴 하지만 이 책에서 증언한 일본인들의 양심선언은 놀랍도록 구체적입니다.
바로 이런 노다의 노력은 우리가 베트남전쟁 참전을 돌이켜 생각하며 꼭 배워야할 모범이었습니다.
일본이란 비도덕적 국가에서 이런 도덕적인 개인이 있다는 게 침몰하는 일본에게 그나마 위로가 될까요?
히로시마, 나카사키 원폭 피해를 세계만방에 그토록 외치면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는 몰염치한 21세기 일본의 행위는 군국주의 원죄를 반성하지 않은 양두구육의 가증스런 얼굴입니다.
‘노다 마사아키’는 단지 정신과 의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정신과에 비교문화, 문화인류학, 사회학을 접목해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책 47쪽에 있는 다음 구절에서 노다의 깊은 내공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의학이 군국주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사상적 바탕을 하나도 마련해 두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구조적으로 강한 사회는 모든 분야가 쉽사리 하나의 색으로 물들지 않는다.
그러나 (군국주의를 경험한 의사인) 유아사가 받은 의학교육에는 신체에 대한 관심과 의사 집단에 대한 적응, 그리고 출세주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출세주의를 지향하는 의사 대부분은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사람을 쉽게 빨간 색 이념으로 물들입니다. 그만큼 우리 의사 사회는 물론 모든 사회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약한 사회입니다.
이념이 아닌 양심을 드러낸 글들이 가득한 게 <전쟁과 죄책>의 글쓴이 미덕입니다.
사실 스스럼없이 생체 실험을 한 군의관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성격적 장애인 “사이코패스(Psycho-path)"처럼 보이지만 참전 전에는 그냥 의사였습니다.
일본 사회는 어릴 때부터 ‘약자’를 인정하지 않고 권위적인 군국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약자의 희생은 어쩔 수 없고 역경을 이겨내는 강자의 논리를 강요했습니다.
일본의 폭력적인 군사문화는 ‘상처도 입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도 않는 인간’을 만들어 국가번영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국가는 국가의 일개 부품인 개인의 감정을 마비시켜 ‘상처 입지 않는 정신’을 키웠습니다.
일본 제국의 장교였던 박정희도 우리 국민에게 그렇게 강요했습니다.
이 점에서 노다가 죄의식을 묻는 의미는 ‘타인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20세기 일본은 개인의 감정을 눌러버리고 오직 집단의 이익만 추구한 사회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요구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는 그 당시에는 통치자에게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21세기는 인간 개인에게 상상력과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에서 21세기 정신의 핵심인 위대한 창의력이 생겨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나의 감정과 기쁨이 타인의 감정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창의력의 핵심이지 않을까요?
한 예이지만 아직도 군국주의 감정에 머물고 있는 일본 사회는 자유분방한 감정으로 한류의 힘을 보여준 ‘BTS’를 결코 탄생하게 할 순 없을 겁니다.
21세기 들어 일본의 국력은 독일에게 많이 뒤처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몰락은 독일과 달리 과거 침략의 죄책을 죄책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또는 그 죄책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일본 집권 정치인들은 과거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우리 정치인들도 일본의 정치인에 동조하며 이제는 일본 자랑을 내놓고 떠벌립니다.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실천하는 일본에 절망이 앞서지만, 진심으로 참회하며 <전쟁과 죄책>을 쓴 ‘노다 마사아키’란 양심적인 지성인을 보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 희망의 끈을 저는 놓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일본인 노다의 부끄러운 자기 역사 치부를 고백하는 양심적인 글은 우리에게 1946년의 <대구 10월 항쟁>, 1947년의 <제주 4.3>, 1948년의 <여순 항쟁>에서 1980년의 <광주 518>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해야 할 이유를 웅변적으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베트남전쟁에서 저지른 역사 범죄에 고개를 돌린다면 지금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는 일본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부끄러운 과거 기억들을 생생히 간직하고 돌이켜 후회한다면
지구촌에서 양심의, 지성의 <BTS>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문구: '전쟁과 죄책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ఫౌహ್ 寸 예గ 口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L *현'의 이미지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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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리 and 4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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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엽
감사합니다.
김영식
부활절의 아침 깊은 공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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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ryul Lee
우리에게도 송 원장님 같은 의사가 있어서 그나마 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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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전쟁과 죄책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노다 마사아키 (지은이), 서혜영 (옮긴이)   또다른우주   2023-08-05

편집장의 선택
"일본은 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일본의 전쟁 범죄들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음에도 들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잔혹하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범죄들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떳떳하다. 그들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왜 인간을 도륙하고도 정신적으로 평온한가.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 질문을 잡고 군국주의 전범들을 연구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전쟁이 종료된 이후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운동을 하는 등 양심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들이 고백한 과거의 모습은 살육 기계나 다름없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을 향한 끔찍한 학살, 잔인한 고문. 그러나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씐 것처럼 의아하리만치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키는 '무언가'를 저자는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로 분석한다.

전범의 정신분석에서 시작한 책은 일본 사회의 정신분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가 담담한 어투로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 일본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의 일면과 매우 닮아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음, 시대에 대한 부인과 망각. 원인-과정-결과에 대한 분석을 떼어와 한국에 대입하니 위화감이 없다. 이 책은 전쟁과 전쟁 후 일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분석이지만 오직 일본 사회만에 대한 분석은 아니다. 전쟁, 집단범죄, 범 사회적 공격성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다.접기
- 인문 MD 김경영 (2023.08.22)
출판사 제공

9.9
484쪽
책소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도피 생활 중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스스로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일급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 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제1장 의사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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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제1장 의사와 전쟁
제2장 길 아닌 길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제4장 전범 처리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제7장 과잉 적응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제10장 세뇌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제12장 공명심
제13장 탈 세뇌
제14장 양식(良識)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초판 후기
문고판 후기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2000년 연말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학살에 관여한 한국 해병대원을 면접하고 진찰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농부 학살 토론회’ 장소에서는 행사장 밖에서 위장복을 입은 수백 명의 전 해병대원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라는 말을 외치고 있다고 했다. 2003년에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협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십 년 이상 감옥에서 지낸 장기수들(1990년대 말 겨우 가석방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2004년에는 제주도 4·3사건(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수많은 도민이 학살·처형되고, 상당수가 섬에서 탈출해 재일한국인이 되었다)을 조사하러 갔었다.
2015년에는 한국의 인권단체인 5·18기념재단의 초청으로 ‘극한상황의 인간’이란 제목으로 광주에서 강연하고, 2017년 10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차세대열전 2017!’ 공연제에 한 젊은 연출가가 『전쟁과 죄책』을 기반으로 만든 연극, 「무순 6년」 공연을 계기로 초대받아, 대학로에서 ‘침략전쟁의 반성은 왜 불가능한가’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_「한국어판 서문」

사회 전체가 부국강병을 향해 공격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기에, 다들 심기가 편치 않았다. 기분이 쉽게 바뀌었고 권위를 내세웠으며, 늘 공격할 대상을 찾느라 자극에 민감했다. 지위, 역할, 신분, 성별 등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지니고, 누구에게 굽히고 누구에게 공격성을 드러낼지 누구에게 관대할지 늘 긴장하고 있었다. 우월감과 열등감, 자기 비하와 위세 부리기의 결합은 가족, 친구, 이웃 간의 관계부터 아시아 각국 사람들과의 국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_「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수술 연습이 끝난 후 두 명의 중국인은 숨이 거의 끊어질 듯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어요. 이대로 해부실 건물 뒤편에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 넣기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주사기로 심장에 공기를 주입했지만, 소용없었죠. 나는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했는데, 그래도 호흡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 중국인의 허리띠를 목에 감고 O 중위와 양쪽에서 잡아당겨 목을 졸라보았는데, 여전히 숨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방에 들어온 위생조장이 “마취약을 정맥에 주사하면 바로예요”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던 클로로에틸을 왼팔 정맥에 주사했죠. 그 중국인은 대여섯 번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호흡이 멈췄습니다.” _「제1장 의사와 전쟁」

