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은이),권남희 (옮긴이)문학동네2019-01-14
원제 : されど われらが日々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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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후미오. 여느 때처럼 헌책방에 들른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H전집'을 사고 만다. 전집의 속표지에는 표주박 모양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고, 이를 우연히 보게 된 약혼녀 세쓰코의 부탁으로 후미오는 책의 전 주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 시바타 쇼가 서른 살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담아 쓴 장편소설로,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55년, 혼란의 시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의 의미를 좇은 ‘청춘들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그렸다. 출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신형철 평론가가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라고 다시 없을 추천사를 남겼다.
- 소설 MD 권벼리 (2018.12.14)
출판사 제공 북트레일러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44.4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36쪽, 약 13.5만자, 약 3.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5465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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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타 쇼의 장편소설.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960, 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청춘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가 자살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죽기 직전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목차
그래도 우리의 나날 _007
록탈관 이야기 _199
책속에서
첫문장
나는 그 무렵,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곧잘 헌책방에 들렀다.
P. 25 <그래도 우리의 나날>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접기
P. 105 “이건 필요하다, 있으면 좋겠다, 있어야만 해, 그렇게 생각한 것이 내 마음속을 스르륵 빠져나가버릴 때가 있잖아. 내 마음이 그걸 가지려고 하지 않는 거지. 그게 바로 우리의 청춘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함께 있는 건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을 어쨌든 끝까지 같이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미치도록 지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접기
P. 177 사람에게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야. 그걸 부정한다는 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면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P. 195 그것은 설령 어떤 식으로 그 시대를 보냈고, 지금 어떤 생활 속에 있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던져지고, 진지하게 혹은 적당히, 그러나 모두 나름대로의 고통을 갖고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바람, 혹은 원한, 시끄럽게 떠들어댄 아우성이 아니었을까. (…) 만약 한 사람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바람, 혹은 원한을 짊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더는 그 행위를 거부할 수 없다. 접기
P. 208 <록탈관 이야기>
배선 너머의 세계가 가진 매력의 본질은 측정할 수 없다는 것,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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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시바타 쇼 (柴田翔)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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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독문과를 졸업,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 1960년 동인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록탈관 이야기」가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1961년 석사논문을 고쳐 쓴 『친화력 연구』로 괴테상을 수상, 이듬해 독일 유학을 떠났다. 1969년 동 대학 조교수로 취임했다. 교수, 문학부장을 역임하고 1995년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다. 1964년 『그래도 우리의 나날』로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이후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면서 1960년대, 70년대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 『보내는 말』 『서 있는 내일』 『새 그림자』 『우리 전우들』 『논짱의 모험』 등이 있다. 접기
수상 : 1964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그래도 우리의 나날>,<청춘> … 총 17종 (모두보기)
권남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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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지은 책으로는 《번역에 살고 죽고》,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혼자여서 좋은 직업》,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카모메 식당》, 《시드니!》, 《애도하는 사람》, 《빵가게 재습격》, 《반딧불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종이달》, 《배를 엮다》, 《누구》, 《후와 후와》, 《따뜻함을 드세요》, 《트리 하우스》, 《바나나 빛 행복》,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양식당 오가와》, 《라이온의 간식》, 《숙명》, 《무라카미 T》 외에 300여 권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큰글자도서] 마감 일기>,<번역에 살고 죽고> … 총 32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139쇄 발행, 189만 7700부 판매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청춘,
그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보면…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타 쇼의 장편소설.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960, 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청춘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죽거나, 죽지 못하거나, 죽지 않은 인물들의 후일담
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가 자살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죽기 직전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사노의 편지에는 1950년대 일본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고민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단 생각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과 절망감, 다른 한편에 솟아오른 모종의 안도감에 휩싸인 사노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당원.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가”라고 자조하며 스스로를 배신자라 자책한다. 그후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조용한 삶을 살고자 결심한 사노. 그러나 그는 점차 출세가도를 달리며 스스로의 삶이 모순되었다는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 속에서 마주한 ‘죽음을 앞두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 결국 ‘나는 배신자다!’라는 답밖에 내릴 수 없으리라 깨달은 사노는 지독한 무기력에 휩싸여 죽음을 택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가 남긴 편지는 후미오와 세쓰코를 비롯해 ‘그 이후의 삶’을 살던 인물들을 뒤흔들며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 피로감의 의미를 깨달았어. 우리 사이, 우리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은 각자 다른 사실과 현상이 우연히 연속해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 속에 나는 지쳐버렸다,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 한 가지의 물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거야. (175쪽, 후미오에게 보낸 세쓰코의 편지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언젠가
내일이 오는 걸 바라지 않게 될 정도로 지칠 게 분명하다.”
―그 시절도, 마주할 날들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세쓰코는 후미오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스스로 떠난다. 두 사람이 잘해나가리란 것을 서로 알고 있으나, 그 ‘잘해나감’으로 충분한지 스스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세쓰코는 우리 세대를 탈출한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후미오는 받아들인다. 새 시대를 만들겠다던 그 시절의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 삶을 구상해야 했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가치와 이상을 부정하고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열망이 패배의식으로 바뀌었고 그것을 감당 못해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누군가는 세상을 등졌다. 누군가는 새로이 도래한 날들을 적당히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잠시 멈추어 서기로 했다. 작품 속 일본의 1950년대 중후반 풍경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지만, 이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이 낡았다 느껴지진 않는 것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낡았다는 것은 극복됐다는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부딪히고 깨지는 청춘의 목소리란 어느 시대나 세대에게도 통용될, 언제까지고 반복될 보편성을 지닌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영향을 끼치고 조금씩 나아가고, 또다른 절망을 마주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결국 그 아팠던 시절도, 마주할 알 수 없는 날들도, 모두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리라.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196~197쪽)
“그 시절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었다.”
―「록탈관 이야기」
함께 실린 단편 「록탈관 이야기」는 1960년 동인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던 청소년기의 주인공이 동경한 과학과 이성의 세계가 ‘록탈관’이라는 진공관으로 상징된다. 명확한 세계에 대한 열망, 그 지향점에 이르지 못해 도착(倒錯)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진 빼어난 성장소설이다.
우리를 꽉 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 배선 저 너머 세계의 진정한 매력은 아마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매우 정확하며,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절대 우리 눈에 보이는 법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206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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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추천사 읽고 혹시나 하면서 읽었는 데 역시나... 앞으론 정말 일본남자작가 소설 안보고 싶다..(별개로 재미있었으나 재미를 느끼는 내가 밉다..ㅠ)
공쟝쟝 2018-12-22 공감 (2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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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얼른 읽고 중고로 팔아야지(책이 더 많이 풀리기 전에)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읽어갈수록,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꽂이에 꽂아둔다. 내겐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을 청춘이라 부를 나이에 읽었다면...
