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전 총리의 별세소식에 한국언론들이 일제히 호의적인 기사를 냈다.
하지만 무라야마총리가 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를 했다고 쓰면서도
정작 그가 가장 마음을 쏟았던 위안부 할머니들 관련 업적에 대해선 아예 보도되지 않거나 인색한 언급 밖에 없는 듯 하다. 한발 더 나아가 잘못된 언급조차 있다.
다들 언급하는 무라야마 수상은 일본에서도 담화뿐 아니라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든 업적으로 기억되곤 한다.
정대협이 “어용단체” 라며 비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아시아여성기금이 국가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로 여겨졌었지만 (고노담화조차 같은 취급을 받았었다) 기금은 다들 칭송하는 무라야마수상의 담화취지를 현실화해 만들어진 관민합작기관이었다.
그리고 기금해산때까지 60분의 할머니들이 역대 수상의 편지와 함께 국민들의 “속죄금“이라는 이름의 보상금을 수령했다.
그러니 한국에서 무라야마 수상을 가장 잘 기억할 분들은 그 60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위안부할머니들께 사죄하고 속죄금을 전달한 수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언론 언급대로 “식민지지배를 사죄”한 수상이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사죄마음을 담아 만든 기금이었음에도 지원단체의 비난만 곧이곧대로 받아 쓴 결과로, 우리사회에선 무라야마 담화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시기가 오히려 길었다.
더구나 그 반발은 위안부문제를 “민족말살정책“으로 이해한 정대협 초기대표의 잘못된 위안부 인식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오해해 왔다. 후에 바로 잡혀도 그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무라야마수상에 대한 칭송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20년전 책 <화해를 위해서>에서 기금에 대해 알리려 했던 인연으로 무라야마수상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이후 <제국의 위안부>도 보냈었다.
2015년 11월에 내가 기소 당하자 일본 지식인들이 내준 항의 성명에 무라야마 수상이 이름을 올려 주었던 건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 1998년 한일파트너십선언과
- 2002년의 조일 평양선언의 기초가 된 무라야마담화를 내놓았고
-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속죄마음을 표하기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역대수상의 사죄편지와 속죄금이라는 이름으로 보상금을 전했던
무라야마도마이치 수상의 명복을 빈다.
하늘나라에선 늘 편안하시길.
www.awf.or.jp
인사말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 을 바칩니다.'
저는 전후 50주년, 1995년 8월 15일에 발표한 내각총리대신 담화 가운데서 위와 같이 표명하였습니다. 그날 아침, 전국일간지 6개사에 전쟁 시절에 위안부로 희생되신 분들에게 국민적인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하는 아시아여성 기금의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시아여성기금은 정부와 국민의 협력으로 위안부로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과 현대세계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관련된 문제에 관한 노력을 함께 해오다가 2007년 3월에 활동을 마 쳤습니다.
우리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기금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의 걸어온 길을 기록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디지털기념관 "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였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이 역사를 잊지 않고, 아시아와 세계에서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굳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007년 3월
재단법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이사장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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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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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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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글은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의 별세 소식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논하며, 특히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도가 미흡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
한국 언론의 문제점: 한국 언론들은 무라야마 전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는 점은 호의적으로 보도하면서도 , 정작 그가 가장 마음을 썼던 '위안부' 할머니들 관련 업적, 즉 아시아여성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인색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한 오해: 무라야마 총리가 만든 '아시아여성기금'은 담화의 취지를 현실화한 관민합작기관이었으며 , 한국에서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어용단체'라 비난하는 바람에 국가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로 여겨졌습니다.
기금 해산 때까지 60분의 할머니들이 역대 수상의 편지와 함께 국민들의 '속죄금'(보상금)을 수령했습니다. 필자는 따라서 한국에서 무라야마 수상을 가장 잘 기억할 분들은 이 60분일 것이며, 우리 역시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죄하고 속죄금을 전달한 수상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원 단체(정대협)의 비난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진 결과, 한국 사회에서는 무라야마 담화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가 길었고 , 이는 '위안부' 문제를 '민족말살정책'으로 이해한 정대협 초기 대표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반발이었다고 분석합니다.
무라야마 총리의 업적: 무라야마 총리는 다음과 같은 업적을 남겼다고 정리합니다.
1998년 한일파트너십선언과 2002년의 조일 평양선언의 기초가 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속죄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역대 수상의 사죄 편지와 '속죄금' 명목의 보상금을 전했습니다.
필자와의 인연: 필자(Park Yuha)는 20년 전 책 <화해를 위해서>에서 기금에 대해 알리려 했고, 이 인연으로 무라야마 수상을 한 번 만났습니다. 2015년 필자가 기소되었을 때 일본 지식인들이 낸 항의 성명에 무라야마 수상이 이름을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첨부 자료의 보강: 첨부된 자료에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정대협이 무라야마 수상 담화(1995년)를 비판하며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사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내용 ,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의 위로금 지급 사건을 한국 정부와 국민을 우롱한 것으로 비난한 내용 , 그리고 기금에 반대하는 수요시위 피켓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어, 본문에서 언급된 정대협의 비판적 입장을 뒷받침합니다.
<논평>
제시된 글은 무라야마 총리 별세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일본의 과거사 사죄 노력, 특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중 하나였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가졌던 오해와 편향된 인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 논지는 '국가 책임의 회피'로 여겨졌던 아시아여성기금의 의의가, 실제로는 무라야마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 담화를 현실화하려 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한국 언론과 사회가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해'와 '정의'의 충돌: 이 문서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노력과 피해자 중심의 '정의' 실현이라는 요구 사이의 복잡한 충돌을 드러냅니다. 정대협은 일관되게 '민간 모금에 의한 일시금 지급이 아닌,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사죄'와 '개인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당한 요구였으나 , 필자는 이 요구가 결과적으로 무라야마 총리의 '속죄' 노력을 폄하하고 , 한국 사회가 '많은 것을 오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속죄'와 '배상'의 간극: 무라야마 총리가 역대 수상의 사죄 편지와 함께 전달한 '속죄금'은 일본 국민의 '속죄 마음'을 표명한 것이었지만 , 피해자 측은 이를 '위로금'이나 '매수'로 인식하며 국가의 법적 배상 책임을 요구했던 간극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간극이 한국 사회에서 무라야마 총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든 핵심 원인이었다는 분석은 경청할 만합니다.
역사 인식의 중요성: 필자는 한국 언론이 무라야마 총리의 '식민지 지배 사죄'는 칭송하면서도, 그 사죄의 마음이 현실화된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을 축소하거나 왜곡한 것을 비판합니다. 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특정 단체의 시각에 의해 오랜 기간 편향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 복잡한 역사적 사실의 다층적인 면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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