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4

손민석 자유주의 그 문제적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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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저 관료집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이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업가 집단이든 노동조합이든 과학기술자든 학계든 뭐가 됐든 다들 관료들이 쥐고 있는 목줄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정당들은 관료 위에 올라타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관료제라는 거대한 짐승을 이끌고자 할 뿐 관료제 자체를 지양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좌파정당들조차도 그렇다. 어디를 가서 무슨 얘기를 하든 결국에는 관료집단에 관한 문제제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관료들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하면 다들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벌벌 떨며 행동은 고사하고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국가의 전제적인 지배가 이렇게 강하게 드러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국가 관료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신랄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한 체계가 없다. 그런 마르크스주의가 궁극적으로 국가의 전제적인 지배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냥 그런 사조라고 하고 넘어가기 바쁘다. 내가 할 일은 적어도 레닌까지의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관료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얼마나 강하게 있었는지, 레닌이 그걸 어떠한 방식으로 지양하고자 했는지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저 국가 관료제가 공포스러울 때가 정말 많다.



· 8 h ·



이 글은 양당제를 비판할 때 어째서 자꾸 '자유주의'가 호명되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인데 내 나름대로는 그래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한다. 종국적으로는 한국에서 대립축은 내셔널리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의 분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까지 지적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게 약간 걸린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호명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분명 이러한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가 호출되는데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무언가 유럽적인 맥락의 자유주의적 전통의 '결핍'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정치적 대립구도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립구도로의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를 제공해주리라는 어떤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기표가 우리에게 이상화된 서구사회를 매개로 비판적인 자기인식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자유주의가 호명되는 건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을 새로운 형태의 갈등구도로 옮기려기 위한 담론적 효과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문제는 이미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했다는 점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에 대한 입장이 없이 대부분 '자유주의의 결핍'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면서 한국인이라는 '인민' 그 자체를 경멸하거나 특정한 정치적 세력을 전체주의 등으로 규정하기 바쁘다. 그래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보다 "현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뉴라이트의 이론가 안병직이 이미 2000년대에 다 논하였다. 그는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를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민중적 민족주의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시장경제와 국가 간의 대립이라는, '선진화'된 구도로 바꾸고자 하였다. 시장경제가 가져올 폐해를 복지국가로 해소하고, 복지국가의 폐해를 시장경제로 보완하는 방식의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간의 병행적 발전이 한국 사회의 질적 전환을 가져올 다음 대립구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던 그는 그의 제자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이 이리도 지리멸렬하게 붕괴한 이유는, 동시에 이병진 등과 같은 진보적인 '제3지대'를 꾀하는 이들의 연이은 실패의 원인과 같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왜 기존의 대립구도를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회전하는지에 대한 진단은 이 채널에서 이미 반복해서 하였다. 그것은 '행정부 우위의 전제주의적 특질'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뉴라이트 운동 자체도 올드라이트의 냉전적 반공주의를 지양하자는 구호를 갖고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더 강한 친일친미반중반북적인 반공주의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뉴라이트 이론가로서의 안병직은 자신이 한국의 민중적 민족주의 사조에 일정한 정도로 기여한 것에 대한 반성적 회고를 전제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새로운 갈등축을 형성하여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와 자유시장경제가 서로 보완하는 방식의 발전을 꾀하였는데, 그 인식 자체는 옳은 바가 분명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대립이 왜 정착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안병직은 이를 그저 한국 진보파의 민주주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겼다. 나는 그게 아니라 최장집의 지적처럼 1987년의 민주화와 뒤이은 1997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역설적이게도 국가를 약화시켰다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국가 행정부를 강화하는 형태로 권위주의를 재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물론 최장집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분명 이 부분을 사유하는데 도움을 준다.
결국 양당제적 대립에 동의하지 않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란 지금의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을 한국적 맥락의 이념적 대립이라 인정하고 이것의 변용을 꾀하는 것이다. 사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라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반공주의적 국가주의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래적 대립구도는 반공주의적 국가주의 대 민중적 민족주의, 즉 내셔널리즘 내부의 대립구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인민에 대한 포섭을 한국이라는 '근대국가' 영역 안으로 제한하려는 입장과 그것을 넘어서는 '민족공동체'로 확대하려는 집단 간의 대립이다. 내셔널리즘의 포섭 범주를 정하려는 대립구도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논의가 된다. 이렇게 보아야 국힘당 쪽이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명확해지고, 반대로 민주당 측이 자유주의적 성격을 어느정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명확해진다.
내셔널리즘의 포섭 범주에 대한 대립이기에 서구적 맥락의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간의 대립으로 전화시키는 건 쉽지 않고, 계급, 계층 등의 특수성이 가시화되기도 어렵다. 정의당을 비롯한 제3지대가 성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가 이런 것이다. 즉, 문제는 내셔널리즘 그 자체인 것이다. 비웃는다고 해소되는 문제가 아니다. 내셔널리즘의 자장 안에서 포섭의 범주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중심성에 국가 행정부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왜 국가행정부에 종속되고 매달려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제3지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선후보를 누구를 내고, 누구를 당선시키고 이런 게 아니라 근대국가의 자장으로부터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영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며 누구와 더불어 구축할 것인가. 그 경제적 토대는 어디서 나오는가 등에 대해 논해야 한다.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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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그 문제적 이름이여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자유주의 그 문제적 이름이여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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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그 문제적 이름이여