잠자냥 2018-12-27 공감 (1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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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과는 다른 느낌으로 비슷한 시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 형식은 조금 낡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뭔가 심플하면서도 아주 복잡하던,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해야 스물 이쪽 저쪽의 나이. 한없이 심각했던 이야기들. 친구와 밤새워 어릴 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transient-guest 2019-03-11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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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고 자조적인 내 이십대 시절의 모습과 갖고있던 생각들이 겹쳐져 하염없이 씁쓸해졌다. 위로따윈 없다 상처만 줄 뿐이지 그렇지만 내 책장에서 떠나보내지 못 할 책이다.
구름물고기 2019-03-04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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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아니라면 읽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친다.
moon 2018-12-17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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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신형철 씨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이다. 언제나 출간이 되는지 기다리다가 결국 망각해 버렸다. 그리고 작년 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 팟캐에서 들었을 때만큼 땡기지가 않아서 그냥 말았다. 아마 그 때라면 사서 읽었겠지만. 도서관에 입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게으르게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55년 만에 만나게 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주인공은 도쿄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미오 군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도쿄여대 출신의 세쓰코와 약혼하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의 삶은 지루하고 나른하게 진행된다. 불같은 사랑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처럼 들린다.
후미오가 헌책방 순례 중에 한 질의 H전집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 같은 책쟁이를 위한 책인가 싶다. 헌책방에서 나도 이미 많은 사연을 만나지 않았던가. 콜롬비아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르케스의 책을 샀다고 했던가. 지인에게 애써 선물한 책이 헌책방을 부유하는 것도 목격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설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헌책방에서 산 전집의 원래 주인이 사노라는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면제를 먹고 죽은 사노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한 때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혁명을 꿈꾸던 청년은 시위 도중에 동지들을 배신했다는 사실로 괴로워했다. 육전협의 평화주의 노선 채택으로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청년은 일체의 운동을 접고 기득권층이 원하는 올바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간부인 부사장의 눈에 들어 데릴사위 후보가 되기도 하고, 전도유망한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미래의 간부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본질은 ‘배신자’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지점은 바로 사노의 생각이었다. 그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걸 몰랐던 걸까?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이데올로기와 동지들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을 마냥 사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방법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후미오의 주변에는 그런 허무주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후미오가 아는 고지식한 미래의 교수 후보는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곧 결혼하게 될 여자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소설이 배경이 되는 시절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같아서는 참 거지같은 발상의 소유자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게다가 그 아가씨는 자신의 지도교수님과 불륜에 빠지지 않았던가. 과연 그들의 비밀은 지켜질 것인가.
후미오 주변에는 왜 그리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세쓰코조차 지하철역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중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후미오와의 결혼을 서두르던 세쓰코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고 난 뒤 지독한 고독감에 빠지기도 하고, 결국 무사안일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시골 마을로 가 자신의 알량한 영어 지식을 바탕으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의 진행에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편지들이, 그것도 속달이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낯설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메일이나 카톡 같은 메시지와는 다른 결이겠지. 젊은 날의 후미오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라며 육체의 향연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안정을 찾아 세쓰코를 찾지 않았던가. 우리의 젊음은 모든 방종을 용인하게 만들어주는 만능 치트키 같은 것일까 과연.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기도 한다. 소멸 뒤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심각한 고민을 해봤을까? 인생의 가장 절정기에 죽음을 두고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시바타 쇼 작가의 데뷔작 <록탈관 이야기>에 나오는 발칙한 라디오 마니아 중학생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왜 이 단편이 뜬금없이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작가의 시원을 밝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록이지 않았나 싶다. “코리안 워”니 “레드 차이나” 같이 소년이 조립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에 먼저 눈이 간다. 왜 이 소년들은 그렇게 라디오의 세계에 열광했을까? 라디오 조립이라는 새로운 세계, 회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신세계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나의 해방구로 작동한 게 아닐까.
패전 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 기업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극적인 부활에 나서게 된다. 배터리만 하더라도, 미군들이 엄청난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전쟁특수를 맞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나건 말건 그렇게 애타게 가지고 싶어 하던 진공관의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소년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내 버린다. 아니 트랜지스터도 아닌 진공관에 대한 이야기라니 놀랍다 놀라워. 한편, 전쟁 투입을 앞둔 미군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몰래 빼돌린 진공관을 간다 거리의 암시장에 내놓기도 했단다. 주인공 소년은 우연히 얻어 걸린 고가의 록탈관을 200엔에 사들여 희희낙락한다. 문제는 나중에 그가 발견한 미세한 균열이었다. 그렇게 희망은 록탈관의 균열과 사라져 버리고...
아마 내가 청년이었을 때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읽었다면 다른 감성으로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만난 청춘 소설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말해 심드렁했다. 나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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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05 공감(25)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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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청춘을 호명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이십대가 아닌, 서른을 넘긴 나이라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주로 떠올리는 청춘의 기억은 설익고 치기어린, 그렇지만 그래서 뜨거웠을 어느 한 시기일 것이다. 때문에 읽는 동안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오고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무렵을 떠올리느라 밤잠을 설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H전집’에 얽힌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20대, 정확히는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제목으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라는 말. 그 앞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가 생략되었으리라. 그런데 어떤 말이 생략되었을지는 감으로 헤아릴 수 있다. 어리석고 치기어리고 부족하고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에 엉터리 같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었고, ‘그래도’ 청춘이었다는.
헌책방에서 H전집을 발견하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후미오. 후미오의 약혼녀인 세쓰코는 그 책에 찍혀 있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낯익다. 어찌된 일일까? 알고 보니 그 책은 세쓰코가 대학 때 알고 지낸,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이었다. 후미오는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후미오와 세쓰코, 거기에 사노의 이야기까지 펼쳐진다. 이 책을 읽노라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미오나 세쓰코보다 사노가 더 깊이 인상에 남는다. 사노의 절박함과 절망이 담긴 편지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렇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이른바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바꾸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겉보기엔 육전협이 노선을 바꿈으로써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지만, 사실 그가 그토록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더더욱 없지만 스스로 자신을 배신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배신은 치명적이어서 그는 학생운동에 뜨겁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소시민성과 그걸 비판하는 양심 사이의 모순’을 겪으면서 그저 조용한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사노의 모습에서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전혀 낯선 풍경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운동권 끝자락이 존재해서 나보다 학번이 훨씬 높은 선배들 가운데는 여전히 거리 투쟁을 벌이고, 그 때문에 수배를 받고 학교에서 숨어 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로 사노처럼 마르크시즘에 열렬히 경도된 사람도 있었는데, 그 선배가 그랬다. 그는 정말 열정적이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나 또한 몇 번은 거리에 서기도 했는데, 그것조차 나는 곧 시들해져서, 그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그 세계를 떠났다. 그때 그 선배는 몹시 안타까워했는데, 나는 그 또한 언젠가는 그 세계를 떠나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학창 시절의 운동은 홍역 같은 거야. 시간이 지나 취직하면…….” 하는 말을 한다. 지금은 대기업에 적을 둔 나는 겉으로 보기에 아마 전형적인 인물이겠지.(<그래도 우리의 나날>, 70쪽)
이 구절을 읽는데,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사노처럼 소시민으로 살면서 주말에는 명동, 광화문, 종로, 대학로 등지에서 쇼핑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면서 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나는 어느 날 그 선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였다. 그때마다 그는 을지로, 광화문, 종로, 대학로에서 여전히 그 누군가를 위해 ‘투쟁’중이었다. 어느 해 5월 1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명동 거리를 걷다가 노동절 시위 무리에 있는 그 선배를 보기도 했고, 용산 참사 진실 규명을 외치는 시위 무리에서도 그를 보았으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그를 보기도 했다.
