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들어온 늘봄학교, 애들은 누가 늘 봄? - 주간경향
훅 들어온 늘봄학교, 애들은 누가 늘 봄?
송진식 기자
2023.03.13ㅣ주간경향
전담인력 등 해결 안 된 채 시범운영
‘가정돌봄’ 정책 필요성 지적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국가교육책임 강화’ 차원에서 마련된 ‘늘봄학교’가 개학과 함께 이달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늘봄학교는 쉽게 말해 학부모가 원하면 자녀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최대 13시간 동안 학교에 맡길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해당 시간 동안 학교에서 간식과 간편식 등을 포함한 삼시 세끼도 주고, 질과 양을 모두 확보한 교육적인 돌봄을 제공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어린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늘봄학교는 정부가 지난해 8월 추진 방침을 밝힌 직후 논란에 휩싸였던 ‘초등 전일제학교’의 개명 후 이름이기도 하다. 전일제학교에 대해 “12시간씩 아이를 학교에 머물게 하는 건 아동학대”(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비판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올 1월 “전일제학교 명칭에 대해 강제적 활동으로 오해하는 등 현장의 부정적 인식이 있어 명칭을 늘봄학교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일하는 동안 자녀의 돌봄을 맡길 곳이 마땅찮은 맞벌이부부 등에게 정부가 나서서 돌봄정책을 확대 제공하는 건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그간 학교 돌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전담인력 및 공간의 부족 문제, 학교와 교사에 대한 과도한 돌봄책임 부여 논란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늘봄학교를 향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교 내 돌봄시간을 늘릴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가정돌봄’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고용, 복지, 가족정책 등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돌봄시간 확대, ‘틈새돌봄’ 도입…“졸속” 비판도 현재 학교는 정규수업, 돌봄교실, 방과후프로그램(방과후)이라는 세 개의 큰 ‘축’으로 운영된다. 늘봄학교는 돌봄교실과 방과후를 통합한 개념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도 ‘온종일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돌봄 확대정책을 펼친 바 있고, 늘봄학교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외형적으로는 오후 7시까지였던 온종일돌봄의 저녁돌봄 시간을 8시까지 확대하는 등 학교가 제공하는 돌봄시간을 더 늘린 것이 늘봄의 차이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이번 시범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별로 운영 중인 기존 아침·저녁돌봄 등과 늘봄학교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시범운영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일부 지역에서 하기엔 학부모 민원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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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3학년 학생이 늘봄학교 체계에서 하루 13시간 동안 학교에 머무른다면 우선 아침 7시에 등교해 9시까지 돌봄교실(아침돌봄)에 있게 된다. 9시부터 시작되는 정규수업은 오후 1~2시면 끝난다. 이후 5시까지 돌봄교실(오후돌봄)과 방과후프로그램을 오간 뒤, 다시 5시부터 8시까지 돌봄교실(저녁돌봄)에 있다가 귀가하는 방식이다.
교육부가 지난 2월 27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늘봄학교 시범운영에는 5개 시·도교육청에서 총 214개교가 참여한다. 전체 초등학교(2022년 기준 6163개교)의 3.4%에 해당한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80개교로 가장 많다. 이어 전남 43개교, 경북 41개교, 인천 30개교, 대전 20개교 등의 순이다. 교육부는 이들 5개 시·도교육청에 시범운영을 위한 특별교부금을 약 600억원 지원할 계획이다. 과대·과밀학교 등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돌봄수요를 위한 교육청 주관 거점형 돌봄기관도 7곳에 구축하기로 하고 모두 2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늘봄학교에서는 ‘틈새돌봄’도 새로 도입됐다. 정규수업 후 2개의 방과후를 들을 경우 때에 따라선 수업 간 시간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 시간 동안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는 돌봄 공간을 따로 제공하는 게 틈새돌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프로그램인 ‘에듀케어’도 늘봄 시범학교에서 운영된다. 학교 조기 적응을 돕고, 일찍 수업이 끝나 발생하는 돌봄공백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다. 방과후프로그램도 전반적으로 개편돼 인공지능(AI), 코딩, 빅데이터, 드론 등 신산업 분야 프로그램이 개설된다. 학생들이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문화·공연·예술활동 프로그램이 추가된다.
교육부는 올해 시범운영이 끝나면 내년 중 늘봄학교 적용을 확대한 뒤 2025년부터는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만5000여명의 돌봄교실 대기수요가 발생했지만 2025년부터는 원하는 학생 모두 늘봄학교로 수용하겠다고도 밝혔다.
정부의 늘봄학교는 정책이 확정발표(1월 9일)되고부터 시범운영학교가 확정발표(2월 27일)되기까지 채 두 달이 안 걸렸다. 교육부는 해당 기간 동안 학부모 수요조사와 시·도교육청의 참여 공모 과정도 다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교육계에선 ‘졸속추진’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교조는 “저학년 학생들이 12시간 이상 학교에 머무는 것이 돌봄 수요를 넘어 학생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가지는지 우려가 크다”며 “학교의 돌봄 수요조사는 물론 공간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학교 운영계획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교육부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라고 밝혔다.
황수진 교사노조 정책2실장은 “5개 시·도 시범운영 지역은 늘봄학교전담센터 및 지자체와 협업관계 구축 등의 기반 조성이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어 학교 내 지속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라며 “당장 올 상반기에 예정됐던 차세대 나이스(NEIS) 시스템의 도입과 늘봄전담센터 구축이 늦어지면서 1학기에 이뤄지는 늘봄학교 프로그램 운영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이는 누가 돌보나, 교사·전담사 “업무 부담” 교육계에서 늘봄학교가 환영받지 못하는 점은 정책이 안착하고 확산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학교에서 돌봄 시간이 늘어난다는 건, 누군가는 그에 따른 돌봄 업무와 관련 행정업무를 추가로 맡아야 함을 의미한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정책수립에 앞서 지난해 교사 및 돌봄전담사들과 잇달아 간담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 바람과는 달리 시범운영이 시작된 현시점까지 교사와 돌봄전담사 측 모두 업무를 추가로 맡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돌봄전담사들은 학교비정규직노조를 통해 최근 학교장단체에 공문을 보내 “늘봄학교로 인해 근무조건이 달라졌다”며 “전담사에게 늘봄업무를 전담케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전교조와 교사노조 등 교원단체들도 학교장들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교사가 늘봄학교 업무까지 추가로 맡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각 교육청에 전담지원팀과 인력, 센터 등을 개설해 지원함으로서 일선 학교의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다. 추가 인력 고용에 따른 비용을 지원하거나 늘봄학교를 담당할 ‘정원 외 시간제교사’를 교육청 단위에서 직접 선발해 지원하는 방안 등도 시범운영 과정에서 도입됐다. 과거 일부 교육청에서 운영했던 돌봄교실 담당교사에 대한 추가 승진가점 부여도 부활됐다. 하지만 시범학교에서 인력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체 학교의 3% 수준에 불과하고, 전체 도입 시 97% 학교의 인력문제를 해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총은 “당장 늘봄학교 공문은 누가 접수·처리할지, 수요조사와 프로그램 개설, 전담사 및 강사 채용·관리, 학생 선정, 안전 관리 등을 누가 맡을지 현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며 “경감은커녕 오히려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업무분장을 놓고 학교 구성원 간 벌써 갈등만 심화시키는 늘봄학교는 지자체로 이관해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좋은교사운동은 “돌봄시간과 대상을 확대하고, 방과후와 돌봄을 통합해 운영하는데 학교 업무가 경감될 가능성은 낮다”며 “이번 발표로 업무 과부하가 예상되는 돌봄전담사들을 위한 구체적 지원 방안 등 지속 가능한 돌봄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늘봄학교를 실행할 인력들에 대한 안정적 고용 뒷받침과 학교에 대한 추가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교장은 “늘봄학교 수요가 얼마나 될지, 담당할 인력이 확보될지 불확실해 이번 시범운영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인력문제의 경우 승진가점을 주거나 추가 근무 수당을 주는 것만으로는 담당교사를 확보할 유인책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전담사들은 시범운영 과정부터 늘봄학교 업무를 맡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학비노조 돌봄분과 조순아 정책국장은 “지난해 협의 단계에서부터 늘봄학교에 대한 정확한 수요파악과 추가 돌봄 업무에 대한 규정과 책임소재 등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시범운영 학교에서 돌봄전담사들은 늘봄학교 업무를 맡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돌봄전담사들의 경우 각 학교와 개별 근로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형태다. 학교별로 돌봄수요에 따라 근무시간도 달라지기 때문에 전일제(8시간) 근무를 하는 전담사가 있는 반면 4시간, 6시간 등 시간제 근로를 하는 전담사도 많다. 