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윤평중 시론] 문재인식 反민주·反공화 ‘진리정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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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문재인 정부의 봄날은 갔다. 
엄혹한 현실만 남았다.
문재인식 '진리정치'를 넘어서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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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시론] 문재인식 反민주·反공화 ‘진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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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시론] 문재인식 反민주·反공화 ‘진리정치’
[신동아] ‘운동권적 선악이분법’, 민중의 삶과 나라 흔든다 ● 봄날은 갔다 ● 일자리 참사, 양극화 확대, 인사 실패, 저자세 대북 유화책… ● 문 대통령 ‘나만 진리고 선’에 함몰 ● 실정(失政)은 남의 탓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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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시론] 문재인식 反민주·反공화 ‘진리정치’
입력2019.04.21.
[신동아]  ‘운동권적 선악이분법’, 민중의 삶과 나라 흔든다

● 봄날은 갔다
● 일자리 참사, 양극화 확대, 인사 실패, 저자세 대북 유화책…
● 문 대통령 ‘나만 진리고 선’에 함몰
● 실정(失政)은 남의 탓이자 과거 탓
● 정책이 재앙이 돼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출범 3년차를 맞는다. 국민적 환호와 함께 호기롭게 시작한 2년 전의 봄날은 갔다. 우리 사회엔 긍정과 통합보다는 부정과 적대의 기운이 가득하다. 경제엔 먹구름이 끼었다.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핵 위기 해결은커녕 남북관계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정권 차원의 역사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온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독식하고 사법부와 언론을 재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20년 집권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만큼 민심은 차갑다. 흔들리는 민심의 일단을 4·3 보궐선거 결과가 섬광처럼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대부분 자초한 것이다. 압도적인 촛불 민심으로 타오른 거대한 정치동력을 2년도 안 돼 소진한 것은 정권 자체의 무능과 무정견 외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역사를 도살장에 비유한 바 있다. 한국 현대정치사야말로 집권 세력의 도살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정권에 대한 대중의 과잉기대와 과대환멸의 악순환은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집권자의 생명주기도 그만큼 짧다. 촛불의 도정(道程)에서 정치적으로 ‘도살된’ 이명박·박근혜 정권조차 한때는 보수의 장기 집권을 꿈꿨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의 기시감을 곱씹게 된다.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많은 증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조치들은 지지부진하다. 문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여러 경험적 증거가 쌓이고 있다. 민생고가 극심하고 외교안보는 흔들린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과 일자리 참사, 양극화 확대, 거듭된 인사 실패, 저자세 일변도의 대북 유화정책, 외교안보 균열 등이 생생한 사례들일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 실패도 심각하지만 정책 실패를 낳은 근원적 이념을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반복되는 정책 실패와 인사 참사를 보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당당한 것은 ‘내로남불’의 두꺼운 얼굴 덕분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민심 이반의 기미를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특유의 정치철학인 ‘진리정치’ 때문이다. 결국 문 정부의 진리정치야말로 출범 2년 만에 국가의 위기를 부른 사상적 근원이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신한다. 자신들이 촛불혁명의 대의를 구현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소명을 거듭 강조한다. 친일적폐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민족정기를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가 촉발한 역사전쟁에서 보듯 문 정부는 국정 정상화에 필요한 적폐청산의 적정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국정 전체가 ‘진리정치의 선악 이분법’에 함몰되면서 국가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선악 논리로 현실정치를 가를 때 발화(發話) 주체인 정권이 진리와 정의의 대변자가 된다. 이는 정확히 문재인 정부가 밟아온 길이다. 진리정치는 정치영역에 강력한 진리 주장을 투사하면서 정치적 실천의 진리가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 결과 정치적 진리의 담지자와 허위에 매몰된 반동세력이 칼같이 나뉜다. ‘두 국민 전략’을 채택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도덕적 우월감과 정의감으로 가득한 대통령과 정권 핵심 인사들의 언행이 진리정치를 웅변한다. 