여하튼 그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시위할 거리가 있느냐고 반문할 때조차도 시위 현장에 있었고, 이상하게도 나는 몇 년에 한번쯤은 그런 그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틀렸구나. 그는 여전하구나. 그를 우연히 마주친 날이면 이렇게 평범하게 소시민적으로 사는 내가 비겁해 보이고, 한심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그런 삶이 여전히 가능한 걸까? ‘혁명가이고 싶었지만 혁명가가 되지 못한 사노’와 달리 그 선배는 지금도 생활 속 작은 혁명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선배는 죽는 순간에 떠올릴 만한 확실한 ‘어떤 것’을 가졌으리라.
H전집의 옛 주인인 사노의 편지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라는 엄청나고도 무서운 질문을 평범하게 살아가던 후미오와 세쓰코에게 던진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 질문을 마주하고 문득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가벼운 충격 같은 것을 느끼리라. 세쓰코는 자신이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가 없음을 깨닫는다. 약혼한 사이지만 후미오와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生)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혹해한다. 그런 세쓰코를 지켜보는 후미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과 죽음이 있다. (...) 나는 머잖아 어학 강사가 되어 강사로 살고, 두세 권의 역서라도 내서 잠깐 행복해지다, 끝내는 어학 강사로 늙어가려고 마음먹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는 인간이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 99쪽)
후미오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노의 편지가 불러온 파문은 그리 잔잔하지만은 않다. 세쓰코는 세쓰코대로, 후미오는 후미오대로 저마다 과거를 환기하고, 자기가 지금 밟고 선 세계를 되돌아본다. 이런 현상은 세쓰코 쪽이 한층 심하다. 그녀는 “당신은 불안하지도 않아? 죽을 때 아무것도 떠올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죽는다는 건 외로운 일이야. 하지만 외롭다는 것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 일이 무(無)가 되어버리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야.” 말하며 자신의 공허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쓰려고 한다.
그에 비해 후미오는 과거를 돌아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을 크게 조정하지는 않는다. 진폭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인물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후미오는 사노나 세쓰코, 또 세쓰코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노세 등 다른 인물에 비해 너무나도 덤덤하고 관조적인, 그래서 아주 예전부터 늙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과거 속에서도 그는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 걸까? 후미오에게는 조금 반감이 들기도 한다. 사노나 노세, 세쓰코에게는 ‘그래도’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시절이 있는데, 후미오에게는 딱히 그럴 만한 시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공허함 그 자체’인 인물은 아닐까.
후미오의 그런 모습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세쓰코나 유코)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한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도 주변에 여자는 넘쳐나고 후미오는 아쉬울 것 없이 여자를 만나고 떠나보낸다. 세쓰코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애초부터 절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후미오는 하루키 작품에서 곧잘 등장하는, 아닌 척 하지만 실은 왕자병 기질의 남주인공(<상실의 시대> ‘와타나베’ 같은)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가 유코와 세쓰코를 대하는 방식에는 전형적인 여성의 대상화가 엿보이는데, 특히 유코, 세쓰코와 처음으로 섹스를 나누게 되는 순간의 묘사나 그때 그녀들의 심리 상태 등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F교수가 가즈코에게 하는 짓거리 또한 그렇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아닐걸? 하고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결점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사노를 비롯해 노세는 물론 사노가 ‘자신의 또 다른 눈’이라고 지칭한 소네 등 모두 하나 같이 젊은 날 어떤 이상이나 사상에 경도되어 거기에 열정적으로 빠지거나 그런 상황 속의 자기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비해 세쓰코나 유코, 가즈코 같은 여자들은 어떤가. 그저 그녀들이 한다는 일은 그런 남자들을 지켜보며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의 열정에 감동해 그 열정을 좇을 뿐이다. 스물 한 살 유코에게 가장 절실한 고민이 고작 그 나이에도 ‘남자에게 안기거나 키스 받은 적이 없어’ 자신을 ‘추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니, 실소가 나올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남자에게는 ‘인생 소설’이 될 수는 있어도 여자에게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현실에 머무는 후미오에 비해 자기 삶을 바꾸고자 용감하게 결단을 내린 세쓰코라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의 이와 같은 결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도’ 이 작품은 지금 한 순간,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착각으로 지탱된 날들’일지라도 ‘거기에는 인생과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그럼으로써 기쁨과 관능에 넘쳤던 날들을 떠올리는 세쓰코의 기억에서 우리가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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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1-05 공감(19)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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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필요한 것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를테면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가만히 지켜볼라치면 인생이란 그저 누군가 정해진 길을 순종하며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한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들에게 조금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에 따라 조용히 걷다가 이따금 의미도 없는 함정에 빠져 고초를 겪기도 하는, 별반 특이할 것도 없는 그만그만한 인생을 조용히 살다 가는 게 대다수 사람들이 삶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이것은 마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편 사람들의 꼬물거림을 지켜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한 사람의 삶을 멀찍이 떨어진 채 무관심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들을 몇 편 알고 있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에 꺼낸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도 그중 하나다. 간결한 필체로 무심하게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무덤덤하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어쨌든 나는 소네의 얘기 속에서 이미 마지막 윤곽이 정해진 사노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보다, 내 속에서 요동치는 그의 죽음의 무게를 재고 싶었다. 그의 죽음의 분위기가 그 늦가을 날 차가운 빗물의 습기와 함께 이미 내 피부에 엉겨붙은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내키지 않아 하는 소네에게 부탁하여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그의 집까지 가서 사노의 편지를 빌려 왔다." (p.52)
소설은 주인공인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입한 'H전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후미오는 먼 친척뻘의 약혼녀인 '세쓰코'와 함께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H전집'에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의 주인은 대학 시절 세쓰코와 함께 역사연구회에 몸담았던 동료 회원 '사노'의 것으로 밝혀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여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 공산주의자였던 사노는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졸업 후 s전철에 취업하여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조용한 삶을 산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소네로부터 사노가 죽기 직전에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암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젊음의 특권이다. 나 역시 스무 살 때는 사람이 한 번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것이 내일이라도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조차 진지하게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노인도 똑같이 태평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P.79)
조용히 살던 사노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변했던 것은 s전철 부사장의 별장에 초대된 후였다. 부와 권력을 소유했던 부사장은 자식이 없었고, 사노에게 친척뻘의 어린 여대생인 아야코를 소개했다. 미래의 신랑감 예비 후보로 말이다. 별장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부사장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암이 아니냐는 아야코의 농담에 부사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던 것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부사장도 죽음 앞에서 저토록 공허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데 사노 자신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노는 '결국 죽을 때가 돼서 생각나는 일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과거 자신이 시위 대열에서 도망쳤던 단 한 번의 배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사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죽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는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졌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4~p.25)
사노의 유서를 읽은 두 사람, 후미오와 세쓰코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뭔가 부족하기만 했던 청춘의 과오를 뒤로 한 채 새롭게 출발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약혼과 오직 행복한 미래만 꿈꾸었던 2년여의 시간들.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 사노의 유서는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역사연구회의 노세를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했던 세쓰코는 후미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찾으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후미오는 세쓰코로부터 길고 긴 편지를 받는다.
"우리 인간의 생활은 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망막한 세상의 심연 위에 노출된 채 빛이 바래가지. 또 자칫하면 그 끝없는 깊이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 그런 망막함 속에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활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내 생활은 의미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 언제나 상대와 뭔가를 공유하고 싶다, 두 사람의 생활 속에 뭔가 공통된 의미를 갖고 싶다고 바란 것도 망막한 세상에 확실한 못을 박고 싶은, 그것을 한 개 한 개 박음으로써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이 아닌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어.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 주위에 펼쳐진 이 무한한 공간, 마침내 우리를 죽음 속으로 사라지게 할 이 무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추구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야." (p.185~p.186)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삶은 더 공허해진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 양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자신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단지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삶을 유지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지만 숫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사는 건 오히려 가벼워진다. 그러자면 멀리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멈춰야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주는 과학의 법칙에 따라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우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질량을 가진 덩어리와 같은 물질과 에너지, 공간이라는 세 가지 기본 재료만 있으면 된다.'고 답하지 않았던가. 삶은 의미를 찾아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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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9-03-09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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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그래도 우리의 나날
일본 전후의 학생운동 세대의 기록.
오래 전 시절의 이야기지만 젊은이들의 고뇌, 상처는 도돌이표인가?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나로 존재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젊음은 막상 이 방법이 진정 나로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직면하면 발이 푹 빠지는 함정이 될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기에는 성장을 요구하는 흐름을 온 몸으로 버텨야 하기에 더욱 혼돈스러워 지는지도 모르겠고.
각각의 자리에서 주인공인 캐릭터들은 후회하고, 성급하게 결정짓고, 머뭇거리다 결연히 뒤돌아서고 단 한방으로 삶을 마감하곤 한다.
젊은이라는 혼동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전쟁의 후폭풍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알수 있을까.
모호하고 애틋하게 읽히는 시절이다.
-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되도록 상대에게 다정하려고 했고, 또 실제로 다정했다. 고집을 세우고 다정함을 희생해서까지 지켜야 할 무엇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았다. - 22
- 그렇다면 적어도 한 사람쯤은 나의 모든 것을 알아줘도 좋을 것이다. 나의 약함, 그로 말미암은 괴로움, 그래서 지금 지하활동에 참가하러 간다는 것, 그런 얘기 전부를 알고 이해해 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67
-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점차 마음속으로 퍼져갔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토록 어두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사람이 살아서 얻는 행복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 79
-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이다. 약간의 선망은 있었겠지만, 실망은 없었다. 우리 세대는 기대와는 무관하다. 아니, 나는, 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내일 일어날 것을 미리 가르쳐주는 세계에서 자라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것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사실로부터 세계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나하고 실망이란 것은 무관했다. - 114
- 나는 그들이 유코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것을 증오한 게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슬퍼했다. 어쩌면 친구인 유코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 인생의 중대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무의식 중에 쾌활해지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그런 쾌활함을 증오했다. - 130
- 나는 내 속에 결코 회한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내 속에서 자기혐오가, 죄의식이, 그리고 그것과의 싸움이, 충실한 생활이 물결치듯 되살아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것을, 나의 공허함은 일시적이거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다. - 133
-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 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 196
2019.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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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9-02-24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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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아직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시바타 쇼가 1964년 서른에 내놓은 소설이다. 흑백사진을 찍듯 그 시절 일본 청춘들의 삶을 담담히 담았다. 청춘은 가슴속에 어떤 모양의 이상이라도 가지기 마련이다. 그 이상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에 또 우리 모두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존재이기에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도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내 인생의 소설’로 소개한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장편의 편지인데, 우편으로 받는 편지도 낯설고 장편의 편지도 낯설다. 희곡의 독백을 대신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편지의 내용도 낯설고, 그 낯설음만큼 편지라는 게 그립다.
소설은 주인공인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문제의 ‘H전집’을 사면서 시작한다. 약혼자인 세쓰코가 책에 찍힌 도장을 알아보고 사노의 행적을 쫓다 자살한 사노가 죽기 전 쓴 편지를 구한다. 긴 편지에는 사노의 행적과 생각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노의 편지를 읽은 후 후미오와 세쓰코의 관계에 이상전선이 흐른다. 후미오는 전과 다른 듯한 세쓰코에게 자살한 유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쓰코는 멍하니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후미오는 세쓰코에게 전에 느끼지 못한 소중한 감정을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 결혼해서 후미오의 직장 근처로 같이 가기로 했지만 세쓰코는 편지를 남기고 지방으로 떠난다.
사노와 유코는 죽기전 각각 소네와 후미오에게 편지를 남긴다. 사노는 대학교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 격렬했던 한 시위에서 도망친다. 그 죄책감에 공산당 지하군사조직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본의 공산당 군사조직은 해체된다. 그이후 대학에 돌아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문득 자기 자신이 배신자라는 애써 잊고 있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노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반면 유코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미오에게 자살한다는 속달 편지를 보내놓고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후미오는 여자친구와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던 여행지에서 유코와 관계를 맺었지만, 도쿄에 돌아와 소원해진다. 후미오는 유코의 편지를 읽기전 장례식장에 가면서야 그 죽음이 자신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노의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코의 임신과 낙태는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시대와 공간이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속 여러 여성인물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시선은 불편하다.
이야기는 후미오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6장에서 세쓰코가 남긴 편지를 통해 또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세쓰코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 후미오 때문에 독자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다. 활달하고 명랑한 소녀였던 세쓰코는 대학생활 동안 열심히 역사연구회 활동을 한다. 그 중 열심히 활동하던 노세라는 청년을 좋아하다 역사연구회도 해체되고, 좋아하던 노세라는 존재에 대한 이상도 깨진다. 체념속에 후미오와 약혼을 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격렬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노의 유서를 읽은 뒤로 후미오는 깨닫는다. 후미오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후미오가 마침내 결혼 이야기를 할 때 반대로 세쓰코는 후미오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후미오를 떠나는 세쓰코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곧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세쓰코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곳을 필요로 하게 한다. 화려한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생활이란 걸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하러 도쿄를 떠난다. 체념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후미오의 생활에 맞추려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의 생활을 찾아나선 세쓰코. 그래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아직도’ 우리의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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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후미오. 여느 때처럼 헌책방에 들른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H전집'을 사고 만다. 전집의 속표지에는 표주박 모양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고, 이를 우연히 보게 된 약혼녀 세쓰코의 부탁으로 후미오는 책의 전 주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 시바타 쇼가 서른 살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담아 쓴 장편소설로,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55년, 혼란의 시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의 의미를 좇은 ‘청춘들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그렸다. 출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신형철 평론가가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라고 다시 없을 추천사를 남겼다.