“유아사 씨, 어쩌다 전범이 다 됐어요? 혹시 ‘그 전쟁이 옳았다’고 주장한 것 아니에요? 대충 속여넘겨도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야. 자네랑 그 일을 했잖아.”
“네? 무슨 얘기예요?”
그는 유아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생체 해부를 기억해냈다. 패전 후 11년이 지난 때였다. 이것이 중국 북부에서 귀국한 전직 군의관들의 태도였다. 북지나방면군이 약 30만 명이었고, 육군병원이 20여 개 있었다. 병원의 군의관과 야전 군의관을 합치면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다. 위생병과 간호사도 수천 명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 것’이라는 편리한 변명 속에서 자신들이 한 일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조차 남기지 않았다. _「제1장 의사와 전쟁」

기타노 교수로부터 ‘현지 원숭이를 사용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 개발 실험’ 강의를 받았다. 그는 온화한 얼굴로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오가와는 ‘만주에 원숭이가 있었나?’ 의아했다. 원숭이가 아니라 중국인과 러시아인이었고, 실험 장소가 자신이 다니는 의대였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몰랐다. 기타노 마사지는 1939년 열세 명의 중국인을 발진티푸스에 감염시킨 뒤 그들을 생체 해부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_「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그는 증상이 개선된 후 자살하는 장병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가와는 한 병사에게 ‘치유 퇴원’ 진단서를 써 줬고, 그에게 원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얼마 후 관내 방송에서 오가와를 찾았다. “화장실로 바로 오시오.”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화장실에 있었다. 총검으로 목에서 가슴까지 찌른 채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오가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죽이는 것이다. 병이 나았다고 하면, 돌아갈 곳은 전쟁터밖에 없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거부한 이 병사의 마음을 군의관인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북받쳤다. _「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당신은 지금 피 묻은 손을 떠올리는 겁니까? 아니면 살해당하는 중국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겁니까?”
“피입니다.”
“손 쪽입니까? 상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에 대해서밖에 생각하지 않나요?”
“병사의 손에 피가 묻게 돼요.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가 돌아간 뒤에 저 걸레가 된 시체를 가족이 찾아내어 가져가겠구나, 하는 거죠. 그럴 때 그들의 슬픔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가족은 울며불며 만신창이가 된 가슴을 보고 미쳐버리지는 않았을까…….”
여기서도 고지마는 남겨진 가족의 감정이라는 회로를 거쳐 행위의 잔인함을 얘기하고 있다. 먼저, 살해당하는 자의 원통함을 느끼고, 그다음에 유족의 비통함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살해당한 사람이 추상화되어 버려서 얼굴을 느낄 수가 없어요. 살해당하는 사람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나요?”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냥 찌른 부분만…….”
“그렇다면, 역시 물체로밖에 인식하지 않은 거네요.” _「제6장 슬퍼하는 마음」

“민가를 수색한 후 가족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일가족 다섯 명을 일렬종대로 딱 붙여 세우고는, 총을 한 방 쏘았습니다. 다음날, 그 집에 가봤습니다. 노인은 숨이 끊어지고, 부부도 큰아이도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뒤로 넘어진 채로 큰 눈을 똑바로 뜨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직 살아있었던 거예요.”
고지마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한 뒤, 부하들이 “대장,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찔러 죽이게 했다. 그 모든 경우에 ‘내가 직접 손댄 게 아닌걸’ 하는 변명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살해 명령 중 하나쯤으로 잊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도 아버지가 되었다.
“이 일에 대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땝니다. 밤중에 문득 깨어나 아이 얼굴을 보면, 그날 새벽의 중국 아이 얼굴이 겹쳐지는 거예요. 더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어요. 같은 나이 때가 됐기 때문이겠죠. 또렷한 눈망울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답니다. 똑 닮았어요, 그 얼굴이. 정말 참을 수 없더군요.” _「6장 슬퍼하는 마음」

나만 전투 경험이 없었다. 부하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포로 하나도 베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소대장으로서 야전 지휘를 할 수 없다. ‘볼썽사나운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바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절도 있게 몸이 움직였다.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오른쪽으로 팔을 들어 올려 자세를 취했다. 기합과 동시에 단번에 내리쳤다. 턱 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목은 날아오르고, 몸통은 피를 뿜으며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칼날의 피를 물로 씻어낸 뒤, 물을 털고 종이로 닦자, 칼날이 빠진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마 턱뼈에 걸렸을 것이다. 칼날에는 번들번들 지방이 묻어서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드디어 ‘임무’를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포로의 목을 베어 떨어뜨린 순간부터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_「제7장 과잉 적응」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유서는, 장래의 재건군(즉, 자위대)은 용병제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에서부터, 학교 교육의 방향, 야스쿠니신사 합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후 일본이 반세기에 걸쳐 도조의 의사를 그대로 따라온 것처럼 보인다. _「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
P.395세류
전후세대는 전쟁을 일으킨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그들의 문화를 섭취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으로서 져야 할 전쟁 책임은 물론 없지만, 침략전쟁에 빠져든 사회나 문화, 그리고 국가의 책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P.422세류
패전 이후 일본 사회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쟁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왜곡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일 없이 약자를 배제하면서 경제활동에 매진해왔다. 과거의 짐이라는 유산은 회사 인간, 장·노년층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울증, 아이들이 자폐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P.440세류
강인함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으면, 답은 강인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진솔하고 강건하여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인간이 훌륭한 인간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과거 일본 군인의 정신주의와 같다. 그리고 강인한 의지에 평화주의를 접목해 놓으면, 바람직한 삶이 돼버린다.
과연 강함이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돼버린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늘 구체적으로 알려고 할 것. 충분히 알고 나서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하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P.462세류
집착 기질 및 멜랑콜리 친화형 성격은 사회과학의 관점을 결여한 정신과 의사의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선천성 기질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기질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질이다. 즉 사회의 주형에 부어 만들어낸 성격이다. 그것은 권위와 질서의 방향으로 경직돼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감정 교류를 중시하지 않는다.
P.463세류
전시에서부터 전후로 이어진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강한 정신‘이라는 물음은 양방향으로 기능했다. 즉,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자신의 정신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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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노다 마사아키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전쟁과 죄책>,<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 총 17종 (모두보기)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던 1944년 태어났다. 홋카이도대학 의학부 졸업 후 나가하마적십자병원 정신과 부장, 고베시외국어대학 교수, 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급격한 사회변동, 전쟁,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소련-러시아의 사회변동 과정에서의 정신 건강 연구, 중국·베트남·동유럽의 전쟁 가해자·피해자의 정신병리학 연구 등을 수행했다. 정신의학의 기반 위에서 비교문화, 문화인류학, 사회학을 접목하고, 의사, 평론가, 논픽션 작가, 사회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컴퓨터 신인류 연구 コンピュ-タ新人類の硏究』로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喪の途上にて』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의대에 입학했을 때 전쟁을 경험한 선배 의사들 역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병든 사회의 병든 사람들을 연구하며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비로소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 슬픔을 느끼는 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국가의 목적을 위한 소모품으로 만드는 군국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하고 마비시켰다. 이 책에서 그는 전범들에게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옮긴이: 서혜영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일한 번역가 및 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굿바이, 헤이세이』 『반상의 해바라기』 『펭귄 하이웨이』 『거울 속 외딴 성』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레몬일 때』 『쉬 러브스 유-도쿄밴드왜건』 『하드보일드 에그』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도쿄밴드왜건』 『말해도 말해도』 『작은 인연』 『보리밟기 쿠체』 『반딧불이의 무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 『번역어 성립 사정』 『그네타기』 『사라진 이틀』 『매리지 블루』 『사이좋은 비둘기파』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지상에서 런치를』 『수화로 말해요』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하노이의 탑』 『가출 기차』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춘정 문어발』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104쪽)’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이 보인다(451~452쪽).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동명의 원서 『戦争と罪責』 초판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초판 발행 후 독자 편지나 강연 등을 통해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주목,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코패스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군국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358쪽).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249쪽).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220쪽).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38쪽).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279쪽).’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296쪽).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142쪽).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148쪽).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조건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236~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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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고래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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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군국주의뿐만 아니라 오늘날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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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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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국가 일본은 감정 마비 사회라고 한다. 자신의 슬픔과 기쁨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배재했기에 타인에게는 더욱 냉담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니 그것은 그대로 전쟁이다.. 묻지마 범죄와 원초적인 흉악범죄가 극성인 지금의 한국 사회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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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돌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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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에 참여했던 책을 오늘 받았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초판 후기, 문고판 후기 및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다. 어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흥분과 충동이 일어난다! 경제성이 없는 이런 귀중한 책을 출간해주신 출판사와 역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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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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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이 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어떻게 끝났는지를 알기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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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immary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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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에서 전쟁가해자에 대한 심리에 대해 알려주는 첫책인것 같다.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성 없는 이 사회는 지탱될 수 있는지 악의 평범성이 왜 무서운지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 우리안의 악을 발견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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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ofla1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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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겪은 일본인들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책이였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게 한다. 다양한 직업 사회적 위치 전쟁에서 요구하는 상황 등에 따라 대응방식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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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게구름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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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의사의 보고서이자 성찰의 책. 저자는 서장에서 이렇게 말하며 책을 시작한다. ˝아직 남아 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다. 죄의식을 억압해온 일본 문화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간만에 정말 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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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dh009736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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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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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가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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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쪽같은 표가 좋고 사례도 흥미로워요 15장 부분에서 지적 통찰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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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드라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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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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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ca.Kim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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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著, 서혜영 譯, 또다른우주, 원제 : 戦争と罪責)”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인상깊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난징(南京)이 함락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일본군이 점령한 도시를 학생들에게 시찰시키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애국심을 함양하고, 학도병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전도구이었겠지요. 12명 정도의 일반 학생들은 난징을 시찰하는 기간 동안 숱한 시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학살의 흔적이었습니다. 이들을 인도하는 군인들은 그 시체들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랑스레 학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강간과 살인을 권유합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놀라기도 했지만 점차 이들에게 동화되어 갑니다. 아니, 흥분하기에 이릅니다. 