이미 기존 근로계약으로 합의된 근무시간과 해당 업무 규정이 있는데 갑자기 늘봄학교 업무를 추가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21년 발간한 <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의 성과 및 과제> 보고서를 통해 “초등돌봄교실에서 돌봄전담사 1명이 담당하는 학생은 21.5~26.1명으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1인당 10명)에 비해 많다”며 “담당 학생 수 감소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1년부터는 교사들이 일부 담당하던 돌봄 행정업무도 대부분 돌봄전담사에게 이관된 만큼 늘봄학교 업무까지 갑자기 맡는 건 무리라는 전담사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늘봄학교’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교육부 제공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정책실장은 “교육부는 늘봄학교에서 모든 초등학생이 ‘방과후 교육·돌봄’을 원할 때 이용 가능하도록 2025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범운영의 파행적 운영 행태로는 아이들이 실험 대상만 될 것”이라며 “현 정부는 돌봄의 양적 확대에만 치중했던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양육’은 실종, 거꾸로 가는 윤 정부 노동정책 올해 둘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맞벌이 직장인 A씨는 돌봄교실을 신청하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첫째 아이가 돌봄교실에서 머무를 때 경험했던 ‘불편한’ 기억이 있어서다. A씨는 “하루는 아이를 데리러 돌봄교실에 가서 잠시 지켜본 적이 있다”며 “아이가 딱딱한 의자에 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이 자세 저 자세 바꿔가며 책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니 오후 내내 아이가 돌봄교실에 있는 게 맞는가 싶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고 말했다. A씨는 되도록 둘째가 돌봄교실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사설학원 교습 등을 고려 중이다.
정부가 늘봄학교에 대해 “늘 봄같이 따뜻한 학교”라고 설명하는 것과 달리 현실적으로, 학교와 교실은 아이를 돌보기에 적절한 공간이 아니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지방 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애초에 학교는 수업과 교육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지 보육이나 돌봄을 위해 설계된 곳이 아니다”라며 “사정상 저녁돌봄까지 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는데, 볼 때마다 안쓰럽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 최대 13시간 동안 아이를 학교에 머무르게 하는 늘봄학교를 두고 “아동학대”라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돌봄교실 상당수는 정규수업이 진행되는 교실과 병행해 쓰기 때문에 휴게공간 등이 마련된 전용실로 당장 전환하기도 힘들다. 돌봄교실에서 종이접기나 책읽기 등과 같은 단순 과제만 반복하는 걸 나무라기도 어렵다. 학부모 부담인 방과후와 달리 무료인 돌봄교실에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자체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과의 차별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뛰어놀게 하려고 해도 돌봄전담사 1명이 20명이 넘는 아이들의 안전문제 등을 홀로 감당하기엔 벅차다.
이 때문에 늘봄학교 정책개발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학교 돌봄을 확대하기에 앞서 ‘가정양육’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이성회 한국교육개발원 방과후학교중앙지원센터장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편치 못한 경직된 공간에서 하루종일 있어야 하는 저녁돌봄은 비교육적”이라며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부모와 함께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게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고, 이를 위해 학부모의 고용(노동)·복지·가족 정책이 연계가 되고 주(主)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의 늘봄학교 정책에는 그 어디에도 ‘가정양육’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복지부나 여성가족부,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돌봄시설과의 연계방안은 있지만 가정양육 확대를 위한 범부처 차원의 대책 역시 나와 있지 않다. 가정양육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노동문제의 경우 윤석열 정부 들어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가정양육을 확대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인데, 윤 정부는 지금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본다는 계획이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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