- 소설 MD 권벼리 (2018.12.14)
출판사 제공 북트레일러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44.4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36쪽, 약 13.5만자, 약 3.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5465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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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타 쇼의 장편소설.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960, 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청춘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가 자살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죽기 직전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목차
그래도 우리의 나날 _007
록탈관 이야기 _199
책속에서
첫문장
나는 그 무렵,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곧잘 헌책방에 들렀다.
P. 25 <그래도 우리의 나날>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접기
P. 105 “이건 필요하다, 있으면 좋겠다, 있어야만 해, 그렇게 생각한 것이 내 마음속을 스르륵 빠져나가버릴 때가 있잖아. 내 마음이 그걸 가지려고 하지 않는 거지. 그게 바로 우리의 청춘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함께 있는 건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을 어쨌든 끝까지 같이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미치도록 지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접기
P. 177 사람에게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야. 그걸 부정한다는 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면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P. 195 그것은 설령 어떤 식으로 그 시대를 보냈고, 지금 어떤 생활 속에 있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던져지고, 진지하게 혹은 적당히, 그러나 모두 나름대로의 고통을 갖고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바람, 혹은 원한, 시끄럽게 떠들어댄 아우성이 아니었을까. (…) 만약 한 사람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바람, 혹은 원한을 짊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더는 그 행위를 거부할 수 없다. 접기
P. 208 <록탈관 이야기>
배선 너머의 세계가 가진 매력의 본질은 측정할 수 없다는 것,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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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시바타 쇼 (柴田翔)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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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독문과를 졸업,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 1960년 동인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록탈관 이야기」가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1961년 석사논문을 고쳐 쓴 『친화력 연구』로 괴테상을 수상, 이듬해 독일 유학을 떠났다. 1969년 동 대학 조교수로 취임했다. 교수, 문학부장을 역임하고 1995년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다. 1964년 『그래도 우리의 나날』로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이후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면서 1960년대, 70년대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 『보내는 말』 『서 있는 내일』 『새 그림자』 『우리 전우들』 『논짱의 모험』 등이 있다. 접기
수상 : 1964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그래도 우리의 나날>,<청춘> … 총 17종 (모두보기)
권남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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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지은 책으로는 《번역에 살고 죽고》,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혼자여서 좋은 직업》,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카모메 식당》, 《시드니!》, 《애도하는 사람》, 《빵가게 재습격》, 《반딧불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종이달》, 《배를 엮다》, 《누구》, 《후와 후와》, 《따뜻함을 드세요》, 《트리 하우스》, 《바나나 빛 행복》,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양식당 오가와》, 《라이온의 간식》, 《숙명》, 《무라카미 T》 외에 300여 권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큰글자도서] 마감 일기>,<번역에 살고 죽고> … 총 32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139쇄 발행, 189만 7700부 판매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청춘,
그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보면…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타 쇼의 장편소설.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960, 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청춘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죽거나, 죽지 못하거나, 죽지 않은 인물들의 후일담
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가 자살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죽기 직전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사노의 편지에는 1950년대 일본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고민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단 생각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과 절망감, 다른 한편에 솟아오른 모종의 안도감에 휩싸인 사노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당원.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가”라고 자조하며 스스로를 배신자라 자책한다. 그후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조용한 삶을 살고자 결심한 사노. 그러나 그는 점차 출세가도를 달리며 스스로의 삶이 모순되었다는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 속에서 마주한 ‘죽음을 앞두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 결국 ‘나는 배신자다!’라는 답밖에 내릴 수 없으리라 깨달은 사노는 지독한 무기력에 휩싸여 죽음을 택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가 남긴 편지는 후미오와 세쓰코를 비롯해 ‘그 이후의 삶’을 살던 인물들을 뒤흔들며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 피로감의 의미를 깨달았어. 우리 사이, 우리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은 각자 다른 사실과 현상이 우연히 연속해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 속에 나는 지쳐버렸다,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 한 가지의 물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거야. (175쪽, 후미오에게 보낸 세쓰코의 편지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언젠가
내일이 오는 걸 바라지 않게 될 정도로 지칠 게 분명하다.”
―그 시절도, 마주할 날들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세쓰코는 후미오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스스로 떠난다. 두 사람이 잘해나가리란 것을 서로 알고 있으나, 그 ‘잘해나감’으로 충분한지 스스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세쓰코는 우리 세대를 탈출한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후미오는 받아들인다. 새 시대를 만들겠다던 그 시절의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 삶을 구상해야 했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가치와 이상을 부정하고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열망이 패배의식으로 바뀌었고 그것을 감당 못해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누군가는 세상을 등졌다. 누군가는 새로이 도래한 날들을 적당히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잠시 멈추어 서기로 했다. 작품 속 일본의 1950년대 중후반 풍경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지만, 이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이 낡았다 느껴지진 않는 것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낡았다는 것은 극복됐다는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부딪히고 깨지는 청춘의 목소리란 어느 시대나 세대에게도 통용될, 언제까지고 반복될 보편성을 지닌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영향을 끼치고 조금씩 나아가고, 또다른 절망을 마주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결국 그 아팠던 시절도, 마주할 알 수 없는 날들도, 모두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리라.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196~197쪽)
“그 시절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었다.”
―「록탈관 이야기」
함께 실린 단편 「록탈관 이야기」는 1960년 동인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던 청소년기의 주인공이 동경한 과학과 이성의 세계가 ‘록탈관’이라는 진공관으로 상징된다. 명확한 세계에 대한 열망, 그 지향점에 이르지 못해 도착(倒錯)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진 빼어난 성장소설이다.
우리를 꽉 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 배선 저 너머 세계의 진정한 매력은 아마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매우 정확하며,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절대 우리 눈에 보이는 법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206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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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추천사 읽고 혹시나 하면서 읽었는 데 역시나... 앞으론 정말 일본남자작가 소설 안보고 싶다..(별개로 재미있었으나 재미를 느끼는 내가 밉다..ㅠ)
공쟝쟝 2018-12-22 공감 (2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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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얼른 읽고 중고로 팔아야지(책이 더 많이 풀리기 전에)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읽어갈수록,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꽂이에 꽂아둔다. 내겐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을 청춘이라 부를 나이에 읽었다면...
