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강제동원’ 주금용 어르신 별세…생전 “보상 주면 소원이 없겄어”

‘강제동원’ 주금용 어르신 별세…생전 “보상 주면 소원이 없겄어”

‘강제동원’ 주금용 어르신 별세…생전 “보상 주면 소원이 없겄어”
기자김용희수정 2024-03-18 18:02
등록 2024-03-18 15:37

2022년 7월17일 오후 전남 나주시 대호동 ㅎ아파트 경로당에서 주금용 할머니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로, 10대 시절 일본 전범기업 후지코시에서 모진 고생을 한 주금용씨가 끝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

18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주 할머니가 폐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 중 전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16살때 일 후지코시 공장 강제동원
“국 조금, 밥 조금 먹으면서 쇠만 깎아”
미 폭격에 밤새 울면서 숨어 있기도
광고

2019년 손해배상 청구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 비협조로 소장 송달 지연
재판 열리기만 5년 기다리다 별세
“어린 나이 가서 그러고 고생했은께
보상을 쪼까 주믄 소원이 없겄구만”

전남 나주시에서 태어난 주 할머니는 나주대정국민학교(현 나주초) 재학 중이던 1945년 2월 16살 때 일본 도야마에 있는 후지코시 공장으로 친구들과 함께 강제동원됐다. 군수공장 후지코시는 우리나라에서 10대 소녀 1천여명 이상을 강제동원한 근로정신대 동원 최대 사업장이다. 주 할머니 등은 이곳에서 제품 절삭 공정에 투입됐다.

주 할머니는 2020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펴낸 구술기록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꽃 핥아먹었지’에서 “일본 사람이 학교로 찾아와 ‘ 일본을 가면 돈도 벌고 좋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 지원했다”며 “어머니는 ‘어린 것이 거기까지 가서 뭔 돈을 버냐’며 많이 울었다”고 증언했다.

일본 도야마시에 있는 후지코시 공장으로 동원된 할머니는 임금을 받지 못한 채 모진 고생을 했다. 주 할머니는 구술기록집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도야마에 막 도착하니 눈이 산덩이만큼 쌓여 있었다”며 “일본 여자에게 쇠토막을 기계에 대해 둥그렇게 깎는 법을 배운 뒤 날마다 국 조금, 밥 조금 먹으면서 쇠만 깎았다”고 했다. 집에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종이와 연필, 우푯값이 없었고 우체국도 어디 있는지 몰라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광고

미군 폭격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날도 많았다. 주 할머니는 생전 “공습경보가 울리면 공장을 벗어나 밤새도록 울면서 숨어 있다가 날이 새면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며 “회사는 밥을 먹이고 또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2018년 10월 7일 전남 나주 자택에서 주금용 할머니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주 할머니는 해방되고서야 고향에 올 수 있었다. 고향에 와서도 강제노동에 대한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주 할머니는 후지코시 공장에서 친구들과 신세를 한탄하며 불렀던 노래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후지코시 요이또 타레가 유따아(후지코시 좋다고 누가 말했나)/ 사쿠라 고까 께노 키노 시다떼(사쿠라 나무 그늘 아래서)/ 진지노 기무라가 유따 소다(인사과 기무라가 말한 듯하다)/ 와따시와 맘마토 미마사레다(나는 감쪽같이 속았다)”

주 할머니는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소식을 듣고 2019년 4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의 도움을 받아 후지코시 회사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소장 송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주 할머니는 5년째 재판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2년 7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광고


“어린 나이에 가서 그러고 고생했은께 얼마라도 보상을 주믄 헌디, 안 준디 어떻게 받어? 나 죽기 전에 보상이나 쪼까 주믄, 나 묵고 자운 거, 입고 자운 거 쓰다 죽으믄 소원이 없겄구만.”

유족으로는 4남2녀가 있다. 빈소는 전남 나주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 10시. (061)332-8114.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No comments: