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4

[조선총독부 30년사>통해 투자 마인드를 생각.. : 네이버블로그

<조선총독부 30년사>통해 투자 마인드를 생각.. : 네이버블로그

서론이 길었네요.
많은 분들의 문제가 성공담, 장점에만 주목하고 실패담이나 단점, 즉 불편한
부분은 언급을 꺼려합니다.
왜? 들어봐야, 다시 끄집어내봐야 기분이 좋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돌이켜볼 때 실패와 단점을 통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
습니다. 실패를 해봐야 사람이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지며, 또 실패를 통해
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마음먹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를 볼 때도 적용됩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이나 일본의 악정, 친일파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가 이
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통치를 했는지 일본의 입장에 대한
연구는 빈약한 편입니다. 당장 해당 연구의 기본사료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총독부 시정 25년사, 30년사가 해방 이후 70년이 훌쩍 지난 이제서야 국역되
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서의 전반적인 기조는 일본의 입장에서 식민 통치로 인해 조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대전제하에 서술되었습니다. 따라
서, 구한말 대한제국의 통치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구시대에 얽매여 문제가 많
았고, 일본이 한국병합 후 이러한 문제점들을 서서히 해결하면서 조선 경제가
발전하고 민중의 생활수준, 교육수준이 향상되었으며, 각종 SOC가 활발히 구
축되고 있음을 방대한 통계자료를 통해 보여주려 했습니다. 일본의 의도는 한
국인의 입장에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각종 통계자료들은 일
부 오차나 오류가 있다 해도 상당한 참고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언급하기보다는 블로그 특성상 부동산과 관련된
부분을 오늘은 일부 언급해보려 합니다.
가령 일제는 일제 시대 이미 조선시가지계획위원회, 즉 오늘날의 도시계획위
원회를 운영하면서 경성을 비롯한 각종 도시 개발에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일본의 도시개발과 철도, 도로 등 각종 SOC 구축으로 인해 경성을 중심으
로 조선 전역에서 지가 상승과 투기(?) 세력이 발호하여 보상가 상승으로 인
해 원활한 도시개발 및 SOC구축에 상당한 애로가 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요
즘으로 치면 신도시 개발 예정지의 토지 매수 내지는 지하철역 연장 예상 지역
의 역세권 변모 단지 아파트 투자라고도 볼 수 있죠.....
놀랍게도 120~130년 전인 구한말에도 소수의 선각자(?)들이 도시개발예정
지역과 SOC구축 예상 지역에 투자를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일본인들이 투자
를 시작했으며 구한말 고위 관료와 부유층 중 눈치 빠른 일부가 일본인들과 함
께 투자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이죠. 심지어 일부 관료는 이러한 투자로는 성
에 차지 않아 아예 직접 회사까지 차려 SOC 공사에 직접 참여합니다.... 100
여년이 지난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지요.
이 부분은 이 정도에서 넘어갑니다.

책의 주내용은 각 총독의 치세에 대한 요약 소개 부분이 있어서 찍어서 올려봅
니다.


1. 초대 총독 : 데라우치 마사다케 육군 대장
구 일본제국군은 원수들이 즐비했던 독일군과 달리 대장 중 현저한 공적이 있
는 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원수 계급을 수여했습니다. 가령 2차대전의 책임을
지고 교수형을 당한 진주만 기습 당시 총리대신으로 유명한 도조 히데키도 육
군 대장이었지만 원수 계급장을 받진 못했죠.
그러나, 데라우치 총독은 한국병합을 큰 무리없이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원수
계급을 받았음은 물론 총독 이후 총리대신으로 영전하였습니다.
원수 위에 대원수라는 계급을 가진 이도 한 명 있는데 바로 천황입니다.
아래 치세 부분을 보면 일본의 입장에서 병합 당시 피폐한 한국을 단기간에 안
정화시키며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식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좀 씁슬합니
다.....
데라우치는 전지현 주연의 대히트 영화 <암살>에서 영화 초기에 친일파로 나
오는 강인국(이경영 분), 이완용 백작과 함께 손탁호텔에서 폭탄을 두들겨 맞
는 장면에 나오는 그 총독입니다.