잠자냥 2018-12-27 공감 (1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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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과는 다른 느낌으로 비슷한 시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 형식은 조금 낡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뭔가 심플하면서도 아주 복잡하던,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해야 스물 이쪽 저쪽의 나이. 한없이 심각했던 이야기들. 친구와 밤새워 어릴 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transient-guest 2019-03-11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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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고 자조적인 내 이십대 시절의 모습과 갖고있던 생각들이 겹쳐져 하염없이 씁쓸해졌다. 위로따윈 없다 상처만 줄 뿐이지 그렇지만 내 책장에서 떠나보내지 못 할 책이다.
구름물고기 2019-03-04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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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아니라면 읽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친다.
moon 2018-12-17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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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오래 전에 신형철 씨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이다. 언제나 출간이 되는지 기다리다가 결국 망각해 버렸다. 그리고 작년 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 팟캐에서 들었을 때만큼 땡기지가 않아서 그냥 말았다. 아마 그 때라면 사서 읽었겠지만. 도서관에 입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게으르게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55년 만에 만나게 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주인공은 도쿄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미오 군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도쿄여대 출신의 세쓰코와 약혼하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의 삶은 지루하고 나른하게 진행된다. 불같은 사랑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처럼 들린다.
후미오가 헌책방 순례 중에 한 질의 H전집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 같은 책쟁이를 위한 책인가 싶다. 헌책방에서 나도 이미 많은 사연을 만나지 않았던가. 콜롬비아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르케스의 책을 샀다고 했던가. 지인에게 애써 선물한 책이 헌책방을 부유하는 것도 목격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설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헌책방에서 산 전집의 원래 주인이 사노라는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면제를 먹고 죽은 사노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한 때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혁명을 꿈꾸던 청년은 시위 도중에 동지들을 배신했다는 사실로 괴로워했다. 육전협의 평화주의 노선 채택으로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청년은 일체의 운동을 접고 기득권층이 원하는 올바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간부인 부사장의 눈에 들어 데릴사위 후보가 되기도 하고, 전도유망한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미래의 간부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본질은 ‘배신자’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지점은 바로 사노의 생각이었다. 그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걸 몰랐던 걸까?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이데올로기와 동지들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을 마냥 사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방법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후미오의 주변에는 그런 허무주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후미오가 아는 고지식한 미래의 교수 후보는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곧 결혼하게 될 여자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소설이 배경이 되는 시절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같아서는 참 거지같은 발상의 소유자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게다가 그 아가씨는 자신의 지도교수님과 불륜에 빠지지 않았던가. 과연 그들의 비밀은 지켜질 것인가.
후미오 주변에는 왜 그리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세쓰코조차 지하철역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중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후미오와의 결혼을 서두르던 세쓰코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고 난 뒤 지독한 고독감에 빠지기도 하고, 결국 무사안일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시골 마을로 가 자신의 알량한 영어 지식을 바탕으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의 진행에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편지들이, 그것도 속달이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낯설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메일이나 카톡 같은 메시지와는 다른 결이겠지. 젊은 날의 후미오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라며 육체의 향연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안정을 찾아 세쓰코를 찾지 않았던가. 우리의 젊음은 모든 방종을 용인하게 만들어주는 만능 치트키 같은 것일까 과연.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기도 한다. 소멸 뒤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심각한 고민을 해봤을까? 인생의 가장 절정기에 죽음을 두고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시바타 쇼 작가의 데뷔작 <록탈관 이야기>에 나오는 발칙한 라디오 마니아 중학생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왜 이 단편이 뜬금없이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작가의 시원을 밝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록이지 않았나 싶다. “코리안 워”니 “레드 차이나” 같이 소년이 조립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에 먼저 눈이 간다. 왜 이 소년들은 그렇게 라디오의 세계에 열광했을까? 라디오 조립이라는 새로운 세계, 회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신세계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나의 해방구로 작동한 게 아닐까.
패전 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 기업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극적인 부활에 나서게 된다. 배터리만 하더라도, 미군들이 엄청난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전쟁특수를 맞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나건 말건 그렇게 애타게 가지고 싶어 하던 진공관의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소년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내 버린다. 아니 트랜지스터도 아닌 진공관에 대한 이야기라니 놀랍다 놀라워. 한편, 전쟁 투입을 앞둔 미군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몰래 빼돌린 진공관을 간다 거리의 암시장에 내놓기도 했단다. 주인공 소년은 우연히 얻어 걸린 고가의 록탈관을 200엔에 사들여 희희낙락한다. 문제는 나중에 그가 발견한 미세한 균열이었다. 그렇게 희망은 록탈관의 균열과 사라져 버리고...
아마 내가 청년이었을 때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읽었다면 다른 감성으로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만난 청춘 소설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말해 심드렁했다. 나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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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05 공감(25)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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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청춘을 호명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이십대가 아닌, 서른을 넘긴 나이라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주로 떠올리는 청춘의 기억은 설익고 치기어린, 그렇지만 그래서 뜨거웠을 어느 한 시기일 것이다. 때문에 읽는 동안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오고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무렵을 떠올리느라 밤잠을 설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H전집’에 얽힌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20대, 정확히는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제목으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라는 말. 그 앞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가 생략되었으리라. 그런데 어떤 말이 생략되었을지는 감으로 헤아릴 수 있다. 어리석고 치기어리고 부족하고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에 엉터리 같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었고, ‘그래도’ 청춘이었다는.
헌책방에서 H전집을 발견하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후미오. 후미오의 약혼녀인 세쓰코는 그 책에 찍혀 있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낯익다. 어찌된 일일까? 알고 보니 그 책은 세쓰코가 대학 때 알고 지낸,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이었다. 후미오는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후미오와 세쓰코, 거기에 사노의 이야기까지 펼쳐진다. 이 책을 읽노라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미오나 세쓰코보다 사노가 더 깊이 인상에 남는다. 사노의 절박함과 절망이 담긴 편지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렇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이른바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바꾸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겉보기엔 육전협이 노선을 바꿈으로써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지만, 사실 그가 그토록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더더욱 없지만 스스로 자신을 배신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배신은 치명적이어서 그는 학생운동에 뜨겁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소시민성과 그걸 비판하는 양심 사이의 모순’을 겪으면서 그저 조용한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사노의 모습에서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전혀 낯선 풍경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운동권 끝자락이 존재해서 나보다 학번이 훨씬 높은 선배들 가운데는 여전히 거리 투쟁을 벌이고, 그 때문에 수배를 받고 학교에서 숨어 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로 사노처럼 마르크시즘에 열렬히 경도된 사람도 있었는데, 그 선배가 그랬다. 그는 정말 열정적이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나 또한 몇 번은 거리에 서기도 했는데, 그것조차 나는 곧 시들해져서, 그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그 세계를 떠났다. 그때 그 선배는 몹시 안타까워했는데, 나는 그 또한 언젠가는 그 세계를 떠나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학창 시절의 운동은 홍역 같은 거야. 시간이 지나 취직하면…….” 하는 말을 한다. 지금은 대기업에 적을 둔 나는 겉으로 보기에 아마 전형적인 인물이겠지.(<그래도 우리의 나날>, 70쪽)
이 구절을 읽는데,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사노처럼 소시민으로 살면서 주말에는 명동, 광화문, 종로, 대학로 등지에서 쇼핑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면서 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나는 어느 날 그 선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였다. 그때마다 그는 을지로, 광화문, 종로, 대학로에서 여전히 그 누군가를 위해 ‘투쟁’중이었다. 어느 해 5월 1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명동 거리를 걷다가 노동절 시위 무리에 있는 그 선배를 보기도 했고, 용산 참사 진실 규명을 외치는 시위 무리에서도 그를 보았으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그를 보기도 했다.
