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2

Jin Young Oh -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은 6·25를 ‘미중전쟁’이라고 표현한다

Jin Young Oh - 대학 다니던 시절, 또래 남학생들은 ‘군대 빠지는 방법, 방위(18개월)라도 가는 방법’을... | Facebook


Jin Young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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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던 시절, 또래 남학생들은 ‘군대 빠지는 방법, 방위(18개월)라도 가는 방법’을 종종 화제로 올렸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군 면제다, 애 하나로는 안 되고 둘은 낳아야 면제다, 비만이나 눈 나쁘면 방위다 등등. 
군대 안 가거나 조금이라도 짧게 가는 방법을 둘러싼 정보 교환은 남자 동창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모였다 하면 군대 피하는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한 번도, ‘저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참 안됐구나’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당시 80년대는 신입 사원 공개 모집에 남자만 뽑는다고 써 있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30개월만 다녀오면 되는데 어지간히 엄살들 떠네. 우리는 평생을 2등 국민으로 사는구먼” 이라고 속으로 가소롭게 여겼었다.
그 시절 남자 동창들을 향한 나의 냉소를 진심으로 뉘우친 건 97년생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였다. 
뜨거워지기 시작한 5월의 태양 아래 훈련소 연병장에 서 있던 우리 아들. 
다들 내 아들처럼 잘생기고 앳된 남자아이들이 두려움과 불안이 역력한 얼굴로 줄 서있던 모습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내 손을 꽉 잡은 아들 손에서 느껴지던 축축한 땀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6·25 전쟁 발발 73주년이었던 지난 25일 뉴스에서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잠든 유엔기념공원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입대하던 날 내 아들처럼 긴장으로 차가운 땀이 밴 주먹을 쥐고 이역만리 먼 나라에 왔을 열아홉, 스무 살의 그들. 
이곳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어 영영 집에 못 돌아간 남자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 
어느 구석에 붙은 줄도 몰랐을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고 남은 평생 슬퍼했을 부모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날 열린 73주년 행사에서는 ‘켈로부대(KLO)’ 참전용사 출신 이창건(93)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 쓴 쪽지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이 말한 것처럼 켈로부대원 같은 북파 공작원들은 오랜 세월 국가로부터 참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휴전선을 넘는 모든 무력도발은 1953년 정전협정 위반이었기에 이름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작전에 동원된 공작원들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았다.
지난 2004년에 국회가 북파공작원 특별법을 제정할 때까지 그들은 내내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켈로부대는 미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제외되었다가 2021년에야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제정돼 비로소 정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북한공작원 특별법을 발의했던 김성호 전 국회의원의 책 <북파공작원의 진실>(2022, 가을밤)에는 
당시 집권당 의원이 추진했건만 난관에 부딪쳐 물거품이 될 위기였던 북파공작원 특별법이 
16대 국회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가까스로 통과됐던 비화가 나온다.

지금의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은 6·25를 ‘미중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 당의 국회의원들은 핑크색 노란색 가발을 쓰고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부르더니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국민을 겁박한다. 

그러는 민주당에게도 한때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받을 권리를 찾아주려 한 정치인과 그에 화답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나는 그런 시절의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민주당과, 
“6·25는 국제전”이었고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며 어민과 수산물 상인의 숨통을 짓누르는 오늘의 민주당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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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comments

Author
Jin Young Oh
https://chosun.app.link/4ECRRaJT4Ab
[에스프레소] 93세 참전용사의 눈물
CHOSUN.APP.LINK