하루는 그들을 인솔하는 장교가 자유롭게 중국인을 죽이라는 제안을 합니다. 







유도를 배운 학생은 목을 조르고, 가라테를 배운 학생은 때려 죽이려 하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습니다. 이에 장교는 시범을 보여준다면서 일본도로 목을 베어 죽여나갑니다. 



이제 학생들은 어떤 의문도, 어떤 죄책감도 없습니다. 이제 군대가, 군인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믿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학도병 출전 선동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덕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윤리적 딜레마가 뚜렷해지는 전쟁의 상황을 맥락화하면서 그 안의 개인을 강조합니다. 또한 전쟁의 혼란 속에서 책임의 문제는 그 어느 상황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역사적 전쟁과 분쟁을 분석함으로써 전쟁의 공포 앞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증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명령 복종에 따름으로써 비도덕적인 행위를 간단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명령에 대한 복종과 개인의 도덕적 판단 사이에 내재된 혼란에 대해서도 고찰합니다. 과연 개인의 면책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명령에 따랐다고 해서 모든 전쟁범죄와 잔학행위를 면책해야 할까요? 










이 책은 역사, 법,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논쟁과 사례를 바탕으로 전시 상황에서 개인의 책임, 범죄에 가까운 잔항성 등의 영향에 대해 많은 질문과 함께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들을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쟁 상황에서 개인의 책임, 특히 갈등과 딜레마에 대한 통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전쟁과죄책 #노다마사아키 #서혜영 #또다른우주 #컬처블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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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솔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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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마사아키의 책 <전쟁과 죄책>은 일본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과 군국주의의 영향을 파헤치면서, 인간의 어둠과 회복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을 제시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아버지와 일본의 전쟁과 죄책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일본사회의 문제를 탐구한다. 책은 부제목 '일본 전범들의 인간성 회복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통해 그 핵심 내용을 풀어낸다.


책은 밀그램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한 것처럼, 권위에 복종하는 개인의 심리와 수직적인 위계 질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구화되고 감정을 마비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천황제 침략의 역사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며, 한국을 비롯한 침탈 국가들에 남아있는 잔재와의 연결점을 찾아낸다. 또한, 이 책은 한국사회의 문제도 다루며, 군국주의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한국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저자는 전범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전범들이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후에도 심리적 변화와 인정의 과정을 연구한다. 그의 분석은 일본 사회의 복잡한 문화와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동시에, 개인의 역할과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의 역사적 상처를 조명한다. 남성성과 전쟁의 관계를 다루며, 남성성이 실체가 아닌 규범임을 강조한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군사력이 전체 사회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며, 한국사회의 무장 국가로서의 복잡한 실상을 드러낸다.


이 책은 과거의 상처와 죄책을 직시하며 회복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며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을 유발한다. 노다 마사아키의 접근은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이며, 한국판 전쟁과 죄책의 역사적 조명과 함께 미래를 바라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책은 강력한 분석과 인간의 어둠을 다루는 솔직한 접근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한국사회의 복잡한 심리적 영향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적인 상처와 전쟁의 영향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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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야기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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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전범자들이 과거 전쟁으로 많은 인류가 참살당하는 시대에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군은 물론 아시아 대부분 지역들을 누비며 식민지화하기도 했고, 엄청난 수탈과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며 지금도 비난받고 있죠. 이 책은 그러한 일본군 부대 중에서도 중국쪽에 파병돼서 전투했었던 관동군에서 복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관동군이라고 하면 일본의 의사 출신이자 마루타 731 생체 실험부대로 잘 알려진 이시이 시로 중장이 속해 있던 부대도 관동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실제로 그 이시이 시로 중장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기도 합니다. 일본 관동군으로 파병됐던 일본인 청년들이 지금은 거의 여든의 노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나오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전범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시이 시로나 도조 히데키 등 군 고위간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하급 병사(이 책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이등병을 초년병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부터 군의관까지 평범한 일본인이 일본군이 되어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전범이라고 하면 대부분 엄청 높은 계급을 보유했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저도 그렇게 예상했지만 저는 이미 잘 알려진 사람들보다 평범한 일본인 전범들에 관한 스토리를 볼 수 있어서 다른 책보다도 이 책이 훨씬 읽을 거리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읽으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관동군이 중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자행했는지에 관한 실화 이야기가 매우 상세하게 나옵니다. 저도 며칠에 걸쳐 결국 완독한 책인데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읽을 만한가치가 있었습니다. 일본인 의사가 자신의 나라가 과거 저질렀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쓴 이 책은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매우 추천드리고 싶네요 :)