여하튼 그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시위할 거리가 있느냐고 반문할 때조차도 시위 현장에 있었고, 이상하게도 나는 몇 년에 한번쯤은 그런 그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틀렸구나. 그는 여전하구나. 그를 우연히 마주친 날이면 이렇게 평범하게 소시민적으로 사는 내가 비겁해 보이고, 한심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그런 삶이 여전히 가능한 걸까? ‘혁명가이고 싶었지만 혁명가가 되지 못한 사노’와 달리 그 선배는 지금도 생활 속 작은 혁명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선배는 죽는 순간에 떠올릴 만한 확실한 ‘어떤 것’을 가졌으리라.
H전집의 옛 주인인 사노의 편지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라는 엄청나고도 무서운 질문을 평범하게 살아가던 후미오와 세쓰코에게 던진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 질문을 마주하고 문득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가벼운 충격 같은 것을 느끼리라. 세쓰코는 자신이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가 없음을 깨닫는다. 약혼한 사이지만 후미오와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生)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혹해한다. 그런 세쓰코를 지켜보는 후미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과 죽음이 있다. (...) 나는 머잖아 어학 강사가 되어 강사로 살고, 두세 권의 역서라도 내서 잠깐 행복해지다, 끝내는 어학 강사로 늙어가려고 마음먹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는 인간이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 99쪽)
후미오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노의 편지가 불러온 파문은 그리 잔잔하지만은 않다. 세쓰코는 세쓰코대로, 후미오는 후미오대로 저마다 과거를 환기하고, 자기가 지금 밟고 선 세계를 되돌아본다. 이런 현상은 세쓰코 쪽이 한층 심하다. 그녀는 “당신은 불안하지도 않아? 죽을 때 아무것도 떠올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죽는다는 건 외로운 일이야. 하지만 외롭다는 것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 일이 무(無)가 되어버리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야.” 말하며 자신의 공허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쓰려고 한다.
그에 비해 후미오는 과거를 돌아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을 크게 조정하지는 않는다. 진폭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인물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후미오는 사노나 세쓰코, 또 세쓰코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노세 등 다른 인물에 비해 너무나도 덤덤하고 관조적인, 그래서 아주 예전부터 늙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과거 속에서도 그는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 걸까? 후미오에게는 조금 반감이 들기도 한다. 사노나 노세, 세쓰코에게는 ‘그래도’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시절이 있는데, 후미오에게는 딱히 그럴 만한 시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공허함 그 자체’인 인물은 아닐까.
후미오의 그런 모습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세쓰코나 유코)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한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도 주변에 여자는 넘쳐나고 후미오는 아쉬울 것 없이 여자를 만나고 떠나보낸다. 세쓰코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애초부터 절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후미오는 하루키 작품에서 곧잘 등장하는, 아닌 척 하지만 실은 왕자병 기질의 남주인공(<상실의 시대> ‘와타나베’ 같은)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가 유코와 세쓰코를 대하는 방식에는 전형적인 여성의 대상화가 엿보이는데, 특히 유코, 세쓰코와 처음으로 섹스를 나누게 되는 순간의 묘사나 그때 그녀들의 심리 상태 등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F교수가 가즈코에게 하는 짓거리 또한 그렇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아닐걸? 하고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결점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사노를 비롯해 노세는 물론 사노가 ‘자신의 또 다른 눈’이라고 지칭한 소네 등 모두 하나 같이 젊은 날 어떤 이상이나 사상에 경도되어 거기에 열정적으로 빠지거나 그런 상황 속의 자기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비해 세쓰코나 유코, 가즈코 같은 여자들은 어떤가. 그저 그녀들이 한다는 일은 그런 남자들을 지켜보며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의 열정에 감동해 그 열정을 좇을 뿐이다. 스물 한 살 유코에게 가장 절실한 고민이 고작 그 나이에도 ‘남자에게 안기거나 키스 받은 적이 없어’ 자신을 ‘추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니, 실소가 나올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남자에게는 ‘인생 소설’이 될 수는 있어도 여자에게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현실에 머무는 후미오에 비해 자기 삶을 바꾸고자 용감하게 결단을 내린 세쓰코라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의 이와 같은 결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도’ 이 작품은 지금 한 순간,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착각으로 지탱된 날들’일지라도 ‘거기에는 인생과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그럼으로써 기쁨과 관능에 넘쳤던 날들을 떠올리는 세쓰코의 기억에서 우리가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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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1-05 공감(19)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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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필요한 것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를테면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가만히 지켜볼라치면 인생이란 그저 누군가 정해진 길을 순종하며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한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들에게 조금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에 따라 조용히 걷다가 이따금 의미도 없는 함정에 빠져 고초를 겪기도 하는, 별반 특이할 것도 없는 그만그만한 인생을 조용히 살다 가는 게 대다수 사람들이 삶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이것은 마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편 사람들의 꼬물거림을 지켜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한 사람의 삶을 멀찍이 떨어진 채 무관심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들을 몇 편 알고 있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에 꺼낸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도 그중 하나다. 간결한 필체로 무심하게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무덤덤하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어쨌든 나는 소네의 얘기 속에서 이미 마지막 윤곽이 정해진 사노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보다, 내 속에서 요동치는 그의 죽음의 무게를 재고 싶었다. 그의 죽음의 분위기가 그 늦가을 날 차가운 빗물의 습기와 함께 이미 내 피부에 엉겨붙은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내키지 않아 하는 소네에게 부탁하여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그의 집까지 가서 사노의 편지를 빌려 왔다." (p.52)
소설은 주인공인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입한 'H전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후미오는 먼 친척뻘의 약혼녀인 '세쓰코'와 함께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H전집'에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의 주인은 대학 시절 세쓰코와 함께 역사연구회에 몸담았던 동료 회원 '사노'의 것으로 밝혀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여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 공산주의자였던 사노는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졸업 후 s전철에 취업하여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조용한 삶을 산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소네로부터 사노가 죽기 직전에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암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젊음의 특권이다. 나 역시 스무 살 때는 사람이 한 번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것이 내일이라도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조차 진지하게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노인도 똑같이 태평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P.79)
조용히 살던 사노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변했던 것은 s전철 부사장의 별장에 초대된 후였다. 부와 권력을 소유했던 부사장은 자식이 없었고, 사노에게 친척뻘의 어린 여대생인 아야코를 소개했다. 미래의 신랑감 예비 후보로 말이다. 별장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부사장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암이 아니냐는 아야코의 농담에 부사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던 것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부사장도 죽음 앞에서 저토록 공허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데 사노 자신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노는 '결국 죽을 때가 돼서 생각나는 일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과거 자신이 시위 대열에서 도망쳤던 단 한 번의 배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사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죽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는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졌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4~p.25)
사노의 유서를 읽은 두 사람, 후미오와 세쓰코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뭔가 부족하기만 했던 청춘의 과오를 뒤로 한 채 새롭게 출발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약혼과 오직 행복한 미래만 꿈꾸었던 2년여의 시간들.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 사노의 유서는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역사연구회의 노세를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했던 세쓰코는 후미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찾으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후미오는 세쓰코로부터 길고 긴 편지를 받는다.