19 h
정연원
지금의
더불어미친당은 국민들을
위한 당이 아니라 이죄명과
개딸들의 당으로 전락했어요
간판 내려야 됩니다
19 h
Park Jae Woong
지금의 민주당은 그냥 공산주의 괴물인듯요.
23 h
허리미
전쟁과 아픔의 관련있는. 이들에겐. 가슴에. 트라우마의. 짙은
상처가. 이데올로기 보다 사람 사랑이. 살아가는 이유랍니다
15 h
손경모
매우 공감합니다
제가 복무할때
병장월급이 5000원정도로
기억되어집니다
그래도 쓸게 많았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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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hEdited
Seungmin Choe
내 고등학교 1학년 때 학도호국단 창설 및 교련, 공업이 정규교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2차대전때 사용하였던 M1소총을 개인화기로 군사교육을 이수하고 학군14기로 임관, 전방 15사단에서 국방의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병역의무를 대하는 사회분위기는 숼남 패망 및 북괴 남침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625사변 이후, 병역의무에 대해 막연한 부정적 시각이 은연 중, 일반가정에 퍼져있어 병역수행 기간을 인생에서 쓸데없이 허비한다고 생각하여 방위로 병역을 때우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이런 현상을 나무라기 보다는 당시 병역의무 수행에 대한 일방적 대국민교육과 군의 복지관련 국가예산상 충분한 지원이 험들었던 이유도 무시할수 없다고 본다.
1 dEdited
임성길
포스팅에 가슴이 먹먹하고 콧등이 찡해옵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하고 챙기는 것은 후손들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더불당도 회심하고 함께 동참하길 촉구합니다.
1 d
Joohyun Kim
잘 읽었습니다.
미중전쟁이라 듣는 소련 섭섭하겠어여
1 d
노순일
이북에서 내려와 백선엽 장군의 1사단 수색대장이었던 아버지 생각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공을 기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23 h
심경순
쉽게, 잘 읽히게, 핵심이 잘 드러나는 글 읽을때마다 감동받습니다.
1 d
김영현
한번읽고 감동받아 또 읽었네요. 페북글을 두번이나 읽을줄이야..
1 d
Hyejeong Jeon
두 아들들 군대 입소 시킬때마다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어릴적에 군대 간 남성분들께 크게 고마움이나 미안함 못느낀거 뼈저리게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좁은 우리같은 감옥에서 꼼짝도 못하고 허드렛일하며 중간중간 보초서느라 2시간만 자고 진흙탕에서 구르며 유격훈련 받으시던 남성분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3 h
Yujeong Kwon
저의 큰아버지가 켈로부대 소속이셨는데, 북한을 여러번 다녀오셨던 트라우마로 알콜중독에 걸리셨고, 결국 큰어머니와도 이혼하시고 군에서도 사건이 생겨 퇴직하시는 등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사시다 돌아가셨어요. 어렸을때 아빠한테 큰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셨는지 얘기를 들었었는데, 몇번 뵜던 기억 속 큰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한 모습이었어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3 h
이재국
30개월이란 긴시간을 사적제재 받고 하는 병영생활, 만원도 안되는 적은 봉급 받고 한게 군생활 입니다.
평등이란 생각만 갖고 군생활 우습게 생각한 사람들은 자녀 군 보낼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느낍니다.
생각과 실제는 다른 것인데 생각만 갖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우위에 섭니다.
그런 사람들이 반대 입장에 섰을때는 억울하다고 합니다
드세고 날뛰는 사람들 목소리만 들리는 요즘 오작가님 글을 보면서 위안을 받습니다.
1 dEdited
송명진
천안함 도발이 있고난 후 평택에 전시된 처참하게 두동강난 함정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몸부림치며 순국했을 장병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했는데 그때 안내하던 여군장교의 설명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그런데요. 이곳에 방문온 미군 가족들만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민주당 관련자들은 거의 이곳을 찾지 않는데 한분 오신 의원님도 묵묵부답 이더군요".
19 h
Yongjoon Kwon
같은 민족인 우리 인민군을 학살했다고 백선엽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마로 매도하던 노머시기란 여자는 오작가님 글에 분개할 것 같네요. 우리 인민군을 죽이려고 온 존재들인데요.
1 d
장중덕
조선일보 평생구독자입니다 진영님 칼럼 꼭 읽고있어요 ㅎ
20 h
백용순
말씀에 전적으로 격하게 공감합니다
23 h
Seung Hoon Oh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7 h
Moonbok Lee
신문으로 읽고
여기서 또 읽어봅니다
아들 군대갈때
서로 눈물 훔치던때도 생각나고요
잘봤습니다
1 d
Tae Won Uhm
글 잘쓰는 것, 참 복입니다. 부럽습니다.
23 h
김재근
벤쿠버 빅토리아섬 시청사 광장의 중심부에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인상적이었읍니다.
6,25당시 참전한 카나다 어린병사들은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어떤 나라인지 들어 본 적도 없었을 나라였고 인구대비 가장 많은 전투병을 보냈고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도 많은 사망자를 낸 치열한 전투였음이 알려졌읍니다.
이역만리 미지의 가난한 작은나라에 자식을 보내 평생 가슴에 큰 슬픔을 묻어두고 사셨을 부모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었읍니다.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이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고 당시 살아서 귀환한 한국전 카나다 참전용사들은 한국전 참전을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에 최초의 금메달을 선사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카나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후 카퍼레이드로 국민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 준 장면이 떠오름니다.
국가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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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Edited
Park Eunsik
  · 
감동입니다
1 d
김재근
한국전 참전비가 있는 빅토리아섬 벤쿠버 시청사 夜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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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
김소미
작가님 글 읽으면서 콧등이 찡하고 눈물이 나네요.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1 d