* 컬처블룸으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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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kidol   2023-08-26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문제와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나라의 존재, 우리의 경우 전쟁의 피해자였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나 손해가 막심했다는 측면에서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만 호소한다고 해서 국제관계로까지 번진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며, 여전히 해당 주제와 문제의 경우 국내 여론이나 평가 자체도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에서도 제법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도 이런 역사적 사건과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인간학 자체에 대해 진단하며 어떤 행위와 국가적 오판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평범했던 사람들이 악마화가 되어가는지, 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고 있고 또 다른 비교 사례로 볼 수 있는 독일의 나치 시절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하며 다소 무거울 수 있고 서로 다른 대처가 확연히 드러나는 주제와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이는 전쟁과 죄의식이라는 개념을 초월해, 역사의 이면과 왜 전쟁과 같은 비극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는지 등도 함께 배울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바로 집단화나 이런 의식의 흐름, 그리고 국가의 잘못된 정책과 이념과 사상의 극대화 할 경우 매우 위험한 단계의 사람이나 집단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이들을 일반화 할 수 없고 이런 사건과 전쟁 범죄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하거나 사과를 하자고 주장하는 주체들도 존재하나, 여전히 국익이나 국제질서, 관계 등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 보상 등의 행위를 미루거나 외면하고 있는 주체들이 더 많다는 점에서도 앞으로의 과정도 제법 험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해당 주제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며 배움의 가치로 승화하거나 미래가치 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가야 하는지, 책의 저자는 이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논리와 더 나은 형태의 가치 판단을 조언하고 있어서 단순히 역사와 전쟁, 외에도 인간학 자체에 대해서도 배우거나 돌아 볼 수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하며, 어려운 분야와 사건에 대해서도 비교적 쉽게 표현하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접하며 유의미한 메시지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죄책> 전쟁 범죄와 집단 범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와 평범한 사람들도 잘못된 정치나 정책 등의 행위로 인해 또 다른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의 해석이나 활용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심리학 및 심리분석과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어떤 형태로 마주하며 더 나은 판단을 해나가야 하는지도 함께 접하며 생각해 보게 된다. 다소 무거울 수 있고 언급하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잘못된 역사의식이나 왜곡된 역사관 등을 통해 또 다른 이익을 노리는 주체와 집단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알고 제대로 된 가치 판단이 필요해 보이는 영역일 것이다. 책을 통해 접하며 저자는 어떤 가치 판단과 논리를 통해 해당 사안과 주제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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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숙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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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국가 일본의 참전 군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저자는 그들이 과연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물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위치와 천황과 쇼군의 2중 체제 속에서 책임지지 않는 문화와 또한 수십 년째 천문학적 금액을 유대인들에게 배상하고 있는 독일을 보면서 자신들도 저런 상황에 빠질까 두려움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죄책감, 후회, 슬픔, 절망, 공포 같은 전쟁에서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내용에 전율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조종사가 포탄을 한 도시에 떨어뜨려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조종사는 단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버튼을 눌렀을 뿐, 하늘에서 지상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 지역을 떠났고 나중에야 자신이 누른 버튼으로 인해 한 도시가 초토화된 것을 알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공간 땅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명령 수행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기에 그 조종사는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오듯 2차대전 독일에서조차 상관의 유대인 집단학살 명령에 많은 수의 군인이 수행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면서 죄책감이나 후회, 절망감 등 내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 명령 없이도 민간인을 죽이고 식량을 강탈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마가 되고, 패전 후 본국에 돌아와서도 수많은 군인이 우익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명령 수행으로 정당화하기 급급했다.

일본군에 의한 대량 학살을 겪으면서 중국은 일찌감치 일본군의 습성을 깨우쳤을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햇살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전법을 썼다. 전범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에게 가혹한 보복 대신 정성을 다해 돌보고, 그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포로를 대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자기 가족과 친척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포로들을 수용소에 있는 간수들과 간호사, 의사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삭인 채 그들을 보살폈다. 그래서 전범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사형 직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수용소 직원들의 태도와 말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중국 당국과 수용소 직원들은 더더욱 일본인들과 자신들은 다름을 보여줬다. 자신들은 조밥에 배춧국을 먹으면서도 일본군에게는 쌀밥과 국과 반찬 3~4가지를 곁들여 먹이고, 찬밥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며 갓 지은 밥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원수들을 눈앞에 두고 그런 배려를 한 것도 놀랐지만, 얼마나 진심으로 일본군의 죄책감과 사죄를 원했는지 느껴졌다.

수용소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탄바이서를 작성하며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사회극(sociodrama)으로 만들어 수용소 관계자들과 동료 전범들 앞에서 연기함으로써 개인의 성찰과 후회에서 더 나아가 객관화시켰다.

 

저자와 인터뷰한 전범 중 쓰치야 요시오와 오노시타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극빈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족 간의 온정 속에 자란 쓰치야 요시오는 처음 포로를 고문하고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차츰 혐오감, 죄책감 등의 감정이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도록 방치했다. 유능하다는 인정받고 그에 따른 계급 상승이 인간적인 감정을 앗아가 버렸다. 이 사례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가 수용소에서 독방에 갇혀 있던 1달 동안 자신이 희생시킨 사람들을 명백히 같은 인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에 의해 독방에 갇혔던 중국인들이 맨손으로 새긴 글귀들을 보면서, 가족과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을 그들의 심정을 목격한 것이다. 희생자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그는 희생자들을 직접 고문하고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 목소리, 눈동자에 새겨진 절망과 분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가족 속에서 자란 그는 인정받고, 신분 상승할수록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자기 가족의 모습과 똑같은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인간성을 되찾았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 부소장의 평온한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행위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오노시타의 경우는 쓰치야와 반대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빨리 입대해서 빨리 제대하자’라는 마음으로 자원입대했다. 그곳에서 일본군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혐오감을 느껴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대했다. 군인연금도 거부하고 산 그였지만, 그도 민간인 포로를 죽였고, 현지인들의 식량을 약탈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끝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저자에게 속삭이듯 자백했을 뿐이다. 그는 죽인 이를 기억했다. 그 한 번의 살인이 그를 오랜 시간 옭아맨 이유는 자신이 죽인 포로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으러 왔을 때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떼고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후회는 있었으나 사죄가 없었다. 그저 자신은 다른 일본군과는 달리 인간적이었다고 자위하고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은 공허한 울림이 되어버렸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해국으로 포장하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전범국의 국민이다.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역사책에서 빼버렸지만, 피해국의 국민은 그들의 잔혹했던 행위를 역사책에서 배운다. 일본 정부는 피해국들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별세하는 날만을 기다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일본 정부와 우익은 전쟁에 참여했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국 군인들의 죽음도 기다린다고 느꼈다. 증인들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열한 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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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달인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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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 전쟁











책을 선택한 이유





전쟁은 국가간의 무력충돌이다.



역사는 전쟁의 기록과 다르지 않다.





전쟁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전쟁과 죄책"을 선택한다.









"전쟁과 죄책" 은





제1장 의사와 전쟁



제2장 길 아닌 길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제4장 전범 처리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제7장 과잉 적응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제10장 세뇌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제12장 공명심



제13장 탈 세뇌



제14장 양식(良識)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로 구성되었다.











제1장 의사와 전쟁 에서는





의사 유아사 겐은 군의관으로 일한다.





군의관이 모두 외과의 출신이 아니다.



외과의도 외상 처치 능력이 낮아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전부대 군의관이 빠르게 외과수술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팔로군 포로를 해부한다.





국민당군이 팔로군에게 패하면서 공산당은



70만 명의 반혁명 분자를 처형한다.





유아사는 종전 후 중국에 남아 의사로 활동하지만,



공산당 포로수용소에서 사상 개조를 당한다.





전쟁의 유산 위에 구축된 일본 의학을 말한다.







제2장 길 아닌 길 에서는





기독교인 의사 오가와 다케미츠는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한다.





오가와는 뤼순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자란다.





중국은 마적이 날뛰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이 무기를 들고 평화를 지킨다는 비적 소탕은



중국인에게 반감을 준다.