서울대에 8년간 유학했고 평생 한국을 연구한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로 정의한다. 이는 한국인이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이 도덕 지향적”이라는 말은 모든 걸 도덕으로 환원하는 도덕 근본주의를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관행을 가리킨다. 겉으로 나타난 도덕적 우위를 권력 쟁탈의 도구로 사용하는 한국적 관습을 짚은 것이다. 문 정부는 선과 정의의 구현자임을 자처하면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이단시한다. 친일적폐 공세가 증명하듯 보수를 악과 불의의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인 한국 사회’의 승자로서 문재인 정부가 질주해온 게 지난 2년의 족적이었다.

‘도덕쟁탈전 극장’ 한국 사회의 승자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진리정치는 심각한 후과(後果)를 초래하고 있다. 약자를 위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을 진리로 여기는 문재인 정부는 민중의 비명소리에도 정책 전환을 거부한다. 정의롭고 참된 경제정책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연보호라는 진리의 이름으로 탈원전을 정당화하고 4대강 보를 해체하려 한다. 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북한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안보위기를 부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평화를 파괴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수구세력의 책동이라며 맞받아친다. 감정적 반일 정책이 국익을 해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민족정기가 먼저라고 반박한다. 정책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때 문 정부는 정책 결함을 성찰하기보다 전임(前任) 보수정부를 탓하고 수구집단의 저항을 비난한다. 이처럼 진리정치의 폐해가 총체적 국가 위기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현실정치는 공동체의 번영과 민생의 성과로 판정된다. 우연과 불확실성의 공간인 정치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할 리 없다. 욕망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삶의 현장에서 보편적 정의를 독점한 진리정치는 갈등과 적대를 부추겨 타협과 공존을 어렵게 한다. 진리정치가 현실의 문제를 풀기는커녕 나라를 뒤흔드는 이유다. 진리정치의 해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구조와 동력을 해부해야 한다. 진리정치야말로 사상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진리정치는 민주공화정의 위기를 부른다. 진리를 독점한 진리정치는 민주주의의 본질인 비판을 적대시하고, 공화국의 핵심인 법치주의와 사회 통합을 무시한다. 서양에서 진리정치는 플라톤에서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성리학이 진리정치의 모델이었다. 국가철학으로서 플라톤주의·마르크스주의·성리학은 모두 비판과 다원주의에 적대적이었다. 진리정치를 거역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되거나 민중의 적(敵)으로 정죄되었다. 한국 사회를 과거사의 블랙홀에 밀어 넣은 문재인 정부의 역사전쟁은 진리정치의 폐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진리정치는 정치적 실천의 진리가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의 진리성이 확보되면 진리정치와 거짓정치 사이에 깊은 심연이 생긴다. 진리정치는 진리를 알고 실행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범주적 구별을 낳는다.

문 정부의 망탈리테(집합적 무의식)
진리정치의 정치사상사적 모델은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마르크스주의이며, 조선왕조에서는 성리학이다. 문재인 정부의 진리정치는 플라톤적 색깔의 마르크스주의 정치관과, 성리학적 정치관에 심정적으로 빚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마르크스주의나 성리학을 정권이념으로 삼는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망탈리테(집단적 사고 및 집합적 무의식)가 마르크스주의와 성리학적 진리정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플라톤은 정치적 혼란상태(anarchos)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이상국가의 지도자인 ‘철인 통치자’ 육성책을 ‘국가’에서 상세히 논한다. 그런 논술의 결론은 동일한 사람(들)이 진리와 통치 권력을 통합할 때 좋은 나라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적 진리정치에서 진리 이해와 정치적 실천은 불가분리적이다. ‘동굴의 비유’가 진리정치의 행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최선의 훈련을 거쳐 최고의 좋음을 보게 된, 즉 쇠사슬을 끊고 동굴의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 실제 세계의 태양을 보게 된 사람(들)은 다시 동굴에 들어가 암흑 속에 갇혀 있는 동료 죄수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정치를 믿는 문 정부 인사들이 ‘열등한 국민’을 항상 ‘가르치려’ 드는 건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플라톤의 국가철학보다 훨씬 강력한 현대적 진리정치의 모델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의 진리를 해명한 학문 탐구와 민중 해방을 위한 정치적 실천이 같다고 선언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은 곧 진리정치의 이념과 실천을 가리킨다. 현실사회주의의 중앙통제경제는 진리정치에 상응하는 ‘진리경제’이다. “민주주의만이 특수자와 보편자의 진정한 통일이며, 이 민주주의에서 형식적 원리와 실질적 원리가 일치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진리정치 패러다임의 전형이다.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야말로 진리정치 그 자체다.

지배자의 적은 인민의 적

대화를 나누는 청와대 관료들. 왼쪽부터 노영민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청와대기자단]
하지만 마르크스가 꿈꾼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에 의한 민주주의’는 공산당 독재로 타락했다. 공산당과 서기장의 통치는 인민을 위한다는 진리정치 이념으로 분식되었다. 현실사회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이상이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왜곡됐다는 변론은 피상적이다. 마르크스적 진리정치 자체가 자기파멸의 씨앗을 내장하고 있었다. 진리를 빙자한 통치가 무서운 것은 절대적 진리가 비(非)진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며 통치자가 진리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진리정치에서 지배자의 적은 인민의 적과 동일시된다. 좌파 독재가 우파 독재보다 훨씬 지독했던 사상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적 진리정치의 신봉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옳다는 확신과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하다. 진리정치에서 나오는 정책이 현실에서 실패하면 이들은 정책보다는 현실 탓을 하면서 반동적 현실을 만든 자들의 책임을 따진다. 설령 좌파적 진리정치가 현실투쟁에서 패배해도 이들은 역사투쟁을 기약한다. 현실에서 패배한 좌파 양심수들이 종교적 순교자 비슷하게 처절한 정치적 양심의 수호자로 남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조선왕조에서도 진리정치가 지배적 흐름이었다. 천명과 천리(天理)를 찾는 성리학에서는 단일한 통일적 세계질서가 상정되며 그 질서는 자연과 역사에 두루 적용된다. 모든 존재가 세계이성을 분유(分有)해 본성을 이루며 그 질료를 받아 개별자의 모습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성즉리(性卽理)의 원리는 이를 가리킨다. 존재논리와 도덕논리가 호환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정치는 ‘하늘의 이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정당화된다. 

성리학적 진리정치에서 하늘의 질서는 정명론(正名論)으로 표출되며 “정치는 바로잡는 것”(政者正也)이다. 세계 이성은 바름의 원천이요, 정치는 그 실현이라는 것이다. 조선조 성리학은 이를 극단화한 진리정치로 도식화했다. 이처럼 정치가 영원한 진리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때 정치적 갈등과 이견은 진리에 대한 모독이나 천명에 대한 훼손이 된다. 권력투쟁이 곧 진리투쟁 기능을 한다. 조선조에서 권력투쟁이 생명을 건 명분론적 예송(禮訟)과 필사의 당파 싸움으로 점철된 까닭이다. 

하지만 진리정치는 이론적·실천적으로도 두루 해롭다. 진리정치가 인간 지식의 잠정적 성격을 간과함으로써 당위론에서 나온 정책이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는 지배·피지배관계를 포함하며 모든 정체(政體)는 지배관계의 정당화를 위해 진력한다. 인류의 역사는 진리정치가 지배의 정당화에 봉사하는 기능을 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정의 경우에조차 실질적 지배자는 항상 소수에 머무른다. 진리정치는 이 지점에서 역사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게 된다.

비판하면 기득권세력으로 몰아
내(우리)가 진리의 편일 때 나(우리)에 대한 반대자들은 필연적으로 허위의 편이다. 통치자가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통치행위가 정의의 실현이 되면 건전한 비판조차 악랄한 음해로 여겨진다. 자신들의 실정(失政)은 모두 남의 탓이자 과거 탓이다. 한국적 운동권 정치의 정치적 상상력과 감수성은 진리정치에 크게 의존한다. 현대 한국 정치에서 타협이 죄악시되고 구체적 현실에 입각한 변화가 변절로 매도되기 일쑤인 건 이 때문이다. 진리정치는 현실감각과 차이의 감수성을 저해한다. 진리정치의 최대 문제점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정치적 진리의 이름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진리정치가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하고 나라를 흔드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진리정치는 이상국가론과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진리정치는 비루한 현실을 혁파해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인 것은 진리정치가 강제와 억압 없는 철인통치의 이상 국가를 꿈꾸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고상한 꿈이 전체주의나 독재로 타락한 이유는 역사의 낙후성이나 궁정정치에만 있지 않다. 진리정치의 사상적 속성 자체가 열린 사회와 적대하고 나라와 민생에 해롭다. 