2. 2대 총독 : 하세가와 요시미치 육군 대장
역시 대장이면서 원수 계급을 받은 인물로 3.1운동의 여파로 물러납니다.
3.1운동은 3.1만세소요사건으로 서술했습니다... 3.1운동은 비록 실패했으
나 그 여파로 일본은 다소간의 유화책을 펴게 되죠.
고종이 서거하자 총독부 2인자 정무총감을 장례위원장으로 삼아 국장을 치르
고 천황은 장의 당일 조회를 보지 않았으며, 3일간 가무음곡을 금하였다는 내
용이 나옵니다.

3. 3대 총독 : 사이토 마코토 해군 대장
총독 중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며, 조선 통치를 무난히 해냈다고 평가받아
이후 총리대신으로 영전합니다. 특이점(?)라면 육군이 아닌 해군출신이라는
점이죠. 그나마 총독들 중에서는 합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박열>에서는 일본 내각회의에서 박열을 사형에 처할 경우 가뜩이나 불
안한 조선 민중들이 다시 폭동을 일으킬까 걱정하여 사형에 반대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또, 영친왕의 유럽 순방시 당시 군축회담에 참가했던 사이토는
영친왕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하죠.

4. 4대 총독 : 야마나시 한조 육군 대장
야마나시는 별로 인지도가 없는 총독입니다. 재임기간이 짧은데 독직혐의로
불명예퇴진을 했습니다. 아래 30년사에는 의원면관되었다고 나오는데 바로
그 부분입니다.
내용 중 쇼와 천황이 즉위한 후 은사, 진휼, 양로를 하고, 문묘 18현에 제사료
를 하달한 것은 영광이라는 식으로 기술하였습니다...
미국 신문기자단 일행이 내한한 적이 있어 야마나시 총독이 조선 발전의 실정
을 세계에 소개하였다는 부분도 있습니다...

5. 6대 총독 : 우가키 가즈시케 육군 대장
5대 총독은 사이토가 다시 맡아서 오랜 기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용은 있으
나 그냥 생략하였습니다.
6대에 언급된 것 중에는 조선의 경제와 산업이 현저히 발전하고 있고, 만주사
변과 황태자인 현 아키히토 일왕의 탄생 정도에 비중을 두어 서술하고 있습니
다. 경제와 산업 분야는 각론에서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동원해 뒷받침
하려 애쓰고 있죠...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우가키는 당시 조선에 맥주 공장을 도입시킨 장본인이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우가키는 당시 조선에 맥주 공장을 도입시킨 장본인이
기도 합니다.


6. 7대 총독 : 미나미 지로 육군 대장
총독들 중에서도 평이 좋지 않은 편입니다. 창씨개명에 박차를 가하고 만주
및 중국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정책에도 박차를 가한 인물입니다.
당시 만주, 몽고, 독일, 이탈리아 등 이른바 추축국 일원과 내지인 일본을 제외
한 조선과의 교류 측면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음은 특기할 만 합니다. 이
뒤로도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노부유키 등의 총독이 있으나 그건 30년사 편
찬 이후라 해당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2컷입니다.
첫번째는 소장 도서에 촬영한 1945년 8월 15일자 매일신보 조선어판입니다.
쇼와의 조서가 1면에 <평화재건에 대조환발>이라고 대서특필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항복 내용입니다.


두번째는 1945년 9월 2일 조선총독부에서 거행된 일본의 항복 조인식입니
다. 안타깝지만 우리 힘으로 해방된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킨 것이
다 보니 조선에 대한 통치권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기는 항복식이었습니
다.....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이가 마지막 총독으로 총리대신까지 역임한 아
베 노부유키입니다. 좌측의 눈을 감고 착잡한 표정을 지은 이가 조선군 사령
관 고즈키 요시오 중장이고, 맨 우측에 역시 착잡하게 앉아있는 이가 진해 해
군사령관 야마구치 기사부로 중장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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