제3지대를 주장하는 세번째권력 위원이 쓴 글을 어쩌다 보고 글을 하나 적었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미약하다는 주장이 나름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한 주장이 갖는 효과를 제3지대론과 연결시켜 적어보았습니다. 정말 이런 글에 대한 반론은 적고 싶지 않았는데.. 읽은 게 잘못이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적인 전통의 부재가 문제적이라 할 때는 일정한 한국적인 맥락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배권력으로서의 권위주의적 정체(政體) 그 자신을 '(냉전적)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며 정당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의 본래적 가치인 개인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그로 인해 권위주의적 정체에 대한 부정이 자유주의의 이름보다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특히 급진화된 민족주의적인 이념에 의해 이뤄졌다는 역사적 맥락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된 현실이 바로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적인 대립이다. "
"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이러한 대립은 권위주의 시절 배태되었으며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양대 갈등 이념이라 할 수 있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호명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분명 이러한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가 호출되는데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무언가 유럽적인 맥락의 자유주의적 전통의 '결핍'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정치적 대립구도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립구도로의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를 제공해주리라는 어떤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기표가 우리에게 이상화된 서구사회를 매개로 비판적인 자기인식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무엇인가? ... 일단 드는 의문은 이게 왜 "자유주의"인가? 과문해서 그럴지 몰라도 자유주의를 이런 식으로 정의하는 건 처음 본다. 보통 이병진이 말하는 자유주의에 해당하는 건 '관용'이다. 볼테르의 <관용론>이나 아무리 넓게 보아도 계몽주의, 합리주의 등의 사조 안에서 독해되는 것이지,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논하는 자유주의와 이게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통 이런 분들은 이상한 자기확신과 지적 확신이 결합되어 있어서 남들한테 자유주의가 뭔지 모른다는 식으로 대하면서도 본인도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는 이상한 자유주의를 설파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자기 자신이 비판받으면 전체주의라고 하는 것처럼 자의적인 개념 사용이 이뤄진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 간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보다 "현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뉴라이트의 이론가 안병직이 이미 2000년대에 다 논하였다. 그는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를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민중적 민족주의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시장경제와 국가 간의 대립이라는, '선진화'된 구도로 바꾸고자 하였다. 시장경제가 가져올 폐해를 복지국가로 해소하고, 복지국가의 폐해를 시장경제로 보완하는 방식의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간의 병행적 발전이 한국 사회의 질적 전환을 가져올 다음 대립구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던 그는 그의 제자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이 이리도 지리멸렬하게 붕괴한 이유는, 동시에 이병진 등과 같은 진보적인 '제3지대'를 꾀하는 이들의 연이은 실패의 원인과 같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왜 기존의 대립구도를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회전하는지에 대한 진단은 이 채널에서 이미 반복해서 하였다. 그것은 '행정부 우위의 전제주의적 특질'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Inhye Ha

하라는 선거운동은 안하고 저기서 대체 뭐하고 다닌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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