진리정치는 공화정과 충돌한다. 공화정에서는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본질적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다. 진리정치의 엘리트주의적 기본 전제가 부인된다. 나아가 공화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경쟁하는 세력들의 건전한 이견과 갈등을 먹고 자라는 정체(政體)이다. 진정한 공화정에서는 누구도 정치적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진리정치는 공화정의 법치주의와 애국심을 독단적 진리 아래 종속시켜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진리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자유토론과 상호비판이 민주주의의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서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입장이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반대 논변을 거칠게 힐난한다. 문재인표 경제정책을 비판하면 분배정의를 반대하는 기득권세력이라고 몰아붙인다. 문 정부 대북 유화정책의 일면성을 지적하면 전쟁을 부추기는 논리라고 공격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서조차 적폐세력에 부역하는 기회주의라고 매도한다. 협치와 통합의 정치가 들어설 자리를 문재인식 진리정치가 원천 봉쇄한다. 

절대적 진리 따위는 없다
‘정치의 목표가 진리 구현에 있다’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적이고 성리학적인 진리정치의 망탈리테를 현대사에서 내면화한 대표 주자가 한국적인 운동권 정치다. 운동권 정치는 민주화를 앞당기는 혁혁한 공을 세움과 동시에 진리정치의 독소를 퍼뜨렸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운동권 정치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악의 세력’인 수구반동집단을 ‘분쇄’하는 것을 정권의 소명으로 여기는 게 단적인 증거다. 

하지만 성리학과 마르크스주의적 상상력을 뒤섞은 운동권의 진리정치 이념은 반(反)민주적이고 반(反)공화적이다. 정치적 경쟁자를 악으로 매도하는 진리정치는 민주공화국의 현대 정치와 동행할 수 없다. 진리를 전유(專有)한 통치자가 이상향을 향해 진군할 때 국가는 위기에 빠지고 민중의 고통은 증폭된다. 문 정부가 민족주의를 진리로 격상하면서 남북 국가이성의 대립적 본질을 무시할 때 한반도 평화의 길은 더 멀어진다. 진보·보수의 협치 없이 남북의 평화 공존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진리정치는 내치(內治)를 해치고 한반도 평화를 저해한다. 

