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문화계 키워드 중 하나는 안중근이다. 오른쪽 사진은 오는 12월 개봉하는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배우 정성화. /CJ ENM
2022년 문화계 키워드 중 하나는 안중근이다. 오른쪽 사진은 오는 12월 개봉하는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배우 정성화. /CJ ENM

김훈이 지은 소설 ‘하얼빈’이 9주 연속 종합 1위(교보문고)를 질주하고 있다. 인쇄량은 8쇄 22만부. 작가는 “안중근 심문 조서와 공판 기록에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다”며 “시대 전체와 맞서는 그 고압전류를 옮기고 싶었다”고 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소설은 다른 베스트셀러에 비해 40~60대 남성층에서 인기가 많다. 독자들 사이에서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됐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는 감상평을 받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1426만 관객을 모은 윤제균 감독은 오는 12월 뮤지컬 영화 ‘영웅’으로 돌아온다. 하얼빈 의거 직전부터 순국까지 안중근(1879~1910)의 마지막 1년을 담았다.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뮤지컬 ‘영웅’도 12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다. 올해 하반기 문화계 키워드를 안중근이 예약한 셈이다. “한국 사회가 경제 불황과 사회적 위기에 둘러싸여 있어 대중이 안중근에게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훈은 '하얼빈'에서 역사 소설의 장인다운 면모를 또 보여준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 6발을 쐈다. 러시아 헌병들이 덮칠 때 "코레아 후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탄창 안에는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김훈은 '하얼빈'에서 역사 소설의 장인다운 면모를 또 보여준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 6발을 쐈다. 러시아 헌병들이 덮칠 때 "코레아 후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탄창 안에는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영화 ‘영웅’은 어머니를 그린 이야기

윤제균 감독에게 ‘영웅’은 8년 만의 복귀작이다. 그는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들을 만나 “영화 ‘영웅’을 12월 21일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영화 속 블라디보스토크의 모습은 라트비아에서 촬영했고 하얼빈은 합천과 평창의 세트에서 재현한 뒤 시각특수효과(VFX)로 구현했다.

“투자자들은 정성화가 안중근을 연기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 작품을 가장 잘 아는 배우이고 노래 실력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설득했다. ‘국제시장’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영웅’은 어머니를 그린 이야기다.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나문희), 모자 관계가 핵심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다. 험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영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날 자리에는 주연 배우 정성화·김고은·이현우·박진주 등과 투자배급사 CJ ENM이 함께했다. 노래는 대부분 라이브로 녹음했고, ‘그날을 기약하며’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등 원작 뮤지컬의 삽입곡 외에 조선의 마지막 궁녀이자 독립군 정보원 설희(김고은)가 부르는 한 곡이 추가됐다. 윤제균 감독은 “김고은의 노래 실력은 가수 소찬휘급”이라고 말했다. 정성화는 “미래를 바꿔줄 영웅을 기다리면서 정작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영웅은 잊고 산다”며 “보면 가슴이 뜨거워질 영화”라고 했다.

뮤지컬 '영웅'의 하얼빈 의거 장면. 이 뮤지컬은 하얼빈역에 실제 기차가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한 무대미술로도 유명하다. /에이콤
뮤지컬 '영웅'의 하얼빈 의거 장면. 이 뮤지컬은 하얼빈역에 실제 기차가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한 무대미술로도 유명하다. /에이콤

◇뮤지컬도 발레도 ‘안중근 열풍’

뮤지컬 ‘영웅’은 마곡으로 이사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12월 21일 개막한다. 영화 ‘영웅’과 뮤지컬 ‘영웅’이 같은 날 관객을 만나며 동반 흥행하는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LG아트센터 서울 관계자는 ‘영웅’을 첫 뮤지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안중근 의거 100주년인 2009년에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해 좋은 평가를 받은 창작 뮤지컬”이라며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이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은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안무 문병남)이었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오”라는 안중근의 유언에서 출발한 드라마 발레. 이동훈이 안중근, 김지영이 김아려, 김순정이 조마리아로 춤췄다.

뮤지컬 '영웅'의 법정 장면. 배우 정성화는 2009년 초연부터 10년 넘게 주인공 안중근으로 출연했다. /에이콤
뮤지컬 '영웅'의 법정 장면. 배우 정성화는 2009년 초연부터 10년 넘게 주인공 안중근으로 출연했다. /에이콤

◇지금 왜 안중근을 부르나?

그는 이순신과 함께 국민 모두가 흠모하는 영웅이다. 김훈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외쳤던 두 개의 이슈, 약육강식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과 동양 평화는 (최근 대만과 중국 갈등을 보면) 여전히 유효한 외침”이라고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일제강점기나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코로나 사태와 경제 불황, 물가 상승이 최대의 위기”라며 “안중근 의사는 역사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이렇게 어려울 때 불려나와 우리에게 긍지와 위로, 자극을 준다”고 해석했다.

오는 10월 26일은 하얼빈 의거일.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하얼빈 의거 113주년 기념식’을 연다.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지만 온 나라가 안중근을 부르고 있다. 영화와 뮤지컬에서 안중근이 노래하는 ‘장부가’는 이렇게 흘러간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오는 26일 ‘하얼빈 의거 113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뉴스1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오는 26일 ‘하얼빈 의거 113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