"우리 인간의 생활은 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망막한 세상의 심연 위에 노출된 채 빛이 바래가지. 또 자칫하면 그 끝없는 깊이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 그런 망막함 속에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활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내 생활은 의미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 언제나 상대와 뭔가를 공유하고 싶다, 두 사람의 생활 속에 뭔가 공통된 의미를 갖고 싶다고 바란 것도 망막한 세상에 확실한 못을 박고 싶은, 그것을 한 개 한 개 박음으로써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이 아닌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어.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 주위에 펼쳐진 이 무한한 공간, 마침내 우리를 죽음 속으로 사라지게 할 이 무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추구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야." (p.185~p.186)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삶은 더 공허해진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 양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자신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단지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삶을 유지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지만 숫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사는 건 오히려 가벼워진다. 그러자면 멀리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멈춰야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주는 과학의 법칙에 따라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우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질량을 가진 덩어리와 같은 물질과 에너지, 공간이라는 세 가지 기본 재료만 있으면 된다.'고 답하지 않았던가. 삶은 의미를 찾아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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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9-03-09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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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그래도 우리의 나날
일본 전후의 학생운동 세대의 기록.
오래 전 시절의 이야기지만 젊은이들의 고뇌, 상처는 도돌이표인가?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나로 존재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젊음은 막상 이 방법이 진정 나로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직면하면 발이 푹 빠지는 함정이 될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기에는 성장을 요구하는 흐름을 온 몸으로 버텨야 하기에 더욱 혼돈스러워 지는지도 모르겠고.
각각의 자리에서 주인공인 캐릭터들은 후회하고, 성급하게 결정짓고, 머뭇거리다 결연히 뒤돌아서고 단 한방으로 삶을 마감하곤 한다.
젊은이라는 혼동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전쟁의 후폭풍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알수 있을까.
모호하고 애틋하게 읽히는 시절이다.
-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되도록 상대에게 다정하려고 했고, 또 실제로 다정했다. 고집을 세우고 다정함을 희생해서까지 지켜야 할 무엇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았다. - 22
- 그렇다면 적어도 한 사람쯤은 나의 모든 것을 알아줘도 좋을 것이다. 나의 약함, 그로 말미암은 괴로움, 그래서 지금 지하활동에 참가하러 간다는 것, 그런 얘기 전부를 알고 이해해 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67
-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점차 마음속으로 퍼져갔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토록 어두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사람이 살아서 얻는 행복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 79
-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이다. 약간의 선망은 있었겠지만, 실망은 없었다. 우리 세대는 기대와는 무관하다. 아니, 나는, 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내일 일어날 것을 미리 가르쳐주는 세계에서 자라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것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사실로부터 세계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나하고 실망이란 것은 무관했다. - 114
- 나는 그들이 유코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것을 증오한 게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슬퍼했다. 어쩌면 친구인 유코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 인생의 중대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무의식 중에 쾌활해지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그런 쾌활함을 증오했다. - 130
- 나는 내 속에 결코 회한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내 속에서 자기혐오가, 죄의식이, 그리고 그것과의 싸움이, 충실한 생활이 물결치듯 되살아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것을, 나의 공허함은 일시적이거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다. - 133
-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 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 196
2019.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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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9-02-24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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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아직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시바타 쇼가 1964년 서른에 내놓은 소설이다. 흑백사진을 찍듯 그 시절 일본 청춘들의 삶을 담담히 담았다. 청춘은 가슴속에 어떤 모양의 이상이라도 가지기 마련이다. 그 이상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에 또 우리 모두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존재이기에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도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내 인생의 소설’로 소개한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장편의 편지인데, 우편으로 받는 편지도 낯설고 장편의 편지도 낯설다. 희곡의 독백을 대신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편지의 내용도 낯설고, 그 낯설음만큼 편지라는 게 그립다.
소설은 주인공인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문제의 ‘H전집’을 사면서 시작한다. 약혼자인 세쓰코가 책에 찍힌 도장을 알아보고 사노의 행적을 쫓다 자살한 사노가 죽기 전 쓴 편지를 구한다. 긴 편지에는 사노의 행적과 생각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노의 편지를 읽은 후 후미오와 세쓰코의 관계에 이상전선이 흐른다. 후미오는 전과 다른 듯한 세쓰코에게 자살한 유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쓰코는 멍하니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후미오는 세쓰코에게 전에 느끼지 못한 소중한 감정을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 결혼해서 후미오의 직장 근처로 같이 가기로 했지만 세쓰코는 편지를 남기고 지방으로 떠난다.
사노와 유코는 죽기전 각각 소네와 후미오에게 편지를 남긴다. 사노는 대학교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 격렬했던 한 시위에서 도망친다. 그 죄책감에 공산당 지하군사조직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본의 공산당 군사조직은 해체된다. 그이후 대학에 돌아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문득 자기 자신이 배신자라는 애써 잊고 있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노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반면 유코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미오에게 자살한다는 속달 편지를 보내놓고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후미오는 여자친구와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던 여행지에서 유코와 관계를 맺었지만, 도쿄에 돌아와 소원해진다. 후미오는 유코의 편지를 읽기전 장례식장에 가면서야 그 죽음이 자신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노의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코의 임신과 낙태는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시대와 공간이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속 여러 여성인물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시선은 불편하다.
이야기는 후미오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6장에서 세쓰코가 남긴 편지를 통해 또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세쓰코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 후미오 때문에 독자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다. 활달하고 명랑한 소녀였던 세쓰코는 대학생활 동안 열심히 역사연구회 활동을 한다. 그 중 열심히 활동하던 노세라는 청년을 좋아하다 역사연구회도 해체되고, 좋아하던 노세라는 존재에 대한 이상도 깨진다. 체념속에 후미오와 약혼을 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격렬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노의 유서를 읽은 뒤로 후미오는 깨닫는다. 후미오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후미오가 마침내 결혼 이야기를 할 때 반대로 세쓰코는 후미오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후미오를 떠나는 세쓰코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곧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세쓰코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곳을 필요로 하게 한다. 화려한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생활이란 걸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하러 도쿄를 떠난다. 체념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후미오의 생활에 맞추려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의 생활을 찾아나선 세쓰코. 그래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아직도’ 우리의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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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123q34 2019-05-17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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