의대를 중퇴하고, 신학교에 편입 후 졸업한 후,



만주의대에 편입한다.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에서는





약한 병사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죽어주는 편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가와는 군의관에 지원하지 않고 초년병으로 입대한다.



초년병 교육 후 군의관 과정을 밟게 된다.





전선에 복귀할 수 잇는 병사는 치료하고,



그 외의 병사는 죽게 놔두라는 교육을 받는다.





영양실조로 인한 원인 불명의 중환자 병사가 많다.



거식증에 걸린 병사의 몸은 살아남기를 거부한다.





전쟁신경증, 감옥 의사의 전시 처형 입회에 대해 말한다.







제4장 전범 처리 에서는





고지마 다카오는 산둥성에서 중국인 일꾼을 잡아들이는



토끼사냥 작전에 참여한다.





패전 뒤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 5년간 억류된 후,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된다.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에서는





푸순관리소에서 일본인 전범을 담당한 지도원은



대부분 일본어가 가능한 조선인이다.





중국은 독자적 조사 내용과 자백이 일치하면



죄를 인정한 것으로 판정한다.





재판이 끝난 후 기소 유예 처분 받고 17년 만에 귀환하지만



공산주의에 세뇌당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에서는





일본군이 작전을 개시하면 국민당 군은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군인인지 농민인지 모르므로 작전지역에서는 사살명령이 내려온다.





귀국 후 힘들게 직장을 구하고 재혼한다.





다섯 살 아들을 보면서 작전지역에서 사살한



중국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70대에 중국귀환자연락회를 결성 후,



중국에 방문해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전쟁의 상처를 젊은 세대에게 알리려 한다.





일본 살인마를 보기 위해 몰려든 중국인 피해자들의



슬픔을 들으면서 인간다운 감정을 되찾는다.







제7장 과잉 적응 에서는





도미나가 쇼조는 만주 방위 임무를 맡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소련군에 무장해제 당하고,



강제수용소를 전전한다.





하얼빈 감옥에서 인격적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중국은 전쟁에서 저지른 살상 행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민족 우월의식에서 중국을 침략하였음을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잔혹해진다.



소속 집단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잔혹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에서는





명령자와 실행자의 책임을 별개다.





시키는 대로 행동한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사회 조직에서 사람은 타인의 요구를 수행하는



도구로 간주하게 된다.





시스템화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 한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는 청년을 전쟁에 빨려 들어가게 한다.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에서는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처형당한 일본 전범은



전투행위이며 범죄가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전 후 세계평화를 위한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죄의식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공격하는 것에서 생긴다.





특무기관에서 일한 나가토미 히로미치 의



자서전에 기록된 악행을 소개한다.







제10장 세뇌 에서는





나가토미는 패전 후에도 산시성에서 활동하지만



타이위안전범관리소에 수용된다.





죄의식 결여는 감정의 마비, 무감각이다.



자신과 타인의 비통함에 무감각하다.





가족을 통해 죽인 사람들의 원한과 괴로움을 전해 듣고,



영웅심에 빠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26년 만에 귀국하지만 공안 경찰의 집요한 추적은



일본 사회의 폭력성을 깨닫게 된다.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에서는





미오 유타카는 관동군 헌병이다.





일본군의 정보를 러시아로 보낸 첩보원을 적발하고,



관련된 사람을 731부대로 이송한다.





무서운 것이 없는 권력은 주어진 임무로 만족하지 못하고



공적을 세우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센다이에서 유족의 증언을 들은 이후로



자신이 호송한 이의 유족과 만나 사죄한다.







제12장 공명심 에서는





쓰치야 요시오는 헌병으로 만주에서 겪은 일을 집필한다.





관동헌병대 방첩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암호문서를 해독하고 감시와 미행을 통해



톈바이 공작으로 공산당 지하조직을 괴멸시킨다.





정싱공작으로 만주국 정부 내 국민당 동조자



네트워크를 적발하면서, 특고의 신이라 불리지만



중국은 스치야를 악의 수괴로 여긴다.







제13장 탈 세뇌 에서는





쓰치야는 잔인한 헌병이지만,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한다.





남편이 일본의 일꾼 사냥에 끌려가 생계가 막막한



오두막집에 큰 돈을 주고 떠난다.





군대에 의한 살상은 일방적이며, 가해자는 피해자를 모른다.



헌병은 피해자의 가정 사정부터 죽음으로 몰아간 사정까지 기억한다.





최고인민검찰원의 취조 전 쓰치야는 자신의 죄과를 자백한다.



사형을 예상하지만 기소유예로 석방된다.





쓰치야는 헌병의 모범이며, 특고의 신으로 불리지만



전쟁 범죄를 속죄하면서 일본공산당 조직원으로 비난 당한다.







제14장 양식(良識) 에서는





오노시타 다이조 는 실제로 겪어본 전쟁은



강도, 방화, 강간의 집단적 난동임을 알게 된다.





칭다오를 떠나 필리핀 바탄의 격전에서 살아남아,



하노이에서 프랑스, 베트민과 싸운다.





군대와 주민의 관계가 장기전의 승패를 좌우한다.



주민을 적으로 바꿔버리는 전쟁은 이길 수 없다.





종전 후 오노시타는 군인연금 수령을 거부한다.





자신의 의지로 잔혹한 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잔혹한 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자신의 판단으로 침략을 긍정하는 돈을 거부한다.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에서는





전후세대는 전쟁기간 부모나 친척이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는다.





구라하시는 아버지 오사와 유키치로부터



중국인에 대한 참회 문구를 묘비에 적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버지의 과거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헌병 동료를 찾아가며,



아버지에게서 들은 단편적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만든다.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에서는





과거의 짐이라는 유산은 피해자, 가해자 모두의



마음을 병적으로 굳게 한다.





와타나베 유시하루 의 희곡 재회 는



불안과 공포로 과거를 외면하는 위선을 비판한다.





감정의 풍요로움 없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에서는





일본 군대의 강함은 감정 마비에 의한 강함이다.





감정을 억압해온 사회는 깊은 슬픔과 단순한 기호를



변별하는 능력조차 지니지 않는다.





전후 세대는 왜곡된 자아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죄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군의관,



장교, 병사, 헌병, 참전 군인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의미를 생각한다.





역사는 전쟁을 거창하고 아름답게 미화하지만



전쟁의 본질은 폭력이고 잔인하다.





전쟁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위선이다.





전쟁은 생과 사를 가르는 현실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민간인 처럼 행세하며, 등 뒤를 공격하는 적에게 죽지 않으려면



작전지역 내의 민간인을 사살해야 한다.





전쟁터에서 부상 당한 병사의 치료 기준은 전선 복귀 가능성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정해야 한다.





고문을 해서라도 스파이를 색출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전쟁은 인간성을 무감각하게 한다.



권력과 생존을 위한 집착은 잔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열악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사들은 약탈의 유혹에 빠지고,



점령지 사람들과 충돌은 점점 심해져 간다.





군인들은 국가의 승리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잔혹해진다.





소속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인간적 행동도



무감각하게 행하게 된다.





전쟁의 잔인함은 일본 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한국이 경험한 모든 전쟁에서



일본 제국과 동일한 잔인한 행동이 이루어진다.





잔인함은 잔인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중국은 포로가 된 일본군의 사상을 개조하기 위해



일본군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자아비판을 하도록 강요한다.





병사 상호간의 갈등을 조장하면서,



병사들이 스스로 죄를 자백하게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심문 기법을 통해,





일본군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중공에게 우호적인 친중세력으로 변모시킨 후,





기소를 유예하고 일본에 침투시켜서



반정부 투쟁에 이용하는 세뇌 기법은 주목할 만 하다.







전쟁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다.