Author
Jin Young Oh
김소미 저도 쓰다가 울었답니다. 아들 입대하던 날 떠올라서요. ^^
1 d
Youngtae Kim
진흙탕에서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전쟁영화 장면 볼 때마다 논산훈련소 각개전투훈련을 연상케 합니다.
군대가서 땀범벅이 되어 빡빡 기어 본 사람은 쥐씨알 만큼은 전쟁이 어떤것일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국만리 이름도 낯선 나라에서
죽어간 유엔군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근데,
이젠 힘 좀 생겼다고
벼라별 트집 다 잡아가면서
이 땅에서 몰아낼 궁리만 하는
집단들이 판을 치고 있네요.
이런 집단 사람들!
오작가님 글 읽고
각성대오 하길 바랍니다
1 d
Heesuk Yoon
완전 감동입니다
저도 한때 노사모였습니다~~
1 d
지동진
좋은아침 입니다^^ 또다시 어떻게 살아가야함을 다짐하며 출근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9 h
소금철
공감합니다. 저도 당시엔 민주당을 지지했습니다.
17 h
Seunghwan Park
글이 ...감동입니다.
1 dEdited
전은주
아들을 군대 보내 본 사람들은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글 입니다
1 d
Freeman Shin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9 h
박춘더
좋은글 감사합니다.
1 d
DongGwi Shin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공유좀 해보겠습니다(페북글 첨 해봐요;;)
21 h
황의관
오샘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읽는 내내 눈물이 날것 같아 참느라 힘들었네요.ㅜㅠ 공유할게요.~!!!
1 d
Seo Harang Seo
콧날이 시큰하고 눈시울이~ㅠㅠ 감동입니다.
1 d
함대진
공감 또 공감입니다. 멋진 일침의 글 잘 읽었습니다. 존경합니다. 응원합니다.
1 d
권해진
고등학교 3년, 대학3년(문무대1주) 군대33개월 동원예비군 만30세까지. 일반예비군 만35세까지 .. 우리세대는 군사훈련을 정말 많이했죠.
19 h
박종철
민주당은 주사파 종ㅇ부기들 진지
1 d
Yun Sun Jang
https://www.newdaily.co.kr/.../2023/06/30/2023063000224.html
[단독] "한국인 없어 좋아"…민주당 김영주, 본회의 중 日홋카이도 여행계획 문자
NEWDAILY.CO.KR
[단독] "한국인 없어 좋아"…민주당 김영주, 본회의 중 日홋카이도 여행계획 문자
[단독] "한국인 없어 좋아"…민주당 김영주, 본회의 중 日홋카이도 여행계획 문자
23 h
박미정
공유를 안할수가 없는 글입니다♡
1 d
Hwa Rang Kim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 h
강서현
동감합니다
19 h
Jinyong Heo
맛있는 글~~♡
23 h
김호덕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1 dEdited
Suk Hee Yu
제 블로그에 옮기겠습니다
1 d