진리정치는 민주공화정의 적(敵)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리정치의 미망(迷妄)을 깨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현실정치에 절대적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의견(doxa)의 지평’이기 때문이다. 현실정치에서는 그 누구도 원천적 정당성을 자임할 수 없다. 정치의 근본은 자유시민의 성숙하고 풍요로운 삶이라는 성과를 내놓는 데 있다. 현실정치는 오직 구체적 결과로써 말할 뿐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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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명열
봄날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현실을 망각한 신기루를 쫒는
헛개비들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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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김관기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도 단순하지 않다는 인식에 기초해야 정치를 할 수 있는데, 단순한 사고로 밀어붙이는 듯합니다. 결국 사람 임명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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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ka Nam
우리가 믿는 종교적 철학적 진리와 정치에서 주장하는 이념적 구호와 집단적 자기 정당화의 논리가 어떻게 다른지, 분별하게 해주는 정말 감사하고 귀한 글 입니다.
윤평중 교수님을 통해 이 혼돈의 시대를 들여다 볼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혹자들은 윤교수님을 보수의 대변자라 몰아붙히지만 교수님이야 말고 가장 중심에서 우리사회의 양극단을 꾸짖고, 혹은 진리로 혹은 애국으로 위장한 우리의 위선의 정치에 가장 날카로운 메스의 칼날을 들이대는 분 입니다.
현정부는 어느 야당보다도 교수님의 질책에 두렵고 아파 할 것입니다.
이미 한라라당에 대해서는 사라져야할 당이라고 선언하신바도 있습니다.
오직 학자적 양심에서 학문적 견지에서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도 없이 쓰시는 글이기에 뜨겁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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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남 선생님께선 항상 과찬을 하셔서 제가 면구스럽습니다.
격려의 말씀으로 새깁니다만 혹 실망을 드릴까 두려운 마음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미력이나마 성실하게 쓰고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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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ka Nam
Pyung-joong Yoon
교수님의 글을 읽는것은 제게는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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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g Hwan Oh
비가 세차게 오지 않고 짜질짜질하게 오면 도시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차라리
지저분해도 비가오지 않는 날씨가 지저분해도 냄새가 없지요.
반대로 과감한 소나기가 온다면 도시는 깨끗해지고 냄새도 없이 상쾌하지요.
그렇다고 홍수로 도시가 망가지지는 않은데..
괜한 걱정으로 비가 조금만 와도 도시가 침수되고 무너질까봐 난리쳐서 멈추면 도시는 그대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역겹게 진동을 하지요.
여러면으로 생각을 해봐야 하지만 역동성의 부족이 오히려 혼선을 자아내고 경제의 관망을 유도해서 경기하락이 생기지는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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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준
교수님의 견해에 동감입니다. 지도자의 자질이나 정치 철학 수준 탓이 아닌가 봅니다.
통합을 지향해야할 지도자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니...그 진보란 것도 옛 운동권 수준에서 진화된 것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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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문 정부가 과감한 자기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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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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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격변기에 좋은 정치를 해야 나라의 운명이 좋아지는데 왜 이걸 모르는 건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좋은 글 읽으며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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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숙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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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공감합니다. 미래로 나아가야 나라에 청신한 기운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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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 Joon Chung
'진리 정치' 라는 개념적 조작은 윤평중 교수님이 처음으로 주창하신 논거이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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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네, 저는 제가 개념화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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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aik
포용과 협치는 어데가고..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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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재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동안 이해가 불가능했던 부분들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대응전락을 만들수 있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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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윤교수님, 저는 부산대 진시원이라고 합니다. 몇 가지 궁금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글을 보냅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전쟁위험을 줄이고 친일잔재를 해소하고
보정하려는 노력이 왜 문제지요? 세상을 좀 더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왜 문제지요? 이런 입장이 일종의 원리주의이고 자신만이 옳다는 선악구조를 만들어 문제라구요? 그런데 이런 건 한국당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니 한국당이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문정부의 이런 노력을 비판만하시는 윤교수님은 뭘 옹호하시는 건가요? 대안은 뭔가요? 자유시장이요? 불평등과 양극화요? 한반도 안보 위기요? 친일 긍정이요? 이런 거 아니시겠지요.
그러면 교수님께서 지지하는 입장은 중용인가요? 국가와 시장, 분배와 성장, 현실과 이상의 조화인가요? 이런 게 윤교수님 입장이신가요? 이런 입장이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이런 중용은 쉬운가요? 한국당이 청와대와 여당의 발목을 사사건건 잡고 늘어지고 판깨기만 하고 있는데, 중용의 정치가 가능한가요?