전쟁에 휘말리면 선량한 인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도



생존을 위해 무자비해 진다.





전쟁의 피해자는 가해자를 원망하지만,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불분명하다.





전쟁터에서 기회가 있으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전쟁을 겪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전쟁에서 벌어진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다.



누구나 전쟁에 휘말리면 잔혹해지게 된다.





전젱에서 일본 제국을 위해 헌신한 군인들이



적국의 강제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일본 공안 경찰의 감시를 받으면서,



일본 사회의 부정적 시선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는



국가에게 이용 당하는 국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전쟁과 죄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가져다주는 비인간성을 이해하게 된다.





전쟁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만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다른우주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전쟁과 죄책"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또다른우주 #전쟁과죄책 #노다마사아키 #서혜영



#악의평범성 #집단범죄 #가해자심리분석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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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돌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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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알라딘을 검색하다 이 책 북 펀드 내용을 보고 참여해 책을 받았다.

이미 일본 전범들에 관한 책으로 김효순 선생의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서해문집, 2020) 및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최규진 외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0)을 통해 일본인 전범들의 행태와 만행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일본인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그들을 심층 인터뷰해 전쟁의 실상과 전범들이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그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참혹한 행동을 한 것인지 낱낱이 깊이 있게 살피고 있다.

 

2.

폭염이 지속되는 지난 8월 초 책을 받자마자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초판 후기, 문고판 후기를 먼저 읽었는데 글을 읽자마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서장부터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죄의식을 품고 살아왔을지라도 그들의 기억은 심화되지도, 충분히 분석되지도 않고 반세기가 지났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리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후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의식 위에 서 있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반핵 평화운동에서도, 전쟁 체험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에서도, 전쟁은 적도 아군도 희생자로 만든다는 식의, 죄의식과 상관없는 논조가 지배적이다.”(23쪽)

 

“언제부턴가 나는, 침략전쟁을 재검토하지 않고, 그 시기에 어떤 전쟁범죄를 저질렀는가를 검증하지 않고, 그 시대를 부인과 망각으로 넘겨버리는 자세가 얼마나 우리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어왔는지 고찰하고 싶어졌다......그런 생각으로 나는 귀중한 죄의식을 찾아서 증언 청취작업을 시작했다.”(24쪽)

 

3.

이 책에는 군의관으로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한 전범, 헌병대원으로 잔혹한 행위를 일삼은 군인 등을 심층 면접하며 당시의 실상을 말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제까지 이렇게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압도적으로 해당 전쟁범죄행위를 묘사한 책은 없었다. 저자는 이들 전범들의 행동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분석하고 있다.

 

4.

책을 읽으며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악마로 만드는지 그리고 그 악마로 변한 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는 또 얼마나 평범한 일상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편, 전쟁범죄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이러한 높은 수준의 책이 발간되었음에 비해 우리는 베트남전쟁에서 저지른 많은 민간인 학살사건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있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5.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총검으로 찢기고 살육되는 장면을 보며 시종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책의 밀도와 내용과 수준이 어마어마한 책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가 위태로운 현시점에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다시금 자각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런 귀중한 책을 정성 들여 번역하고 출간한 서혜영님과 출판사 <또다른우주>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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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술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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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세계는 다시 한 번 떠들썩하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에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인접 국가들은 반대 성명은 물론 이를 정치·외교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기준치 이하의 철저한 검증을 통한 방류는 이해할 수 있다는 외교적 견지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수산자원 오염을 우려하는 민간의 요구보다는 국가 정책의 외교적 해결을 택한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과연 안전할까? 근현대사에서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침략 잔혹 행위의 피해국인 대한민국에서의 묵인은 의외라는 시사 논평이 있긴 하지만, 오늘 신문·방송의 보도에서도 기준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용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자는 사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인근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류 강행'을 선택한 것은 외교적 자신감과 미국의 찬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일본을 앞세운 '실험'에 가까운 찬성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는 당연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립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노다 마사아키는 과거를 부인한 채 물질주의로 치달아온 일본 사회의 병리 현상을 해부하기 위해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전범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선 기록이다. 이 책에서는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에서 한층 더 나아가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킨 일본 사회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는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아직도 그 잔재가 일본과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깊숙이 남아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위에 복종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준 밀그램 실험*으로 ‘악의 평범성’을 입증하고 더욱 깊은 의미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하며 끔찍한 고통과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줬다. 특히 ‘731부대’의 생체실험, 난징대학살, 위안부 강제동원 등 일본군의 만행은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해자인 일본군은 이 끔찍한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책의 부제는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다. 저자인 비교문화정신의학을 전공한 일본 교토여자대학의 노다 마사아키 교수는 1993년부터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는 일본인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국주의 시절 잔혹행위를 벌였던 군의관, 장교, 특무, 헌병들을 만나 그들의 정신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가 평범한 일본인 개인을 어떤 정신상태로 몰아넣었고, 학살극을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으며, 전쟁범죄를 죄악으로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며 망각하길 강요하는 일본의 극우적 분위기가 어떻게 사회를 빈곤하게 만들어왔는가를 치밀하고 솔직하게 분석한다.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됐다 절판됐는데, 이번 책은 2022년 나온 일본 문고판의 서문 등을 포함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 가던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 등 인근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두 차례 모두 승리를 거둠으로써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급기야 태평양을 제패하기 위해 미국 태평양 함대의 주둔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미 수십 년 전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세계 제패를 위한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제2치 세계대전 직전 1937년 '중일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선을 아시아 제패는 '따논 당상'이었고 일본의 지식인과 군부는 자신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식량과 물자 보급이 원활하지 못해 시간이 지연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은 불가피하게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아시아에서의 전쟁은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p.104)’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고 저자는 분석한 것이다.

독일의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지만 일본은 의외로 미국의 관용을 이끌어냈다. 독일 분할 점령에 의한 미국측 점령국인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도 보인다(p.451~452).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원서 『??と罪責』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그동안 독자와 소통하며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p.358).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p.249).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p.220).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p.38).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p.279).’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p.296).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p.142).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p.148).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p.236~239).

 


 

* 밀그램 실험(Milgram experiment)이란 권위에 대한 복종과 관련된 실험으로, 평범한 인간이 권위에 복종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1961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가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다수가 항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행한 실험을 말한다.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이라고 포장해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피실험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학생 역할을 담당하는 피실험자에게 가짜 전기 충격장치를 달고, 교사에겐 가짜란 걸 모르게 하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다. 여기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됐다. 밀그램은 실험 전에는 단 0.1%만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 실험결과는 무려 65%의 참가자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이들은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비명도 들었으나 모든 책임은 연구원이 지겠다는 말에 복종했다.[시사상식사전]

 

