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채 상병이 안타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무튼, 주말]
[서민의 문파타파]
해병대 순직 사건을 향한
민주당의 비열한 정치적 술수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9.23. 03:00업데이트 2023.09.2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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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유현호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 국정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며,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을 즉시 제출한다.”
9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 의원총회에서 결의된 내용이다. 민주당이 왜 이런 결의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당대표 단식부터 요즘 민주당이 하는 일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던 적이 없었으니 그냥 넘어가자. 같은 날 민주당은 다음과 같은 선언도 했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은폐 진상규명 특검(특별검사)법 관철을 위해 필요한 절차에 돌입한다.”
여기서 말하는 순직 해병은 채수근 상병을 말한다. 폭우로 인해 피해가 컸던 2023년 7월 19일 오전, 채 상병(당시 일병)이 소속된 해병대 제1사단 신속기동부대 119명은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 수색작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반이 무너지며 대원 3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헤엄쳐 빠져나온 다른 대원들과 달리 채 상병은 떠내려갔고, 그날 밤 11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다. 안타까운 대목은 대원들에게 구명조끼를 안 입혔다는 것. 사고 현장에 도착한 채 상병의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 앞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
군대에 보낸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으니 억장이 무너졌겠지만, 채 상병 부모가 보여준 모습은 감동이었다. 국민에게 보내는 자필 편지에서 오히려 감사 표시를 했으니 말이다.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다” “수근이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신 관계 당국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은 채 상병 부모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개정된 군법은 범죄 혐의가 있는 군 사망 사건의 경우 민간 경찰이 수사하도록 했기에,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조사 자료를 경찰에 넘긴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국방부가 수사 자료를 회수한 뒤 사단장과 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고, 수사단장의 폭로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이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본말을 전도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민주당이 냄새를 맡고 끼어든 탓이었다.
애당초 민주당은 채 상병의 죽음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건 발생 직후 이렇다 할 성명을 내지도 않았고, 채 상병 영결식 때는 오영환 의원만 참석했을 뿐, 아주까리 정청래를 비롯해 지도부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낸 여선웅이 “민주당이 성의가 부족했다”고 질타했겠는가? 하지만 수사단장의 폭로 이후 민주당은 180도 달라졌다. 경찰 수사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국정조사와 특검을 주장했고, 국방부 장관과 성명 불상의 대통령실 관계자를 공수처에 고발했다. 설훈 의원은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다면서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 탄핵을 추진하다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자 낭패한 모습을 보이다 총리 해임안으로 방향을 튼 것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더 희한한 것은 수사단장과 더불어 이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키우는 분이 희생자 가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단장을 공수처에 고발하고, MBC 피디수첩을 비롯한 여러 방송에 나가 “군 차원에서 채 상병 순직 사고 이후 문제 해결 노력이나 사과 등의 과정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고 하는 분은 A병장의 어머니. A병장이 수색 도중 트라우마를 겪고 입원 중이긴 해도, 사망자 가족은 가만히 있는데 생존자 가족이 나서는 것도 무척이나 이례적이지 않은가? 이러는 동안 채 상병 부모님이 주문한 ‘철저한 원인 규명’은 길을 잃었으니, 애당초 민주당에 병사의 목숨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2020년 3월 27일 ‘서해수호의 날’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가가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괜한 의심이 아니라는 건 46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피격에서도 드러난다. 사건이 발생한 날 SBS가 “초계함 1척, 북한 공격으로 침몰”이라는 자막을 속보로 내보냈고, 국방부 장관도 국방위에 나와 “사건발생 순간 북한 행위로 판단했다”고 답변했듯이, 천안함 침몰은 북의 공격에 의한 폭침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범인을 성급히 특정하는 대신,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으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으로 하여금 객관적인 조사를 하도록 했다. 결론은 ‘북한 어뢰에 의한 피격’. 채 상병의 순직을 안타까워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진심이었다면,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특정된 순간부터 북한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았어야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렇게 하는 대신 천안함 피격의 원인을 부정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다. 심지어 천안함 폭침 규탄 국회 결의안에 추미애, 안민석, 박지원 등 민주당 32명이 반대했고 최문순 강원지사는 ‘폭침을 확률로 말하면 홀인원을 다섯 번 하듯 우연의 연속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 바 있다. 북한의 소행 여부에 계속 침묵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5년에야 ‘북한 잠수정의 타격’에 의한 것임을 처음으로 인정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인 2020년, 대통령 직속인 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피격에 대해 재조사를 시도한 것은 그의 본심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2020년 3월, 취임 후 처음으로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에게 천안함에서 순직한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윤청자 여사)는 다음과 같이 읍소한다. “대통령님,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문재인은 “정부의 입장은 같다”고 답한다. 답답해진 윤 여사가 “그런디요(그런데요), 여적지(여태까지)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해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라고 재차 묻자, 문재인은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며 주어가 없는 답변을 반복했다. 이런 문답이 오가는 동안 문재인과 동행한 김정숙은 윤 여사를 위로해주는 대신,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윤 여사가 그저 불청객일 뿐이었나 보다. 여기에 대해 민주당이 따로 사과한 적은 없으니, 그들의 마음도 비슷하리라고 본다. 그랬던 이들이 채 상병 죽음의 진상을 밝히라며 정부를 압박한다? 속지 말자. 그들은 채 상병이 안타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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