그리고 윤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정치는 뭔가요? 이상과 비전과 개혁은 쏙 빠지고 타협과 현실순응만 있는 정치인가요? 저는 윤교수님께서 항상 약간 그렇지만 결국에는 기득권과 보수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원칙 없는 양비론자로 보입니다. 헌실정치에서 적과 동지 구분없는 정치과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치는 차이의 표출이고 차이의 조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선형성은 어떤 경우 불가피하고 갈등은 극단적으로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왜 문정부는 진리정치이고 한국당은 진리정치가 아닌가요? 어느 쪽이 더 진리 정치인가요? 자유시장과 기업과 반공과 반북으로 무장한 한국당이 교수님 논리대로라면 문정부보다 더 진리정치 아닌가요? 왜 여기에는 한 마디 언급이 없으시나요?
답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말 늦은 밤에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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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 
진시원 친일잔재 해소가 말처럼 될 수가 없잖아요? 전쟁 위기는 누구가 원인인 것인지 그 대안이 경제 지원책 밖에는 없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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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Park
진시원 윤교수님 이런 교수한태는 답변하지 마세요. 공자도 큰 길 한가운데 실례한 사람은 비켜갔습니다.
4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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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준
진시원 윤교수님은 어느 정치세력을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편협하고 균형을 상실한, 시대착오적인 정책방향을 비판하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영논리에 빠지게되면 학자로서 순수한 비판은 회색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
4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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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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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이 강하면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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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진 교수님,
격정적인 논평을 길게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교수님 방식의 비판을 저는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당신 논리는 결국 한국당이 대표하는 수구세력을 도와주는 회색인의 논리'라는 것이죠.
지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 편이 아니니 '결국은' 적의 편이라는 논리겠지요.
전 그런 식의 조야한 진영논리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한국당(과 한국 수구보수의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 대해선 제가 이미 많은 비판을 한 바 있으니 제 기명칼럼들을 참고하세요. 또 여력이 되시면 제 [국가의 철학]과 [시장의 철학]에 진 교수님이 궁금해 하시는 제 입장이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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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윤평중 답글 감사합니다. 언젠가 토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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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기
적과 동지 구분에 몰입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기있게 내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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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감사합니다.
두 진영 모두에게서 비판받는 게 제 일상이긴 합니다. 두 진영 모두가 자신들 진영의 입장에서 저를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합니다. 흥미로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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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Kil kim
저는 소재 전문가로. 해외에 자주가는데. 대한민국이 잘되는길은 극우 보수 와 극좌 진보만. 싹쓸어 없애버리면. 모든게 해결 되리라 믿습니다. 최근들어 현재 국가의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정쟁을 들어본적 없습니다. 이대로가면 폭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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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김종길 극우도 수구이고 극좌도 수구라고 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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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Kil kim
윤평중 네. 수구 꼴통.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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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박
균형된 시각을 잡는데 늘 큰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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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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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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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극좌가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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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 Gu Lee
빈부격차를 줄인다.ㅡ공산주의에서는 평민들의 빈부격차는 없죠.
그러나 모든 부는 지배층의 몇 사람에게 다 돌아가고 나머지는 노예가 되겠죠.
전쟁위험을 줄인다.ㅡ깡패들에게 굽신거리고 돈달라면 돈 주고, 몸달라면 몸주고...
그러면 전쟁위험은 없어지겠죠.
그러나 전쟁을 해서라도, 쥐어터지면서라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켜질 때 사람이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고, 이런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살아도 지옥같은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의견일 뿐이니 절 공격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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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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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까지도 듣기만 좋은 미사여구 명목론적 정의론에 현혹되어 있는 현실이군요 ㅡ 지금같은 국가독재로 어떤 정의가 구현되나요? 현실과 동떨어진 좋은 말만 하면 좋은 정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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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나 성리학을 그대로 신봉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망탈리테는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오히려 지식인들이 그런 망탈리테를 더 많이 갖고 있는 건지도 모릅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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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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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이성적 국가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논의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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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ka Nam