Author
Jin Young Oh
Suk Hee Yu 감사합니다. 꾸벅🥰😍
1 d
김동현
최고예요
19 h
Woon-Seop Jung
와...
1 d
David Ahn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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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93세 참전용사의 눈물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쪽지
“군번·계급도 없이 북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
지금 누리는 자유·평화에 감사

오진영 작가·번역가
입력 2023.07.01. 03:25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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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창건 참전용사에게 제복을 전달하고 있다./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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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던 시절, 또래 남학생들은 ‘군대 빠지는 방법, 방위(18개월)라도 가는 방법’을 종종 화제로 올렸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군 면제다, 애 하나로는 안 되고 둘은 낳아야 면제다, 비만이나 눈 나쁘면 방위다 등등. 군대 안 가거나 조금이라도 짧게 가는 방법을 둘러싼 정보 교환은 남자 동창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모였다 하면 군대 피하는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한 번도, ‘저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참 안됐구나’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당시 80년대는 신입 사원 공개 모집에 남자만 뽑는다고 써 있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30개월만 다녀오면 되는데 어지간히 엄살들 떠네. 우리는 평생을 2등 국민으로 사는구먼” 이라고 속으로 가소롭게 여겼었다.

KLO부대 출신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편지./TV조선
KLO부대 출신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편지./TV조선
그 시절 남자 동창들을 향한 나의 냉소를 진심으로 뉘우친 건 97년생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였다. 뜨거워지기 시작한 5월의 태양 아래 훈련소 연병장에 서 있던 우리 아들. 다들 내 아들처럼 잘생기고 앳된 남자아이들이 두려움과 불안이 역력한 얼굴로 줄 서있던 모습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내 손을 꽉 잡은 아들 손에서 느껴지던 축축한 땀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6·25 전쟁 발발 73주년이었던 지난 25일 뉴스에서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잠든 유엔기념공원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입대하던 날 내 아들처럼 긴장으로 차가운 땀이 밴 주먹을 쥐고 이역만리 먼 나라에 왔을 열아홉, 스무 살의 그들. 이곳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어 영영 집에 못 돌아간 남자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 어느 구석에 붙은 줄도 몰랐을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고 남은 평생 슬퍼했을 부모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날 열린 73주년 행사에서는 ‘켈로부대(KLO)’ 참전용사 출신 이창건(93)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쓴 쪽지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이 말한 것처럼 켈로부대원 같은 북파 공작원들은 오랜 세월 국가로부터 참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휴전선을 넘는 모든 무력도발은 1953년 정전협정 위반이었기에 이름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작전에 동원된 공작원들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았다.


지난 2004년에 국회가 북파공작원 특별법을 제정할 때까지 그들은 내내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켈로부대는 미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제외되었다가 2021년에야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제정돼 비로소 정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북한공작원 특별법을 발의했던 김성호 전 국회의원의 책 <북파공작원의 진실>(2022, 가을밤)에는 당시 집권당 의원이 추진했건만 난관에 부딪쳐 물거품이 될 위기였던 북파공작원 특별법이 16대 국회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가까스로 통과됐던 비화가 나온다.

지금의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은 6·25를 ‘미중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 당의 국회의원들은 핑크색 노란색 가발을 쓰고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부르더니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국민을 겁박한다. 그러는 민주당에게도 한때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받을 권리를 찾아주려 한 정치인과 그에 화답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나는 그런 시절의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민주당과, “6·25는 국제전”이었고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며 어민과 수산물 상인의 숨통을 짓누르는 오늘의 민주당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민주당이 지금 같은 괴물이 되기 전 모습을 되찾는 날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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