저자 :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던 1944년 태어났다. 홋카이도대학 의학부 졸업 후 나가하마적십자병원 정신과 부장, 고베시외국어대학 교수, 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급격한 사회변동, 전쟁,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소련-러시아의 사회변동 과정에서의 정신 건강 연구, 중국·베트남·동유럽의 전쟁 가해자·피해자의 정신병리학 연구 등을 수행했다. 정신의학의 기반 위에서 비교문화, 문화인류학, 사회학을 접목하고, 의사, 평론가, 논픽션 작가, 사회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컴퓨터 신인류 연구 コンピュ-タ新人類の硏究』로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喪の途上にて』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의대에 입학했을 때 전쟁을 경험한 선배 의사들 역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병든 사회의 병든 사람들을 연구하며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비로소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 슬픔을 느끼는 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국가의 목적을 위한 소모품으로 만드는 군국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하고 마비시켰다. 이 책에서 그는 전범들에게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역자 : 서혜영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일한 번역가 및 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굿바이, 헤이세이』, 『반상의 해바라기』, 『펭귄 하이웨이』, 『거울 속 외딴 성』,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레몬일 때』, 『쉬 러브스 유―도쿄밴드왜건』, 『하드보일드 에그』,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도쿄밴드왜건』, 『말해도 말해도』, 『작은 인연』, 『보리밟기 쿠체』, 『반딧불이의 무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 『번역어 성립 사정』, 『그네타기』, 『사라진 이틀』, 『매리지 블루』, 『사이좋은 비둘기파』,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지상에서 런치를』, 『수화로 말해요』,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하노이의 탑』, 『가출 기차』,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춘정 문어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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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XXXX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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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던 책이다. 안락한 환경에서 그저 읽고 있을 뿐인데도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글이다. 전범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죄책의 감정을 저 편에 묻어둠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하고 경직되어버린 일본인들의 정신상태를 초점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간간히 묘사되는 범죄 양상이 너무나도 참혹했다.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죄행을 고백하고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가해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한 1937년 부터 패전 때까지 육군 정신장애자를 진단, 연구하는 센터였던 고쿠후다이 육군병원의 환자기록 8000여건 중, 학살을 저지른 죄의식에 떨고 있다고 기술된 것은 놀랍게도 단 2건이다. 전범들은 잔혹한 일을 저지르곤 그것이 죄라는 인식조차 아예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것은 원래 그렇게 비정하고 끔찍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려해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전쟁과 학살 속에 가해자들의 죄책 인식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일본인만의 민족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특수한 사례라는 것이다. 일본인의 어떤 특성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여러 전범들과 면담했고 그 중 한 명인 유아사의 경우 중국으로 징병됐던 의사였다. 그는 첫 실습에서 산채로 끌려온 중국인 2명을 보았다. 생체 해부 될 예정인 중국인은 당연히 두려움과 절망감에 떨고 있었겠지만 유아사에게는 그들의 감정을 공감할 능력이 없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용이한 수술 실습을 위한 물건으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마취 후 수술대에 눕힌 중국인들은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고 심문을 받다 최종적으로 해부 실습의 '재료'로 까지 오게 되었다면 몸에 멍자국이나 상처가 많을 법도 한데 깨끗했던 것이 유아사에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다한다. 사실 그 중국인들은 그저 밭일하던 평범한 농민일 뿐이었다. 죄수가 많고 사상자가 많아 포로가 남으면 해부한다(물론 이것도 끔찍한 잘못이다)가 아니라 실습에 필요하면 그냥 잡아오는 방식인 것이다.

피해자를 눕히고 곧장 몸에서 팔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 식도를 절개하는 수술, 고환을 적출하는 수술 등 사람을 실습의 재료로써 그야말로 알뜰하게 사용한다. 순식간에 사지를 잃고 목이 갈린 피해자는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한다. 실습이 끝난 후 마취제를 다량 주입해 사망시키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의학 실습이 연 2회 가량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아사는 어떤 죄책도 느끼지 못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많은 일본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아사는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에 재산과 가족이 있고 여기서 터를 닦았는데 일본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중국인들에게 했던 행동이 끔찍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패전 후 태연히 중국에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사는 남았다.

체포되어 전범으로 관리되면서도 자신은 죄가 없어 풀려날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 중 죄는 군인이나 책임자들이 저지르는 것이지 자신은 의료인으로써 의료행위만 했기에 전범이랑은 관계없다 여겼다. 간수들은 이들을 학대하는 일 없이 중국인들은 배를 곯는 상황에서도 전범들에게 쌀밥을 지어먹이며 죄행을 모두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뉘우치고 반성하길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모두 밝힐 것만을 요구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를 조금이나마 자각한 유아사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전쟁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난다. 유아사 처럼 자신의 죄를 대면할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 동료들이 의사면서 왜 전범으로 억류되어있었냐며 진심으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것을 보고 뒤늦게 유아사는 놀란다.


저자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죄의식이 지워지는지, 죄를 죄로 인식하는 능력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옛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자신이 남을 때렸다는 사실 조차 인지 하지 못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죄를 숨기는 것에 앞장서 거짓으로 왜곡된 역사를 교육했기에 광복절에 태극기 프사(프로필사진)를 올리는 K-POP 아이돌을 보며 되레 '일본에 무례한 행동이다, 아이돌의 정치적인 행동은 전세계가 불편해 할 것이다며' 기분나빠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사회에 과잉 적응해 타인과의 감정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오로지 권위에 대한 순종이나 효율과 질서 추구 같은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자신의 죄책을 수용하지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도 박탈된 채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거야 승자도 패자도 없고 우리 모두 다 피해자일 뿐' 따위의 말로 합리화 해온 일본은 감정 마비의 깊은 병에 걸려있으며 이것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전쟁을 겪지 않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되물림 되었다.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한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의 고통에 절대 공감하려 들지 않고 그저 효율과 다수의 이익만을 들이밀며 피해자에게 조용히 입다물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일본과 같은 감정 마비의 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지.




#전쟁과죄책 #노다마사아키 #서혜영 #또다른우주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 #전범 #군국주의 #집단범 #가해자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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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고양이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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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도 전범이라는 인식과

지금의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일본인들은 전쟁에 대한 피해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실제로는

전쟁에 의해 죽음으로 몰린 전범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왜 일본이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으면, 읽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

나는 무얼 반성해야 하는지 되돌아 보고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 하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본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부끄러운 존재라고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그런 일본인들 전에

일본 사회가 어떠했는지 봐야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메이지 유신이후

강한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게 된

일본 사회는 반성과 슬픔 등

인간으로서 느껴야할 감정이 배제되고

성과주의에 물들었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군인으로서 의사로서

전쟁 부품의 일부로서 순응하던 일본인들은

효율과 성과가 목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일본을 비난하지만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다를바 없지 않은 가 생각했습니다.


물질주의







의대에서 4-5년간 배워야 할 기술들은

중국인 한 명을 마루타로 사용해서

그를 마취시켜놓고 절개수술, 봉합수술,

합병증 테스트 등

3-4시간 만에 여기 저기 자르면서

테스트 해보면서 재빠르게 터득했고

군의관들은 전쟁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할

자신들이 습득해야 하는 기술을 배우는 루틴으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심장, 그들의 흘린 피는 기억해도

그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동물 실험의 일부처럼 인식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인식이 없어서

태평양 전쟁 후에도

중국인들에게도 의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인식은

전범 재판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인터뷰하면서

뒤늦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군들도 극도의 스트레스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많이 사망했다고 하네요.

일본군은 자국의 군인들에게도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결정들을 하곤 했는데

다른 민족을 인간이 아닌 걸로 인식하도록

훈련 받았던 그들도

군국주의의 부품의 일종으로 사라져 간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재밌게도 인간의 감정을 무시한

또다른 정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장제스가 집권하던 중국 정부의 입장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성에 호소해서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법에 준하여 처우하도록 했습니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죽여야 할 상대가

인간임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데 집중했는데

이 당시의 중국 정부는 난징 대학살을 겪은 후에도

오히려 국제법에 준하여

일본 포로들의 처우를 배려했습니다.


전쟁의 폐허가 된 중국인들은 밥도 잘 못 먹는데

일본군 포로에게는 쌀밥을 배급했고

재판시기까지 살려놓아 재판을 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복수심을 억누르고

그들을 잘 대해줄 것을 명령했는데

그로 인해 간수들이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중국을 염원하던 그 당시 정부의

결정이었지요.


개인적인 의견으론

이 때 중국정부가 국제법적으로 일본군을

전범이라는 역사로 남기고 싶은 염원이 너무 강한 나머지

중국인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국인들은 장재스 정부를 버렸으니까요.