Pyung-joong Yoon
극우 수구꼴통도 있지만 좌파꼴통도 있습니다.
제가 윤교수님을 정말 존경하는 이유는 소시민들이 인식하기 어려운 정치와 이념의 좌표들을 가감없이 날카롭게 그리고 정확하게 권력을 향해 지적하고 진리를 주장하는 그 진리의 허구성을 알기쉽게 그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로서는 결코 스스로 깨닫거나 인식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러한 민감한 문제의식과 권력에 대한 그리고 진리를 가장한 허구적인 정치 이념듳의 주장에 대산 비평적 서술은 제가 뵤현하기 외람되지만 비범한 문제의식과 철저한 학문적 분석과 그상상력에서 온 것이고 시대에 대한 투철한 학자적 책임의식에서 발로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윤평중교수님의 권력에의 지적은 결고 일개의 충동적인 주장이거나 단편적 견해 일 수 없습니다.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여 교훈을 찾고 정치가 갖을 수 있는 사악성에 대해 진정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지키려는 지적이고 고발이고 경고이며 권력에 대한 견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순전한 평범한 개인적인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견해로서밖에 말씀드릴수 없지만는 , '진리의 정치'가 갖는 위험성은 마르크나 성리리학의 예로 든 역사적 예시를 틍해 그 결과와 위험성을 돌아보게 합니다.
두루킹과 김경수의 치명적인 정권출생의 비밀?, 이것이 과거 정권이 안고있던 그 추악성과 비교할때 참 부끄러운 것입니다.
안희정과 수많은 정권기여자들의 미투와 그 과정에서의 위선. 안희정 부인이보여주는 피해자 코스프레와 전직 청와대 대변인의 자기 모순의 위선적 모습들.
그러면서도 무슨 선민의 DNA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표현들은 자기 도그마에 빠진, 정치권력의 독선적인 정치의식과 본성을 보여주는 위험한 것들이고 이 점을 교수님이 지적한 것이라고 저는 이해 합니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도 더했으면 더했던 과거 적폐의 정치세력에게는 이러한 비평조차 무의미한 것일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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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Shick Seo
세금은 ''적폐세력'', 대기업 집단에서 걷으면서 적폐세력 대기업 타도하고나면 뭘 먹고 살려고 하는지...
10년 후 대한민국은 NL과 PD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을지, 아시아의 쿠바나 베네주엘라가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요즘기업들이 어찌돌아가는지 무슨생각을 하는지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입니다.
정권이 국민의 의식수준을 정확하게 대변 한다는걸 생각하면, 나라의 장래는 국민의 의식수준으로 귀결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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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잘보았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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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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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임선생님,
페북에 올리신 글 즐겨 봅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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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Cheol Lee
윤교수님의 좋은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진리 정치에 대한 비판에는 마키아벨리 식의 현실정치와 공화주의, 포퍼의 개방 사회의 논리 등이 잘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확신은 거의 믿음의 수준이 과학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바뀌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21세기에 조차 관혼상제의 명분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을 들 수가 있겠지요. 여기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으며, 진보나 보수도 별로 다르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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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이 교수님 진단에 동의합니다.
바뀌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민생과 나라가 흔들리니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울하지만 '지성의 비관론과 가슴의 낙관론'으로 버텨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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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은
뭐라는거니? 신동아에 실린 글 이면 ~ 개쓰레기 만도 못한거 가지고~ 시간이 아깝다만 ~ 오류 한가지 ~ 4.3 보궐선거 예를 가지고 전체를 진단 한 오류 ~ 2곳 선거구가 그나마 내년 총선을 전망 할 수 있는 유의미한 곳 이다. 한곳은 자한당이 한곳은 정의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비교적 높은 투표율이 나왔지만 그건 보수층은 전력동원 한거구 진보층은 그다지 신경 안쓴 결과이다. 자한당이 승리한 지역구도 다음 총선에선 투표율이 절대적으로 오른다면 72%기점으로 진보층의 승리가 점쳐진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한당이 이긴 선거구 모두 같은 현상이 일어 날 것이다. 투표율만 78~82%정도 까지 끌어올린다면 ~ 자한당은 역사에서 사라질 것 이다. 현재 6.13 지방 선거와 같은 자한당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나온다. 그것은 가짜뉴스에 근거한 자한당 지지자들이 결집한 결과이다. 그 이상은 없다. 따라서 진보층은 내년 총선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매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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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석
좌나 우 또는 중도까지 ...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엄중히 비판받아야 하고 인정해야 할 것은 명백히 인정해야 한다. 자고로 권력엔 건전한 비판은 쓰지만 좋은 예방약이고 처방전이다.
그렇게 이전 정부를 호되게...
부정확한 내용들을 남발하며 정도를 넘어 비난할 때(결국 촛불집회로 이어가고...)에도 최소한 지금같이 무대포이지는 않았다.
정말 대단히 걱정이 된다 !
윤교수님의 엄혹한 컬럼 100% 동감하고 동의하며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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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ng-joong Yoon
현실정치는 결과로 판단됩니다. 정치에선 선한 의도보다 훨씬 중요한 게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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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nha Lee
정치는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전적으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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