정부관료들은 그 당시 미국 유학파나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중국인들은

아무 이유없이 학살 당하고 일가족을 잃는걸

눈 앞에 목격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겪었을테니까요.


물론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건

옳지 않지만 무조건 이성적인 걸 강요하기 보단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어루만져주는 정책을 했더라면

중국의 현재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와~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었네." 따위의

감탄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양심적인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 당연함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전쟁과죄책, #노다마사아키, #또다른우주,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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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시대, 학살자의 상처
 
수정 2020-05-02 19:21
노다 마사아키 교수 한국어로 출간… 죄의식 없는 일본의 정신병력 해부
https://h21.hani.co.kr/arti/special/special/34.html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경악하게 된다. 그 다음엔 슬픔이 밀려온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에 잠기고,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5년 일제 패망. 이 단어들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견딘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지식이 얼마나 진실의 겉껍질에서 맴돌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노다 마사아키(56). 일본 고치현에서 태어나 홋카이도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나가하마 적십자병원 정신과 부장, 고베시 외국어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교토여자대학 교수(비교문화정신의학 전공)로 재직하고 있다.

철저히 슬퍼하고 철저히 울어라


최근 그의 책 (원제 ‘전쟁과 죄책’)이 한글로도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가 95년 중국 하얼빈과 선양 등지에서 행한 현장조사를 토대로 93년부터 6년간 줄기차게 매달렸던 ‘전쟁의 죄의식에 대한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중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정신적 왜곡, 그 정신병력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었다. 그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부인하는 현상, 정치인들을 비롯한 일본인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최근에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걸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전후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은 그 전쟁은 아버지 세대의 일이며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윗세대의 정신적 왜곡과 굴절이 교육을 통해 신세대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93년부터 관련자료를 읽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 현장 면접조사(필드워킹)에 들어갔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전후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일본인들의 정신문화 어딘가에 큰 허공이 있다는 걸 느끼면서부터다. 85년 ‘쇼와 천황’ 치세 60돌 때 도쿄 시민 수만명의 화려한 제등행렬 속에 떠밀려가면서 느낀 일본인들의 ‘다행증’(Euphoria: 근거없이 행복감에 젖는 기질적 정신장애)에서도 그는 그것을 감지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감정이입이, 유독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며 사는 일본인들과는 제대로 되지 않는 사실에서도 그는 그런 공허감을 느꼈다.

그는 일본사회의 공허감이 ‘죄의식의 억압’에서 비롯했다고 진단한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자만이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 즐거운 감정이 솟아오르기도 전에 몸으로 웃는 시늉만 익힌 자들의 감정은 절대 풍부해질 수 없다.” 의식의 내면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죄악에 대해 철저히 슬퍼하고 철저히 울지 않는 한, 일본의 정신과 문화는 결코 풍요로워질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죄의식이야말로 귀중한 문화”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일전쟁 기간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근처 루안 육군병원 등에서 14명의 무고한 중국인들의 생체해부에 직접 참가했던 군의관 중위 출신 유아사 겐, 병사들의 전쟁영양실조증(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을 지켜봐야 했던 베이징 제1육군병원 군의관 출신 오가와 다케미쓰, 중국인 ‘토끼사냥’을 지휘했던 북지나방면군 제12군 32사단 소위 출신 고지마 다카오 등 전범자들을 만나 끈질기게 묻고 들었다. 이들은 그나마 자신들의 과거 행위를 뉘우친 사람들이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각종 강연에서 일본군의 죄악을 증언했으며 중국인 피해자들을 돕고 그들과의 인간관계 회복에 힘쓰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노다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깊은 상처들을 안고 있었다. 책에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는 그들의 증언은 실로 끔찍하다. 전쟁 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18살 처녀를 끌고가 성적으로 착취하고 토막내 구워먹고 산채로 장기를 잘라내었고, 연습용으로 산사람을 군도로 찌르고 목을 쳤다. 수도 없이, 그리고 아무 죄의식도 없이.

일본의 집단주의와 베트남의 한국군


하지만 대다수의 전범자들은 지금도 변명하고 있고 또 그들 중 다수는 여전히 죄의식조차 없다. “전쟁이었으니까”,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지 침략전쟁은 아니었어”,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지, 어쩔 수 없었다”, “자학사관은 인정할 수 없어”, “영국도 미국도 소련도, 중국까지도 다 그랬어”, “이기든 지든 전쟁은 어차피 비참한 거야.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든 걸 뭉뚱그려 일반화해버리고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 사회,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직시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로 상처를 덮고 과잉보상받으려는 사회, 그것이 일본의 공허함을 만들었다. 인간의 순수한 개인 감정은 사라지고 국가 이데올로기와 집단주의가 횡행하는 사회.

그는 말한다. “우선 과거에 무슨 일이 저질러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범세대와 전후세대가 서로 오래 이야기하고 서로 느끼는 감정이입을 통해 비로소 상처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나치독일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진행했던 일부 작업을 제외하면, 침략국 전범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의학자의 전문적인 현장 면접조사로서는 역사상 처음이다. 독일에서도 전후 40년이 지난 80년대에 들어와서야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이 시작됐다. 그의 책 은 이미 독일어, 영어, 폴란드어로도 번역됐고, 한국어 번역본 출간과 같은 시기에 베이징에서 중국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그는 지난 6일 의 중국어판 출판 기념을 겸해 중국에 갔다. 7월7일은 1937년 그날 베이징 서남쪽 노구교에서 일본군의 음모로 중·일 양국군이 충돌함으로써 중·일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8∼9일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와 일본연구소가 주최한 ‘침략전쟁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거기에는 ‘일본식민지교육연구회’와 역사학자 및 일본 고교 사회과 교사들로 구성된 단체인 ‘인간과 교육’, 그의 책에서 아버지 세대의 죄악을 드러내고 화해를 추구하는 전후세대 일본인으로 나온 와타나베 요시지 등도 참석했다.

그는 지난 79년 10·26 직후의 권력 공백기 때, 그리고 지난해 등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년 만에 본 서울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고엽제피해후유의증전우회의 한겨레 사옥 난입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 등이 연이었던 “한국인들의 감정마비는 (일본보다) 더욱 일반적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은 미군 이상으로 잔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군과 매우 닮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지만 한국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것이다. 미군도 베트남전쟁 당시 많은 전쟁신경증 환자가 있었다. 참전 한국군에 대해 그런 연구가 진행됐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런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당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세를 보인 미군 병사는 전체의 35.8%에 이르렀고, 10∼50%가 정신장애 증세를 나타냈다는 보고도 있다.

통일은 정신적 상처 치유부터

이 대목이 그의 책을 읽고 나면 특히 부끄러워지는 부분이다. 환란으로 인해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입은 정신적 상처로 치면 우리는 일본과 비교할 수도 없는 험한 시대를 살아왔다. 남북 대치가 만들어낸 상처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고, 모든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떠넘기는 감정마비상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동란의 체험으로 인한 물질적 손실보다 정신적 상처가 더 심각하고 더 오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공론화한 바 없다. 노다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과정에서도 통일비용 등 경제적 문제보다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책은 98년에 이와나미 서점에서 출판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8쇄를 발행하는 등 일본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 오는 9월에는 한국과 일본, 독일 개신교도들 중심으로 전쟁과 죄의식에 관련한 실천대회가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체첸, 아프간 등 전쟁과 변란이 있는 곳은 다 누비고 다닌 그의 꿈은 이렇다. “일본군이 37년 사건을 일으킨 노구교에서 상하이, 그리고 난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2개쯤 만들어 아시아 모든 지역 사람들이 한 1주일간 현장을 걷게 한다. 전쟁을 체험한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 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을 동남아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공동작업으로 해내고 싶어한다.

도쿄=한승동/ 한겨레 도쿄 특파원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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